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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법회설법

 

李 洪 志
(1999년 5월 8일)

 

(박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여기에 자리한 어떤 이들은 얼마 전에 시드니 법회에서 만났었다. 그러나 당신들 대다수는 뉴질랜드 수련생에 속하며 또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도 있다. 여러분은 수련과정 중에서 수련 중의 많은 문제를 제출할 것인데, 그러므로 내가 여기에 온 주요한 목적은 여러분을 만나보고, 동시에 법회 기간에 여러분에게 일부 문제에 대해 해답해 주려는 것이다. 이 모임을 통해 여러분으로 하여금 진정한 제고를 얻을 수 있게 하고 당신들로 하여금 원만성공(圓滿成功)하게 하며, 동시에 여러분으로 하여금 서로 간에 차이점을 찾을 수 있게 하여, 다른 사람이 어떻게 수련하는지를 보며 자신에게 아직 어떤 부족함이 있는지를 보게 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것은 역시 우리 이 법회가 도달해야 할 목적이다.

그렇다면 수련 중에서 여러분은 틀림없이 이런저런 문제가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우리 많은 사람은 장기간의 법 공부를 통해 여러분 모두 직접 체득이 있을 것이다. 즉 자신에게 결코 그렇게 많은 문제가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문제가 없는가? 나를 만나도 마치 제출할 어떤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사실 주요 원인은 바로 여러분이 법 공부 중에서, 법에 대한 인식을 점차 제고하고 진정하게 법에서 제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명백해진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대법이 여전히 속인사회 중에서 전해지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와서 배우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출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여러분은, 흔히 우리 법회 기간에 많은 사람이 제출한 문제가 중복된다는 것을 모두 느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매번 제출되는 많은 문제가 다른 법회 기간에도 제출되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줄곧 새롭게 배우는 수련생이 있는데, 그렇다면 새로운 수련생이 문제를 제출하기 때문에, 제출한 문제는 흔히 모두 초기 법 공부 때에 만나는 문제를 중복하고 있다. 물론 이 속에는 또 일부 노수련생이 제출한 문제나 혹은 어떤 방면에 대해 좀 더 많이 요해(了解)하려고 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오직 책을 보고 법을 배우기만 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든 다 알 수 있다. 당신이 책을 보고 법을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연히, 여러분이 수련 중에서 한마디의 내포에 명백해졌을 때, 사실 당신은 이미 그 층차 중에 있는바, 단지 당신들 속인 이쪽에 아직도 속인의 사상이 있을 뿐이다. 속인의 사상이란 무슨 뜻인가? 즉 당신은 아직도 속인의 칠정육욕(七情六慾)이 있고, 속인에 대한 여러 면의 집착이 있으며, 또 속인의 정(情)을 가지고 문제를 사고하는 등등, 이것들이 바로 속인의 사상이다. 또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점(觀點)이 있는데, 그중에는 업력이나 사상업력도 포함한다. 당신은 수련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이런 것들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단지 많고 적음이 다를 뿐이다. 수련 중에서 그것은 갈수록 적어질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가 수련한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거나 그렇게 정진하지 못했다면 속인의 이런 사상이 비교적 많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이렇게 많은 속인의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당신이 만약 높은 표준의 사상으로 문제를 볼 수 없다면, 당신은 많고 많은 문제를 제출할 것인데, 사실은 흔히 모두 속인의 관념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당신으로 하여금 단번에 어느 한 경지 중의 많은 법리를 알게 할 수 없으며, 마치 개공하고 개오한 것처럼 명백해지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의 사상이 있는데, 사람의 사상으로 하여금 부처의 일을 알게 할 수는 없고, 신(神)의 경지 중의 진정한 법리와 그의 진실한 정황을 사람에게 펼쳐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수련 중 법의 표면에서 그 한 줄의 글자, 즉 『전법륜(轉法輪)』 중의 한 단락 법리에 명백해지면, 사실 당신은 이미 그 층차 중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것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신에게 속인의 사상이 있기 때문인데, 속인과 똑같은, 수련이 잘 안 된 이 부분 사상으로 하여금 부처의 일을 알게 할 수 없는바, 바로 이 이치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 한 줄 글자의 진정한 내포에 명백해졌을 때나 부동한 층차에서 그에 대해 부동한 이해가 있을 때면, 사실 당신은 이미 바로 그 층차 중에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아직도 속인 중에서 끊임없이 수련해야 하고 속인의 집착심을 끊임없이 제거해야 하므로 속인의 사상을 수련 중에 단번에 제거해 버릴 수는 없다. 만약 그것을 모두 다 제거해 버린다면 여러분은 수련할 방법이 없다. 나는 늘 이런 한마디 말을 한다. 즉 만약 한 사람, 그가 속인의 사상이 없다면 사람이 생각한 일체를 그는 전부 다 아는데, 심지어 사람의 거동 하나, 눈빛 하나, 무엇을 하려 하고, 최후에는 이 일이 어느 정도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그는 모두 알 수 있다. 왜 여러분은 현재 아직은 알 수 없는가? 바로 당신들에게 현재 아직 사람의 사상이 존재하는바 아직은 속인 중에 섞여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속인 이 경지 중에 있지 않을 때면 당신은 속인 중의 일이 일목요연해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모두 속인 중에서 수련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속인 중에서 수련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제고해 올라올 수 없다. 당신이 오늘 속인 중의 모든 사상이나 좋지 못한 요소를 다 제거해 버린다고 말한다면, 속인의 각종 관념을 포함하여 완전히 순정한 자아로 변했을 때 당신은 수련할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신(神)이 원만(圓滿)을 이룬 후 더 수련할 수 없는 것은 미혹(迷)을 이미 타파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에게 속인의 이런 사상이 없다고 한다면, 당신도 속인의 상태가 아니며 미혹도 모두 타파되어 당신은 당신 자신의 과거와 장래를 알 것이며, 다른 사람의 것도 알게 될 것이므로, 그렇다면 수련하기가 몹시 어렵다. 그러나 또 여러분이 과거와 장래를 알 수 있다고 수련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현재 알고 있는 것은 국한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말한 이런 앎은 완전히 개오된 상태이며, 무엇이든 다 알고 모르는 것이 없으므로 그는 이런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속인 중에서 대법을 수련하고 있는데, 원만을 이루기 전에는 속인의 사상이 조금도 없어서는 아직 안 된다. 그러나 속인의 사상이 있으므로 또 당신에게 부동(不同)한 층차의 진상을 알게 할 수 없는데 그것은 바로 이런 관계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기왕 속인의 사상이 있다면, 여러분이 수련 중에서 주의하지 않을 때 틀림없이 속인의 사상・관념을 품고 대법을 가늠할 것이며, 반드시 이런 일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수련 중에서 모순이 있을 것이고, 관을 넘는 일이 있을 것이며, 당신이 속인의 사상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런 일이 나타날 것인바,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대법 중에서 수련함은 한 층 한 층씩 사람의 사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마치 그 양파처럼 한 껍질 한 껍질 그것을 벗겨버리는데, 최후에 모두 벗겨서 없어졌을 때가 바로 본질이다. 대법 중에서 수련함은 무엇이든 모두 그것을 단번에 제거해 버릴 수 없는데, 그렇게 하면 당신은 속인 중에서 수련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표면상으로도 이미 속인 중의 한 사람에 속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대법 중에서 수련함은 또 한 가지 문제가 반영되어 나온다. 바로 여러분이 수련 중에서, 어떤 때는 수련한 것이 그래도 괜찮고, 일부 문제에 부딪혔을 때 확실히 그 한순간이나 혹은 그 기간에 집착심을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걸어 지나왔음을 느낀다. 그러나 후에 또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집착심이 또 나옴을 발견하며 여전히 똑같은 일이고 똑같은 문제인데도 오히려 그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못하고 또 있는 것을 발견하지만, 사실은 이런 것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대법의 수련 방식은 마치 계단처럼 층차를 나누는 것이다. 바로 내가 방금 예를 든 것처럼 그 양파로 말하면, 벗겨 낸 그 한 겹은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벗겨 내지 않은 그것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한 층 한 층씩 제거하므로 모두 제거해 버렸을 때만 비로소 전부 없어지게 된다.

여러분은 수련 중에서 흔히 법에 대한 인식 부족이 나타날 수 있는데, 관을 넘을 때 몹시 곤란하고 마땅히 법리에 따라 해야 함을 분명히 알지만, 어떤 때는 또 잘하지 못한다. 그럼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수련했는데 어떻게 집착심이 아직도 있으며, 나, 이 사람은 원만에 이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아주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이 한 관을 잘 넘었든지 잘 못 넘었든지, 당신의 집착심을 내려놓았거나 단지 조금만 내려놓았거나, 사실 당신은 모두 수련 중에 있으며,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관을 잘 넘지 못한 후에 당신은 후회할 것인데, ‘나는 어찌하여 잘 넘지 못했는가?’ 다음번에 나는 관을 잘 넘어 어떻게든 쟁취해야겠다고 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만약 여러분이 매 한 관, 매 한 난, 매 한 고험을 모두 잘 넘을 수 있다면, 당신은 수련할 필요가 없고 당신은 마땅히 원만(圓滿)에 이르러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왜냐하면, 무엇이나 모두 당신을 가로막을 수 없다면, 그것은 오직 각자(覺者), 개오한 사람이어야만 비로소 이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마치 들어서 명백해진 것처럼 집착심을 가지고 반면(反面)적으로 이해한다. 즉 ‘본래 잘 넘거나 잘 넘지 못하거나 모두 다 수련하고 있는데, 좋다, 이후에는 조급해하지 않고 잘 넘지 못해도 나는 역시 조급해하지 않겠다.’라고 한다. 안 된다. 만약 당신이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당신이 정진할 수 없다면, 당신은 또 수련하지 않는 것과 같은데, 그것은 바로 이런 변증법적 관계이다. 우리의 법리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부동한 층차 중에서 모두 이렇게 문제를 보는 한 방식, 법리를 인식하는 방식이 관통되어 있다. 당신이 이 한 층차 중에서 인식할 때 맞을 수 있으나, 당신이 층차 하나를 바꾸고 각도 하나를 바꾸어 인식한다면 당신은 또 그렇지 않음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끊임없이 제고하는 중에서, 끊임없이 수련하는 중에 끊임없이 법을 이해하는 것이다.

방금 내가 말한 것을 바꿔 말하면, 여러분이 수련 중에서 많은 문제를 제출하는 이것은 필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여러분이 만약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할 수 있고,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제고가 아주 빠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기에 명백하지 못한 모든 문제, 제출한 문제는 모두 법 중에서 해결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유일한 방법은 바로 책을 많이 보아야 하며, 동작만 연마하는 것으로는 안된다. 이 점은 백인이나 혹은 다른 민족의 수련생 중에서 이렇게 인식하는 사람이 비교적 많은데, 기공을 연마함은 바로 동작을 연마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어디 또 다른 것이 있는가? 책을 보아서는 무얼 하는가? 하는데, 여러분 모두 흔히 이런 생각을 한다. 사실 이것은 당신들의 인식 상에서 가장 큰 부족이다. 당신들이 연마(煉)하는 기공 동작이 체조를 연습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표면상으로 보면 차이가 아주 작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기공을 연마하면 사람이 제고되며, 병이 제거되어 신체가 건강해질 수 있고, 체조를 하면 도달하지 못하는가? 바로 그것은 수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련의 내포는 결코 완전히 동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작은 단지 수련의 한 가지 보조수단일 뿐이다. 진정으로 제고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부동(不同)한 경지에 도달하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당신의 법(法)에 대한 이해로서, 반드시 당신에 대한 법의 지도가 있어야만 그 위치로 승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한 사람의 心性(씬씽)이 얼마나 높으면 그의 공도 그만큼 높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흔히, 도를 닦고, 기공을 연마하는 것은 어떤 절묘한 비결, 절묘한 방안, 혹은 특수한 동작을 취하여 수련하면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 것은 사람이 알아도 되지만, 진정하게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는 원인은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마다 모두 신선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지도하는 방법과 지도하는 이론을 가지고 있어서 당신을 수련시켜 올라가게 할 방법이 있다. 우리 오늘 그것을 좀 명백하게 말하면, 바로 법리가 지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전해진 모든 수도 방법에는 흔히 세간소도(世間小道)가 비교적 많았다.

사람의 사상이 인식하는, 진정한 대도(大道)는 바로 노자・예수・석가모니가 전한 것이며, 기타 대다수는 모두 세간소도이다. 그런 것은 매우 단순하여 동작은 복잡하지만, 법리상으로는 아는 것이 얼마 없어 수련하기가 몹시 곤란하다. 그것은 고행(苦修) 하나를 붙잡고 장기간 고생을 겪으며 수련한다. 고생을 겪으면 사람은 제고될 수 있고, 소업을 할 수 있지만, 법리 인식이 대단히 느리므로 수련이 매우 느리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전한 것은 대법(大法)이고, 전체 우주의 법리이다. 이렇게 큰 법(法)을 말해내어 사람을 제고되게 하는데 그건 당연히 제고됨이 빠르다. 이 법리(法理)는 사람의 일체 우매한 견해, 오류를 타파할 수 있고, 일체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일체 부정확한 상태를 시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법리를 배우기만 하고, 보기만 하면 당신은 바로 제고 중에 있다. 그러므로 책을 보고 법 공부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책을 읽는 것이 아무리 좋아도 단지 사상 중의 인식이지, 그것과 공의 연마(煉)는 별개의 일인데? 라고 한다. 이것은 바로 연공(煉功)을 말한 것인데, 우리가 알다시피 그것은 기(氣)를 연마해 낼 수 있다. 그런  다음 공(功)을 연마해 낼 수 있는데, 이것은 물질이다. 그러나 당신 사상 상의 인식, 이것은 마치 정신상의 것처럼 물질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정신과 물질 그것은 일성(一性)이다! 수련 중에서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것은 한 가지가 아닌가? 당신 사상이 그 한 층의 법리를 알았을 때, 당신은 바로 그 한 층에 있지 않은가?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이미 모두 말했으므로 상세하게 말하지 않겠다. 모두 책을 보도록 하라. 책 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이는 내가 매번 설법 중에서 우선하여 말하는 문제이다. 여러분은 모두 수련생이고, 매 한 사람이 모두 제고를 얻고, 진정하게 원만(圓滿)을 이루려 하므로, 모두 여기에 와서 이 법을 배운다. 그렇다면 여러분으로 하여금 원만 제고하게 하는 관건은 바로 이 책 ― 『전법륜(轉法輪)』이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많이 보아야 한다.

며칠 전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하기를, “저는 이미 200여 번을 보았는데 저는 정말로 내려놓을 수 없어서 아직도 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는 바로 그가 볼수록 그 안의 것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당신이 부동(不同)한 층차에서 이 책을 볼 때, 당신은 같은 한 줄의 글이 부동한 상황에서나 혹은 본 횟수가 다른 상황에서, 당신은 그 한 줄 글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같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 당신이 이전에 이 한 줄을 보니 이 뜻이었는데, 당신이 제고된 후, 이 줄의 글이 결코 그런 것이 아니고, 더욱 높은 함의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법은 내가 전해 주었는데, 나는 당신에게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당신의 신체를 정화해 주어 병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하며, 그런 다음 끊임없이 당신의 층차를 제고하여 원만에 이르게 한다. 만약 그렇게 높은 층차의 법이 당신을 지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위로 수련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그 한 층차 법리의 내포를 전혀 모르며, 올라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반드시 이 책을 보아야 하고, 책을 보는 동시에 또한 여러분의 경지가 제고되어야 하며, 사상과 인식이 승화되어야 한다. 속인의 말로 하자면 우리는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사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 중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단지 좋은 신체만이 아니고, 그런 조그마한 공능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원만(圓滿)에 도달해야 하고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여러분이 이 경지에 도달하려 하는데, 당신들이 만약 그 경지 중의 법리를 모른다면 당신이 어떻게 제고하여 올라갈 수 있겠는가? 당신들은 그렇게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동시에 또한 진정하게 수련 중에서 사람의 각종 집착심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겹겹의 자물쇠처럼, 겹겹의 문처럼 당신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법리에 명백해져야 하는 동시에 평소 그런 속인사회의 환경 중에서도 더욱 잘해야 한다. 적어도 여러분은 수련인다운 모습이어야 하며, 그러한 높은 경지, 높은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어느 곳에 있든지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여러분의 층차가 승화되고 사상 경지가 승화되면, 당신들의 공도 갈수록 높아질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일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공을 연마(練)해도 무엇 때문에 연마해 올라가지 못했는가 하는 것인데, 그가 많은 방법으로 연마했지만 수련되어 올라가지 못하고, 심지어 그 자신에게 아직도 병이 있다면 당신은 헛되게 수련한 것이 아닌가?

수련해도 올라오지 못하는 진정한 원인은 바로 지도할 법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준 이 한 세트 법은 완정(完整)하고 체계적인 것으로서 진정하게 당신으로 하여금 원만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법이기 때문에, 그처럼 많은 사람이 그를 아낄 수 있다. 현재 신문에서 우리는 1억(億) 명이 있다고 보도했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중국이란 그런 사회 속에서, 특히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은, 여러 차례 운동을 거쳤는데, 특별한 것은 문화대혁명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앙을 가진 적이 있고, 또 맹목적인 숭배로 곤두박질친 적도 있고 경험도 있으며, 이런 운동, 저런 운동을 거쳤는데, 이런 사람에게 당신이 맹목적으로 어떤 것을 믿으라고 하면 가능하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고급 지식인, 그렇게 깊은 사상이 있는 사람이 와서 이 법을 배우는가? 바로 이 법이 진정하게 사람을 위해 책임질 수 있기 때문으로, 말한 것은 도리(道理)이고 법리(法理)이며, 이치로써 사람을 감복시킨 것이다.

뉴질랜드 이곳에 이렇게 많은 수련생이 배우고 있지만, 나 리훙쯔(李洪志)는 여기에 와 본 적이 없다. 당신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요구하면서, 내가 당신이 배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가? 무엇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에서 견정하게 잘 수련할 수 있는가? 이는 당신들이 법리가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은 일생 중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이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이다.

