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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부법회설법

 

李 洪 志
(1999년 2월 21~22일, 로스앤젤레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박수)

본래 이번 회의를 서부지역의 국부적인 심득교류회로 열려고 생각했다. 목적은 서부지역의 수련생들이 더욱 잘 수련할 수 있게끔 그런 더욱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이 지역 법회의 성격에 속하고, 주요하게는 그들 이곳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기에, 더 많은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으며, 세계 각지에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더욱 주요한 원인은 내가 여러분에게 안정된 환경에서 어떠한 교란도 받지 않고 안심하고 수련하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 각 지역에 학회와 보도소가 많아 활동도 많다. 만약 내가 가는 곳마다 여러분이 모두 쫓아다닌다면 당신은 수련할 시간이 없어, 이 안정된 수련환경이 없게 되므로 당신의 수련에 좋은 점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더욱 많은 사람이 곳곳으로 쫓아다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여러분도 이런 뜻을 다 알지만, 사부가 보고 싶어 오곤 하는데, 이 심정을 나는 이해한다. 사실 당신이 수련을 잘하였다면 나를 만나기가 더욱 쉽다.

기왕 여러분이 온 바에, 우리는 서해안 수련생들에게 이 한동안의 수련 중에서 어떤 제고와 수확이 있었는지를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 보도록 하자. 그들의 발언과 심득체험 중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게 될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수련 중에서 자신을 제고함에 더욱 잘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여러분도 모두 자신을 총결산해 보고 부족한 점을 찾으며 서로 다그쳐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법회의 근본취지이다. 만약 우리 법회가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개최할 수 없으며 영(零)과 같은바, 곧 그의 의미를 상실한다. 대법의 일체 수련형식, 내가 하는 일체는 모두 여러분이 되도록 빨리 제고하여 올라오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이렇지 않고 이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나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 물론 당신들의 현재 수련형식 중에는 연공 외에 또 홍법의 형식이 있다. 이것은 내가 그 해에 법을 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남겨놓은 것으로서, 대단히 중요할 뿐만 아니라, 확실히 아주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들의 법회는 각 지역에서 여전히 열어야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좋기는 각 지역에서 지역성을 띤 소규모 법회를 여는 것이 비교적 좋을 것 같다. 만약 큰 법회라면 1년에 그렇게 한두 차례면 되고, 너무 빈번하게는 열지 말아야 한다. 형식에 치우치지 않는, 정말 여러분의 제고를 위한 아주 알찬 것이어야 하며,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법을 나는 이미 대단히 높게 말했다. 여러분이 『전법륜(轉法輪)』 이 책에서 법을 이해한다면 비교적 쉬울 것이다. 내가 이후에 설한 그러한 법은, 만약 당신이 『전법륜』을 보지 않고 직접 이런 각 지역의 설법을 본다면, 이해는 할 수 있겠지만, 수련을 연관되게 지도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법은 원용(圓容)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전체는 함께 관통된 것으로서, 당신이 그를 어떻게 보든지 모두 해석할 수 있다. 순서대로 보든, 뒤에서부터 보든, 중간부터 보든, 어떤 방법으로 이 대법을 어떻게 보든, 그는 모두 함께 통할 수 있고, 서로 모두 해석될 수 있는가 하면, 서로 연대적 작용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원용불파(圓容不破)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내가 기타 각 지역에서 한 설법은 실제로는 모두 부동(不同)한 지역, 부동한 상황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특히 내가 미국 또는 유럽 일부 나라에서 우주의 구조에 대해 말한 것이 비교적 많은데, 물론 이러한 것 역시 당신들의 수련과 떼놓을 수 없다. 여러분이 수련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당신들이 원만을 이룬 후 당연히 이 공간 중에 있지 않게 되고, 그것은 필연 다른 공간에 관련되고, 우주의 구조에 관련되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것을 말했다. 하지만 부동(不同)한 지역의 수련생과 부동한 상황에 대해 나는 모두 다른 각도, 다른 방식으로 설법했다. 이것이 내 설법의 특점이다.

사람마다 모두 집착하는 것이 있고, 모두 속인 사회 중에서 자신이 인식한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이런 것들을 고수하면서 그의 인생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속인 중에서 어떤 이치를 깨달았든, 인류보다 높은 모든 층차의 생명이 보면 다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사회 전반은 모두 거꾸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들의 이 장애, 바로 당신들의 법 얻음을 심하게 방해하고 있는, 당신들이 형성한 이 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나는 부동(不同)한 지역에서 부동한 사람을 향해 부동한 설법을 하는데, 당신 두뇌 중의 장애, 법을 얻는 장애를 타파한다. 중국에서 미국으로 온 많은 사람이 모두 성취가 있고 모두 고급 지식인들이며, 많은 사람이 다 학위가 있다. 현대과학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모두 비교적 명석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당신 자신이 명석하다고 인식하는 이 자체가 바로 이미 장애이다. 왜냐하면, 이 과학은, 내가 이미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지만, 그것 자체가 비과학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외계인이 사람에게 강요한 것이며 이미 사회 전반에 관통되어 있고 여러 면이 모두 이것에 관통되어 있다. 그러면 당신은 그중에 있기에 당신은 필연코 그것이 어찌 된 일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그러면 나는 왜 현대 과학에 결부해 설법하는가? 왜냐하면, 현대과학이 사람의 관념과 행동양식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생존조건이 바뀜에 따라 사람의 행위에 변화가 생기고, 인류의 모든 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학 이외의 문화를, 각 민족의 문화를 포함하여, 오늘날의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현대과학 방식으로 이 우주의 상황을 말해야만, 현대인은 비로소 이해할 수 있고, 우주에 실재하고 있는 물질의 근본, 생명의 근본, 우주의 근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당신들이 속인 속에서 얻었다고 여기는 이른바 진리를 타파할 수 있고, 이런 것을 타파함으로써 당신들이 법(法)―진정한 진리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 당신들은 과학이 결코 무슨 진리가 아님을 발견함으로써 법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역시 내가 부동한 사람, 부동한 상황, 부동한 지역에 대해 이 법을 말하는 특점의 하나로서, 현대인의 변이(變異)된 관념에 결부해서 설법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많은 사람, 특히 지식이 비교적 높은 층의 사람은 장기간 과학과 지식에 대해 일종 탐구하기를 즐기는 그런 습관적인 관념을 키워왔다. 그가 일단 이러한 것을 접하기만 하면 그는 연구 토론하려 하고, 이해하려 한다. 그는 이미 지식 탐구에 익숙해 있는데다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의 그 심리작용으로, 그는 늘 탐색하려 한다. 사실 이 우주는, 사람의 사상·사람의 관념·사람의 현재 수준·혹은 장래의 수준으로는 우주가 도대체 무엇인지 영원히 탐측해 내지 못하며 탐측해 내기가 전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의 사유·사람의 언어는 단지 일정 범위 내의 일만 형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인류는 그런 언어가 없어 그것을 형용할 수 없다. 단지 그것을 형용할 수 있는 언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어휘가 없다는 말이다. 현존하는 어휘 그것은 이미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 버려 당신이 어떻게 형용하려 해도 형용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어떤 때에 내가 여러분에게 설법할 적에 말하기가 힘든 원인이다.

또 하나, 사람의 사유에는 어떤 순서가 있게 마련인데, 이 순서 역시 적용되지 않으므로 당신은 우주에 대해 전혀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수련생이 법을 볼 때를 포함하여, 많은 경우 모두 마음으로는 터득할 수 있으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어 한다. 모든 수련생이 모두 이런 감각이 있다. 그를 터득할 수는 있지만, 명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한다. 즉 그는 속인의 그런 사유가 아니며 또한 속인의 언어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되도록 사람의 언어로 그를 말하며 되도록 여러분으로 하여금 명백해질 수 있게 하고 있다. 지난번에 내가 제네바에서 여러분에게 설법할 때 나는 이미 상당히 곤란한 것을 느꼈다. 나는 나의 이쪽에서도 명료하게 말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최근에 나는 책을 여섯 권 펴냈는데, 바로 작년 싱가포르·제네바·프랑크푸르트·북미 제1기 법회와 장춘 보도원 법회에서 한 차례 말한 법(法)과 그리고 또 한 권은 내가 수련생들에게 써준 그런 네 구절 네 구절로 된 시라고 해도 될 법한 바로 이런 책 한 권이다. 전부 여섯 권인데 모두 펴냈다. 목적은 무엇인가? 내가 각지에서 말한 것은 단지 그 상황에서만 듣기에 적합할 따름이다. 다른 환경 속에 갖고 와서 듣는다면 법이기 때문에 역시 작용할 수는 있지만, 겨냥성이 없으며 또한 법을 체계적으로 듣지 못한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잘못 이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나는 그를 정리하였고 지금은 모두 출판하였다. 그러니 일단 당신이 책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각지에서 전해 준 비디오테이프, 그것은 소각해 버려야 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비디오테이프에는 아주 큰 특점이 있는데, 당신들은, 내가 여러분의 문제에 해답해 줄 때, 질문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답해 주는 것을 종종 들었을 것이다. 왜 이러한가?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이 아주 제한되어 있고, 일부 사람이 제출한 문제는 내가 그 쪽지를 읽기만 해도 여러분이 다 알아버리기 때문인데, 그래서 나는 이 기회를 빌려 다른 문제를 다루곤 했다. 만약 이 질문하지 않은 것을 해답한 그 녹음테이프를 외부로 가져가 듣는다면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하기에 이 몇 권의 책을 펴냈다. 방금 내가 말한 뜻은 다시 말해서 내가 부동한 지역의 상황에 대해 말한 부동한 지역의 일이었다.

지난번에 내가 중국에 있을 때, 바로 전 한 시기 미국으로 오기 전에 나는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베이징과학기술계의 대학 교수와 과학연구를 하는 이러한 수련생들 및 일부 대법책임자를 소집하여 과학에 대해 그들에게 자세히 말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하려던 일을 그렇게 원만하게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많은 다른 수련생이 와서 제출하는 문제가 내가 말하고자 한 내용과 맞지 않아 말하기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이 법을 듣고자 하거나 나를 만나려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동한 지역에는 부동한 지역의 상황이 있다. 나는 오늘 더 많이 말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결국은 법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발언해야 한다. 나는 내일 여러분의 문제에 해답해 주겠다.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 있기에 나도 여러분에게 몇 가지 문제를 말하겠다.

우선 홍법에 관한 문제를 말하겠다. 당신들은 확실히 아주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여러분은 최근 한 시기에 신(新) 수련생이 오는 것이 비교적 적음을 발견하였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나게 되는가? 왜냐하면, 맨 처음부터 이 일 전체가 아주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배치는 나의 승인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서, 이는 우주 중 과거의 구(舊) 세력이 내가 모르고 있고 동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배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렇게 개괄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정법(正法)하기 때문인데, 바로잡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잡는 것은 바로 법을 빗나간 그 낡은 일체이다. 과거의 바르지 못했던 것, 그것들이 이미 세력을 형성하여 하나의 체계를 이루었는데, 이런 것들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부면(負面)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나는 법을 전하는 과정 중에서 더욱 많은 사람에게 법을 얻게 하려고 생각했는데, 구세력은 이미 이 일을 단계별로 나누어 놓고서는 이 일을 함에 사람의 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억제해 왔다. 당시에 나는 2억 명이 법을 듣는 것으로 정했는데, 결국 이러한 낡은 악세력(惡勢力)은 1억 명으로 제한했다. 그래서 여러분이 홍법을 추진해가는 데 일부 곤란이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후의 사람은 법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후의 사람 역시 잇따라 인식할 것이고 법을 얻게 될 것이다. 당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도록 하라. 설령 이렇다 하더라도 당신들 역시 억지로 누구를 끌어당겨 법을 얻게 할 필요는 없다. 수련은 자원(自願)적이다. 수련하지 않으면 본인이 편할 대로 놔두라. 구세력의 간섭 때문에 우리의 무엇을 개변하지는 말아야 한다. 당신들이 이 법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능히 인식하도록 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알게 한다면 이는 성의를 다 한 것과 같다. 바로 이러하다. 내가 방금 말한 뜻은 바로 여러분에게 그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을 조성한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나의 말을 빗나가게 듣지 말아야 한다. 오, 마치 또 무엇을 알게 된 것처럼 당신들이 또 단장취의(斷章取義) 식으로 자신의 관념과 집착심을 품고 말한다면 이는 모두 안 되며 정상적이어야 한다. 나는 다만 당신에게 그것이 이런 상황임을 알려줄 뿐이다.

그러나 내가 오늘날 하는 이 일은 당신들을 법과 연계(連繫)시키는 일이다. 당신들의 수련은 왜 이렇게 빠를 수 있는가? 이 속에는 많고도 많은 요소가 있는데, 이것이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이다. 내가 이 법을 전하고 전반 법을 바로잡고 있을 때에, 부동한 층차 중의 모든 생명이 법을 듣는데, 가장 낮은 층차에서 법을 듣는 세상의 수련인이 바로 당신들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이 대법과 연계된 것이다. 비록 가장 낮은 층차에서 법을 듣는 것이 당신들이지만, 당신들은 장래에 영원히 가장 낮은 층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원만을 이루어야 하고 부동한 경지, 부동한 층차로 가야 하므로 전체적인 것은 관통되어 내려온 것이다. 장래에 이 일이 결속되고 나면 다시 수련하는 사람이 오는데, 오늘날의 법을 바로잡는 이 일과는 상관이 없이 그는 정상적인 수련으로 들어간다.

내가 오늘날 전하는 이 우주 대법 역시 사람에게 준 한 차례 가장 큰 기회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큰 법으로 수련한다는 것은, 과거에는 물론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지금 법을 얻을 수 있고, 내가 당신들에게 설법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거기다 또 법을 바로잡는 이 일과 연계된 이때에 당신들은 아직도 이 일의 의미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때 수련생들은 정진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에 대해 무책임한 것이다! 어쨌든 사람인지라, 사람의 사상이 있어 이러한 것을 의식하지 못하게 마련인데, 다만 이럴 수밖에 없다. 사실상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장래에 당신들은 당신들이 얼마나 행운인지 알게 될 것이다! (박수)

또한, 여러분은 수련 중에서 우리 이 환경이 대단히 좋다는 것을 다 알게 되는데, 연공장에서 여러분이 흉금을 털어놓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이것은, 인류사회 어디에서도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수련생마다 대법 연공장에 가기만 하면 정토에 들어왔고, 가장 신성한 곳에 들어온 감을 느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 당신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는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는데, 이는 어떤 인류 환경 속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왜 이럴 수 있는가? 바로 대법제자 매 한 사람이 모두 자신을 수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고 모순이 나타나면 여러분은 모두 자신이 잘하지 못하여 조성된 것이 아닌지 하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여러분은 모두 이렇게 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일부 법 공부를 견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하지 못한다. 그럼 이 일부 문제를 말한 김에 또 좀 말해야겠다. 물론 내가 여러 환경 중에서 여러분과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다. 모순에 부딪혔을 경우에는 모두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고. 그러나 어떤 사람은 모순에 부딪혔을 때 그는 아직도 안을 향하여 찾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인식할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생각마저도 하기 싫어하고 심지어 자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는데, 이렇다면 아주 부족하다고 나는 말한다. 당신과 수련생 사이에, 당신의 업무 환경 중에, 당신이 소속한 속인 사회의 어떠한 상황에, 수련생과 수련생 사이에, 혹은 수련생과 이 보도원 사이에 어떤 모순이 있을 때, 당신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나는 늘 여러분에게 두 사람 사이에 모순이 생겼다면 각자가 원인을 찾아야 하는 이러한 정황을 말했다. 말하자면 나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자기 자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모두 찾아야 한다. 만약 제삼자가 그들 두 사람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 제삼자인 당신 역시 우연하게 보게 된 것이 아니므로 당신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왜 내가 그들의 모순을 보게 되는가? 나 자신에게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지는 않은지?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당신들은 일단 모순에 부딪히면 모두 밖으로 밀며 다른 사람의 약점·결점을 찾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당신은 대법 사업에 손실을 끼칠 수 있고, 대법에 손실을 끼칠 수 있다. 당신은, 당신들이 모두 대법과 대법 일로 당신들 자신의 부족함을 얼버무리고, 당신들 자신의 집착을 덮어 감추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이 잘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낄 때, 당신의 마음에 걸릴 때, 당신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내 마음에 걸리는가? 그에게 정말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나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가?’ 자세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정말로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없고, 그가 한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면 당신은 선의(善意)로 그에게 말할 수 있는바, 이렇게 되면 모순이 없을 것이다. 틀림없이 이러하다. 만약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고 당신은 말해 주었으면 그만이다.

모순이 없으면 제고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모순이 없는 이 환경을 아주 평화롭다고 여기며 모두 수련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그것은 좋지 않다. 나는 당신에게 일부 모순을 만들어 줄 것인데, 당신에게 모순이 없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모순 속에 있어야만 당신의 그 마음이 드러나 당신 자신으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데, 그런 연후에야 제거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모순이 없다면 당신은 그 속인 마음을 제거해 버릴 수 없다. 그러니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당신들이 어떤 환경에 있든, 특히 당신들은 속인 중에서 수련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모순 속에 있게 마련인데, 반드시 心性(씬씽)의 교란에서만이 비로소 心性(씬씽)을 제고할 수 있다. 나는 설법 때마다 늘 이 문제를 말했다. 당신들이 여기에 앉아 법을 들을 당시는 모두 아주 명백한 것 같지만, 일단 나가기만 하면 안 되고 잊어버린다.

최근 한동안, 특히 이 한두 해 사이에 수련생의 제고 폭이 아주 크고 법에 대한 이해가 갈수록 성숙한데, 이는 대단히 좋다. 대법을 전하면서, 내가 당신들로 하여금 가장 바른 수련의 길을 걷도록 이끌었기 때문인데, 법을 전하는 방식에서든, 혹은 사회상의 유전형식에서든, 내가 여러분에게 하라고 가르친 일체는 모두 가장 바른 길을 걷는 것이다. 우리가 바르면 일절 바르지 못한 것들은 우리에 대해 아마 모두 생각이 있을 것이며 일절 바르지 못한 것들은 대법 앞에 모두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법에 대해 반드시 일부 부면(負面) 작용을 하면서 오히려 대법이 어떠어떠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는 틀림없다.

하지만 바꾸어 말해서, 만약 부면(負面)의 요소가 없고 이 대법이 평온하고도 평온하게 전해 내려온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것은 바로 현재의 인류 도덕수준과 같게 되는 것으로서, 그 어떤 것에 대한 현재 인류의 비난도 없을 것이다. 바로 우리가 대단히 바르게 걸었기 때문에 온갖 바르지 못한 것들이 드러나고, 당신들의 바르지 못한 것을 제거할 수 있게 되고, 속인 사회 중의 바르지 못한 일체를 시정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당신들이 사회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좋지 않은 것이 드러나면 속인 그 자신이 보아낸다. 사람에게는 아직 선(善)한 마음이 있고, 아직 선량한 본성이 있다. 사람이 부족한 것과 잘못된 것을 보면 인류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바, 틀림없이 속인 사회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는 역할을 할 것이다. 당신들은 수련 중에서 주로 자신이 어떻게 정진할 것인가 하는 이 면에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속인 사회가 어떠한지에 관심 두지 말고, 당신들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좀 해야 한다는 것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에게는 이런 임무가 없고, 나도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므로 어떻게 자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할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수련의 근본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은 1억이나 되는 사람이 대법을 배우고 수련하고 있다. 이 사람 숫자 자체가 일으킨 작용이 이미 사회로 하여금 일종 사람 마음을 바로잡는 변화를 발생케 하였는데, 그것은 필연 이렇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특히 유전(流傳)과정 중에 대법은 그의 마난(魔難)이 있고, 대법에 대한 속인의 비난이 있을 것인데, 여러분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수련생들에게는 속인처럼 그런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거나, 또는 무슨 당신이 나를 이렇게 대하므로 나도 당신에게 마찬가지로 대한다거나, 심지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다. 여러분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모두 선심(善心)으로 이 일체를 대했는바, 이것 또한 대법으로 하여금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요소였다. 물론 여러분이 만나는 일체 마난 역시 당신들과 대법에 위덕을 세워주는 것이다.

여러분이 보았다시피 장래 이처럼 많은 사람이 원만을 이룰 것인데, 수련하여 원만(修煉圓滿)에 이를 것이다. 천상의 신(神)들이 물을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원만에 이르렀는가? 당신은 어떻게 수련해 올라왔는가? 당신은 어떤 법으로 수련해 올라왔는가?” 물론 여러분이 알다시피 소도(小道)는 사람을 제도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방법 역시 삼계를 벗어나는 신으로 사람을 제도하지 못한다. 대단히 크고, 대단히 높은 법이라야만 그만큼 큰 신으로 제도할 수 있으며, 그만큼 높은 층차의 사람으로 제도할 수 있다. 장래에 사람들이 당신이 어떻게 올라왔는지 보고자 할 때, 척 보기만 해도 대법(大法)을 수련해 올라온 자로서 손색이 없음을 볼 것이다. 이 대법 자체가 세운 위덕 역시 극히 중요한 것이다. 당신 한 사람이 잘했다면 그것은 당신 개인의 수련 문제이고, 한 지역의 사람이 잘했다면 그것은 당신, 이 지역 수련생들이 잘한 것이며, 만약 우리가 전 세계 혹은 전체 모든 대법제자가 있는 곳에서 여러분이 모두 대단히 잘했다면, 곧 한 지역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체 대법이 잘한 것이고 대법이 바르게 걸은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또 한 가지 문제를 말하겠다. 물론 미국에도 이러한 수련생이 있지만, 아주 적으며 중국 대륙에 비교적 많다. 일부 사람은 과거에 불교 중의 거사(居士)였는데, 불교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고, 또 다른 종교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공능 또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 보았거나 혹은 사회에서 유전 중인 대법(大法)이 사람을 제도할 수 있고, 현재는 이 대법만이 유일하게 사람을 제도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도 종교 중에서 나타난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고 또한 명백해졌다. 그들도 종교는 사람을 전혀 제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神)도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경서이든지 그것의 배후에는 내포가 없으므로 그것은 사람을 제도하는 진정한 역할을 잃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러한 것에 명백해진 후 대법을 배우러 왔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그들 원래의 그러한 것과 종교에 대한 그 집착을 근본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원래의 것을 품은 채 대법을 빌려, 대법을 이용하여 그의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는데, 이 마음은 대단히 좋지 않은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의도적으로 이렇게 하고 있는데, 아주 노골적으로 이렇게 했다. 나는 일률적으로 그들을 모두 배척해 버렸으며 절대로 그들이 어떠한 것도 얻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법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 자체가 사람으로 말한다면 대단히 좋지 못한 짓이고, 대단히 좋지 못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만약 의식이 없어서거나, 사람의 표면이 그리 명백하지 않아서거나, 흐리멍덩해서라면, 이런 사람들은 내가 가급적 그들을 바로잡아주어 그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명백해지도록 할 것이다. 내가 오늘 말한 것은 그들에게 그것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내가 전한 것은 우주의 법이다. 어떤 한 법문, 어떤 한 가(家)든지 모두 이 우주 속에 포함되어 있고 또 모두 이 법 속에 포함되어 있다. 매 한 층 생명은 모두 우주 대법이 창립해 준 것이며 우주 중의 모든 세계·전체 신의 세계·부처의 세계·각 층 우주·각 층 천체(天體)가 모두 이 대법이 창립해 준 것이다. 그가 이 일체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대법 중의 많은 사람이 과거에 불문(佛門)의 중생이었고, 많은 사람의 생명이 도(道)였으며, 많은 사람이 서양 인종의 신(神)이었는데, 그들 세계의 생명이었다. 또 당신들이 모르는, 인류가 모르는 많고도 많은 부동한 신(神)의 세계 속 생명이 대법을 얻으러 왔다. 대법은 어째서 그로 하여금 되돌아가게 할 수 있는가? 내가 진정 그를 되돌아가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말한 것이 우주의 근본 대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떤 세계의 법이든지 모두 우주의 부동한 층차 중에서 깨닫고 그 자신이 증오(證悟)한 이치이므로, 모두 대법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나는 왜 당신들에게 다른 것을 연마하지 못 하게 하고 오로지 대법만 수련하라고 하는가? 왜냐하면, 대법은 부동한 층차의 상황과 부동한 생명의 상황을 결합한 것으로서, 당신들이 진정하게 되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선천적인 모든 것을 바꾸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또 당신들을 제도하여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수련생 중 많은 사람이 스스로 그 자신이 도(道)인 것을 이미 보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서양 신(神)의 형상이고 또한 불가의 형상인 것을 보았는데, 모두 대법 중에서 수련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잃게 하거나 혼란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과거에 어느 문을 수련했든지 나는 모두 그들을 제도하여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오로지 우주의 법만이 해낼 수 있는데, 이것이 대법과 과거의 어느 한 문의 수련법(修法)이나 종교 간의 가장 큰 구별이다.

