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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心性(씬씽) 수련

 

法輪功(파룬궁) 수련자는 모두 心性(씬씽) 수련을 반드시 첫자리에 놓아야 하며, 공이 자라는 데는 心性(씬씽)이 관건이라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이것이 연공하여 고층차에 이르는 이치이다. 엄격히 말하면 층차를 결정하는 공력은 연마해 내는 것이 아니라, 心性(씬씽)에 의해 수련해 내는 것이다. 心性(씬씽)을 제고한다는 것은 말하기는 쉬워도 실행하자면 어렵고도 어렵다. 수련자는 극히 큰 대가를 치러야 하고, 오성(悟性)을 제고해야 하며,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고, 참기 어려운 일들을 참을 수 있어야 하는 등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수년간 연공해도 공이 자라지 않는가? 그 근본 원인은 첫째 心性(씬씽)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고층차의 정법(正法)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반드시 밝혀 두어야 한다. 많은 사부들이 공을 가르치면서 모두 心性(씬씽)을 중시하는데, 이것이 진정으로 공을 가르치는 것이다. 동작과 수법만 가르치고 心性(씬씽)을 중시하지 않는 그런 것은, 사실상 사법(邪法)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연공인은 반드시 心性(씬씽) 제고에 큰 노력을 기울여야만 더욱 높은 층차의 수련으로 들어갈 수 있다.

1. 心性(씬씽)의 내포(內涵)

法輪功(파룬궁)에서 말하는 心性(씬씽)은 ‘德(더)’로써 일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德(더)’가 포함하는 범위보다 훨씬 넓으며, 德(더)를 비롯하여 여러 면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德(더)’에서 나타나는 한 사람의 心性(씬씽)은 한 가지 체현에 지나지 않으므로 단순히 ‘德(더)’로써 心性(씬씽)의 내포를 이해하려 해서는 부족하다. 心性(씬씽)은 ‘득(得)’과 ‘기(棄)’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두 방면의 문제를 포함한다. ‘득’이란 바로 우주특성에 동화함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특유한 성질은 ‘眞(쩐)·善(싼)·忍(런)’인바, 한 연공인이 우주특성에 동화함은 바로 개인의 ‘德(더)’에서 체현된다. ‘기(棄)’란 곧 탐(貪)·이(利)·색(色)·욕(慾)·살(殺)·타(打)·도(盜)·강탈(搶)·간사(奸詐)·질투(妒嫉) 등등 불량한 사상과 행위를 버리는 것이다. 고층차로 수련하려면 사람의 모든 고유한 욕망에 대한 추구를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일체 집착심을 버려야 하며, 바로 개인의 일체 명(名), 이(利)를 아주 가볍게, 아주 담담하게 여겨야 한다.

사람은 육체와 천성으로 완전한 사람을 구성한다. 우주도 마찬가지로 물질성 외에 또한 ‘眞(쩐)·善(싼)·忍(런)’이라는 특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매 공기의 미립자 중에 모두 이런 특성이 존재한다. 속인사회에 체현되는 것은 좋은 일을 하면 크게 칭찬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 고층차에서는 바로 공능태(功能態)로 나타난다. 이런 특성에 적응하면  좋은 사람이고, 그에 어긋나면 나쁜 사람이며, 그에 부합하고 그에 동화하면 도(道)를 얻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연공인이라면 반드시 극히 높은 心性(씬씽)을 갖고, 이 특성에 동화할 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고층차로 수련할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기는 좀 쉽지만 心性(씬씽)을 수련하려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수련자는 정신적 준비가 있어야 하는바, 마음을 똑바르게 하려면 먼저 뜻부터 성실하게 해야 한다. 사람들이 세계에서 생활하고 있고, 사회는 복잡하다. 당신이 선(善)을 행하려고 해도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당신이 남을 해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당신을 해칠 수 있다. 여기에 어떤 것은 비자연적 원인에서 오는 것도 있는데, 당신은 무엇 때문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가? 당신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의 일체 시시비비는 당신의 心性(씬씽)을 검증하지 않을 때가 없다. 난데없이 굴욕을 당했을 때, 당신의 절실한 이익이 손해를 받았을 때, 금전 앞에서, 여색 앞에서, 권력다툼에서, 아귀다툼의 질투와 미움 중에서, 여러 가지의 사회분쟁, 가정모순과 유형무형의 고통 속에서, 당신은 수시로 엄격한 心性(씬씽) 요구로써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가? 물론 당신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각자(覺者)이다. 연공인 대부분은 필경 속인에서 연공을 시작하는 것이기에 心性(씬씽)의 수련도 조금씩 조금씩 제고되는 것이다. 뜻있는 수련자는 큰 고통을 겪고 큰 곤란을 맞이할 결심이 있어야만 마지막에 가서 정과(正果)를 얻을 수 있다. 많은 수련자들이 心性(씬씽)을 엄격히 지켜 하루 빨리 공력을 제고하기 바란다!

2. 실(失)과 득(得)

기공계, 종교계에서는 모두 실(失)과 득(得)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실이란 바로 베풀고 좋은 일을 좀 하고 누가 곤란하면 좀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득이란 바로 공을 얻는 것이라고 여긴다. 절의 화상도 이렇게 말하며 시주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잃음을 너무 좁게 보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잃음은 넓은 의미에서 말하는 것으로서 매우 큰 것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잃음은 속인의 그 마음으로, 집착하여 놓지 못하는 그 마음이다. 당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잃을 수 있고, 당신이 포기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을 잃을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잃음이다. 사람을 도와 좋은 일을 좀 한다거나 자비심을 좀 표시하는 이것은 잃음의 일부분일 뿐이다.

속인으로서는 이름을 좀 날리고, 이득을 좀 보려 하며, 좀 잘 살아보려고 하고, 좀 편안하게 지내며, 돈을 좀 많이 갖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속인의 목표이다. 그러나 우리 연공인은 다르다. 우리가 얻는 것은 공이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좀 잃어야 하고 좀 담담하게 여겨야 한다. 하지만 또 당신으로 하여금 정말로 무엇을 잃으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속인사회에서 수련하는 만큼, 여전히 속인과 같음을 유지해야 하는데, 관건은 당신이 그런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이지, 당신에게 정말로 무엇을 잃으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것이면 잃어버릴 수 없고, 당신의 것이 아니면 얻어 올 수도 없으며, 얻어왔다 해도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고,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단번에 모두 높아지기는 불가능하고, 하룻밤 새에 각자(覺者)가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조금씩 수련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제고하는 것은 할 수 있으며, 당신이 얼마를 잃을 수 있으면 곧 그만큼 얻을 수 있다. 이익 관계에서 당신은 언제나 담담하게 여겨야 하며, 차라리 적게 얻더라도 편안해야 한다. 물질적으로는 당신이 손해를 볼 수 있으나 德(더)는 당신이 많이 얻을 수 있고, 공은 당신이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이치이다. 당신이 의식적으로 명예나 이익, 복록으로 교환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성(悟性)에 의해 진일보 체득해야 한다.

