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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

 

李 洪 志

(1997년 4월 6일)

 

우리는 얼마 전 뉴욕에서 만났는데 며칠 지나서 오늘 여기에서 또 만났다. 원래는 여러분에게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을 주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저번에 말한 것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최근에 말한 것을 당신이 자세히 되새겨 보면 당신은 아마 말한 것이 무척 높음을 느낄 것인데, 실은 본질을 말한 것이다. 원인인즉 바로 당신들의 문화지식이 높고, 게다가 일부분 사람은 나중에 법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법을 얻은 이 부분의 사람들은 제고가 아주 빠르기에 그들에 대한 요구 역시 높으며 층차의 제고 역시 빠르다. 여러분은 어려움이 좀 크며 곤란이 좀 많다고 여길 것인데, 시련이 좀 많은 것 같으나 이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오늘 내가 말하는 것은, 많은 것이 이전에는 말한 적이 없었다. 수련 시간이 아주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빨리 이 법을 모두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하는데, 최대한 빨리 수련하여 최대한 빨리 원만에 이르기를 희망한다.

나는 어제 또 이런 문제를 말했다. 여러분은 아마 중국의 『서유기』를 알 것이다. 당승(唐僧)이 서천(西天)에 경을 얻으러 갔을 때 간난신고를 수없이 겪는데, 구구팔십일 난이었다. 한 가지 난이라도 모자라면 안 되어 보충해야 했는데, 몹시 어려운 것이었다. 당신들이 오늘날 법을 얻음은 너무나도 쉽다. 미국에 있지 않더라도 비행기 표만 사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말해서 이 법은 얻기는 확실히 아주 쉬우나, 수련하자면 그리 쉽지 않다. 나 역시 고려하였다. 배울 수 있는지 없는지,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이 법을 대하는지를 우리는 보아야 한다. 이 시간을 마냥 길게 끌 수는 없다. 사람은 이 법을 얻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인식에서 아직도 재삼 사고하고 고려하면서 배울까 말까? 어쩔까 한다. 우리도 이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시간을 좀 다그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법은 누구나 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바. 우리는 연분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시간을 다그치면 아마 법을 얻지 말아야 할 사람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시간을 연장하면 아마 법을 얻지 말아야 할 사람이 들어오는 이러한 문제가 존재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는 우리를 교란하고 파괴할 수 있다. 그는 믿지 않으므로 교란 작용을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 문을 크게 열어 놓았으므로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지, 오로지 당신이 배우기만 하면 우리는 당신을 책임진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보아야 한다.

불법(佛法)은 박대정심(博大精深)하다. 우리가 오늘 말하는 이 법은 불법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뛰어넘는 것으로서, 전체 우주의 이런 법, 전체 우주의 이런 특성을 말한다. 이 방대한 우주, 그것은 매 한 층에 모두 우주의 특성이 있는데, 바로 眞(쩐)・善(싼)・忍(런)이 매 한 층 경지 중에서 체현되어 나오는 법리(法理)이다. 매 한 층차 중의 법리는 모두 매우 방대하며 매우 크고 복잡하다. 당신이 그 한 층의 이치를 똑똑히 말하려고 생각한다면, 아마 일생을 다 보내도 그것을 완전히 다 말해 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이처럼 크고 복잡하다. 모두 알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는 여래 이 한 층차에서 사람과 그의 수련제자에게 설법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의 일생을 다 썼어도 다만 그의 그 한 문(門)의 것을 말했을 뿐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말하기를, 수련에는 8만 4천 법문이 있다고 했는데, 이 속에는 아직 도가(道家)를 포함하지 않았다. 중국 도가에서는 그들에게 역시 3천6백 법문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서양 종교의 그런 신(神)의 수련방법을 포함하지 않았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가 말한 8만 4천 법문 역시 다만 여래 이 층차에서 이 범위 중의 인식을 말한 것이다. 그럼 이 범위를 초월하면 그는 얼마나 많은 수련방법이 있는지 모르고, 그는 얼마나 많은 부동(不同)한 여래불(如來佛)과 기타 증오(證悟)한 법리(法理)가 있는지를 모른다. 그것은 대단히 큰 것이다. 말하자면, 불법은 망망대해로 형용해도 다 형용할 수 없다. 우주가 얼마만큼 크면 이 법도 그만큼 큰 것으로 이와 같은 개념이다.

나는 오늘 다만 사람의 언어로, 오늘날 인류의 가장 알기 쉬운 통속적인 언어로, 개괄적으로 대단히 크고 대단히 높고 깊은 우주 전반의 이런 개황(槪況)을 여러분에게 말해 주겠다. 정말 이 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고 이 법(法) 속에서 수련할 수 있다면, 당신들이 체오(體悟)한 것의 높고 깊음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바,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은 차츰 체오(體悟)함이 더욱더 많아질 것이다. 당신이 『전법륜(轉法輪)』을 읽으면 읽을수록 명백해짐이 더욱 많을 것이다. 당신의 근기가 아주 좋아 이 대법 중에서 수련한다면 정말로 수련하기에 충분하다. 당신이 얼마만큼 높이 수련하려고 한다면 그 법, 그는 그만큼 큰 것으로서 이 법은 너무나도 박대(博大)하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는 『전법륜(轉法輪)』 이 책에서 이미 말했다. 나는 말하기를, 그 속의 법리(法理)는 매우 박대(博大)하며 당신이 매 한 글자의 배후를 본다면 모두 층층 첩첩 무수한 불도신(佛道神)으로, 다 헤아릴 수도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매 한 층차에는 매 한 층의 이치가 있고, 매 한 층에는 매 한 층의 불(佛)・도(道)・신(神)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법이 얼마나 크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사실 나는 여전히 다만 그것을 개괄적으로 여러분에게 말했을 뿐이다. 진정한 이해는 당신이 착실하게 수련하는 중에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닦으며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이치를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절대로 『전법륜(轉法輪)』 이 책을 보았고 동작도 알았으니 됐고, 좋은 줄 알았으니 연마하면 된다고 여기지 말라. 당신이 제고하려고 한다면 전적으로 그 책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반복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 책을 보면 당신은 바로 인식하게 되고, 바로 제고하게 된다. 우리 원만에 이르는 수단 ― 연공을 보태면 당신은 끊임없이 당신의 층차를 제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절대로 내가 한 번 보았는데 역시 좋다고 느꼈고 여러 사람을 따라 연마하면서 절대 연공도 끊이지 않았다고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 법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반드시 법을 배움에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 우주는 이처럼 크며 구조 또한 그처럼 복잡하다. 내가 여러분에게 공간의 구성을 말한 적이 있다. 예컨대 물질은 분자와 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조성된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 역시 이러한 입자로 조성된 것이다. 지금 과학이 인식하는 입자는 분자・원자・중성자・원자핵・전자가 있으며, 다음으로는 쿼크・중성미자가 있다. 더 아래로는 무엇인지 현재의 과학은 모른다. 그럼 내가 말한 것은 매 한 층의 이러한 입자가 존재하는 그 경지인데,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층차면(層次面)이라고 부른다. 사실 입자의 분포는 면이 아니며, 그 하나의 층차 중에 어느 곳이든 다 있는 것으로 면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에게는 이 용어가 없으므로 그를 면이라고 부르자. 다만 이렇게 형용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경지 중에서, 그 한 층 입자의 경지 중에서 그것은 하나의 공간을 구성한다. 입자와 입자 사이는 공간이며 입자 자체의 속 또한 공간이다. 입자는 또 부동한 크기의 입자를 조성할 수 있으며 그 같은 입자가 조성한 부동한 크기의 입자 사이도 공간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저번에 여러분에게 말했던 공간의 개념이다.