사실 사람은 모른다. 많은 사람이 모두 부처를 믿고 신(神)을 믿는다고 하는데, 사실 당신이 그 신의 세계 사람이 아니면 그는 당신을 아예 제도하지 않는다. 내가 예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기독교든 천주교든 그들의 세계 속에는 동양인이 없다고 했다. 이는 절대적인 진리이며 사람은 모르는 것이다. 서양 종교는 십자군 원정을 따라 건너온 것으로서 온 것이 본래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와 여호와는 예전에 모두 그의 제자가 동쪽으로 전함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인종을 혼란케 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그런 것을 몰랐다. 예전에 나는, 예수는 많은 위대한 형상이 있지만, 당신들은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십자가에 박혀있는 형상을 예수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예수가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혀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사람은 그래도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이 하고자 한 일이나 사람이 한 일이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왜 신이 아직도 사람을 책임지고 있는가? 왜냐하면, 사람에게 아직도 신을 믿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미혹 속에 있는데 사람이 무엇을 알겠는가?!

대법은 모든 생명으로 하여금 그가 생긴 곳으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해낼 수 있는 것으로 절대적이다. 법을 바로잡는 실천 중에서 얼마나 높은 층차의 생명에든 모두 실행했다. 나의 이렇게 많은 제자 중 몇 년래 수련되어 나온 사람이 이미 무척 많은데, 원만에 이른 사람과 원만에 가까운 사람이 무척 많다. 전체적으로 이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억제되어 있다. 그들은 일체를 알 수 있고, 일체를 볼 수 있지만, 그들의 신통(神通)·법력(法力)을 드러내지 못 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 지구가 받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수련생도 모두 잇따라 속속 이러한 일을 알게 되었고 서로 간에 토론과 교류를 거쳐 많은 일에 대해 더욱 뚜렷해졌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러한 문제를 말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 그런 인종에 속하지 않고, 당신이 그의 세계 사람이 아니면 그가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말하기를, 여래 부처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와 같다고 했다. 부동(不同)한 세계의 생명이 좋지 않게 변하면 모두 아래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어디로 떨어지는가? 모두 우주의 중심으로 떨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가장 낮은 곳이다. 그 가장 중심이 바로 우리 이 지구이며 그것은 특수한 환경이다. 모두 여기로 떨어지는데, 그럼 곧 떨어져 내려온 것이다. 부처는 자비하므로, 자기의 세계에서 떨어져 내려간 생명을 구하려 하기에 그는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뭇 신(眾神)들이 실제 구하려는 것은 모두 그들 자신 세계의 생명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의 생명을 건드릴 수 없다. 무엇 때문인가? 이 생명을 구성하고 있는 일체 요소가 모두 그의 세계 속의 요소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요소를 제거해 버린다면 이 생명은 흩어지게 마련이다.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예전에 사람들은 모두 부처를 믿고, 부처를 숭배하고, 그 신(神)을 숭배했는데, 사실 단지 그가 신을 믿는다고 하는 일종의 정념(正念)에 지나지 않는다. 그 부처는 그를 책임질 방법이 전혀 없으며 책임지고자 해도 책임질 수 없다. 물론 석가모니·예수 이런 신이 내려와서 사람을 제도했는데, 그는 일종 특수한 상황에 속한다. 그건 물론 많은 문제에 관련되는 것이므로 말하지 않겠다. 다시 말해서 대법은 이러한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직도 그의 원래의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에게, 바로 그에게 이 기회를 주고자 내가 오늘 말하는 것이다. 내려놓지 못하면 이 기회는 없다. 대법은 엄숙한 것이며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여러분에게 또 하나 문제를 말하겠다. 바로 수련생들이 수련 중에서 줄곧 명확히 말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일인데, 바로 ‘하늘(天)’이다. 지금의 과학이 말하기를, 우주선이 높고 드넓은 하늘 밖(外太空)으로 날아갔고 많은 별로 날아갔는데 사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고 신의 세계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또한 사람이 말하는 이른바 삼계(三界)의 각기 다른 하늘의 그 상태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이 이론으로 종교를 부정하고 과거의 오랜 전설을 부정하며 사람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부정하고 있다. 사실 신이 가리킨 ‘하늘’과 사람이 본 ‘하늘’은 전혀 같은 개념이 아니다. 나는 늘 사람의 이 물질공간의 일체는 분자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또 미시적인 물질이 분자를 구성하는 원인이고, 더욱 미시적인 층층의 물질 또한 층층의 부동한 층차의 입자를 구성하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했다. 신은 극 미시세계에 있지만, 오히려 극히 광활한 세계, 광활한 공간이다. 내가 매번 여러분에게 미시 세계에 대해 말할 때, 미시적으로 구성된 그 공간은 신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신을, 내가 그날 말했지만, 사람의 이 공간의 일체 공기요·물질이요·흙이요·돌이요·강철이요 하는, 당신, 이 공간의 일체는 당신의 신체를 포함하여 모두 분자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나 분자는 이 우주 중에서 가장 조잡하고·가장 표면이며·가장 더러운 물질이다. 바로 이 분자가, 신의 눈에는 모든 분자가 다 흙(土)으로 보이고 우주 진흙(泥)으로 보인다. 이는 아직 여래 이 층차의 인식이다. 그러므로 예전에 여호와 혹은 여와가 진흙(泥土)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은 정말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살은 모두 분자인데 신의 눈에는 모두 진흙(泥)이고 모두 흙(土)이며 가장 조잡한 일종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 이 우주선이 아무리 높게 날았다 해도 당신은 분자라는 이 경지를 벗어났는가?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 당신이 아시아에서 아메리카에 도착했다면 당신은 굉장히 높고 굉장히 멀리 날았다고 느낄 것이다. 사실 당신은 단지 이 분자 더미 속을 달렸고, 땅 위를 달렸을 뿐, 이는 전혀 하늘이 아니다. 신의 눈으로 보면, 단지 이 거리가 멀고 가까울 뿐, 동등한 물질 중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시적인 세계로 구성된 공간 그것이야말로 신이 말하는 진정한 하늘이다. 물질은 미세할수록, 더욱 미시적일수록 그것이 구성한 표면도 더욱 정미하고 정교하다.

분자를 포함하여 일체 물질은 모두 에너지가 있다. 다만 사람 신체와 주위의 일체는 모두 분자로 구성되었고, 에너지를 측정하는 그 기계도 모두 분자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분자의 에너지를 측정해 내지 못한다. 그런데 물질은 더욱 미시적일수록 그것의 에너지가 더욱 크고 방사성(放射性)도 더욱 큰데, 미시적일수록 커진다. 이것이 바로 왜 신, 그의 에너지, 그의 존재 형식이 그러한가 하는 것이다.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지구인들이 보는 달·태양·금성·화성, 당신이 보는 은하계, 우주 바깥(外太空)과 아득히 먼 천체 등등을 포함하여 모두 하늘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이 화성에서 지구를 본다면, 그것도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역시 하늘에 있는 것이다. 이는 속인의 사유방식을 타파한 인식이다.

그러나 더욱 깊은 인식에서 여러분 생각해 보라. 무엇이 하늘인가? 당신이 미시적인 그 공간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하늘이다. 내가 가장 간단한 예로 옛이야기를 하겠다. 과거에 한 수도(修道)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거리를 지나다 갑자기 한 사람을 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자신이 찾고 있던 도를 닦을 만한 사람이었다. 수도인은 이 사람을 제도하려고 그를 도제(徒弟)로 삼고자 했다. 수도인이 이 사람에게 물었다. “나를 따라가 수도할 생각이 있는가?” 이 사람은 오성(悟性)과 근기가 아주 좋기에 대답했다. “수도하고 싶습니다.” “자네가 나를 따라갈 용기가 있는가?”라고 하자 그는 대답했다. “있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 자네가 다 따라올 수 있겠는가?” “예.” “좋아, 그럼 자네가 나를 따라와 보게!” 그가 말하면서 그 손바닥만 한 술 주전자를 땅에 놓고 마개를 열더니 단번에 술 주전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는 사부가 뛰어들어간 것을 보고 역시 사부가 하는 대로 따라서 술 주전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구경꾼들이 모두 그 술 주전자 입구에 엎드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야, 들여다보니 그 속은 광활한 세계였고 굉장히 컸다. 이렇게 작은 술 주전자인데, 사람의 사유로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큰 사람이 거기로 뛰어들어갈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그 공간으로 들어가려면 당신 신체의 일체 상태가 모두 그 공간의 상태에 부합되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들어갈 수 있다. 공간 간격을 꿰뚫으려면 신체는 반드시 그 공간의 상태로 진입해야 한다. 왜냐하면, 물질의 입자는 더욱 미시적일수록 그것의 층차면이 더욱 광활하고 더욱 크기 때문이다. 미시적인 입자, 그런 층차 중의 술 주전자의 표현형식은 사람이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닌 모든 입자가 연결되어 통하고 있는 그런 것이다. 사람이 보는 크고 작음은 단지 동일한 입자로 조성된 시공의 일종 표현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 다시 말하면, 이 주전자의 표면은 분자로 구성되었는데, 당신이 보는 그것은 곧 이러한 모양이다. 그러나 미시 상에서 그 주전자는 이런 모양이 아니며, 그것은 그 경지의 우주와 한데로 연결되어 있다. 내가 한 말의 뜻을 알겠는가? (박수) 나는 곧 그 뜻을 말한다. 사람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사람의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하는데,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갑자기 돌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면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닌가? 당신이 물질로 형성된 이 돌의 표면을 뚫고 속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안 된다. 당신이 분자 입자로 조성된 미시입자의 경계면을 뚫고 들어갔다면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닌가? 당신이 자신을 축소하여 당신 신체의 미시적인 그 한 층으로 들어갔다면 당신은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어떤 한 층 공간의 표면 입자의 미시입자 속을 뚫고 들어간다면, 즉 그것보다 작은 그 한 층 입자 속으로 들어간다면 당신은 바로 하늘에 있는 것이다. 다만 하늘의 층차가 같지 않고, 미시의 정도가 같지 않을 뿐이다. 미시세계에 도달한 후, 당신이 보면 돌에 들어갔고, 신체에 들어갔고, 어떤 한 물체 속으로 들어간 것을 볼 것이다. 실은 당신이 그 공간과 한데로 연대(連帶)되어 있는 광활한 우주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사람의 사유방식이 아니다. 나는 늘 말했다. 사람이 인식하는 동남 서북, 상하 내외가 우주 중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의 그런 사유개념이 아니다. 나의 이 말에 여러분은 명백해 졌다. “아, 사람의 사유로 상상할 수 있는 전혀 그러한 일이 아니로구나.” 지금의 과학은 극히 천박하기에, 그것으로는 진짜 하늘을 볼 수 없고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것이 단지 현존의 물질공간 속에서만 기어 다니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사람에게 강제로 주입한 과학 역시 여기에 국한되어 있다. 외계인 역시 이 공간의 생명으로서 그것 또한 우주의 진상을 인식하지 못한다.

사람이 신을 믿지 않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바, 사람이 사람의 도덕을 훼멸시키고 있다. 사람이 업력윤보(業力輪報)를 믿고, 좋은 일을 하면 좋은 보답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나쁜 보답, 악보(惡報)를 받는다는 것을 믿는다면,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모두 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사람은 감히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좋은 일을 하면 더(德)를 쌓을 수 있고 장래에는 복으로 보답 받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이는 절대적인 사실이다. 사람이 이러한 것을 믿지 않고, 과학은 지금 이러한 것을 믿지 않으며 미신 짓이라고 여기는데, 이것이 바로 과학이란 몽둥이를 휘둘러 사람의 정념(正念)을 때리는 것으로, 사람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때리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도덕·정신(正信)·정념(正念)이 모두 공격받아 없을 때, 사람은 곧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가 하고자 하는 짓을 하고 그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사회가 부패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이다. 서양사회는 마치 그들이 신을 믿고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은 결단코 정말로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진정 믿는 것은 과학이다. 신도 그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인간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 생명이 아니다. 나는 방금 여러분에게 한 가지 관건적인 개념을 시정해 주었다. 바로 하늘에 대한 인식이다. 신과 사람이 생각하는 이 하늘,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수련 중에서 종종 자신이 마치 자신의 신체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음을 보는데, 신체 속은 마치 광활한 하늘과 같아, 자신이 하늘 속을 운행하고, 천체 속을 걷고 있는 것 같다. 그 문이 하나하나 열리면서 자신이 앞으로 돌진하는데, 다시 자세히, 사상을 한층 더 넓혀서 보니, 아, 그것은 자기 신체의 혈맥(脈穴)이 열리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수련하면, 당신의 신체는 가장 미시적인 데서부터 개변이 되는데, 가장 미시적인 것은 무엇인가? 당신의 그 다른 신체가 바로 하늘에, 그 경지 중에 있는 것이 아닌가? 단지 사람만이 속인 중에 떨어져 왔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그 일체가 모두 속인 속으로 떨어져 왔으며 심지어 가장 미시적인 그 부분마저도 속인 속으로 떨어져 왔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수련하여 되돌아간다면, 당신을 위해 이 일체를 모두 바르게 되돌려주므로 바로 그런 상태가 나타난다. 역사상 수련하는 많은 사람이 이런 광경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때로는 불교 중의 사람들은 부처가 마음속에 있다고 말하고, 도가는 인체가 바로 소우주라고 말하며 어떠어떠하다고 하는데, 바로 그들도 이런 광경을 본 것이다.

나는 과학을 말할 때, 과학 역시 좋지 않은 작용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단지 인류 환경을 오염시키고 인체조직을 파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또 외계인 그것으로 사람을 대체하려 한다고 했다. 그것의 것이 이미 인류사회의 일체 영역 속에 관통되어 있고, 인류 역시 과학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일체는 모두 그것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 대법제자들은 어떤 일을 하든지 당신은 오로지 하기만 하고 당신의 일을 잘하면 된다. 이 일체에 대해 상관하지 말라. 나는 이 과학에 대해 반대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또 여러분에게 어떻게 그것을 배척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뜻이 아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과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려는 것이다. 많은 것에 대한 과학의 인식은 너무나 천박한바, 현존 공간 사물에 대한 인식조차도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神)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므로 해서 자신의 발전을 한정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지금 과학자들은 모두 인류의 산업오염이 아주 심각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그것이 말하는 냉각제 속의 그 프레온 등등 일부 것은 대기 오존층을 파괴할 수 있고, 남극은 오존층이 파괴되어 구멍이 생겼다고 한다. 실은, 과학이 신의 작용을 인식하지 못한 나머지 오존층이 파괴되어 구멍이 생겼다고 한 것이다. 확실히 현재의 산업이 가져온 오염은 인류의 공기를 이미 말이 아닐 정도로 오염시켰다.

그러나 미시상(微觀上)의 방대한 우주의 무수한 유형(有形)·무형(無形)적인 것은 모두 신(神)으로서, 인류가 보지 못하는 미시 영역에 있다. 공기는 분자 입자로 구성되었고 분자 입자는 또 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되었다. 이 공기 중에서 층층 층층 수없이 미시적인 데로 내려간다면 얼마나 많은 층이 있는지 모르는데, 모두 신(神)이다. 그들은 사람의 환경이 이미 이 지경으로 변한 것을 보고 창문을 하나 열어 놓고 문을 하나 열어 놓아 지구 속의 폐기(廢氣)를 배출한다. 이것은 신이 이렇게 한 것으로서, 일부러 열어 놓은 다음 다시 닫는다. 만약 신이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생존할 방법이 없다. 사람은 신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신을 공경하지도 않는다. 그럼 우리가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여러분 알다시피 산업오염이 가장 심한 곳은 바로 사람이 가장 많은 곳―대도시이다. 왜 대도시의 공중 오존층에는 구멍이 생기지 않는가? 신은 남극지역에 열어 놓는 것이 인류에게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폐기가 어느 지역에서 생기면 마땅히 그곳의 하늘에 구멍이 생겨야 하는데, 왜 이렇지 않은가? 그것은 사람이 상상하는 그런 일이 전혀 아니다. 중국의 그 청장고원(靑藏高原)에도 있는데 모두 인가(人煙)가 거의 없는 곳에 큰 구멍이 났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오존층에 그치지 않는데, 물질 중에는 그런 미시적인 물질 요소가 아주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 한 갈래 길을 내주어야만 비로소 그것을 방출시킬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신이 사람을 위해 한 것이다.

또 인류의 오염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 세계에 있는 담수(淡水)는 순수하고 깨끗한 것이 거의 없다. 지하수 또는 지상수(地上水)에 관계없이, 사람이 이 물을 어떻게 여과하고, 정화해도 모두 진정한 물의 순도(純淨度)에 도달하지 못한다. 게다가 또 인류는 물을 반복해서 쓰고 있는데, 쓰면 쓸수록 오염된다. 왜냐하면, 인류의 물, 그것은 순환하는 것이고, 담수는 순환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담수는 바닷물과 섞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같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떠한 물질, 어떠한 물건에도 생명은 존재한다. 당신이 볼 때 그것은 표면상으로 물이지만, 저쪽의 그것에는 생명이 있다. 토지·물·공기 등등은 오염이 심하면 심할수록 인류에게 위해를 더 크게 끼친다. 오늘날 인류사회의 발전은 지난번 인류사회 발전의 반복으로서, 지난번은 이번을 위한 실험이었다. 계속 이렇게 발전해 내려간다면 사람은 모두 기형(畸形)이 될 것이다. 산업폐기물, 폐수로 인하여 사람은 모두 기형이고, 몹시 추악한 모습으로 자라,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것이 될 것인데, 더 발전해 내려간다면 곧 이러할 것이며, 또한 도덕상의 부패한 요소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악을 저지르게 할 것이다.

여기까지 말한 김에 나는 또 한 가지 문제를 말하겠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 이 과학은 외계인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서양의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 그것이 들어왔다. 그것은 수학·화학에서 시작하여, 가장 초기의 얕은 지식에서부터 현대의 기기(機器)에 이르기까지 관통했고 마지막으로는 오늘날의 컴퓨터에까지 발전했다. 더 발전해 내려가면 그것의 최종적인 목적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떻게 대체하는가? 내가 말했듯이, 지금 인류의 신체 속에는 사람마다 거의 모두 외계인이 만들어준, 한 층의 신체가 있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이 당신에게 주입해 준 그 모든 과학이, 당신의 사상 속에서 변이(變異)된 인류의 사상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어느 한 시기 문명에도 이런 사람은 없었다. 이 사상(思想)이 있다면 곧 이 신체가 있게 마련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당신 신체 속의 매 세포는 모두 당신이다. 당신의 대뇌는 매 세포 속의 대뇌와 연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당신 신체의 무수한 세포 속의 사유(思維)는 전부 변이된 사람의 사상(思想)인바, 전반 신체가 전부 이러하다. 신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데는 또 이런 원인이 그 속에 있다. 사람이 이미 사람이 아닌데, 신이 그것을 제도해서는 또 뭘 하겠는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람이 죽었다고 그가 정말로 죽은 것이 아니다. 가장 큰 한 층 분자 입자의 외각(外殼)이 탈락하였을 뿐, 분자 이하의 그 미시적인 입자로 조성된 신체 그 한 부분은 절대 죽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옷을 한 겹 벗는 것처럼, 분리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정말로 죽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공간의 이 사람만은 오히려 소실되었다. 왜냐하면, 신체를 화장하거나 혹은 매장하게 마련이므로 신체는 조만간 썩어 해체되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그것이 없어졌다. 즉 이 한 층의 입자가 소실되었다. 그럼 내가 방금 말하고자 하는 그 외계 문화, 그것은 사람 자신의 사상을 이용하여 몰래 그것들이 가지려 하는 이 한 층의 신체를 만들고 있다. 그러면 그것은 최종적으로 어떻게 사람을 대체하는가? 여러분 알다시피 이 사람의 가장 표면인 겉껍질은 그것이 또 방법을 찾아 대체해야 하는데, 바로 오늘날 인류가 취하려고 하는 ‘클론’이라는 방법이다. 신은 사람을 책임지고 있다. 만약 신이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사람에게 생명의 요소를 주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 이 사람이 세상에 살고 있음은 당신의 이 육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며, 당신 어머니가 당신의 이 육신을 당신에게 주었다고 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당신에게 당신의 元神(왠선)과, 당신의 모든 기타 신(神)의 존재가 있어 당신으로 하여금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이 죽은 다음 여기에 놓아두어도 역시 이 신체인데, 왜 그것이 살지 못하는가? 바로 모든 元神(왠선)이 다 떠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이 태어날 때 만약 그에게 신(神)을 주지 않고, 그에게 모태에 들어가지 못 하게 한다면 그는 태어나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하는가? 외계인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것이 사람을 대체하는 최종적인 방법인데, 바로 복제인간이다. 사람은 외계인에게 이용당하여 자신을 훼멸하고 있지만,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이 과학을 수호하면서 인류를 훼멸하고 있다. 장래에 복제인간이 나오고 복제인간이 무리로 나오면, 인체의 태(胎)는 모두 외계인이 들어가게 되어 나중에는 사람이 없어진다. 물론, 내가 오늘 말해 줄 수 있음은, 이런 문제 역시 모두 해결하는 중이고, 나아가 많은 일이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말하는 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일부 진상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지구의 구성 역시 우리 인류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다. 무슨 대폭발 이론에 의해 이 별을 형성했다고 하는데, 전혀 그런 일이 아니다.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지금 이 과학의 물질기초에 대한 인식, 생명기초에 대한 인식, 우주에 대한 인식은 전부 잘못된 것이다. 신이 이 지구를 만들었다. 어떻게 만든 것인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지구는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각 종교 중에서도 모두 겁난 문제를 말한다. 만약 이 지구 자체에 겁난이 일어나고 이 인류가 좋지 않게 되어 훼멸되면, 이 지구에서 훼멸되면, 이것은 대겁(大劫)이다. 또 이것보다 더욱 큰 겁(劫)이 있다. 바로 이 지구 전체를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육도윤회 하며 전생(轉生) 중에서 업력을 지니고 가기 때문이다. 나쁜 짓은 하면 할수록 업력은 더욱더 커지는데, 그가 식물로 전생 된다면 그 식물마저도 업력으로 덮이게 된다. 사람 눈으로는 볼 수 없는데, 업력은 가장 큰 한 층 분자 공간보다 아래에 존재한다. 그러면 사람은 식물·물질·동물로 전생 되고, 윤회 중에서 또 흙·돌로도 전생 될 수 있으므로 곳곳이 모두 업력을 갖게 된다. 그럼 그 지구는 무엇인가? 바로 하나의 업력덩어리다. 내가 말하는 그 썩은 사과의 뜻이 바로 이 이치이다. 이처럼 썩은 것을, 성결(聖潔)한 우주 중에 남겨두어 무얼 하겠는가? 버리자! 정말로 버릴 수 있다.

부처가 사람에게 자비하다는 이것은 지구와 가까이 있는 부처를 가리킨 것으로서, 그는 자비를 말한다. 극히 높은 층차의 신(神)에게 있어 자비란 무엇인가? 그는 자비마저도 집착임을 발견한다. 그가 자비한가, 자비하지 않은가? 그 역시 자비하다. 하지만 그의 자비의 경지·개념은 같지 않다. 바로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사유마저도 같지 않다. 그의 자비는 그와 가장 가까이 있는 중생에 대한 것으로서, 그는 그 아주 낮은 신마저도 속인과 마찬가지로 본다. 그럼 사람이 다 무엇이겠는가? 미생물, 세균보다도 못하다. 사람이 길을 걷자면 세균을 밟아 죽일 수 있는데, 누가 그것을 살생이라고 여기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좋지 않은 것은, 그 대변과 같은, 똥 덩어리 같은 것은 내던져버리게 마련이다. 어디 무슨 자비하고, 자비하지 않은 개념이 있겠는가? 전혀 없다. 사람 자신이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길 뿐, 더욱 높은 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방대한 우주는, 생명이 존재하는 방식과 인식이 같지 않음으로써 경지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내가 당신들에게 그렇게 크고 그렇게 높은 경지를 말해 줄 때 당신들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큰 우주 층차 또한 단지 넓고 넓은 천체 중의 한 알의 먼지에 불과한데, 그 지구가 다 무엇이고, 사람이 다 무엇이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바로 사람 스스로 대단하다고 보며 아주 위대하다고 여길 뿐이다. 이 지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새롭게 바뀐 것으로서 바로 이런 상황이다.