방금 내가 말한 이런 것들은, 주로 여러분이 법 공부를 중시(重視)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부디 법 공부를 중시하라. 과거에 여러 사람이 곳곳에서 도를 찾아 수련하려고 했지만 수련하여 올라가지 못했다. 도를 얻지 못한 것은 결코 그 동작을 얻지 못해서가 아니라 법을 얻지 못해서인데, 진정한 수련 법리를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우주의 이런 대법인 이상, 여러분은 좀 생각해 보라. 우주의 법(法)은 부동(不同)한 층차의 생명에 부동한 층차의 생존 환경과 생명의 존재 방식을 개창해 주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우주 건립의 근본으로, 일체 생명 일체 물질이 모두 그가 육성한 것이다. 과거에 여러분이 알고 있던 그런 소법(小法), 소도(小道), 소리(小理), 작은 수련 방식은 모두 이 우주 대법 중의 봉모인각(鳳毛麟角)일 뿐이지 않는가? 단지 그가 가장 낮은 층차에서 사람에게 그처럼 아주 조그마한 것을 펼쳐 보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늘날 당신들은 우주의 대법을 얻었는데, 당신들이 여태껏 알지 못했던 진리로서 이는 역사상에서 여태까지 말한 적이 없는 진리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에 앉은 사람들이 잘 알다시피 방금 입문했거나 아직 입문하지 못한 사람,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듣기에는 내가 말한 것이 너무나 크지 않은가? 하고 느낄 수 있는데, 사실 당신이 체계적으로 책을 보기만 하면, 당신은 내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명백해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형식상의 관리가 없으며, 당신이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배우고 싶지 않으면 배우지 않아도 되는바 상관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당신이 배우려고 하면 나는 바로 당신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당신에 대한 책임의 방식은 또 속인 중에서 체현되어 나오지 않는 바로 이런 일종 정황이다.

방금 말한 것은 여러분이 법 공부를 중시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다시 최근 한 시기 사회에서 나타난 일부 정황을 말해보겠다. 특히 중국에서 일부 수련생이 중난하이(中南海)에 가서 국가 지도자들에게 문제를 반영해 주도록 했는데, 나는 말이 나온 김에 여러분과 이 문제를 좀 이야기하고자 한다. 현재 홍콩 신문에 실린 것은 난잡한 것으로서, 다른 국가의 화교신문도 모두 홍콩 신문에서 베낀 것이다. 그러나 홍콩은 전 세계가 잘 알듯이, 그곳은 인구가 단지 6백만뿐인데도, 그렇게 많은 신문이 있고 그렇게 많은 간행물이 있어, 모두 뉴스를 앞다퉈 보도하며 돈을 벌려 하고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뉴스보도에 대해 매우 무책임한 현상을 키워왔다. 그것은 제멋대로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제멋대로 꾸며내며, 한 가지 문제에 근거해 제멋대로 상상을 발휘한 다음 그것을 보도하는데, 바로 이렇다. 그러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엄정하지 못한 신문이 바로 홍콩의 중국어 신문이다. 심지어 떠도는 말들까지도 정식 뉴스로 간주하여 보도한다.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나의 관점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 수련생들이 중난하이(中南海)의 국가 지도자에게 정황을 호소하러 갔는데, 그것은 시위가 아니며 또한 침묵시위도 아니다. 여러분은 결코 침묵시위를 하지 않았으며, 어떤 사람은 거기에 앉아서 연공을 했다. 구호도 없고, 표어도 없으며, 격렬한 행동도 없고, 과격한 언어도 없었다. 모두 선념(善念)으로 국가 지도자들에게 우리의 진실한 생각을 말하려고 했지, 공안부서가 들은 근거 없는 풍문 같은 그러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늘 중난하이에 가서 어떠어떠했다고 강조한다. 중난하이는 인민정부의 소재지가 아닌가? 인민은 갈 수 없는가? 수련생은 무엇을 하려고 갔는가? 정부를 반대하러 갔는가? 가서 국가 지도자에게 문제를 반영케 하여, 국가 지도자들이 국민을 위해 책임을 지고 처리해 주기를 바라서가 아닌가? 무엇 때문에 조직적으로 어떠어떠했다고 말하는가? 조직적으로 정부를 지지하면 정부는 좋아하지 않는가?

물론 여러분 생각해 보라.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갔는가? 사실 내가 느끼기에는 간 사람이 너무나 적다! (박수) 사실 나는 여기에서 결코 여러분에게 가라고 권고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 1억(億) 명이나 되는데, 여러분 생각해 보라.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아주 적게 간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배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데, 이런 이치가 아닌가? 그렇다면 여러분이 간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텐진(天津) 경찰들이 우리 수련생을 잡아가고 우리 수련생을 구타했으며 우리를 사교라고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고 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고 당신이 나를 삿되다(邪)고 말한다면 당신은 나를 무엇이라고 말해도 나는 역시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여러분은 확실하게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있는데, 당신이 나를 삿되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 여기에서 이치를 말할 수 없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중앙 지도자에게 가서 말을 하는데 방법상 잘못이 없다! (박수) 왜냐하면, 우리는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또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공안부서의 일 처리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말할 뿐으로 이 속에는 문제가 없다.

뉴스를 보도하는 어떤 기자들은 상당히 무책임하기 때문에 그는 냄새를 좀 맡기만 하면 유언비어를 날조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도 그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나의 태도는 아주 명확한바, 우리 여기는 정부를 반대하지 않았고 또한 어떤 시위, 행진도 없었으며 과격하게 이 일을 하지 않았고 다만 정황을 호소하러 갔을 뿐이다. 당신도 가고 싶고 나도 가고 싶어, 그렇게 해서 많아졌다. 그 1억이 넘는 사람 중에 겨우 1만여 명이 간 것으로 자투리마저도 안 되는데 그건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만약 그 일을 더욱 크게 하고 더욱 과격하게 한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1만 명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며 아마 간 사람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황을 호소하러 간 사람이 많다 하여 그것을 틀렸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국가 지도자에게 문제를 호소하는 이것은 매 국민의 의무이자, 직책이며 그의 권리인데 여기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잘못이 없다. 우리는 정부에 반대하지 않고 정치를 간섭하지 않으며 동시에 우리는 또한 자각적으로 국가의 법을 지켰다. 이렇지 않은가?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모두 좋은 사람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내가 생각하기에 바로 이런 정황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는 수련(修煉)이다. 기왕 수련인 이상 우리의 수련 이 길에는 우연한 일이 없다. 나는 항상 이런 말을 하는데, 반대하는 것과 지지하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고,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며,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고, 바른 것과 사한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류이며, 이것이 또한 바로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이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그것을 좋은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마(魔)가 없으면 여러분은 수련할 수 없다. 그것이 당신을 반대하면 우리는 그것의 반대 속에서 당신의 사람마음(人心)을 보고, 당신이 확고한지 아닌지를 보며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본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기 때문에 한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이 원만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에 대한 진정한 그런 고험이 없는데, 그렇다면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고험이 있을 것이며,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데, 결코 그가 우리를 돕는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그는 확실히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그가 이런 나쁜 일을 하는 자체를 이용하여 수련자에게 기회를 제공해 준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당신이 여전히 연마하는가, 연마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당신 자신은 그를 좋다고 여기는가, 좋지 않다고 여기는가? 이는 바로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수련은 매우 엄숙한 것이며, 우리는 여러분이 이 점에 분명하기를 요구하는바 절대로 어떠한 한 가지 일도 우연한 것은 없다.

이 일을 통하여 여러분은 생각하는 것이 없는가? 온 세계가 다 대법의 출현을 알게 되었다! (박수) 이것은 당신들이 얼마만큼 홍법(洪法) 일을 했든지 간에, 그보다 범위・면적이 모두 클 것이다. (박수) 동시에 국내의 수련생에 대해서도 확실히 아주 엄중한 고험이다. 당연히 나의 이 말은 수련인에게 말한 것으로 속인사회에서는 바로 속인사회의 그런 표현 형식이다. 나의 견해를 방금 이미 말했는바, 바로 이런 견해이다. 우리는 국가의 어떤 한 지도자・정부・법률 등등 일체에 대하여 모두 간섭하지 않았으며 또한 파괴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좋은 사람이 되려 하기 때문에 단지 정황을 호소하러 갔을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이만큼 말하겠다. 지금은 법회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또 심득교류가 있으며, 그중에서 여러분은 모두 자신을 볼 것이고 차이점을 찾을 것인바, 여러분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제고하여 올라오게 할 수 있다. 오늘 온종일 우리는 모두 심득교류를 하고, 내일 오전에는 내가 여러분의 문제에 해답해 주겠다. 우리 이 모임은 전체적으로 하루 반을 열려고 한다. 여러분이 모두 앉아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조용히 하기 바란다. 다른 사람을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을 소중히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회는 신성한 것이고 당신들이 수련하는 것은 우주대법이기 때문이다! 자, 나는 이만큼 말하겠다. (박수)

어제 법회 내내 나는 옆방에서 여러분의 발언을 보고 들었다. 나는 이 법회가 아주 잘 개최되어 법회의 진정한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법회를 통해 이익을 얻게 하고 진정한 제고를 얻게 하는데 대단히 좋다고 생각한다. 오늘 오전 시간에 내가 전적으로 여러분의 문제에 해답해 주겠다. 이것은 이미 우리 법회의 관례 행사가 되었다. 그럼 여러분은 무슨 문제가 있으면 제출할 수 있는바, 법회의 시간에 따라 되도록 여러분에게 해답해 주겠다.

속인 중의 일에 대해서는 내 생각에 여러분은 제출하지 말라. 당신이 관을 넘는 중에 혹 일부 아직 깨닫지 못한 일을 당신이 제출하여 나에게 물으려고 하지만, 사실상 그 한 관은 당신에게 넘으라고 준 것인데, 만약 당신에게 해답해 준다면 마치 당신이 깨달을 것이 없는 것과 같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수련과 관련 있는 일은 많이 제출하고 수련과 관련 없는 일은 적게 제출하되, 가장 좋기로는 제출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 시작하겠다.

제자: 뉴질랜드 첫 법회이고, 저희는 모두 신수련생들입니다. 희망컨대 사부님께서 대법을 좀 많이 말씀하시어 저희 수련을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 내가 문제에 해답하는 것은 사실상 바로 여러분에게 설법해 주는 것이다. 제출된 대다수 문제가 우리 수련과 관계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방면에서 나는 되도록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말해 주겠다.

제자: 저는 다른 사람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데, 다른 방 사람에게는 많은 기공과 종교의 책이 있으며 그 사람은 부체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저에 대해 영향이 있는지 여쭙고 싶은데요?

사부: 이렇게 말하자. 당신들이 수련하는 것은 대법이며 진정한 수련이다. 다른 기공을 말하자면, 그것은 단지 당신들 정법수련의 에너지에 억제될 수 있을 뿐, 당신들은 그것의 교란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는데, 만약 자신이 자신을 계속해서 파악하지 못하고 그들과 뒤섞여 어떤 책이든 모두 보고 어떤 것이든 다 연마한다면, 당신은 번거로움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心性(씬씽)을 지킨다면 당신은 어떠한 환경 중에서도 모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사실 당신은 많은 사람이 좋지 못한 것을 연마(練)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오늘날 인류의 모든 환경은 모두 순정(純淨)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 수련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오직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정정당당하게 수련만 하면, 이런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떤 문제도 없다. 당신의 걱정 자체가 바로 집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일단 집착했다면 당신의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데, 마치 사람에 의해 교란을 받는 것처럼 조성되지만 실은 자신의 마음이 조성한 것일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쓰신 ‘조사세간행(助師世間行)’, ‘협오전법륜(協吾轉法輪)’ 이 두 구절의 시는 제자들을 가리킵니까, 아니면 불도신(佛道神)이 사부님을 돕는 것을 가리킵니까?

사부: 모두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내가 그 해에 법을 전할 때 학습반을 꾸리고 있었는데, 사실 대법의 엘리트(精英)를 양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일은 모두 당신들이 하고 있으며, 속인 중에서 대법을 실증하고 심지어 우리의 신수련생들도 노수련생으로 변하여 모두 홍법 일을 하고 있고, 더욱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고 있다. 당신들의 수련은, 대법(大法)에 대한 견정한 그 마음이 반석같이 단단하여 대법을 강력하게 안정시켰다. 동시에 속인사회 중에서 더욱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할 수 있었는데, 이는 실제로 이미 사부를 돕고 있다. 물론 이것은 모두 무의식중에 한 것으로서 역시 당신들 수련 중에는 필연적으로 있는데, 바로 이런 일이다. 당연히 위에는 위의 상태가 있으며 바로 이러하다.

제자: 사부님께서 쓰신 ‘수언지혜대(誰言智慧大), 정중무건곤(情中舞乾坤)’ 이 두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역사상에는 유명한 사람이 많이 있는데, 많은 사람이 말한 성자(聖者)가 있고, 많은 속인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인물이 있으며, 현재는 명망 있는 많은 사람을 포함하여 그들도 모두 속인이고 모두 정(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자신은 성과(成績)가 있다고 느끼며 다른 사람들도 그가 대단하고, 총명하고,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모두 정(情) 중에서 건곤(乾坤)이 춤추고 있는데, 바로 이 뜻이다. 모두 정을 벗어나지 못한바 모두 속인의 환경 중에 있으므로 그들은 여전히 속인이다.

제자: 제 아이는 두 살인데 그는 사부님의 교공(敎功) 비디오테이프 보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이 아빠는 반감이 대단합니다.

사부: 대법을 수련하고, 반본귀진(返本歸眞)하는 이것은 오늘날 사람이 세상에 온 진정한 목적인바,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준 것은 진실하고 확실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사람이 사실 모두 다 사람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또 반드시 모두 법을 얻으려고 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왕 사람 속에서 생존함이 결코 목적이 아니며, 방금 내가 말했던, 결코 꼭 법을 얻으러 온 것도 아니지만, 모두 법을 위해서 온 것이다. 기왕 우리가 사람 속에서 생존함이 생명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며, 어떻게 되돌아가느냐 하는 것이 인간 생명의 근본적인 목적, 생존의 근본 목적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 아닌가? 그럼 아이의 부친이 수련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아마 그가 당신들을 도와 관을 넘게 하는 것이거나 다른 요소가 존재할 수도 있는데, 어쩌면 정말로 당신들로 하여금 수련을 못 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당신이 어떻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라. 당신 자신이 파악하라.

제자: 사람의 개성은 다릅니다. 높이 수련될수록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사람의 개성은 다르지만, 당신 본질의 개성과는 같지 않다. 사람의 개성이란 대개 내려놓지 못한 집착의 표현이다. 이런 본질적인 성격이 우리 수련에 장애가 생기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모두 깊은 연원이 있고, 매우 본질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부동한 특징이다. 어떤 사람은 일을 빨리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일을 천천히 하기를 좋아하는데, 물론 이런 것은 그가 후천적으로 양성한 습관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당신 생활의 박자가 빠르든지 느리든지, 이런 것은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 공부에서 여러분은 반드시 정진해야 하는데, 인생의 시간은 확실히 유한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속인사회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영원하게 하려면, 인간 세상에서 수련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다 안 된다. 여러분이 아무리 많은 돈이 있고, 아무리 높은 직위가 있으며,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안일하든지, 당신은 모두 가지고 가지 못한다. 올 때에 알몸으로 오고 갈 때에도 역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바, 유일하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수련 중에서 얻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인간의 眞體(쩐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장 진귀한 것이고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며, 그것은 가장 소중히 해야 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이 장래에 영원히 얻어야 할 것을 결정하며, 부동한 층차 중에서 자신에게 창립해 줄 생존방식, 생존환경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람 이곳은 아주 좋지 않지만, 사람 이곳은 오히려 수련할 수 있고, 천상은 아주 좋지만 천상에서는 수련하기가 쉽지 않다. 바로 사람 이곳이 고생스럽기 때문에 수련할 수 있다.

제자: 만약 사람이 본래부터 성격이 아주 좋다면 수련하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까? 화를 잘 내면 수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까?

사부: 내가 방금 말한바 사람은 사람마다 생명의 특징이 있다. 그러나 화내는 이 문제를 놓고 말하자면 이것은 그야말로 사람의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이 화를 내고 있을 때는,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틀림없이 마성(魔性)이다. 무엇 때문인가? 어떤 사람은, 즉 나는 좋은 일을 위해서이며, 나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잘 배우라고 화를 내는 것이며, 나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일을 잘하게 하려고 화를 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 역시 마성이며, 또 악(惡)으로 악을 다스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마성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일을 잘하게끔 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선(善)한 마음으로 그를 대하고, 그와 선한 마음으로 말하며, 그에게 반드시 잘할 것을 알려준다면, 내 생각에 그는 감동할 것이다. 그는 정말 스스로 자원해서 잘하는 것이지 당신의 강요에 의해 잘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가 한 것은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수련 중에서 자신의 화내는 버릇을 점차 수련하여 제거해 버려야 한다. 여러분은 늘, 화를 내지 않기가 몹시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어렵지 않다. 여러분이 이지적으로 처리하면 많은 일을 더욱 잘할 수 있으므로,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한편 당신은 또한 다른 사람에게 德(더)를 주고 있다. 당신의 화는 실제로 상대방의 업력을 삭감할 수 있는데, 이것 역시 틀림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에게 한 차례 마가 되어줌으로써, 생활상에서든지 아니면 수련 중에서든지 그의 업력을 삭감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얻은 것은 그에게서 옮겨온 업력일 수 있기 때문에, 수련인으로서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자신이 수련하고, 그 자신이 자신의 업력을 전화(轉化)해야 한다.

제자: 저는 수련 중에서 많은 난과 번거로움이 있어서 저 자신의 해탈에만 신경 쓸 뿐, 홍법(洪法)은 논하지도 못합니다. 단지 나한으로 수련될 수밖에 없습니까?

사부: 이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교 중의 이론이다. 대법 수련생은 사람마다 부동(不同)한 수련상태가 있는데, 사람마다 반드시 홍법의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며, 어찌어찌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사실 홍법을 생각할 수 있을 때, 평소에 만나는 사람에게 하거나 조직적으로 하는 이것은 모두 수련생 자신의 수련 중의 일종 수련 표현인데 아주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바로 우리가 개최한 오늘의 법회처럼, 어떤 사람은 그의 체득을 말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또 수련하고 있지만, 체득을 말해낼 수 없는데, 바로 매 사람의 수련 상태가 다른 것과도 관계가 있는바 이것은 무슨 문제가 아니다.