대도(大道)를 닦은 어떤 사람이 일찍이 말하기를, 남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나는 가지려 하지 않고, 남에게 있는 것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나에게 있는 것이 남에게는 없고, 남이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것을 나는 갖는다. 한 속인으로서 만족할 때가 있기란 매우 어렵다. 무엇이든 다 갖고 싶어 하지만 유독 땅바닥의 돌만은 줍지 않는다. 도를 닦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럼 내가 그 돌을 줍겠다고 했다. 속담에, 물건은 희소할수록 귀하고, 적을수록 기이하다고 말한다. 돌은 이쪽에서는 값이 없으나 저쪽에 가서는 가장 값이 있다. 이는 속인이 말하지 못하는 철학적 이치를 말한 것이다. 대덕고인(大德高人)으로 수련한 적지 않은 이들이 모두 아무것도 없으며, 그들로 말하면 개인이 버리지 못할 것이 없다.

연공이란 이 길은 가장 옳은 것이며, 연공인이야말로 가장 총명한 사람이다. 속인들이 다투는 그것이나, 얻으려는 고만한 이득은 일시적인 것이고, 설사 다투어서 얻었거나 주웠거나 혹은 이득을 좀 얻었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속인들에게는 한 마디 말이 있다. 태어날 때에 가지고 오지 못하고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올 때에 알몸이고 갈 때도 알몸이며, 뼈마저 다 태워서 재가 된다. 당신이 제아무리 돈 많은 부자이고, 제아무리 높은 벼슬일지라도, 당신은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다. 하지만 공은 갖고 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당신의 主意識(주이스) 몸에 자랐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 것은, 공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할 수 없이 진귀하고 너무나 얻기 어렵기에 천금을 주고도 바꾸지 못한다. 당신의 공이 아주 높아졌을 때, 만일 어느 날 당신이 연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라도, 오직 당신이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면, 그때에 당신의 공은 당신이 요구하는 일체 물질로 전화(轉化)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세상에서 얻는 것 외에, 수련인이 얻는 것은 당신에게 다시 있을 수 없다.

일부 사람은 어떤 개인적 이익을 위해, 원래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 것을 부당한 수단을 통해 얻어오고서 이득을 보았다고 여기는데, 사실 그가 얻어 온 이익은 德(더)로써 다른 사람과 교환해 온 것으로, 단지 그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연공인이라면 공에서 줄이고, 연공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수명에서 줄이거나 또는 다른 면에서 덜어낸다. 총체적으로 이 거래 장부는 꼭 결산해야 한다. 이것은 천리(天理)이다. 또 어떤 사람은 늘 남을 얕보고, 악한 말로 사람을 해치는 등등 이런 행위를 함에 따라, 그는 곧 그에 상응하는 한 몫의 德(더)를 상대방에게 던져주고 德(더)로써 남에 대한 모욕을 맞바꾼다.

일부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면 손해 본다고 여긴다. 속인이 보기에는 그가 손해를 봤지만 그는 도리어 속인이 얻을 수 없는 것을 얻는데, 그것이 바로 ‘德(더)’―백색물질로서, 그것은 지극히 진귀하다. 德(더)가 없으면 공이 없는데 그것은 절대적인 진리이다. 무엇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연공해도 공이 자라지 않는가? 바로 德(더)를 닦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德(더)를 말하고 있으며, 모두 德(더)를 요구하고 있으나 德(더)가 진정으로 공으로 전화되는 이치를 말해 주지 않고 스스로 깨닫게 했다. 대장경(大藏經)을 만여 권이나 썼고, 석가모니가 살아생전에 40여 년이나 설법했는데, 모두 德(더) 하나를 말했으며, 중국 고대에 도를 닦는 책도 모두 德(더) 하나를 말했고, 노자(老子)가 쓴 5천자의 『도덕경(道德經)』이 말한 것도 역시 德(더)였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좀처럼 깨닫지를 못한다.

우리는 잃음을 말하는데 얻음이 있으면 곧 잃음이 있게 마련이므로, 당신이 진정으로 수련하려고 생각한다면, 일부 마난(魔難)에 부딪히게 된다. 생활 중에 나타나는 것은 첫째로 신체에 고통을 좀 받아 여기가 불편하고 저기가 불편해지지만, 그것은 병이 아니다. 다음으로는 사회, 가정, 직장에서 다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서, 갑자기 이익을 위해서 모순이 발생하고 감정 사이에 마찰이 나타나는데, 목적은 당신에게 心性(씬씽)을 제고하라는 것이다. 흔히 이런 일들은 매우 갑작스럽게 나타나며 보기에 아주 맹렬하다. 만일 당신이 한 가지 매우 번거로운 일에 부딪혀서 아주 낭패를 보거나 창피를 당해 아주 체면이 없게 되었다면, 그때 당신은 어떻게 대하겠는가? 당신이 아주 태연하게 대할 수 있다면, 당신의 그 心性(씬씽)이 이  난(難) 중에서 높아지고, 당신의 공도 상응해서 그만큼 높게 자란다. 당신이 조금 행했다면 당신은 곧 조금 얻고, 당신이 대가를 얼마를 치렀다면 당신은 곧 그만큼을 얻는다. 사람은 난 중에서 흔히 깨닫지 못할 수 있으나 우리는 깨달아야 하고, 속인들과 같아서는 안 되며, 모순이 생겼을 때 자태가 높아야 한다. 우리는 속인들 속에서 수련하기에, 心性(씬씽)의 연마(魔煉)도 반드시 속인들 속에서 연마(魔煉)해야 하는바, 몇 번 곤두박질을 쳐야 하며, 그 중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 어떤 번거로움도 만나지 않고 편안히 공이 자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 ‘眞(쩐)·善(싼)·忍(런)’을 함께 수련

우리 이 법문은 ‘眞(쩐)·善(싼)·忍(런)’을 함께 수련한다. ‘진(眞)’이란 곧 진실한 말을 하고 진실한 일을 하며, 반본귀진(返本歸眞)하여 최후에 진인(眞人)이 되는 것이다. ‘선(善)’이란 곧 자비심을 베풀어 선행을 하고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다. 특히 ‘인(忍)’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데, 오직 ‘인(忍)’해야만 비로소 대덕지사(大德之士)로 수련할 수 있다. ‘인(忍)’은 아주 강한 것으로서 ‘진(眞)’과 ‘선(善)’을 넘어선 것이다. 수련의 전 과정에서 당신에게 ‘인(忍)’하라고 하며, 心性(씬씽)을 지키고 함부로 행동하지 말도록 한다.

