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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동부법회설법

 

李洪志
(1999년 3월 27~28일, 뉴욕에서)

 

본래 이번 법회는 미국 동해안 法輪大法(파룬따파) 제자들이 조직한 법 공부 교류회였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우리 이 자리에 앉은 많은 사람이 다른 나라 혹은 다른 지역에서 왔다. 여러분은 모두 사부가 이 회의장에 올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미리 알려주겠다. 앞으로 어느 지역에서 또 심득교류회를 연다면 나는 아마 가지 않을 것이다. 이러면 당신들이 헛걸음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전 세계 각지에서 거의 매주 대법교류회가 있는데, 내가 다 참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내가 미리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바이다.

또한, 우리 이번 대회(大會)는 비교적 잘 조직했다. 많은 수련생이 묵묵히 많은 일을 했으며 이번 대회를 위해 아주 많은 힘을 들였다. 이에 대해 나는 여러분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런 환경을 제공해 준 이런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린다. 동시에 우리는 이번 대회를 반드시 잘 열어야 한다. 대법법회는 절대로 형식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그것을 반드시 진정하게 자신을 제고할 수 있고 자신의 차이점과 부족함을 찾아내고 진정하게 여러분이 제고되며 원만을 이룰 수 있는 이런 대회로 열어야 한다. 대회에 공헌한 이런 수련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하며, 또한 우리의 대회는 개최한 바의 역할을 진정하게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각 지역에서 여는 회의도 반드시 이래야 하며, 꼭 이런 대회이어야 여러분의 수련과 제고에 진정한 이로움이 있을 수 있다. 형식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수련은 사람이 많고 적음을 보지 말아야 한다. 나는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사람이 많든 적든 개의치 않으며, 설령 백에 한 사람이 수련한다 해도 나의 일은 헛되이 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하물며 우리는 아주 많은 사람이 있는데, 더 말할 것이 있는가. 여러분 모두 수련하고 있고 게다가 제고되는 폭도 아주 크며 아주 신속히 제고되고 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아주 정진하고 있는데, 이 점을 나도 보았다. 현재 대법은 전 세계에서 갈수록 많은 사람에게 인식되고 있으며 대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상응하여 일부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바로 당신들이 이 법을 인식할 당초, 아마 여러분은 모두 아주 많은 의혹이 있었을 것이고, 인식이 부족한 나머지 아주 많은 문제가 반영되어 나왔을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런 신수련생은 당신이 어느 한 민족이나 나라에 속해 있든지 법 공부를 할 때 당신은 반드시 끊임없이 책을 보아야 한다. 이래야만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의문을 풀 수 있다. 매 차례 회의마다 나는 말했다. 여러분은 수련함에 반복해서 책을 보아야 한다고. 왜 나는 이런 말을 거듭 반복하는가? 왜냐하면, 날마다 신수련생들이 와서 대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말은 앞으로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이 법을 전하는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제고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이 점 역시 의심할 바 없는 확정적이며, 실천 속에서 이 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우리 여러분이 모두 알다시피 인간 세상에서 나는 육신(肉身)을 가진 이런 한 사람이다. 만약 내가 매 한 수련생들에게 모두 가서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라고 알려준다면, 이것은 몹시 하기 어려운 것임을 여러분도 안다. 왜냐하면, 1억이 넘는 사람들이 배우고 있고 장래에는 더욱 많고 더욱 많고 더욱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대법이 이미 전해 나왔고, 나 또한 인간 세상에서 당신들 매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말해주면서 당신을 가르칠 수 없다. 나는 또 당신을 제고시켜 당신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제고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원만의 정도에 도달하게 해야 하는데, 만일 내가 이 점을 할 수 없다면 내가 여러분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실천 속에서 증명되었다. 여러분은 비단 수련되어 올라왔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매우 잘 수련하였다. 이것은 내가 여러분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내가 한 말이 목표가 명확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방금 나는 말했다. 그렇게 많은 수련생을 내가 직접 만날 수 없고 일일이 손을 잡고서 당신을 가르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이 오로지 『전법륜(轉法輪)』 이 책을 보기만 하면 당신은 일체 얻어야 할 것을 반드시 모두 얻을 것이다. (박수) 여러분 알다시피 이 책은 일반적인 책이 아니며 그는 법이다. 우리 인류사회에도 같지 않은 법률이 있고 또한 같지 않은 이론이 있으며 또한 같지 않은 학설이 있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그것은 모두 사람의 것이며, 속인사회에 있는 사람 이 한 층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오늘 당신에게 가르치는 것은 인류사회의 모든 학설과 일체 속인의 법을 훨씬 초월했다. 그럼 기왕 이러한 것이라면, 그는 당연히 그의 위대하고 불가사의한 내포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수련하고자 한다면 이 법은 당신을 진정으로 지도하여 제고되어 올라올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표면상으로 보면, 모두 백지에 검은 글자이며 일반적인 책과 그 무슨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사람의 눈은 단지 속인사회의 이 공간 속에 국한되어 문제를 인식한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사람은 곧 보지 못하며 현재 과학도 그 한 걸음까지 발전되지 못했으므로 인식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다른 공간, 우리 인류가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더욱 높고 깊은 경지에는 각기 다른 생존환경과 그러한 생명이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이 공간에서 본 그는 한 권 책이지만, 다른 공간에서 본다면 이렇지 않으며 그는 천법(天法)이다. 나는 여기에서 나 리훙쯔(李洪志)가 얼마나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늘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나는 바로 한 사람일 뿐인지라, 당신은 내가 얼마나 위대하다고 여기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내가 당신에게 가르친 이 법은 여러분이 한데 모여 수련하게 할 수 있고, 제고해 올라오게 할 수 있으며, 이 법을 인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수련생이 나를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늘 ‘법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이 법, 그는 당신의 수련 중의 일체를 지도할 수 있다. 백지 위 검은 글자의 배후에는 무수한 불(佛)·도(道)·신(神)들이 존재한다. 당신이 책을 볼 때, 당신이 제고되려 하고 당신이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 하며 당신의 경지가 반드시 어느 한 층차여야 한다면, 매 한 글자의 배후에 있는 신(神)이 당신에게 그 한 글자의 배후에 있는 진정하고 부동한 층차의 내포를 알게 한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반복해서 책을 보는 중에, 왜 당신들이 같은 한 줄의 글을 보는데도 매번 모두 각기 다른 인식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는 백여 번을 본 사람이 적지 않으며, 1억이 넘는 대법수련생 중에는 이 책을 백여 번 본 사람의 숫자가 이미 적지 않은데, 여러분은 아직도 보고 있다. 여러분은 이미 이 법을 내려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보면 볼수록 그 속의 것이 더욱 많아지고 보면 볼수록 명백해진 것이 더욱 많으며, 현재 과학이 인식하고 있는 것을 포함하여 현재 인류가 인식하고 있는 것을 훨씬 초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제고해 올라올 수 있다. 물론 법은 당신이 제고하도록 지도할 수 있고 당신이 수련하도록 지도할 수 있으며 또한 당신을 도와 많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 자신의 수련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만약 한 사람에게 수련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 무엇도 말할 수 없다. 당신은 반드시 견정(堅定)하게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법 공부를 통해서도 점차 이러한 이치를 알게 되고 또한 당신의 마음으로 하여금 점차 견정(堅定)해지게 할 것이다. 당신은 문제가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당신들이 문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주 기쁘다. 풀이하지 못하거나 묻고자 하는 많고 많은 문제가 있지만, 사실 당신들이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책을 보기만 하면 그에 대한 해답이 다 나온다. 노수련생들은 다 알고 있지만, 첫 번째로 볼 때 많은 문제가 있다. ‘무엇 때문인가? 무엇 때문인가?’ 더군다나 많은 생각이 모두 인식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런 것들이 진짜일까?’하는 이러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두 번째로 책을 보면 당신의 이러한 생각과 문제에 모두 해답이 있다. 당신이 두 번째로 책을 볼 때 동시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세 번째로 보면 그는 또 당신에게 해답해 줄 것이다. 바로 이처럼 점진적인 과정이다. 보기에는 아주 간단하지만, 실질적으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매번 볼 때마다 제고되기 때문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현재 1억이 넘는 사람들이 법을 얻었다. 역사상에서 전해진 정법(正法)이 모두 이렇게 많은 사람 수에 도달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하고자 하는 사람 수는 아직도 멀었다. 우리 노수련생들은 다 알고 있는데, 현재 역사적으로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렇게 큰 법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수련 중에서 반드시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 이는 당신들이 제고하는 데에 지극히 중요한 일보이며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한다. 사람이 속인사회에서 접촉하는 것은 모두 속인사회의 현실적인 것들이다. 여러분이 시간을 다그쳐 책을 보지 않으면 곧 당신의 수련하려는 이 사상을 약화할 수 있으며 당신의 수련하려는 이 마음을 약화하여 덤덤하게 함으로써,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 중에서 그다지 정진하지 못하도록 변하게 하는가 하면 심지어 포기하도록 하는데, 이는 모두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늘 생각하는바, 사람이 이미 법을 얻었다 해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너무나 애석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천 년, 만년 역사적으로 천지개벽 이래 모두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어떻게 우주의 진법(眞法)을 갖고 나와 사람들한테 말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말했지만, 지금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시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내가 말해 낸 것이다. 장래의 인류사회는 아주 큰 변동이 있을 것이며 우주에는 아주 많은 특수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지금의 과학은 이미 끊임없이 새로운 성체(星體)가 조성(組成)되고 낡은 성체가 폭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현재 신문에서도 끊임없이 싣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성계(星系)가 나타나고, 오래된 여러 성체(星體)들이 해체되고 있으며, 많은 새로운 성체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아주 먼 천체(天體) 중에서 나타난 일들로서, 서서히 우리 인류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이 공간범위로 접근해 올 것이다. 이러한 광경이 나타날 것이다. 물론 내가 이런 일들을 말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환경 아래에서 이 법을 전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반드시 그를 소중히 여겨야 함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당연히 그의 소중함을 알지 못할 것이고, 만약 당신이 법을 배운다면, 배워 갈수록 그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인류사회의 모든 종교는 거의 모두 1천여 년 혹은 1천 년 정도의 이런 시간을 거쳤다. 오랜 세월 속에서 그것들은 모두 종교의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것을 잃어버렸다. 다시 말해서, 종교는, 사람이 승화하고 원만의 표준에 도달하여 천국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게끔 하지 못한다. 즉 다시 말해서, 현재의 종교는 이미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며 단지 사람들은 자신의 상상 속에서 생활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를 선택하여 내가 대법을 전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이 법을 전할 때, 만약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역시 상응하는 아주 무서운 문제를 초래하게 되는데, 나는 줄곧 당신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말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사회문제를 말하겠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인류사회는 특히 최근 1, 2천 년에 각종 학설, 이를테면 선한 것, 악한 것, 중성(中性)인 것이 아주 많았다. 게다가 각종 종교의 학설도 많았다. 특히 몇몇 큰 정교(正敎)의 초기 목적은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사람으로 변하게 하고, 인류사회의 도덕표준을 힘껏 유지하는 동시에, 더욱 좋은 사람으로 변하게 하여, 그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층차가 제고되어 그들의 천국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속에서 이러한 학설은 점차 현재 사람들의 사상관념에 의해 약화하였다. 사람들도 갈수록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것을 더욱 믿지 않았다. 교회에 가서 예배하는 것을 일종 문명적인 행동으로 삼고, 예수 혹은 성모 마리아 혹은 여호와가 말한 대로 진정하게 따라 하지 않는다. 이 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당신은 천국에 갈 수 없다. 부처가 요구하는 대로 하지 못하면 당신은 천국에 갈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나는 그분의 말씀에 따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사실 당신은 어떻게 해야 그가 말한 대로 따라 하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종교 중에서 수련할 수 없고 당신으로 하여금 되돌아가게 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다.