예전에는 말하기를, 줄곧 원자에서 분자 사이의 그것은 하나의 광활한 공간이며 우리 사람은 분자로 조성된 가장 큰 한 층 입자와 우리가 본 별, 이 층의 입자 사이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사람은 이 공간 중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별 그것 역시 한 입자이다. 더 큰 데로 간다면 그 은하계, 그것 역시 외각(外殼)이 있는 것이다. 그 은하계와 무수한 은하계가 마찬가지로 우주 중에 분포되어 있는데, 그것이 하나의 공간을 구성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 역시 연대(連帶)가 있다. 그렇다면 은하계 밖에 또 하나의 우주 범위가 있다. 그럼 이 우주의 범위, 그것은 한 층의 입자가 아닌가? 그것 역시 한 층의 입자이다. 이 우주는 그야말로 큰 것으로, 크기를 말할 방법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우주와도 같은 우주 삼천 개가 또 더욱 큰 한 층의 우주를 구성하였으며, 그 바깥에는 외각이 있는 것으로서 그것은 또 더욱 큰 한 층의 우주 입자이다. 내가 방금 말한 입자는 한 점에서부터 전개한 것인데, 사실 매 한 층 입자는 모두 천체(天體) 전반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바로 내가 방금 말한 이것도 단지 두 층 우주에 불과한 것이나 당신들은 이미 불가사의하다고 여긴다. 사실 미래의 인류과학도 인식할 수 없으며 인류는 영원히 그처럼 높이 인식할 수 없다. 여기까지 말한다 해도 이 한 층 입자는 이 넓은 우주 중에서 그것 역시 한 알의 먼지에 불과하며, 또한 한 알의 작고도 작은 먼지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이 우주, 그가 얼마나 큰지를! 내가 이전에 줄곧 여러분에게 말한 것이 바로 이런 공간이다.

저번에 나는 또 이 공간의 구성을 말하였다. 그것은 이 원자와 분자 사이, 별과 분자 사이의 이런 공간 외에 매 한 층의 원자 입자는 또 부동한 크기의 입자를 조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부동한 크기의 입자층 중에서 그것은 또 공간이다. 분자를 예를 들어 말한다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분자와 원자 사이는 공간이다. 그럼 원자가 분자를 조성하려면 곧 상당히 많은 원자가 함께 배열되어야만 분자로 조성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일 좀 적은 원자 입자로 조성된 이 더욱 큰 한 층의 입자는, 그것과 많은 원자 입자로 조성된 더욱 큰 입자 사이는 곧 또 한 층 공간이다. 내가 말했듯이 분자는 가장 표면적인 형상, 우리 사람이 볼 수 있는 어떤 물체든지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인데, 강(鋼)・철(鐵)・물・공기・나무를 포함하며 우리 인체를 포함한다. 이것은 분자로 조성되었으며 가장 큰 한 층 입자로 구성된, 사람이 볼 수 있는 이 층의 표면 물질이다. 그럼 분자, 그것은 또 이 가장 큰 분자 입자보다 약간 작은, 뒤에서부터 세어 제2층이 되는 입자를 조성할 수 있으며 그것은 또 뒤에서부터 세어 제3층 입자를 조성할 수 있는데, 모두 분자로 조성된 것이다. 분자는 부동한 크기의 입자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는 또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 우주는 매우 복잡한 것이다. 또 이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매 층 공간 속에 그것은 또 종향(縱向)적인 것이 존재하고 있는데, 바로 부동한 층차의 공간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부동한 층차의 마치 그 종교가 인식한 얼마나 많은 층천(層天)이라는 이러한 공간이다. 또한, 부동한 층차의 그 공간 중에는 또 부동한 단원세계(單元世界)가 존재하고 있으며 매우 복잡한 것이다. 나는 다만 여러분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런 한 가지 현상을 말했을 뿐이다.

사실 이런 공간 외에 또 일종 조잡한 공간이 있는데, 바로 가장 표면적인 공간이다. 나는 늘 여러분에게 말했다. 물론 저번에도 어떤 사람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내가 『정진요지』 중에서 말한, “인류사회는 바로 가장 중심에 있고 가장 외층에 있으며 가장 표면에 있다.”라고 한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의 가장 표면적인 함의를 이 우주의 이치에 따라 말한다면, 안팎이 없는 것이며 또 인류가 인식하는 그런 크고 작은 개념이 없는 것으로서, 우리 사람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나는 오늘 이 ‘밖(外)’을 말하겠다. 무엇 때문에 인류는 가장 변두리이며 가장 외면(外面)이라고 하는가? 무슨 뜻인가? 바로 내가 이전에 말했던 이 공간 외에 또 다른 공간이 있다. 이런 공간은 마치 우리 오늘날 인류가 생존하는 이런 공간과 같으며 신(神)이 있는 공간과는 뚜렷이 다르다. 내가 이전에 말한 공간은 모두 더욱 미시적인 고에너지 물질로 조성된 것이다. 내가 오늘 말하는 이 공간은 표면물질로 조성된 것이다. 이런 표면물질 속에 많고도 많은 부동한 원소, 부동한 입자가 존재하고 있다. 이 아주 특수한 표면 공간은 마치 우리 사람과도 같다. 당신 신체 속에 부동한 크기의 세포가 있는데 역시 입자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은가. 세포 표면에는 모두 한 층의 껍질(皮)이 있다. 그럼 줄곧 우리 인체 표면 피부(皮)에 피부를 구성하는 입자의 껍질(皮)까지 인체의 표면 입자의 껍질은 사람표면의 살가죽(肉皮)을 구성하였다. 이 껍질은 극미시 하에서 그 역시 하나하나 극히 광활한 공간이다. 신체 속의 그 입자의 껍질로 구성된 살(肉)의 조직과 표면 이내의 구조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 우주 역시 이러하다. 물론 그것은 몹시 복잡한 것이다. 우리 사람이 생존하는 이 공간, 그것은 어떤 형태인가? 예를 들어 말한다면 모두 입자로 구성된 것이며 얼마나 큰 입자에서부터 얼마나 작은 입자가 있든지 간에 입자마다 모두 외각이 있다.