일에 부닥쳐 참아내기는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얻어맞고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심지어 친구들 사이에서 아주 창피를 당하는 상황 아래서도 모두 참는다면, 그것이 그래 ‘아큐(阿Q)’가 된 것이 아닌가?! 내가 말하는데, 당신이 여러 면에서 표현이 모두 정상적이고 지력이 남보다 조금도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유독 개인의 이익을 아주 담담하게 본다면, 누구도 당신을 바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참을 수 있다는 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고 ‘아큐(阿Q)’가 아니라 의지가 강하다는 표현이며, 수양이 잘 되어 있다는 표현이다. 중국 역사상의 한신은 일찍이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는 치욕을 당했는데, 그것이 바로 크게 참은 것이다. 고대에 이런 말이 있다. ‘필부(匹夫)는 치욕을 당하면 검을 뽑아 달려든다.’ 한 속인이라면 그가 치욕을 당했을 때, 그는 검을 뽑아들 것이며, 그는 욕설을 퍼붓고 주먹으로 사람을 칠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한번 온 것이 쉽지 않은데, 어떤 사람이 체면을 위해서만 산다면 너무 가치 없고 또 너무나도 고달프다. 중국에 ‘한 발만 물러서면 가없이 넓다’란 말이 있다. 당신이 번거로운 일을 당해 한 발 물러섰을 때, 당신은 또 다른 광경을 발견할 것이다.

연공인으로서 당신과 모순이 발생한 사람에 대해, 당신에게 직접 맞대놓고 욕을 하는 사람에 대해, 당신은 참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태도 높아야 하며, 나아가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만약 그가 당신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心性(씬씽)을 제고할 수 있으며, 어떻게 고통을 받아 흑색물질을 백색물질로 전화시킬 수 있으며, 어떻게 공이 자랄 수 있겠는가? 사람이 겁난(劫難) 중에서 지나가기란 아주 어려운 것이지만 이때 꼭 자제해야 한다. 공력이 높아감에 따라 그 겁난도 끊임없이 커지기 때문에, 당신이 心性(씬씽)을 제고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본다. 초기에는 당신을 노엽게 하면 당신은 대단히 화가 나고 속이 아주 갑갑해서 견디기 어려우며, 화가 난 당신은 간이 아프고 위가 아플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화를 내지 않고 참아냈다면, 이는 참 잘한 것이다. 당신은 참기 시작했지만, 의식적으로 참아 낸 것이다. 당신이 천천히, 끊임없이 心性(씬씽)을 제고시킬 수 있고 당신이 진정으로 그 일을 담담하게 볼 수 있는 그 때가 바로 더욱 큰 제고이다. 속인은 일부 마찰이나 조그마한 일도 아주 큰 것으로 여기고, 산다는 것이 바로 체면을 위한 것이라 여기는데, 참지 못해 극도에 이르면 아무 짓이나 저지른다. 그러나 연공인으로서, 남이 아주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 당신에게는 아주 작게, 아주 작게, 아주아주 작게 보인다. 왜냐하면 당신의 그 목표는 참으로 장원(長遠)하고 원대(遠大)한 것으로서, 당신은 우주와 같은 나이가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시금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며, 당신이 크게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다 지나칠 수 있다.

4. 질투심 제거

질투심은 연공에 극히 큰 장애이며, 연공인에 대한 영향이 아주 커서 연공인의 공력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함께 도를 닦는 사람을 해치며, 우리가 위로 수련하는 것을 심하게 교란한다. 연공인으로서는 그것을 100퍼센트 제거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연공하여 일정한 층차에 도달해도, 질투심을 좀처럼 제거하지 못하는데, 제거하지 못할수록 질투심은 더욱 쉽게 커진다. 이런 반작용은 그로 하여금 이미 제고되었던 다른 心性(씬씽)도 아주 취약하게 변하게 한다. 왜 질투심만을 단독으로 끄집어내어 말하는가? 왜냐하면 질투심은 중국 사람에게 가장 강렬하고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사람들 마음속에서 비중이 제일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한다. 질투심은 동방특유의 것으로서 동방 질투 또는 아시아 질투라고 한다. 중국 사람은 아주 내성적이고 아주 함축적이어서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데, 이런 데서 질투심이 쉽게 생겨난다. 모든 사물에 두 가지 측면이 있듯이, 내성적인 성격은 좋은 일면이 있는 반면에 나쁜 일면도 있다. 서방 사람은 비교적 외향적이다. 예를 들면, 어린애가 학교에서 100점을 맞아 기뻐서 집으로 뛰어오면서 소리친다. “난 100점을 맞았어요…….” 이웃들은 모두 문이나 창문을 열고 그에게 축하하며 “톰, 축하한다!”라고 그를 위해 기뻐한다. 만일 중국에서라면, 당신이 생각해 보라. 듣자마자 반감이 생겨, “100점을 맞았다고, 무슨 ‘호들갑’이냐, 뭘 그리 자랑할 것 있나!”라고 할 것이다. 반응이 전혀 다른바, 질투심리가 있는 것이다.

질투심이 있는 사람은 남을 얕보고 남이 자기를 능가하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며, 남이 자기보다 더 나은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은 평형을 잃고 견디지 못하며 불복한다. 노임도 똑같이 올라야 하고 상금도 같게 받아야 하며, 하늘이 무너져도 같이 떠받쳐야 된다고 한다. 남이 돈을 많이 번 것을 보면 시샘을 해서 눈이 벌게지는데, 어쨌든 자기를 능가하면 그야말로 안 된다. 어떤 사람은 과학연구 성과를 거두고서도 다른 사람이 질투할까 두려워서 감히 상금을 타러 가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칭호(榮譽稱號)를 받고도 질투, 풍자가 두려워 감히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 다른 기공사가 강의하는 것을 보고 불복하여 강의장을 소란케 하는데, 이것은 바로 心性(씬씽) 문제이다. 여럿이 한 곳에서 함께 연공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연공한 시간이 짧지만 공능이 나왔다. 이에 다른 사람이 말한다. 그가 뭐 대단한가, 나는 여러 해 연마했고 수료증만 해도 한 무더기나 된다. 내가 아직 공능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가 어찌 나올 수 있겠는가? 질투심이 발동한 것이다. 연공은 안으로 찾도록 하여 스스로 자신을 많이 수련하고 자신의 몸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어느 면에서 부족하면 스스로 제고하기에 노력해야 하며, 안으로 힘을 써야 한다. 사람이 밖으로만 힘을 쓴다면, 다른 사람은 모두 잘 수련하여 올라가는데, 오직 당신만 올라가지 못하니 당신은 헛수고를 한 것이 아닌가? 수련은 응당 자신이 해야 한다!