방대한 우주의 역사에서 이 지구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런데 어떻게 바뀌었는가? 지구의 가장 표면은 이 한 층의 물질로 구성된 것이고, 이 공간의 분자가 조성한 물질로 구성되었기에, 그렇다면 곧 이 공간의 물질로 만들어야 한다. 우주 중에 있는 이 공간의 각기 다른 천체는 모두 갱신하는 중이고, 모두 신진대사의 상태에 있다. 일정 범위의 천체가 해체된 후의 먼지나 찌꺼기를, 우주 중의 방대한 신은 이런 것을 수집 분류한 다음 새로운 지구를 만들어낸다. 지금의 과학자는 역사연구를 하고 지리연구를 하면서, 어느 물질은 지구에서 생긴 지가 얼마가 되었고, 지구는 얼마만 한 역사가 있다고 말하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전혀 알아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물질은 지구로 형성되기 이전부터 그것은 아주 큰 한 덩이의 돌이었고, 대단히 큰 한 덩이의 천체였으며, 여기로 가져와 지구로 만들기 전부터 그것은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지구가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가졌는지 전혀 연구해 낼 수 없다. 많은 일이, 말하고 들으면, 마치 신화(神話)와도 같다. 나는 나의 수련하는 사람에게 설법해 주며 여러분이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한다. 왜냐하면, 법은 속인에게 말해 주는 것이 아니며 속인 사회에 말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금 물을 말하면서 바다를 언급했다. 사실 그 바다는 무엇인가? 바다(海)와 물(水)의 개념은 전혀 같은 일이 아니다. 단지 담수(淡水), 그것만이 물이고, 바닷물 그것은 사람이 물이라고 부를 뿐, 사실 그것은 다른 일종의 물질이다. 물은 생명을 창조하는 요소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구는 우주 중에서, 아주 작은 층차 중에서 본다면 그것은 먼지 한 알과 같다. 그렇지만, 방대한 신, 그의 체적은 무척 크다. 만약 그가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면 지구를 잠기게 할 수 있다. 사실 그 바닷물은 바로 신의 한 방울 눈물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듣기에 마치 신화를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당신들이 한번 화학 실험을 해보라. 그 바닷물과 사람의 눈물 성분이 같은가 같지 않은가? 똑같은 것이다. 만약 당신의 눈물을 바닷물처럼 큰 체적으로 확대했을 때 당신이 보라. 그 속에 어떤 생물이 있는지? 그 속에 한 마리의 고래가 있을지도 모른다. 듣기에는 마치 농담 같지만, 사실은 진실한 것이다. 지상의 모든 물질과 인류의 기원에 대해 나는 모두 똑똑히 말할 수 있지만, 당신들의 수련에 관련되지 않으므로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 사실 지구의 일체는 모두 그것의 내원(來源)이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그 황토(黃土)는 무엇인가? 사실 바로 속인의 공간보다 높은 그 한 층 생명의 대소변이다. 그래서 예전에 신은 말하지 않았는가. 사람은 더러운 세계 속에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 뜻이다. 고층차에 있는 생명, 그의 물질은 순수하고 깨끗하기 때문에 그의 대소변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깨끗한 것이다. 인류보다 낮은 것을 사람은 더럽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것이 인류보다 높은 것이라면 사람은 그것을 깨끗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인류 공간보다 높으면 또 양분이 없다. 더럽지 않은 것은 양분이 없으므로 황토에 무엇을 심으면 잘 자라지 않는다. 흑토(黑土)는 썩은 식물이 그 속에 섞여 있기 때문에 식물이 자랄 수 있다. 썩은 식물은 황토를 흑색으로 변하게 하여 양분과 유기물이 그 속에 있게끔 하고 인류는 그것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다. 사람보다 높은 것은 식물로서는 영양(營養)이 없다.

사실 많은 종류의 돌과 흙은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지구를 만들 때 아주 단단하게 눌러놓은 그것이 바로 돌이고 느슨하게 놔둔 그것이 바로 흙이다. 그러나 완전히 이런 것은 아니다. 그 홍토(紅土)와 홍석(紅石), 그것은 사실 방대한 생명의 피(血)다. 우리 이 자리에 앉은 적지 않은 사람은 물리를 연구하고, 화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믿기지 않으면 당신은 가서 화학실험을 하고 연구해 보라. 틀림없이 그것 속에 함유된 성분과 피는 같은 것이다. 단지 응고된 시간이 긴 피일 뿐이다. 홍토 속에는 철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사람의 이 혈액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럼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주 중에서 붉은색의 피는 일반적으로 모두 바른 생명의 피다. 마(魔)의 피는 백색이다. 그러므로 석회암, 그것은 사실 마의 피다. 물론 그것은 죽은 물질로서 이 공간에서는 이미 작용을 하지 못한다. 폭발되거나, 소각되어 돌·모래·흙 이러한 것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에는 마성이 없다. 그러기에 인류는 그것으로 벽을 칠하고 염료로 쓰는데, 이것은 모두 상관없다.

지금의 과학자들은, 석탄은 방대한 식물로 조성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현재 과학이 알 수 있다. 어디에 그렇게 많은 식물이 있어서 이렇게 많은 석탄으로 변했는가? 이것은 그들이 모르는 것이다. 지금 과학자들은 석유가 생물신체의 잔해로 구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있다. 어디에 그렇게 많은 잔해가 있어 이렇게 많은 석유로 변했는가? 이것은 그로서는 알 수 없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어떤 사람은 이 이론을 뒤엎으려고 한다. 동물의 잔해는 어떻게 되어 이렇게 많은가? 어디에 그렇게 많은 생물이 있었나? 이 석유는 그야말로 너무나도 많다. 사실 방대한 우주에는 긴긴 세월 동안 한 차례씩 한 차례씩 생명이 있었다. 게다가 이 지구를 만들 때, 특별히 우주 중의 이런 유(類)의 것도 새로운 지구로 가져와 장래의 에너지원으로 삼도록 했다. 그래서 그것이 그렇게 많아진 것인데, 그것은 이 한 차례 생명의 것만이 아니다. 지구의 생명도 한 차례 한 차례로 된 것이지 한 시기의 것이 아니다. 지금의 과학연구, 그것은 현존의 역사를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존 역사에 대한 과학의 인식 또한 많이 잘못되어 있다. 그것은 생각하기를 석기시대에서 지금의 인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물을 다 죽인다 해도 그렇게 많은 석유가 될 수 없지 않으냐고 한다. 또한, 그렇게 많은 석탄이며, 식물이며, 그것은 이 한 차례의 것이 아니며 그것은 같은 시기 생명의 것이 아니다. 물론 또 많고도 많은 것이 있지만, 말하자면 너무나 많다.

다이아몬드도 있고 또 금, 은 등등 이러한 것이 있다. 물론 또 일부 금속원소는 우주의 부동한 층차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다. 그런 것은 내가 말한 지구의 구성 성분과는 또 구별된다. 하지만 그 금과 은, 그것은 우주 중의 금속원소가 아니다. 금(金)을 말하면, 여러분이 알고 있다시피 그 불체(佛體)는 금이다. 무릇 여래 이 경지에 도달한 신의 신체는 모두 금이다. 다시 말해서 그 금은 바로 방대한 바른 생명의 신체 잔해다. 한 광대한 우주가 해체될 때, 일체가 모두 순간에 분쇄될 것이다. 나는 또 금은 부동한 층차가 있고, 입자 대소가 같지 않음을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예전에 이 문제를 말했다. 은(銀)이란 바로 부처보다 낮은 층차, 보살, 이 층차 생명의 신체 잔해다.

많은 사람이 다이아몬드가 일종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악한 것 그것은 다이아몬드를 아주 두려워한다. 즉 에너지가 아주 작은 부(負)적인 것은 다이아몬드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다이아몬드는 그것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다이아몬드로 액 막이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액 막이를 꼭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이아몬드는 폭발하여 부서진 에너지로서 마치 공(功)과 같은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이미 죽은 것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필경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힘이 있다.

내가 말한 이러한 것에 대해 당신들은 어떤 집착심을 일으켜 집에 돌아가 다이아몬드를 사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말한 것은 법이다. 이 공간의 어떤 것이든 모두 갖고 갈 수 없으며 동시에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소용이 없다. 왜 폭발시켰는가? 마치 내가 말한 것처럼 비록 그것이 금이라 하지만, 그것은 순금이 아니므로 비로소 폭발시켰다. 이 공(功)을 왜 폭발시켰는가? 그것이 이미 불순(不純)해졌기 때문이다. 당신이 보기에 표면으로는 그것이 아주 깨끗하지만, 미시적인 데서, 극히 미시적인 데서 관찰하면 그것은 이미 불순해져 있다. 나는 오늘 더 말하지 않겠다. 다음으로 수련생의 발언을 듣고자 한다.

내일 여러분이 쪽지를 건네주면 문제에 해답해 주겠다. 하지만 새로 입문한 수련생은 가능하면 쪽지를 건네지 말라. 시간이 아주 소중하기 때문인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두 문제를 제기한다면 해답할 수 없다. 우리 이 자리에 앉은 많은 사람이 모두 수련하여 이미 일정한 층차로 들어간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그들의 수련 제고에 아주 중요한 것으로서 이는 우리 이번 법회의 목적이다. 그러나 새로 입문한 수련생이 제기하는 문제는 나에게 물을 필요가 없으며, 노(老)수련생이나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문의해도 해답해 줄 수 있는 것이므로, 당신은 이 시간을 점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한 가지 문제이다. 또 하나는 여러분은 수련과 상관없는 일, 즉 지식에 대한 연구와 토론 등등 이러한 문제는 되도록 적게 제출하라. 당신은 방금 내가 당신들에게 말해준 것에 대해 오해하지 말라. 이것은 당신의 무슨 지식을 풍부하게 해주기 위해 한 것이 아니며 그것이 당신들의 수련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 나는 이만큼 말하겠다. (박수) 다음으로 여러분은 앉아서 편안한 마음으로 수련생들의 발언을 듣도록 하라. 나도 가지 않고 들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나를 찾지 말라. 나를 찾고자 해도 찾지 못할 것이다. (박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제 그 회의를 시작하면서 나는 여러분을 만나 일부 문제를 말했다. 나는 이번 회의는 주로 미국 서부지역을 위한 심득교류회이기 때문에, 전 미국 혹은 더욱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대형회의로 개최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왜냐하면, 그들 자체에 일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내가 왔기 때문이다. 어제 상황을 보면 또 다른 나라에서 온 수련생이 있고, 다른 지역의 수련생과 현지의 일부 신수련생, 또 우리에 대해 흥미는 있지만, 아직 수련생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오늘 모두 왔는데, 아마 모두 대법을 알고자 해서일 것이다. 기왕 여러분이 온 김에 나는 여러분에게 대법의 일부 문제에 대해 해답해 주고자 하는데, 이 또한 법회 중의 설법이다. 다음으로 여러분의 문제에 해답해 주겠다. (박수)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련하는 사람이 만약 내심 깊은 곳에서 아직도 자신의 가장 본질적인 이익을 고수(固守)한다면 그것은 가짜 수련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수련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인데, 이것이 진짜 수련이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지금 법률이 있고 또 사람에 대한 일부 요구와 제약이 있지만, 모두 사람을 개변시키지 못한다. 예컨대 표면상으로는 당신을 개변시킬 수 있고 제약할 수 있으므로, 당신은 표면상 착오를 범하지 않고 좀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보이지 않는 상황, 당신의 이익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당신은 여전히 원래와 같이 좋지 않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마음이 개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말해서 수련은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진정하게 개변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높은 경지, 그 신(神)의 경지 중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신의 그 사상 경지에 가 닿아야 한다. 만약 단지 당신의 표면만 개변되고, 본질은 개변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가짜이다. 일정한 시기에 이르고, 관건적인 시기가 되면 그것이 또 반응되어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을 개변하지 않으면 단지 덮어 감춘 일종 가상(假相)에 불과할 뿐이다. 반드시 본질적인 변화가 발생해야만 비로소 진정하게 자신을 개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수련은 자신을 책임져야 하며 당신은 진정하게 자신을 개변하고 당신의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당신이 집착하는 좋지 못한 것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정말로 내려놓은 것이다. 당신이 표면상으로는 그럴듯하게 하지만, 당신 심령의 깊은 곳에는, 당신이 아직도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지키고 있고, 고수(固守)하고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안 된다. 여러분 알다시피 불(佛)·신(神), 그는 중생을 위해, 우주의 이익을 위해 그의 생명을 포기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모두 포기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탄연(坦然) 하며 움직임이 없다. 그럼 만약 당신을 그 위치에 갖다 놓는다면 당신이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가? 도달할 수 없다. 물론 내가 말한다면 그 불(佛)·도(道)는 정말로 이런 일에 부딪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지가 있다. 반드시 진정하게 자신을 개변해야만 비로소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예전에 종교 중에서 많은 사람이 오로지 당신이 종교를 믿기만 하면 당신은 하늘로 갈 수 있고 천국으로 갈 수 있으며, 오로지 당신이 종교를 믿기만 하면 당신은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무엇을 성불이라고 하는가? 무엇을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하는가? 층차마다 생명에 대한 요구는 다 같지 않다. 마치 당신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과 같이 당신이 1학년이라면 당신은 1학년의 수준이 있어야 하고, 당신이 2학년이라면 2학년의 수준이 있어야 하며, 중학교에 이르러서는 중학교 수준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늘 초등학교 교과서를 갖고, 그 1학년의 수준으로 당신이 대학에 들어간다면, 당신은 여전히 초등학생이다. 그래서 당신은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 뜻을 말한다. 이것은 표면에서부터 말한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당신이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하게 이 표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천국에 갈 수 있고, 비로소 원만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종교를 믿는데 기도할 때 아주 경건하게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다. 그러나 그는 문만 나서면 여전히 마찬가지로 같은 잘못을 범하는데, 그의 기도는 소용이 없고, 그의 마음은 또한 진정으로 개변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믿고, 내가 기도를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늘 하는 기도가 늘 그 수준이라면, 당신은 영원히 천국에 가지 못한다. 예수가 말한, “너희가 나를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당신이 나 여기에 와서 기도하고 마음속에서부터 나를 믿는, 이런 형식을 따르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이 말이 아니다. 당신이 매번 기도를 거쳐, 당신이 더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고 더욱더 잘하며, 더욱더 예수 천국의 요구에 근접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천국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래야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예수가 그처럼 많은 말을 했겠는가? 목적은 당신들로 하여금 그가 한 말에 따라 더욱 잘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닌가? 내 말은 바로 이 뜻이다. 지금 종교는 이 불교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모두 내심에서 수련하지 않고 모두 형식에 치우치는데, 이것은 다 가짜다. 이 문제는 이만큼 말하겠다.

제자: 사람의 元神(왠선)이 신체를 떠나 얼마만 한 시간 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육신이 죽게 됩니까?

사부: 사람의 元神(왠선)이 신체를 떠나 얼마만 한 시간 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죽는지, 이것은 정확한 시간이 없다. 이렇게 말하자. 당신의 의념(意念) 중에서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하자. 당신의 이 의념이 나오기만 하면 그 육신은 아마 죽어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돌아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대법 중에는 없다. 대법을 수련하면서 또 한편으로 다른 것을 수련한다면, 전일(專一)함에 도달할 수 없고, 진정하게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도달할 수 없는데, 그러면 그는 이러한 위험이 있을 것이다. 진정하게 수련하지 않고 두 척의 배에 발을 디딘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에게 어떤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제자: 제가 처음 뉴욕설법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 울음이 터지는 것을 참지 못하면서 마음속으로 사부님 하고 외쳤습니다. 자신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부: 이는 인연 때문이다. 나는 다른 한 문제를 말하겠다. 우리 많은 사람이 대법 학습을 통해 이미 세상의 모든 종교가 더는 사람을 제도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첫째는 표준이 안 되며, 둘째는 신(神)이 사람을 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이 사람을 관리하지 않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 사람의 사상은 외계인이 만든 변이인(變異人)의 사상인데, 역사상 오늘날의 이와 같은 사람은 여태껏 있어 본 적이 없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 여러 차례에 걸쳐 부동한 시기의 인류가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매 한 차례 인류는 모두 오늘날의 인류처럼 이렇지 않았다. 예수·부처·신(神)은 사람이 난(難)을 만나게 되면 사람을 데리러 올 것이고, 와서 중생을 구도(救度)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눈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두 사람이 아니므로 그는 데려가지 않는다. 그가 데려가는 것은 아직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이것은 개괄적으로 말한 것일 뿐, 또 변이(變異)된 사람이 만들어진 많고도 많은 요인이 있다. 신은 그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데 이것이 가장 위험하다.

종교 중에서 정객이 되거나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가 어떻다고 말하지 말자. 나는 종교 중에서 아직 수련할 마음이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그런 일부 사람은 수련하는 일을 아주 중시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 이 대법을 알게 되었고, 또 다른 신은 그의 일정한 상태에서 그에게 알려주기를 오로지 그 法輪大法(파룬따파) 만이 당신을 제도하여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정보(信息)를 만나고, 이러한 일을 알게 되자, 그 또한 와서 대법을 배우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의 원래의 고유한 것을 꽉 붙잡고 놓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그의 원래의 것을 고수하려는 것으로서, 나의 대법을 이용해 다시 그로 되돌아가려는 데 있다. 내가 말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서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짓이다. 당신이 당신 원래의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전혀 제도 받을 수 없으며, 당신은 단지 자신을 속일 뿐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다른 공간의 그 시간 속에서, 사람 이 공간의 시간을 보면 그것은 대단히 느리다. 당신이 사상 중에서 어떤 문제를 생각하든지, 그 공간 중에서 보면 당신의 모든 것은 아주 느린 과정이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려고 하는지, 당신이 아직 생각해 내지도 않았는데,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려 하는지, 당신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아주 분명하게 보아 낸다. 사람은 자신의 사상 중에서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른다고 여기는데, 단지 속인을 속일 수 있을 뿐 신은 속이지 못한다. 그럼 다시 말해서 당신이 자신을 책임지는 순정(純淨)한 사상으로 이렇게 엄숙한 문제를 대하지 않으면 당신은 제도 받을 수 없으며 당신은 되돌아갈 수 없다. 나의 대법 중에는 예전에 석가모니 제자였던 사람이 많이 있으며, 또 다른 불문(佛門)의 제자도 있고 다른 종교 중의 제자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들 이 자리에 앉은 이런 수련생들이, 보기에 백인이고, 황인종이며 혹은 다른 종족이지만, 당신은 꼭 이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어느 천국에서 왔는지 모른다. 당신이 어느 한 민족으로 전생(轉生) 되었다고 해서 그 민족이 당신의 본래 면목인 것은 아니다. 표면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또 사람은 전생 중에서 어느 민족으로든 다 전생 되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들 모두를 원만에 이르게 하여 당신 원래의 진정한 위치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나는 당신들을 모두 法輪世界(파룬쓰제)로 제도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불법(佛法)의 기점에서 우주의 법을 말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렇게 큰 법을 말했다. 우주 중의 어떠한 법문 혹은 수련이든지 지상에 남겨놓은 수련형식은 모두 부동(不同)한 층차의 그 천상(天上)의 신이 남겨놓은 것이다. (이는 진정한 신이 사람에게 남겨준 수련방법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부동한 층차에서 사람을 제도하는 이러한 신 역시 우주 중의 부동한 층차의 생명으로서 내가 보기에는 모두 우주의 부동한 층차의 중생이다. 그럼 이 우주 대법, 그는 부동한 층차의 중생들에게 그들이 생존하는 환경과 그들의 그 경지 중에서 생존하는 표준을 창립해 주었다. 곧 이렇게 큰 법(法)이므로, 일체 생명이 모두 이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이 대법으로 당신들을 제도하여 돌아가게 할 수 있다. 당신이 그 어느 한 문(門)에 속하든 모두 해줄 수 있다. 이는 역사상 어느 종교, 어느 법문의 수련형식도 모두 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그들 자신의 한 문의 것을 수련하고 다른 법문의 것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주 이 대법(大法)에서 자신의 그 한 층의 것을 증오(證悟)해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내가 전하는 것은 우주의 대법(大法)이다. 이것은 이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련방법과 같지 않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대법을 존중하지 않고 당신이 여전히 다른 어떤 것을 고수한다면 이것은 엄숙한 문제이다.

제자: 우주 층차와 수련 층차는 같은 것입니까?

사부: 나는 방금 대법이 우주의 부동한 층차의 생명에 부동한 생존환경을 창립해 주었음을 말했다. 다시 말해서 부동한 생존환경 중에는 그들에 대한 대법의 부동한 요구와 표준이 있다. 그러므로 수련 중에서 당신이 부동한 층차로 가려고 한다면 반드시 부동한 층차에서 대법의 요구에 부합해야만 한다. 그럼 이 수련의 제고, 경지의 제고, 끊임없는 승화는 바로 층차의 돌파이자 우주 층차의 돌파이다. 당신이 오늘 수련 중에서 제1층천(層天)의 표준에 도달했고 며칠이 지나 당신의 수련이 제2층천(層天)의 표준에 도달했다면 이것이 바로 우주 층차이자 또한 수련 층차의 돌파이다. 당신이 더 수련하여 삼계(三界)를 돌파하고 삼계 밖으로 벗어났다면 곧 육도(六道)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더 위로 수련하면 더욱 큰 천체의 범위로 들어간다. 위로 수련할수록 수련 층차의 표준은 더 높거나 혹은 그것이 표현되어 나오는 상태가 더 많다.

제자: 과거의 일체는 이미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일체는 중생의 기억 속에 여전히 존재하거나 혹은 이미 심각한 교훈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당신의 이 문제는 대단히 크게 제기하였다. 어떤 사람은 알고 어떤 사람은 모를 것이다. 왜 내가 우주의 대법을 전하는가? 우주의 모든 부동한 층차의 생명 그들이 모두 대법에서 빗나갔기 때문에 법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그것의 가장 좋은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여러분이 모두 알다시피 많은 예언가가 모모 년에 대겁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겁난이 있는 것만 알고 있는데, 왜 나타나게 되는가? 왜냐하면, 인류가 이런 정도로 부패하였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 사회적으로 이 무슨 마피아요·동성애요·마약 흡입이요·성 해방이요·성 문란이요 하는 것들이 그야말로 난잡하기 그지없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사람 같지도 않으며, 이런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오염되고 마비되어 사람 같지 않다. 모두 이 큰 염색 항아리(大染缸) 속에 잠겨 있으며, 당신의 관념까지도 모르는 사이에 부합하여 따라가고 있으며 갈수록 사람과 멀어지고 있다. 사람의 이런 부패가 나타나게 된 것은 우연하지 않다. 신은 왜 상관하지 않는가? 그는 왜 그것이 이런 정도까지 부패하도록 하는가? 왜냐하면, 부동한 층차의 생명이 우주의 근본적인 법에서 모두 빗나갔기 때문이다. 한 층차 중에서 빗나갔다면 부동한 층차에서 그것의 빗나감을 볼 수 있다. 한 생명이 좋지 않게 되었다면 그를 내리쳐 떨어뜨린다. 만약 전반 우주가 모두 긴긴 세월 속에서 빗나감이 생겼다면 그중의 생명은 그것의 부패를 보아내지 못한다. 마치 인류가 오늘날의 인류가 이미 이런 정도로 부패한 것을 모르고 있는 것과 같다. 오로지 우리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만이 일정한 층차 중에서 되돌아보면 볼 수 있는데, 대단히 두려운바, 인류는 이미 오늘날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일체를 모두 원시(原始)의 가장 좋은 상태로 되돌아가게 하고 우주 겁난이 출현하지 않게 하려 한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겁난이 나타나지 않게 하려 한다. 현재는 이미 변화 중이다. 인류 중 많은 사람이 모두 좋게 변하였고, 지금 1억이나 되는 사람이 대법을 수련하면서 사람마다 모두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러면 이 세계상의 사람, 더욱 많은 사람이 이렇게 할 것이므로, 사람의 마음이 향상되고 도덕이 다시 상승할 것인데, 그 겁난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절대 나타날 수 없다! 자연현상이란 없으며 일체는 모두 배치된 것이다. 이른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신을 믿지 않을 뿐이며 알지 못하는 것을 자연적이라고 말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것을 자연이라고 말할 따름이다. 자연이란 전혀 없으며 층마다 신이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층층 생명의 표준마저 빗나간다면, 이는 마치 그 사람이 총을 쏘는 것과 같다. 당신이 겨눌 때 조금만 빗나가도 그 총알은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위에서는 조금만 빗나가도 이 법이 아래로 내려오면 얼마나 크게 빗나가는지 알 수가 없다. 인류에게서 표현되고 있는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인류의 부패한 정도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원시의 상태로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이 일을 할 적에, 아마 어떤 사람은 부동한 층차 중에서 왔을 것인데, 그가 되돌아가게 되면 본래 생존했던 공간 환경이 이미 그렇지 않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대체로 여전히 본래의 그 형식이고, 여전히 그 세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완전히 변하여 당신이 거기에서 생겨날 때보다도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중생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 중생이 법에서 빗나간 다음에야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역시 우주의 첫 시작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모른다.

깊은 교훈을 남겼다는 데 대해 말한다면, 원만을 이룬 각자에게는 무슨 교훈이라고 할 것이 없다. 당신이 일단 그 높은 경지 중으로 수련되면 모두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우주 중에서 일어난 적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다만 이럴 따름이다. 인류는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 많은 사람이 다 수련하고 있는데 수련의 목적은 원만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만약 당신들 많은 제자가 다 원만에 이르고 나면, 그럼 좋지 않은 사람, 또 법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 남게 되는데, 그럼 이런 사람들이 여전히 계속해서 부패해 내려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절대 그로 하여금 더는 이처럼 썩어 내려가게 할 수 없다! 우주 중에다 절대로 한 무더기 똥을 놓아둔 채 중생과 고급 생명으로 하여금 그 냄새를 맡게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물론 나는 겁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무슨 예전의 사람이 말한 그런 겁난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모모 년의 그런 겁난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예언가도 만약 모모 년에 어떤 일이 나타난다면 그들의 예언은 맞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바로 오늘날 대법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처럼 많은 사람의 마음이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에게 정말로 그러한 문제가 나타난다면 이런 좋은 사람을 어떻게 하겠는가? 바로 이 문제이다. 하지만 남겨져서 다음 한 기원(紀元)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최후 시각의 그 심각한 교훈을 기억할 것이다.