나는 오늘 실질적으로 여러분에게 이 외각을 말했다. 이런 외각은 비록 입자가 입자를 감싸고 입자가 입자를 감싸도 어떤 입자는 마치 속에 있는 것과 같다. 지구는 바로 중간 위치이다. 사실 그것들은 모두 밖에 속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왜 사람은 가장 밖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가장 밖에 속한다. 그것들은 가장 밖의 피각(皮殼)과 연계를 발생하기 때문이다. 피각(皮殼)은 하나의 독립적인 체계이며 우주는 가장 큰 외각이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이 가장 큰 외각과 연계를 맺고 있다. 우리 이 인류 육체가 존재하는 공간 역시 이런 형식이다. 이 공간 중에는 이 공간의 특징이 있으며 그것과 그 신(神)의 세계와 내가 이전에 말했던 그 공간은 뚜렷이 다르다. 우주 속의 모든 일체 물질의 내원은 모두 이러한 공간에서부터 온다.

오늘 어떤 사람이 나에게 향을 피우는 문제를 물어 왔다. 나는 이쪽의 물질이 소실된 후 저쪽의 물체는 곧 해방되며 석방되어 나간다고 말했다. 동시에 이쪽의 물체는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이쪽의 물질은 저쪽에 대해 말하면 아주 진귀한 것이다. 이쪽의 물질은 연소를 거쳐 이미 변화가 발생했는바, 물질이 이쪽에 있을 때와는 이미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에 한마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당신이 지상에서 수련하여 한 줌의 흙을 갖고 갈 수 있다면 위에서는 모두 당신이 대단하다고 여길 것이다.”라고 했는데, 바로 이 뜻이다. 남들은 극락세계는 어디나 모두 금이라고 한다. 그럼 당신이 극락세계로 가면 돌 하나, 먼지 한 알도 없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럼 당신이 이 물질세계에서 그것을 좀 가지고 간다면 바로 극히 진귀한 것이다. 우리 사람은 한마디 말이 있는데, ‘흔치 않을수록 귀하고, 적을수록 기이하다.’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 꼭 이러한 것은 아니지만, 곧 이런 뜻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속의 일체 물질 내원은 역시 이쪽에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사람이 특별히 이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며, 이 우주 중의 기제(機制)가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진일보로 이 표면으로 구성된 세계를 말하겠는데 바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 별이다. 별마다 또 그것의 다른 공간이 있으며 많고도 많은 부동한 입자로 구성된 공간이다. 그러나 입자로 구성된 가장 큰 표면의 이 한 층 공간은 즉 바로 그것의 껍질이며 그것의 가장 표면이다. 방금 나는 인체를 놓고 비교하였다. 이 우주를 놓고 비교한다면, 우리 사람이 사는 이 우주는 바로 이 우주의 외각이다.

이 우주는 너무나도 큰 것이며 우리는 또 실제로 이 우주 중간에 있다. 그러나 내가 방금 말했듯이, 입자가 부동한 입자에 포위된 것 같지만, 사실 당신은 역시 밖에 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존재하고 있는 이 공간의 구조, 물질, 연계는 모두 외면 공간의 그러한 체계로서 외면 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인데, 그것은 이러한 상황이다. 아울러 나는 또 말했다. 석가모니 부처는 모래알 하나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들어 있다고 했다. 사실 역시 그 모래의 입자 표면으로 구성된 미시적 공간 속에 많고도 많은 부동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더욱 명확하게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바로 이 모래의 외각(外殼) ― 껍질(皮)은, 모래를 구성하는 각층 입자의 외각을 포함하여 우리 이쪽의 물질 공간과 같은 체계이다. 분자로 조성된 부동한 크기의 입자 중의 많고도 많은 생명, 생명의 형태와 우리 인류 생명의 형태는 똑같다. 다시 말해서 모래 속에 존재하는 그 사람과 우리 사람은 똑같다. 흑인이 있고 백인이 있으며 황인종이 있다. 또한, 장래에 당신들은 아주 괴상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인데, 바로 그들의 옷차림이 우리 고대인과 모두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이 세계의 더욱 미시적인 데서도 일종 전반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이전에는 말하지 않았다. 바로 부동한 미시적 세계에도 일정한 천체범위(天體範圍)가 있다. 방금 말한 것은 모래의 입자로 구성된 그것의 천체 범위이다.

우리가 말하는 그 미시적 세계 속에 존재하는 그런 생명, 그들은 또 다른 체계이며 또 다른 천체 생명의 체계이다. 그 속에도 그들의 불(佛)・도(道)・신(神)과 사람・동물・물질・산(山)・수(水)・천(天)・지(地)・공기와 그들의 그 미시적 우주 중에 존재하는 일체 물질이 있다. 게다가 또 더욱 미시적이고 더더욱 미시적인 이러한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 과거에 수련한 많은 사람이 그 미시적인 세계 속에서, 그 작고도 작은 모래・흙・돌에서, 그 미시적 세계에서 나온 부처를 본 적이 있다. 그 부처, 그는 아주 크게 변할 수도 있다. 이 체계보다 더욱 작은 한 층 체계 속에도 불(佛)・도(道)・신(神)・인(人)이 있으며 그의 그 부처도 변화되어 나와 우리 이 세계 속으로 올 수 있는데, 그가 부처이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나 크게 변할 수 있는가? 그는 가장 크기로는 은하계만큼 이렇게 크게 변할 수 있다. 그가 작기에는 종적도 없다. 그는 그 미시적 세계 속의 부처이기 때문에 우리 천체 속의 부처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생긴 형상은 같으며 수련하는 요구 역시 모두 같고 마찬가지로 위대하며 역시 마찬가지로 眞(쩐)・善(싼)・忍(런), 이 법이 위에서 아래로 관통하여 내려온 것이다.