질투심은 또 함께 도를 닦는 사람을 해칠 수 있다. 예컨대 듣기 싫은 소리를 하여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입정(入靜)하지 못하게 한다. 그에게 공능이 좀 있게 되면, 질투 때문에 공능으로 함께 도를 닦는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수련이 잘된 사람이 가부좌하여 연공하고 있는데, 그의 몸에 공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앉아있는 것이 마치 산과도 같았다. 이때 두 사람이 이곳으로 날아왔다. 과거에 승려였던 한 사람은 질투심이 있어서 수련하여 올라가지 못했는데, 비록 공력은 좀 있었지만 수련 성취하지 못했다. 그들 두 사람이 가부좌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곳까지 왔을 때, 한 사람이 말했다. “아무개가 여기서 수련하고 있으니 우린 길을 에돌아가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전에 나는 한 손바닥으로 태산의 한쪽 귀퉁이를 잘라버렸다.” 그러면서 연공인을 향해 손바닥으로 내리치려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손을 쳐들었지만 손을 내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정법수련을 하는 연공인에게는 보호막이 있어서 그가 내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정법을 수련하는 사람을 해치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중대하여 벌을 받은 것이다. 질투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해칠 뿐만 아니라 남도 해친다.

5. 집착심 제거

집착심(執著心)이란 연공인이 어떤 사물, 어떤 목표에 대해 내려놓지 못해 지나치게 추구하면서 초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몹시 고집을 부리면서 권고를 듣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세간(世間)에서 공능을 좀 얻는 것을 추구하는데, 이는 필연코 고층차로 가는 수련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심리가 강할수록 버리기가 더 어려워져, 심리적으로 더욱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안정하지 못하며, 뒤에 가서는 자신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여기는데, 심지어 배운 것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태도를 취한다. 집착심은 사람의 욕망에서 생기는 것으로, 추구하는 목표나 목적이 뚜렷한 국한성을 가지는 특징이 있어 비교적 명확하고 구체적인데, 흔히 그 본인은 인식하지 못한다. 속인은 집착심이 무척 많아 어떤 것을 추구하면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한다. 연공인의 집착심은 다른 형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어떤 공능을 추구하거나, 어떤 광경에 사로잡히거나, 어떤 현상에 열중한다든가 하는 등등이다. 연공인으로서 당신이 그 무엇을 추구하든지 모두 옳지 않기에 이런 것을 제거해야 한다. 도가(道家)는 무(無)를 주장하고 불가(佛家)는 공(空)을 주장하여 공문(空門)에 들어가는 것이고, 우리는 최종으로 공무(空無)에 도달하려는 것이기에 모든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는데, 당신이 버릴 수 없다고 하는 것까지도 모두 버려야 한다. 예컨대 공능에 대한 추구이다. 당신이 추구함은 바로 사용하려는 것인데, 사실 그것은 우리 우주의 특성과 상반되는 것으로, 실제로는 여전히 心性(씬씽) 문제다. 얻으려는 것은 바로 사람들 앞에서 뽐내거나 과시해 보이려는 것이다. 그런 것은 남에게 과시해 보이는 것이 아니다. 가령 당신의 사용목적이 아주 순수해서 좋은 일을 하려고 한 것이라 해도, 그 좋은 일을 당신이 한다 해서 꼭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속인들의 일을 당신이 초상적인 방법으로 상관한다 하여 꼭 좋은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전수반(傳授班)에서 70퍼센트 되는 사람들의 천목이 모두 열렸다고 한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한다. 왜 나는 감각이 없는가? 돌아가서 연공할 때 주의력을 천목에 집중해 생각하기에 머리가 아플 정도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집착심이다. 사람마다 신체소질이 다르고, 근기(根基)도 다르기 때문에, 천목이 동시에 보일 수 없으며 모두 같은 층차에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보고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하는데 모두 정상이다.

집착심은 연공인의 공력이 정체되거나 배회하는 상황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해지면 연공인을 그릇된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특히 일부 공능은 心性(씬씽)이 좋지 못하면 나쁜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다. 心性(씬씽)이 믿음직하지 못해 공능으로 나쁜 일을 한 실례도 있다. 어떤 지역의 한 남자 대학생은 사유를 통제할 수 있는 공능이 나왔는데, 이 공능은 자신의 사유로 다른 사람의 사상행위를 지배할 수 있어 그는 그것으로 나쁜 일을 했다. 어떤 사람은 연공할 때 어떤 광경이 나타나면 꼭 똑똑히 보아내고 결말을 알아보고자 하는데, 그것 또한 집착심이다. 어떤 사람은 어떤 취미에 인이 박여 쉽게 버리지 못하는데, 이것 역시 집착심이다. 근기(根基)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기에, 어떤 사람은 최고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연공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일부 것들을 얻기 위해 연공한다. 후자의 사상은 필연적으로 연공의 목적에 국한성이 나타나게 한다. 이러한 집착심을 없애버리지 않고서는 연공해도 공이 자랄 수 없다. 그러므로 연공인은 모든 물질적 이익을 담담하고도 담담하게 보아야 하며, 아무런 추구도 없이 순리를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집착심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이것은 연공인의 心性(씬씽)이 어떠한가에 달렸다. 心性(씬씽)을 근본적으로 제고하지 않고, 그 어떤 집착심을 갖고서는, 모두 수련 성취할 수 없다.

6. 업력(業力)