제자: 인위적으로 난을 증가하게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만약 이런 어려운 난을 넘었다면 수련 중의 관을 넘었다고 칠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인위적으로 증가한 난을 당신은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바 그것은 바로 속인 생활 중의 난이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당신의 수련 이 한 갈래 길에 배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매 한 걸음이 어떻게 배치된 것이든지 그것은 아주 체계적인바, 당신의 어떤 마음을 제거해야 하고, 이 한 난에서 제고하여 올라오는 동시에, 마땅히 당신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을 풍부하게 해야 하며, 어느 한 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 어떤 것을 수련해 내게 해야 하고, 경지가 어느 한 곳에 있게 하는, 그건 모두 배치가 있는 것인즉, 아주 체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이 예정 외의 어떤 배치를 한다면, 바로 당신에게 체계적으로 배치한 이 세트의 것을 흐트러뜨린 것과 같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위적으로 찾아서 고생을 겪지 말아야 하며, 또 인위적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자연스러움에 따라서 수련하라. 당신이 무엇에 부딪히든 오직 당신이 잘 넘을 수만 있다면 그건 아주 좋다. 어떤 번거로움에 부딪혀도 당신은 모두 자신이 찾을 수 있으며, 자신의 이 마음에서 찾는다면 바로 수련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산속에서 수련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은 이곳의 이 높은 산에도 있으며, 단지 사람들이 모를 뿐 전 세계의 높은 산에도 수련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 어떤 사람은 몇 천 년을 수련했는데 층차 제고가 아주 느리다. 그들은 오직 고생스럽게 수련하는데, 고생은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고, 소업하게 할 수 있지만, 법리 중에서 수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느리다. 그는 그렇게 높은 경지 층차의 법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는 그 경지 중으로 승화하지 못한다.

당신들은 오늘날 왜 이렇게 빨리 수련되는가? 현재의 정황에서 당신들은 아직 당신들의 제고가 얼마나 빠른지 상상하지 못한다. 내가 법을 전한 지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이 이미 원만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법을 배우고 있기 때문인데, 우주 대법이 사람을 용련(熔煉)하는 그것은 아주 쉽다. 내가 예를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즉 용광로 쇳물에 만약 나무 조각,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져 들어가면 순식간에 당신은 그것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사람은 그 나무 부스러기와 같고 이 우주 대법은 그 용광로의 쇳물과 같다. 사람이 용해되는데, 만약 한 사람을 용해하려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쉬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할 수 없으며, 나는 당신 자신으로 하여금 수련하게 한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당신 이 사람을 새롭게 다시 만드는 것과 같은데, 아마 당신 원래의 형상과 특징은 있을 수 있지만, 또 당신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들 자신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수련할 수 있게 하고, 자신이 승화해 올라올 수 있게 하고, 해탈해 나오게 한다.

제자: 가끔 공리(功理)를 염(念)하면서 연공에 배합도록 해도 됩니까?

사부: 그렇게 하지 말라. 연공은 바로 연공이다. 연공은 입정(入靜)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되도록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 법 공부는 바로 법 공부이므로 반드시 그것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네 마디 구결을 포함하여 모두 연공 전에 염하며, 연공 중에는 염하지 않는다. 이러면 입정이 쉽다.

제자: 신수련생은 공의 이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노수련생도 연공 동작이 정확하지 못한 정황이 있습니다.

사부: 정확하지 못하면 그에게 정확하게 하라고 하라. 법을 이해하지 못함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에게 법 공부를 하게하고 연공과는 구분해야 한다. 법 공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법 공부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연마는 헛되고 만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가장 애석한 것이 무엇인가? 이 법에 진입은 했지만 스쳐 지나가 버리는 것이고, 주어도 또 가지지 않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생명으로서는 영원토록 후회막심한 일이다! 영원히 모두 어떻게 통탄하고 후회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많은 생명, 그는 본래 바로 이 법을 얻으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긴긴 세월 중에서 또한 이런 생명은 자신의 정념(正念)을 잃어버려 자신이 왜 왔는지 갈수록 모르게 변해 쉽게 잃어버린다. 일단 잃어버린 후에는 정말로……, 물론 법리는 다행히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바, 당신이 보지 않을까 봐 걱정이며, 당신이 배우지 않을까 봐 걱정인데, 나는 당신의 일체를 계도하여 깨닫게 할 수 있고, 당신의 본성으로 하여금 매몰된 일체를 청리해 버리게 할 수 있다.

제자: 가부좌할 때 마음속으로 연공음악을 부를 수 있습니까?

사부: 부르지 말라. 여러분은 연공할 때 왜 음악을 들어야 하는가? 왜냐하면, 나는 오늘날 사람의 수련은 이전의 어떠한 상태에서 수련하던 사람과는 모두 같지 않음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모두 일이 있고 다망한 사회의 일과 공부가 있기 때문에, 사람의 대뇌(大腦)를 고요히 하기가 매우 어렵다. 당신에게 이 음악을 듣게 하는 목적은 바로 당신이 고요해지게 하는 데 있다. 음악을 듣는 이 일념으로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바, 바로 일념(一念)으로 만념(萬念)을 대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자체 그것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집착이 생기게 한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의 음악은 에너지를 더한 것이기에 우리 대법의 내포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도 수련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일종의 이득과 제고를 얻을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전화되었으며, 대법음악(大法音樂)은 이런 작용을 일으킨다. 음악 표면의 선율에 흐르지 말라. 즉 집착하지 말라.

제자: 돌고 있는 만(卍)자 부호를 보았는데 사부님께서 수기(授記)하신 것입니까?

사부: 일반적으로 수기는 모두 앞이마에 한다. 다른 상태 중에서 본 그것은 단지 이 불가의 부호인 만(卍)자이다.

제자: 석가모니불이 내려와서 사람을 제도할 때 많은 고생을 했는데 여전히 여래 층차에 있습니까?

사부: 석가모니불 그는 여래이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어느 층차에 있는지는 말하는 사람이 없다. 부동(不同)한 층차의 부처・법왕은 모두 여래라고 부르는데 말하는 사람이 없고 또 사람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한다.

제자: 무엇 때문에 도가에서도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을 부릅니까?

사부: 명대(明代)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계통의 도교(道敎)가 출현했다. 이전의 도(道), 그것은 교(敎)가 없었고, 그것은 단지 사부가 한 무리 제자들을 데리고 거기에서 수련했다. 비록 한 무리가 있었지만 완정(完整)한 종교와 같은 이런 형식을 형성하지 않았다. 명대 이후에 이런 형식은 기본적으로 사원・종교의 형식과 완전(完全)히 일치했다. 도(道), 그것은 청수(淸修)해야 하고・독수(獨修)해야 하며・정수(靜修)해야 하므로 그것은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요소가 없다. 그렇다면 종교가 형성된 후, 종교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여 원만(圓滿)을 이루게 하는 것이고, 하나는 종교가 사회에서 사람의 마음을 선(善)하게 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 도교 역시 이런 일들을 하기 시작했는데, 사람에게 법사(法事)를 해주거나 사람을 제도하려 했다. 왜냐하면, 많은 신도가 생김에 그것도 사람을 제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을 제도한다면 한두 명씩은 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을 제도한다고 하지 않고, 도제(徒弟)를 이끈다고 한다. 그것도 부처・보살을 말하는데, 심지어 나한(羅漢) 이런 명칭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일반적인 도(道)이며, 이것은 대도(大道)에 속하지 않고 이것은 근대에 출현한 것이다.

제자: 저는 다른 공(功)을 연마(練)하여 신체 속에 부체가 들어왔고, 또 제 아들의 신체에도 들어갔습니다. 그에게 연공(煉功)을 가르치면 그의 몸 위의 부체도 저로 인해 없어지는 것인지요?

사부: 만약 한 사람 그가 가까이 왔을 뿐, 결코 진정하게 이 문에 들어서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거나 줄곧 문밖에서 관망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슬픈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한 일체는 모두 당신에게 어떻게 수련하는 사람이 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집착하는 이런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수련하는 사람으로 될 수 없다. 당신은 또 당신의 고통 중에서 단지 당신의 그런 고통스러운 것에만 집착할 것이다. 진수(眞修) 제자에게는 이런 일들을 내가 모두 수습해 준다. 하지만 당신은 반드시 수련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 이후부터 당신은 내가 방금 말한, 당신에게 이런 일을 수습해 준다는 이 말마저도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당신은 사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에 대해 전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당신은 법 공부하고 대법 중에서 당신을 용련(熔煉)해야 한다. 당신의 아이가 어떠한지를 말하자면 당신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라. 당신이 한평생을 집착한다 해도 해결할 수 없다. 당신이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이런 일들을 모두 적절하게 처리해 줄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수련원만(修煉圓滿)을 이뤘는데, 그의 신변에 아직도 이렇게 많은 번거로움이 있으면 되겠는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당신이 맺은 생생세세의 원(怨)뿐만 아니라, 당신이 맺은 연(緣)을 나는 모두 당신에게 해결해 주어야 한다. 한 사람이 수련원만을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신이 생생세세 진 빚, 당신이 생생세세 갚을 원(怨), 그 많은 것을 모두 당신에게 해결해 주어야 한다. 당신은 진정한, 속에서 겉에 이르기까지 깨끗한 그런 각자(覺者)가 되어야만 비로소 원만(圓滿)에 이를 수 있다. 당신이 끌어다 놓은 많고 많은 일이 있고, 갚아야 할 많고 많은 빚과 많고 많은 원한이 있는데, 모두 갚지 않고 당신이 어떻게 원만에 이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당신은 또 이런 일들을 모르고, 이런 일들을 해결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고통 중에서 해결하지도 못하고 한평생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이미 대법을 만났는데 또 그것을 상관해서 무엇하겠는가? 마음을 내려놓아라. 아직 한 가닥 목숨이 남아있고, 정념이 있지 않은가? 대법 중에서 수련하라. 예컨대 당신이 정말로 다른 부분은 지켜내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정념 이 부분은 당신이 지켜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물며 당신은 장래 원만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런 일들을 정리해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당신이 이런 일을 그런 강한 집착심으로 집착한다면, 내가 어떻게 당신을 대해야 하는가? 어떤 생각도 모두 집착으로서, 집착심은 하루 이틀에 양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을, 그렇게 집착하고, 그렇게 두려워해서야 어찌 수련자이겠는가? 좀 심하게 말하는 것은 당신에게 좋은 점이 있다.

제자: 사상업력이 조성한 일부 사상, 이것을 저는 업력을 전화하는 데 필요한 기회로 알고 있습니다. 청컨대 사부님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사부: 이 마음을 내려놓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라. 바로 이렇게 하라! 여기에 자리한 수련생, 만약 당신들 어느 한 사람이 현재 마음속에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어도 지금 당신들이 내려놓을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오늘 이 회의장을 나간 후 그 일에 대해 한 가지 다른 생각이 있을 것임을 보증한다. 사람에게서 수련이란, 바로 사람의 집착심을 최대한도로 포기하는 과정이다. 무엇 때문에 이 일을 이렇게 중하게 보는가? 당신이 두뇌 속에서 생각하고, 집착하며, 중하게 보는 이런 것들이 바로 담장으로,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오지 못하게 하는 담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의 매 일념으로 하여금 모두 점차 사람을 벗어나서 신(神)의 상태가 되라고 한다. 그러나 당신의 매 일념은 모두 걱정하며, 사람 여기에 묶여있어 그것을 떠나지 못한다. 마치 그 선박처럼, 그것이 출항하려 하지만, 닻줄이 모두 부두에 묶여 있고, 많은 닻줄이 묶여 있어, 풀지 못하면 당신은 갈 수 없다.

제자: 어떤 수련생은 장시간 병업을 소업하는 상태에 처해 있어서 시종 그 한 층차 중에서 머물러 올라가지 못하는데요?

사부: 그 한 층차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다. 다시 말해서 집착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수련생 중에는 보편적으로 두 종류의 정황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병에 대해 집착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말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당신들의 수련은 단일하게 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당신은 제고해야 하는 동시에 또 당신의 업력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업력에 집착하여 제고되어 올라오지 못하고 心性(씬씽)이 제고되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그 관을 넘지 못하므로 아주 오래 끌 것이다. 곧 말해서 당신은 수련 중에서 진보가 있을 수 없으며 늘 그 상태 중에 머물러 있다. 당신이 정말로 정진 중에서 자신을 제고했다면 이 관은 일찍이 넘어갔다. 그렇게 긴 시간을 지체하고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이 병 자체에 대한 집착이 형성되어 당신이 대법을 수련하는 확고한 신념을 동요시켰다. 이것은 바로 한 난(難)으로 안 되어 한 난, 또 한 난을 덧붙여서, 관이 이렇게 크게 변했다. 물론 또 업력이 큰 것을 배제하지 않는데, 수련은 바로 복잡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대다수 원인은 모두 자신의 층차 제고가 너무나 느려서 조성된 것으로서, 이 상태를 너무 길게 끈 것이다.

제자: 당신께서 개별적인 수련생과 만나는 비디오테이프를, 많은 수련생이 당신을 둘러싼 채 정황을 보고하고, 문제를 제출하는 등, 당신이 개별적인 장소에서 설법한 이런 것을 틀어줘도 괜찮습니까?

사부: 좋지 않다! 매우 좋지 않다! 개별적인 장소에서 나는 어떠한 사람이든 녹음하고 녹화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 그는 기필코 녹음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그는 나를 속이는데 그는 사실 그 자신을 속이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의 일체 수련이나 일체 제고는 모두 당신 자신을 수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숨기고 있는 일체의 것은 모두 마치 어린아이가 노는 것과 같을 뿐이다. 내가 개별적인 상황을 겨냥하여 말한 문제는 보편성이 없다. 보편성이 없는 것을 당신이 내놓는다면 다른 사람을 교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이 법리는 매우 크다. 나는 모두 거시적, 정체(整體)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내가 당신에게 구체적인 말을 해주지 않는 것은, 말하고 나면 당신은 수련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당신은 바로 대법 중에서 수련하는 일원(一員)이므로 당신이 대법을 위해서 책임지는 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 책임지는 것이다. 이 대법이 한 걸음만 빗나가도 당신은 결코 돌아갈 수 없다. 만약 법이 바르지 못하다면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하여 원만하게 할 수 없다.

제자: 저는 안을 향해 찾아야 함을 배워 평소에 이런 좋지 못한 마음을 제거하는 데 주의를 기울입니다. 어떤 때 제가 다른 사람에게 지적해 주면 그는 저에 대해 불쾌해합니다. 이것은 업을 짓는 것입니까?

사부: 이것은 업을 짓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에게 집착심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아주 좋은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 쓰는 소심한 사람으로 변하지는 말라.

다른 사람에게 지적해 주는 것을 말한다면, 선의(善意)의 지적은 마땅히 해야 한다. 여러분은 수련하여 또 다른 사람에게 잘해야 하지 않는가?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결점이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도 수련하고 있기 때문인데, 왜 그에게 알려주지 않는가? 그가 어떻게 대하든지 그에게 알려줘야 할 것은 알려주라. 당신들의 마음이 선(善)한 것을 사부는 보았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 그가 받아들이지 않음을 말한다면, 그가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당신은 그가 마땅히 제거해야 할 그 마음을 건드린 것으로서, 내가 생각하기에 그에 대한 촉진이다. 그가 그때는 깨닫지 못하지만 지난 후에 깨달을 수 있다. 만약 그가 그래도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또다시 다른 사람의 입을 이용해 그를 다시 두드릴 것인데, 또다시 깨닫지 못하면 그로 하여금 머리를 부딪쳐 큰 혹이 나게 할 것이다. (웃음) 말한 것은 우스갯소리다! 사실 수련은 바로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명백해지려면 반드시 『전법륜(轉法輪)』 이 책을 보아야 하는바 반복적으로 보아야 한다. 자신의 집착심을 발견하고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이다. 자신이 발견하지 못하여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지적해줄 때 당신이 마음속으로 기분이 좋지 못하다고 느끼면 당신은 『전법륜』을 들고 좀 보라. 당신이 어떠한 목적을 품지 않고, 당신이 무심히 『전법륜』을 들어 중문이든, 영문이든 아니면 다른 어종이든, 당신 임의대로 그것을 펼치면 틀림없이 그 한 편은 바로 당신을 가리켜 말한 것일 텐데, 당신이 보면 틀림없이 이러하다. 그러나 당신은 시험하지 말라. 당신이 시험해 보려는 이 마음은 아주 좋지 않고, 법에 대해 엄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이 시험하려고 할 때에는 소용이 없고 또한 쓸모가 없다.

제자: 저는 법을 배운 지 근 2년이 되고 心性(씬씽)도 제고 중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아직 신체 쪽에서 어떤 큰 난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그래도 저를 책임지고 계십니까?

사부: 당신이 2년을 수련했다는데 여러분 생각해 보라. 내가 당신을 책임지지 않았다면 당신은 벌써 이 문을 떠났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큰 난을 만나 자동차에 부딪혀 자동차를 부서지게 했는데도 어떻게 되지 않았으니 나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라고 한다면, 나는 사람마다 수련 정황이 모두 다르므로 당신을 그렇게 배치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채택하여 당신의 소업을 도울 것이다. 사실 모두 똑같다면 당신들은 수련할 필요가 없이 척 보기만 하면 안다. 당신이 부딪히는 것마다 모두 그 사람과 똑같아, ‘나도 따라 하겠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정황은 모두 천차만별이다.

제자: 어린이에게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습관적으로 늘 들려주었습니다. 그가 잠들기 전에도 그가 듣도록 틀어주는데, 이렇게 하면 성장한 후, 법을 듣기만 하면 잠을 자게 될까요?

사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주 잘했다. 어린이가 듣기 좋아하는 그것은 그의 선천적 본성의 그 일면이 명백한 것이다. 어린이는 3세 이후 선천적인 것이 점차 적어지게 되고 감춰지게 된다. 3세 이후부터 6세 이전까지 어린이는 그런대로 아주 천진하다. 6살이 넘으면 쉽게 관념이 형성된다.

제자: 수련의 기연(機緣)은 어떻게 심어지는지요.

사부: 부동한 층차에서 맺어진 것도 있고, 인간 여기에서 맺어진 것도 있다.

제자: 현재 우리 지역의 대법자료는 언제나 사회에서 대량으로 공개 발행된 적이 없습니다. 어떤 다른 원인이 있습니까?

사부: 당신들 여러 사람이 수련을 아주 잘했고, 형식상에서도 기본적으로 대법의 형식으로 수련하고 있으므로 이것은 문제가 없다. 자료 문제를 말하자면 어떤 지역은 아마 있을 수 있고 어떤 지역은 없을 수도 있다. 중국대륙 어떤 지역은 몇십 명이 책 한 권을 보고 있는데, 극히 부족하다. 특히 농촌 그곳이 더욱 부족한데, 책이 매우 부족하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해결될 것이다.

제자: 법에 기초해서 법을 인식함에 어떻게 해야만 이 점을 더욱 잘할 수 있습니까?