이 우주는 그야말로 너무나도 오묘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더욱 더욱 작다 해도 여전히 더욱 작은 그 불(佛)・도(道)・신(神)・사람・물질이 존재하는 그런 천체(天體)가 있다. 하지만 단지 모래 한 알 속에만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물질, 크고 작은 입자, 내외(內外)의 일체 입자의 껍질(殼)에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나는 방금 미시적인 데로 말했는데, 이 방대한 천체가 일정한 정도로 커졌을 때, 곧 우리 이 천체의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이 천체의 범위는 또 이 우주란 용어로 개괄할 수 없으며 이 개념과 완전히 다르다. 우주가 커져서 어느 경계에 이르면 갑자기 우주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에 도착하게 된다. 더욱 멀리 가면 더욱 큰 천체가 존재하는 것을 또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 이 천체와 전혀 다르다. 내가 말하는 이 천체는 우리 이 우주 개념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럼 그 더욱 큰 천체 중의 그 불(佛)・도(道)・신(神)은 특별히 크며, 그가 우리를 보면 마치 우리가 미시적인 세계, 미시적인 천체 속의 불(佛)・도(道)・신(神)・사람・물질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또 하나의 체계이며 그 크기란 대단하다. 그들은 우리 사람들을 볼 뿐만 아니라, 그는 우리 이 천체도 보는데, 마치 우리 사람이 출토된 문물을 보는 것과 같다. 그는 아주 이상하고 또 아주 오묘하며 또 참으로 좋고 참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도 이 생명이 오묘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한다. 이 작디작은 천체 속도 생기가 충만하다고 그 역시 이렇게 본다. 하지만 그는 우리와 같은 생명이 존재하는 그런 천체 범위 내의 개념이 없으며 전혀 없다. 그가 볼 때 당신은 바로 그 미생물의 생명이며 그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 수련하는 많은 사람이 늘 그 돌・모래 속, 심지어는 더욱 작은 미시적인 입자 속에서 그런 광경을 보고 느끼는 감수와 같은 것이다.

우리 어떤 수련생이 천목이 열렸을 때, 자신의 천목 속에 산이 있고 물이 있으며 자신이 밖으로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듯이 밖으로 달리며 많고도 많은 산하(山河)를 지나고 심지어 많고도 많은 도시를 지나며 줄곧 천목 안에서부터 밖으로 내달린다. 당신이 본 광경을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것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며 그것은 진실하고도 진실하게 바로 당신, 이 머릿속의 이 세포이며 더욱 미시적인 이 입자가 조성한 그것의 그 세계의 존재형식이다. 나는 늘 말했다. 만약 당신이 볼 수 있다면 하나의 솜털에도 많은 도시가 있으며 또 그 속에서 기차가 달리고 자동차가 달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듣기에는 허황하고도 허황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 세계는 바로 이처럼 방대하고 복잡한 세계이다. 우리 지금의 과학 인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나는 늘 말했다. 지금의 과학, 그것은 건립되기 시작할 때부터 불완전한 인식, 그릇된 기점에 서서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오직 이 틀 속에 국한될 뿐이다. 진정한 과학을 말한다면, 우리가 이 우주 생명 물질을 진정하게 요해(了解)한 정황에 근거하여 말한다면, 지금의 이 과학은 과학으로 여길 수도 없다. 이 과학의 이 한 갈래 길로서는 이 우주의 오묘함을 영원히 탐측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다만 사람 자신이 우주 중의 유일한 생명이라고 믿는데, 그는 너무나도 가련하며 이런 정도로 가련하다. 외계인의 존재,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외계인이 우리 지구에 왔던 것이며 일부 사진까지도 찍었지만, 그는 도무지 믿지 않는다. 그는 바로 이 과학에 의해 속박당하였다. 감정으로 처사하는 사람 역시 연구하지 않아 이지가 분명치 않다. 그는 다만 사람에게 이미 접수된 것만 믿으려고 하며 그것이 진정으로 맞거나 맞지 않거나 다만 책에서 배운 것만 믿으려고 한다. 이것이 내가 말한 이런 공간형식이다. 인류의 언어는 아주 제한되었기 때문에 표현하려면 나마저도 몹시 곤란하다고 느끼는데, 나는 여러분이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박수)

우리가 인식하는 불(佛)・도(道)・신(神), 우리 사람을 포함하여 우리가 본 일체 물질이 존재하는 공간, 이 속에는 무수한 우주, 헤아릴 수 없는 우주를 포함하고 있는데, 조(兆)로 계산해도 다 계산하지 못한다. 이처럼 큰 하나의 천체 범위, 그것은 하나의 독립적인 체계이다. 그럼 이 체계 밖을 초월하면 또 더욱 큰 천체의 존재가 있으며 그것은 또 하나의 독립적인 체계이다. 그럼 그것을 초월한다면 또 더욱 크고, 더욱 크고, 더욱 큰 천체가 존재하는데, 이 우주는 바로 이처럼 방대하다. 미시적 세계 중에서 그것은 또 극히 미시적이고, 극히 미시적이다. 우리 사람이 생존하고 있는 이 경지는 거의 중심위치에 있으며 거시적으로 보나 미시적으로 보나 인류 세계는 거의 중심위치에 놓여 있다. 부동한 입자가 부동한 공간을 조성하였지만, 이것 외에 또 특수하게 부동한 입자로 조성된 표면 세계가 있다. 여러분 알다시피 내가 중국에 있을 때 어떤 수련생은 말하기를, 어떤 제자의 元神(왠선)이 신체를 떠나 우리 이 물질공간의 태공(太空) 속으로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왜 부처의 세계를 보지 못했고 신(神)의 세계를 보지 못했는가? 그가 본 것은 완전히 우리 이 물질공간의 진실한 광경인데, 오히려 신(神)이 없는가? 그는 사람의 생존 공간인 피각(皮殼), 이 공간 속으로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물질 공간 형식이기 때문에 그가 보는 것은 이런 정황이다. 이것이 내가 말한 이런 공간의 존재 형식이다.

우리 어떤 수련생이 나에게 이런 말을 물었다. “사람의 생명은 어떻게 온 것입니까?” 내가 물질의 본원(本源)을 말했기 때문에 나도 이 문제를 말하겠다. 여러분은 내가 과학을 말한다고 여기지 말라. 불법(佛法)은 일체를 포함한다. 나는 이전에 물질 본원을 말한 적이 있다. 본원은 무엇인가? 나는 줄곧 여러분에게 이 물질의 본원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방금 말한, 이처럼 부동한 큰 천체의 본원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에게 우리 이 천체 내의 부동한 경지 중에 존재하는 물질과 생명의 본원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다. 사실 물질의 본원은 바로 물이다. 우주 본원의 물이지, 속인 지구의 물이 아니다. 왜 물질의 본원, 그것을 물이라고 말하는가. 부동한 층차의 가장 미시적인 물질은 일정한 때가 되면 물질이 없어진다. 물질이 없어진 후에는 물질의 과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 보면 곧 한 가지 문제를 발견한다. 물질 입자의 존재를 볼 수 없는 그 조용하고도 조용한, 통상적으로 나는 그것을 보통 사수(死水)라고 부르며 또 본원이라고 부르는데, 생명이 없는 물임을 발견한다. 그것은 당신이 한 덩이 물건을 던져도 잔물결이 일어날 수 없으며 소리가 진동해도 파동이 생길 수 없는바, 완전히 정지되어 있다. 물질의 가장 기본적인 조성은 바로 이런 물에서부터 온다.