(1) 업력 생성

업력은 德(더)와 상반되는 일종 흑색물질이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악업(惡業)이라고 하고, 우리 여기에서는 업력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나쁜 일을 하는 것을 업을 빚어낸다고 한다. 업 또는 업력은 본인이 금생이나 전생(前世)에 저지른 과오로 하여 생겨난다. 예컨대 살생을 했거나, 누구를 얕보았거나, 누구의 이익을 빼앗았거나, 뒤에서 누구를 흉봤거나, 누구에 대해 비우호적인 것 등등이 모두 업력을 생기게 한다. 또 어떤 업력은 조상이나 친척, 친한 벗들에게서 옮겨온 것이다. 한 사람이 만약 주먹으로 남을 치면 그와 동시에 백색물질을 상대방에게 던져주고, 자기 몸의 그 자리는 곧 흑색물질로 대체된다. 살생은 가장 악한 짓이며, 나쁜 일을 하면 아주 중한 업력이 증가될 수 있다. 업력은 사람이 병에 걸리는 중요한 원인이다. 물론 그것은 꼭 병으로만 반영되는 것은 아니고 좀 귀찮은 일에 봉착할 수도 있는 등등인데, 다 업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공인은 절대로 좋지 못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일체 좋지 못한 행위는 모두 좋지 못한 정보를 낳게 하여, 당신의 연공문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식물의 기를 채집할 것을 주장하면서, 공을 가르쳐 줄 때에도 어떻게 식물의 기를 채집하는가를 가르친다. 어떤 나무의 기가 좋고 어떤 나무의 기는 무슨 색깔이라고 흥미진진하게 말한다. 중국 동북의 어느 한 공원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무슨 공을 연마(練)하는지는 몰라도, 땅 위에서 뒹굴다가 일어나 소나무를 에워싸고 돌면서 소나무의 기를 채집했는데, 반년 사이에 그 일대의 소나무가 누렇게 말라죽었다. 그것은 업을 빚어내는 행위이며 그 역시 살생이다! 국토를 녹화하고 생태평형을 지켜야 한다는 면에서나, 고층차에서 말하거나를 막론하고, 식물의 기를 채집하는 것은 모두 좋지 않다. 가없이 넓은 우주는 끝이 없고 그 어디나 기가 있어 당신이 마음대로 채집할 수 있으므로 당신이 채집하고 싶은 대로 채집해도 좋은데, 왜 하필 식물을 못살게 구는가? 연공인으로서 당신의 자비심은 어디로 갔는가?

만물은 모두 영(靈)이 있다. 현대과학은 이미 식물에 생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영성(靈性)이 있고 사유와 감정이 있으며, 심지어 초감각 공능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당신의 천목이 법안통(法眼通)에 도달했을 때, 당신은 세계가 또 다른 광경임을 발견한다. 당신이 문을 나서면 돌이나 담, 나무들이 모두 당신과 말할 수 있다. 어떤 물체나 모두 생명이 있으며, 그것들이 형성될 때 이미 한 생명체가 주입되었다. 유기물질, 무기물질은 우리 지구상의 인류가 나눈 것이다. 절의 사람들은 사발을 깨뜨려도 마음이 아프다. 왜냐하면 일단 그것이 파괴될 때 그 속의 생명체가 석방되어 나오는데, 그것이 그 생명노정을 완성하지 못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죽인 사람을 몹시 미워하게 되는데, 미워할수록 그 사람의 업력도 더 커진다. 어떤 ‘기공사’는 사냥까지 하는데, 그의 자비심은 어디로 갔는가? 불도(佛道) 양가(兩家)는 매사에 천리(天理)를 어기지 않는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살생행위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이전에 닭을 잡고 물고기를 잡으며 낚시질을 하는 등등으로 많은 업을 쌓았는데 연공을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그 때는 당신이 모르고 한 것이므로 그것이 더 큰 업력을 조성하지는 않는다. 금후에 다시 이런 짓을 하지 않으면 된다. 다시 한다면 바로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위반하는 것이기에 안 된다. 어떤 수련생에게는 이런 업력이 존재하고 있다. 당신은 연분이 있어서 전수반에 참가한 것이기에 수련해 올라갈 수 있다. 파리나 모기가 방에 들어왔을 때 잡아야 하는가 잡지 말아야 하는가? 여러분들은 현재 이 층차에서 이런 일을 하기에 때려죽여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쫓아버릴 수 없어 때려죽였다면 때려죽인 것이다. 어떤 것이 죽을 때가 되면 그것은 당연히 죽어야 하는 것이다. 석가모니 살아생전에 한번은 그가 목욕을 하려고 제자에게 목욕통을 씻어 놓으라고 했다. 제자는 목욕통 안에 벌레가 있는 것을 보고 돌아와 석가모니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다시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씻으라는 것은 목욕통이네.” 제자는 그제야 깨닫고 목욕통을 깨끗이 씻었다. 어떤 문제는 당신이 그것을 너무 중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너무나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데, 복잡한 환경 속에서 시시각각 정신을 긴장시키고 조금이라도 잘못할까 봐 겁을 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집착이다. 두려워하는 자체가 바로 집착이다.

우리는 자비심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일에서나 자선(慈善)하는 마음을 품으면 문제가 쉽게 생기지 않는다. 개인의 이익에 대해 담담하고 마음씨가 선량하면,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자비심의 제약을 받으므로 나쁜 일을 할 수 없다. 믿어지지 않으면 보라. 당신이 늘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태도로 늘 다투고 싸우려 한다면, 아무리 좋은 일도 당신 앞에서는 나쁘게 될 것이다. 나는 늘 이런 사람을 본다. 자신이 옳을 때는 남에게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데, 그가 옳을 때는 다른 사람을 혼내줄 일거리가 생겼다고 한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일이 눈에 거슬린다고 해서 시비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당신의 눈에 거슬리는 일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연공인으로서 끊임없이 층차를 제고할 때, 당신이 한마디만 해도 에너지를 갖고 있으므로 속인을 제약하게 되기에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특히 당신이 문제의 진상을 보아내지 못했을 때, 인연관계를 보아내지 못했을 때, 곧 나쁜 일을 하기 쉬우며 업을 빚어내기 쉽다.

(2) 소업(消業)