사부: 법에 기초해서 법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장 큰 특징은, 마치 외부 사람인 것처럼, 속인의 관념으로 법을 가늠하고, 속인의 이런 논법으로 대법을 말한다는 것이다. 법리상에서 법을 진정하게 인식한다는 것은, 말하는 바가 법이고, 행위 또한 대법제자답게 행동하는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정진 중에서 수련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도 다르고, 담론하는 것도 어떻게 정진 과정 중에서 더욱 정진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법에 기초해서 법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지 감성(感性)적 인식을 품고 있거나, 혹은 속인이 법을 대함에 느끼는 단지 좋은 마음에서, 속인의 언어로 법을 말할 뿐이다. 흔히 모두 이러하며 차이가 아주 크다.

제자: 저는 최근에 풀이 죽어 일을 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타성(惰性)이 아닌가요?

사부: 정진하라! 정신을 차려라!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것 역시 마성(魔性)의 한 가지 표현이다. 이것은 사상업력이 조성한 것으로서, 그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상태에 처하게 하여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법리에 따라서 법을 인식하고 진정으로 정진하면 넘어갈 수 있다.

제자: 세 살 된 외손자가 사부님의 사진과 法輪(파룬) 도형 보기를 아주 좋아하고, 또 “法輪(파룬)은 천지(天地)에서 돌고 원만(圓滿)은 바로 집에 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아이 아버지는 항상 그의 법 공부를 교란하는데, 어떤 일들은 제가 또 직접 상관할 수 없습니다.

사부: 우선 자신의 원인을 좀 찾아보라.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하면 우선 그의 앞에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가 그를 수련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수련은 가장 올바른 일이다. 그의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하면, 당신 또한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나중에 아이에게 알려주라. 당신이 생각해 보라. 이 어린아이는 보통이 아니다. 세 살이라, 속인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제자: 속인 중의 향상심과 사부님께서 제기하신 집착심은 서로 비슷한 곳이 있습니까?

사부: 우주 대법은 부동한 층차의 생명이 존재하는 환경을 개창했으며, 부동한 층차의 생명을 육성했다. 사람에게도 가장 낮은 한 층 우주 대법이 환경과 생명을 육성한 바, 이 한 층 안에서 사람에게 사람이 알아야 할 이치를 개창해 준 것이다. 대법과 비슷한 곳이 있다는 것을 말하자면, 나는 당신의 논조에 동의할 수 없다. 사람의 향상심은 아마 사람에 대해서는 좋은 일이겠지만 그것은 속인이고,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수련인이다. 수련인은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직장일과 학습을 잘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제자: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일등을 쟁취하려는 것은 집착심인가요?

사부: 이 문제를 나는 이미 분명히 말했다. 많은 어린이가 법 공부를 잘할 뿐만 아니라, 학교 공부도 모두 1, 2등으로 많은 이가 이러한 바 아주 많다. 하지만 그들은 성적 자체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대법 수련 중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해, 공부와 법의 관계를 바르게 놓았다. 왜냐하면, 공부는 학생으로서 마땅히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법에 대한 이해로서, 어디에서든지 모두 마땅히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학생으로 마땅히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는 자연적으로 공부도 잘하게 된다. 오로지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해야 할 직무를 완수하면 그는 필연적으로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고, 대학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좋은 학교에 집착하고, 좋은 성적에 집착하고, 대학에 집착하면 되지 않는다. 나는 항상, “사람이 무엇을 하려 하는 마음을 품고서, 무엇을 얻으려고 할 때에는 흔히 정반대가 된다. 오직 그 일을 잘하려고만 할 때는 저절로 된다.”라는 이런 한마디 말을 한다.

제자: 직장 일을 함에 시간과 힘이 드는데, 더욱 잘하려고 한다면 집착심이 아닙니까?

사부: 만약 직장일 중에서 당신이 얼렁뚱땅하고, 일을 잘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급여를 받을 때,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 마음속은 떳떳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든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당신은 마땅히 이 일체를 잘해야 한다. 바로 이런 관계이다.

제자: 저는 자신이 수련 성취하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또 금세(今世)에 성취하지 못하면 다음 생에 수련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부: 아주 결심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 당신은 결심이 조금도 없다. 당신이 만약 다음 생에 또 이런 상태가 나타난다면? 그렇다면 나는 다음 생에 또 이어서 수련하겠다는 그런 것인가? 이 한 기연을 놓치지 않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 일세에 꼭 성취할 수 있다.

제자: 저는 이후의 인류에게는 法輪大法(파룬따파)가 널리 전해지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다음 생에 이어서 수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맞습니까?

사부: 이번 생에 수련 성취하지 못하면 다음 생에 이어서 수련하려고 하는데, 다음 생에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없다면 수련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당신이 문제를 제출한 것은 당신이 여전히 수련할 마음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정진하라.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하게 수련하라.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우주 중에 나타난 일체는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큰일이 인류사회에서 나타났는데 그것이 우연한 것인가? 나는 인류의 미래 일을 말할 수 없다. 당신이 그것에 집착해 배울 것이므로, 그러면 집착심을 품고서 배우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정진할 수 없는 원인도 바로 당신이 법에 대한 이해(理解)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당신이 책을 많이 보는 것이다. 책을 보는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시간을 좀 쓰게 할 뿐, 당신의 육신을 힘들게 하지도, 당신의 심지(心志)를 고달프게 하지도 않는다. 책을 많이 보고 문제를 해결하고 해결한 다음, 당신이 다시 정진할 수 있는지 없는지, 수련해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라.

제자: 홍콩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현재 홍콩의 언론기자들이 사부님과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잘못 보도함으로써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이미 언론계에 공개서한을 보내 그 착오와 왜곡된 보도를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각 동문 제자들은 시드니와 뉴질랜드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후 더욱 확고하게 사부님의 法輪大法(파룬따파) 길을 따라 전진하며, 실수홍법(實修洪法)하겠습니다.

사부: 여러분 감사하다! (박수)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전 세계 매 한 사람에게, 또 중국의 십몇억 매 한 사람에게 책 한 권씩을 준 다음 당신을 어느 위치에 놓을지를 다시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 사람은 명백한 그 일면이 있고 또 명백하지 못한 그 일면이 있다. 표면상으로는 명백하지 않지만, 사실 그는 모두 명백한 그 일면이 있다. 法輪大法(파룬따파) 眞(쩐)・善(싼)・忍(런), 이 몇 글자를 사람이 알게 될 때, 그에게 생각이 일어날 것인데, 바로 그가 그때의 일념(一念)을 어디에 놓는가에 따라, 사람의 장래가 정해지고 사람의 위치가 정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어떻게 보도하든지, 그것을 어떻게 하든지, 어제 내가 말했듯이 전 세계 구석구석 잘 알게 된바, 사람마다 이 일에 대하여 모두 일념이 있을 것인데,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토록 엄숙한 대법을, 기자가 쓴 것이 무엇이든 그는 모두 자신이 한 일체를 감당해야 한다. 이런 것뿐만 아니라, 속인사회 중에서 매 한 사람, 매 한 생명은 모두 장래 그가 한 일체를 감당해야 한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일 뿐만 아니라, 천만번 진실하고 확실한 일이다. 대법 자체에 대한 공격,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은 모두 이 법(法)이 개창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마저 반대하는데, 그가 어디로 가겠는가?

제자: 『홍음(洪吟)』 이 책을 제자가 본 후 온 얼굴이 눈물에 젖었는데, 이로움이 많았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또 한 권의 비교할 바 없는 보서(寶書)입니다.

사부: 내가 이 책 중에 쓴 것은 모두 주요하게 수련 중의 일이나 법과 관계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보여주면 여러분의 제고에 좋은 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바로 그를 출판했다.

제자: 베이징(北京)에서 발생한 일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마땅히 참고, 대법에 견정해야 합니다.

사부: 자신을 수련할 수 있는 이 점은 당연히 정확한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사법(邪法)이라고 말해도 당신들 모두가 다 아무렇지도 않다면 나는 잘못됐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수련생 매 한 사람이 모두 대법 중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대법의 존귀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 자체를 소중히 하는 것 또한 당신 자신을 소중히 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대법을 배우는 과정 중에서 항상 일부 고험이 있을 것이다. 당신들이 수면 중에서 꿈속의 고험이든지, 실제적인 일 중에서 관을 넘든지, 실제 생활 중에서 관을 넘든지를 포함하여, 마치 작은 시험처럼 한 기간 배운 후 좀 시험을 치는데, 당신이 확실한지 확실하지 않은지, 잘 배웠는지 잘 배우지 못했는지를 본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이 최후에 이르러 대법 중에서 원만을 이루려 할 때 시험이 있을 것이다.

제자: 대대로 전해지는 질병 유전자를 적출했다면, 이 일과 관계있는 모든,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자 및 태어난 아이에 대하여, 이 층 공간과 기타 공간에 존재하는 정황을 포함해서, 득과 실이 존재합니까?

사부: 어떻게 말할까? 당신은 기타 공간의 것을 움직일 수 없다. 사람은 생명의 영역 속에서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지만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인류의 분자로 구성된 가장 표면적인 신체의 정황일 뿐이다. 사람 생명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원인을 사람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과 생명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조사하려 한다면, 그것은 영원한, 인류의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없다. 유전(遺傳)하고 있는 질병의 유전자를 채취해서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게 할 수 있는지를 말하자면, 또한 이런 것이 아니다. 인체에는 스스로 질병을 초래하는 요소가 존재한다. 동시에 인간의 많은 병(病因)이, 과학자들도 결코 이런 질병 인자가 조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당신이 사람으로 하여금 병에 걸리지 않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수련의 각도에서 말하는데, 만약 한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는 생을 마친 후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사람이 업만 짓고 업을 갚지 않아 그의 업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병이 있을 것이고 고통이 있을 것이며, 생활 중에는 번거로움이 있을 것이고 난관이 있을 것이며 고생스러운 삶이 있을 것인데, 이것은 모두 사람의 업을 없애고, 업력을 삭감하는 것이다. 특히 병이 있을 때 이 소업은 비교적 크다. 그렇다면 병이 있는 것이 바로 좋은 일이 아닌가? 물론 좋은 일은 아니다. 사람이 그렇게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면 바로 병은 적다. 그렇다면 사람이 무슨 유전자를 적출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사실 사람은 무엇을 하고 싶으면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일이다. 나는 다만 여러분에게 이런 이치를 말해줬을 뿐이다. 사람에게는 늘 탐구하려 하고, 늘 발전하려 하는, 늘 이런 변이된 사람 마음이 있는데, 그러면 당신은 얼마든지 일을 하라. 왜냐하면, 현재의 과학에 생활 중의 모든 영역, 미세한 영역이 관통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체는 마치 모두 그것을 위해 생활하고 있고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당신은 마음 놓고 일을 하라. 오늘날의 사람은 바로 이런 생존 상태인데 그것은 당신의 직업이다. 기왕 할 바에야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그것을 되도록 잘하는 이것은 문제가 없다.

이런 득과 실에 대해 말하자면 이것은 수련과 관계가 없다. 그것은 당신의 직업이다. 직업과 수련은 분리돼야 하며 같은 일이 아니다. 당신의 직장일은 수련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 수련 중의 心性(씬씽)과 상태는 당신의 직장일과 당신이 일체 사물을 대하는 태도 중에 반영되어 나올 것이다.

제자: 만약 우주가 질서 있는 체계이고, 에너지가 무궁한 것이라면, 현재 혼란한 학설은 이런 우주 배치 체계에 어떻게 서로 적응할 수 있습니까?

사부: 사실 사람 여기가 어떻게 혼란하고, 이러한 학설이 얼마나 많더러도, 과거 고대 중국에는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있었고 근대에는 각종 철학 학설이 있었으며 또 각종 종교 학설이 있어서, 그것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하든지 모두 다 이 한 층의 것인데, 그것은 우주에 대해 어떠한 교란도 일으키지 못한다. 내가 드는 예는 마치 사람을 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단지 예를 들었을 뿐이다. 즉 그 쓰레기 더미에서는 아무튼 각종 냄새가 방출되어 나올 것인데 당신이 방출하지 못하게 해도 안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주와 어떠한 직접적인 관계도 없으며, 단지 사람 이곳의 혼란한 한 가지 표현일 뿐이다. 난(亂)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보고 난 중에서 누가 아직도 정념이 있는지를 본다.   

제자: 저는 가부좌를 8시간 20분까지 한 적이 있는데 이후로 길을 걸으면 늘 절뚝거립니다. 그러나 현재는 많이 좋아졌는데 설마 제가 잘못한 것입니까?

사부: 그 여덟 시간 남짓은 그야말로 한번 시험해 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연공은 힘닿는 대로 좀 많이 해야 하는데 좋은 일이다. 당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기필코 그렇게 긴 시간을 틀려 하고 어떻게 하려고 하는 수련의 이 한 마음은 당연히 아주 좋은 것이지만, 또 다른 집착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당신이 정말로 다리를 트는 것 자체에 집착했다면, 그럼 아마 당신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요소나 당신으로 하여금 명백해지게 하는 요소를 조성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기에 여러분은 수련함에 어떤 집착심도 품지 말아야 한다. 기필코 최고에 도달하려 하며, 나는 기필코 다른 사람보다 다리 트는 시간이 더욱 길어야 한다거나 어떤 다른 마음이 일어나면, 틀림없이 그 반대로 될 것이다. 절대로 대법 수련 중에서 집착심이 생기게 할 수 없으며 다만 당신으로 하여금 집착심을 제거할 수 있게만 한다.

장기간의 수련 중에서 당신은 이미 자연히 그렇게 긴 시간 다리를 틀 수 있게 되었는바, 또 시간은 있고 집에서는 그다지 큰일이 없어 틀기만 하면 그렇게 긴 시간 튼다고 말하는데, 내 생각에 그럼 당신은 틀어도 좋다. 그러나 이 속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내가 말했듯이 우리 대법은 장기적인 정(定) 속에서 수련함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했는데, 책을 보고 법 공부를 많이 하여 명명백백하게 당신의 이 마음을 수련해야 하고 법 중에서 제고해야 한다. 그러나 수련 동작 자체는 원만(圓滿)의 보조 수단이므로, 당신이 만약 이 8시간을 법 공부에 사용한다면 내가 보건대 제고가 더욱 클 것이다. 사실 나는 이전에 이미 여러분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법을 전할 당초에 ‘속인사회 상태 중에서 사람은 어떻게 수련하는가?’를 이미 고려했다. 왜냐하면, 시간이 몹시 촉박하고, 많은 사람이 직장 일로 바빠 틀림없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다리를 틀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이 문제를 말한 적이 있다. 설령 당신이 가부좌할 시간이 반 시간만 있더라도 나는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빠뜨리지 않게 하며, 연공의 동작 중에서 마땅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빠뜨리지 않게 하는데, 바로 이런 형식에 적응하여 수련하게 하려고 했다. 여러분이 만약 사람마다 매일 8시간을 하여 속인사회에 일하는 사람이 모두 없어진다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인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말한 것은 이치로서 당신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도 아니고, 당신에게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도 아니다. 만약 당신에게 시간이 매우 많고 당신이 또 자연스럽게 아주 긴 시간을 틀 수 있다면, 그럼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집착심을 품고 어떠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이런 사유방식 대부분은 모두 동양인의 사유방식이다.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늘 변증법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백인 수련생들이 알아들었는지 알아듣지 못했는지 모르겠는데, 당신들은 알아들었는가? (박수) 좋다. 내가 설법할 때의 사유방식은 통상 동양인의 사유방식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물어봤다.

제자: 삼계 내에서 생긴 생명이 수련하여 삼계를 벗어나려 함은 몹시 어려운 것입니까?

사부: 꼭 그렇지는 않다. 이전의 수련 중에서는 몹시 어려워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중생을 제도한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들 자신의 세계에서 내려온 이들을 제도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불, 예수가 내려와서 사람을 제도할 때 그들의 인종 범위 내에서 그들은 누구든 모두 제도했다. 하지만 거기에도 일정한 국한성이 있었다. 현재는 우주의 일체중생을 모두 새롭게 그들의 위치를 배치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한 방면에서도 모두 기회가 있을 것인즉 바로 이 생명이 이 일체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본다.

제자: 우리 대법은 불가・도가와 기문의 이치를 포함했는데, 기타 여래가 증오(證悟)한 일부 법리는 우리에게 지도 작용이 있습니까?

사부: 없다. 대법은 일체를 포함하지만, 어느 한 소도(小道)・소문(小門)이나 어느 한 여래의 이치를 덧붙여 들여올 수 없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빗나가게 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주 대법과 더불어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동(不同)한 층차의 인식과 과위(果位)는 모두 법이 육성한 것이다. 당신들이 이 대법 중에서 수련한 일체도 당신 자신이 법에 대하여 증오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당신들 자신이 얻은 과위이다.

말한 김에 여러분에게 말해주겠다. 우리 여기에 자리한 어떤 사람은 처음 온 사람으로, 아직 나의 책을 본 적이 없는데, 우리 수련생 혹은 친척이 데리고 온 이들이다.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은 모두 연분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나는 당신들이 제출한 문제에 해답해 줄 시간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여기에 한번 오기가 매우 쉽지 않고, 그들도 몇 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런 한 차례 법회를 열었으며, 그들 수련 중의 많은 문제는 나의 해답을 필요로 하므로, 이 시간은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지극히 진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시간을 당신들에게 줄 수 없는바, 당신들은 부디 양해하기 바란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당신들이 제출한 문제는 흔히 모두 속인의 문제이고, 또 나는 인류사회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이 방금 “당신의 사부가 그렇게 능력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국가의 경제를 잘해놓지 않는가?”라고 하는데, 누구나 다 알다시피 인류사회의 발전은 규율에 따라 발전하고 있으며, 어느 한 단계에 이르러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것은 신(神)이 정(定)해놓은 것이다. 불(佛)・도(道)・신(神)은 모두 이 일체를 보호하고 있으며 절대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신이 어떻게 하고 싶다고 그렇게 했다면, 당신의 경제를 좋게 하기는커녕 온 세상은 일찍이 크게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제출한 문제를 보면, 첫째 그는 우리 수련인이 아니고, 둘째 도전적인 면이 있으며, 셋째 그는 사람의 이 기점에 서서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사람이 무엇을 하고 싶으면 신(神)이 바로 당신에게 그것을 해주어야 하는가?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하면 그럼 하늘(天)이 당신에게 그것을 해주어야 하는가? 신이 모두 당신 사람의 지휘에 따라야 하는가? 당신이 국가 경제를 잘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당신은 신(神)이 다른 일을 더욱 중요하게 본다는 것을 아는가! 당신이 알다시피 사람에게 복이 없는 것은, 그의 도덕이 안 되고 인심이 너무나 나쁘기 때문인데, 만약 인심이 모두 좋아진다면 그는 곧 복이 있을 것이고 그는 곧 번창할 것이다. 당신은 이 이치를 아는가?! 사람은 그렇게 나쁘게 변하고서도 또 이것을 가지려 하고 저것을 가지려 하는데, 누가 당신에게 주겠는가?! 나는 여기에서 어느 한 민족, 어느 한 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보편적인 법리를 말하고 있는바, 바로 이런 이치이다. 복을 바라고, 사람은 복이 있기를 바라는데, 곧 업력이 적고 큰 德(더)가 있어야만 비로소 부강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반드시 사람의 마음이 선(善)을 향해야 하고, 업력이 적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경제가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천재(天災)와 인화(人禍) 무엇이든 다 있을 것으로,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그는 깨닫지 못한다. 그는 이 일체에 모두 배치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는 바로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자: 세상에서 전적으로 나쁜 일만 하는 나쁜 사람을, 운명 중에 정해진 것이라고 하여 용서해 줄 수 있습니까?