어떻게 조성되는 것인가? 이 우주 중에는 법이 있다. 이 법은 바로 우리가 말하는 眞(쩐)・善(싼)・忍(런)이며, 이런 우주의 특성이 이 물을 가장 초기적이며 가장 미시적이고 가장 원시적인 물질의 단일입자로 조성하는데, 그것을 최고원시입자(最原始粒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일한 것이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즉 마치 하나의 수포(水泡)와도 같다. 그럼 다시 두 개의 원시적인 입자를 한데로 합쳐 다시 더 큰 원시 입자를 조성하고 그다음 또 두 세트의 양위일체(兩位一體)의 입자로 좀 더 큰 입자를 합성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조합하여 내려간다. 줄곧 부동한 층차의 입자가 각종 물질의 외형・생명・물질・공기와 생존에 필요한 빛・물・시간 등등 등등을 조합하는데, 입자는 부동한 조합 방식이 있을 수 있는바, 우리는 오늘날 배열순서라고 부른다.

입자의 배열순서, 그것은 부동(不同)한 것으로, 그렇다면 그 한 경지 중의 표면적 물질도 부동하게 구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미시적인 데에서 거시적인 데로 더욱 큰 입자, 더욱 큰 입자로 조합을 이루어 최후에는 우리 오늘날 인류가 인식하는 중성미자・쿼크・전자・중성자・원자핵・원자・분자로 조합을 이루었다. 우리가 인식하는 표면물질에서부터 더욱 큰 천체에 이르기까지 조성한다. 이 표면물질이 이 일보까지 조합되었을 때 그것의 배열순서 변화가 다양함으로 말미암아 이 표면물질의 차이는 곧 상당히 크다. 그러나 우리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이 나무, 그것은 분자로 조성된 것이며 이 철, 그것 역시 분자로 조성된 것이고 플라스틱 역시 분자로 조성된 것이다. 우리 이 공간의 물을 포함하여 그것 역시 더욱 미시적인 물이 조합되어 더욱 큰 입자로 구성된 물 분자를 이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한다. 그것이 기왕 더욱 미시적인 데에서 표면물질을 조성하였다고 한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는데, 전반적으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이 우주는 바로 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런 물은 밀도가 극히 큰 것이며 전혀 움직이지 않는 물로서, 그것으로 구성된 것이다.

여러분은 아마 고대의 어떤 사람이 말한 신화를 들었을 것이다. 어떤 수도인(修道人)이 돌에서도 물을 짜냈다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들어보면 우리 지금 사람의 사유 관념, 지금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당신이 신화(神話)를 이야기하며 아라비안나이트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것은 확실하고도 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 물질은 모두 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강철에서도 물을 짜낼 수 있으며 심지어는 녹여 물이 되게 할 수 있는데, 더 단단한 물질의 기본 입자도 모두 물에서 내원(來源)한다. 만약 이 각도에서 불법 신통을 이해한다면, 내 생각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것으로, 그는 그렇게 큰 위력이 있으며 그는 그것을 원시 물질로 되돌릴 수 있다. 방금 내가 말한 이런 형식, 그것은 단계적이며 부동한 큰 층차 중에는 부동한 이런 물이 있다.

우리는 또 한 문제를 발견하였다. 방금 내가 말했듯이, 우리 이 물 역시 아주 미시적인 그 물로 조성된 더욱 큰 한 층의 입자이며, 최후에 물 분자로 조성되었고 우리 이 세계의 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부동한 층차의 본원적인 물은 또 인류 물질세계보다 더욱 큰 한 층 입자를 조성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런 다음 또 그것의 그 물을 조성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내가 방금 말했듯이 이 우주로 말하면 우주의 최종이 무엇인지를 나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줄 수 있다. 부동한 층차 중에는 부동한 물질의 본원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부동한 물질 본원의 물이 존재한다. 더욱 위로 올라갈수록 그 물의 밀도는 더욱 크다. 그것은 가히 부동한 공간의 부동한 입자, 부동한 물, 부동한 생명을 조성할 수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인체, 강철, 일체는 모두 우리 이 공간의 생명과 물체이다. 바로 우리가 인식하고 사람이 접촉할 수 있는 생명,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생명은 사실 역시 이 물에서 온 것인데, 다만 속인 세계의 물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가장 표면적이며 그 움직이지 않는 본원의 물로 인류의 이 물을 조합했다. 이 차이는 아주 크다. 우리 사람의 눈으로 보는 생명물질 역시 이 물로 조성된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채소를 손으로 꽉 쥐고 비틀고 비틀면 최후에 아무것도 남지 않으며 모두 물이다. 과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과학자는 인체의 70%는 모두 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뼈, 머리카락마저도 모두 물 분자로 조성되었음을 여전히 모른다. 다만 이러한 것은 더욱 미시적인 물로 조합된 입자로 구성되었을 뿐, 사실은 모두 물이다. 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우리 이 물질공간의 일체는 모두 물로 조성된 것이다.

이 미시적인 물질은 표면적으로 부동한 물질을 조성할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의 입자 배열순서가 부동하게 조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마술(魔術)을 할 수 있다면, 물론 과거 많은 사람은 마술을 할 줄 알았는데, 그 물을 얼음으로 변화시키거나 한 물체를 다른 물체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듣기에는 아주 허황하나 사실 조금도 허황하지 않다. 당신이 만일 그것의 분자 배열순서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물건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물질 표면의 형상을 바꾸는가? 물론 형상은 바꾸기가 더욱 쉬운 것으로, 형상이 바뀌기만 하면 곧 다른 물건으로 된다. 층차가 더욱 높은 불(佛)・도(道)・신(神)일수록 그는 이러한 위력을 더욱 갖춘다. 여러분 알다시피 사람은 몹시 저능(低能)한 것인데, 어떤 정도로 저능한가?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완성하려고 하면, 한 가지 일을 하는데 직접 손발을 움직여야 하며 당신의 육체노동을 거쳐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부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부처는 오로지 사상으로 생각만 하면 된다. 부처는 많은 신통이 있고 많은 공능이 있으며 그 자신은 또 강대한 공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공의 매 미립은 모두 그 본인의 형상이며 그 미립은 또 더욱더 작은 미립으로 조성된 것으로서 모두 그의 형상이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가 척 생각할 때에 그 공은 곧 나간다. 극히 미시적인 데서 그 부동한 층차의 입자 구조를 바꾸며 시간 또한 가장 빠른 공간의 시간이기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 부처가 일함은 대단히 빠르며 우리 이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일순간에 그는 가장 기초적인 데서부터 그 물체를 다른 물건으로 바꾼다. 이것이 바로 불법 신통이 작용을 일으키는 원리이다. 왜 부처는 생각만 해도 그것이 곧 변할 수 있는가? 부처가 생각하면 공(功)의 무수한 입자와 무량(無量)한 지혜는 곧바로 각 층차에서 동시에 개변시키고, 정체(整體)적으로도 하고자 하는 일체로 개변시키며, 그의 공의 더욱 큰 과립 또한 그것의 표면을 개변시킨다. 한 물체, 그것의 가장 기본적인 입자에서 표면 입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의 공이 미시적인 데서 표면에까지 동시에 개변시킨다. 그는 그 한 가지 일을 일순간에 변화시키며 일순간에 이루어낸다. 없던 데에서 있는 데까지, 그는 가히 공기 중에 존재하는 분자, 입자로 당신이 볼 수 있는 물체를 조성하는데, 이것이 없던 데에서 있는 데까지이다. 왜 불법 신통은 이처럼 큰 힘이 있는가? 인류의 과학기술은 영원히 여기에 도달할 수 없다.