세간(世間)의 이치와 하늘의 이치는 마찬가지로서, 남에게 빚진 것이 있으면 갚아야 한다. 속인이 남에게 빚을 져도 갚아야 한다. 사람의 일생에서 당신이 봉착한 난(難)과 겁(劫)은 모두 업력이 만들어 낸 결과이므로 당신은 그것을 갚아야 한다. 우리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들은 그 인생길이 바뀔 것인즉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수련의 길을 새롭게 마련해 준다. 당신의 그 업력은 사부가 일부분을 감소시켜 주고, 나머지는 모두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에 쓰게 되므로 당신 자신이 연공과 心性(씬씽) 수련을 통해 업력을 전화하여 갚아야 한다. 이후에 당신들이 봉착하는 문제는 다 우연한 것이 아니므로, 당신들은 이런 사상적 준비가 있어야 한다. 당신에게 난을 겪게 할 것이며, 당신에게 속인들이 버릴 수 없는 것을 전부 버리게 할 것이다. 당신은 번거로운 일에 많이 부딪히게 될 것인바, 가정, 사회 여러 면에서 문제가 생겨날 것이며; 갑자기 어떤 재난을 당하거나; 심지어 본래 상대편의 잘못인데도 당신이 질책과 억울함을 당하는 것 등등이다. 연공인은 병에 걸리지 않아야 하는데, 종종 갑자기 큰 병에 걸리는 수가 있다. 병세도 아주 중하여 시달리는 것이 너무 괴로워 병원에 가서 검사해도 병을 진단해 낼 수 없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치료하지 않았는데도 병이 낫는 수가 있다. 사실은 당신이 진 어떤 빚을 이런 형식으로 갚은 것이다. 혹시 어느 날 당신의 배우자가 아무런 까닭 없이 당신에게 화를 내며 하찮은 일을 가지고도 대판싸움을 할 것인데, 그 후에도 어찌된 영문인지를 알 수 없는 때가 있다. 연공인으로서 당신은 왜 그런 일이 생기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바로 업이 온 것이며, 당신에게 그 업을 갚으라는 것이다. 이런 때 당신은 자신을 파악해야 하며 心性(씬씽)을 지켜서 그 일이 풀리게 해야 한다. 그가 당신을 도와 업을 없애주는 것을 소중하고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가부좌를 오래 하고 있으면 다리가 아픈데, 어떤 사람은 아파서 기절할 정도이다. 천목의 층차가 높은 사람이 보면, 몹시 아플 때에는 연공인의 신체 내외에서 아주 크고 검은 물체 한 덩어리가 아래로 사라진다. 가부좌할 때의 통증은 진통(陣痛)으로서, 가슴을 에는 듯 아프다. 오성(悟性)이 있는 사람은 다리를 내리지 않는데, 검은 것이 사라지고 흰 것으로 전화(轉化)되어, 공으로 전화된다. 연공인의 업력은 가부좌와 연공을 한다고 해서 완전히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心性(씬씽)과 오성을 제고해야 하고 마난(魔難)을 겪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사람됨이 선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法輪功(파룬궁)은 선량한 마음이 아주 빨리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연공하려고 거기에 척 앉기만 하면 까닭 없이 눈물이 나고 무엇을 생각해도 모두 마음이 쓰리며, 누구나 다 고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자비심이 생긴 것으로, 당신의 천성과 진정한 자아가 우주의 특성인 ‘眞(쩐)·善(싼)·忍(런)’과 서로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에게 그 선량한 마음이 생길 때 당신은 일을 아주 착하게 할 것이다. 당신의 내심에서 외면에 이르기까지, 언뜻 보아도 아주 선량해 보이는데, 그때는 누구도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가서 누가 정말 당신을 괴롭히더라도 당신의 그 크나큰 자비심이 작용하여 당신은 되받아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과 같지 않도록 해 주는 힘이기도 하다.

당신이 겁난에 부딪혔을 때, 그 자비심이 당신을 도와 난관을 넘게 하며, 동시에 나의 법신(法身)이 당신을 지켜주고 당신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 하지만 난(難)은 꼭 당신이 넘도록 한다. 예를 들면 내가 타이위안(太原)에서 전수반을 열었을 때, 한 노부부가 나의 전수반에 참가하려고 급히 큰길을 건너는데, 길 한복판에 이르자 승용차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와 단번에 할머니를 걸어 10여 미터 끌고 가서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승용차는 20여 미터를 나가서야 멈춰 섰다. 기사는 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듣기 거북한 말을 했고, 차에 앉은 사람도 듣기 거북한 말을 했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때 내가 한 말을 생각하고는 일어서서, “괜찮네, 괜찮아, 아무데도 다친 데가 없네.”라고 하면서 남편을 끌고 함께 강당으로 들어왔다. 그때 그가 만약 “아이고! 나는 여기도 상하고 저기도 상했으니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게나.”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렇게 했더라면 정말로 잘못되었을 것인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사부님, 저는 어찌된 일인지 압니다. 이것은 나를 도와 업을 없애버린 것입니다! 큰 난을 하나 제거하고 큰 업 한 덩어리를 없애버린 것이지요.” 그의 心性(씬씽), 오성이 아주 좋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이가 그렇게 많고 차 속도까지 그렇게 빠르며, 그렇게 멀리 끌려가 땅바닥에 쓰러졌는데도 일어섰으니 마음이 참으로 바르다.

어떤 때 겁난이 오면 너무나도 커 보여서, 그야말로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 갑자기 길이 트이고 갑자기 일에 큰 전환이 생기는데, 실제로는 우리가 心性(씬씽)을 제고하여 그것이 자연히 사라진 것이다.

사상의 경지를 높이려면 반드시 세간(世間)의 각종 마난(魔難)의 고험을 겪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 당신의 心性(씬씽)이 정말 올라가고 안정되며, 업도 없어지고 당신의 마난(魔難)도 지나가며 공도 자란다. 설령 心性(씬씽)을 고험하는 기회에 心性(씬씽)을 지키지 못해 일을 그르쳤더라도, 이때 당신은 낙심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교훈을 잘 새기면서 차이점을 찾아 ‘眞(쩐)·善(싼)·忍(런)’ 수련에 노력해야 한다. 다음번에 心性(씬씽)을 검증하는 어려운 문제가 또 뒤따라올 것이다. 공력이 높아짐에 따라 心性(씬씽)을 고험하는 마난(魔難)도 더욱 맹렬하고 갑작스럽게 올 것이다. 당신이 매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공력이 그만큼 자랄 것이며,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공은 곧 정체된다. 작은 고험에서는 작게 자라고, 큰 고험에서는 크게 자란다. 매 연공인은 큰 고생을 겪을 준비가 있어야 하고, 큰 곤란을 맞이할 결심과 의지력이 있어야 한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진정한 공을 얻을 수 없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고생도 겪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공을 얻으려고 생각하는데,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心性(씬씽)을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고, 개인의 그 어떤 집착심을 가지고서는 대각자(大覺者)로 수련할 수 없다.

7. 마(魔)를 초래하다

마를 초래한다는 것은 연공인이 연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연공에 영향을 주는 현상이나 광경을 가리키는데, 목적은 연공인이 고층차로 수련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것이다. 또한 마(魔)가 와서 빚을 갚으라고 조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법 수련이 고층차에 이르면 필연코 마를 초래하는 문제에 부딪힐 것이다. 그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은 평생 동안에 불가피하게 일부 좋지 못한 일을 하게 되는데, 이런 좋지 못한 일을 업력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 근기가 좋은가 나쁜가 하는 것은 그가 가진 업력이 얼마나 되는지로 결정되며,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업력이 없을 수는 없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만약 당신이 병을 제거하고 신체건강만을 위한다면 당신을 상관하는 마가 없지만, 일단 당신이 고층차로 수련하면 그것이 곧 당신을 상관하려고 한다. 그는 각종 방법으로 당신을 방해하는데, 목적은 당신이 고층차로 수련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이 수련 성취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데 있다. 마의 출현방식은 여러 가지로서, 어떤 것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중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어떤 것은 다른 공간에서 오는 정보의 형식으로 교란하여 당신이 앉기만 하면 곧 어떤 일로 방해해서 입정(入靜)할 수 없게 함으로써 고층차로 수련하지 못하게 하며; 어떤 때는 당신이 가부좌를 하자마자 곤히 졸음이 오거나, 생각이 연이어 떠올라 연공상태에 들어갈 수 없게 하고; 어떤 때는 당신이 연공만 하면 본래 매우 조용하던 환경이 갑자기 발자국 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전화의 교란과 각종 떠드는 소리로 당신으로 하여금 조용히 있을 수 없게 한다.