사부: 안 된다. 일체가 모두 정해졌다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 질서 있게 배치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나는 법 중에서 이미 말했다. 두 가지 정황이 사람의 운명을 개변할 수 있고, 사람의 배치를 개변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는 바로 한 사람이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인데, 당신의 일생 중에 수련의 것이 없으면, 생명 전반을 모두 곧 새롭게 개변해야 한다. 또 하나의 정황은 이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인데, 그의 운명을 개변할 수 있다. 그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나쁜 일을 하면, 그의 일생의 운명이 개변될 수 있다. 만약 사람이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업을 조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그의 운명이 개변될 수 있고, 그의 선천적 배치가 개변될 수 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한 일체를 상환하는 중에 층층이 없어지는 것이다. 수련은 인생을 개변할 수 있다. 그 외엔 어떠한 방법도 없다.

제자: 저는 『전법륜(轉法輪)』을 볼 때, 허다한 고심(高深)한 이치를 늘 보고 나면 바로 잊어버립니다. 저는 설법 녹음을 들을 때, 지나고 나면 무엇이든지 다 잊어버립니다.

사부: 이것도 정상이다. 하나는 막 수련을 시작했을 때 사상 중에 좋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아서 조성된 것이다. 하나는 법을 얻은 그 한 방면의 당신이 이미 기억했기 때문에, 곧 수련이 잘된 그 한 부분은, 당신이 끊임없이 수련함에 따라, 제고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그러면 당신의 잘 배운 그 부분은 더욱 빠르게 분리된다. 당신이 잘 배운 후에는 즉시 분리되는데, 일단 분리되고 나면 당신의 잘 수련 되지 못한 표면 이 부분과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째서 다 잊어버렸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그 한 부분은 이미 건너갔는바, 그것은 합격했고 표준에 닿았으며, 법(法)의 요구에 도달함에 따라 바로 승화된 것이다. 승화된 후의 그 한 부분은 바로 신(神)인바, 절대 사람과 섞여 같이 있을 수 없다. 물론 이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심산수림 속에서 수련한 사람은 이렇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것은 그가 속인사회를 접촉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법제자는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는데, 신의 그 한 부분이 사람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이것은 절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분리해야 한다. 당신 이쪽이 잘하든 잘하지 못하든 수련이 잘된 일면은 움직이지 않으며 사람의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당신의 수련이 잘된 그 한 부분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오직 위로 끊임없이 제고되도록 보증한 것으로서,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므로 어떤 때 또 잊어버렸다 하는 감각이 표현될 수 있거나 이 한 관을 넘겼는데 어찌하여 한 기간 시간이 지난 현재도 또 이 집착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하는데, 바로 수련이 잘된 그 한 부분, 표준에 도달한 그 한 부분이 이미 분리되어 이렇게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또 완전히 이렇지는 않다. 당신이 끊임없이 진실하게 수련할 때 당신 사람의 가장 표면의 이 부분도 갈수록 크게 개변되는데, 법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것도 갈수록 많아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한 기간 시간 내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이고, 나타날 수 있는 정황이며 정상적이다.

제자: 현재 갈수록 말하기가 싫어지며 일을 하는 데에서도 비교적 담담합니다. 게다가 일을 잘 잊는데, 이런 상태가 맞는 것입니까?

사부: 일을 잊음은 또 일종 정황이 있다. 당신들이 속인 생활 중에서 특히 중국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머리를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의 헐뜯고 다투는 데 쓰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찰에 쓰고 있다. 이렇게 해 옴으로써 사상과 사유방식이 매우 좋지 않게 되었는데, 수련인의 사상과는 절대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은 이미 습관이 되어, 문제를 생각하기만 하면 두뇌를 거기에다 써 바로 나쁜 염두를 움직이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나는 바로 당신들의 그 부분 사상을 우선 폐쇄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그렇게 발달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의 좋은 사상 그 부분을 발달하게 한다. 그러면 이 기간 당신에게는 일을 쉽게 잊는 일이 나타날 것인데, 당신을 잘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 그런 사상은 나오자마자 나쁜 염두를 움직이는데, 이것은 절대 안 된다. 물론 어떻게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유방식이 맞지 않아서인데, 쓰기만 하면 그런 사유방식이기 때문에 그를 개변해 주어야 한다. 한 기간 시간에 일을 쉽게 잊어버리는 이것은 여러분의 수련을 위해 이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직장일과 학습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자기가 한 일이 그다지 맞지 않음을 발견함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당신의 제고와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법리는 끊임없이 승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현재 깨달은 것은 맞지만, 당신이 다시 더 제고하면 당신은 또 당신이 깨달은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더욱 제고하면 당신이 방금 깨달은 것이 또 그다지 맞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는, 이런 상태일 것이다. 그러므로 위로 수련할수록 더욱 맞는 것이다.

제자: 수련은 생명의 본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줄곧 원만에 이르기까지이며, 공기둥은 정수리에서 시작하여 위로 자라서 줄곧 원만에 이르기까지입니다. 이 두 종류의 과정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고에너지물질로 신체가 전변(轉變)되는 것은 本體(번티)의 변화이다. 대각자는 대단히 큰 에너지를 구비하고 있는데, 이 에너지의 수련 중 표현이 바로 공기둥이다. 그것은 수련자의 법이 표현한 외관 일부분이다. 그것은 두 종류의 존재형식이다. 수련 중에 필요한 일체를, 자신의 분자의 개변을 포함하여, 이 에너지에 의거해야 하는데, 그것은 일체를 개변시킬 수 있다. 대법수련은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데서부터 시작하지만, 수련하는 사람이라 그 표면도 변화하는데, 단지 변화하는 비례가 작을 뿐으로 대략 100분의 1의 비례이다.

제자: 수련은 사람 이쪽의 신체에 작용을 일으키고, 법리도 갈수록 명백해지게 하는데, 구하지 않아야 스스로 얻게 됩니다. 이런 인식과 감수가 맞습니까?

사부: 그렇다! 이 상태는 대단히 좋다. 이 상태에 도달하면 가뿐함을 느끼며, 일상이 편안해질 것이다. 자신이 끊임없이 정진함에 따라 법리에 대해 갈수록 명백해지므로 수련도 갈수록 간단해진다. 많은 일을 보지만 속인이 문제를 보는 것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일목요연해진다. 속인은 어떤 모순이 발생하면 서로 논쟁하며 누구도 누구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의 논쟁 속에 있지 않으므로, 당신이 옆에서 냉정하게 그들을 보면 당신은 그들 중 누구의 말이 이치에 맞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속인 중에서 멀어지고 나서 그가 논쟁하는 것을 보면, 그가 몇 마디 하지 않아도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명백해져, 여기 무슨 다툴 것이 있는가 하는 감각이 있을 것인데, 일목요연하다.

제자: 제 나이가 많고, 뼈가 너무 굳어 다리를 틀어 가부좌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반가부좌조차도 할 수가 없어 다리를 내려놓고 연공합니다.

사부: 수련은 어떠한 연령의 사람에 대해 말해도 문제가 없다. 나이가 많은 사람, 그 자체에는 결코 수련하기 어려운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이로 구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을 이해하는 것은 나이가 많든 적든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리 트는 것을 말하자면, 당연히 나이가 많은 사람을 나도 구별하여 이 문제를 대할 것이다. 이 일생 중에서 다리를 튼 적이 없어서 마치 뼈, 근육이 모두 그렇게 자라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천히 연마(煉)하고 조급해하지 말라. 내가 생각하기에 결국에는 그래도 틀 수 있다. 왜냐하면, 80여 세, 곧 90세 되는 사람, 종래로 다리를 틀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모두 틀었기 때문이다. 연마하고 연마해 보라. 자신에 대해서 신심(信心)이 충만해야 한다. 과거에 수련한 사람은 80, 90세나 100여 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도를 얻었는데, 아주 흔히 보는 것이었다.

제자: 이후의 사람은 이 법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문 ‘법정(法定)’ 중에서 “천추만대에 모두 내가 직접 여러분에게 남긴 이 길을 따라 수련해야만 비로소 원만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는 것은, 다만 사람의 언어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이 법은 우주 중의 각계・각층에서 곧 영원히 모두 개변하지 않을 것인바, 영원히 더는 개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이 우주 대법은 곧 불패(不敗)에 영원히 서 있다. 게다가 또 그는 자신이 수리 복구할 능력이 있으므로 끊임없이 그를 원용(圓容)하고, 그로 하여금 영원히 나빠지지 않게 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람은 이렇게 큰 법을 들을 자격이 없다. 석가모니불이 진법(眞法)을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예수가 사람에게 그렇게 투철하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다만 그만큼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고 사람이 불신(佛神)의 이치를 아는 그것은 안 된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이렇게 많은 천기(天機)를 말해준바, 당신들이 원만(圓滿)을 이루면 나는 결코 사람에게 말해 준 것이 아니라 모두 신(神)에게 말해 준 것이다.

원만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장래에 그에게서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는바 그로 하여금 알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법을 수련하여 法輪世界(파룬쓰제)에 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 문의 함의(涵義)도 그 속에 있다. 그러므로 장래에 사람에게 주느냐 주지 않느냐 하는 그런 것은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이 대법 자체와 나를 이후의 인류는 알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전(傳)하며 말할 것이고, 마치 신화(神話)이야기처럼 사람들은 아주 긴 시간 동안 말할 것이다. 또 최후에 이 한 층 생명의 위치를 배치할 때 사람에게 남긴 심각한 교훈을 깊이깊이 기억할 것이다.

제자: 法輪功(파룬궁)은 眞(쩐)・善(싼)・忍(런)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톈진(天津)에서 法輪功(파룬궁) 제자들에 대해 공정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는데, 역시 마땅히 참아야 하지 않습니까?

사부: 이 문제를 이미 여러분에게 말했으므로 더 말하고 싶지 않다. 참음이란 수련자의 일체 행위 속의 표현이지 행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큰 법이 사람에 의해 사사로이 파괴되었는데, 가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베이징(北京)에 간 수련생들은 가서 시위한 것이 아니고, 행진한 것이 아니며, 구호가 없고, 표어가 없으며, 악의가 없이 모두 선한 생각에 근거하여 국가 지도자에게 진실한 정황을 호소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일은 역시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법제자에 대한 불공평이 마치 그에 대한 불공평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를 사(邪)하다고 말하면, 나에게 사(邪)하다고 말한 것과 같다. 사람마다 모두 이렇게 생각했고 사람마다 모두 대법을 위해 이름을 바로잡으려고 국가 지도자에게 정황을 호소하고 호소했던바, 바로 이 마음은 잘못이 없다! 간 사람이 많은가? 나는 간 사람이 절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1억 명이 연공하고 있기 때문인데, 사람마다 모두 간다면 그건 엄청나서 베이징(北京)도 다 담지 못한다. 전국의 1억 명 중에서 겨우 1만여 명이 갔는데 어찌하여 많다고 하는가? 만약 당신이 정말로 그를 사교로 정한다면 내가 보기엔 간 사람들이 1만 명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을 향해 진실한 정황을 호소하는 것도 잘못된 것인가? 잘못이 없다! (박수)

우리는, 우리가 정부를 반대하지 않았고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여러 사람이 모두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잘못이 있는가? 당신은 아직도 기어코 그를 사(邪)하다고 말해야 하는가? 만약 여러 사람이 모두 속인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당신이 그를 뭐라고 말해도 그는 아마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당신이 그를 사하다고 말한다면 그가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자: 한 사람의 선한 마음이 크고 작음은 선천적인 생명으로 있었던 층차의 높낮이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까?

사부: 선한 마음은 사실 선천의 본성이며 세간에서는 다만 사람의 선량한 선천적 표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동물 혹은 다른 생물이 인간으로 전생(轉生)된 것과는 완전한 구별이 있다. 사람으로 놓고 말하면 선한 마음은 사람마다 모두 있는바, 생명마다 있었던 경지 중에서 생명을 구성할 때는 모두 그 한 층차의 표준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다만 후천에 형성된 각종 관념이 속인 중에서 속인사회에 발붙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고, 자신의 고만한 이익을 지키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있으므로 선한 마음은 갈수록 작아졌다.

제자: 부처는 가장 높은 층차이고 인류는 가장 낮은 층차입니다. 부처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에는 그중에 얼마나 많은 층차가 있습니까?

사부: 보아하니 당신은 법 공부를 하지 않았다. 우주의 구성을 나는 나의 수련생들에게 이미 여러 번 말했으니 당신은 책을 찾아서 보아라. 왜냐하면, 말하기 시작하면 대단히 크고 또 대단히 길어서 한꺼번에 다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부처도 가장 높은 이가 아니며 당신이 상상한 그런 것과는 다르다. 과거에 가장 높은 신은 무형(無形)으로서 그는 형체가 없다. 그러나 형체가 있는 신은 전체 우주에서 볼 때 모두 중하층에 있다. 위층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 비할 바 없이 방대한 신은 모두 무형으로서 마치 널려있는 물질과 같다. 그러나 그는 사상이 있고 생명이 있으며, 층차가 높을수록 에너지가 더욱 크고 힘도 더욱 크며, 층차가 높을수록 지혜가 더욱 크다.

제자: 연공을 시작한 지 겨우 반년이며 아직도 어떠한 연공 반응이나 상태가 없는데 사부님께서 저를 상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때에는 제가 아마 대근기지인(大根器之人)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생각은 괜찮습니까?

사부: 당신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있을 수 있는데 모두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집착으로 여기지 말아야 하는바, 생각했으면 생각한 것이다. 사람마다 수련의 길은 모두 일정한 배치가 있으므로, 얼마든지 수련만 하라. 대법은 중생에게 열어준 것이다. 제자로서 내가 당신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나의 문제이다. 사실 당신은 법리를 볼 수 있고 그 속에서 수련할 수 있으나, 변화한 부분을 당신이 또 느끼지 못하는 이것은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확실히 아주 민감하고 어떤 사람은 확실히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수련상태는 같지 않다. 대근기지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바 어떠한 정황도 모두 있다.

제자: 오직 천인(天人) 층차밖에 닦지 못한 사람은 육신이 사망한 후에야 비로소 그가 가야 할 위치로 가게 됩니까?

사부: 삼계 내의 이 천인, 그는 가장 큰 한 층 분자입자로 구성된 신체가 없고, 사람의 이 층의 입자보다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신체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층의 신체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삼계 이내에는 원만(圓滿)이라는 말이 없다고 한바, 삼계를 벗어나지 않으면 모두 원만으로 치지 않는다. 사실 어떤 사람은 비교적 좀 잘하였는바, 다시 말해서 그는 속인 중에서 좋은 사람이고, 업력이 비교적 작거나 그가 한평생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 이런 사람은 수련하지 않아도 삼계 내 부동(不同)한 층차의 천상에 올라가서 천인(天人)이 될 것이다. 이것은 수련이 필요 없다. 그러나 얼마만한 해가 지나면 그는 다시 내려와 윤회(輪迴)해야 한다. 소도(小道)의 수련을 말하자면, 그가 삼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또한 다른 원인이 있는데, 이것은 소도의 일이며, 그들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

제자: 일을 처리하는데 주견이 없고 쉽게 남들에 의해 끌려가는데 이런 상태는 자신이 정진하지 않는 것인가요?

사부: 이성(理性)의 문제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일함에 정념의 주견이 있어야 한다.

제자: 일을 잘하는 것과 수련은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당신이 속인 속에서 일할 때, 일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 하는 것은, 또 당신들 心性(씬씽)상의 문제와 연관되지 않는다. 다만 기술상의 문제라면 그것과 당신들 수련은 관계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대면한 문제가 心性(씬씽)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즉 말해서 당신이 한 일이 좋은 일일 수 있고 나쁜 일일 수도 있는데, 내 생각에 당신은 되도록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해야 맞는 것이다.

제자: 이미 고에너지물질로 전화(轉化)되었거나 부분적으로 전화된 신체는 여전히 물질공간의 객관적인 법칙의 제약을 받습니까?

사부: 완전히 전화된 후에는 받지 않는다. 다만 전화되지 않은 부분만 인류 공간의 영향을 받을 것인데, 그는 이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제자: 열기가 있는 음식물을 먹으면 열이 나고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며 많이 먹으면 뚱뚱해질 수 있습니다.

사부: 이것은 마치 속인이 제출한 문제 같은데, 이것은 수련인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 자신이 방출하는 에너지는 무의식중에 모두 신체 상태를 개변할 수 있기 때문에, 속인과는 구별이 있다. 수련자가 뜨거운 음식물을 먹으면 열이 오를까 봐 두려워하는 그것은 하나의 집착인데, 다시 말하면 또 그런 일이 아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법에 기초해서 법을 인식하여 초상적인 이치로 자신을 가늠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여전히 속인의 이치로 자신을 가늠할 때에 나는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은가? 그건 바로 心性(씬씽) 문제이다. 감기에 걸리고, 기침할까 봐 두려운 이것은 속인으로서, 나는 당신이 아직 수련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우리 수련하는 사람의 이 신체는 최후에 정백체(淨白體)에 이른 다음, 삼계를 벗어나 고에너지물질로 구성된 신체로 되는바, 그렇다면 수련과정 중에 우리는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하지 않는가? 도달하기 전까지 나는 사람의 관념으로 나 자신을 가늠하고 요구하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사람이다. 당신이 도달했는지 도달하지 못했는지를 당신 자신은 모르기 때문에, 당신은 모두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수련하려면 당신은 한번 시험해 보라. 어떤 수련생은 과거에 찬물을 감히 마시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마셔도 괜찮다. 감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람이 인식하고 있는 그것은 다만 사람의 관념이다. 어제 내가 예를 들었는데, 수련생이 내게 말했다. 즉 그는 자동차에 부딪혔는데 두 어깨, 신체의 뼈, 골반이 모두 부딪혀 부서졌다. 그는 혼수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 병원에서는, 이 사람은 회복하기 몹시 어렵고 사람이 이미 이렇게 되어 힘들므로,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튿날 그는 자신이 침대에서 내려와 걸었고 병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의사는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는가? 하고 말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후에 병원에서는 이 사람이 지금은 어떠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가 아직도 걷는가? 하고 물었다. 그 뜻은 아직도 걸을 수 있는지를 말한 것이었고, 다른 사람은 그가 지금은 걷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는데, “거봐.” 그 의사는, “내가 안 된다고 했지.” 하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곧 그에게, “지금은 달릴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박수) 물론 사람의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수련하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늘 자신을 속인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제자: 사부님께서 사람을 제도함에 그렇게 큰 문을 열었는데, 무엇 때문에 수많은 각 공간의 신에게 영향을 주었습니까?