인류가 과학기술을 통해서는 불법의 역량에 도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과학기술의 발전 중에서 도덕도 따라 승화되지 않기 때문인데, 이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람은 이 과학기술이 발전할 때 모두 한 가지 일을 완성하려 아주 강한 집착심을 가지게 되고 또 이 우주의 법리에 어긋나므로, 心性(씬씽)이 그런 높이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는 또 칠정육욕・각종 집착심・쟁투심・질투심・환희심・탐욕심 등등 많고도 많은 것이 있다. 만일 정말로 그런 높은 과학기술 수단이 있다면 이 우주는 곧 성구대전(星球大戰)이 일어난다. 정말 우주대전(宇宙大戰)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불(佛)・도(道)・신(神) 역시 허용하지 않는바, 절대 사람이 우주에 화란(禍亂)을 일으킬 수 없도록 한다. 그러니까 신(神)이 인류를 제약하고 있다. 인류도덕이 제고되지 않고서는 과학기술이 그처럼 높게 도달함을 허용하지 않는바, 절대 불가능하다.

내가 늘 말했듯이 인류는 부동한 역사 시기를 거쳐 오늘까지 발전하였다. 다시 말해서 인류는 여러 차례 부동한 역사 중에서 겁난을 거쳐 훼멸되었던 것이고 그런 다음 또 새롭게 생겨났는데, 이런 부동한 주기적 변화를 거쳐 온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수련계에서는 모두 이런 현상을 발견하였다. 즉 매번 인류가 위험한 경지에 처했거나 혹은 역사에 따라 도태될 때는 모두 인류도덕이 극단적으로 부패했을 때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희랍문화가 어떠어떠하게 좋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지금 희랍문화에 한 가지 문제가 발견되었는데, 즉 그 희랍문화가 남겨놓은 문화는 틀림없이 그것이 발전한 최후시기의 것으로서, 우리는 그 속에 동성애와 무슨 성적으로 난잡한 것이 있고, 게다가 생활이 몹시 사치스럽고 부패하여, 몹시 타락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인류가 이미 몹시 부패했음을 볼 수 있다. 왜 그것이 소실되었는가? 바로 그것의 도덕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단지 인류의 외형만 있다고 하여 그를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왜 그 귀신, 그것을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당신보다 한 층의 입자가 적을 뿐이다. 왜 그 원숭이, 오랑우탄, 그것을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왜냐하면, 사람은 단지 사람의 사지 몸통만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사람의 도덕규범, 도덕관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의 도덕관념을 잃고, 사람의 도덕규범을 저버리고, 사람으로서 준칙을 저버린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인류사회를 내가 솔직하게 여러분에게 알려주자면, 신(神)은 이미 그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래도 사람이 위험하지 않단 말인가? 정부가 허용하고, 국가가 허용하며 민족이 허용하고, 심지어 당신의 이 사상 경지 중에서 당신의 의식 중에서 당신이 인가한다 해서 그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오늘 이 사회를 보라. 마약 흡입・마약 판매・마약 제조・성 전환・동성애・성 해방・마피아 등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이기적인 것과 욕망은 사람마다 적으로 대하게끔 하며 정념(正念)이 조금도 없다. 인류사회를 부패시키는 각종 현상이 곳곳에 다 있다. 각 업종 중의, 무슨 현대파 예술, 무슨 재즈 음악, 축구장의 마성(魔性) 대폭발 등등이다. 사회 전반의 모든 분야를 관통하고 있다. 인심(人心)이 나쁘게 변하자 관념마저 모두 거꾸로 되어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고,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간주하는데, 사람의 관념이 모두 거꾸로 되었다. 금전(金錢)과 명리(名利)를 강취(強取)하고, 투쟁철학을 선양하는바, 마피아의 우두머리가 우아한 자리에 올라앉았다. 당신들이 말해 보라. 이것이 그래도 사람인가?

요즘 중학생이 입은 바지를 보면, 허리띠는 엉덩이에 매고, 아래쪽 바짓가랑이는 마치 한 뭉치 창자와도 같이 너덜너덜하다. 허리띠는 헐렁헐렁하고, 머리는 양쪽을 박박 깎아버려 위가 마치 집의 처마 같다. 또 어떤 것은 중간에 단지 한 줄 머리카락만 남겨 귀신같지만, 그는 오히려 보기 좋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는 보기가 좋은가 좋지 않은가?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어떠한 미(美)적 개념도 없다. 여인은 검은색 복장에 마성적인 머리 모양으로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꼭 저승(陰間)의 귀신같다. 바로 사람의 관념이 거꾸로 되었으며 마의 장난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음침하고 어두운(陰暗) 것을 아름다움으로 간주하고 있다.