나는 오늘날, 모든 사람의 마음을 진감(震撼)시킬 수 있는 이렇게 큰 법을 전했다. 당신이 책을 보기만 하면 곧 그가 좋은 책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책을 보기만 하면 곧 법의 위대함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말한 것은 진정한 우주의 이치이며 사람마다 모두 이 법에 따라 진감(震撼)될 것이다. 몹시 좋지 않게 변한 사람, 완전히 우주 특성을 이탈한 이러한 사람까지도 이 법에 따라 진감될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그는 이미 완전히 이 법과 대립되어 그는 굉장히 두려워하고 미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사람은 이미 철저히 끝장났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이 법에 따라 진감되며, 그에 동의하거나 혹은 그를 반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방금 말했듯이, 이 대법을 전함에 한편으로는 몹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론이, 다시는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가장 좋았던 시기로 되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전한 이 우주의 근본 대법은, 실천이 증명하다시피 사람으로 하여금 원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 법이 당신들을 되돌아가게 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장래에 이르기까지 더는 당신들을 되돌아가게 할 무슨 방법이 없고 더는 희망이 없다. 이것이 바로 극히 위험한 것이다! 만약 이 법이 진정하게 그런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거나 혹은 파괴를 받는다면 인류는 구원할 방법이 없다. (박수) 왜냐하면, 그는 우주의 최고 법리(法理)이며, 이 외에 우주 근본 대법의 역량을 일으킬 무슨 법리가 있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천이 증명하다시피 나는 당신들을 이끌어 이 일보를 걸어왔다. 나는 진정하게 수련생들로 하여금 제고되어 올라오게 했으며, 제자들로 하여금 진정하게 수련하여 올라오게 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인식하도록 했다. 인류사회 도덕이 급속하게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어떻게 좋지 않게 변하든지, 나는 사람이 비록 무지 속에서 좋지 않은 일을 하고 잘못된 일을 하고 있을지라도, 일단 이 법을 알기만 하면 그가 이 법에 따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아직도 불성(佛性)이 있고 아직도 선념(善念)이 있으며 아직도 그의 선량한 본성이 존재하고 있다. 단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좋지 못한 일을 많이 했을 뿐이다.

내가 당신들을 이끌어 이 일보를 걸어왔는데, 나로서는 기쁘고 위안을 느낄 만한 것이다. (박수) 우리 수련생에 대하여, 인류사회에 대하여 말하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가장 기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진정하게 걸어왔고, 가장 두려운 그 험난한 처지에서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박수) 여러분 알다시피 역사적으로 아주 많은 예언가, 아주 많은 기공사, 아주 많은 종교 중에서 개오한 사람들이 인류사회 금세기 말에 나타날 이런저런 재난에 대해 아주 많이 말했으며, 심지어 인류는 곧 훼멸 될 그런 상태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그 예언가들이 한 말이다.

발생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나는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답해 줄 수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내가 『전법륜』에서 말한 그 예와 마찬가지다. 썩은 사과 한 알, 지구는 이 방대한 우주 중에서 마치 우리가 보는 사과 한 알과 같은데, 그것은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사과 안의 매 분자는 마치 매 사람과도 같이 모두 이미 썩었다. 그렇다면 이 사과 그것을 없애 버리고, 던져 버리고, 처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인류사회, 그것의 도덕이 모두 그런 정도로 저하(低下)되었다면 신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마치 그 썩은 사과와 같아 그것을 없애 버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신으로서는, 우리 여러분이 알다시피 특히 인류와 근접해 있는 이 한 층의 신, 그들은 사람에 대해 모두 자비로운지라, 그들은 곧 사람을 구해내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썩은 사과 그것을 구해내려 하며, 당신이 이 썩은 사과를 버리려 하지 않고 방 안에 놓아두지만, 그것은 갈수록 더욱 썩어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당신이 그 깨끗한 방 안에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사과 한 알을 놓았는데, 당신은 왜 그곳에 놓으려고 하는가? 기어코 그곳에 놓으려고 한다면 당신은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우주도 마찬가지로, 이 지구가 이미 이런 모습으로 변했는데 그래도 그것을 훼멸시키지 말아야 하는가?! 어느 신이 그것을 훼멸하지 않는다면 그 신은 곧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신과 사람은 같지 않다. 그는 이 사과를 그의 가장 원시적인 입자에서부터 신선한 것으로 개변시켜 다시 신선한 사과로 만들 능력이 있다. 그의 구조를 개변시킨다면 그것은 좋은 사과로 변한다. 그럼 누가 그것을 버린다면 누가 곧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신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1억 명의 사람이 수련하고 있고 자신의 사상을 개변하고 있으며, 좋은 사람이 되고 착해지고 있으며, 진정하게 우주의 부동한 층차 표준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지구, 그것을 폭발시킬 수 있겠는가? 훼멸시킬 수 있겠는가? 그 예언가가 말한 그러한 예언이 실현되겠는가? 그것은 실현될 수 없다. 내가 말하건대 그 어떤 예언은,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의 예언이 더는 영험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류사회에는 오늘날 대법이 전해졌으며 인심(人心)은 되돌아 올라가고 급속하게 되돌아 올라가기 때문이다. 어제 한 기자가 와서 나에게 물었다. 현재 1억의 사람들이 배우고 있고 게다가 이러한 추세는 아주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또한 더욱 많은 사람이 배우려 한다고 했다. 지금 1억이 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을 승화시키고 있는데, 이 1억의 사람들 매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와서 배우도록 알려준다면 곧 2억이 될 것이다. 그 숫자는 순식간에 배로 늘어날 것이며, 대단히 크다. 사람마다 모두 착해지고 좋은 사람이 되며 자신의 도덕 표준을 제고한다면 인류사회를, 내가 든 그 예와 같이, 이 사과가 신선한 것으로 변했는데, 그 누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있겠는가?

인류사회의 발전, 우주 중의 일체 상태는 모두 신이 안배한 것이고 모두 법칙이 있다. 왜냐하면, 인류사회에서 나타나는 좋지 못한 상태는, 전쟁이나, 지진・홍수・유행병・전염병 등등과 기타 많고도 많은 자연재해를 포함하여, 사실 모두 목적이 있는 것으로 사람의 업을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상은 신에 의해 지휘를 받는다. 사람은 여태껏 자신의 사상의 내원(來源)을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은 어떻게 하고자 생각하여 그의 사상이 움직이기만 하면, 그의 이른바 영감(靈感)이 나올 때, 그는 갑작스레 그 무엇이 생각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지만, 사실 아주 많은 것이 그렇지 않다. 신은 인류사회의 일체를 단단히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다. 이 우주에는 이런 이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한 개체로서 그가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면 역시 사람의 이 사상을 보아야 한다. 그가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좋다, 내가 당신의 수련을 돕겠다.”라고 하고, 사람이 좋아지려고 하지 않으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라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곧 몹시 나쁘게 변한다. 그러나 인류사회 전체를 신이 통제한다. 그래서 사람이 좋아진다면 그는 곧 좋은 미래가 있고 밝은 앞날이 있을 것이다. 좋지 않다면 그에게 좋지 않은 미래가 있으며 암흑과 악업(惡業)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방금 나는 여러분의 수련을 말했다. 이 법을 말함에 한 단락을 끌어내어 말했다. 목적은 여러분에게 그를 소중히 여기라고 알려주려는 것이다. 오늘 1억의 사람이 배우고 있고 당신들은 이미 역사를 개변시켰다. 이는 기쁘지 않은가? 이는 위대하지 않은가? (박수) 그러나 아직도 아주 많은 좋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아직도 나쁜 짓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는 비록 예언가들이 말한 그렇게 큰 재난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국부적인 지역은 여전히 몹시 좋지 않은 일들이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법 공부 심득교류회이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의 시간을 너무 많이 점유하고 싶지 않다. 단지 여러분을 만나보고 싶을 뿐이다. 수련생들의 발언, 교류를 통해 여러분은 모두 제고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법회의 취지이다. 물론 여러분은 많은 문제가 있고 시시각각 신수련생들이 배우고 있기 때문에, 신수련생이 제기하는 문제가 있게 마련이고 노수련생 중에서도 일부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 오후 여러분의 문제에 해답해 주겠다. 방금 여러분에게 이 법을 소중히 여기라고 알려주었다. 법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반드시, 책을 반복해서 보아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곧 제고 중인 것이다. 나는 나의 능력을 이 대법 속에 주입했다. 당신이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개변되고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제고될 것이며, 당신이 끝까지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원만을 이룰 수 있다. (박수)

나는 지금 말한 김에 몇 가지 작은 문제를 더 말하겠다. 하나는 지금부터 시작하여 당신들 노수련생은, 만약 당신이 원만에 이르지 못했다면 당신은 다 나와서 연공해야 한다. 이 일, 그것을 나는 다시 한 번 새롭게 제출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왜냐하면, 우리의 수련 환경, 우리의 법 공부 환경, 수련생들이 함께 토론하는 일, 하는 말은 모두 고상한 것이고 모두 얻기 힘든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사회에서 몹시 얻기 어려운 것이며 이는 가장 선량하고, 가장 아름다운 정토(淨土)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환경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류사회는 아직도 계속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으며 갈수록 더욱 좋지 않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속인사회 중에서 모두 직업이 있고 사회활동이 있으며, 모두 속인을 접촉하고 속인사회를 접촉하게 마련이다. 이럼으로써 당신은 많이 듣고 많이 보게 되는데, 보고 들은 일체는 모두 속인 중의 일로서 당신의 수련을 교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늘 함께 법 공부를 하고 늘 이 세숫대야의 맑은 물로 당신을 깨끗이 씻는 이것은 이로운 점이 있다.

다음은 내가 최근에 글 두 편을 썼는데 여러분은 경문이라고 부른다. 제출한 문제는 아주 첨예한 것으로 현재 비교적 뚜렷한 문제이기도 하다. 바로 낮은 층차에서 반 개오(半開悟)한 사람, 이 부분의 사람은 그의 층차가 높지 않고 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그는 내가 말한 많고도 많은 것을 완전히 다 파악할 수 없다. 그럼 그는 아주 낮은 층차 중에서 반 개오에 처하게 되므로 그는 일부 고층공간 속에서(위에서도 법을 바로잡고 있기 때문에 구 우주는 해체되고 새로운 우주가 건립되고 있으므로 그들은 이 현실을 피해 사람 이 공간 중으로 도망쳐 왔고, 난을 피하고자 인류 공간 속으로 뚫고 들어왔다) 삼계 중으로 도망해 온 그런 좋지 못한 고층 생명이나 혹은 본래 삼계 중에 있었던 일부 낮은 층의 신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우주 중에서 발생한 진상을 보아내지 못한다. 물론 그는 도망쳐오기 전에 알고 있었으나 도망쳐 온 후부터는 무엇이 발생했는지 그는 모른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이미 여기에 완전히 봉폐되었다.