사부: 내가 법을 바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바로잡힐 대상이다. 일체 생명은 모두 자신의 미래 생명의 위치를 새롭게 배치하고 있다.

제자: 원고 속에 흔히 사부님 책 속의 원래 말씀이 들어 있는데 응당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사부: 태워버리면 된다. 당신은 수련하는 제자이며, 당신은 불경(不敬)의 뜻이 없고 또한 보관할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책을 베낄 때, 어떤 사람은 잘못 베끼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고 묻는다. 그것을 모두 태워 버리면 되는데 문제가 없다. 법은 글자의 다른 공간 속에 있으며 인간의 불로는 그를 태울 수 없다. 없애버린 것은 다만 가장 큰 한 층의 입자로 구성된 종이와 표면의 잉크일 뿐이다.

제자: 정공을 연마할 때 움직여서는 안 되는데, 만약 체형이 자기도 모르게 요구에 부합하지 않게 변할 때면 요구에 부합되는 위치로 조정할 수 있습니까?

사부: 조정할 수 있는바 조금도 영향받지 않는다. 잘못되었음을 발견했을 때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습관으로 형성되고, 그 기(機)도 변형될 것이므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또 우리 사람마다 하는 동작이 조금의 차이도 없이 한 틀에서 나온 것처럼 똑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불가능하다. 확실히 불가능하다. 여러분이 기본적인 요구에 부합되게 하면 된다. 되도록 단체로 하되 연공할 때는 일치해야 한다.

제자: 가부좌를 두 시간 한다면, 구상가지(球狀加持), 두 손을 교대로 바꾸는 주상(柱狀)가지를 각각 반 시간씩 하고 입정(入定)을 반 시간 배치합니다. 이렇게 배치하면 됩니까?

사부: 만약 교란이 없는 정황에서나 혹은 당신에게 많은 시간이 있고 당신이 또 이렇게 오랜 시간을 앉을 수 있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 주지 말아야 하며, 업무・학습에 영향 주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또한 법 공부를 제일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 이런 일을 당신이 스스로 파악하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마다 모두 부동한 시간 배치가 있지만, 반드시 법 공부를 제일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

제자: 저는 57세로 대법을 수련한 지 2년여 되었지만 아직 생리가 오지 않았습니다.

사부: 사람마다 정황은 모두 다르므로 반드시 모두 이렇지는 않지만, 보편적으로는 이러하다. 개별적인 것을 나는 말할 수 없는데, 내가 오늘 말하면 또 보편성을 가진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 정황이 있는데,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을 중하게 보지 말라. 만약 당신이 늘 이 일을 생각한다면, 집착을 형성한다. 응당 있어야 할 것이지만 또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당신으로 하여금 보이지 않게 하고 몸속에서 전화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문제 삼지 말라.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인데, 어쨌든 사람마다 정황은 같지 않다. 있다고 당신이 수련할 수 있고, 없다고 당신이 수련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바, 이 개념이 아니다.

제자: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고 정부의 양식을 먹지 않고서는 생활할 방법이 없는데, 이러면 德(더)를 잃게 됩니까? 마땅히 대륙에 돌아가서 수련해야 좋습니까?

사부: 어디에서 수련하든지 모두 똑같은데 나는 이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생활상의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 해결할 수 없다고 하여 당신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데 왜냐하면, 이 국가, 그것은 바로 이러한 복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건대 해결할 수 있든지 해결할 수 없든지 혹은 어디에서 수련하든지, 만약 당신이 이런 정황이라면 그것을 너무 중하게 보지 말라. 어디에서 수련하든지 모두 원만(圓滿)에 이를 수 있다. 나는 최대한도로 속인 상태에 부합하여 수련하라고 말했는데, 포함되는 함의가 아주 넓다. 그러나 당신이 현재 여기에서 수련하는 것이 비교적 좋은 느낌이라고 하면, 당신은 여기에서 수련하라. 그러나 내가 생각하건대, 만약 당신이 신체가 건장하고 힘이 있다면 되도록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만약 나이가 많다면 그럼 또 그것을 너무 중하게 보지 말라. 많은 일도 표면처럼 이렇지는 않으며 특수한 정황에는 특수한 대처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나는 더 말하고 싶지 않다.

제자: 사부님의 “원용(圓容)”이란 경문 중에서 ‘다 버린다(捨盡)’ 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킵니까?

사부: 바로 당신의 모든 집착을 다 없어지게 버린다는 것이다. 한 가지 집착이 있어도 그것은 마치 자물쇠 같고 마치 관(關) 같아서 당신으로 하여금 출항할 수 없게 하는 닻줄과 같은데, 그것을 모두 끊어야 한다. 물론 수련 중에서 여러분이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이 집착을 내려놓느냐 하는 것을 나는 이미 말했다. 집착심을 모두 포기한다고 하여 바로 어떤 물질적인 것을 모두 포기한다는 말이 아니며, 우리가 모두 밥을 동냥해야 한다는 이 뜻이 아니다. 이 문제를 나는 다시 중복하지 않겠다. 신수련생, 그다지 명백하지 못한 사람은 책을 보라.

제자: 정법(正法)시기에 일부 고층차의 중생들은 본래 대법에 협력하여 좋을 일을 하려 했지만, 오히려 장애가 되어, 청리 중에 있습니다.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것은 중생이 모두 대법을 위배했기 때문에 정법(正法)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가 도와서 좋은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는 여전히 원래의 관념인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의 표준이 원래의 표준인가 아닌가? 그러므로 그가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며 또한 성가시게 할 수 있다. 억지로 견지하면 바로 파괴이며, 바로 이 이치이므로 누구도 도울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그들에게 하게 한 대로 따라 했다면 절대 문제가 없으며,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홍음(洪吟)』 중에 쓰신 ‘홍미시방간창궁(洪微十方看蒼穹)’은 사부님께서 극미시하에서 천체(天體)를 관찰하신다고 이해해야 하는지요.

사부: 그런 뜻이다. ‘홍미(洪微)’의 그 홍(洪)은 가장 큰 입자를 가리키는데, 당신들이 인식할 수 있는 입자를 아주 멀리 초과한 것이다. 사실 간단히 말하면 아주 큰 범위의 그 우주 그것 역시 큰 구(球)가 아닌가? 역시 입자이다. 우주 중생・우주 상태를 보는 방식은 사람이 물체를 보는 이런 방식과는 같은 일이 아니며 한 가지로 법을 보는 것이 아니다. 미(微)는 바로 극히 미시적이고, 그 ‘홍미(洪微)’는 또 바로 가장 미시적이라는 한 층의 뜻이 있다. 홍(洪)은 그 자체도 홍대(洪大)를 대표하고 있으며, ‘홍미시방(洪微十方)’은 가장 큰 것을 보아야 하고 또한 가장 작은 것을 보아야 하는 동시에, 또한 가장 넓은 것을 보아야 한다. 불가의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대한 이 개념은 바로 상하(上下)・사면팔방(四面八方)이 안에 포함되어 있는바, 바로 시방(十方)이란 이 뜻이다. 어디든지 한눈에 모두 볼 수 있다. ‘홍미시방간창궁(洪微十方看蒼穹)’이라, 당신이 천체(天體)를 명백히 보려 하면 당신은 이처럼 보아야 한다. 물론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으면 바로 그렇게 이해한 것인데 더 많이 해석하지 않겠다.

제자: 한 사람이 회사의 동료에게 홍법했는데 상대방이 제기하기를, 만약 당신의 병이 낫는다면 그들이 대법을 배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책임자가 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몹시 곤혹스러워합니다.

사부: 이것은 그야말로 당신의 心性(씬씽)에서 찾아야 한다. 이 문제를 보면 현재 법 공부가 아직 부족함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제기한 문제의 표면은 아주 간단한바, 이렇게 긴 시간을 연마(煉)했고, 본래는 좋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 왜 사람에게 실증해 보일 수 없는가?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수련이란 당신의 제고, 당신의 집착심을 제거함이 제일 첫째이다. 당신이 남에게 법을 얻게 하는 것을 말하자면 그것은 남의 일로서 그것은 둘째일 뿐이며, 당신의 제고만이 제일 첫째이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당신 본인의 제고를 벗어날 수 없는데, 그럼 당신이 이런 일에 부딪히면 당신은 心性(씬씽)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당신이 병이 없는 상태, 또 그렇게 여러 해 약을 먹지 않았는데 줄곧 아주 좋음을 느꼈다. 그럼 병이 있다면 어떤 상태인가? 병이 있으면 바로 당신의 일・생활・학습에 영향을 준다. 평소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것이 바로 병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줄곧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거나 아주 강한 어떠한 마음을 갖고서 진단할 때, 당신에게서 가상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가능성이 높다. 수련은 정말로 아주 엄숙한 것이며, 그것은 가장 엄숙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 점에서 볼 때 그런 사람이, 당신의 병이 나아진 것을 보고서야 와서 배운다는 이것은 어떤 마음을 갖고 걸어 들어온 것인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와서 대법을 배우고 수련하는 것이다.

제자: 저는 저를 따라 중문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法輪大法(파룬따파)를 가르치고 싶지만 저는 어떤 위험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사부: 절대 위험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오직 사람에게 좋을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는 어른과 같은 그런 업력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관을 넘는 그런 일이 나타나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의 상태가 있는바 절대 그런 일들은 있을 수 없다.

제자: 수련자가 이(牙)를 해 넣을 수 있습니까? 의치를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것은 문제가 없다. 당신의 표면신체 이런 부분이 아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 당신은 망가진 이가 보기 좋지 않다고 여기면 그것을 때워라. 문제가 없다. 마치 우리 사람이 옷을 입을 때 좀 정결하게 입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제자: 사존(師尊)께 여쭙습니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에 관한 파악을 어떻게 합니까?

사부: 이 문제를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대법 중에서 수련함에 유위・무위는 과거의 수련과 다르다. 과거의 일체 행위는 모두 유위로서, 그는 밥을 먹고 길을 걷는 것을 모두 유위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는 장기간 입정(入定)하여 움직이지 않고 거기에서 가부좌하는데, 그는 무위라고 여긴다. 그러나 내가 말한 무위(無爲)는 오늘날 대법의 수련방식이다. 사람마다 모두 속인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당신은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가장 큰 제고 방식은 바로 사람 마음의 제고인데, 이것이 가장 근본적이다. 사실 그가 무위를 말하든지 고행으로 수련함을 말하든지, 그의 최종 목적은 사람 마음을 제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직지인심(直指人心) 하여 직접 사람 마음에서 제고하므로 대법의 수련은 바로 가장 빠르다.

대법이 말한 무위는, 당신이 유위적으로 자신이 자신에게 고생을 찾아서 하도록 배치하거나 수련방식을 배치하지 말라는 것이며, 당신 자신이 기어코 당신이 좋다고 여기는 일부 일들을 한다거나 자신이 난을 좀 찾는다거나 기어코 어떠어떠하게 하겠다는 이것은 모두 유위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서 여러분은 되도록 무위를 유지하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당신이 일해야 하면 일을 하고, 책을 보아야 하면 책을 보며, 연공을 해야 하면 연공하라. 나타난 문제는 당신이 알아야 하는데 이는 수련 중에서 반영되어 나온 것으로 자신의 제고를 위해 나타난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하고 끊임없이 책을 보는 이것이 바로 정진이다. 그 외의 자신이 찾는 일체가, 당신이 좋은 일이라고 여기거나 유익하다고 여기는 것, 혹은 다른 어떤 일들이 장애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에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대법을 수련하는 한 사람으로서,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은 말하지 말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무위(無爲)이다.

제자: 법 공부를 할 때 가끔 사부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셨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데, 이런 자연적인 반영은 정상입니까?

사부: 이런 것은 모두 수련 중의 정상적인 상태로서 일반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설법할 때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문제를 해답할 때 다수의 사람에게 겨냥성이 없고 오직 개별적인 사람에 대한 문제이거나 긴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문제에 대해서는 흔히 엉뚱한 대답을 한다. 사실 나는 설법하고 있으므로, 허튼소리를 할 수 없다. 한 말은 사람들에게 남겨줘야 하고, 중생들도 모두 들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알고 있는 문제를 기초로 반드시 이 문제만을 해답하지는 않는다. 나는 당신의 이 문제를 빌려서 또 다른 문제를 말하는데, 더욱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하고, 더욱 많은 생명이 알아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또 내가 설법할 때, 문제에 해답하는 중 당신의 이 쪽지를 아직 채 읽지 못했지만, 당신이 이미 알아버렸음을 발견한다. 어차피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도 읽지 않고 이 문제를 빌려 또 다른 문제를 말하는데 흔히 이러하다. 그러므로 나의 설법하는 방식은 속인이 어떤 것을 해답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제자: 때로는 물질생명이 천체우주 중에 존재하는 이치와 운동 법칙을 체오(體悟)하는데, 이런 이해는 미래의 과위와 어떤 본질상의 구별이 있습니까?

사부: 이것은 어떤 현상이 사상 중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늘 존재한다. 수많은 수련생이 법 공부 중에서, 법(法)이 부동한 층차에서 펼쳐져 나온 법리를 터득한다. 그러나 말해내지 못한다. 일단 말을 했을 때는 그다지 위대하지 않고 마치 속인의 이치와 같게 된다. 고층의 법이기 때문에 사람의 언어로 말할 수 없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한 것은 다만 개괄적으로 말한 것으로서 진정한 법리의 드러남은 이렇지만은 않다. 그러므로 어떤 때 당신들이 그 한 층의 법리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을 때, 당신들은 확연히 알게 되는데,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제고되고 명백하며 승화한 것이다.

당신들이 흔히 법리 속에서 깨달은 많은 문제가 모두 바른 것이다. 집착심을 품지 않고 깨달으면 모두 바른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 상황은, 당신이 집착심을 놓지 않고 품고 있으면서, 억지로 당신 자신이 집착하는 이치를 찾는데 그렇다면 틀림없이 당신의 집착은 사상업력으로 하여금 가짜의 것을 조성하여 펼쳐 보이게 할 것인데, 법리 중에서 펼쳐 나온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가짜이다. 어떤 집착심도 품지 않고 어떤 관념도 품지 않아야만 진정한 법리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당신이 어떤 집착하는 마음을 품고서 대법을 가늠하려 하면, 여기는 말한 것이 맞고 저기는 말한 것이 틀리며, 이곳에 나는 동의하고 저곳에는 생각이 다르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법은 엄숙한 것이며 법리(法理)・불리(佛理)는 사람이 가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볼 수 없다. 당신이 구체적인 것 혹은 당신이 깨달은 것을 말하자면, 틀림없이 당신이 부동한 층차 중에서 느낀 상태와 당신의 최종 과위와는 아직도 차이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오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도 무엇이든 다 알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만 부동한 경지 부동한 층차 중에서 알게 된 법리의 구체적인 체현일 뿐이다.

제자: 청컨대 사부님께서는 왜 새로운 연공음악을 녹음 제작하셨습니까? 백인 수련생은 그다지 적응하지 못하는 느낌인데요?

사부: 이것은 우리가 원래 제작한 음악의 원본녹음테이프가 이미 마모되어 좋지 않기 때문에 새로 만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원본녹음테이프가 녹음을 너무 많이 해서 모두 좋지 않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품질이 좋지 못하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손에까지 오면 갈수록 좋지 않을 것이며, 바로 이 문제가 있어서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만약 그다지 적응되지 않는다면, 원래의 녹음테이프를 당신이 들어도 괜찮고 문제가 없으며, 또 새것을 써도 괜찮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두 새로운 것을 사용하면 더 잘 들리는 것 같다고 느끼는데, 그것은 새롭게 녹음 제작한 원본녹음테이프가 선명하므로 들어보면 틀림없이 매우 맑게 들리는데, 바로 이러하다. 그러나 연공을 할 때 자신의 느낌상의 차이 외에 실질상의 수련 속에서는 차이가 없다.

제자: 사부님께서 초물질(超物質)에 대해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사부: 이것은 말할 수 없다. 내가 그것을 말하면 장래의 사람은 아마 이 공간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이 공간을 여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사람이 아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제자: 저는 중문을 모르기 때문에 번역한 것이 정확한지 모르겠는데요?

사부: 중문을 모르면 당신들은 중문을 아는 수련생에게 그것이 어떤 뜻인가를 물어보라. 그러나 몹시 어려운 것으로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에게 9강의를 모두 번역해주게 하는 것은 몹시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녹음이 미국에서 이미 만들어졌는데 내 강의와 동시통역된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제자: 저는 병원에서 일하고 날마다 그런 환자들과 어울려야 하는데 그들의 업력이 저에게 영향이 있습니까?

사부: 어떤 환자는 그의 업력이 어떤 부위에서 비교적 강렬하게 반응할 때, 그의 그 부위에 병이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나온다. 사실 많은 사람의 업력도 아주 크지만, 그는 병으로 반응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평상시 생활이 행복하지 못하고, 불편함으로 반응되는데, 이 면에 반응되는 것도 아주 많은바, 다시 말해서 사실 곳곳이 모두 업력이다. 이것은 당신들의 수련에 영향 주지 않고 병원에서 일하는 환경 중에서도 영향 주지 않는다. 당신이 수련한 것은 공이기 때문에, 이런 업력들은 당신들에 대해서 아무런 교란이 없다.