제자: 저희 많은 사람이 과학을 연구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사부: 대법을 배우는 많은 사람이 고급 지식인이다. 다시 말해서 많은 사람이 과학이 양성한 것이다. 사실 현재의 모든 사람은, 학교에 다녔다면 곧 과학이 양성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과학은 이미 인류사회의 각 분야를 관통하고 있고 당신이 사용하는 일체, 접촉하는 일체, 당신의 눈으로 본 일체는 모두 다 이 과학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날 수 있다면 방금 당신이 제기한 이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사회는 모두 이러하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일을 잘하면 된다.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일과는 별개의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 수련 중의 경지, 당신의 수련상태는 일 중에서 체현될 것이며 더욱 잘할 것이므로, 당신을 어디에 갖다 놓아도 모두 좋은 사람이다. 많은 사람이 과학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는 대법을 배운 후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진리이고 인류의 현재 과학은 대법과 전혀 비길 방법이 없음을 발견한다. 이 자리에 앉은 대법제자들, 당신들이 알고 있는 우주의 상황과 진리는 지금의 인류 과학을 훨씬 넘어섰다. 최첨단의 것도 당신들과는 비할 수 없다. 인류보다 높은 것은 속인으로 하여금 영원히 알지 못 하게 한다. 속인은 내가 당신들에게 말해 준 이 우주의 상황을 영원히 탐구(探測)해 내지 못한다. 당신이 어떤 사업에 종사하든지 당신은 모두 대법을 수련할 수 있다. 법에 대한 당신의 이해가 점차 깊어지면, 당신 자신의 사상은 자연히 전변(轉變)이 생길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진리 앞에서 다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문제를 똑똑히 말해야겠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모두 속인의 집착을 하고서는 원만에 이를 수 없다. 과학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들이 각기 다른 속인의 마음을 갖고 입문할 수는 있지만, 수련 중에서 모두 제거해 버려야 한다.

제자: 속인의 개성은 단지 이 일세(一世)의 표현입니까? 얼마나 많은 성분이, 법이 생명을 만들 때의 경지에 관련됩니까?

사부: 만약 한 사람의 생명이 고층차에서 왔다면 그는 자기의 고층차 중의 그 특성을 아주 강하게 갖고 올 수 있는데 속인은 이 점을 간파해 내기가 몹시 어렵다. 당신의 그 절대다수 모든 행위 그것은 모두 속인의 것이고, 모두 이 일세(一世)의 표현으로서, 이 일세 중에서 당신의 생명, 물질, 객관세계에 대한 인식으로 조성된 당신의 행동 방식, 태도와 사상 방법이다. 하지만 당신 본래의 선천적인 것은 아주 선(善)한 상황에서만이 어슴푸레하게 표현되어 나올 수 있다. 당신이 속인의 일에 아주 집착할 때, 화를 낼 때, 부정확한 것을 생각할 때는 선천적인 것이 조금도 나타날 수 없다.

수련 중에서 표준에 도달한 그 한 부분을 말하자면, 당신이 원만에 이르기 전 속인 중에서 더욱 많이 표현하기란 몹시 어렵다.

제자: 부처는 홍대(洪大)한 자비(慈悲)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 또 사람을 제도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런 능력이 수련과정 중에서도 체현됩니까?

사부: 우리 여러분이 법을 배움에 정말로 이러한 집착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신으로서, 인류사회를 벗어난 생명이라면, 설령 삼계(三界) 내의 낮은 층의 생명일지라도 모두 사람을 좌우지 할 능력이 있다. 삼계 외의 모든 부처, 보살은 모두 사람을 제도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마치 사람의 어떤 행위는 선천적으로 갖고 온 것과도 같다. 그가 신이므로 이런 능력이 있다. 이것은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무슨 수련과정 중에서 어떤 체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마음속으로 그러한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수련성취 한 다음 누구를 제도하겠다든가, 우리 집의 사람들을 제도하겠다든가, 내 친지와 친구들을 제도하겠다든가, 중생을 제도하겠다든가 하는 것은,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고 그것은 집착이며 강대한 장애로서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 성취하지 못 하게 할 수 있다. 일체 관념을 내려놓고 일체 집착을 내려놓아야만 당신은 비로소 당신 수련의 길에서 어떠한 가로막힘도 없이 전진할 수 있다.

종교 중에서 어떤 사람은 ‘내가 수련 성취한 다음 나는 사람을 제도하러 오겠다.’고 맹세한다. 사실 이것은 그의 과시심이고 속인 중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심리의 일종 속인의 표현으로서 부처가 어떤 상태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당신에게 이 마음이 있으면 당신은 수련 성취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사람을 제도하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부처가 사람을 제도하고 사람을 제도하지 않는 그것은 일종 자연 상태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천백 년 이래 얼마나 많은 부처가 내려와서 사람을 제도했는가? 서양에는 예수가 나타났고 동양에는 석가모니가 나타났다. 왜 이처럼 긴 시간에 단지 이 두 사람만이 내려왔는가? 왜냐하면, 어느 한 부처가 세상에 내려와서 사람을 제도하려고 하면 반드시 하늘의 뭇 신들의 동의를 거쳐야만 비로소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직면하고, 접촉하는 문제는 보편성을 띤 것으로서, 다른 부처요, 신이요, 심지어는 도(道)의 일에까지 관련되어 무척 복잡하여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머리가 뜨거워지고 집착심이 올라와서 당신도 사람을 제도하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고, 과시심이며,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이 작용한 것이다.

제자: 저는 『전법륜』 중에서 깨달은 법리가 사부님의 설법 중에서 깨달은 것보다 많지 않다고 느낍니다.

사부: 『전법륜』은 체계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원만을 이루게 할 수 있는 대법이자 천기(天機)이다. 그러나 나의 설법은 『전법륜』과 유사한, 내가 공개적으로 발행한 지난(濟南)설법, 다롄(大連)설법과 광저우(廣州)설법 비디오테이프를 제외한 외에, 다른 각 지역의 설법은 다만 단일하게 부동한 경지의 것이거나 또는 부동한 수련생의 상황에 대해 말한 것으로서 보편성을 띠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집착심을 품고 이것을 얻으려 하고 저것을 구하고자 하면서 마치 오로지 이렇게 해야만 유감없이 수련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긴다. 모두 집착이다. 당신들이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만약 역사적으로 이 한 차례 대법을 전하는 것을 배치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생각해 보라. 인류의 발전, 그것은 또 다른 배치가 있겠는가? 당신들은 자신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지 말라. 기회와 인연을 잃기만 한다면……. 만약 오늘날 나의 이 대법이 당신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더는 당신을 제도할 수 없으며, 제도하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아직 모른다. 내가 그해 이 대법을 전할 때, 내가 가장 걱정한 것이 무엇인가? 인류의 학설이 너무나 많으므로, 사람은 종교 중에서 말한 것을 포함하여 모두 믿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부처를 믿는가? 종교 중의 많은 사람, 그들이 수호하는 것은 교(敎)이지, 참답게 수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부처를 포함)에 대한 신성한 그런 마음이 아직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가? 책을 보도록 하라! 왜냐하면, 내가 그 해에 이 문제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내가 마주하는 사람이 매우 많아 장래에 내가 매 사람에게 직접 맞대고 어떻게 수련하라고 지도할 수 없으며 일일이 지도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게 하고, 원만에 이를 수 있게 하고, 당신을 책임지기 위해 나는 여러분에게 『전법륜』을 남겨놓았다. 『전법륜』을 통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원만을 이루게 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모두 이 법 속에 압축해 넣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법을 보면 당신의 신체가 변화하고 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당신은 부동한 층차의 법리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으며 당신은 대법 중에서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은 그야말로 참으로 진귀하다. 내가 몸소 한 설법이든 또는 당신들이 더 구체적인 설법이라 생각하든 나는 모두 『전법륜』 속의 것을 말하고 있다. 『전법륜』의 모든 것이 또 『논어(論語)』에 포함되어 있다.

제자: 불학회(佛學會)로 하여금 일부 제자들을 조직하여 사부님께서 해외에서 설법하신 책을 번역하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는 대단히 좋으며, 할 수 있다. 수련생을 조직하는 데 대해 말한다면 다만 여러분이 이러한 일을 하려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우리 이러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들 현지의 책임자와 분명히 말해야 하며 잘 소통해야 한다. 이래야만 연구회(硏究會)가 당신들과 연락하고, 심사하는 데도 편리하다.

제자: 대법 소개 자료 중에 사부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자료는 버려질 수 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사부: 중국 이외 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있으면, 나는 지금은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뿐이다. 중국 국내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대법을 이미 사람마다 거의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이러한 일을 더 할 필요가 없다. 수련하고 안 하고는 그 자신의 문제이다. 그럼 국외의 많은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대법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아직 모르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 자료 속에서 말한 나의 말에 대해서는, 만약 그의 배후 요소, 배후의 내포가 없다면 그것은 단지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므로 여러분은 이 점에 안심하도록 하라. 그러나 당신 자신은 대법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며 매 한 글자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당신 자신은 엄숙하게 이러한 것을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제자: 어떤 수련생이 자신의 혼인을 이용하여 남에게 법을 배우게 하려고 하는데 사부님의 법신께서 어떻게 배치하십니까?

사부: 내가 이 일을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의 생활과 수련을 한데로 섞지 말라. 또한, 당신의 일과 수련을 한데로 섞지 말라. 수련은 몹시 엄숙한 것이고 대법은 몹시 엄숙한 것이다. 꼭 누가 얻어야 한다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얻지 않는다면 그만이다. 물론 수련생의 마음은 좋다. ‘내가 나의 혼인이란 대가로 당신에게 법을 얻게 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 마음이 대단히 좋은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당신도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법은 엄숙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에게 주는 대가는, 그로 말하면 구함에서 법을 얻게 하는 것인데, 그와 결혼해야만 그가 비로소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인데 그에 대해 말한다면 이것은 안 된다. 우선 그가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꼭 대법을 얻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부님, 사부님의 이 법은 마땅히 이렇게 말씀하셔야 하며, 부처가 사람을 제도함에 왜 그렇게 제도하지 않습니까?”라고 한다. 당신은 부처가 배불리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꼭 당신을 제도하려 한다고 여기는가? 부처는 사람에게 자비하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신이다! 그러나 자비 역시 절대 사람이 상상하는 인간적인 그런 자비가 아니다. 사람이 말하는, 관념 중에서 상상하는 자비는 다만 일종의 선(善)일 뿐이다. 부처는 선하다. 이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런 자비는 위대한 불법(佛法)의 힘의 체현이다. 당신이 아무리 좋지 않고, 아무리 나쁘더라도 마치 강철과 같은 것이라도 불법의 자비한 위력 앞에서는 모두 녹아버린다. 그러므로 마(魔)는 보기만 하면 두려워한다. 그것은 정말로 두려워한다. 그것이 녹아버릴 수 있고 없어질 수 있는데, 절대 사람이 상상하는 것과 같지 않다.

제자: 眞(쩐)·善(싼) 경지의 아름다움은 쉽사리 느낄 수 있지만, 忍(런) 중에는 오로지 고통만 있는 것입니까?

사부: 이것은 당신의 속인 사상의 이해이다. 마치 내가 말한 그 이치처럼 당신이 한 가지 일에 집착하여 목적에 도달하지 못할 때 화가 나서 야단이지만, 당신은 체면을 따지며, 체면 때문에 당신은 또 감히 나타내지 못한다.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속인의 참음(忍)이지 수련자의 참음이 전혀 아니다. 당신은 완전히 잘못 이해하였다. 우리의 참음은 전혀 집착이 없고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여러분이 가지려는 것은 이러한 참음이며 이것이야말로 표준에 도달한 참음이다. 이러한 것들 앞에서 당신의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당신이 잘 참는, 실제로 마음조차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이것이야말로 수련의 참음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처음 법을 얻었을 때 막 『전법륜』을 보고는, “아하, 이 眞(쩐)·善(싼)은 내가 할 수 있겠다.”라고 한다. 사실 당신은 眞(쩐)·善(싼)도 하지 못한다. 당신은 다만 사람의 이미 부패한 표준으로 당신 자신을 가늠할 뿐이다.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 중으로 들어가면 당신은 당신의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당신의 층차를 제고할 때 당신은 이전에 부동한 층차에서 眞(쩐)·善(싼)·忍(런)에 대한 당신의 인식이 모두 높지 않았음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의 수련 층차가 더욱 높아질수록 眞(쩐)·善(싼)·忍(런)은 부동한 층차 중에서 모두 부동한 체현, 부동한 요구와 부동한 상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경지이고 그것이 바로 과위이다. 참음은 아름다운 경지를 가져올 수 있다. 다만 이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당신들은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임에도 고집을 피우면서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한다. 당신은 완전히 남에게 정서가 통제되어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살고 있다. 당신은 사는 것이 몹시 고달프지만, 각성하지 않고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고 있다. 당신이 정말로 한 걸음 물러설 수 있을 때, 당신이 그것을 포기하면, ‘청산을 남겨놓았거니 땔감이 없을까 걱정하랴.’라는 것이 되는데, 비록 이것은 속인이 한 말이지만, 당신이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다면 당신은 가없이 넓은 세상임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포기하면 경지는 즉시 변한다. 이 상태하에서 당신은 전신이 홀가분할 것인데 이것이 참음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법 공부를 더욱 많이 하여 이보다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것을 요구한다.

제자: 수련하는 사람과 속인의 경계선을 어떤 때는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사부: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오로지 수련하고 끊임없이 정진할 때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명백해질 것이다. 당신은 수련 중이기에 단번에 모든 마음을 다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 바로 내가 말한 그 한 마디 말이다. 수련 중의 경지는 일체 환경 중에서 체현될 것이다. 당신의 사업 중에서, 생활 중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남들은 모두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이 수련하는 상태가 당신의 일체 생활 중에 체현되기 때문이다. 일부러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며 일부러 하는 그것은 모두 억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자신을 단속해야 하며 일종 상화(祥和)한 심태(心態)를 유지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이것을 집착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마성(魔性)을 억제하고 선의 표준에 도달하며, 끊임없이 경지 중의 요구 표준을 높이기 위해 채용한 방법이지, 이것은 집착이 아니다.

제자: 이성(理性)적으로 법을 인식한다면 직접 속인의 관념을 제거할 수 있으며 이렇게 수련함이 빠릅니다.

사부: 당신들이 법을 인식할 때 모두 초기의 그런 인식단계가 있다. 많은 사람은 『전법륜』을 보고 모두 좋다고 말하고 정말 좋다고 한다. 어떻게 좋은가? 만약 당신이 정말 그에게 물어본다면 아직 똑똑히 말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일종 감성적인 인식이고 느낌이 좋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가 좋은가? 당신이 착실한 수련으로 들어가야만 당신은 비로소 그가 진정하게 좋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면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데로 향상된 셈이다. 그럼 만약 우리가 생활 중에서 당신의 일체 행위가 모두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고 법에 대한 이해도 사람의 사상, 관념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주 이지적이고 이성적으로 대법을 인식한 것이며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다.

제자: 수련한 것으로 속인 중의 것을 갚아도 됩니까?

사부: 안 된다.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다. 수련한 것은 가치로 매길 수 없다. 사부가 당신의 원만을 위하여 한 것인데 당신은 오히려 이처럼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 그것은 당신이 수련한 것만이 아니다. 그중에는 사부가 당신을 위해 감당하고, 당신을 위해 한 것이 있다. 생각마저도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으로서 이런 이치가 없다.

제자: 반 개오된 제자는 다른 공간의 법리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이것을 탐구하지 말라. 우리 한 무리 수련생들, 특히 법을 일찍 얻은 초기의 많은 수련생이 이미 그 상태로 들어갔으며 그는 무엇이든 다 알고 있고 무엇이든 다 보고 있으며 무엇이든 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층차에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그 역시 말하지 않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나 다 알고 있다. 다만 그의 신통, 그의 능력을 운용할 수 없는데 당신들이 모두 수련 중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신통을 다 운용한다면 지구도 받아내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이 아주 많다.

제자: 어떤 사람은 불법수련에 대한 신심(信心)이 지대하여 속인의 그런 방식으로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싫어합니다.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리의 수련 중에서 이런 상태가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일단 법을 얻었으니 나는 이것을 하지 않고 저것을 하지 않으며 일도 하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표현으로는 마치 당신이 법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고 수련을 유일하게 큰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한 면에서 본다면 당신은 진정하게 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은 최대한 속인에 부합하여 수련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모두 내가 말한 이 말을 중시하지 못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는 1억이나 되는 사람이 수련하고 있는데 장래에 더욱 많아진다면? 사람마다 모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럼 사회상의 사람들이 대법을 어떻게 보겠는가? 이는 대법에 먹칠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 높은 경지 중의 상태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내가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말한 것은 보편성을 띤 문제다. 우리가 그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으면서 당신이 인위적으로 어떻게 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맞지 않다. 당신이 평소에 어떤 문제에 부닥쳐 당신이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을 말한다면, 그것은 당신 수련 중의 일이므로 나는 구체적인 문제를 당신에게 해답해 주지 않겠다. 당신이 어떻게 대하며 당신이 어떻게 제고하는가 하는 그것은 자신의 문제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法輪(파룬)을 얻으면 절반 성취한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일부 수련생은 절반 수련되었다는 것을 이미 절반 성공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부: 수련의 일인데 왜 오늘날 중국 사람은 이러한 사유가 있을 수 있는가? 바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당신들의 사유방식을 만들어 당신들로 하여금 이러한 사상사유로 법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수련해야 하므로 당신들에게 『전법륜』을 주었고 당신들에게 法輪(파룬)을 넣어 주었다. 사부는 큰 法輪(파룬)으로 당신의 일체를 순결하게 하는데 정말로 당신 수련 중에서 절반의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아직 이런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대법 자체는 그의 위력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수련으로 하여금 더욱 빠르게 한다. 사부가 나에게 法輪(파룬)을 넣어주었기 때문에 나는 절반 성공했고, 오늘 수련하지 않아도 나는 절반 성공했다고 하는 이런 개념이 아니다.

제자: 사부님께서 어느 한 번 네댓 명의 고층 대각자, 대도(大道)와 함께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이러한 말씀을 하셨는지 저는 잘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사부: 이는 당신 사람의 사상 중에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법은 당신이 마음속으로 내키는 대로 말할 수 없다! 잘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당신 마음속에 집착하는 장애가 크다는 것을 설명한다. 당신은 일부러 글귀를 파고들 필요가 없다. 당신이 매 한마디 말, 매 한 줄의 글에 대하여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일부러 파고든다면 그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나는 여태껏 『전법륜』을 볼 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볼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당신이 마땅히 그 한 층을 깨달아야 할 때면 불도신(佛道神)이 단번에 당신에게 점화해 주므로 당신은 즉시 이 말의 뜻을 알게 된다. 당신이 깨닫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당신에게 점화해 주지 않으므로 당신 자신이 아무리 파고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당신이 나는 꼭 그 글 속에서부터 그처럼 높은 경지의 그 이치를 알고자 한다면 당신은 곧 억지이다. 수련은 자신이 하나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 자신이 무슨 방법을 다 써도 당신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데 바로 이 뜻이다. 『전법륜』 중의 몇 편을 어떤 사람은 보지 않으려고 하고 오로지 心性(씬씽)을 말한 그 한 부분만 보려고 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말한 것이 비록 당신이 보기에는 어떤 곳은 공능을 말했거나 혹은 다른 것을 말했을지라도 모두 부동한 이치가 그 속에 관통되어 있으며 그 속에 부동한 수련에 도달하는 요구 상태가 관통되어 있으므로 당신은 모두 연관적으로 보아야 한다. 당신이 매번 볼 때마다 한 편 한 글자라도 빠뜨릴 수 없으며 반드시 이렇게 보아야 한다. 그의 배열순서는 사람의 수련에 대해 모두 극히 엄밀한 작용이 있다.

내가 이 단락 법을 말함에 결코 함부로 말한 것이 아니며 또한 당신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준 것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내가 여러분에게 그 경지 중에서 고요해진 상태가 어떤 모양인가를 알려주고 내가 그들과 연결된 느낌을 알려준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속인 중의 일을 해야 하고 속인의 신체가 있으며 당신들을 제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의 고요한 상태가 나의 경지에 와서도 꼭 고요한 것은 아니다. 만약 당신들이라면, 아주 평범한 사람이 그들과 연결된다면 당신의 사상은 단번에 즉시 무엇이든 다 사라지게 되며 모든 속인의 사상이 모조리 사라질 것이다. 그의 사상은 바로 이렇게 큰 위력이 있다. 당신은 아마 일순간에 아주 높은 경지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당신이 수련한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아주 깊은 내포가 있는 것으로서 사람의 생각으로 법을 가늠하지 말라.

제자: 우주 중의 두 가지, 아주 미시적인 물질과 眞(쩐)·善(싼)·忍(런)의 특성은 어떤 구별이 있습니까? 왜 아래로 내려갈수록 두 가지 물질은 더욱 대립합니까?

사부: 사실 당신들 인간의 사상으로 이러한 것을 묻는 것은 정말로 불경(不敬)하다. 만약 당신들도 신과 같다면 이러한 문제를 절대 감히 물어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우주 대법이 생명에 창립해 준 것이며 이 두 가지 물질 역시 대법이 양성한 것으로서 나는 단지 당신에게 이렇게 알려줄 뿐이다. 한 환경 속에서 한 생명의 생활은 마땅히 다채로워야 한다. 사람을 말해 보자. 만약 사람이 사람의 취미가 없다면 사람은 산다는 것이 무료하고 재미가 없을 텐데 바로 이 감각일 것이다. 그럼 어쨌든 생명으로 하여금 재미있게 살도록 해야 하는바 대법은 부동한 층차의 생명에 번영한 사회를 창립해 줄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이 으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아주 간단하게 두 가지 물질 그것의 존재가 상생상극과 음양을 조성한 것을 말했고, 음양과 상생상극의 내원(來源)을 말하게 되어 이 두 가지 물질을 말했다. 그러나 우주 중에는 복잡한 요소가 매우 많다. 당신들의 현재 수련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면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골라가면서 개괄적으로 당신으로 하여금 법리를 깨닫게 하고, 제고되어 올라올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당신이 너무 많이 알게 되면 늘 이 사상에서 맴돌면서 당신들의 수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제자: 많은 수련생이 주말이면 한 연공장에 가서 수련합니다. 각각의 공원으로 분산해서 연공하는 것이 홍법에 더 유리하지 않습니까?

사부: 이는 모두 당신들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일이다. 당신들은 여러 사람이 함께 연공하면 사람이 많으므로 마당이 크다고 여길 텐데 아마 영향이 클 것이다. 남들이 보고, ‘야, 法輪功(파룬궁)을 연마(煉)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에너지가 이렇게 강하구나! 우리도 따라서 연마하자.’고 할 것이다. 그럼 어떤 사람은 또 생각할 것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알고 있으나 다른 곳의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갈라서 다른 곳에 가자. 다른 곳의 사람들도 법을 얻게 하자.’고 할 것이다. 이는 모두 당신들 자신의 구체적인 일이다. 어떻게 하려고 생각하든지 당신들 자신이 하라. 이러한 일을 내가 당신들에게 규정해 줄 수 없다. 부동한 지역, 부동한 상황, 또한 당신들의 법에 대한 부동한 층차의 인식 상태, 이것도 모두 당신들 자신 수련의 일부분이다. 어떻게 할 것인지 당신들이 연구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도록 하라.

제자: 어떤 사람은 홍법이란 바로 연공과 대법 책이 있으면 되지 대형 단체 연공 혹은 설법 비디오를 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가 하는 이러한 일은 당신들의 일이다. 이는 당신들의 수련과 마찬가지 일이다.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비디오를 보고, 단체로 법 공부하고, 단체로 연공하는 것과 우리가 오늘 열고 있는 이런 법회, 이것은 내가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대법 수련의 유일한 형식이다. 나머지는 모두 느슨하다. 당신들이 오거나 말거나를 포함하여 당신의 이름을 지적하며 당신에게 오라고 할 사람도 없다. 모두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온 것이다. 수련이란 곧 자신의 그 마음에 근거해야 한다. 당신이 올 생각이 없고 당신이 수련하고 싶지 않다면 당신 자신이 편한 대로 하라.

제자: 백인 수련생은 지역사회 봉사에 아주 열중하면서 이것을 자비의 표현, 좋은 사람이 되는 행위로 여깁니다.

사부: 이는 다만 속인의 그런 사랑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도 사람이 매 상태 중에서 모두 좋은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법 공부나, 수련보다 더 중요한 자리에 놓는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나는 말한다. 어떤 일에 집착하든지 모두 집착일 것이다. 그러나 바꿔 말해서 당신이 어떠한 환경에서도 다 잘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또 수련인의 표준에 미달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법 속에서 끊임없이 정진할 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제자: 겨울에 줄곧 밖에서 연공하는 것을 견지한다면 그런 소업방법은 결가부좌에서 소업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런 설이 없다. 자신이 자신에게 곤란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려 하고, 고생을 겪지 않고, 좀 간단하게 고생을 겪는 수련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이것은 안 된다. 그러나 내 생각에 수련이란 곧바로 제고이므로 늘 한 상태에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리를 틀기 두려워하는 것 역시 한 가지 마음이 아닌가?