그들 중 다수가 정법(正法)에 저촉되고 대법(大法)에 저촉된다. 또한, 다수가 진상을 똑똑히 모른다. 말하자면 본래 이 공간의 신, 그들은 아직도 이 현실을 접촉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상을 똑똑히 모른다. 그럼 그들도 대법 수련생을 교란할 수 있으며 어떤 것은 일부러 교란한다. 그는 그가 우주의 대법을 교란하고 있고, 큰 죄를 범하고 있다는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주의 진상을 지금은 덮어 감춰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한바, 그들은 단지 삼계 내의 일만 볼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법은 이미 삼계로 들어왔으며 삼계 내에서 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낮은 층차에서 천목이 열린 사람에 대한 교란이 비교적 커졌다. 어떤 수련생은 천목이 열려 한 위대한 신, 대단한 신을 보았다. 그는 수련생에게 대법을 파괴하는 일부 말을 하였다. 물론 그 자신이 조작해 낸 것이다. 목적은 수련생을 미혹(迷惑)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대법에서 도태되어 나가게 하자는 데 있다. 또 일부는 나의 법신으로 가장하여 당신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알려준다. 공공연히 한 수련 중의 제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는 것은 틀림없이 대법과 수련생을 파괴하러 온 것이다. 왜 당신은 이용당할 수 있는가? 당신에게 아주 강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이용당하는 것이다. 길은 당신 자신이 선정하는 것으로 장래의 위치 또한 당신 생명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공간은 내가 하기 전에도 여전히 장악 속에 있다.

왜 그가 이처럼 하는 것을 허용하는가? 왜냐하면, 당신의 수련은 순풍에 돛 단 듯이 순조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장래에 당신이 위대하고 원만을 이룬 신으로 천국 세계에 나타날 때 뭇 신들이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여 올라왔는가? 당신은 엄격한 고험(考驗)을 거쳤는가, 수련 중에서 당신이 진정으로 이 법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에 관계되는 과정을 거쳤는가, 난(難) 속에서 견정(堅定)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돌이켜 이런 교란을 이용하여 당신의 마음을 본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런 고험(考驗)을 견뎌내지 못해 법을 이탈하고 어떤 사람은 동요가 생긴다. 그러나 이 일이 갈수록 심해지므로 내가 그것을 제출함으로써 최후로 법을 이탈하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한 차례 기회를 준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이번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주의 법을 바로잡는 중에서 많은 큰 신들이 나쁘게 변하여 모두 얻어맞고 떨어졌다. 심지어 그들은 인간이 될 기회마저도 잃었다. 얻어맞아 사람보다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진 것이 많고, 심지어 어떤 것은 훼멸되었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만일 당신이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장래에는 기회가 없다. 그건 당연하다. 당신이 무엇을 가지려고 하는가는 당신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써낸 목적은 바로 여러분에게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는 데 있다.

또 하나는 과거에 종교 중에 있던 일부 사람이나 다른 것을 연마한 일부 사람에 관한 것인데, 그들도 와서 대법을 배운다. 왜냐하면, 우주의 진상이 갈수록 더 나타나기 때문이다. 고층 생명 그는 일정한 능력이 있어 그들도 이 대법이야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지만, 다른 어떠한 수련 방식도 인류사회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되돌아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사람, 일부 절반 아는 둥 모르는 둥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대법 속으로 들어오게 촉진했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 대법을 빌려 그 자신이 얻고자 하는 그 위치로 돌아가려는 데 있지만, 그는 실질적으로 그 자신의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는 단지 나와 대법을 이용할 따름이지 진심으로 이 속에서 수련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의 원래 마음속의 이른바 그런 신(神)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가 집착하는 것에는 심지어 일부 이미 도태되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가 사람 여기에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는 이 대법의 도움을 빌리려 하는데 이런 마음 자체가 바로 죄를 짓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상대하지 않고 당신을 책임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필경 이 법을 알았다. 비록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지만, 그도 책을 보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에게 한 차례 기회를 주고자 이 일을 명백히 지적하여 말한다. 만약 당신이 여전히 바로 서지 못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이번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다. 내가 말하건대,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되며,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대법은 엄숙하고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당신이 얻고자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겠는가? 당신이 어느 시간에 얻고자 한다고 해서 어느 시간에 얻을 수 있겠는가? 그건 당신이 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잃어버렸다면 곧 영원히 잃는 것이다.

그 밖에 나는 또 한 가지 일을 더 말하겠다. 수련생 중에 젊은 제자들이 많다. 당신들은 생활에서 주의해야 한다. 남녀관계에서 절대 속인사회의 그 부패한 행위에 빠져서는 안 된다. 당신은 당신의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정당하다. 당신들은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에 부합하여 수련해야 하며 이는 문제가 없다. 당신들 자신의 부부 사이에 생활이 있는 이것은 문제가 없다. 만약 당신들이 부부가 아닌데, 성행위가 있다면, 이는 당신이 곧 한 가지 가장 더러운 일을 하는 것으로 이는 신이 절대로 인정할 수 없으며 어떤 신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일에 절대 주의해야 한다. 한 사람의 수련과정은 바로 한 수련인의 역사로서 무수하고 무량무계(無量無計)한 신들이 모두 대법제자의 매 한 생각, 매 한 행위를 지켜보고 있다. 수련자로서 원만으로 향해 나아갈 결심이 있으면서 왜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가? 오늘 나는 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이 대회가 원만하게 성공하기 바란다. 내일 오후에 여러분에게 문제를 해답해 주겠다. 지금부터 당신들은 계속하여 회의를 열도록 하고 수련생들은 자신의 심득체험을 말하도록 하라. (박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이틀간의 법회를 보면, 법회는 확실히 아주 잘 열렸다. 이러한 법회는 아무리 더 열어도 많지 않은 것으로, 수련생들로 하여금 이득을 볼 수 있게 하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 법회 중에서 제고를 가져오게 하며 서로 간에 차이점을 찾을 수 있고 자신이 끊임없이 정진하도록 촉진할 수 있다. 이는 대단히 좋다. 법회의 목적이 바로 이러하다. 여러분의 수련에 대해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이것이 바로 대법 법회의 목적이다. 그 밖에 여러분은 들었을 것이다. 이번 법회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바로 백인 수련생들의 법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나는 이번에 그들이 지금까지 중에 가장 깊이 있게 말했다고 본다. (박수)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법 공부를 하고 법에 대해 더욱더 청성(淸醒)하게 인식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법에서 자신을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히 좋다. 오늘 오후에는 주로 여러분에게 문제를 해답해 주겠다. 자, 다음으로 여러분에게 문제를 해답해 주겠다.

제자: 대법음악 ‘보도(普度)’를 들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이처럼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음악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사부: 어제부터 줄곧 회의장에 틀어놓은 음악인데, 여러분은 들었을 것이다. 대단히 비장한 감각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대법음악이다. 대법수련생들이 갈수록 많아질 것이므로, 연공음악 테이프를 사회에 보급하자면 사회의 출판사에서 출판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는 출판권 문제에 관련된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를 준비했다. 하나는 작곡가와 이 출판권 문제를 상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음악가 수련생에게 우리 자신이 필요로 하는 연공음악을 창작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직접 수련생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그는 아주 빨리 이 음악을 창작해 냈다. 두 곡을 창작했는데 바로 이 ‘제세(濟世)’와 ‘보도(普度)’라는 두 음악이다. 한편, 이전에 우리가 사용하던 음악의 작곡가 역시 법을 배우고 있었는데 또한 아무 조건 없이 이 음악을 대법에 증정하였다. (박수) 당연히 이는 공덕이 무량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대단히 좋다고 느꼈다. 여러분은 여전히 이전의 음악으로 연공한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이미 아주 익숙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에 대한 영향도 아주 크다. 여전히 이전의 음악을 쓰면 아무것도 고칠 필요가 없어 대단히 좋다. 그러나 이 새로운 음악이 매우 잘 창작되어 여러분은 듣고 모두 좋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너무 비장한 감이 있다. 너무 비장하면 사람이 쉽게 눈물을 흘리고 격동될 수 있으며 내재적인 파동이 생길 수 있기에 연공할 때 조용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음악은 법회나 다른 대법 활동 중에 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수련생이 창작한 것이라, 그렇다면 이 또한 우리 대법 음악이다. 주의하라! 우리는 연공할 때 여전히 본래의 음악을 써야 한다. 왜냐하면, 이 음악이 수련생들에게 아주 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제자: 매 사람이 가부좌하는 시간이 길고 짧은 차이가 대단히 큰데 원만에 이른 후에 이에 따른 차이가 있습니까?

사부: 없다. 당신이 아무리 높은 층차로 수련해도 원만에 이른 후의 신체는 사람의 이 공간, 시간과 이 공간의 일체 요소에 의해 제약되는 신체가 아니다. 그때의 신체는 가부좌할 때 아무런 영향도 없다. 당신이 앉으나 누우나 모두 대단히 자유자재하다.

제자: 수련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많은 제자가 시간이 모자랄까 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사부: 이 생각은 옳지 않다. 이것도 일종 집착이다. 당신은 긴박감이 있어도 괜찮다. 이는 당신으로 하여금 하루빨리 제고하고 되도록 빨리 원만에 이르게끔 촉진하는 동력이다. 만일 당신이 이러한 것에 집착한다면 틀림없이 장애가 될 것이다. 도리어 당신의 제고에 영향 주고 당신의 수련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수련만 해라. 당신이 수련만 하면 틀림없이 당신은 원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당신이 관건적 시각에 걸어 지나갈 수 있다면 당신은 바로 원만에 직면한 것이다. 당신들 매 사람은 아마 모두 수련 중에서 당신의 심령을 건드리는 일에 부딪힐 것이며 또한 어떤 때는 비교적 첨예하게 반영될 것이다. 어떤 문제는 당신의 신변이나 당신의 신체에서 직접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이 부딪힌 어떤 일에서 반영될 수 있거나, 다른 사람이 부딪힌 어떤 일에서 반영될 수도 있으며, 혹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말하는 데서 반영될 수 있거나, 다른 어떤 모순에서 반영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은 모두 당신이 대법을 배우는 것과 배우지 않는 것, 이 법을 가지려 하는 것과 가지려 하지 않는 것, 이 양자 사이에서 당신이 어떻게 선택하는가를 본다. 사람마다 모두 이러한 일에 부딪힐 것이다.

부딪혔다면, 이것이 바로 당신을 고험(考險)하는 것이다. 당신이 여전히 수련할 수 있는가를 보며 여전히 대법 중에서 견정(堅定)하게 수련할 수 있는가를 보는데 이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당신들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수련은, 당신들이 수련하는 과정 중에 수시로 원만을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 고험하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아마 자신이 대법에 대해 견정(堅定)하지 못해 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당신들이 대법에 대해 굳게 믿음으로써 넘을 수도 있으며, 더욱 확고한 믿음으로 넘을 수도 있다. 당신은 일이 발생한 후에는 넘고 넘지 못함이 아주 평범하다고 여기겠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그렇게 평범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당신 이 사람이 원만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을 고험하는 것인데, 이는 지극히 중요하다. 사실 어떤 집착심은 사람에게서 제거하자면 아주 간단하다. 일단 이 사람이 원만을 이룰 수 있음이 확정되면 나머지 집착심은 천천히 제거해도 괜찮다. 그러므로 내가 방금 여러분에게 알려주었다. 당신들이 수련의 이 길에서 이러한 일에 부딪힐 수 있는데 잘 파악할 수 있는지, 잘 넘어갈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당신들 자신에게 달렸다. 누구든지 부동(不同)한 겁난 중에 있을 때, 누구든지 다양한 일들이 당신의 심령을 건드려 당신을 동요시킬 때, 당신은 모두 평상시처럼 냉정하게 당시의 문제를 대하지 않을 것인데, 그때야 비로소 사람을 가장 잘 고험하는 것이다.