내가 그날 말했듯이, 요마귀괴(妖魔鬼怪) 형상을 한 장난감은 추악할수록, 흉할수록 더욱 잘 팔리고 그 예쁜 인형은 누구도 사가지 않는다. 사람의 관념은 전부 다 변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것이 두렵지 않단 말인가? 인류의 발전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주기적이다. 인류가 이런 일의 발생을 피하려고 한다면 오로지 한 가지 방법뿐인데, 바로 사람의 도덕을 수호해야 한다. 여러분이 보았지만, 지금 사회문제는 끝이 없으나 어느 정부에서도 해결하지 못한다. 민족문제, 국가와 국가의 문제, 민족 간의 갈등, 민족 내부의 갈등, 많고도 많은 사회적 범죄, 여러 면의 원인을 어느 정부에서도 모두 골치를 앓지만,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다. 왜 해결하지 못하는가? 그들의 방법은 모두 단지 이 현상 중에서 이 현상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현상은 억제되었지만, 이어서 그것은 또 더욱 좋지 못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당신이 다시 그것을 제약하면 그것은 또 더욱 좋지 못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인류가 제정(制定)한 법률은 바로 기계적으로 사람을 제한하고 사람을 봉폐시키는데, 법률을 제정한 사람을 포함한다.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을 봉폐하고, 봉폐하고, 봉폐함으로써 최후에는 사람이 봉폐되어 아무런 출로도 없다. 이 법률로 정한 것이 너무나도 많아 사람은 모두 마치 동물처럼 통제되고 있으며 출로가 없는데, 누구도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인류의 일절 좋지 않은 근원은 바로 사람의 도덕이 부패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인류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으며, 만일 이 문제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인류의 어떠한 문제든지 다 해결할 수 있다. 이 문제인가 아닌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마다 모두 내심에서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 하고, 모두 자신을 단속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그 사회가 어떠한 모양이겠는지 당신이 생각해 보라. 무슨 법률이 필요하겠는가? 경찰이 필요하겠는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단속하고 자신이 자신을 책임지고 있는데. 하지만 정치 선전이나 강권 통치는 마찬가지로 도덕을 승화하지 못 하게 하고, 반대로 졸렬하게 할 것이다. 세계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옴에 사람들은 모두 법치가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것은 방법이 없는 방법이다. 몇 천 년을 발전해 온 인류이지만, 과거에는 사람을 관리하는 그처럼 많은 법률이 없었다. 다만 간단한 왕법(王法)이 있었으며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은 德(더)였다. 그러나 옛사람의 도덕은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고상했다. 지금 사람은 옛사람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데, 사실은 당신이 지금 사람의 부패한 관념으로 옛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람이 지금 사람보다 총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의 대뇌 중 쓸 수 있는 부분은 여태껏 확대된 적이 없다. 다만 우리 지금의 사람이 자신을 대단하게 여길 뿐이며 자신이 총명하다고 여길 뿐이다.

사회의 발전도 신(神)이 배치한 것으로서, 당신이 이 일보까지 발전됨을 허용했기 때문에 현대화된 기계, 현대화된 설비, 현대화된 생활도구가 나타났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그것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겠는가? 다만 신이 그 일보에 배치하지 않았을 뿐이다. 현대인은 옛사람보다 조금도 총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 물질이 발전할수록 흔히 사람은 이 물질 현실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된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옛날 사람들은 만들어 내지 못하였는데 우리 현대인은 신선도 따라잡았다.’라고 생각한다. 비행기를 타고 어제 유럽에서 미주에 도착하는데, 이는 신선과도 같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호한(浩瀚)한 우주 중에 이 일체는 일찍이 있었다. 다른 세계 중에 일찍이 있었다. 사람이 좋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아래로 떨어졌으며 인류 여기까지 떨어져 왔고 이 지구로 떨어져 왔다. 사람의 사상 중에는 모두 선천적인 의식이 존재하는데, 다만 자신이 모를 뿐이다. 무슨 과학기술 수단을 거친 것이라든가, 무슨 자신의 과학기술이 어떻게 선진적이라든가, 무슨 비행기, 자동차를 만들어 냈다든가, 무슨 현대화된 물건 등이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다만 당신의 의식 중에 예전의 것이 있었을 뿐,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당신은 또 쓰레기를 쓰며 가장 표면적인 거친 물질을 또 만들어 내고는 사람이 그래도 괜찮다고 여긴다. 물론 인류는 바로 이렇게 떨어져 내려온 것으로 그가 좋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이 한 지경까지 떨어져 온 것이므로, 사람은 고생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류의 발전은 사람 자신이 어떻게 발전하려고 생각한다 해서 곧 어떻게 발전하고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편안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절대 안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위험하다. 이 사람이 겁난(劫難)을 말하고 저 사람이 겁난을 말하지만, 나는 여태껏 이런 일을 말하지 않았으며 또 소용도 없다. 있든지 없든지, 나는 그것을 말하지도 않는다. 있다 해도 우리 연공하는 사람, 좋은 사람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 오늘날까지 발전되어 왔음에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번거로움에 부딪혀 인류에게 출로가 없어지는 것을 확실하게 보았는데, 이는 틀림없이 인류 도덕의 부패로 말미암아 조성된 것이다. 방금 생명의 구성을 말하고 공간을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거꾸로 인류를 말한 것이다. 물질로 사람을 구성할 수 있음은 입자가 부동(不同)한 물질로 조합될 때 그것이 사람의 부동한 표면 물질로 조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분자의 배열순서가 뼈의 입자 배열 그러한 표면물질이면 곧 뼈이다. 살(肉)의 분자 배열순서로 배열되었다면 그것은 곧 살이다. 무엇으로 배열되면 그것은 바로 그것이다. 이는 곧 당신의 생명을 구성할 수 있는데, 설명하자면 아주 간단하다.

방금 나는 또 한 가지 문제를 말했다. 많고도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신(神)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고 어떠어떠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만든 것인지 구체적인 현상은 말하지 않겠다. 사실 어떻게 만든 것도 다 있다. 더욱 큰 신(神)은 생각만으로도 당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떠한 물체든지 모두 살아있는 것으로 당신의 외형을 만들어 낸 다음 다시 내장을 만들어 낸다. 사람의 인체는 몹시 복잡하다고 여기지만, 대지대각(大智大覺)한 신(神)으로 말하면, 작고도 작은 한 가지 일에 불과하다. 부처는 생각만으로 극히 미시적인 데에서, 물질로써 당신의 내장을 만들어 주는데 아주 빨리 만들어 낼 수 있다. 한 가지 물체가 형성될 때마다 한 생명이 주입해 들어가게 된다. 물론 사람은 또 副元神(푸왠선)이 있으며 많고도 많은 생명이 모두 와서 사람을 구성한다. 말하자면 바로 이런 상황이다.

예전에 과학계 사람들은 늘 쇠뿔을 파고들기를 즐기는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말한다. 내가 말한다면 닭도 없고 달걀도 없다. 바로 미시적인 물질이 거시적인 물질을 조성하였다. 작은 입자가 더욱 큰 입자를 조성하였다. 그런, 아직 물질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물질을 조성하였다. 더욱 큰 생명과 우리 이 생명은 비록 체적에서 볼 때 신체를 구성하는 입자가 같지 않으며 외형을 구성하는 크기가 같지 않으나, 생명 존재를 구성하는 그 물질은 아무리 커도 아무리 작아도 그의 표면 입자 배열순서는 같다. 예를 들어 말하면 더욱 큰 한 층의 그 사람, 그의 신체의 개개 입자가 만약 바로 별 이 층의 입자로 구성된 것이라면, 그의 살과 우리 사람 신체의 분자배열은 같다. 다시 말해서 별의 배열순서와 살을 구성하는 우리 분자의 배열순서는 마땅히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더욱 작은 한 층의 사람 역시 이렇게 구성된 것으로 더욱 작은 데까지이다. 이 문제를 나는 이만큼 말하겠다.