또 한 가지는 색마(色魔)로서, 연공인이 가부좌한 상태에서나 꿈속에서 그의 앞에 미남이나 미녀가 나타나 당신을 유인하고 유혹하면서 자극적인 동작을 하여 당신이 미색을 탐내는 마음을 불러낸다. 당신이 한 번이라도 넘지 못했다면, 그는 당신이 고층차로 수련하려는 생각을 버릴 때까지 점차 급을 올려 당신을 유인한다. 이 한 고비를 넘기가 아주 힘들어 적지 않은 연공인이 여기서 좌절당한다. 당신들에게 정신적 준비가 있기를 바라는바, 만일 어떤 사람이 心性(씬씽)을 잘 지키지 못해, 한 번이라도 넘지 못했다면 교훈을 참답게 되새겨야 한다. 그는 여러 차례 와서 당신에게 소란스럽게 굴 것인데, 당신이 진정으로 心性(씬씽)을 지키고 그런 집착심을 완전히 버릴 때에야 그만둔다. 그것이 큰 고비로서, 반드시 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를 얻을 수 없고, 수련 성취할 수 없다.

다른 한 가지 마의 형식은, 연공할 때나 꿈에서 갑자기 매우 흉측하여 무서운 얼굴을 생생하게 보거나 또는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놀라게 할 뿐 그가 정말 칼로 찌르려고 해도 찌를 수 없다. 왜냐하면 사부가 이미 연공인의 몸 밖에 보호막을 씌워 주었기 때문에 찌를 수 없다. 그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목적은 당신이 연공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어느 한 층차, 어느 한 단계의 현상으로서 아주 빨리 지나가는데, 며칠이나 일주일 또는 몇 주일 걸린다. 이는 당신의 心性(씬씽)이 얼마나 높고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보는가에 달렸다.

8. 근기(根基)와 오성(悟性)

근기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온 백색물질을 가리킨다. 바로 德(더)라는 이런 유형의 물질인데 많이 가질수록 근기가 필연적으로 좋다. 근기가 좋은 사람은 귀진(歸眞)하기 쉽고 도를 깨닫기 쉽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그의 사상에 장애가 없기 때문에 기공을 배운다는 말을 듣거나, 수련에 관한 말을 듣기만 해도 흥취가 생겨 곧 배우려 하기에 우주와 통할 수 있다. 노자가 말했다. “상사(上士)가 도를 들으매 근면히 행하고, 중사(中士)가 도를 들으매 있는 듯 없는 듯하며, 하사(下士)가 도를 들으매 크게 웃어버리거니 웃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도다.” 쉽게 귀진하고 쉽게 도를 깨닫는 사람은 ‘상사’에 속한다. 반대로 흑색물질이 많은 사람, 근기가 좋지 않은 사람은 그의 몸 밖에 장벽이 형성되어, 그로 하여금 좋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설령 좋은 것을 접촉하더라도 그것이 그로 하여금 믿지 않게 하는데, 실제상 이것이 바로 업의 작용이다.

근기를 말하자면 필연적으로 오성문제에 이른다. 오(悟)에 대해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은 오(悟)란 곧 총명(聰明)이라고 여긴다. 속인들이 말하는 총명이라는 것, 원숭이처럼 약은 사람은 우리가 말하는 수련과는 정말로 거리가 대단히 멀다. 이런 총명한 사람은 흔히 쉽게 개오(開悟)할 수 없다. 그는 다만 현실의 물질세계만 중하게 여겨 그 어떤 손해도 보지 않고, 그 어떤 이득도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극소수 사람은 스스로 학문이 대단하고 지식이 있어 아주 총명하다고 여기면서, 수련을 아라비안나이트(天方夜譚)라고 여긴다. 연공을 하고 心性(씬씽)을 닦는 것이 그로서는 불가사의한 것이라, 연공인은 모두 바보이며 미신이라고 한다. 우리가 말하는 오(悟)는 총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성(人性)의 귀진(歸眞)이며 좋은 사람이 되고 우주특성에 부합하는 것을 가리킨다. 근기가 사람의 오성을 결정한다. 근기가 좋으면 오성도 좋을 수 있다. 근기가 오성을 결정하지만 오성이 완전히 근기의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근기가 아무리 좋아도 이해력이 부족해서 깨닫지 못하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은 근기가 그리 좋지 않아도 그의 오성이 좋으면 위로 수련할 수 있다. 우리는 중생을 제도하기에 오성을 보지, 근기를 보지 않는다. 비록 당신이 갖고 있는 좋지 못한 것이 매우 많다고 하더라도, 오직 당신이 결심하기만 하면 위로 수련할 수 있는데, 사실 당신의 그 일념(一念)이 바로 정념(正念)이다. 이런 생각이 있으면 당신이 남보다 대가를 더 많이 치를 뿐, 최종적으로는 수련 성취할 수 있다.

연공인의 몸은 이미 순정(純淨)한 것으로서, 공이 나온 이후의 신체는 병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체내의 고에너지물질이 흑색물질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좀처럼 믿지 않고 늘 자신에게 병이 있다고 여기며 말한다.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한가!” 우리가 말하는데, 당신이 얻은 것은 공이고, 또 그렇게 좋은 것을 얻었으니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련이므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실제로 그것은 모두 표면적인 것으로서 당신의 신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보기에는 병 같으나 전혀 병이 아니며, 당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연공인은 고생 중의 고생을 겪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오성이 좋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귀찮은 일을 당하고서도 깨달으려 하지 않으며, 내가 여기에서 고층차의 것을 말하고 어떻게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겠는가를 말해도, 그는 자신을 속인과 구별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는 자신으로 하여금 진정한 연공인의 상태에서 연공하지 못하게 하며, 자신이 고층차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마저 믿지 않는다.