제자: 연공 음악에 외국어 더빙을 하고 또한 사부님 목소리가 있게 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해도 됩니까?

사부: 괜찮다. 하지만 더빙하지 않는 것이 좋다. 더빙했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아마 신수련생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설법 비디오는 더빙을 해야 한다. 이 작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반드시 내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여러분 알다시피 내 목소리는 그냥 목소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내 목소리와 동시에 더빙한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이럼으로써 여러분이 법을 듣고 법을 얻는 과정 중에서 마치 중국인 수련생이 나의 중국어를 듣는 것과 같게 된다.

제자: 현관설위(玄關設位) 이 일보로 수련되었을 때 천목이 열린 것이 아닙니까?

사부: 열린 것도 있고 닫힌 것도 있다. 사람에 따라 정해지고 사람의 각기 다른 상황에 따라 정해진다. 집착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방금 한 백인 수련생이 한,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 나는 이 대법을 확고하게 믿습니다.”라는 발언을 들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수련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한마디 말은 참으로 대단하다. (박수) 깨달음에 의해 수련한다면 그건 참으로 대단하다. 물론 보이는 사람이 대단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매 사람은 자신의 수련 상태가 있는 것으로 마땅히 당신이 보아야 할 것이라면 필연코 보게 할 것이고, 마땅히 보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틀림없이 보지 못하도록 한다. 어떤 사람은 보고자 하는데 이 자체가 바로 집착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이런 집착이 있으면 보여주지 않는다. 일부 사람은 오로지 법에서 깨달아야만 자신의 위치로 갈 수 있는데도, 그는 기어코 보려고 한다. 당신의 원만을 위해, 당신의 장래를 위해서 당신으로 하여금 보지 못 하게 하는데, 이는 당신이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에 대한 일체 배치는 모두 당신이 잘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결코 사부인 내가 어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당신의 원만을 위한 것이다. (박수)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그 집착심을, 비록 조금 남았다고 할지라도 남기지 말고 모두 제거해 버릴 것을 희망한다. 구하고자 하는 것이 없어야 저절로 얻게 마련이다. 당신들이 갖고자 하면 그것은 집착이다. 당신들은 속인 중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놓아버릴 수 있으며, 당신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속인이 얻을 수 없는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여러분이 속인의 것을 다 버리고 있는데 왜 또 그것을 추구하고 있는가? 그것을 추구하는 목적은 그것을 속인 중에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명백하게 말하면 여전히 속인의 요만한 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수련 중에서 내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그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배후는 집착일 것이다. 그것은 다른 원인이 있는 것으로 표면적으로 반영되어 나온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내가 정말로 당신들을 위해 책임지자면 바로 당신들의 가장 깊이 은폐된 마음속에서 그 집착하는 것을 제거해야 한다.

제자: 저는 유럽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마난(魔難)이 늘 제가 보행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제가 어느 곳에서 잘못한 것입니까?

사부: 많은 백인이 달리기를 즐기고, 신체를 단련하는 체육관에 가길 즐기며 또 어떤 사람은 걷기를 즐긴다. 그는 이럼으로써 신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용할 수 있겠는가? 표면신체에서 작고 가벼운 질병에 대해서는 저항력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저항력을 명백하게 말하면, 정확하게 말해서 업력이 표면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하고, 업력으로 하여금 여전히 그쪽에 남아있게 한다. 그것은 잠시 표면신체의 병업(病業)을 막아내는 작용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저항력이다. 그러면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라, 아마 당신이 쌓아온 그 병업이 모두 뒤집혀 나오게 하고 그것을 죄다 밀어내어 진정하게 본질에서부터 당신을 건강하게 하고, 당신의 업력을 없게 하고, 당신을 깨끗하게 하고, 당신을 순결하게 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아마 서로 간에 조화롭지 못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이러한 이유로 당신이 이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수련은 생명으로 하여금 정말로 건강함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보행을 통해 당신을 건강하게 하고자 생각하지만, 사실 명백하게 말하면 아직도 대법에 대해 확고하게 믿지 못하는 것이다. 대법이 걷는 것보다 당신을 신체건강에 도달하게 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혹은 당신 또한 그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당신은 다만 걷는 데 습관이 되었을 뿐이라고 느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의 이런 습관이 비자각적인 집착으로 형성된 것일 수 있어, 당신으로 하여금 제거하게 한다. 아마 당신은 당신의 이런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하게 하는 것을 마난으로 간주하고 당신에 대한 장애로 간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당신은 그것을 역으로 당신의 어떤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보지 않는가? 아침 또는 저녁 달리기시간에 연공하면 더욱 좋은 것이 아닌가? 내 생각에, 무슨 문제에 부딪히면 모두 자신에게 어떠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을 때, 당신이 제고되는 것이 가장 빠르다. 문제에 부딪혀 자신을 생각한다면 아마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제자: 책을 읽으면 정공할 때와 같은 상태가 나타날 수 있습니까? 예컨대 신체가 없어지고 단지 머리만 남아 책을 볼 수 있습니까?

사부: 나타날 수 있다. 그는 법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어떤 상태든 다 갖다 줄 수 있으며 어떤 상태든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제자: 저는 마음속으로 홍법에 참여하는 데 장애가 있다고 느끼는데, 저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즉 말해서 당신이 홍법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장애의 근원이 무엇인지 보도록 하라.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매 사람 당신이 모두 반드시 가서 홍법에 참가해야 한다거나 혹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며 이러한 규정이 없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련생으로서 당신들이 이익을 보고 좋다고 느낄 때, 당신들은 이 좋은 것을 당신들의 친인에게 알려주고자 하고 당신의 친구에게 알려주고자 하며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이것은 대단히 선한 행위이며 이것은 당신 내심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자신이 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당신 자신이 하지 않으려고 생각한다면 억지로 하지 말라. 그러므로 내가 희망하건대 당신이 할 마음이 있을 때 하도록 하라. 왜냐하면, 우리는 자비를 주장하기 때문인데, 모두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을 주어도 다 오래갈 수 없다. 당신이 남에게 돈을 주면 그는 아주 빨리 써 버리는데 그렇지 않은가? 당신이 그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그가 영원히 갖고 가기는 불가능하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올 때는 빈 몸이고 갈 때는 흙에 묻혀 무엇이나 다 썩어버리게 되는바 당신 역시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는 것으로 갈 때 역시 빈 몸이다. 무엇이 장구(長久)할 수 있는가? 오로지 사람에게 법을 주는 것이야말로 영원히 장구하다. 그러므로 이것이 가장 진귀하다. 돌이켜 말하면 홍법의 일을 하는 것 역시 가장 신성한 일이다. 물론 나는 매 사람이 모두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억지로 하지 말고, 하고 싶으면 하라고 말한다. 당신이 하려 하지 않더라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제자: 만약 백인에게 법을 얻게 하려면 먼저 『法輪功(파룬궁)』을 읽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전법륜』을 읽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사부: 당신들 자신의 그곳 상황에 따라 하도록 하라. 통일적인 배치가 없고 또한 무슨 규정이 없다. 당신이 느끼기에 먼저 그에게 『法輪功(파룬궁)』을 읽도록 하여 그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그렇게 하도록 하라. 당신이 이 수련생이 근기가 비교적 좋고 인식이 비교적 높다고 하면 당신은 그에게 직접 『전법륜』을 읽도록 해도 된다. 즉 당신들 자신의 같지 않은 상황에 따라 하도록 하라. 이는 아주 간단하다. 무슨 규정이 없다.

제자: 사부님께서 “불성무루” 중에서 말씀하신 ‘본성’과, “불성” 중에서 말씀하신 ‘선천적으로 선량한 본성’은 무슨 관계입니까?

사부: 양자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또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의 본성은 당신의 층차가 결정한 경지에서 체현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당신 층차의 경지의 표현이거나 혹은 당신이 선천적으로 가진 층차의 경지 중에서 대법 표준의 표현, 체현이다. 수련 중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혹은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제고되고 끊임없이 부동한 층차의 더욱 높은 인식이 표현되어 나오는 상태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당신의 본성이다. 그러나 위사위아(爲私爲我)한 이런 특성, 이런 것은 우주가 오랜 세월 속에서 당신들이 점차 오염됨에 따른 것이다. 만약 전반 우주 천체가 모두 법에서 빗나갔다면 모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며 서로 간에 누구도 모른다. 마치 사람이 속인의 흐름 속에 있으면서 인류사회가 이미 무척 두려운 정도로 부패하였지만, 생명은 이 속에서 누구도 느끼지 못하고 이 일체가 여전히 대단히 좋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수련함에 비단 당신이 부동한 경지의 그 층차에 도달하고 당신의 본성이 되돌아 나와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또 당신이 부동한 시간 부동한 층차를 지나오면서 역사의 오랜 세월 중에서 부동한 경지 중에서 오염된 것들을 제거해 버려야 하며 모두 제거해 버려야 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주려는 것은 바로 당신들로 하여금 천지개벽의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경지에 도달하게 하려는 것이다. (박수)

제자: 제5장 공법을 연마할 때 세 개의 가지(加持) 동작을 각각 20분씩 연마하고 있는데 이는 사부님의 구령과 부합되지 않는데요?

사부: 만일 당신이 연공테이프 외의 시간을 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이 연공음악 테이프 완료 후에도 당신이 연장해서 연마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어서 연마하고, 음악을 듣지 않아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음악을 듣는 목적은 음악으로 당신의 난잡한 사상을 대체하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무엇이나 다 생각할 것이며 이것저것을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이 음악 또한 우리 대법의 음악으로서 이 음악의 배후에도 그 내포가 있으며, 위대한 불법이 그 배후에 있다. 그럼 당신이 음악을 듣는 것은 마치 부처의 음악을 듣고 부처의 음성을 듣는 것과 같은 작용을 일으킨다. 만약 당신이 말하기를 나는 입정(入靜)에 도달할 수 있으며 사상이 난잡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음악을 듣지 않아도 마찬가지이며, 나는 더욱 긴 시간을 연마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음악을 듣지 않아도 괜찮다.

제자: 入定(루띵)과 입정(入靜)은 어떤 관계입니까?

사부: 입정(入靜)이란 바로 당신이 조용해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연공하는 것을 말한다. 入定(루띵)이란 바로 당신이 띵(定)해서 형태를 잊고 나를 잊는(忘形忘我) 그런 상태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이 연공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형태를 잊는다는 것은 바로 신체가 다 없다고 느끼는 것이고 나를 잊는다(忘我)는 것은 바로 내가 연공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아주 좋은 상태이다. 이것을 띵(定)했다고 부르며 또한 入定(루띵)이라고 부른다.

제자: 속인의 사회 상태에 부합되어 시간이 길어지면 쉽사리 물결치는 대로 표류할 수 있는데요?