오늘을 끝으로 이 우주의 구조를 이미 다 말했다. 물론 상세한 상황은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스승님, 저희는 부처님이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물었다. 나는, 그럼 당신은 부처로 수련 성취하도록 하라고 했다. 사람은 부처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절대 그 개념이 있을 수 없다. 당신에게 말한다 해도 당신은 역시 사람의 환희심, 사람의 사상, 사유논리로 그를 대할 것인바, 그를 욕하고 그를 존경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 나는 다만 제한된 인류의 언어로 개괄적으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가 오늘 이 중국어를 선택하여 말함이 가장 적합하다. 왜냐하면, 중국어는 세계에서 표현력이 가장 강하고 내포가 가장 큰 언어이기 때문이다. 만약 영어, 혹은 다른 문자로 말한다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 일부 방언을 썼다. 규범적인 현대 중국어도 그것을 똑똑히 말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마 나의 말 중에 지방의 그런 언어가 있는 것을 들었을 것인데 아주 적합하게 그것을 형용할 수 있다. 게다가 단어 사용도 규범적이지 않다. 신팔고(新八股)도 더욱 깊은 내포가 없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표현할 방법이 없다.

또 한 가지 문제를 말하겠는데, 바로 여러분이 줄곧 아주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이다. 어떤 사람이 “스승님, 저는 연공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라고 한다. 우리는 이 볼 수 있고 볼 수 없는 것이 어찌 된 영문인지 말해 보자. 사실 내가 천목을 말할 때 이미 언급하였다. 사람에 대한 요구는 비교적 높으며 이치는 끊임없이 승화하는 것이다. 내가 더 말한다면 곧 인식을 초월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될 수 있는 한 나의 지난번 이야기와 통하도록 하겠다. 나는 더 진일보로 여러분에게 이 문제를 말하겠다.

우리 이 자리에 앉은 절대다수 사람은 모두 근기가 매우 좋다. 사실 당신이 수련하기 시작해서부터 오늘까지 시간이 짧더라도 당신 역시 마땅히 일부 것을 볼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가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할 것을 강조하고 요구함이 아주 엄격하므로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정말로 어렴풋이 무엇을 보았는데도 그는 감히 믿지 못한다. 이 속에 있는 몇 가지 원인이 당신으로 하여금 보지 못 하게 하고 볼 수 없음을 조성한다. 첫째, 바로 어떤 사람은 자신이 무슨 물건을 보든지 마치 자신이, 이 물질세계를 보듯이 똑똑해야만 비로소 보았다고 인정한다. 이것은 몹시 강한 장애이다. 그는 늘 사람의 사상개념으로 이 문제를 인식한다. 이런 것이 아니다. 당신이 만일 정말로 그처럼 똑똑하게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개오(開悟)한 것이며 100% 개오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때에 신(神)을 보면 사람을 보는 것보다도 더 똑똑하다. 왜냐하면, 그 세계의 입체감은 우리보다 강하고 공기는 우리보다 투명하며 물질은 우리보다 확실하기 때문인데, 더욱 똑똑하게 보인다. 바로 우리에게 이런 관념이 있기 때문에 똑똑히 볼 수 있어야 비로소 정말로 봤다고 여기는데, 이런 것이 아니다. 당신이 수련과정 중에서 보는 것도 당신으로 하여금 그처럼 똑똑히 볼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보아도 다만 흐릿할 뿐이다. 또한, 일부 특정한 사람은 비교적 똑똑히 보았으나 그가 본 것은 국부적이며 시각이 아주 좁다. 똑똑히 보는 부분은 다만 한 조각일 뿐이다. 시각이 매우 넓다면 본 것은 틀림없이 비교적 흐릿하다. 그렇게 똑똑하게 볼 수 없거나 혹은 다만 아주 낮게 아주 좁은 공간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이른바 현실적인 그 물질적 개념으로 자신에게 장애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이 한 가지 원인이다. 하지만 예외적인 것도 있는데, 날 때부터 아주 똑똑하게 보는 사람이 소수 있다. 더 말하지 않겠다.

또 하나 원인이 있다. 우리 많고도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늘 그것을 환각으로 간주하며 그는 늘 그것을 상상으로 간주한다. 초기에 이런 것도 있었다. 내가 특별히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여러분에게 말했다. 생각하지 말아야 하며 마음에 따라 변화하기에 당신이 생각만 하면 그것은 곧 변하며 당신의 마음에 따라 변한다고 알려주었는데, 우리 일부 사람은 이 관계를 바로잡지 못한다. 당신의 집착심, 환희심에 따라 조성하게 되는 그 원인 외에 또 한 가지 장애가 있다. 무슨 장애인가? 바로 당신의 이 사상이 무엇을 생각하는 것과 당신이 본 물체형상은 대뇌의 같은 구역에서 반영되어 나온다.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대뇌의 같은 부분이다. 사람이 보는 물체 형상은 당신의 눈이 분석해 낸 것이 아니며 시신경(視神經)을 통해 대뇌의 송과체 그 구역에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무슨 문제를 생각하여 형상을 생각해 냈을 때에도 역시 그 구역에서 작용을 일으킨다. 그럼 곧 일종 착각이 일어난다. 당신이 정말로 무엇을 보았을 때에도 워낙 흐릿하기에 당신은 생각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사실 생각한 것이 아니고 정말로 본 것이다.

과거의 많은 소도(小道) 수련이 그의 제자를 훈련할 때 그에게 일부러 생각하게 했는데, 당신이 보지 못해도 당신에게 생각하라고 한다. 최후에 생각할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생각할수록 더욱 분명해지는데, 그는 이렇게 그를 훈련한다. 소도 수련은 정과를 이루기 어렵다. 바로 누락이 있기 때문인데 이 자체가 바로 집착이다. 그는 그에게 한 물체를 보라고 하며 보지 못하면 당신이 생각하고 자세하게 그것을 보고 눈을 감고 더 생각하라고 한다. 생각할수록 분명해져서 곧 서서히, 마치 현실 속으로 온 것같이 상상하게 된다. 과거 소도(小道), 그것은 이렇게 훈련하였다. 소도이기 때문에 이런 집착을 그들은 집착으로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원만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아주 중하게 본다. 어떠한 집착이든 다 원만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는데 이 문제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당신이 본 것을 상상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연마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이 法輪(파룬)을 만약 어떤 사람이 어렴풋이 보았으나 자신이 생각한 것이라고 느낀다. 그가 운동하고 돌고 있는 것을 본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것은 당신이 본 것이다. 여러분이 한번 시험해 봐도 괜찮다. 내가 말한 것에 따라 한 번 보라. 나는 다만 이미 본 것을 생각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자에게 말한 것이다. 이런 감각이 없는 사람은 억지로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집착이다. 내가 방금 여러분에게 말한 것은 여러분에게 심리적 장애를 배제하도록 하려는 데 있으므로 절대 집착하지 말라. 여러분은 절대 그것에 집착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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