제자: 설령 副意識(푸이스)가 각자(覺者)로 수련성취 했다 하더라도 主意識(주이스)는 아마 여전히 육도(六道)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마치 그들은 같지 않은 개체 같은데요?

사부: 이 문제를 나는 이미 아주 똑똑하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당신에 대해 말한다면 당신의 主意識(주이스)와 副意識(푸이스)는 모두 당신이다. 당신은 어느 하나도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모두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을 따라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며 모두 당신의 대뇌를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서 모두 당신이다. 그러나 사람의 진정한 주재(主宰)는 당신이 진정하게 가장 청성(淸醒)할 때, 당신의 모든 의식은 당신의 主元神(주왠선)이 지배하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副元神(푸왠선)이 수련원만을 이뤄도 당신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당신과 같고 생김새도 같으며 수련 성취하면 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당신은 마찬가지로 여전히 육도에 들어가야 한다. 만약 당신의 主意識(주이스)가 수련 성취했다면 당신 자신은 알 수 있다. 아, 내가 수련 성취하여 내가 원만에 이르렀구나. 하지만 副意識(푸이스) 그는 또 당신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당신이 수련하면 그도 따라서 수련하고 당신이 원만을 이루면 그도 당신을 따라서 원만을 이룬다. 바로 이런 관계다.

제자: 저는 이전에 약제사(藥劑師)였으며 일부 안마수법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무보수로 그들을 도와 계속 안마해 줄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이 여기에서 무보수로 안마하며 돈을 벌지 않음을 강조하는데 좋은 일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수련이란 아주 엄숙한 일이다. 나는 당신에게 끊임없이 당신의 신체를 정화해 주고 있으므로 당신은 더는 오염시킬 수 없다. 바로 이 뜻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피부, 육체적인 접촉은 서로 마당을 이루고 소통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 여러분이 단체로 연공하면 마당의 에너지가 대단히 큰가? 왜냐하면, 당신들의 모든 마당, 이처럼 좋은 마당이 다 함께 소통되기 때문인데, 곧 진보(進步)가 아주 빠르고 여러분은 아주 편안함을 느낀다. 그럼 속인 그는 수련하지 않으므로 그의 신체가 갖는 마당은 모두 업력이다. 그럼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많은 사람이 생각할 것이다. ‘아이고, 나는 식구들과 함께 있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수련인이므로 내가 이 문제를 당신에게 다 해결해 주었다. 그러므로 당신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고 또 일부러 무엇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일부러 무엇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일부러 무엇을 받아들이려는 것과 같다. 당신이 그에게 안마해줄 때 당신은 내가 그의 병을 낫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현대의 의료수단을 쓰지 않고 약으로 그에게 병을 봐주는 것이 아니며 당신은 당신의 신체로 그의 병을 봐주기 때문이다. 그럼 아마 당신은 오염되고 말 것인데, 바로 이 뜻이다. 우리 어떤 수련생이 생활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면, 한 안마사로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 또한 당신의 신체를 봉폐하여 당신의 생활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당신의 직업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다. 바로 이 뜻을 말할 따름이다. 침구(針灸)를 말한다면, 나는 의사이므로 남에게 약을 주고 침을 놓는다고 하면, 이것은 영향이 없으며 이것은 기술이다.

제자: 가족 중에 어떤 사람이 정신병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정신병에 걸린 적이 없는데, 그가 연공할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 가족 중의 어떤 사람이 정신병에 걸렸다고 당신도 반드시 정신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아주 이지적인 사람, 主意識(주이스)가 아주 강한 사람이 연공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만약 가족 중에 정신병 병력이 있다면 당신들은 주의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정신병이 있다면 연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정신병 환자는 흔히 그의 主意識(주이스)가 또렷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당신을 제도하지 않는다고 탓할 바가 못 된다. 나의 이 법은 主意識(주이스)에게 주는 것이며 이 사람을 제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 이 사람은 오히려 또렷하지 않은데 법을 누구에게 주겠는가? 당신이 정신병에 걸렸을 때에는 당신의 업력, 좋지 못한 사상, 외래의 생명인데, 우리가 그것에게 줄 수 있겠는가? 줄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이다. 그러므로 가족 중에 정신병 병력이 있는 사람은 연공함에서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자신이 자신을 파악할 수 없다고 느끼면 당신은 참가하지 말라.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당신이 연공장에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으며 또 법회에 와서 법을 듣지도 말라.

제자: 어린이가 열두 살인데 그는 매주 한 번씩 수련하고 저녁에 잠자기 전에 설법을 듣습니다. 그가 연공하고 법 공부하는 것이 정상적입니까?

사부: 어린이는 어린이의 상태가 있다. 만약 그가 법을 만났고 또 배우고 있고, 연공하고 있다면 사실 그도 수련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어린이와 어른에 대해 엄격한 구별이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그런 관념, 복잡한 사상으로 구성된 것이 없고 아주 간단하므로 법을 얻기만 하면 빠르다.

제자: 제 머릿속에서 좋지 못한 일을 생각할 때 다른 공간에서 좋지 못한 물질이 생길 수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은 되도록 좋지 못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수련하도록 하라. 생각했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상관하지 말고 또 두려워하지도 말라. 당신이 두려워하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집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되도록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책을 많이 보아 자신의 순정(純淨)한 심태(心態)를 유지하는 것이 비교적 좋다. 하지만 완전히 나쁜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해낼 수 없다. 오로지 당신이 원만에 이르기 전이라면 당신은 전혀 해내지 못한다. 그것이 어떤 것을 생기게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면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천상에서는 수련하는 사람, 당신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당신들은 신(神)으로서 원만에 이르면 장차 미래의 부동한 층차 중의 신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므로 일단 당신들이 속인을 초월하고 당신들 몸에 속인을 초월한 것을 갖고 있을 때면, 더욱이 정법 중에서 수련할 때면, 단지 내가 당신을 책임지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당신 신체 주위에는 정말로 천룡팔부(天龍八部)가 호법(護法)하고 있다. 다만 당신들 자신이 모를 뿐이다. 많은 사람이 연공만 하면 담이 커지는데 무엇 때문인가? 단지 당신들 자신의 요소뿐만이 아니라 당신들에게 알고 있는 그 한 면이 있기 때문에 담도 커진 것이다.

제자: 어려서부터 매우 부끄럼을 타는데 이는 아주 강한 집착심입니까?

사부: 사람으로서 염치가 없다면 그는 바로 몹시 나쁜 사람이라고 나는 말한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만약 당신이 이런 것을 집착한다면 당신은 곧 사람이다. 그러나 예전에 많은 사람이 연공한 후부터는 몸가짐도 제멋대로 하고 지저분하고 더럽게 했다. 만약 대법제자가 이렇다면 내가 말하건대 당신은 대법에 먹칠하고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어떠한 장소에서든 내가 당신들에게 설법할 때, 나는 상대적으로 말해서 내가 좀 더 단정하게 입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상 나는 당신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가 말하는 것을 배우고, 나의 생활방식을 배우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것에 아주 주의하며 당신들에게 좋지 않은 자세를 남겨놓을 수 없다. 당신들은 속인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좀 주의해야 한다.

나는 한 가지 상황을 보았다. 중국인은 겉모습을 너무 중시하지 않고 비교적 함부로 한다. 마치 내가 저번에 말한 농담처럼, 중국인은 내포를 아주 중시하고 머릿속에 풍부한 것이 있으며 온몸에 남이 못하는 재간이 있고 요리도 아주 맛있게 한다. 그러나 그의 겉모습은 지저분하고 더럽다. 하지만 백인은 어떠한가. 내가 당신들에게 농담하는 것으로 치자. 백인이 만든 것은 중국인이 만든 것보다 맛이 없다. 그러나 그 칼이며, 포크를 아주 가지런하게 놓고 어떤 것을 먹는 데는 어떤 식기를 쓰고 무엇을 마시는 데는 어떤 컵을 쓰는지를 따지면서 겉모양을 아주 중시하고 아주 예의가 바르다. 이것이 백인과 중국인의 차이점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만약 그것을 용합(容合)시켜 중국 사람은 교양을 좀 중시하고 백인에게는 내포가 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박수)

백인은 그들의 교양 있는 행동을 아주 중시하는데, 이것이 그들의 문화이다. 어떤 때 왜 백인이 당신들에게 화를 내는가? 어떤 사람은 까닭 없이 또 당신들에게 화를 낸다고 느낀다. 만약 당신이 그의 문화를 파괴한다면 설령 조그마한 일일지라도 그들은 정말로 대단히 화를 낸다. 많은 사람이 사소한 일에 주의하지 않는다. 예컨대 백화점에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뒤에 사람이 들어오는데도 상관하지 않고 “쾅” 닫아버리고는 당신은 가버린다. 만약 그가 백인이라면 그는 대단히 화를 낼 것이며 당신이 그의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는 이것을 작은 일로 여기지 않는다. 그에 대한 당신의 예의 없는 행동과 언행에 대해 그는 몹시 화를 낼 것이다. 당신들은 남의 사회에서 살고 있으므로 이러한 면에 좀 주의해야 한다.

제자: 저는 중국에서 온 수련생입니다. 이번에 사부님을 뵙게 되어 눈물을 한없이 흘렸고 언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부: 당신들이 보기에는 내가 미국에 있기 때문에 최근 이 반년 이래 여러분을 반복해서 만나므로 마치 아주 수월한 것 같다. 그러나 중국 대륙에는 그처럼 많은 수련생이 있지만, 나를 만나지 못하여 그들은 사부를 아주 그리워하고 있고 나도 그들을 염려하고 있다. 바로 이러하다.

제자: 각 공간에 모두 제가 존재한다는데 이 각 공간은 삼계(三界) 내에 있는 것입니까?

사부: 맞다. 삼계 내에 있다. 삼계 내의 공간 역시 아주 복잡한 것이다. 장래에 기회가 있으면 내가 당신들에게 물질의 구조를 더 말해주겠다. 그 복잡한 정도는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하다. 하지만 또 그것을 형용할 언어가 없고 그리자 해도 그려낼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때 내가 당신들에게 설법하면서 사람의 언어를 다 써도 우주의 위대함을 표현하기가 정말로 어렵다.

제자: 듣기로는 중국과학연구 부서에서 팬더를 복제한다고 합니다.

사부: 바로 클론, 그것을 말하는 것인가? 당신들은 이런 일을 상관하지 말라. 인류는 자신을 훼멸하고 있다. 그날 나는 인류가 이것을 복제하고 저것을 복제하는 것을 말했다. 일단 인류가 사람을 복제할 때면 바로 외계인을 받아들여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한다. 바로 사람이 신(神)의 일면의 존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인데 사람은 그래도 그의 이 무절제한 추구, 이 이른바 탐구란 용어가 듣기 좋다고 여기지만, 사실상 인류를 훼멸하고 있으며, 사람이 스스로 훼멸하고 있다.

제자: 불교계의 어떤 사람들은 대법이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공격합니다.

사부: 그것을 상관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말법 최후시기에 도달했다. 이런 문제에서 만약 우리가 그들의 방법을 취하여 그들이 대법을 공격한다고 해서 당신들도 자료를 배포하여 그들을 공격한다면 대법은 그들과 마찬가지가 되지 않는가? 우리 대법은 우주 대법이다. 당신은 그들이 파괴한다고만 보지 말라. 사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해 석가모니가 나타나자 브라만교 역시 이렇게 했다.

제자: 미시적인 부분에서 거시적인 부분을 향해 연화(演化)하는 이 과정은 本體(번티)가 전화되는 과정이 아닙니까?

사부: 이렇게 이해해도 괜찮다. 수련이 빠를수록 전화됨이 더욱 빠르다.

제자: 왜 우주의 일정한 범위 내의 다른 많고도 많은 공간에 그가 동시에 있습니까?

사부: 이 우주는 바로 이렇게 복잡한 구조이다. 당신이 태어날 때 많고도 많은 공간 중에도 당신이 모두 탄생한다. 생김새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하며 일하는 것도 대동소이하고 당신과 같은 이름을 부르고 동시에 출생(出生)하고 동시에 사망한다. 하지만 생활의 질(質量)에서 같지 않다.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방금 내가 말했다. 동시에 태어나고 동시에 죽는데 이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무슨 큰 연계가 없다. 내가 방금 말했다. 비록 동시에 태어난다고 하지만, 바로 그들이 모두 태어나지 않으면 당신이 태어나고자 해도 여전히 태어나지 못하며, 그들이 다 죽지 않았는데 당신이 죽으려고 해도 역시 몹시 어렵다. 그러므로 그 고혼야귀(孤魂野鬼)가 전생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 것은, 바로 모든 그가 다 죽지 않았는데 유독 그중 하나가 자살하여 기어코 죽으려고 한 것으로 죽은 것은 갈 곳이 없으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생명의 과정을 다 걸어야만 비로소 함께 그 귀속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元神(왠선)에 대해 말한다면 방금 나는 이미 말했다. 元神(왠선) 그것이 바로 당신이며 主元神(주왠선)이 바로 당신 자신인 것으로, 당신 사상의 내원(來源)이 바로 당신이다. 원영(元嬰)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수련 중에서 당신의 지혜와 법으로 생긴 불체(佛體)이다. 우리 이 법은 또 사람의 신체로 하여금 본질적인 개변이 발생하게 할 수 있으며, 이 신체 자체도 불체로 전화될 수 있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아마 당신이 득도할 때 장래에 많은 사람이 모두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 그렇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한 사람이 부처로 수련 성취했다면 그의 부모·형제 중 그의 부모를 말하자면, 이렇게 좋은 자식을 낳았는데 그들에게 복이 없겠는가? 틀림없이 있다. 이 복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를 어디로 배치해야 하는가? 틀림없이 그의 복의 크고 작음에 따라 할 것이다. 그가 원만을 이뤄 부처가 되었다고 부모가 수련하지 않고도 부처가 된다는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과 心性(씬씽)에 따라 정해지는데 업력의 대소도 아주 중요하다. 그럼 이 속에는 단지 부모, 형제뿐만이 아니며 또 무슨 그가 인간 세상에서 접촉한 많고 많은 사람과 생명 및 원연(怨緣)을 포함한다. 당신이 죽인 생명을, 당신이 부처로 성취되었는데 당신이 죽인 그러한 생명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은 그것을 제도해야 한다. 물론 이런 일은 당신이 원만을 이뤄 수련 성취되었을 때 사부가 모두 당신에게 해주는 것으로서 역시 당신이 제도한 것으로 친다. 왜냐하면, 당신의 세계로 제도해야 하기 때문인데, 바로 이렇게 당신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 그리고 또 이전에 당신으로 하여금 이득을 보게 한 아주 많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것도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바, 여러 방면의 이러한 요소들이 있다. 수련도 간단한 일이 아닌 만큼, 당신 자신이 많은 일, 그 여러 가지 인연관계를 풀지 못하므로, 이런 것도 다 사부가 해준다.

제자: 사부님께서 각지의 일부 수련생들을 접견하시게 되면 사람마다 모두 빠지려고 하지 않는데 집착이 아닙니까?

사부: 아마 오늘 이런 현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중국에서 법을 전할 때 수련생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아마 당신들도 들었을 것이다. 수련반 첫날 사람들은 모두 앞줄을 찾아 앉으며 사부님과 가까이 앉아야 에너지를 받는 것이 크다고 했다. 3일째 수련반이 결속될 때 앞으로 다가서는 사람이 더는 없었다. 여러분들은 모두 좋은 자리를 나이가 많은 분이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고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온 회의장은 상화(祥和)한 상태를 이루었다. 사람은 다 변화되는 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우리 오늘 많은 사람이 외지에서 왔거나 오랫동안 나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여러분이 앞으로 다가서서 사부를 똑똑히 보려고 하는 이 마음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이런 일을 백인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 총체적으로 이것도 모두 표면적이다.

제자: 노수련생들은 心性(씬씽)이 높고 공력이 갈수록 커지므로, 그들의 언행은 신수련생에 대해 영향이 대단히 큽니다. 신(新), 노(老) 수련생들은 마땅히 각자 어떻게 파악해야 합니까?

사부: 노수련생들 대부분은 수련을 아주 잘했다. 그러나 노수련생마다 다 그렇게 잘했다고 말할 수 없다. 나 또한 당신이 표준에 부족하므로 당신에게 연공하러 오지 말라고 말할 수 없다. 이렇게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많은 언행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법이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신수련생도 여러 차례 법 공부를 한 다음 역시 법으로 일체를 대조할 것이며, 당신이 노수련생이라도 어느 곳에서 잘못했는지 신수련생 역시 알 것이다. 사람은 사상이 있는 것이며 또한 법이 있는 것이라, 이러한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여러분도 모두 이렇게 지나왔다. 보도원으로서, 노수련생으로서 아마 이 문제를 걱정할 것이다. 출발점, 생각은 모두 좋다. 만약 당신들이 문제를 발견했다면 방법을 찾아 해결하도록 하고 되도록 여러분이 주의하도록 해야 한다. 때문에 노수련생으로서 확실히 신수련생 앞에서 당신들은 마땅히 자신을 좀 주의해야 한다.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가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대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는 정토(淨土)이다. 나는, 당신들이 모순에 부닥쳤을 때 자신의 내심에서 찾지 않고 마치 사회상의 직장처럼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제자: 수련하기 전 어느 날 저녁에 저는 몹시 추운 것을 느꼈으며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사부: 내가 말하는데 개인의 상태는 제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당신 한 사람만 해도 천만 가지, 억만 가지 상태로, 이렇게 많은데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해답해 주겠는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모두 좋은 일이다. 나는 어제 한 가지 문제를 말했다. 당신 자신의 감각이 좋든 나쁘든 사실 당신은 그 실질을 확실히 분간하지 못한다.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만, 알려주겠다. 당신은 그것을 모두 좋은 일로 간주하면 된다. (박수) 내가 여러분에게 예를 들겠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인류사회의 흙(土)이란 그것은 고층 생명의 대소변이다. 사람이 이처럼 더러운 환경 속에 있는데 마치 사람이 모두 똥통 속에 뛰어든 것과 같다. 모두 똥통 속에 있으면서 그래도 여기는 좀 편안해서 좋고, 저기는 불편해서 좋지 않다고 한다. 당신이 아직도 이런 것을 중시해서는 뭘 하겠는가? 당신은 빨리 수련하고 무엇에 부딪히든지 다 좋은 일로 여기라. 역시 정말로 좋은 일이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절대로 이런 감각이 없을 것이다. 불편한 감각을 포함해서 아무리 좋은 변화가 당신의 신체에서 반영되어 나와도 당신은 다 편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떠한 공과 에너지의 존재도 모두 전기가 있기 때문인데, 당신의 신체에 반응이 있을 것이다. 공은 그처럼 강한데 당신은 또 사람의 신체가 있는지라, 신체 속에서 움직인다면 몸은 물론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당신의 수련이 다 잘 되었을 때면 그런 감각이 없다. 어떤 사람은 공중으로 뜰 때 공중에서 어떤 상태가 나타나는데, 그것을 다 상관하지 말라. 모두 좋은 일이다. 두려워할수록 당신의 높이를 몇 번 꺾어놓는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잘못이기 때문이다.

제자: 자신을 위해서 존재한다면서 또 무사무아(無私無我)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이란 한 개체 생명이다. 당신이 무사무아(無私無我)해서 자신의 수련마저도 하려하지 않고 반본귀진(返本歸眞)마저도 다 없다면, 당신은 그야말로 정말 무아(無我)이다. 당신이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가? 그러면 당신의 수련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당신들은, 수련과정 중에서 자신을 갈수록 선(善)하게 수련하여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모두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는 정도로 선해진다면 무사(無私)한 생명으로 수련 성취된다. 수련 역시 당신 자신을 위한 것으로서 당신이 수련하여 원만에 이르는 동시에 당신은 또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이런 위대한 생명으로 수련 성취된다. 개체 생명은 영원히 존재해야 한다. 여러분이 수련하고 한다는 것이 최후에 자신의 개체마저도 없어진다면 이 어찌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되돌아 올라오려 하고, 원만을 이루려 한다면 상대적으로 당신이 치른 대가는 당신에게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므로 그것은 당신 자신이 대가를 치러 얻은 것이다. 더욱 높고, 더욱 아름다운 그 경지 중으로 되돌아가는 그것은 선을 향하고, 향상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무위(無爲)를 자기가 없게 되고 자아의 존재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사실 전혀 그런 일이 아니다. 우주는 층차가 있다. 엄격히 말해서 생명은 등급이 있다. 그것은 당신이 수련하여 증득한 과위와 위덕(威德)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제자: 다리가 뻣뻣한 것은 업력이 크기 때문에 조성된 것입니까?

사부: 이것을 나는 다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업력이 있기 때문에 다리가 아프고, 어떤 사람은 그가 이 다리를 여태껏 이렇게 구부려본 적이 없으므로 다리가 뻣뻣하다. 이것은 신체의 표면에서 오는 생리 상태이다. 하지만 업력이 크든지 생리 면의 요소이든지 모두 다리를 틀 수 있다. 아프지 않은 것을 말하자면 이런 경우는 아주 적다.

제자: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법을 얻은 사람의 숫자가 이미 1억이 넘는데 홍법이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중요합니까?

사부: 홍법을 당신은 그렇게도 하기가 싫은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수련 중에서 선(善)을 닦게 되는데 사람이 난(難) 중에 있는 것을 보면 그를 도와 법을 얻게 하려고 한다. 이것은 당신들이 수련 중에서 점차 갖춰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다른 무엇을 준다 해도 법을 주는 것만 못하다. 그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주고 그에게 주는 돈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에게는 역시 일세일시(一世一時)의 행복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에게 법을 준다면 곧 생명의 영원한 행복으로서 그 무엇이 법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박수) 그러므로 나는 법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주는 그 자체가 바로 홍법이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들은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배우지 않는데 당신들이 그에게 기어코 배우라고 한다면 이것은 안 된다. 당신들이 홍보했고 그로 하여금 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했으면 된다. 그가 수련하고 안 하고는 그 자신의 문제이다. 많은 사람이 수많은 홍법 일을 했고 오랜 시간을 사용했는데 절대 의의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당신이 지체한 시간은 모두 수련 중에서 당신에게 보충해 줄 것이다. 필경 당신은 대법을 위해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들이 앞으로 여전히 주의해야 할 점은 억지로 사람을 끌지 말아야 하며 당신들이 편리한 방식을 통해 그에게 알게 하면 된다. 알고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제자: 『명지(明智)』 경문 중에서 반드시 사상업과 정상적인 좋지 않은 염두를 똑똑히 분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 그렇다. 속인은 사상업의 교란을 똑똑히 분간하지 못한다. 수련인이 정진하지 않고 자기 사상의 근본적인 동기를 찾지 않는다면 역시 해내기가 어렵다. 왜 어떤 사람은 그의 그 사상업력이 장기적으로 없어지지 않는가? 바로 어느 것이 자신인지 똑똑히 분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당신에게 수련하라고 하는가? 우선 당신은 좋지 못한 사상 그것을 닦아 없애버려야 한다. 당신이 그런 좋지 못한 것을 제거할 수 있음은, 당신이 그것을 당신이라고 승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지극히 중요하다. 당신이 그것을 당신이라고 승인하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것을 없애버릴 수 있다. 사실 그것은 정말로 당신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후천적으로 일하면서 형성한 각종 관념이고 진일보로 형성된 업력,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그것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 사상은 총명하여 사회상에서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 그는 여러 면에서 모두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러한 후천적으로 생긴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고 또한 심지어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긴다. 사람이 무엇을 갖고자 하는 그것은 그 자신이 결정하는 것으로서 오로지 당신이 이것을 갖지 않으려고 해야만 당신에게서 제거해 줄 수 있다.

왜 정신병 환자는 제도하기가 어려운가? 바로 그가 확실하게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상업력을 뚜렷이 분간할 수 있고, 어느 사상은 내가 아님을 뚜렷이 분간할 수 있음은, 신수련생으로서는 몹시 어렵다. 해냈다면 정말로 대단하다. 대법으로 가늠하라. 사실 모든 좋지 않은 사상은 모두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이 점을 해낼 수 있다면 곧 뚜렷이 분간할 수 있다. 오, 이 사상은 좋지 않으니 마땅히 없애버려야 하고 제거해야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 자체가 바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은 나쁜 짓을 하는 그런 사람, 살인 방화하고, 심지어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당신은 그가 이렇게 하기를 원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이렇게 했다고 여기는가? 이는 그가 후천적으로 형성한 부정확한 관념이 갈수록 강하고 더욱더 강해져, 그의 그 관념이 이 사람을 반대로 주재했기 때문에 이 모양으로 변했다.

제자: 사람을 제도하는 각자는 통상적으로 여래인데, 어떻게 물질의 본원에서부터 수련자에게 공을 연화(演化)해 줍니까?