사부: 그렇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들에게 노수련생이든, 신수련생이든 모두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고 법 학습 모임 등등에 참가하라는 것이다. 이 환경 중에서 당신을 깨끗이 씻을 것이며 끊임없이 속인에게서 오염된 언어, 행위와 관념을 씻어버릴 수 있다.

제자: 연공할 때 주위가 아주 조용한데 갑자기 소리가 나면 늘 한 번씩 크게 놀랍니다.

사부: 상관없다. 만약 다른 공법을 연마한다면 설이 대단히 많은데, 무슨 놀랐다느니, 기가 정수리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등이다. 우리 여기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없다. 아울러 매 사람이 모두 부딪힐 수 있으며 누가 연공하든지 당신은 모두 당신을 교란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먼 곳의 자동차 경적 소리, 이웃의 고함, 심지어 당신의 집에서 갑자기 나오는 소리가 모두 당신을 교란할 수 있는데 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업력이 있기 때문이며 업력이 있다면 곧 마난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으며 흔히 연공 초기에 나타난다. 한동안 수련한 후에는 이런 현상이 없다.

제자: 사부님께 수련의 기원(起源)에 대해 말씀해 주실 것을 요청해도 됩니까?

사부: 오, 당신이 알고자 하는 이 일은 대단히 큰 것이다. 이 한 기(期)의 우주 천체는 모두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니다. 당신은 내가 말하는 이 우주의 개념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당신들이 상상하는 우주의 개념과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는 것은 아무리 커도 모두 아주 작은 범위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수련을 거슬러 추적하자면 그것은 불가사의한 것이며 또한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신에 대해 말한다면 무슨 의의가 없으며 당신들의 수련 자체와도 무슨 관계가 없다.

제자: 사부님께서 전하신 것은 우주의 법인데 法輪世界(파룬쓰제)는 왜 고층차에 있지 않습니까?

사부: 그럼 왜 法輪世界(파룬쓰제)가 꼭 고층차에 있어야 하는가? 왜냐하면, 내가 말했지만, 아직도 한 마디 반복해야겠다. 즉 내가 여기에 앉아 있는데 나는 바로 사람이다. 당신은 나를 사람으로 여기라. 나는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한다. 물론 매 사람 그의 생명은 모두 내원(來源)이 있는 것으로 나 역시 나의 내원(來源)이 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마지막 정거장이 바로 法輪世界(파룬쓰제)이다. 그렇다면 法輪世界(파룬쓰제) 외에 또 내가 머물렀거나 혹은 창조해 낸 더욱 높은 층차의 부동한 세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일, 그것을 상관하지 말고 이런 데 마음을 쓰지 말라.

제자: 대단히 높은 층차의 신(神)은 사람 몸의 형상이 없다고 하는데, 그곳의 신도 여전히 불(佛)과 도(道)로 분별 됩니까?

사부: 내 기억에 내가 한 경문에서 당신들에게 쓴 적이 있는데 우주는 지극히 크다. 지금 이 부처(佛)의 개념은 바로 부처에 대한 당신의 예전 인식으로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다. 실제로 부처의 개념은 매우 크다. 그처럼 크다 해도 역시 지극히 큰 우주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도(道)의 개념도 방대한 우주를 포괄하고 덮어씌울 수 없다. 그럼 다시 말해서 그들은 일정한 층차에 도달한 후 곧 없게 된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것은 부처의 형상이다. 예전에 나는 신체적인 형상이 없었다. 이 문제는 대단히 높게 말한 것이다. 나는 예전에도 여러분에게, 내가 부처의 형상을 선택한 것이고 내가 불가(佛家)의 기점에서 우주 대법을 전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나는 일체 형상을 갖추고 있다. 내 생각에 만일 당신이 책을 많이 보았다면 이 일을 알 수 있는 것으로 나는 예전에 이 문제를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제자: 저희는 사부님의 제자들입니다. 수련성취 후 가장 높고 가장 높은 위에 또 사부님께서 계시는지 알 수 있습니까?

사부: 일부는 그렇지만, 단지 이뿐이다. 일부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위의 일체를 모두 당신에게 나타내 주지 않을 것이며 당신은 아무것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개념 중에서 위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당신의 눈 아래로 본다면 일목요연한 것으로 무엇이든 다 당신의 눈앞에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당신의 위로 말하면 도리어 아무것도 없다. 그 경지 중에서 표현된 상태는 당신이 지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위에 법리(法理)가 있고 내가 말한 것이 아주 높다 해도 나는 다만 사람의 언어로 말할 뿐이다. 때가 되어 당신들이 알 법리, 들을 법리는 내가 지금 당신들에게 말한 이러한 언어가 절대 아니다. 일체 관념이 모두 변화될 것이며 위의 일체는 당신으로 말한다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당신들은 위에 더욱 높은 층차가 더 있을 것이며 최저한도로 사부님께서 아직도 위에 계실 것으로 생각할 텐데 단지 이러할 뿐이다. 심지어 이러한 것마저도 아주 막연하게 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의 과위가 결정하며 당신의 층차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그 층차로 수련한 후, 당신의 아래로는 당신이 일체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당신의 위로는 어떠한 능력도 없다.

제자: 건강박람회에 반드시 큰 法輪(파룬) 도형을 걸어야 합니까?

사부: 건강박람회, 이는 수련생들의 대법에 대한 열애(熱愛)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더욱 많은 사람이 법을 얻게 하고자 생각한 것이다. 이 法輪(파룬)을 걸고 걸지 않는 데 대해 말한다면 사람의 관념으로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에 대해 나는 일관적으로 실정에 맞게 해야 하고 어떠한 일이든 모두 지나치게 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속인사회의 형식을 이용하여 수련하기 때문인데,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게끔 수련해야 한다. 이 한마디 말은 단지 당신의 수련 방식에만 체현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홍법, 당신의 연공, 당신의 일체 행위는 모두 이 점을 체현해야만 더욱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할 수 있다. 남들이, 당신이 종교행위를 하고, 미신 짓을 하고 있다고 여기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함이 사람이 법을 얻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로 변한다면 좋지 않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 모두 적절히 해야 하며 이 점에서 우리는 이지(理智)적이어야 한다.

제자: 제자들이 원만한 후에 사부님을 뵐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아직 원만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원만 후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지금 온 마음을 수련에 두어야 한다. 내가 예전에 당신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일체 경지와 층차 중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나는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신체를 모두 갖춘 형상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당신들이 이해할 수 없다. 사람 여기를 포함하여 나는 오려고 생각하면 곧 올 수 있다. 내 기억에 내가 한 편의 시를 썼다. “하늘은 무한히 먼데, 생각을 움직이면 눈앞에 다가오누나(蒼穹無限遠,移念到眼前)…….”라고 했는데 아무리 커도 부동한 층차의 생명에 대해 말한다면 그가 있는 이외의 층차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모두 불가능하며 그가 있는 아래의 층차를 뛰어넘는 것은 모두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 다시 말해서 시간이 있는 것으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사부로 말한다면 그 어떤 시간적인 개념도 나를 방해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당신들이 지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자: 사존(師尊)께서 저희를 제도하기 위해 왜 인간 세상에 몇 차례 전세(轉世)하셔야 했습니까?

사부: 왜냐하면, 우리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두가 사람인 것은 아니고 모두가 같은 시기에 지구에 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한 번만 전생(轉生)하면, 그 이후에 또 온 그는 나와 연(緣)을 맺을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이 일을 준비하는 데에는 많고도 많은 복잡한 요소가 있다. 또한, 나는 같지 않은 국가에서, 같지 않은 민족으로도 전생했던 적이 있다. 나는 몇 세(世) 전에 아마 당신들 국가의 황제・국왕・장군・출가인・문인・용사(勇士)였을 것이다. (박수) 우스갯소리를 한 것으로 생각하라. 말한 것은 인연관계이다.

제자: 바닷물은 부처의 한 방울 눈물이라고 하셨는데, 부처의 눈물이 왜 우리 공간에 나타나게 되었습니까?

사부: 마치 하늘의 신(神)이 지상에 떨어져 사람이 된 것과 같은데 이는 마땅히 이해할 수 있다. 그 바닷물은 부처의 한 방울 눈물이지만, 당신이 이 바닷물을 다시 하늘로 가져간다면 그 부처는 뭐라 해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너무나 더럽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이미 이 경지 중의 물질로 되었다.

제자: 저는 아직 어린이입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수련하지 못 하게 하면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만약 네가 이미 철이 들었다면 마땅히 스스로 주견(主見)을 정해야 한다. 수련하고 수련하지 않고는 너 자신의 일이다. 만일 네가 정말로 수련하려고 한다면 내 생각에 네 부모는 어른을 대하듯이 그처럼 너에게 장애를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관건은 너 자신이 견정(堅定)한가 하지 않은가에 달렸다. 누구든지 수련의 시작에는 모두 마난에 부딪히게 되며 모두 방해가 있게 마련이다. 어제 한 수련생이 말하기를 그가 법회에 참가하려고 했으나 학교에서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는 학교에 남겨둔 주소를 가져오지 못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에 대한 방해이다. 누구든 법을 얻는 데는 모두 방해에 부딪힐 수 있다. 하지만 그 방해가 표현됨은 이미 무척 작은 것인데 요만한 장애도 돌파하지 못한다면 안 된다. 법은 아무렇게나 얻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여기에 앉아있다고만 보지 말라. 아마 당신들은 이 법을 위해 수없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이 인연이 이루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부동한 역사 시기를 포함하여 얼마나 큰 우여곡절을 겪어서야 비로소 얻게 된 것인지 모른다. 어떤 것은 당신들이 알고 있으나 어떤 것은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이 법을 만나는 그 순간에 당신은 아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데 사실은 법을 얻을 수 있는 그 시간과 장소가 이루어지게 됨은 이미 굉장한 우여곡절을 겪은 것으로 그러한 일을 당신은 모른다.

제자: 베이징(北京)의 한 수련생이 중문과 영문을 대조하는 대법번역 수첩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사부: 나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그는 대법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절대 출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법 중의 어떠한 단어든지 모두 속인의 정의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출판한 모든 대법 서적은 모두 내가 말한 법이며 모두 내가 말한 것이다. 출판한 책은 나 자신이 직접 정리한 것이다. 나의 정리를 거치지 않고 나의 동의가 없는 것은 모두 함부로 출판할 수 없으며 또한 나의 것이 아니자 우리 대법의 것도 아니다. 만일 누가 함부로 자료를 정리한다면 이것은 모두 안 된다. 예전에 나는 이미 이 문제를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수련생의 목적은 좋은 것이지만, 이러한 것은 회수해야 한다.

제자: 이번 시기의 인체는 가장 아름다우며 누구든지 가지려고 하는데 이는 법을 바로잡는(正法) 안배와 관계되지 않습니까?

사부: 이번 시기 사람의 신체가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주의 중세기(中世紀)의 인체가 가장 아름다웠다. 이는 이번 인류문명의 중세기를 가리킨 것이 아니다. 이는 당신들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당신들은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라.

제자: 제 사상은 극히 나쁜 것에 통제되어 책을 보고 법 공부를 해도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아직도 저를 제도하십니까?