나는 미국의 어떤 수련생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는 병리화학실험을 하는 사람 같았으며, 세균을 배양할 때 그는 자기의 손으로 만진 유리판의 세균이 모두 죽었음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손에서 방사되어 나온 에너지가 그 세균들을 죽여 이런 정황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의 에너지는 바로 공(功)이고, 공은 당신 자신이 수련해 낸 것이기 때문에 당신 본인의 형상과 사유를 가지고 있다. 오직 당신 자신의 사상 속에서, 나는 실험을 하는데 그것을 죽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 공은 죽이지 않는다. 어떤 수련생은 마음이 움직이는데, 당신은 날마다 생각하지 말라. 즉 이 병독이 오기만 하면 그것을 죽이겠다고. 절대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은 집착을 형성한다. 당신은 그것을 상관하지 말아야 하며, 자연스럽게 그것은 당신을 보호해야 함을 알고 있는바 당신이 수련해냈기 때문이다.

제자: 평소에는 기본적인 연공인의 표준에 따라서 자신에게 요구할 수 있지만, 꿈에서는 늘 일부 心性(씬씽)이 좋지 못한 일을 하는데 사람과 다툽니다.

사부: 평소에 우리가 명명백백할 때는 자신을 단속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이런 단속은 心性(씬씽)이 완전히 관을 넘은 것은 아니다. 체면을 중히 여기고 이치상에서는 응당 이렇게 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사상이 아직 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표면의 이치는 이지적으로 자신을 단속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진정으로 착실하게 도달하지 못한 바로 이런 행위이기 때문에, 이때에 꿈속에서 나타나 여러분에게 고험을 진행한다. 사실은 당신에게 이 면에서 더 노력하라고 명시해준 바로 이 뜻이다. 꿈은 수련이 아니지만, 여러분에 대한 검증이고 수련의 검증이다.

제자: 사람들은 늘 불(佛)・도(道)・신(神)・귀(鬼)를 미신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홍법 중에서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은 전혀 그에게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의 홍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는 것이지 당신은 결코 사람을 밀어내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그처럼 높게 말할 때, 여러 사람을 밀어내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아는가. 당신도 막 시작했을 때는 법의 가장 낮은 층차의 이치에서 이해한 것이다. 대법은 확실히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에서 시작하여 말했기 때문에 당신도 여기에서부터 말하라. 이 법은 사람의 병을 제거하여 몸을 건강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고상한 사람으로 변하게 한다는 이런 이치에서 시작하여 말하라. 나머지 문제는 그가 제고 속에서 자연스럽게 명백해질 것이다. 당신이 단번에 너무 높게 말하면 그는 연마하지 않을 것이고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길 것이다.

제자: 깨달았으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알면서도 범하는 것이 아닌가요?

사부: 그것은 바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관을 넘을 때 깨닫지 못하지만, 나중에 냉정해졌을 때 명백해지는데, 이것도 당신이 명백해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때에는 당신이 하지 못했을 뿐이다. 명백해진 후에 만약 당신이 또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만약 문제가 다시 나타나 당신이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넘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명백하면서 여전히 넘어가지 못한다면, 그럼 마땅히 착실하고 착실하게 진정으로 노력해야 한다.

제자: 4~5년을 수련했는데 어떻게 하면 자신이 어느 한 걸음에까지 수련됐는지 알 수 있습니까?

사부: 전혀 감각이 없는 이런 사람도 있다. 관건은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해야 한다. 남은 생이 아직도 많으니 천천히 수련하겠다고 하는 생각을 말아야 한다. 스스로 수련도 하고 또한 대법도 내려놓지 않았으니 확실히 수련하고 있다. 하지만 그다지 마음을 쓰지는 않는데, 다시 말해서 정진하지 않는데, 이러면 안 된다! 대법은 엄숙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으로 대할 수 없다. 바로 소법(小法)・소도(小道)일지라도 당신은 그런 마음으로 그것을 대할 수 없다. 여기는 대법(大法)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를 소중히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가 당신에게 주는 것은 소도(小道)로, 당신에게 줄 수 없는 것이므로 당신은 마땅히 상응(相應)하여 동등한 마음으로 그를 대해야 한다.

제자: 마성이 아주 강하고 주위의 환경 또한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사부: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모두 당신의 수련과 관계있는 것으로서, 당신을 도와 소업하는 것이 아니라면 바로 당신을 도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정확하게 대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몹시 곤란한 정황에 처했을 때,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당신들에 대해 아주 좋은 점이 있다. 당신들이 당신에 대해 좋은 점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당신이 아직 사람을 내려놓지 못하여 조성된 것이다. 당신은 당신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여기고, 그가 이렇게 당신을 대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며, 당신에게 마땅히 더욱 잘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공인의 각도에서 보면, 여러 사람이 모두 당신에 대해 그렇게 잘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폭로되어 나오겠는가? 당신은 어떻게 제고하겠는가? 당신은 어떻게 소업하겠는가? 이런 문제가 아닌가? 그러므로 당신이 부딪힌 모든 이러한 마난(魔難)에 대해 저촉되는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바르게 대해야 한다.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와는 다르다. 만약 누가 이렇게 나를 대하고 대법을 대한다면, 그것은 바로 정법을 가로막는 사악(邪惡)한 파괴이다.

제자: 저의 남편은 97년 6월에 관을 넘고, 소업을 했으며 마치 가벼운 뇌혈전 상태와 같았는데, 그는 설법 비디오테이프 보는 것을 견지하였습니다. 21일 후에 바닥에 내려올 수 있었으며 설법 듣기를 견지하였습니다. 98년 초에 신체상의 불편을 극복하고 연공장에 가서 법 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였습니다.

사부: 이전에 법 공부에서 그다지 정진하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기왕 수련하는 이상 나는 그를 수련인으로 대해야 한다. 자신이 정진하지는 못했지만, 사부로서는 그를 수련인으로 대할 것이다. 어쨌든 그가 배우고 있고, 수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뇌혈전 후유증은 흔히 매우 엄중하고, 아주 많게는 반신불수가 된다. 그러나 그의 증상은 아주 가벼웠는데 만약 정념으로 자신을 대하고, 환자처럼 자신을 대하지 않을 수 있었더라면, 나는 당연히 이런 상태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해낼 수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정황은, 이 방면의 업력이 좀 커서 이런 방식으로 그것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고, 동시에 당신이 이런 정황에서 견정한지를 보는,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부동(不同)한 정황에는 부동한 수련상태가 있는데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그러나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수련인으로 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정황을 통해서 볼 때, 그 역시 배우고 있고 수련하고는 있지만, 그 자신에게는 없애야 할 마음이 아직 있다.

또 다른 문제 하나는, 만약 그의 가족도 제자인데 이런 일을 중시한다면 역시 집착인바, 그 일은 길어질 것이다. 수련은 당신들의 원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당신들의 제고를 책임진다. 그를 책임지고 그의 업을 없애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당신들의 마음도 없애야 한다. 당신은 진정한 수련인이 되어야 하는데 진정하게 정진하여 어떠한 일이든 모두 내려놓을 수 있다면, 당신이 어떤 모양인지 보라. 당신이 그것을 지나치게 내려놓지 못하면 큰 집착을 형성하여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이런 일 또한 주의해야 한다. 물론 내가 말한 이런 일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또 다른 상태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말한 것은 법리이다.

제자: 수련 중에서 어떻게 해야만 자신으로 하여금 대법의 부동한 층차에서 자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되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많은 수련생이 모두 이러한 생각이 있다. 당신이 그 상태에서 자신에 대한 요구에 완전히 도달할 수 있고, 그 한 경지의 표준에 부합될 수 있기는 몹시 어렵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에게 사람의 일부분을 남겨놓아 당신으로 하여금 계속 속인 속에서 수련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장 좋지 않은 마음부터 제거하기 시작하여, 다음에 하나하나씩 제거한다. 어떤 것들은 점차 한 층 한 층씩 제거하는바, 이 한 층을 제거하면 여전히 저 한 층이 있는데, 어쨌든 갈수록 표면으로 온다. 모두 제거해 버렸다면 즉시 원만(圓滿)이다. 제거해 버리기 전에는 아직도 사람의 행위, 사람의 상태가 있다. 이것은 내가 당신들에게 속인 속에서 생활할 수 있고 또 속인 속에서 수련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 가장 좋은 방법을 준 것이다. 속인의 것이 있다고 하여 지금부터 우리는 자신을 느슨하게 할 수 있겠는가? 안 된다! 내가 당신에게 말한 것은 이치이며, 당신으로서는 응당 끊임없이 정진하고 엄격하게 자신에게 요구해야 하는바, 이것이야말로 수련이다. 당신이 느슨해졌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수련한 것이 아니며, 적어도 정진하지 않은 것으로 이런 한 층의 관계이다. 왜냐하면, 매 한 층마다 제거해야 할 속인의 것은, 모두 반드시 당신 자신이 수련해야 하고 자신이 노력해서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자: 홍법 일을 할 때 어떻게 해야만 대법 속에 사람의 것을 섞지 않을 수 있습니까?

사부: 사람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아마 반영되어 나올 것이다. 관건은 당신들이 집착심이나 속인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그것을 제거해 버릴 것인가 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당신들이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없앨 수 있다면, 그럼 당신이 해낸 일은 그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며 가장 신성한 것이다.

제자: 우주가 생명을 탄생시킨 후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층차에 속합니까? 또 어느 천국에 귀속됩니까?

사부: 이 우주는 넓고 아득한 것으로, 널리 퍼진 일체는 모두 법이며 모두 법이 창조한 세계인바 당신이 본 먼지・모래보다도 더 많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보다도 더 많아서 부지기수이며 헤아릴 수 없는데, 그 모래 속에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무수하고 무수하다. 매 한 층의 천체(天體)는 모두 생명을 만들 수 있는데, 생명의 생김은 층차와 천국을 구분하지 않는다. 내가 말했던 생명의 떨어짐이란 그것은 얼마나 많은 조(兆)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황인데, 게다가 길고 긴 세월 속의 일이다. 천상의 생명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데, 지구에는 몇 사람이나 있는가? 사람의 생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자: 부처가 있으면 마(魔)가 있으며, 마가 있어야 비로소 부처로 닦을 수 있는데, 마가 환생한 사람은 설령 악을 행하지는 않더라도 역시 소훼(銷毁) 당하는 것입니까?

사부: 이 우주 중에는 마왕(魔王)이 있고 법왕(法王)이 있는데, 법왕은 바로 여래불이다. 그러므로 일정한 층차 중에서 그것은 이렇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상생상극의 존재 방식이다. 그러나 마는 그렇게 많지 않으며 널리 퍼진 일체는 모두 정신(正神)이다. 부(負)적인 것이 바른(正) 것을 누를 수 없기 때문이지만 그것의 존재는 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마 역시 우주 중의 산물인데, 마가 없으면 당신은 정말로 수련할 수 없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당신은 속인 속에서 수련하는데, 사람은 사람의 마성을 이용하여 당신에게 적지 않은 번거로움을 조성해 줌으로써 당신은 끊임없이 제고하고, 정진한다. 그러나 더욱 높은 층차에 이르면 사람은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할 수 없다. 사람이 당신을 보았을 때 사람의 고만한 것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것은 아주 약하고 당신은 이미 일정한 층차에서 수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에 대한 교란은 마치 사람 같지만, 사실 그는 마에 통제당하여 이끌려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동한 층차의 마가 와서 사람을 통제하고 움직이게 하여 당신의 수련에 장애를 조성하고 당신을 수련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하지 못하게 하는 자체 그것이 오히려 소업(消業)과 당신을 제고하게 하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이 문제를 바로 이렇게 본다.

우주 중에서 그것은 환생하여 온갖 악한 짓을 다 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밀종 라마교에서 수련할 때 그에게는 마(魔)를 닦는 것이 있다. 무엇 때문에 마를 닦아야 하는가? 왜냐하면, 마왕으로 수련 성취하려 해도 속인의 칠정육욕, 각종 집착심, 사람에 대한 집착을 모두 닦아 없애야만 당신은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마로 되었는가? 그는 선(善)을 닦지 않으므로 그는 바로 마왕이며, 또 그 표준에 도달하고 그 경지에 도달하지만, 그는 오히려 마왕이다. 만약 속인 속에서 모든 악한 짓을 다 한다면 그럼 당신이 신(神)에서 온 것이든지 아니면 마에서 온 것이든지 모두 소훼(銷毁)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이 문제이다. 만약 마가 사람으로 전생(轉生)되어 인류를 파괴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를 없애버릴 수 없다. 만약 법을 얻을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수련할 수 있고 원만에 이를 수 있다.

제자: ‘개공(開功)한 후 더는 수련할 수 없다.’ 함은 연공할 필요가 없고 또 心性(씬씽)을 제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당신이 이미 당신의 과위를 증오했기 때문이다. 개오(開悟)한 후에는 사람의 사상이 아니고 완전히 다른 사유이며 다른 존재 방식이다. 당신이 있는 경지에서, 그 이하의 일체를 모두 볼 수 있고 각 층차를 모두 볼 수 있으며, 당신 현재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당신은 이미 당신의 과위를 증오하였고 수련은 이미 끝났다. 수련은 생명이 영원히 존재하는 방식이 아니며, 사람 이곳에서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가는 과정으로서, 생명의 영원한 과정이 아니다.

제자: 낮은 층차에서 개공(開功)한 후, 어떻게 해야 이 층차 중에 머물 수 있으며, 이 일세(一世)에서 또 위로 닦을 수 있습니까?

사부: 무엇 때문에 낮은 층차에서 개공하는가? 삼계 이내는 과위가 전혀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만을 이루게 하려고 한다. 현재 개오 상태에 도달한 이들이 적은 수가 아니지만, 당신들을 한 사람도 열어주지 않았으므로, 개오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일은 내가 통일적으로 배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수련 배치는 기본적으로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과 당신이 가진 일체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치해 준 것으로 아주 정확하며, 사람의 사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한 덩이 강철이라면 절대로 당신으로 하여금 한 덩이 쇠가 되게 하지는 않는다.

제자: 선종의 제6조는 보살입니까? 그가 신수(神秀)와 쟁의함은 집착이 아닙니까?

사부: 초과(初果) 나한이며 이것은 우리 수련과 관계가 없다. 내가 당신에게 대법대도(大法大道)를 가르쳤는데, 당신은 기어코 그런 소도의 일을 묻는다. 달마 자신도 부처가 아니고 정과(正果) 나한이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은 그럼 당연히 가장 높아도 나한이다. 그렇다면 기왕 부처가 아닌데, 그럼 그가 말해낸 이치는 부처의 이치일 수 있는가? 물론 아니다. 사실 달마나 또 그의 이후 5조나 모두 부처가 책임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나한으로도 수련되지 못한다. 달마가 말한 것은 불법이 아니며, 오직 그 자신이 깨달은 자신의 그 한 경지 중 나한 과위의 이치이다.

신수(神秀)와 쟁의함을 말하자면 수행 중의 사람 마음이 표현된 것이다. 나는 점오(漸悟)든, 돈오(頓悟)든 수련방법 자체는 모두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그런 상태에서는 내가 생각하기에 곧 그런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단번에 명백해졌다는 것과 나는 점차 명백해졌다는 것이 아닌가? 바로 단번에 원만에 이르렀다는 것과 점차로 원만에 이르렀다는 것인데 오직 당신이 수련 원만에 이르기만 하면 정법 수련이므로 어떻게 수련해도 다 되는바, 이런 이치가 아닌가? 그것은 수련하는 방법상의 쟁의이다. 마치 사람이 종교를 보호하듯이 사람 이곳에서 말할 때는 맞는 것이지만 신불(神佛) 그곳에서 말할 때는 보기만 해도 모두 집착심이다. 종교를 보호하는 자체로 수련 원만에 이를 수 있는가? 당신의 어떤 마음을 제거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없애버릴 수 없으며, 반대로 그것을 보호하는 자체의 집착을 증가시켰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불은 일체 유위법은 허황한 물거품과 같으며 모두 유위(有爲)라고 말했다. 당신이 종교를 보호했다고 하여 당신이 부처를 보호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전혀 그런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의 사상으로 생각해 낸 것이다.

제자: 우리 중에 반 개공(半開功)한 사람이 있습니까?

사부: 점오(漸悟) 상태 중에 있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 그것은 바로 반 개공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만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러한 사람이 많다.

제자: 저는 法輪大法(파룬따파)에 대한 이해가 아주 미흡한 사람으로서 장래에 성불하려는 소망을 품고 수련하려 하는데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물론 집착이다. 학생의 본업은 바로 학습으로, 당신은 학습을 잘하기만 하면 자연히 좋은 성적이 있게 되어 자연히 대학에 갈 수 있다. 일 속에서 잘했다면 당신은 자연히 성적이 있을 것이다. 수련하고자 하는 자체는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성불하고자 하는 자체 그것은 반본귀진(返本歸眞)으로서 우주 중 생명이 마지막으로 돌아가야 할 곳이다. 이것이 잘못된 것일 수 있는가? 마치 사람이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것과 같으니 잘못된 것일 수 있겠는가?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머릿속으로 항상 생각한다. 즉 나는 수련하여 성불하려 하는데, 나는 수련하여 어느 때에 성불할까? 나는 꼭 성불하겠다. 이렇게 강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집착이다.

불교 중의 사람은 이제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불교 중의 노화상(老和尙)은 이미 죽었고, 새로운 화상은 문화대혁명 때에 그토록 오랜 시간 환속했다가 문혁(文革) 후에 다시 돌아와서 화상이 되고, 주지(住持)가 되었는데, 중간에 공백이 있었으므로 과거의 진정한 수련의 일체를 모두 모른다. 특히 불교는 몇 차례 법난(法難)을 겪은 후 가장 본원적인 것마저도 전혀 모르며 이해하지도 못한다. 사실 역대로 선종은 모두 쇠뿔 끝을 파고드는 것으로 여겨졌다. 달마도 오직 6대(六代)만 승인했기 때문에, 더는 법이 없고, 그의 법도 더는 전할 수 없었으며, 사람 속에서 작용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람들은 아직도 한사코 부둥켜안고 내려놓지를 않는다. 6조 혜능이 원적한 지 이미 천 년이 되었으므로, 그 이후는 더 전했다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 현재 60대(代)도 넘었는데, 사람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다. 달마가 말한 것은 나한법이다. 나한법은 삼계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서, 바로 가장 낮은 것인데, 가장 낮은 법리(法理)는 사람의 이런 철학 이론에 가까워 사람도 쉽게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마치 철학의 최고 이치를 얻은 것처럼 그것을 속인 중의 이치로 삼아 이해하는데, 현재는 바로 이렇게 된 일이다.

제자: 무엇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우주의 근본적인 대법을 알게 하였습니까?