사부: 나는 여태껏 당신에게 이렇게 알려준 적이 없다. 나는 석가모니가 이렇게 했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여래법(如來法)과 우주 대법은 서로 비교할 방법이 없다. 일반적인 신(神)은 장래에도 이 점을 해내지 못하며 그것 역시 과거에 어느 신도 해내지 못했다. 과거에는 사람을 제도하는 법이 작았고 사람을 제도함에, 그는 다른 여래 혹은 더욱 높은 신의 도움을 빌려서 했다. 그도 하늘을 숭배하고, 더욱 높은 신을 공경하는 것으로서,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여래 부처가 제일 큰 것이 아니며 그런 것이 아니다. 법이 작으므로 사람을 제도함에, 한 생(生)에 이 사람을 제도하지 못하고, 몇 생(生) 동안을 제도해야만 비로소 제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법(大法)은 할 수 있다. (박수) 왜냐하면, 그는 우주 대법이며 일체 법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일체 법은 모두 수련하는 대각자(大覺者)가 우주 대법 중에서 증오(證悟)해 낸 것이다. 당신들이 이 관계를 똑똑히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제도하는 일체 각자(覺者) 혹은 하늘의 모든 여래·부처·신의 그들 자신 세계의 특성 또는 그들이 얻은 과위는 모두 그들이 우주 대법 중에서 증오(證悟)해 낸 것이다. (박수) 그들이 우주 대법 중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그들이 우주 대법을 아는 것을 아예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부동한 층차 중의 생명은 그 부동한 경지의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이해를 증오(證悟)할 수 있었고, 어떻게 이 표준에 도달할 것인가 하는 이것이 바로 그들이 증오(證悟)한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증오한 것을 ‘계(戒)·정(定)·혜(慧)’라고 부른다. 내가 이 문제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는가? (박수) 그들은 우주의 법에 따랐고 더욱 높은 신이 그들을 도와줌에 따른 것으로서, 그들 자신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

그 밖에 여래 부처라 해도 다 같지 않다. 석가모니 부처도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평범한 여래가 아니다. 그는 이 경지 중에서는 여래이지만, 사실 그는 또 더욱 미시적이고, 다른 부처가 모르는 상황이 있다. 그가 온 층차는 대단히 높다. 그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를 증오(證悟)했다. 과거에 당신들 어떤 사람은 경서 중에서 아마 이 용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층차는 이미 상당히 높은 것으로서, 일반 생명이 존재하는 천체(天體)를 훨씬 넘어섰다. 그는 대단히 높게 증오했다. 이는 곧 그가 온 곳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다만 여래 이 경지 중의 법력(法力)으로 사람을 제도했을 뿐이다.

제자: 인류사회가 변이(變異)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대부분 속인의 분자세포가 이미 외계인에 의해 개변되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사부: 사람이 말하는 생명과 인체 물질이 바로 이 신체를 구성한다. 사상의 변이(變異)는 사람의 행위와 생활방식을 개변할 수 있고, 생활방식은 또 사람 신체의 입자 성분을 개변할 수 있다. 만약 이런 변이가 수동적이고, 어떤 한 생물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람으로 말하면 너무나 두려운 것이다. 왜 사람은 후천적으로 관념을 형성할 수 있는가? 이 관념이 또 역으로 사람을 주재할 수 있는가? 만약 당신이 그것을 제거해 버리지 않으면 이 일생 중에서 그것은 당신의 일부분이 되며 심지어 당신을 주재하는 일부분이 된다. 다시 말해서 외계인이 지구인에게 강요한 이 한 세트의 문화는 당신의 사상 중에서 완전히 한 세트의 생활과 물질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형성되는데 이미 바로 이러하다. 그럼 그것에게 이것이 있다면 이런 신체로 발전될 수 있다. 이 자동차를 어떻게 운전하는가? 당신은 그것의 방식대로 사용해야 한다. 그 기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그것이 만들어낸 것을 당신이 어떻게 다루겠는가? 이 일련의 것이 사람의 일체 생활방식을 관통하여 이런 신체, 이런 사상, 이러한 것들을 형성한다. 지난번에 나는 컴퓨터를 조작하는 모든 사람은 외계인이 모두 그에게 번호를 달아주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제자들에게는 이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모두 깨끗이 제거해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이 외계인을 마지막으로 깨끗이 제거하는 중이다. 아직도 숨어있는 것이 있지만, 이미 보기가 아주 드물다. 예전에 그것들은 그 초물질(超物質)적인 공간 속에 숨어서 사람을 조종했다. 지난번에 내가 초물질을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속에 숨어 있기에 발견하기가 몹시 어렵다. 사람은 다만 현존하는 분자만이 가장 물질적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또 분자보다 더욱 물질적인 것이 있으며 외계인은 거기에 숨어서 사람을 조종했다. 우리는 그 공간을 이미 해결했으며 그곳을 모두 깨끗이 제거했다.

제자: 出世間法(추쓰젠파)는 바로 나한과위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왜 여전히 중생으로 됩니까?

사부: 당신은 법에 대해 아직 자세히 보지 않았고 자세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수련하고 있지만, 그가 수련 성취하지 못하고 다만 삼계 중에서 어느 한 층차에 도달했다면 바로 삼계 중의 어느 한 층차 중에서 생존하게 된다. 천상의 사람, 천인(天人)을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그 역시 신이다. 만약 이 사람이 삼계를 벗어났다면 첫 번째 과위에 도달한 것이 바로 나한이다. 또 한 가지 특수한 상황이 있다. 바로 이 사람 그가 수련하지 않았지만, 그도 아주 좋은 표준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그는 과위가 없고 그는 아마 이 부처와 인연이 있거나 당신들 이 자리에 앉은 어느 사람이 장래에 수련 성취될 부처와 인연이 있을 것인데, 아마 당신 세계 속의 중생, 바로 당신 세계 속의 백성이 될 것이다. 부처의 세계 속은 부처와 보살만이 아니고, 번영한 세계이다. 부처는 법왕(法王)이며 선(善)하다. 바로 이런 상황이다. 만약 당신이 사람의 사상으로 하늘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알아내지 못하며 당신의 온 머리에 다 이런 것들이라면 당신은 수련할 방법이 없다. 나는 당신들에게 그처럼 큰 천체(天體) 그것이 단지 한 알 먼지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 우주가 복잡하기란 그것을 형용할 방법이 없으며 말할 방법이 없다. 당신이 지상에서 본 백인·황인종·흑인 인종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그 천체 중에는 각종 인종이 아주 많으며 각양각색인데, 또 무늬가 있는 인종도 있다. 바로 이 우주는 굉장히 방대하고 복잡하다.

제자: 인류의 업력은 쌓일수록 더욱 많은데 왜 평균수명은 여전히 연장되고 있습니까?

사부: 여러분은 아마 지금의 사람 수명이 원래의 사람 수명보다 긴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대법이 널리 전해지지 않는가. 사람으로 이 일세(一世)에 왔다는 자체가 바로 그의 행운(造化)이다. (박수) 내가 제도하려는 것이 사람인바, 나는 틀림없이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같은 일세(一世)에 왔고, 이 대법을 만나기도 쉽지 않으므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수련하고 안 하고는 사람 자신의 문제이다. 대법이 아직 많은 지역으로 널리 전해지지 않았으므로 장래에 법을 들을 수 있게끔 또 그의 생명을 지탱하게 하는데, 그때에 가서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본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법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아주 중요하다. 내가 말한 뜻은 바로 당신들이 홍법할 때 사람에게 법을 알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그가 수련하고 하지 않고는 그 개인의 문제이다. 당신이 이 일세에 와서 불법(佛法)을 만나고 들었는데 당신이 상관하지 않고, 수련하지 않고, 배우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의 유감이다! 방금 당신이 질문한 문제는 바로 업력이 이처럼 큰데도 왜 생명이 여전히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연장되는가? 하는 문제인데, 바로 이런 까닭이다.

제자: 노수련생의 집에 여전히 사부님의 사진으로 개광한 관음 등의 상(像)이 있는데 맞습니까?

사부: 그들은 모두 위대한 신이기 때문에 이건 다 상관없다. 개광했고 당신이 모셔놓았다면 그만이다.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어느 한 문(門)을 수련하는지 알아야 한다. 당신이 누구를 공경하려고 하는지는 당신 자신이 마음속으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제자: 저희가 모두 스승님의 신체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것을 당신이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박수)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사람이 수련하는 중에서 당신의 신체는 모두 끊임없이 체적이 증가하고 있다. 사람이 이 공간으로 떨어져 내려왔으므로 되돌아가야 하며 수련해서 되돌아가야 하므로 신체는 개변되어야 한다. 가장 미시적인 데에서 시작하여 개변하는데 그는 반드시 우주의 미시적인 그 층차의 표준에 부합되어야 하며 가장 미시적인 데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그의 신체의 체적은 본래의 그 공간의 상태에 부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크게 변한다. 미시적일수록 체적이 더욱 크다. 수련하는 사람마다 모두 이런 변화가 있을 것인데, 속인은 당신의 변화를 보지 못하며 보지 못 하게 한다. 많은 수련생이, 사부님 몸 뒤의 신체는 층층이 헤아릴 수 없으며 사부님의 신체가 어찌하여 층층 층층, 한 층이 한 층에 비해 크고 어떤 것은 변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데 일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당신이 말해 보라. 지구를 포함하고 있는데, 당신은 지구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뜻이다. (박수)

제자: 저희는 主元神(주왠선) 수련인데 왜 한 기간 시간을 두고 주위의 일체가 모두 낯설고, 괴상하게 변합니까?

사부: 이 감각은 또 이런 상황이 있다. 만약 당신 사상의 어느 한 부분이 깨끗하게 씻겼거나 당신의 사유방식을 개변시켰다면 역시 이러한 상황을 가져올 것이다. 어쨌든 당신은 모두 당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당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문제가 없다.

제자: 『전법륜』에서 이미 아주 똑똑하게 말했기에 다른 사람과 심득을 토론하고 교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부: 그것 역시 당신 자신의 수련상태이다. 이것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다. 당신에게 잘못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매 사람은 모두 부동한 상태가 있게 마련이다. 신수련생도 끊임없이 들어오므로 당신들은 한 곳의 정토가 있어야 한다.

제자: 속인 속에 더욱 깊이 떨어졌지만, 되돌아 올라갈 수 있다면, 수련 성취된 후의 위덕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런 일이 아니다. 깊이 떨어질수록 더욱 희망이 없다. 만약 대법이 널리 전해지지 않았다면 그럼 곧 끝장이다.

제자: 사부가 제자에게 소업(消業)해 주는 이런 일이 왜 종교수련 중에는 모두 그리 명확하지 않습니까?

사부: 무엇 때문이 아니다. 왜 예수가 말한 것과 석가모니가 말한 것이 같지 않은가? 왜 사람마다 모두 같아야 하는가? 석가모니는 소업 문제를 말한 적이 있으며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현대불교 중에서도 소업을 말한다. 석가모니는 49년 설법 중에서 아주 많은 것을 말했지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계승되지 않았다. 후세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맞는 것만 골라 보았다. 마치 어떤 수련생이 법을 골라 보면서 이 한 편이 좋다고 느끼면 나는 이 한 편만 보겠다는 것과 같다. 그가 이것을 이해하면 그는 곧 계승하고 그가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그는 곧 계승하지 않았다. 석가모니가 그 해에 법을 전할 때 문자가 없었고 500년 후에야 비로소 석가모니가 한 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500년 동안 구전(口傳)되어 오면서 얼마나 많은 잘못이 있었겠는가?! 불교 중에서도 소업을 말하는데 당신이 모를 뿐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사람을 대신하여 속죄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제자: ‘동수(同修)’라는 단어는 일부 수련생들이 다른 수련생을 호칭할 때 늘 쓰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 단어를 언급하지도 않으셨으므로 저는 타당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불교 중에서는 이렇게 부릅니다.

사부: 이는 세인(世人)들이 부르는 용어로서, 불교 중에서만 단독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전문용어도 아니다. 사실 그것들의 전문용어는 전혀 동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역시 나중 이 몇 년간에 사람들이 이런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로 말한다면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지 괜찮다. 대법은 표면 형식상에서 이런 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어 수련한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묻기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합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어떻게 불러도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일부 독특한 용어를 다 규정해 낸다면 남들은 정말로 우리를 종교라고 여길 것이다. 우리는 속인들의 이 방면의 형식과 좀 어울리는 것이 비교적 좋겠다.

제자: 사람 자신이 자신을 봉폐했다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사부: 이 문제는 대단히 넓다. 인류는 각 방면에서 모두 이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내가 가장 간단한 예를 들겠다. 예를 들어 지금의 이 법률에 대해 말해 보자. 여러분이 알다시피 고대에는 법률이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 모두 비교적 선량했기 때문에 당신은 그처럼 많은 법률로 그를 규범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아주 잘했다. 지금은 인심이 모두 안 되며 모두 좋지 않게 변했기 때문에 그처럼 많은 법률을 제정하여 사람을 단속하고 있는데, 마치 동물을 관리하는 것처럼 사람을 단속하고 있다. 그것은 무형의 새장이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좋지 않게 변하고 있다. 이 법률을 아직도 끊임없이 제정하고 있는데 최후에는 어떤 정도로 제정할 것인가? 법률이 많기로, 사람이 죄를 범하고도 자신이 모를 정도로 너무 많아서,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나아가면 최후에는 사람이 움직이기만 해도, 당신이 문만 나서도 법을 어기게 될 것인데, 이런 정도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인류는 끊임없이 자신을 봉폐하고 있는데, 단지 법률뿐만이 아닌 여러 분야의 모든 면에서 모두 자신을 봉폐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봉폐되어 사람은 어찌할 방법도 없으며 사람이 제정한 법률 그것이 도리어 사람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법률을 제정하는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속인의 마음을 갖고 다른 사람을 눈에 거슬려 하며 질투심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도 역시 사람 중의 한 분자로서, 이 법률이 자신도 단속하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최후에는 사람을 숨 돌릴 곳마저 없게 봉폐해 버리는데, 이에 대처할 아무런 방법도 없다. 그때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법률이 아니라 인심(人心)이다. (박수)

어느 국가든지 사회의 동란요소와 불안정 요소에 모두 골머리를 앓는다. 예컨대 사회치안 등 문제를 다스릴 방법이 없다. 그들은 모두 이런 좋지 않은 현상에 대해 법률을 제정하여 그것을 다스리고자 생각한다. 이 법률이 갈수록 많아지지만, 법률이 보지 않을 때 사람은 여전히 나쁜 짓을 할 것이다. 사실 그들 누구도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는데, 바로 인심을 다스리고 인심으로 하여금 선(善)을 향하게 하는 것뿐이다. 인심이 좋게 변한다면 그처럼 많은 법률도 필요 없으며 경찰이 없어도 사람은 예전처럼 모두 법을 어기지 않는다. 나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사람이 자기 자신을 단속하면 경찰도 필요 없다. 당신이 보라.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이겠는가. 이렇지 않은가? 경찰이 많아서 장래에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지킨다 해도 그의 인심이 예전만큼 좋지 않다면 여전히 나쁜 짓을 할 것이다. 경찰도 사람이라, 그 경찰 자신조차 나쁜 짓을 할 수 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 법관 역시 속인이라, 그 법관 역시 나쁜 짓을 할 수 있는데, 누가 단속할 것인가?

내가 말하는 것은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얼마나 많은 법률을 제정하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사람을 규제하고, 제약하며, 단속하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람의 선한 마음을 깨우쳐 인류사회로 하여금 진정으로 고상(高尙)해지게 하는지에 있다. 사람에 대한 어떠한 외재적인 제약이든 모두 인심을 제약할 수 없다. 즉 그것은 근본을 다스리지 못한다.

나는 인류에 대한 모든 일을 알고 있다. 물론 이런 일은 비록 내가 말했지만, 현재 나는 인류에 대해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으며 상관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일을 나는 간섭하지 않으며 사람이 말하는 소위 정치에 대해 나는 전혀 좋아하지 않고 듣지도 묻지도 않는다. 인류의 일을 나는 모두 똑똑히 말할 수 있지만, 지금 나는 단지 수련하는 수련생들을 위해 책임질 뿐이다. 그러나 더욱 많은 사람이 수련을 잘하면, 이 강대한 바른 힘이 사회로 하여금 일부 개변을 발생하게 할 것인데, 인심이 선을 향하고 사회가 안정되는 이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내가 일부러 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대법을 전함으로써 부차적으로 생긴 작용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로지 사부님 한 분만이 이 세상에서 法輪功(파룬궁)을 전하고 계시며 다른 사람 그는 감히 내려와서 전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부: 그렇다. 나는 바로 法輪世界(파룬쓰제)의……, 法輪世界(파룬쓰제)는 내가 육성한 것이다. (박수) 대법을 전함은 오로지 나만이 전하고 있으며 사실 또 다른 사람이 없다. 당신이 상상하는 이 개념마저도 없다.

제자: 저희는 늘 방금 한 생각이 틀린 것을 곧 느끼게 됩니다.

사부: 그러면 좋다. 비록 당신 자신의 主意識(주이스)가 각자(覺者)처럼 그렇게 강하지는 못하지만, 매번 그릇된 염두가 나타나면 즉시 그것을 포착하는데, 그것이 그릇되었음을 아는 것은 당신의 수련이 잘된 그 부분 사상이 이미 아주 강해져 그것이 작용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 좋지 못한 사상이 나오기만 하면 곧바로 의식하고 그것을 잡는다.

제자: ‘연(蓮)’은 무엇을 대표합니까? 수련인이 진흙탕 속에 있으면서도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대표합니까?

사부: 이 연화(蓮花) 그것은 인간의 공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 연꽃(荷花)이 연화(蓮花)인 것 같다고 여기지만, 연화가 아니다. 연화는 부처 세계에서 생긴 것으로서, 연화는 부처 세계에서 결코 일종의 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과위와 부처의 위덕으로 여긴다. 연화(蓮花)는 사람 개념 중의 꽃이 아니지만, 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지금 불교 중에서는 연꽃(荷花)으로 성결(聖潔)을 비유한다. 진흙탕에서 나왔지만, 오염되지 않고 진흙 속에서 자랐지만, 오염되지 않고 그렇듯 깨끗하고, 성결하다는 것이다. 한 가지 비유로 간주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부처의 연화가 아니다.

제자: 수련과정 중에서 층차의 진전과 돌파를 어떻게 감수할 수 있습니까? 제 신체는 늘 반복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사부: 이건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어느 층차로 수련되었는지 느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인가? 이건 안 된다. 이걸 어떻게 말할까, 그처럼 많은 사람에게, 또한 자세한 상황을 매 사람에게 말해 준다는 것은 첫째, 불가능하고, 둘째, 이로써 형식상의 것에 집착할 것이므로 이런 데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당신들은 대법제자로서 대법에 따라 수련해야 하며 오로지 이래야만 가장 빠르다.

제자: 사람의 개성과 근기는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만약 당신이 후천적으로 괴상한 습관을 양성했다면 그것은 개성이 아니며 그것은 당신의 집착으로서 이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어떤 사람 그는 확실히 자신의 특점이 있다고 하는데, 이 사람 그는 행동이 빠른가 하면 어떤 사람은 느릿느릿하거나 혹은 본성적으로 서로 간에 차이점이 있는데 이것은 그의 본래의 것이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을 말하자면 예컨대 무슨 일을 할 때 나는 곧 이렇게 하기 좋아하므로 나는 곧 이렇게 하고, 나는 저렇게 하기를 즐기므로 나는 저렇게 한다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집착, 고질적인 버릇을 자신의 개성과 성격으로 간주한다면 이것은 틀린 것으로 이런 것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제자: 우주·천체·시공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우주·천체·시공의 개념은 이 세 용어부터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류의 언어는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통상적으로 이 우주란 바로 눈으로 본 것과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주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신들에게 얼마나 되는 층의 우주, 얼마나 되는 층의 우주의 개념을 말했다. 더 위로 말하려면 또 우주를 초월한 그런 개념의 층차로 말해야 하는 것으로서 나는 그것을 천체(天體)라고 부른다. 이것은 내가 당신들에게 말한 용어와 인식개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는 천체는 내가 말하는 천체와 또 같은 일이 아니다. 그럼 이 천체 중에서 부동한 우주 속에 또 부동한 공간이 있으며 그 부동한 공간 속에 물론 자신의 시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공이다. 부동한 시간에 존재하는 이 공간을 곧 부동한 시공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표면으로 인식한 개념이다.

제자: 대법이 사회에서 널리 전해짐이 바로 우주의 법리가 인간에서 재현된 것이라고, 이렇게 이해함이 맞습니까?

사부: 그렇다. 하지만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처럼 큰 법리가 인간에서 재현된 것이 아니고 천지개벽 이래 있은 적이 없으며 우주가 천지개벽한 이래 처음이기 때문이다. (박수)

제자: 미국 사람이 공(功)을 배우기 시작할 때 음악 테이프 구령에 영문 동시번역을 배치하기를 바랍니다.

사부: 번역, 이 일은 모두 하고 있다. 연공 테이프 중에서 번역된 구령을 부가한다면 내 생각에 좋지 않다. 마치 ‘부처(佛)’라는 이 용어처럼 서양인들은 예전에 부처라는 이 용어가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분이 모두 알고 있다. 바로 어떤 것은 번역할 수 없다. 하지만 연공 테이프 속의 해설은 번역해도 괜찮다. 그 ‘結印(제인)’, ‘合十(허스)’ 등등 이러한 것을 당신이 번역하기만 하면 그것은 그러한 일이 아니며 그것은 그의 원래의 뜻(原義)을 잃는다. 그러므로 이런 용어는 번역할 수 없다.

제자: 어떻게 하면 자심생마(自心生魔)한 수련생을 도와 수련의 큰 길을 걷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우선 내가 말한다면 그는 좋은 수련생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수련을 잘한 수련생은 절대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대법에 대해 확고하기가 반석 같은 그런 마음이라면 이것이 그를 교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마가 보기만 해도 두려워한다. (박수) 그것이 그를 움직인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으므로 전혀 그를 감히 다치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역시 이러한 사람은 사상 중에 문제가 있다. 특히 외부에서 온 것이 그의 사상 중의 집착을 이용하여 가상으로 교란한다. 이는 백이면 백이 그가 가지고 있는 예전의 것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서 당신이 그의 원인을 조사해 보라. 그가 그것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절대로 감히 올 수 없다. 우주 과거의 생명이든, 우리가 지금 바로잡은 일체 생명이든 모두 지켜보고 있다. 당신은 오로지 마음이 바르지 못하여 비로소 이런 사악한 것을 초래하였다. 마음이 바르다면 누구도 감히 오지 못한다. 정말로 온다면 그 뭇 신들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를 어떻게 바로잡아 줄 것인지에 관해서는 그가 명백해지도록 하자면 오로지 마음을 내려놓고 법 공부를 많이 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자심생마하면 스스로 깨닫기가 어렵다. 다른 사람이 말할수록 그는 더욱 역으로 나아가며 그도 명백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역시 방법이 없으며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라. 누구도 더는 그를 상관하지 말고 그에게 시장을 주지 말며 마치 이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해야 한다. 그가 재미없다고 느낄 때면 아마 냉정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에 대하여 이미 심한 파괴를 조성한 사람은 영원히 다시 법을 얻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아울러 장래에 반드시 그 죄악을 갚아야 한다. 이는 그 자신이 원인을 조성한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 자비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 면의 법을 나는 거듭 말했다.

제자: 저는 자신이 끊임없이 고비를 넘기고 있음을 잘 압니다. 하지만 여태껏 신체적으로 어떤 특별한 변화가 있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부: 우리 아주 많은 수련생이 많은 고생을 겪었고 확실히 치른 대가와 겪은 고생은 다른 사람에 비해 크다. 이 속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예전에 빚은 업력이 실로 너무나도 크거나 혹은 더욱 큰 나쁜 짓을 했다. 당신이 당신 이 한 세(世)에 당신은 모른다고 말하지만, 당신이 이런 일을 갚지 않는다면 어찌 되겠는가. 당신들이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책임진다. 나는 또 당신을 수련하여 제고하도록 하고 나는 또 당신으로 하여금 원만을 이루게 해주고도 나는 또 당신에게 당신이 이런 일을 했다고 알려줄 수 없는데 당신은 오히려 나에게 어찌하여 이러하고 어찌하여 저러한가 (물론 나는 질문한 이 수련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례를 들어 이런 일을 말할 뿐이다)를 묻는다. 그럼 당신이 말해 보라.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당신이 고생을 겪고 괴로움을 겪는 것을 보고 있으며 나도 정말로 당신을 위해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말해서 없애버린 것들이 이미 무척 많다. 사부가 당신에게 없애주고 당신을 대신하여 감당한 것이 이미 무척 많아서 더 제거해 주면 안 되는 것으로서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은 것은 고생을 좀 많이 겪어야 한다.