사부: 나는 이것을 두 측면으로 나누어 말하겠다. 만일 당신이 내가 최근에 쓴 경문 중의 그런 사람이라면 예전에 나를 사부로 여기지 않았거나 그 경문에서 말한 것과 같이 당신이 줄곧 이러한 것에 통제되었다면 바로 당신이 전일(專一)하지 못한 것이다. 당신 자신의 主意識(주이스)가 강해야 하는데, 일이 발생해도 당신이 움직이지 않고 그것이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말거나, 어디가 아프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당신이 배우고 수련하기에 견정(堅定)하다면 무엇이나 다 변할 수 있다. 수련자 당신이 신체에 좋지 못한 감각이 있다고 느꼈다면 이 자체가 바로 좋은 일이 아닌가? 만일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면 당신 신체 속의 그런 좋지 않은 것을 놀라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문을 써낸 것은 당신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더는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곧 이 기회를 잃을 것이다. 왜 신체가 이런 정도로 변화되는가? 그것은 당신 자신이 조성한 것이며 당신 자신이 여전히 이 층의 상태 중에서 깨달아야 한다. 당신은 ‘내가 후회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무엇이든 다 나에게 곧 개변해 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안 된다. 이것은 수련이 아니다.

수련이란 엄숙한 것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자신을 견정(堅定)히 하고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끊임없이 인식하는 과정 중에서 서서히 개변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당신은 대법 중에서 진정하게 수련하지 못했지만, 당신 역시 책을 보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책을 보는 목적은 당신의 신체를 조절하기 위한 것이었고 당신이 책을 보는 목적은 당신이 마난이라고 여기는 것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대법을 전한 것은 사람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여 원만을 이루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사람에게 무슨 위험한 난을 해결해 주고 무슨 병을 고쳐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혹은 사람이 인정하는 어떤 좋지 못한 것을 제거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반드시 진정하게 수련하려 하고 대법에 대한 신심(信心)을 견정(堅定)히 할 때야만 당신의 일체가 비로소 개변될 것이다. 당신이 나는 이러한 것을 위해 대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가 사람에게 자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상관하는 것은 수련생이고 수련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빚은 업력은 언제든 자신이 갚아야 한다. (박수)

제자: 사부님께서 명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원인이 부동한 층차의 우주 생명이 대법에 대해 부동한 반응을 하도록 조성한 것입니까?

사부: 이는 당신의 수련과 조금도 관계가 없다. 이러한 천기를 나 또한 당신에게 말해줄 수 없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전반 우주는 오랜 세월 속에 모두 이 우주의 대법을 빗나갔다. 다 빗나갔으므로 자신이 빗나갔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바로잡혀야만 그는 비로소 안다. 마치 사람과 같으며 마치 당신들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수련인과 같다. 당신들이 오늘날 머리를 돌려 속인을 보았을 때 당신들은 비로소 속인이 얼마나 좋지 못한지 알게 되었다. 당신들이 수련하기 전에는 전혀 관찰하여 느끼지 못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경지의 미혹이 존재한다.

제자: 앞으로 억만년의 생명은 모두 늘 안을 향해 찾음을 기억해야 합니까?

사부: 이것은 사람이 수련하는 상태이고 신(神)과는 같은 일이 아니다. 수련이란 한 생명에 대해 말한다면 존재의 목적이 아니며, 다만 사람이 되돌아 올라가는 방법일 뿐이다. 사람의 사상으로 신(神)의 일을 생각한다면 어찌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전혀 같은 일이 아니다. 사람이라, 내가 당신들 사람의 일면을 소중히 여긴다고 말하는 것은 당신들이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지 당신들 사람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신(神)으로 말하면 사람은 더러운 것이며 설령 나로 말한다 하더라도 다만 우주 중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낮은 한 층차일 뿐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의 사상은 늘 사람 여기에 국한되어 있으며 사람이 어떠어떠하다고 느끼고 사람의 사상으로 신(神)을 생각하는데 당신은 도저히 생각해 내지 못한다. 마치 신(神)에게 사람의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제자: 왜 불순한 목적을 품고 법을 배우러 온 사람도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할 수 있으며 또한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사부: 왜냐하면, 이것은 대법이 가장 낮은 층차에서 체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주 대법은 사람에게 수련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그는 부동한 층차의 생명에 부동한 층차의 생존환경을 창립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가장 낮은 층인 사람의 이 상태, 사람의 생존환경 속에서, 이 한 층 법의 체현 속에서 당신이 접촉하게 된 것이다. 물론 사람이 곧 수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사람은 바로 사람일 뿐이다. 사람의 가장 좋은 상태는 병이 없고 건강하며 복이 있는 것이다. 당신이 법을 만났다면 다만 이 점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대법이 인류에 펼쳐질 때면 당신들이 잃는 것은 단지 이런 것만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 그렇다. 우주는 얼마나 방대한 것인가! 부동한 층차 중에서 부동한 경지 중의 신(神)이 하늘의 규율을 위반해도 모두 얻어맞아 떨어지게 된다. 오랜 세월 속에 그가 좋지 않게 변했고 그 경지 중에 있을 수 없다면 그는 자기의 경지를 낮추게 마련이다. 어떤 것은 특히 좋지 못 하게 변함으로써 사람 이 한 층으로 얻어맞아 떨어졌다. 어떤 것은 사람보다도 못한 것으로 변했으므로 그렇다면 사람마저도 될 수 없으며 심지어 훼멸 당해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다시 말해서 당신들이 잃는 것은 단지 이러한 것만이 아닌데 바로 이 뜻이다. 법이 인간 세상에서 체현되는 이 일보는, 지금 당신들은 단지 여전히 수련하고 있는 것으로, 그는 아직 인간 세상에서 법의 위력을 체현하는 그 일보가 없다. 진정하게 인간 세상에서 체현되어 나온 것은 바로 인간 세상의 법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때에 가서 부동한 좋지 않은 사람은 곧 도태되는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어디로 도태되어 가는가는 그 자신의 위치가 마땅히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제자: 수련은 끝나는 기한이 있게 마련입니다. 만약 저희가 끝나는 기한에 가서도 아직 수련 성취하지 못한다면…….

사부: 이렇게 많이 생각해서는 뭘 하는가? 나는 거듭 이 문제를 강조한다. 생각이 바로 집착이다. 그것을 내려놓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에게 준 시간은 틀림없이 넉넉할 것이지만, 당신이 다그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이, 나는 천천히 수련하자라고 말한다면 넉넉한가, 넉넉하지 않은가?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법은 또한 엄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 수련인의 피는 그처럼 소중한데 어찌 모기가 빨아가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이 수련하면서 당신 자신의 업력이 밖으로 발산될 때 당신은 당신의 그 피가 얼마나 더러운지 아는가? 당신은 그 모기가 당신에게서 빨아간 것이 모두 더러운 것임을 아는가? 물론 우리가 수련할 적에 신체가 갈수록 건강해지며 갈수록 속인보다 좋아질 때 아마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모기가, 당신이 전생에서 죽인 한 생명이라면 당신이 그것에게 갚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빨아간 것 역시 결코 소중한 것이 아니다. 늘 자신이 어떻게 해를 입었다고만 보지 말라. 왜 자신이 빚진 업력을 어떻게 갚을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는가? 어떤 사람은 전생에 죽인 사람이 너무나 많으며 나쁜 짓을 한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당신이 오늘 수련한다 하여 모기마저도 당신을 물지 않고, 엉덩이를 툭툭 털고는 당신이 가려고 한다면 어찌 될 일인가?! 만약 당신이 수련을 아주 잘한 사람이거나 또는 업력이 아주 적은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 모기가 당신의 몸에 와 붙는지 안 붙는지 보라. 그것이 주위의 사람을 물지 당신을 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 신체에 흑색업력이 없으면 모기는 이런 순양(純陽)의 환경으로 감히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음성적인 환경이 존재해야만 모기가 올 수 있기 때문인데, 그것에게 부합되므로 그것이 좋아한다. 당신의 피가 그것의 표준에 부합되어야만 그것이 빨기를 좋아한다. 당신의 피가 순수하고 깨끗하다면 모기, 그것은 도리어 좋지 않다고 느낄 텐데 이런 이치가 아닌가? (박수)

제자: 다른 공간의 물질은 모두 진실한 존재인데 왜 또 마음에 따라 변화(隨心而化)하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까?

사부: 맞다. 쇠뿔을 파고들려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사람의 사상이 모두 물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생각한 것이 모두 생각해서 이루어질 수 있고 당신이 해낸 말, 말한 것은 모두 형태가 있는 것으로 단지 당신이 보지 못할 뿐이지 일체는 모두 물질이다. 물질은 사람의 눈과 신(神)의 눈에서 한 가지 일이 아니다. 사람이 본 물질 존재의 형식은 진실한 것이 아니며 또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주가 존재하는 진실한 체현이다. 사람의 사상이 너무나 좋지 못하기에 생각해 낸 것은 모두 삿된(邪) 것이고, 악한 것이며, 선(善)하지 않은 것이고, 구하는 것이 있으며, 이기적인(爲私) 것을 위한 것이고, 정(情)을 가진 등등 등등이다. 그러므로 생각해 낸 것은 모두 가상(假相)이다. 당신은 늘 한 방면에서 그 쇠뿔을 파고든다. 왜 부처의 지혜가 크다고 말하는가? 그와 당신의 생각은 같지 않으며 그의 용량은 큰 것으로 그는 한 방면에서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 저는 서양 수련생입니다. 『전법륜』 속에서 ‘사랑(愛)’이란 마치 그것의 지위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사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예수, 성모 마리아와 여호와가 말한 사랑이란 사람이 이해하는 사랑이 아니라 자비이다. 다만 지금의 인류는 서양의 언어 중에 ‘자비’라는 두 글자가 없을 뿐이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은 ‘사랑’이란 이 글자로 신이 한 말을 대체하였다. 이 사랑이란 신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더러운 것이며 자비야말로 신성한 것이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성욕 중에 잠겨 있으며,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죄악의 성 문란 속에 있으며,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많고도 많은 좋지 않은 일, 신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사랑이란 인류가 생각하는 서로 도와주는 아름다운 일면이 있는 동시에 또 좋지 못한 부(負)면적인 일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자비란 완전히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전에 서양의 신이 말한 사랑이란 내가 다시 명확하게 당신들에게 알려준다면 그것을 ‘자비’라고 하는 것으로 인간 세상의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다. 이는 당신들 문화 중에 자비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들 고대의 사람은 신이 한 말에서 ‘사랑’이란 이 명사를 기록해 내려왔을 뿐이다.

제자: 서양인에게 ‘부체(附體)’란 몹시 괴상하고 알기 어려운 것입니다. 서양인에게 어떻게 ‘부체’를 똑똑히 말할 수 있습니까?

사부: 서양사회 속에도 육도윤회(六道輪迴)가 존재하는 것으로 사람으로 말한다면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단지 예수가 지옥만 말했고 윤회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예수가 사람은 죄가 있다고 말했으나 죄가 있는 것은 사람에게 업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이는 사람의 문화가 같지 않아 조성된 것이다. 부체가 서양 문화 중에 없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신약전서(新約全書)』 속에 예수가 그 귀신이 사람 몸에 붙은 것을 다스린 일을 기억하고 있는가? 『성경』 속에 기재되어 있다. 그 귀신은, “이것은 예수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며 당신과 관계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는 기어코 그것을 다스리고야 말았다. 이 점에서 볼 때 당신은 자신의 문화를 아직 완전히 이해(了解)하지 못했다.

제자: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희가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말해도 됩니까?