사부: 그들이 원만(圓滿)을 이루면 모두 신(神)이기 때문이며, 원만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새로운 역사 이전에 모두 새롭게 위치가 배치되거나 갱신되거나 역사에 의해 도태된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당신들은 내가 그렇게 많은 천기를 말했다고만 보지 말라. 당신들에게 이렇게 큰 법을 말했지만, 사실 나는 사람의 언어로 개괄적으로 말했을 뿐, 진정한 법리의 본질은 당신들에게 아직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들이 명백한 것, 알고 있는 것들은 잘 닦은 그 일부분인데, 역시 당신들 그 층차에서 응당 당신들이 알아야 할 법리의 일부분이며, 여전히 그 한 층차 중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펼쳐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인들이 진상을 아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인데, 역대 우주가 모두 이러했다. 그들도 단지 그들이 알아야 할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제자: 생명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그 한 층의 표준에까지 수련하지 못한 것인가요?

사부: 그렇지 않다. 당신이 그 과위까지 수련하지 못하면 당신은 전혀 그곳에 이를 수 없다. 직접 그 경지 속에서 생겨난 생명이라면 그는 바로 그 한 경지의 표준에 부합된다. 그가 그 한 층차에서 움직이지 말아야 할 생각을 움직였고, 그가 그 한 층차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 바로 이런 것 때문에 떨어져 내려올 수 있다. 사실 또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사상은 활발하여 어떤 사상이든 모두 움직일 수 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당신의 난잡한 관념과 각종 업력이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인데, 이런 것들이 없다면 당신은 사람의 사상이 청정한 것을 발견할 것이다.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면 이런 저능한 것이 전혀 없으며 완전히 고상한 것이다. 무엇이나 모두 알고, 소(牛)・말(馬)의 사상마저도 그는 모두 알지만, 그는 전혀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며, 생각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 생각을 움직이지 않지만, 그는 무엇이나 모두 안다.

제자: 어떻게 해야 자신이 한 단계에서 멈춰 서 있음을 알며, 어떻게 해야 그것을 돌파할 수 있습니까?

사부: 사실 당신들의 수련이 느린 원인은 주로 자신이 그다지 법 공부에 마음을 쓰지 않고 자신에 대하여 그다지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아서인데, 흔히 이런 원인으로 조성된다. 정진하려는 마음을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절대 기억하라! 끝까지 수련해야 한다! 이렇게 큰 법으로 사람을 수련시키는데, 절대로 아주 긴 시간을 끌지 않을 것이므로 반드시 정진해야 한다.

제자: 法輪功(파룬궁)이 기왕 불법보다 높으면 무엇 때문에 또 법륜불법이라고 합니까?

사부: 나는 당신이 어찌 된 일인지 알고 있다. 사실 당신은 알지 못했지만, 나는 이미 아주 분명히 말했다. 불법보다 높다니 누가 불법인가? 석가모니불이 말한 불법은 불법인데, 석가모니불이 그의 이전에도 원시육불(原始六佛)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원시육불이 말한 법은 불법이 아닌가? 미래불, 미륵불이 말한 법은 불법이 아닌가? 그렇다면 항하의 모래 숫자처럼 많은 여래가 말한 법은 불법이 아닌가? 도대체 누가 불법인가? 석가모니불이 모든 여래를 대표할 수 있는가? 대표할 수 없다. 석가모니불이 전체 불법을 대표할 수 있는가? 대표할 수 없다. 본래 이 쪽지를 낸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법륜불법(法輪佛法)이라고 하는가? 또 法輪大法(파룬따파)라고 하는가? 법륜불법은 지금의 그 불교와 구분하기 쉬운데, 바로 그것을 구분하는 이런 호칭이다. 사실 이것은 다 속인 중의 이름이며 法輪大法(파룬따파)를 포함하여 모두 속인 사회에서 사람에게 펼쳐 보여준 이름이다. 그는 사실 우주의 근본으로서 우주중생을 만들었으며, 또한 만사만물을 조성한 일체의 근본이다.

제자: 불법을 수련하는 법문이 아주 많은데 부동한 사람에 대하여 부동한 수련법문이 있습니까?

사부: 이런 말이 없다. 당신 부동한 사람을 겨냥한, 당신에게 전적으로 부동한 법문이 있어야 한다는 이런 뜻이 아닌가? 불법이 그렇게 엄숙하지 않단 말인가? 불법은 결코 사람에게 개창해 준 것이 아니고, 결코 사람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부처가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 비로소 이렇게 한 것이다. 석가모니불도 여래불이 많기가 마치 항하의 모래 숫자와 같다고 했지만, 오직 석가모니불만 온 것이다. 부처가 당신을 제도하지 않으면 괴로워 인이 박일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부처는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 아니며 이런 이치가 아니다.

제자: 한 권의 法輪功(파룬궁) 책이 모든 수련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 성취하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나는 당신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듣도록 말해 주겠다. 석가모니불이 세상에 있을 때 여러 사람에게 설법했는데, 그 당시에는 경서도 없었다. 후에 석가모니불이 세상에 없을 때 사람들은 석가모니불이 했던 말에 근거하여 회억해내어 쓴 것이 경서다. 그 차이는 매우 컸으며 그때의 시간・장소・환경의 특수성이 없어졌다. 설령 이럴지라도 이런 경서에 근거하여 또한 수많은 사람이 수련해낼 수 있었는데 당신이 승인하지 않아서 되겠는가? 바로 그 불경인데, 사람인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려는가?

제자: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우주 대법입니다. 그렇다면 대법은 무엇 때문에 또 8만 4천 법문 중 한 법문입니까?

사부: 사람은 곧 이만큼만 많이 인식할 수 있다. 그에게 더욱 높게 말하면 그도 알아듣지 못한다. 사실 여러분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전체 우주의 모든 불법은 8만 4천 법문뿐만이 아니다. 그런 여래불은 많기가 항하의 모래 숫자와 같으며, 여래마다 모두 자신이 증오한 법리가 있지만 모두 그 한 경지에 속하는 것이다. 그 8만 4천이라는 이 숫자로 당해낼 수 있겠는가? 8억 4천만으로도 당해낼 수 없을 만큼 아주 많다! 수련하는 방법은 아주 많다. 그렇다면 이런 모든 방법은 모두 우리 대법・우주 대법이 그 한 층의 중생들에게 개창해 준 부동한 법문이 아닌가? 그들로 하여금 부동한 경지에서, 대법으로부터 증오하게 한 법의 일부분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속에는 우리가 오늘날 사람에게 말해준 것, 오직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그 일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층차의 법은? 그렇지 않은가? 나 또한 사람이 알 수 있는 이 방법으로, 이 개념으로 사람에게 알려줄 뿐이다. 사실 8만 4천 법문, 80억・800억・8만억 그것도 당해낼 수 없을 만큼 매우 많은 것이지만, 모두 대법 속에서 증오해 온 것이다. 우리 대법도 속인에게 펼쳐 보이는 가장 낮은 것이 있다. 그러므로 포함하면 이 일체가 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석가모니불이 사람에게 남긴 이 8만 4천 법문이란 것을 사용하여 이런 세인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개념으로 사람이 알아야 할 그런 이치를 개괄함으로써 사람의 정념을 계오(啓悟)시킬 뿐이다.

제자: 이번의 정법 이후에도 우주는 여전히 위치를 벗어남이 발생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런 일들은 당신이 제출해야 할 것이 아니며 사람의 사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대법은 이번에 원용(圓容)할 수 있고, 일체를 수리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했으므로 불괴(不壞)의 법이다.

제자: 저는 수시로 머리가 텅 비어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데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사부: 사실 상태가 대단히 좋다. 우리는 어떤 때에 속인 속에서 사상이 확실히 아주 약게 변했다. 당신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말하거나 당신에게 조금만 거슬려도 당신은 즉시 경계심을 일으키고, 일종의 자신을 보호하고 다른 사람을 반격하는 또 다른 사상 염두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완전히 수련인의 상태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수련 중에서 당신은 이런 사상의 진행을 조정해야 한다. 조정기간에 당신의 그런 습관이 된 것,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그런 사상을 당신으로 하여금 더는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 사상들을 그쪽으로 사용하려고 할 때에 바로 없어지고 바로 비어있음을 발견하는데, 흔히 모두 이러하므로 수련자에 대하여 좋은 점이 있다. 당신의 정념으로 하여금 모두 강대해지게 하므로, 그때에는 당신이 바로 자신을 파악할 수 있다. 수련 중의 좋은 현상이다.

제자: 우주는 이미 여러 차례 훼멸이 발생했는데, 소훼된 그런 고층 생명 및 중생과 그리고 형신전멸(形神全滅)은 어떤 모양입니까?

사부: 당신이 말한 우주 개념은 무엇인가? 당신의 사상으로는, 우주가 도대체 얼마나 큰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도 자신이 가리킨 우주가 얼마나 큰지를 모른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당신의 사상을 확대할 수 있어서 아무리 크게 상상해낼 수 있어도 역시 극히 작디작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커도, 만약 우주가 일정한 범위 속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그 한 층 속의 일체 생명은 모두 장차 소훼되어 아무것도 없을 것인데, 단독으로 소훼되는 그런 나쁜 생명과는 차이가 있다. 단독으로 소훼되는 생명은 층층이 업력을 갚는 중에 소훼되므로, 그들은 죽었어도 업을 갚아야 하며 그가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폭발은 한순간에 무엇이든지 모두 해체해 버리는데 모두 없어진다. 물론 매우 무섭고 극히 무서운 것이다.

제자: 어떻게 해야만 나오는 생각 하나하나마다 모두 법의 기초(基礎) 위에 있도록 할 수 있으며 또 중간을 취하여 극단으로 가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들은 문제를 이렇게 이해하지 말라. 여러분이 수련 중에서, 당신의 평소 생활 속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히거나 번거로움에 부딪혔을 때, 당신이 자신의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면 바로 수련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찾은 다음 더욱 잘하면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말하자면, 내가 어떻게 해야 말한 것이 법에 부합되고, 내가 어떻게 해야 매 한 언행이 모두 법의 표준으로 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은 제고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당신 心性(씬씽)의 고저(高低) 또한 자연스럽게 당신의 언행에 나타날 것으로, 법 공부를 중시하지 않고 애써 하려고 해서는 잘할 수 없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무슨 일을 할 때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든 모순이 생기거나, 자신의 문제 있는 곳을 보았을 때 당신이 자신을 수련할 수 있고, 더욱 잘할 수 있는,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들에게 하라고 한 것이고, 역시 대법수련인이 수련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다. 직장일은 수련이 아니지만 속인 중에 반영되어 나온 일체는 모두 수련인의 사상이 체현된 것으로서, 수련 중의 행위는 일 속에서 반영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생활은 수련이 아니지만 당신의 수련 중의 상태는 당신의 언행과 거동, 생활 상태에 반영될 것이다. 중간을 취한다는 것을 말하자면, 그것은 내가 법리를 설할 때 특수한 정황에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렇게 하면 나쁘고 대법에 손해가 있다고 말하면 그는 단번에 또 다른 한 극단으로 간다. 당신이 그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알려주면 그는 또 다른 한 극단으로 가는데, 이런 정황을 겨냥해서 말한 것이다.

제자: 때로는 일부 건의를 보도원에게 제기하는데 그들은 여러 가지 구실로 저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부: 아마 두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즉 한 가지는 그가 자신이 맞는다고 여기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가 아마 달리 집착하는 것이 있어서 장애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그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틀림없이 그는 아주 많은 마음을 모두 없앴겠지만, 그는 아직 수련 중이기 때문에 속인의 마음을 다 제거하지는 못했는데, 그렇다면 그는 집착할 것이고 그는 속인의 관념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을 할 때, 심지어 대법의 일을 할 때 그는 속인의 마음도 묻어나올 수 있을 것인데 이것은 틀림없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대법 일을 하는 것 역시 수련이며, 대법 일을 하는 것과 수련을 결합해야 한다고 말했던바, 그도 수련 중에 있다. 그 밖에 당신 자신도 어떤 관념이 생기지 말아야 하는데, 어떤 일을 할 때 모두 대법의 이익에서 출발한다면 잘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당신도 우선 자신에게 어떤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보아야 하는데, 당신의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당신은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자신 이쪽에 있는지 우선 생각해야 한다.

제자: 『홍음(洪吟)』 책에 쓴 삼교(三敎)는 어떤 삼교입니까?

사부: 중국 그곳에서 가리키는 것은 바로 유(儒)・석(釋)・도(道) 삼교이다. 이것은 주로 중국의 그 환경을 말한 것이다.

제자: 만약 제자마다 法輪(파룬)을 가지고 원만을 이루면 전체 우주의 부동(不同)한 부처, 신(神)의 세계가 모두 法輪(파룬)을 가지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이 문제는 내가 일찍이 당신들에게 말했는데 이 수련생은 아직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가지는 않는다. 내가 당신들에게 준 法輪(파룬)은, 다만 당신들 선천의 모든 일체를 우주의 가장 좋은 것으로 동화했을 뿐이다. 법을 바로잡은 뒤에는 어디에서 왔으면 어디로 가고, 무엇이면 바로 무엇인데, 당신이 불(佛)이든, 도(道)이든, 신(神)이든지 상관없다.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가는 것을 말하자면 수량은 아주 적다. 내가 하고 있는 일체는 당신들을 우주의 법에 동화시키는 것이다.

질문: 종교는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法輪功(파룬궁)도 당신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가 없는데 당신은 당신의 학설을 믿고, 다른 것을 믿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사부: 이런 것이 아니다. 비록 당신이 나의 수련생이 아니더라도, 나는 당신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법에 대해 요해(了解)하지 못할 때, 모두 이런 혹은 저런 생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사람에게 기어코 나를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사람들에게 말한 것은 모두 법리이고 모두 이치이다. 당신이 오늘 문을 나가서 무엇을 하고자 하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당신을 상관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기어코 누구에게 배우라는 것이 아닌바, 나는 다만 사람들에게 진정한 수련의 진실한 정황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누가 무엇을 수련할 것인가를 말하자면 그것은 자기의 일이다. 당신은 이런 법리에 대해서 당신이 보지도 않을까 봐 걱정인데, 이것은 그야말로 천 년, 만 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는 말한 사람이 없었고, 과거에는 천기도 사람에게 들려줌을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요해(了解)하게 할 뿐이다. 무엇을 수련하고자 하는, 그것은 자기의 일이다. 동시에 나는 사람들에게 각 종교 중에는 책임지는 신(神)이 없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과거에는 당신들이 참회할 때, 그 신이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고, 심지어 어떤 것은 머릿속에서 당신에게 대답해 줄 수 있음을 정말로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그러므로 나는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책을 한 번 보고 어떤 일인가를 알아보고 요해하기 바란다. 우리 사람은 모두 사상이 있고 여러분은 모두 지식이 있다. 책을 보는 것을 통하여 당신은 그가 맞는지, 아니면 틀리는지를 알 것이다.

제자: 저는 마땅히 공을 가르치는 것을 도와야 합니까, 아니면 자신의 법 공부와 연공에 전념해야 합니까, 혹은 두 가지를 함께 겸해서 돌보아야 합니까?

사부: 당신의 제고, 당신의 수련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론 당신들은 시간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법을 얻도록 도울 수 있는데 이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사람은 인류가 이미 어떤 두려운 지경까지 발전되어 왔는지 알지 못한다. 당신이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좋은 사람으로 변하게 하며, 비록 수련하지 않더라도 도태되는 지경에까지 가지 않게 하는, 이것도 한 가지 나쁜 일은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물론 수련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그것이 사람이 된 최종 목적이기 때문이다.

제자: 사상이 간단할수록, 단일할수록 이 층의 껍데기를 깨뜨리기가 더욱 쉬운 것입니까? 우주특성에서 멀어질수록 사람의 껍데기를 깨뜨리기는 더욱 어렵습니까?

사부: 바로 그렇다. 나는 많은 백인 그들이 아주 단순하며 특히 일부 농촌의 백인은 정말로 아주 순박함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런 관념, 저런 관념이 없으며, 있다 해도 아주 적어 그의 득법(得法)를 저해하는 것이 아주 적다. 그러므로 많은 백인의 경우 수련 후 천목 열림이 특별히 많다.

제자: 때로는 정말로 인간 세상에 머무는 것이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사부: 우리는 세간의 수련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법리 속에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 속인 속의 일체는 수련인에 대하여 말하면 아무 매력이 없는데, 수련인의 경지가 속인보다 높으므로 조성된 것이다. 사람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고 재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이 시간이 얼마나 진귀한 수련기회이고, 다시 올라가는 기회인지를 인식하여, 대법수련의 비중을 좀 더 크게 볼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만큼 해답하겠다. 본래 하루 반의 회의인데, 또 오후의 일부 시간을 더하여 여러분에게 좀 많이 해답해 주었다. 총체적으로 볼 때 우리 이 회의는 아주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회의를 통하여 여러분은 어느 정도 모두 부동한 제고가 있는데, 모두 이 회의가 끝난 후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더욱 정진하고 더욱 잘할 수 있는, 이것이 바로 법회가 도달해야 할 목적이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제고를 얻게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 이 대회의 진정한 목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법회는 어떤 형식으로도 안 된다. 어떤 형식도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게 할 수는 없으며, 어떠한 형식도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는 없다.

여러분은 서로 간의 법 공부를 통하여 모두 자신의 차이점을 찾아낼 수 있으며, 수련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수련하는지, 자신은 어떻게 수련했는지를 보았다. 이 동력을 빌려서 여러분은 더욱 정진하여 하루빨리 원만을 이루기 바란다.

내가 이곳에서 여러분에게 해답한 것은 모두 수련 속의 문제이기 때문에 말한 것은 모두 부동한 층차 중의 문제이며, 속인으로 말하면 듣기에 비교적 높다. 물론 당신들의 받아들이는 능력 역시 한계가 있어서, 일부 것은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여러분은 모두 이 장(場)에 걸어 들어왔는데, 틀림없이 연분일 것이므로, 여러분은 책을 보아도 좋은데, 이 책을 어떠한 관념도 품지 않고 보면 당신은 많고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수련하는가? 이 점에서도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를 보아야 한다. 사람은 사상이 있고 이지가 있으며, 더욱이 현재의 사람은 지식이 있으므로, 좋은 것과 나쁜 것, 진짜와 가짜를 당신들은 스스로 보고 분석한다. 여러분을 포함하여 이곳에 앉은 수련하는 모든 사람, 그들에게 기어이 와서 배우라고 강제한 사람이 없다. 모두 그들이 스스로 수련하려고 했으며 진정으로 대법 속에서 수련할 수 있었으므로 비로소 우리 오늘 이 법회를 열 수 있었다. 나는 이번 법회가 아주 원만했다고 여기는데, 희망하건대 여러분은 돌아간 후 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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