고층차에서 말하는 오(悟)란 개오(開悟)를 가리킨다. 오는 돈오(頓悟)와 점오(漸悟)로 나뉜다. 돈오는 전반 수련과정을 다 잠가(鎖) 놓고 연마하는 것을 가리킨다. 당신이 수련의 전반 과정을 다 거친 후, 心性(씬씽)이 제고된 다음 최후 일순간에 도달하면 공능이 전부 터져 나오고, 천목이 일순간에 최고 층차로 열려, 사유는 다른 공간의 고급생명과 접촉할 수 있고, 단번에 전체 우주의 각개 공간과 각개 단원(單元)세계의 진상을 보며 아울러 그들과 통할 수 있고, 대신통(大神通)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돈오의 길은 걷기가 가장 어려우므로, 역대에 모두 근기가 매우 높은 사람을 제자로 골랐으며 역대로 모두 단독으로 전수하는 공법이었다. 일반사람은 견뎌내지 못하고 만다! 나는 돈오, 이 길을 걸었다.

내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것은 점오(漸悟)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수련 과정 중에 어떤 공능이 나와야 할 때가 되면 바로 그 공능이 나오게 한다. 하지만 공능이 나왔다고 해서 당신이 쓰게끔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당신의 心性(씬씽)이 아직 일정한 층차에 도달하지 못하고 자신을 파악하지 못해 쉽게 나쁜 일을 할 수 있을 때에는, 당신에게 공능을 잠시 쓰지 못하게 하지만 결국에는 당신에게 줄 것이다. 수련을 통해 층차가 점점 올라가고, 우주의 진리를 점차 인식했다면 역시 돈오와 마찬가지로 최후에는 원만에 이른다. 점오, 이 길은 걷기가 비교적 쉽고 위험성이 없다. 어려운 것은 수련의 과정을 당신이 다 보기 때문에 당신은 마땅히 자신에게 더욱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9. 청정심(淸靜心)

일부 사람은 연공할 때 조용할 수가 없어, 입정(入靜)하는 방법을 찾는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묻는다. “사부님, 저는 연공할 때 왜 조용해질 수 없습니까. 사부님께서 저에게 무슨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어떤 수법을 써서, 저희가 가부좌할 때 조용해지도록 해 주십시오.” 내가 말하는데, 당신이 어찌 조용해질 수 있겠는가! 신선이 와서 당신에게 방법을 가르쳐 주어도 당신은 조용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 자신의 마음이 청정(淸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사회 중에서 생활하다 보면 칠정육욕(七情六慾)이며, 여러 면의 개인적 이익, 자신 심지어 친척, 친구들 것까지도 모두 걱정하다 보니, 머릿속에 차지한 비중이 너무나도 크고 놓인 위치도 매우 높은데, 가부좌하고 연공할 때에 조용해질 수 있겠는가? 인위적으로 그것을 억눌러도 그것은 저절로 뒤집혀 나오게 마련이다.

불교 수련법에서는 ‘계(戒)?정(定)?혜(慧)’를 말한다. 계(戒)란 바로 집착하는 그런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염불을 외우는 방법을 쓰는 데가 있는데, 오로지 한마음으로 외워 자신의 사상으로 하여금 일념이 만념을 대체하는 상태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 공부(功夫)일 뿐, 방법은 아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당신이 외워 보라. 입으로는 염불을 외우나 머릿속에는 틀림없이 또 다른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티벳(西藏) 라마가 처음으로 염불을 가르쳤는데 하루에 몇 십만 번씩 외우도록 했으며, 일주일 동안이나 외운다. 머리가 멍해지도록 외워서 나중엔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게 되어 일념이 만념을 대체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 공부(功夫)로서, 당신이 꼭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어떤 공법에서는 당신에게 의수단전(意守丹田) 하거나, 셈을 세거나 또는 눈으로 물건을 보라는 등 방법을 가르치는데, 실제로 그런 것은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절대적으로 조용해지게 할 수 없다. 연공인은 청정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개인적인 이익을 버려야 하며, 그 탐욕스런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실 조용해질 수 있는가 없는가, 定(띵)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공부(功夫)의 높이, 층차의 높이를 반영한다. 앉자마자 조용해질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층차의 체현이다. 잠시 조용해질 수 없고, 잘 안 된다고 해도 괜찮다. 당신은 수련과정에서 서서히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心性(씬씽)은 서서히 높아지는 것이고, 공은 서서히 자라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과 욕망을 담담하게 하지 않고서는 공이 자랄 수 없다.

연공인은 시시각각 모두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사회의 각종 복잡한 현상, 매우 많은 저급하고 건전하지 못한 것들, 칠정육욕의 것들이 연공인을 교란하지 않을 때가 한시도 없다. 텔레비전, 영화, 문예작품에서 선전하는 것들은, 그가 당신에게 속인 중의 강자, 더욱더 현실적인 속인이 되도록 인도하고 있다. 당신이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당신은 연공인의 心性(씬씽), 심경(心境)과 거리가 더욱 커지고, 당신이 얻은 공은 더욱 적어진다. 연공인은 그런 저급하고 건전하지 못한 것들과 될수록 적게 접촉하거나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응당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듣고도 못 들은 체하며, 남을 따라 움직이지 말고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나는 늘 속인의 마음이 나를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는데, 누가 나에게 좋은 말을 한마디 한다고 해서 나는 기뻐하지 않고, 누가 나를 나쁘다고 욕한다 해도 나는 역시 화를 내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 속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심한 心性(씬씽) 교란도 내게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연공인은 얻은 일체의 이익을 아주 담담하게 보고, 무엇이나 모두 마음에 두지 않을 때에만 도를 깨닫는 그 마음이 비로소 성숙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명리(名利)에 대해서 억지로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명리나 지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때, 당신은 번뇌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으며, 영원히 심리적 평형을 유지할 수 있다. 무엇이나 다 버릴 수 있다면 자연히 청정해질 것이다.

나는 대법을 당신들에게 강의했고,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당신들에게 가르쳤으며, 당신들의 신체를 잘 조절해 주었고, 당신들의 몸에 ‘法輪(파룬)’, ‘氣機(치지)’를 넣어 주었으며, 또 나의 법신이 당신들을 보호해 준다. 당신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죄다 당신들에게 주었다. 전수반을 여는 기간에는 나에게 달렸으나 금후에는 당신들에게 달렸다. 문으로 이끌어 들인 것은 사부지만, 수행은 개인에게 달렸다. 오로지 당신들이 대법을 깊이 알고, 정성 들여 체득하고 깨달으며, 언제나 心性(씬씽)을 지키면서 근면하고도 착실하게 수련하고, 고생 속의 고생을 겪을 수 있고 참기 어려운 일도 참을 수 있다면, 당신이 꼭 수련에 성공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功修有路心爲徑

공을 수련하는 길은 마음이 지름길이라

大法無邊苦作舟

대법은 끝없나니 고생을 배(舟)로 삼을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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