사부: 수련하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일반적으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함은 가장 확실하며 적절하게 표현한 일 처리 방법이다. 왜냐하면, 그가 당신을 때리고 당신을 욕하는 것은 모두 시비 때문인데 바로 모순이다. 만일 당신이 그에게 당신은 나를 때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는 또 당신을 몇 번 더 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당신이 그와 시비를 논한다면 당신은 그와 함께 모순 속에 빠질 것이다. 다만 그를 대꾸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이 한마디 말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는 이것은 가장 확실하고 적절한 방법이다. (박수) 우리 어떤 사람, 그가 이 점을 해낼 수 있다면, 내가 말한다면 그는 정말로 잘 수련했고 괜찮게 수련했다. 어떤 사람은 알고 있다. 당신이 나를 때려도 나는 당신을 때리지 않고 당신이 나를 욕해도 나는 당신을 욕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늘 넘기지 못하며 늘 당신은 나를 때리지 말아야 한다는 한마디 말을 하고자 한다. 이는 바로 당신이 마음속으로 아직도 내려놓지 못했고 당신이 남에게 빚진 그 장부를 당신은 또 갚을 생각을 하지 않으며 갚았다 할지라도 마음속으로는 불복하기 때문에 늘 자신을 위로하고 위로하는 한마디 말을 하고자 한다. 물론 내가 한 말은 마치 일종의 변증(變證)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묻겠다. 나의 백인 수련생 혹은 흑인 수련생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알아듣겠는가? (박수) 됐다. 여러분 감사하다.

제자: 제 직무는 철학과 문학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는 철학과 문학이 속인사회에 유익하다고 여깁니다.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에 부합하게 수련해야 한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한다면 당신은 해야 하며 당신들은 잘못이 없다. 당신의 사업과 당신의 수련은 분리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당신 수련 중의 心性(씬씽)이 당신의 일 중에서 표현되어 나올 따름인데 누구든지 모두 당신이 좋고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정말로 좋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장래에 그것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말한다면 전 우주가 모두 법에서 빗나간 것으로 대법을 제외하고 인류사회의 어느 곳에 또 정토(淨土)가 있겠는가? 어디에 또 깨끗한 곳이 있겠는가? 장래의 일을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인류사회의 일체는 모두 그리 좋지 않게 변한 것으로 미래에도 좋게 변하지 않을 것인데, 그럼 아마 도태될 것인바 단지 사람뿐만이 아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을 당신은 마음 놓고 하도록 하라. 왜냐하면, 법이 아직 인류 이 일보까지 바로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만 법이 당신들을 제도하고 있을 뿐이다.

제자: 가정환경이 줄곧 좋지 않아 그 기간에 제 부모님이 대법에 불경(不敬)을 조성했는데 제자가 업을 짓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이렇게 볼 수 없다. 두 방면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는 자신에게 업력이 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일 수 있으며 하나는 자신의 수련에 집착심이 제거되지 않아 조성된 것일 수 있다. 두 방면의 원인이 모두 있다. 그러나 또 각기 다른 사람이 대법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표현된 각기 다른 상태가 있다.

제자: 일부 기독교 신도들은 ‘육도윤회’가 있음을 믿지 않습니다.

사부: 예수는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다만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할 뿐이다. 당신들 어떤 사람은 아마 『신약전서』와 『구약전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신약전서』는 모두 아무개가 기록한 것이고 아무개가 기록한 것이라며 모두 한 단락 한 단락씩 기록하였다. 이런 기록은 회억의 기록으로 바로 예수의 말을 들은 사람이 회억하면서 기록해 낸 것이다. 그런데 예수가 그의 일생 중에서 한 말을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 한 권의 책처럼 고만큼일 수 있겠는가? 그렇게 적겠는가? 예수는 아주 많은 말, 아주 많은 말, 아주 많은 말을 했으나 사람들은 잊어버렸고 기록하지 않았다. 그럼 왜 기록하지 않았는가? 다른 원인을 말한다면 사람 또한 단지 이만큼만 알 자격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불법(佛法) 또한, 여래 이 한 층차 중에서 말한 법도 사람에게 완전히 알게 할 수 없었다. 석가모니가 인간 세상에서 말한 것은 나한법(羅漢法)으로서, 사람도 이만큼 알 수 있었다. 예수가 한 그 말은 이미 완전히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말에 따라 함으로써 천국에 갈 수 있었고 충분했다. 그러므로 신은 그것을 그처럼 많이 남겨놓지 않았다. 동양의 경서는 비록 아주 많지만, 역시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회억(回憶)에 따른 기록이며 이 한 점은 확실하다. 다른 한 면에서 말하자면, 어떤 백인은 동양인이 전생한 것인데, 가령 당신이 서양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없다면 당신이 동양인으로 전생할 수 있겠는가? 또한, 많은 동서양 사람들이 왕복해서 전생한 것으로 바로 오가면서 전생했다. 어떤 사람은 동양문화를 친근하게 느끼고 어떤 사람은 서양문화를 친근하게 느낀다. 이는 그가 부동한 시기에 전생할 때 남겨놓은 흔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신이 지금 백인이라고만 보지 말라. 혹은 당신이 지금 황인이나 흑인이라고만 보지 말라. 당신은 어느 한 인종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제자: 노인들은 시력이 좋지 않아 녹음 듣기를 좋아하는데 대법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까?

사부: 같다. 진심으로 법 공부를 하면 눈에 변화가 발생할지도 모르는데 듣는 것과 읽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당신들의 나이가 많고 적음을 말하지 말라. 그 역시 당신 자신의 집착과 장애이다. 대법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으며 당신은 오로지 수련만 해라. 내가 그 해에 베이징(北京)에서 법을 전할 때 수련생들이 나를 대사(大師)라고 부르길 좋아한 것이 기억난다. 나중에 나이가 비교적 많은 한 사람이 있었는데 7, 80세가량 되는 것 같았다. 그가 쪽지 하나를 보내왔는데, “당신은 왜 대사라고 칭하는가? 나는 이렇게 나이가 많아도 아직 대사라고 칭하지 않는데.”라는 것이었다. (웃음) 나는 그에게, “나는 자신을 대사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이는 여러분이 나를 존경하여 생각해 낸 말로 나를 대사라고 부른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나를 무엇이라고 불러도 다 괜찮다. 이름을 불러도 되고, 사부라고 불러도 되고 선생이라고 불러도 되고 무엇이든 다 괜찮다. 나는 이러한 것을 중시하지 않는다. 나는 어떠한 형식도 중시하지 않는다. 사실 명백히 말하면, 사람이 말하는 연로함과 젊음은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元神(왠선)의 나이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데 그것이 당신의 진정한 자신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 우주 중에서 나의 나이가 가장 많다. 당신들 누구도 나보다 나이가 많지 않다. (박수)

제자: ‘논어(論語)’는 『전법륜』의 전체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데 왜 ‘논어’(論語)라고 하셨는지 여쭤볼 수 있습니까?

사부: 여러분 알다시피 공자가 쓴 ‘논어’가 있다. 하지만 개념과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불법을 논(論)함에 사람의 언어(語言)를 쓰기 때문에 나는 그를 ‘논어’(論語)라고 부른다. (박수) 바로 이 개념이다. 사람의 언어를 법을 위해서 사용하는데, 어떻게 사용하든지 다 된다. 오직 문제를 설명할 수 있고, 오직 당신들을 제도할 수만 있다면, 오직 법을 똑똑히 말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렇게 사용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대 규범화된 언어와 단어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제자: 암(癌) 병원에서 일하는 대법제자가 홍법하려고 하는데 타당합니까?

사부: 그건 출발점이 무엇인가를 봐야 한다. 예컨대 당신이 사람에게 대법으로 병을 제거해 주려고 한다. 대법은 일체 부정확한 상태를 시정해줄 수 있다. 사람이 병을 얻는 것은 부정확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은 사람에게 부정확한 상태를 시정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법을 사람에게 전해 줌은 사람을 제도하기 위함이다. 이는 우주 중에서 부동한 생명에 부동한 생존환경을 창립해 주는 그런 위대한 천법(天法)이다. (박수) 그를 가져다가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해 주려고 하는가. 만약 이런 마음이라면 틀렸는데 그렇지 않은가? 오, 대법은 암을 고칠 수 있으므로 우리는 병원에 가서 사람들의 암을 고쳐주자.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고 대법으로 병을 치료하고자 한다면 이건 안 된다.

우리가 자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당신들에게 말했다. 예수나, 성모 마리아나, 또 이 두 신보다 능력이 더욱 큰 여호와가 있고, 또 동양인이 믿는 종교 중의 부처(佛陀)가 있는데, 손을 한 번 휘젓기만 해도 작디작은 지구에는 병이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가 왜 사람에게 이렇게 자비를 베풀어 이런 일을 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사람 자신이 나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당신에게 해준다면 당신은 내일 또 나쁜 짓을 할 것이다. 물론 사람을 징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우주의 이치가 일체 생명을 가늠하고 있다. 사람 자신이 나쁜 짓을 한 것은 자신이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말해서, 당신이 살인했는데 부처가 당신을 도와 업을 없애준다고 하자, 당신이 아무렇게나 살인해도 된다는 것인가? 당신이 살인하면 업이 있는데 부처가 당신의 병을 없애준다면, 이래도 되는가? 사람이 나쁜 짓을 했다면 자신이 갚아야 하고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흔히 사람이 좋지 못한 일을 하면 인체에서 가장 크게 표현되는 것이 바로 병으로, 병으로 사람을 징벌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말한 것만이 아니다. 예수도 사람은 죄가 있다고 말했다. 왜 사람은 죄가 있을 수 있는가? 바로 사람의 신체에 업력이 있기 때문이다. 서양 문화 중에는 업력이란 이 단어가 없고 이 어휘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는 한 마디 ‘죄’란 말로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사실상 업력이 있다면 그는 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업력이 있겠는가? 그것은 같은 이치이다.

제자: 원만한 후 각자의 층차 중에 이르렀을 때, 저희의 신체에는 사부님의 수기(授記)를 갖고 있습니까?

사부: 이미 원만을 이뤘다면 수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기란 사람이 미혹 속에 있으며 여기로 떨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비로소 수기하는 것이다. 원만을 이뤘다면 당신은 완전히 독립적인 개체이며 당신은 완전히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는 위대한 신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주는 것은 속박이 아니며 내가 당신들에게 주는 것은 위대한 신이다. (박수)

제자: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지 않는 사람도 ‘보도(普度)’, ‘제세(濟世)’ 음악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들에게 듣게 해도 되는지 사부님께 여쭙고자 하는데요?

사부: 된다. 음악이라, 물론 그가 우리 대법의 음악을 들었다면 필연코 좋은 점이 있는 것이다.