또 하나, 일부 사람은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놓지 않고 아주 깊이 감추고 심지어 당신이 의식했음에도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집착하는 것을 건드리기만 하면 바로 피해버리고 더는 생각하기 싫어한다. 당신이 포기하려 하지 않고, 포기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이 수련하려 하는데, 내가 보기에 당신은 또 될 만한 그릇이라 수련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알게 해야 한다. 당신이 늘 그런 상태에 침체하여 있다면 난(難)은 크게 마련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 한 가지 상황이다. 바로 인위적으로 자신이 자신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련 중에서 여러분의 신체 변화는 사람마다 모두 다른 사람처럼 그렇게 뚜렷한 것이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감각이 뚜렷하지 않아 어떻게 해도 느끼지 못하는데 이런 사람이 있다. 이렇게 말하자. 당신이 미시적으로 천지가 뒤집어지듯이 얼마나 큰 변화가 발생해도 당신 표면의 신체는 후천적인 변화로 완전히 민감하지 않고, 마비되어 전혀 감수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도 있다. 하지만 표면적인 신체가 어떻게 좋지 않게 변하고 느끼지 못하더라도 모두 당신의 수련에 영향 주지 않으며 진도도 다른 사람에 비해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최후에 원만을 이룰 때면 표면적인 장애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서 공(功)이 척 오기만 하면 한순간에 해결된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민감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제자: 사부님께서 변이(變異)된 사회와 변이된 인류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더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사부: 여러분이 알다시피 동양인이거나 서양인이거나 고대 그때의 사람, 그들의 사상, 행위와 사회의 존재 방식은 완전히 지금과 같지 않았다. 신(神)도 그것이야말로 사람의 생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에도 발전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중국은 수많은 조대(朝代)를 거쳤다. 비록 옷차림이 개변되어 매 왕조(朝)가 다 같지 않았지만, 그들 사람의 관념, 사람으로서의 사상, 그들이 사회에서 종사한 일체 일들, 그것은 진정한 사람의 생활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이 사회는 마치 아주 발달한 것 같은데, 모두 지금의 과학이 가져다준 것이다.

그럼 신은 왜 인류사회의 변이를 허용했는가? 이 문제를 말하게 되어 관련되는 것이 특히 크므로 나는 깊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간단하게 몇 마디로 개괄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우주 중에는 구(舊)세력이 있다. 이 구세력, 그것 역시 마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긴긴 세월 속에서 법에서 빗나간 후 생긴 생명인데 그것은 우주가 나빠진 것을 전혀 모른다. 바로 이런 유(類)의 생명이 그것들 자신의 이 일체를 유지하기 위해 생명이 법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정법을 방해하며 극히 악(惡)한 세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마는 아니지만, 오히려 마(魔)마저도 전혀 해낼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것들이 사람을 위한다는 것은 가짜이고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진짜다.

겉모양은 신의 형상이지만, 사실 그것은 선(善)한 생명이 아니다. 이 세력이 내가 오늘날 이 대법을 전하는 중에 심한 방해 역할을 하고 있다. 나의 공(功)이 일단 그것들을 건드릴 때면 사실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들이 명백해졌을 때 그것들은 자신이 철저한 소멸 중임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모두 법을 바로잡는 중에서 깨끗이 제거되는 말로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일은 바로 이런 과정이다. 어쨌든 이 문제를 말하자면 대단히 크며 관련되는 문제가 매우 크다. 다시 말해서 이 구세력은 이미 매우 오랫동안 존재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생명이 법에서 빗나갔음을 믿지 않고 또한 우주에 어떤 변화가 있음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이 일은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모두 알고 있다. 최고의 그러한 신 그것들도 협력하고자 일련의 체계적인 배치를 했다. 그것들은 이렇게 하는 것만이 나를 위한 가장 좋은 것이라고 여겼다. 층차마다 관통되어 내려온 것에는 모두 이런 배치가 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것들의 표준, 그것들의 배치가 도리어 내가 이런 일을 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고대에서 오늘날 인류사회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줄곧 오늘날 인류가 어떻게 법을 얻을 것인가를 배치했다. 그것들은 사람의 신체와 사람의 사상을 빌려 외계인의 지혜를 남겨놓고자 했다. 바로 이러한 일 역시 가장 낮은 층차에서 내가 법을 바로잡아 사람을 제도하는 데 번거로움과 어려움을 조성했다. 그것들이 이 일을 잘하고자 한 일체는 사실상 모두 방해 작용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들이 인류에 끼친 가장 심한 파괴는 법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장애를 준 것이다. 특히 이 과학은 신을 믿지 않고, 전통적이고 진정한 사람으로서의 사상과 행위를 부정했다. 이러한 일은 사람이 법을 얻는 데 큰 장애가 되었다. 외계인으로 말하자면 그것들은 신(神)이 아니며, 그것들 역시 그런 신들이 이렇게 배치했다는 것을 모른다. 다만 신이 조종하여 이 문을 열어놓고 그것들을 들어오게 한 것이다. 이리하여 외계인은 그야말로 득을 본 셈이다. 그것들은 일찍부터 인체를 갖고자 했다. 어떻게 하든지 누구도 단속하지 않으므로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인체를 얻고 인류의 이러한 곳을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몹시 복잡한 일이다. 방금 이렇게 말한 것만도 대단히 큰 문제에 관련된다. 이것이 바로 왜 변이된 사회가 나타나고 오늘날 이런 인류 상태가 나타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지금 얼마나 되는 제자가 있든지 사부님께서는 장래에 다만 몇몇 제자들만을 이끌어 원만을 이루게 할 것이다.” 나는 여러 지역에서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은 대법을 심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그럼 내가 오늘날 또 여기에서 무슨 법을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내가 그 몇 사람을 단독으로 불러 가르치면 끝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중생을 널리 제도할 것이 있는가? 그러나 우리 어떤 사람은 믿고 있는데, 그럼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은 법 공부를 어떻게 한 것인가? 이것은 문제이다. 또 어떤 사람은 “사부님께서는 어느 수련생의 몸에 붙어서 말씀하시고 다른 사람을 점화해 주시며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알려주신다.”라고 한다. 이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의 입을 빌리는데, 당신 집의 육친의 입, 심지어 누구의 입이든지 나는 모두 그의 입을 빌려 당신에게 몇 마디 말하고 당신을 좀 점화해 주는데 이런 것은 있다. 누구의 몸에 붙는다고 하는데, 누가 그렇게 대단한가? 이런 일이 전혀 없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바로 문제가 있으며 필연코 그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서 그건 바로 부체(附體)가 한 짓이다.

제자: 저는 속인에게 홍법할 때 먼저 『전법륜』을 세 번 볼 것을 요구하며 배우려 한다면 다시 동작을 가르칩니다.

사부: 절대 이렇게 하지 말라. 왜냐하면, 입문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런 혹은 저런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연공을 가르쳐줄 수도 있고 천천히 인식하게 해도 괜찮다. 혹은 그에게 책을 한 권 주어 그가 잘 보고 배우려고 생각해도 괜찮다. 절대적인 것이 없으며 그것을 규범화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책을 한 번 읽고 좋다고 여겨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연공하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신이 “안 됩니다. 당신은 아직 더 봐야 합니다.”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제자: 어떤 수련생은, 새로 온 사람은 먼저 책을 볼 수 없으며 사고하고, 깨닫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부: 깨달아도 좋고, 사고해도 좋고, 생각해도 좋은데 법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당신이 그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고, 무엇을 깨달으라고 해도 깨닫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가? 모두 책을 많이 보아야 하고,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 수련과정 중에서 당신에게 반응되어 나온 일부 상태에 대해 당신이 정확하게 대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바른 깨달음(正悟)이다. 무엇이 깨달음(悟)인가? 이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바른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사고하고 생각한다는데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당신들은 반응되어 나온 모든 사상을 정말로 모두 걸러내야 하며 어느 것이 자신의 것이며 어느 것이 좋지 못한 사상인지 걸러내야 한다. 나쁜 사상은 역시 그것이 생각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고한다고 해서 일부러 무엇을 사고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이 법을 인식함에 모두 이런 과정이 있었다. 즉 책을 펼쳐 보면 좋다고 느꼈다. 왜 좋다고 느꼈는가? 당신은 이지가 있고, 사상이 있으며 속인 사회 중에서 체험이 있기 때문에 법이 좋음을 안다. 보기만 하면 바로 알지만, 필경 이것은 감성적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책을 봄으로써 당신은 갈수록 그의 가치를 알게 되는데, 이것은 이성으로 상승한 것이다. 그럼 당신은 또 나머지 무엇을 더 사고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오늘 배운 이 법이 이상하지 않는지, 이 한 편에서 말한 것이 이치에 맞는지를 생각한다면 당신은 삐뚤게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이다.

제자: 홍법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계의 고위층에 진정한 수련자가 많지 않습니다. 저희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이건 그가 어느 부문이고 어느 사회계층인가를 상관하지 말라. 대법이 전해지면서 사람의 마음을 겨냥하고 사람을 겨냥하는 것이지 단체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누가 권력이 있다 하여 여러분에게 ‘모두 와서 배우라며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하자. 그럼 어느 하나 진심인 것이 있겠는가? 그는 당신이 강요해서 온 것이고, 명령해서 온 것이며, 혹은 체면에 못 이겨 온 것으로서 대법을 얻고자 온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이 정말로 배우러 와야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높은 직위라도, 아무리 큰 권력이라도 우리는 모두 그의 사람 마음을 보는 것으로서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표하지 못한다. 그럼 우리 일부분 사람이 법을 얻게 되면 우리 대법을 널리 전하고 대법의 과학성을 실증하는 데 아마 더욱 이로울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이러한 생각이 있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대법을 수호하려고 하며 대법 일을 하려고 하는 이것은 아주 좋다. 그러나 흔히 또 당신들 자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이 얻으려고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달린 것으로서 그가 얻고자 해야만 비로소 된다. 그가 얻으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누가 없더라도 대법은 걱정 없다. 어떤 수련생은 조급해한다. 우리 연공장에서 감히 수련생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떻게 하라고 말만 하면 수련생은 연마하지 않고 가버린다고 한다. 내가 말한다면 아마 대법에 대해 이해가 깊지 않은 상황에서는 괜찮을 것이다. 만약 이 수련생이 한동안 배우고도 여전히 이러하다면 갈 테면 가라고 하라.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수련하는 사람이다. 이익을 챙기려는 그런 사람은 필요 없고 머릿수만 채우는 그런 사람도 필요 없다. 백 명 중 아흔아홉 명이 모두 진심이 아니면 모두 가도록 하라. 남은 한 사람이 진심이면 이것이 바로 당신의 성과이다. 한 사람을 제도한다 해도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지 않을 것이다. 결국, 오늘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대법을 수련하고 있다.

제자: 고비를 넘을 때, 때로는 자신이 깨달았다고 느껴지면서 마음이 단번에 홀가분해집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같은 고비가 또 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사부: 방금 어느 수련생이 나에게 물었다. 주천(周天)이 통하는 것을 말하면서, “이전에 이런 상태가 있었던 적이 있는데 어째서 지금 또 반복됩니까?”라고 했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여러분이 수련 중에서 최대한 속인 사회의 상태에 적응하게 하려고 당신의 잘 수련된 그 부분을 미시적인 데서부터 당신에게서 격리해 주었다. 잘되지 않은 이 부분, 그것은 마찬가지로 같은 문제가 존재할 것이며 여전히 이렇게 수련해야 하는 것으로서 수련이 된 후에 다시 격리한다. 예를 들어 말해 보자. 당신 매 한 층의 신체에 모두 기제(機制)가 있고, 당신의 많은 층차의 신체 속에는 좋지 못한 사상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좋지 못한 사상, 그것은 가장 표면적이고 아주 조잡한 그런 물질로 구성될 수도 있으며, 또는 더욱 미시적인 물질로 구성될 수도 있다. 그럼 어떤 나쁜 사상은 미시적인 데에서 표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이 한 면(面)이 합격하였다면 한 층을 청리(淸理)해 내고 격리한다. 그럼 다음 한 층에 또 있으므로 여전히 당신이 수련 중에서 제거해야 할 것을 반복하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저도 제가 괜찮게 수련되었고 한동안 아주 좋다고 여겼는데 왜 지금에 와서 또 좋지 못한 사상이 나오게 됩니까?”라고 한다. 이는 당신의 잘 수련한 그 한 부분이 이미 격리되었고 수련되지 못한 그 한 부분은 여전히 계속해서 수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갈수록 약해질 것이다. 어떤 때에 나오는 사상은 대단히 나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당신들은 걱정하지 말라. 물질이 더욱 미시적일수록, 그것의 에너지는 더욱 크다. 다시 말해서 그것의 힘이 더욱 클수록 그것이 일으키는 나쁜 작용 역시 더욱 크며 그것이 사람을 주재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표면에서는 물질이 표면일수록 에너지가 더욱 작으며 더욱 작다면 능력이 더욱 없게 마련이다. 그러나 더욱 작고 더욱 표면적일수록 더욱 나쁘다. 그럼 더욱 나쁘고 더욱 낮을 때 그것 역시 에너지가 더욱 없다. 이는 이런 관계이다. 그러므로 비록 당신이 많은 좋지 못한 것을 감소시켜 그것이 아주 취약하게 변했지만, 그것이 더욱 나쁘게 표현될 수도 있다. 당신은 이런 것을 걱정하지 말라. 당신이 이미 이 단계까지 수련되었다면 이는 당신의 사상 중에 일단 좋지 못한 염두가 생기면 당신으로 하여금 금방 의식할 수 있게 한다. 초기에는 이것을 해내기가 몹시 어렵다. 나쁜 사상은 한 층 한 층씩 점차 제거된다. 그러나 당신들은 잘 알아들어야 한다. 당신이 생각하기를, ‘아, 본래는 이런 일이었구나. 그 나쁜 사상이 다시 나타나도 나는 그것을 더는 상관하지 않겠다.’라고 한다. 그럼 만약 당신이 자신을 단속하지 않고 그것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또 당신은 수련하지 않는 것이 된다. 바로 이런 관계이다. 당신은 그것을 똑똑히 분간해야 하며 그것을 제약해야 한다. 당신 자신이 자신을 수련하고 있음을 알고 좋지 못한 사상을 억제할 수 있다면 당신은 바로 수련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끊임없이 감소하고 끊임없이 감소하여 표준에 도달하는 것이 더욱 많아지고 전부 표준에 도달하면 바로 원만을 이루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다.

제자: 북미(北美)제자들은 많은 기회를 이용하여 미국인에게 홍법을 하지만, 진정하게 법을 얻은 미국인은 여전히 아주 적습니다.

사부: 우주 중의 구세력, 그것은 일련의 배치가 있다. 그것의 배치는 내가 오늘날 하는 일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

그것들 누구도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예전에 내가 당신들에게 한 가지 이치를 말한 적이 있다. 예컨대 신을 말한다면, 이 신이 어느 위치에 있든지 그는 그보다 높은 곳에 또 신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신의 존재는 사람의 존재와 같지 않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고 말했는데 당신들은 이치로는 모두 믿는다. 그러나 당신들은 신의 사유와 같지 않다. 당신들은 모두 법(法) 속에서 인식한 것이다. 신은 무엇이든 다 보았고 무엇이든 다 명료하다고 느낀다. 당신이 위에 또 신이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는 믿지 않으며 정말로 믿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과위가 결정한 것이며 층차가 결정한 것으로서 역시 그의 지혜가 증오(證悟)한 것이다. 그의 아래 혹은 그와 동등한 층차라면 그것은 일목요연하여 무엇을 하려고 하면 그것을 할 수 있다. 그의 이하에 있는 모든 생명으로 말하면 그는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위대하다. 나에 대해서 그것들은 내가 그것들의 그 한 층차 중에서 나타낸 형상, 나타낸 방식을 모두 보아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그것들의 존재형식보다 높은 것은 모두 보아내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감히 그것들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들은 나도 그것들과 같다고 여기면서 “내가 이렇게 배치하는 것은 당신에게 좋은 점이 있다.”라고 한다. 사실 그것들은, 나에게는 내가 해야 할 더욱 높은 일이 있음을 모른다. 그것들은 층층이 모두 이렇게 하고 있다. 이 한 층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저 한 층에서도 이렇게 생각하며 그것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은 층층이 장애를 배치했다. 홍법 문제에서 당초에 나 자신은 내가 법을 바로잡는 과정 중에서 2억 명이 법을 얻게 하려고 생각했다. 전 세계에는 70여억 명이 있기에 2억이란 이 숫자 역시 아주 작은 것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들은 1억 명으로 제한했고 그것들의 변이된 것을 고집하며 놓지 않았다. 매번 내가 한 층을 돌파하면 그것들에 또 그 위의 한 층 배치가 있으므로 나는 층층 층층…… 그것들을 돌파해 나가야만 비로소 그것들의 이 일련의 배치에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들의 배치는 내가 법을 바로잡는 데에 매우 큰 저항을 형성했다.

제자: 많은 사람이 수련의 동력을 찾고 있습니다. 예컨대 집으로 돌아가려는 관념을 세우고 있는데, 무위로 수련해야 더욱 좋은 것이 아닙니까?

사부: 신심(信心)이라든가, 동력(動力)이라든가, 혹은 어디로 가고자 함을 세워서 수련의 추진력으로 삼는 것은 원칙상 잘못이 없다. 하지만 내 생각에 아직도 누락이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도 무엇을 위해 수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되돌아가려고 수련하거나 혹은 어떤 상태에 도달하려고 한다면 내 생각에 당신이 목표를 확정했거나 혹은 정념을 확정했다면 더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생각이 있었던 후 오로지 수련만 하고 다른 것을 상관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동력으로 삼아 당신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일정한 층차에 도달한 후 당신들에 대한 요구도 더욱 높아질 것이므로 그때가 되면 그것이 동력이 아닐지도 모르며 아마 일종 집착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초기에는 문제가 없다. 나는 여래 부처가 자비를 주장함을 말했다. 그러나 매우 높은 층차의 그 신이 보면, 무슨 자비인가, 자비라니 무슨 뜻인가,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모르는 것이 아니며 무엇이나 다 알고 있다. 그는 당신의 자비라는 이것을 집착이라고 본다. 이 이치는 승화된 것이며 법 역시 끊임없이 승화된 것으로서, 부동한 층차에서 생명은 모두 그에 대한 부동한 층차의 경지의 요구가 있다.

제자: 법회에 참가할 때마다 촉진이 대단히 큰 것을 느끼지만, 집에 돌아간 후, 시간이 길어지면 또 정진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부: 나는 어제도 수련생들과 이 문제를 말했다. 여러분도 모두 이런 감수가 있다. 당신들은 대법환경 속에서 사부가 말하는 것을 듣고 확실하게 마땅히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이 속인 사회 중에서 수련하며 접촉하게 되는 일체는 필경 속인 중의 이득인지라, 매사가 당신 개인의 이익문제에 연관된다. 이 사회 전반이 모두 이것을 위해 살고 있다는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다. 이 환경 속에서 당신들은 또 자기도 모르게 이 일체가 모두 이러하다고 느끼므로 당신으로 하여금 정진할 수 없게 하는데, 이것이 정진하지 못하는 주원인이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면, 바로 이 환경이 사람으로 하여금 느슨하게 할 수 있고, 이 환경이 사람으로 하여금 나쁘게 변하게 할 수 있으며, 이 환경이 복잡하여 수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당신이 만약 그 속에서 나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것으로, 그처럼 높이 갈 수 있고, 되돌아갈 수 있으며, 남들이 당신을 보고 정말로 대단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든, 오늘날 이 환경에서 자신이 스스로 끊임없이 정진할 수 있게 하려면, 내 생각에 책을 많이 보고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

제자: 미시적일수록 층차가 더욱 높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어제 부동한 층차의 하늘은 미시적인 데를 향해 아래로 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 당신이 상상하는 위와 아래가 없으며 지구는 둥근 것으로 아래 역시 위이다. 지구는 본래 둥근 것으로서, 사람은 때로는 거꾸로 되었다가 때로는 또 바로 서는 것으로, 사람의 그런 상하(上下) 관념이 없으며 주위 사면팔방이 모두 위이다. 나는 위를 향해 가는 것을 말했는데 사실 미시적인 것을 향해 간다고 이해해도 된다. 정확하게 말해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바로 미시적인 데로 가는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중에서 광년(光年)으로 시간을 형용하셨습니다. 그런데 물리학에서 광년이란 거리를 가리키는데요?

사부: 나는 천체(天體)를 말할 적에 시공개념의 거리로써 필요한 시간을 말했다. 동등한 층차 중에서는 거리를 말할 수 있다. 거시적인 데에서 미시적인 데에 이르기까지 그 거리의 개념은 공간과 시간의 차이에 따라서 변화가 발생한다. 바로 인류에게는 시공의 공간거리와 시간을 통합하는 고정된 개념과 용어가 없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일체 시간을 타파하고 하는데, 이것이 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어떠한 생명이든지 다만 그 환경 중에 있다면 그 환경의 시간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천체구조를 말할 때 거리의 개념은 시간의 속도와 갈라놓을 수 없다. 같은 경지 중에 존재하는 부동한 세계, 또는 같은 층차 중의 부동한 입자, 그것들 사이를 거리로 가늠할 수 있는데, 이는 그것들이 같은 층차 중에서 통일된 시간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시적인 데에서 거시적인 데로 통과하는 이런 과정에는 통일된 시간과 통일된 거리가 없다. 우주 중의 일체는, 부동한 층차의 중생의 문화를 포함하여 모두 대법이 중생에게 창립해 준 것이다. 법을 바로잡는 중에서 단지 바르지 않은 것을 시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또 예전에 부족했던 새로운 인류의 문화도 창립하고 있다. 나는 내가 분명하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박수)

제자: 매번 정(情)의 고비를 넘길 적마다 마음속에는 늘 한 가지 떼어내기 어려운 감각을 느끼는데 저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개변하기 싫어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까?

사부: 당신들이 정을 자신의 이성(理性) 혹은 당신 신체 일부분의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면 잘못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들이 일부러 아직 도달하지 못한 그 일보를 기어코 버리려고 한다면 당신들은 억지로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수련하고, 책을 보며, 연공하는 과정을 거쳐 점차 진정하게 법 중에서 법을 인식하는 데 도달할 수 있다. 당신은 자신에게 높은 요구가 있다면 되도록 그러한 좋지 못한 사상과 당신이 집착하는 것을 억제해야 하며 당신은 되도록 그것을 담담히 내려놓고 배제해야 한다. 당신이 도달할 수 있는 표준 그 한 부분에 당신이 1초라도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을 고정(定)해 준다. 바로 이처럼 끊임없이, 끊임없이 표면을 향해 돌파하고 있다. 최후에 전부 다 돌파되었다면 최후 한 층이 부서질 때 당신은 당신의 애초의 그 사상·생각이 완전히 아님을 발견할 것이며, 당신의 사유방식도 본래와 같지 않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당신이고, 진정한 본성이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 내려놓지 못하고 생각하는 이 일체의 일체는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으로 당신을 뒤엉키게 하고 있다.

이 관념을 제외하고 사람은 이 공간 중에서 또 하나 특정한 환경이 있는데, 바로 정(情)이다. 삼계 내는 모두 정에 잠겨 있다. 당신이 이 정을 떼지 못하면 당신은 바로 이 속에 있게 된다. 실제 당신들이 해야 할 것은 바로 어떻게 이 정을 이탈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비록 내가 아주 명확하게 말했지만, 수련시간이 짧은 사람은 해내지 못하며 노수련생이라도 원만을 이루기 전에는 완전히 해내기가 몹시 어렵다. 수련 중에서 자신에 대해 엄격히 요구하며 좋지 못한 그런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대법수련 중에서는 일체를 개변할 수 있다. 당신이 끊임없이 책을 보고 평소에 또 자신에 대해, 되도록 한 연공인으로서 자신에게 요구한다면, 당신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변화가 일어나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법이 당신을 용련(熔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자: 어떤 지역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대형교류회를 열려고 하며 지금 이미 세 번 열었습니다. 저는 너무 많다고 느낍니다.

사부: 너무 많다. 그렇게 자주 열지 말아야 한다. 우리 이런 대형 법회는 내 생각에 1년에 한 차례 또는 두 차례면 충분하다. 많이 연다면 여러분의 수련에 영향 주기 쉽다. 수련은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홍법 역시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고, 여러분에게 진정하게 제고하고, 수련의 신심을 북돋우기 위해 이 홍법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형식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어제 “내가 본래 정한 것은 2억 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홍법의 전망은 2억 명입니까?

사부: 정법(正法)을 방해하는 일체 것들은 모두 최후의 청리(淸理) 중에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 수련할 시간을 준비하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이 잃었으며 더는 만회하기가 불가능하다. 1억 명이 더 있다 해도 틀림없이 당신들과 같지 않을 것이며 당신들을 따라잡거나,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홍법 일을 하지 않을 것인가? 여전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류는 또 다음 일보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수련하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는데 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법을 알게 해야 한다.

제자: 먼 지역에 가서 홍법하는데, 저는 이 때문에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배치하신 수련순서가 교란받게 될까 봐 걱정되는데요?

사부: 이는 그럴 수 없다. 만약 아주 편벽한 지역에 법을 아는 사람이 없다면 당신들이 가서 홍법함은 잘못이 없다. 또한, 이로 말미암아 수련에 지장 주지 않을 것이다. 홍법 일을 하는 한편 자신이 끊임없이 책을 보고 연공하는 이 자체가 바로 수련이다.

제자: ‘사(私)’가 관통할 수 있는 층차는 얼마나 높습니까? 저희는 어떻게 이 층차를 돌파할 수 있습니까?

사부: 생명이 법을 빗나갈 수 있고 생명이 고층차에서 떨어질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들에게 이 사심(私心)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사심이 있는 원인은 사람의 사상 중에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많은 좋지 못한 관념이 조성한 것으로서 실제로는 사상의 오염이다. 그럼 더욱 높은 층차에 있는 신, 그는 더욱 순결하고, 더욱 성결하다. 만약 그에게 응당 있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순수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층차의 개념과 형식이 없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저희가 본래 생명이 생긴 곳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더욱 높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로 너무나도 어렵다. 한 가지가 있다면 오로지 당신이 수련만 하면 법을 얻은 사람을 포함하여 나는 한 사람도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 (박수) 나는 꼭 방법을 찾아 당신으로 하여금 원래 당신이 생겨난 곳으로 되돌아가게 할 것이다. (박수) 더욱 높은 곳으로 간다는 것을 말하자면 이 일은 당신 자신에게 달렸다. 이건 특수하고 극히 특수한 것이다. 사실 당신들은 사람의 사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신의 생명 노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당신의 본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가장 큰 소원이며, 가장 아름다운 소망이다. 생명의 가치란 결코 그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이미 만족한 것이며 바로 행복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언어로 말하고 듣자니 아주 저속하다. 사람은 모두 끝없는 욕망으로 일체를 탐구하고 있는데, 이 마음은 그리 좋지 않다. 신은 이런 마음이 없다. 우주는 중생으로 말한다면 끝없이 넓은 것으로서 끝까지 보아낼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일체 더욱 높은 것을 알려고 하는 그것은 끝이 없는, 일종의 두려운 것으로, 그것은 안 된다.

예전의 수련 중에서는 확실히 대단히 높게 수련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고생을 대단히 크게 겪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사례를 들겠다. 내가 이 일을 할 적에 전력을 다해 끊임없이 미시적인 데로 돌파하면서 법을 바로잡았는데 나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했다. 나는 이렇게 어느 곳까지 했는가? 바로 인체가 있는 곳을 훨씬 넘어선 곳까지 했다. 그곳은 전부 다 물질이고, 물질형상으로 존재하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우주가 크게 변동되는 특수한 역사 시기에 그런 몇몇 신이 그 층차 중으로 휘말려 들어갔는데, 내려올 수 없었으므로 거기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들은 너무 재미가 없다고 느껴 줄곧 원래 곳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했다. 그것은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높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나중에 내가 이 단계에 와서 그들을 다시 되돌려 보내자 그들은 아주 좋아하였다. (박수) 어떤 말은 들으면 마치 아주 허황한 것 같다.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나는 바로 완전한 사람의 형상을 갖춘 리훙쯔(李洪志)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법리(法理)이고 내가 당신들에게 말해 주는 것은 모두 진실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능력의 체현은 속인 이쪽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능력을 사용하여 당신들을 동화되게 하고, 승화하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대법의 법리로써 일체 원만을 이룰 수 있다.

제자: 제가 듣기에 『전법륜』을 한 번씩 읽을 때마다 한 층의 껍질을 벗을 수 있다고 하던데요? (수련생들 웃음)

사부: 여러분은 웃지 말라. 내가 보기에 확실히 이런 위력이 있다. 당신이 처음 『전법륜』을 다 보고 난 뒤의 체험을 당신이 두 번째 볼 때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들에게 많이 보고 많이 보라고 하는 것이다. 더욱 높은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음은 당신이 또 그 한 경지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당신에게 그 한 층의 이치를 알지 못 하게 한다.

제자: 법을 읽는 횟수와 원만을 이뤄 도달하는 층차는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법을 읽는 횟수는 당신의 원만 진전을 증가시킬 수 있다. 원만을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그것은 또 당신의 수련과 다른 면을 더해야 한다. 사실 당신이 이처럼 책을 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잘할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제자: 근기가 같은 두 사람이 처한 사회계층이 같지 않으면 그들이 원만에 이른 후에 같은 층차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사부: 수련은 인류사회의 무슨 계층을 보지 않으며 사람의 빈(貧)·부(富)·귀(貴)·천(賤)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다. 만약 같은 층차에서 왔다면 그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으며 틀림없이 같다. 만약 그들이 같은 문(門)이 아니라도 문제가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무슨 특수한 공헌을 했다면 당신 수련의 노정으로 하여금 한 걸음 크게 전진하게 할 것이다. (박수) 하지만 내 생각에 우리는 지름길을 찾거나, 돌아가서 무슨 좋은 일을 좀 많이 한다는 이런 것에 힘쓰지 말아야 한다. 자칫하면 결과가 바라는 바와 정반대로 된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고자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자: 소수 보도원이 대법 요구에 부합되지 않아 어떤 수련생이 교체할 것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사부: 만약 이 사람이 법을 파괴했다면 그건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그를 교체하지 않는다 해도 내 생각에는 수련생 누구도 더는 그와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럼 자연히 그는 보도원이 아니다. 만약 그가 법을 파괴한 것이 아니고 다만 일 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선의로 그에게 어디가 잘못됐다고 알려줄 수 있다. 그는 인식할 수도 있고 또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수련인이라 최후에는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아마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럼 이 과정에서 우리도 그의 잘못에 몹시 집착하게 되어 우리 마음속으로 내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신은 집착으로 변했고 당신은 밖을 향해 찾는 것이 된다. 당신은 그의 잘못을 왜 당신이 보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지 않는가? 그의 잘못이 왜 당신 마음속에서 그렇게 괴로운가? 그중에는 당신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왜 그 일을 그리 크게 보는가? 여러 방면에서 무슨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모두 자신을 수련해야 하고, 자신을 봐야 한다.

만약 이 보도원이 정말로 괜찮게 수련했다면 그에게 있는 문제를 당신이 지적해 줄 때 그는 정말로 자신을 볼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보도원에게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그가 자신을 보지 않으면, 내가 말하면 이 보도원은 그 법을 배운 것이 너무 부족한 것으로서 마땅히 크게 개진(改進)해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박수) 누구에게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수련 중이라 모두 자신에게 집착이 있고,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옳을 수도 있고 옳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이 옳지 않아 다른 사람의 옳은 것을 옳지 않다고 볼 수 있고, 당신의 옳은 것이 다른 사람의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모두 수련하고 있기에 당신들은 방금 내가 말한 한마디 말을 듣고 모두 손뼉을 쳤는데, 나는 되도록 법을 얻은 어느 한 제자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나도 이렇게 하는데, 왜 당신들은 선의로 모든 사람을 대하지 못하는가? (박수) 만약 당신들이 모순에 부딪혔을 때 모두 자신의 내심을 향해 찾고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찾는다면, 무슨 일이든 다 처리하기 쉽고 그 수련의 속도는 굉장히 빠르고 굉장히 빠르다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나도 다만 이렇게 당신들에게 알려줄 뿐이다. 당신들은 실제 수련 과정에서 분명히 잘못임을 알면서도 넘기기가 몹시 어렵다. 그러므로 되도록 당신들에게 잘하고 정진하라고 말할 뿐이다. 모순은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모순이 없으면 제고할 수 없다. 만약 보도원이 잘하고 수련생들이 잘해서, 여러분 모두 모순이 없는 이런 환경이라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마(魔)가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수련 환경을 잃어버림으로써 제고할 수 없고 되돌아가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모순을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나는 사람이 고생을 좀 겪는 것은 해로운 것이 아니라고 늘 말한다. 당신들은 그 모순 역시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박수) 그러므로 지난 한 기간 우리 미국 대법제자 중에서 이런 유의 일이 비교적 많았다. 물론 당신들은 중국 대륙 수련생들처럼 그렇게 일찍이 법을 얻지 못했지만, 여러분의 인식이 그처럼 빨라 그런 과정은 이미 지나갔다. 나는 여러분이 지금부터 시작하여, 특히 최근 한동안에 무척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노수련생의 법에 대한 인식도 아주 높고 일을 함에 본래처럼 그렇게 과격하지 않다. 이는 대단히 좋다. 내 생각에 지금부터 시작하여 더욱더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숙해지고 있기에 법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사부님, 저는 다리를 틀어도 아프지 않은데 저는 정말로 조급합니다. 저에게 난이 없어서 수련이 빠르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그 점을 인식할 수 있는데 그럼 왜 당신은 모순이 왔을 때 기쁘게 생각하지 않는가? ‘아이고, 이는 나에게 제고할 기회를 준 것이구나.’라고. 사람은 모순에 부딪히면 모두 밖으로 미는데, 서로 민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모순이 없는 상황을 조급해하지 않고 대단히 좋다고 생각한다. 모순이 오면 당신들은 도리어 정반대로 모순을 피하려 한다. 모순 자체가 바로 고생 속에서 수련하는 일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아서 사회와 접촉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신이 나이가 많다면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하여 원만에 이르도록 하려고, 당신이 침대에 앉기만 해도 오래된 그런 괴로운 일들을 생각하게 한다. 당신으로 하여금 거기에 앉아서 화나게 하는데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나절 화가 나고서야 알게 된다. ‘아이고, 나는 수련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화를 내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이 마음을 당신에게 제거해 주고 있다. 어쨌든 당신이 편안하려고 한다면 제고할 수 없는 것으로서 나는 당신을 편안하게 할 수 없다. (박수)

모순 속에서만이 사람의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 모순 속에서만이 자신이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모순이 발생할 때 틀림없이 당신의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데 아주 뚜렷하다. 만약 당신이 모순의 그 일순간을 잡지 않고 여전히 다른 사람과 고집을 부리며 당신의 이치를 우긴다면, 당신이 논쟁에 집착하는 그 과정이 바로 그 집착심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과정이다. 만약 더 아래로 깊이 파헤쳐 내려갈 수 있어 그것이 무슨 동기인가를 본다면 이 마음의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수)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발적으로 수련해야 한다. 당신은 늘 나의 법신이 당신에게 점화해 주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법신은 절대 당신에게 어떻게 하라고 직접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는 방금 당신들에게 내가 법을 바로잡을 때 끊임없이 미시적인 데로 돌파한다고 말했다. 왜 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나는 모든 부동한 층차의 주요한 그 부분을 모두 나 여기에 잡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박수) 그러므로 그것은 도망가지 못한다. 물론 문제도 있다. 소멸과정 중에서 먼지처럼 소멸한 그것을 아래로 흩어버리는데 (그것이 나쁘므로 그것을 소멸했는데 마보다도 더 나쁘다. 소멸해 버릴 때 그것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죽음이 임박해서도 여전히 나쁜 짓을 하려고 한다.), 그것은 오로지 베이징(北京) 여기로 떨어진다.

여러분 알다시피 베이징의 날씨는 사람들을 아주 힘들게 한다. 이 베이징은 어찌 된 일인가? 최근 2년간 그 날씨를 보면 구름 같지만, 구름이 아니고, 안개 같지만, 안개가 아니며 공기 중에 떠도는 물질의 그 과립이 대단히 커서 눈으로도 볼 수 있다. 그것을 자동차 배기가스라고 하면서 즉시 자동차의 매연 대책을 강구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자동차와 관계가 없다. 자동차에서 배출하는 그것은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지만, 공기 중에 뜬 물질은 주로 질소화합물이다. 미국은 자동차가 많기로 그야말로 대단하여 그 큰길에서 마치 물이 흐르듯이 달리지만, 몇십 년 동안 이런 정도로 오염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동차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오염이라고 말하는데 발전 중인 나라의 산업오염이 비록 상당히 심각하긴 하지만, 그런 정도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특히 베이징에는 또 그처럼 오염을 조성할 산업이 많지 않다. 그는 연탄을 때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스팀을 사용하기에 큰 굴뚝도 아주 적다. 그러나 예전에 난로를 땔 적에는 집집이 연통이 하나씩 있었는데 그때도 그런 정도로 오염되지는 않았다. 그것이 이런 오염이 아니라고 말해도 물론 그는 믿지 않는다. 나도 그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다. 사람은 뭐라고 말하고 싶으면 곧 그렇게 하기 좋아한다.

사실 바로 소훼(銷毀)된 미시 공간 중에 존재하는 그 몹시 좋지 않은 물질이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비행장에서 떠서 500m 올라오면 푸른 하늘이 매우 좋은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이구, 마치 덮개를 씌워놓은 것 같다.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이기에 늘 흩어지지 않는가? 그것은 미시적인 데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조사해 내지 못한다. 그것은 표면분자의 입자보다 작은 데서부터 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조사해 내지 못한다. 최후에 발견한 것이 질소화합물이었다. 질소화합물, 이것은(당신들 화학을 배우는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유기물의 먼지로서 그 화장터에서 죽은 사람을 태우는 화로에서 나오는 연기와 같다. 그것은 사실 바로 좋지 못한 미시 생명의 소훼로 조성된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쓰신 ‘인류를 다시 양성하자’, ‘변이’, ‘시간과의 대화’는 1996·1997년에 쓰신 것인데 왜 1998년에야 비로소 저희에게 보여 주셨습니까?

사부: 내가 당신들에게 보이고 내놓는 시간도 모두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일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바로 써냈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나타났을 때를 기다려 내가 그를 내놓았다. (박수)

제자: 사부님께서 우주의 구조를 말씀하시는 것이 더욱더 커짐에 따라 저의 시야와 흉금도 마치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목적은……?

사부: 당신이 다 말하지 않았는가. 사실 나는 당신의 용량을 확대하고 있는바 당신들의 일체도 모두 따라서 확대되고, 증가한다. 나는 천체란 우주 중에서 역시 먼지 한 알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내가 당신들에게 말해 주어 당신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이며 그것보다 억 배, 조 배 높은 것 역시 우주의 한 알 먼지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우주의 최종(最終)이 어찌 된 일인지 모른다. (박수) 아울러 이 우주의 안 역시 무척 방대하고 복잡하여 사람의 사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며 이러한 언어가 없기에 나도 당신들에게 형용해 줄 방법이 없다. 내가 사실 당신들에게 이것저것 많이 말했지만, 모두 한 개의 체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리 지구는 마치 한 개 입자와 같으며, 지구와 같은 이러한 입자가 우주 천체의 일체에 널리 분포된 것이 마치 공기 중에 이렇게 큰 분자가 공기분자로 구성된 것과 같이 일체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당신이 말해 보라. 그 천체가 얼마나 크겠는가를?! 내가 당신들에게 말해 준 것은 한 체계 중에서 말한 것으로서 그 복잡한 정도는 그야말로 형용할 언어가 없으며 그리려 해도 그려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구조의 복잡함은 마치 무수한 조(兆)의 입체교차 면을 함께 해도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에게 명확히 말하기가 몹시 어렵다. (박수) 하지만 당신들은 『전법륜』 중에서, 일정한 층차로 수련되었을 때면 당신들은 스스로 생각 중에서 깨달을 수 있어 그것이 방대함을 이해할 수 있으나 말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박수)

제자: 왜 정은 이렇게 버리기 어렵습니까?

사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사람이란, 당신의 이 껍데기는 이 정 속에서 생기고 태어나서부터 이 정 속에 있다. 당신의 껍데기를 구성하는 이 신체 세포는 바로 이 정의 환경 속에서 생긴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이탈했다면 당신은 사람이 아니고 신이다. 사람이 정에 집착하는데 사실은 피동적이지만, 사람은 주동적이라고 여긴다.

제자: 동성애는 죄악입니다. 그러나 저는 고통과 절망 속에 빠졌지만, 저는 眞(쩐)·善(싼)·忍(런)을 믿습니다. 제가 수련할 자격이 있습니까?

사부: 현대 사상의 그릇된 인도, 그릇된 선전의 유도와 이런 환경의 침식으로 사람은 많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렇다고 당신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대법을 배워 당신의 그런 부정확한 사상과 행위를 바로잡을 수 있다. 내가 말했듯이 왜 동성애를 할 수 있는가? 사실 사람이 피동적으로 정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에 집착할 때면 그것이 당신의 사상 중에서 여러 가지 집착이 생기게 하고, 이로부터 여러 가지 관념, 나아가서 변이된 관념이 형성될 것이다. 당신이 갑자기 어느 한 사람의 동작이나 혹은 형상을 좋아하게 되어 당신은 오랫동안 이런 것을 좋아하는 데 집착할 것이다. 혹은 당신이 이 사람의 태도, 표현을 좋아할 텐데, 시간이 오래되면 관념으로 형성되어 그의 이런 표현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럼 점차 이것이 더욱 강해져 그것이 당신의 사상을 주재하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이 한 가지 어떤 것을 좋아해 관념으로 형성될 때 그것은 갈수록 더 강렬해질 것이다. 만약 심태가 변이된 것이라면 서서히 이 변이사상은 확대되어 더욱 변이되는 것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동성애는 바로 그 정 속의 일종 변이된 것이다. 사실 이것도 관념에 의해 형성된 것인데 단지 변이된 것일 뿐이다.

사람은 이때에 이러한 것을 모두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부정확한 인식 때문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인데 그것이 역으로 당신을 주재하고 있다. 당신은 이것이 당신 자신의 사상이라고 여긴다. 사람은 여태껏 자신의 관념을 자신이 아니라고 여긴 적이 없다. 자신이 형성한 그러한 사상업력은 당신도 물론 모른다. 사상업이 반응되어 나온 어떤 생각에 대해서도 당신은 여태껏 이것이 자신인지 아닌지를 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실 사상에서 반영되어 나온 생각 그것이 꼭 당신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확한 사상을 시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대법을 배우기 때문에 곧 사람에게 바른길을 걷도록 하며 더욱 잘하도록 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대법 중에서는 무엇이든 다 시정할 수 있다. 문제가 없다. 법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진정하게 책임을 져야 하며 특히 그 사상을 배제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을 해치고 있고 당신으로 하여금 사람답지 않은 일을 하게 하며 당신을 지옥으로 이끌고 있는데도 마음속으로 변이된 사람들은 오히려 아직도 이것이 자신이라고 여긴다. 그 관념이 솟구쳐 나와 당신으로 하여금 동성(同性)을 좋아하게 할 때 당신은 그것이 당신이 아니며 또 당신을 해치러 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이 장기간 피동적으로 순응해 왔기 때문에 거기에 따르기만 하면 또 아주 좋다고 느껴 동성애를 하게 된다. 이 사상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제자: 저는 올해에 50세입니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들은 저를 16, 7세로 봅니다. 이는 다른 공간의 저입니까, 아니면 수련하고 있는 저입니까?

사부: 나는 이 문제를 말한 적이 있다. 당신들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의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이건 당신들의 본질적인 나이가 아니며 당신들의 진실한 나이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 이 시간, 환경 중에서의 구현이다. 아마 당신이 올해에 6, 70세일 수 있으나 당신의 元神(왠선)은 오히려 7, 8세일 수 있고, 아마 당신은 4, 50세이지만, 당신의 元神(왠선)은 이제 17, 8세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수련을 거친 후 당신 사람의 표면을 포함하여 모두 가장 좋고 가장 젊은 상태로 전화될 것인즉 이것은 확실하다.

제자: 저는 서양인으로 프로마술사입니다. 저는 초상(超常)적인 능력을 쓰지 않고도 마술사의 마술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께서 하신 말씀이 진실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몹시 모순됩니다.

사부: 마술은 기교이며, 손놀림이 빠르거나 혹은 거기에 도구의 엄폐를 이용하는 것을 더한 것으로서 그것은 결코 공능과 하나로 혼합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의 구체적인 기교가 숙련될 때 일종 공능과 같은 상태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모자를 벗어 이리저리 던지는데 이쪽에서 던지면 저쪽에서 받고 대단히 빨리 던진다. 그러나 보면 그의 손동작이 빠른 것은 아니지만, 그는 받을 수 있다. 바로 시간이 길어지면 그도 일종 공능과 같이 시차를 균형 잡을 수 있는 그런 일종 작용을 할 수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태극권이 느릿느릿한데, 그것을 어찌 실전(實戰)에 쓸 수 있겠는가? 당신이 보기에는 그것이 느릿느릿하지만, 그것의 공능이 시간을 균형 잡을 수 있다. 그것은 이 공간의 시간을 쓰지 않으며 당신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아주 느리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굉장히 빨리 간다. 당신이 주먹을 아무리 빨리 날리더라도 그보다 빠르지 못하고, 그는 느릿느릿하게 이동하지만, 이미 당신을 친다. 태극권은 심법(心法)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은 태극권의 진정한 원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는 시간의 차이, 공간의 차이이다. 이 차이는 대단히 크다. 우리 동양 사람은 신족통(神足通)이라는 이런 신화를 들은 적이 있다. 한 노인이 길을 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아주 천천히 가며 아주 느릿느릿하게 걸어간다. 그러나 당신이 말을 타고 가도 그를 쫓아가지 못한다. 이는 그가 한 공간 속에서 운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마술이 대단히 기교적인 데에 도달했을 때, 나는 그들이 때로는 아주 약한 이런 것을 가진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은 오히려 느끼지 못한다. 그들 자신도 모르며, 그는 기술이고 익숙해지면 교묘한 기능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런 뜻일 것이다. 하지만 공능마술이란 될 수 없다.

제자: 저희가 대법 서적을 번역하고 검토할 때 어떻게 해야만 자신의 사람 관념, 사람의 것이 섞여 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까?

사부: 중국대륙에서 그들이 예전에 책을 영문으로 번역하기 시작했을 때 늘 논쟁을 했다. 왜 논쟁했는가? 그는 늘 다른 사람이 번역을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또 그가 번역을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는 두 사람이 한 경지에 있지 않고 한 층차에 있지 않기 때문인데, 깨달았지만, 입으로 말할 수 없고 그가 틀렸다고만 느꼈다. 그럼 그가 일단 말한다면 그 자신도 틀렸다고 느꼈고 다른 사람도 틀렸다고 느낀다. 무엇 때문인가? 고층차의 이치는 오로지 마음으로 터득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이런 한마디 말을 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전법륜』 이 책에서 고층차의 이치를 써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절대 허용할 수 없으며 당신은 써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고층차의 이치는 사람에게 제시할 수 없으며 사람이 나타낼 수 없고 다만 당신이 수련과정 중에서 볼 수 있으며, 수련자는 알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바로 이 이치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을 번역하려면 다만 문자의 가장 표면적인 이 단어의 뜻을 번역하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표면적인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번역하고 내가 배후의 내포를 그에 가하면 자연히 법으로 되어 작용을 일으킨다. 번역 일은 바로 이러하다.

당신들은 흔히 모두 당신이 틀리고 내가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논쟁하는데 실제로는 자신이 말해 놓고도 자신이 말한 것이 틀린 것을 발견할 것인데, 바로 당신은 단지 마음으로 터득할 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층차에서 깨달은 이치는 사람의 언어로는 써낼 수 없다. 그러므로 쓰려고 하면 표면문자의 그 단어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되는 것으로서, 되도록 정확한 단어를 찾아 그를 번역하면 개인의 관념이 잘 섞여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제자: 저는 밝고 흰 法輪(파룬), 중간에는 붉은색 卍자 부호를 여러 차례 보았는데 이것은 제가 빗나간 것입니까?

사부: 아니다. 당신이 본 색깔은 당신의 천목이 원인이 되어 조성한 것이며 빗나가지 않았다. 이 法輪(파룬)은 우주의 축소판이다. 그는 우주 중에서 몇 가지 색깔의 변화가 있다. 적등황록청남자(赤橙黃綠青藍紫), 유색, 무색, 여러 가지 색깔이다. 한 가지 색깔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색깔이 산뜻하고 아름답다고 느껴 우리 대법의 상징으로 삼는다. 卍자 부호의 황금색이 변하지 않고 태극의 색깔이 변하지 않는 것 외에, 다른 것의 색깔은 모두 변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 속에 존재하는 물질의 그 색깔구성은 인류의 이 공간의 색깔처럼 분자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그 공간의 색깔은 더욱 보드랍고 매끄러운 물질 입자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보기에 그것의 광채는 부드럽기 그지없어 매우 아름답다.

이 이틀간의 법회, 특히 어제 오후 수련생들의 발언을 통해 많은 수련생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 법회는 당신들에게 수련에서 부족한 점을 찾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당신들의 수련 신심(信心)을 북돋워 주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번 법회에서 얻고,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을 여러분은 앞으로 수련 중에서 모두 그것을 반영해 나가야 하며 진정하게 자신으로 하여금 되도록 빨리 제고하고 빨리 정진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법회 자체는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어떻게 더욱 잘 제고해 올라올 수 있게 하는가이다. 나도 여러분의 법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높아져 많은 일은 내가 말할 필요가 없음을 알고 있다. 내가 오늘 해답한 이러한 문제를 포함하여 여러분은 많은 일에서 모두 명백해졌다.

본래 이번 법회는 미국 서부지역의 지역적인 교류회였으나 지금은 확대되었다. 어디에서 왔든지 우리 이번 법회의 심득을 갖고 감으로써 최소한 당신들 자신이 이번 법회를 통해 제고가 있어야 한다. 이래야만 당신이 천리(千里)를 멀다 않고 온 보람이 있을 것이다. (박수)

제자: 각국, 각 지역에서 온 제자들이 모두 본국과 본 지역의 대법제자들을 대신하여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 여러분에게 다 감사하다. (박수)

나는 더 말하지 않겠다. 희망하건대 여러분이 끊임없이 정진하고 더욱 높이 인식하며 더욱 빨리 층차를 돌파하고 빨리 원만을 이뤄 개공개오(開功開悟)하기를 바란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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