제자: 지금 남녀평등의 사회 관념이 아주 강합니다. 여제자로서 어떻게 부드러우면서도 용맹정진(勇猛精進)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지금 사람들은 여성이 갈수록 해방되고 개성이 갈수록 강해진다고 말한다. 사실 당신들은 선(善)한 그 일면으로 이끌린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에 강하다는 것은 사람의 외모에 체현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평상시에 온유하고 진정한 여인과 같다면 당신의 능력은 당신으로 하여금 마찬가지로 당신이 마땅히 얻어야 할 일체를 얻게 할 것이다. 당신이 기어코 강건하게 남자처럼 해야만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내가 말한 이치를 알겠는가? (박수) 다시 말해서 당신들은 여인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반드시 여인다워야 하는데, 선량하고 온유해야만 비로소 남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만일 당신들이 선량하고 온유하지 않으면 남자들은 당신들을 보기만 해도 두려워하므로 (웃음) 당신들은 마땅히 얻어야 할 사랑이나 가정의 따사로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우린 여자만 말하지 말자. 우리 남자들도 남자다워야 한다. 그러나 지구의 오늘날 사회는 다 좋지 못하다. 나는 다만 나의 제자가 이렇게 하기를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사회가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 기억에 50년대 이전의 서양사회에서 남자는 아주 신사다운 풍모가 있었으며 여인을 존경했다. 여인이 여인다웠기 때문에 남자는 여인을 도와주기를 아주 즐겼고 그녀들을 존경하고 그녀들을 보살폈다. 여인 또한 여인답게 자신의 남편을 매우 사랑했는데 그것이 사람의 행위이다. 그러나 오늘날 당신들은 모두 그것을 변이(變異)시켰다.

동양사회에서는 여인이 지나치게 강해져서 남자로 하여금 모두 여자처럼 변하게 했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당신들 자신은 속에서부터 자신의 남자가 강하기를 희망하지만, 당신들의 내심은 오히려 당신들의 남자를 압도하려고 하는데 이는 모순되지 않는가? 만약 사회 형식마저도 이렇게 변했을 때, 그 남자가 머리를 들 수 있겠는가? 가슴을 내밀고 떳떳이 일어설 수 있겠는가? 사내대장부가 될 수 있겠는가? 한 집에는 호주(戶主)가 둘이 있을 수 없으며 한 산에 두 왕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두 호랑이가 다투게 되면 기필코 하나는 상할 것이므로 (웃음) 필연코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다. 두 대왕이 한 방에 있다면 이 어찌 될 말인가. 어쨌든 한 호주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가정이 이혼하고 불화하게 된다. 당신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남자들은 이 여자가 전혀 여자답지 않다고 하고 여자들은 이 남자가 전혀 남자답지 않다고 한다.  

서양사회에서는 더욱 심하다. 서로 결혼할 때 벌써 재산을 갈라놓는다. 우리 둘이 장래에 이혼할 적에 이건 내 것이고 저것은 당신 것이라고 하는데 더욱 심하다. 여자가 남자에게 시집가면 남자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남자는 이 여자가 일단 자신에게 시집오면 여자는 자신의 일생을 이미 자신에게 맡긴 것으로 자신이 그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없으며 이런 마음이 전혀 없다. 개인의 이익, 개인의 자유가 무엇보다 높다. 그럼 당신들은 또 어디에 가서 가정의 따뜻함을 찾겠는가. 서로 이기겠다고 쟁투를 벌이며 누구도 누구에게 불복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이것은 사람의 상태가 아니다! (박수) 부부 사이에도 서로 믿지 못한다. 당신들은 어느 한 곳도 당신들로 하여금 안정감이 있고 따뜻하고 향기가 그윽한 곳이 되게 하지 못하는데 당신들이 산다는 것이 고생스럽지 않은가? 그러나 당신들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마땅히 이렇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따뜻한 곳이 있어야 하고 향기가 그윽한 곳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들의 표면은 오히려 이 일체를 파괴하고 있으며 이기적인 개성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그것으로 하여금 이러한 곳이 없게끔 한다. 여러분이 모두 이렇게 할 때 그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잃을 것이다. 물론 나는 다만 제자들에게, 당신들에게 말해줄 뿐이고 당신들에게 이런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인류는 이미 구할 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만회할 방법도 없게 그것의 일체를 비틀어 놓았다. 지금 사회여론의 일체 선전도구의 방향은 모두 이 개체의 자유를 담론하고 있으며 개성을 방임하고 있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이런 방임하는 개성은 보기에는 당신이 마치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 당신은 영원히 그런 따스하고 향기가 그윽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 당신은 영원히 더는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을 가질 수 없다! (박수)

제자: 대법제자가 부처 세계로 수련되어 백성이 되는 것도 있습니까? (웃음)

사부: 웃지 말라. 이 역시 개념문제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과위(果位)가 있기 때문에 절대 백성이 아니다. 원만한 후에는 모두 과위가 있다.

제자: 대법은 표면의 저를 개변시킬 수 있으며 또 부동한 층차, 부동한 공간의 저도 개변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이해가 맞습니까?

사부: 이해는 틀리지 않았다. 내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사람의 신체가 없다면 수련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제고할 수도 없는데 다른 공간의 신체가 어찌 개변을 담론할 수 있겠는가? 수련이란 이 인체(人體)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반드시 사람 이쪽에서 수련해야만 비로소 개변할 수 있다. 어떤 때 대법 책을 보는데, 당신이 정력을 집중하지 않고, 입으로는 그를 다 읽었지만, 사상이 있지 않은데, 그것은 당신의 副意識(푸이스) 혹은 다른 방면의 것이 역시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당신의 사상이 이따금 나타났다가는 잠시 후 또 없어진다. 만약 당신이 늘 이 문제가 나타난다면 당신은 이 일체를 포기한 것과 같으며 이 법을 다른 사람에게 준 것과 같은데 이는 안 된다. 나 또한 이렇게 수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제자: 사랑과 집착이 같지 않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그것은 별개의 개념이다. 사랑은 집착이 생기게 할 수 있으며 그것 자체가 수련 중에서 집착을 조성할 수 있다. 하지만 속인 중에서, 사회 중에서 그것은 여전히 한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사람이 사랑을 떠났다면 사람은 곧 더욱 나쁜 짓을 할 것이며 마성(魔性)이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여전히 이 사랑을 떠날 수 없으며 이 정(情)을 떠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은 사람의 것이고 사람에게 제공한 생존환경 중에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에게 주는 것은 아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들은 뛰쳐나와야 하며 사랑을 닦아버려야 하며 감정에서 생긴 집착을 닦아버려야 하는데 바로 이런 관계이다. 만약 사랑하면서 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당신이 수련과정 중에서 당신이 단번에 무엇이나 다 담담히 내려놓을 수 있고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당신은 지금 이 단계에서 당신이 어떤 상태라면 그럼 당신은 곧 어떤 상태이다.

당신은 자신을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본래 사랑하고 나의 육친을 사랑하지만, 나는 억지로 그를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라면 당신은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경지가 제고되어 올라온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인위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 했다면 오히려 남들에게 대법을 이해하지 못 하게 한 것이고 대법의 형상을 파괴한 것이다. 당신의 사랑이 수련 중에서 없어지면 곧 자비가 나와 대체하게 마련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나는 여기에 앉아서 나는 매 한 사람에 대해, 당신들의 말로 하자면 모두 소중히 여기는데 사실 이는 일종의 자비이다. (박수) 그러나 당신들의 그런 개인감정과는 전혀 같지 않다. 나는 당신들 자신이 나와 당신들 사이의 그 사랑을 구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박수)

제자: 단체 연공 할 때 늦게 오고 일찍 가며 팔다리를 움직이는 소리가 심하고 다른 사람의 입정(入靜)에 영향을 주는 등등에 대해 그에게 주의하도록 일깨워주어야 합니까?

사부: 이 문제를 말하게 되어 한 가지 생각을 이끌어 내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중국인은 문화대혁명 이전 전 세계에서 모두 소문난 예의지방(禮儀之邦)이었다. 문명(文明), 위생(衛生)과 표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단히 중시했다. 중국 주변국의 문명은 모두 중국인이 가져다준 것이며 중국에서 배워간 것이다. (박수) 그러나 당신들은 아는가? 문화대혁명 이후에 그것을 모두 네 가지 낡은 것으로 삼아 타파해 버렸다. 온몸에 흙이고 손에 못이 박히는 것을 중시했으며 이가 생겨도 ‘혁명충(革命蟲)’이라고 말하면서 더러운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관념이 이후까지 연장되어 지금 비록 사람들의 생활조건이 좋아졌고 또한 비교적 신경을 쓴다고는 하지만, 문화대혁명이 남겨놓은 이 관념이 아직도 타파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서양사회에 왔을 때 서양사회의 사람들은 당신들의 이 면에 대하여 실로 용납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당신들은 사소한 예절을 지키지 않고 몸가짐에 신경 쓰지 않으며 지저분하고 말소리가 대단히 큰가 하면, 주변 분위기·지점을 가리지 않고 위생을 지키지 않는다. 물론 내가 말했지만, 당신들은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어 수련해야 한다. 수련하는 제자로서 당신들은 실행해야만 한다. 본래 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내가 말하려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당신들의 표현 때문에 일부 백인 수련생들로 하여금 홍법 중에 감히 들어오지 못 하게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주의해야 한다! 이는 단지 어떤 행위 문제만이 아니다. 정말로 이 방면의 일에 주의해야 한다. 나는 당신들에게 옷차림을 중시하고 유행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가장 표면적인 사람의 교양을 알아야 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대법 속에도 가장 낮은 층차의 내포가 포함되어 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면 내 생각에 당신들도 일체를 다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박수)

제자: 어떤 수련생은 어떤 일에 관하여 사부님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는 그의 일 처리 방법, 언행이 수련하는 사람 같지 않습니다.

사부: 많은 사람이 두 사람 간에 논쟁이 끝나지 않을 때면 나의 말을 꺼내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면서 그 자신의 집착을 변호하고 그가 마땅히 제거해야 할 마음을 덮어 감추는데 이는 몹시 좋지 못하다. 하지만 돌이켜 말하면 또 그의 언행이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있음을 보았다고 해서 당신이 그를 수련생이 아니고 잘 수련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 그는 이미 아주 많고 아주 많은 마음을 제거했다. 그는 속인보다 얼마나 좋게 되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가 아직 제거하지 못한 마음이 표현되어 나올 따름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보았을 때 수련인으로 말하면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는 표현되는 것으로 사람을 가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방금 나는 두 가지 면을 다 말했다.

제자: 어떤 노수련생은 얼굴이 검으며 검버섯이 많은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신체가 수척한데 이는 정상적인 현상입니까?

사부: 수련이란 바로 복잡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것을 중시하면 당신에게 이런 것만 보게 할 것이며 당신이 그래도 수련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본다. 그럼 돌이켜 말하면 만약 이 사람이 정말 이 상태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정말로 그가 실질적으로 정진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책을 보고 연공도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그가 어떠한가? 어떤 사람은 책을 보는데 아마 일 년이 넘도록 아직도 『전법륜』을 다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늘 보고 있으며 공(功) 또한 아주 부지런히 연마하고 있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 와서 연마하라고 한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이 세상에 수련보다 더 엄숙한 일은 없다. 우리는 진정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제자: 단체 새벽 연공에 참가하지 않고, 바람과 햇볕에 그을리며 혹한과 무더위의 고험을 겪지 못하면 원만에 영향 주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꼭 이러한 일인 것만은 아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고생을 겪는 것은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고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사람이 단일하게 얼마나 되는 고생을 겪는 것이 꼭 무엇을 대표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관건은 단체로 수련하는 그 환경이 사람을 용련(熔煉)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가장 표면적으로 평상시에 접촉하는 사람은 모두 속인사회에서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다. 당신이 그들에게 물들 것인가 아니면 대법 중에서 대법제자들에게 물들 것인가. 내가 말한 것은 이런 이치이다.

제자: 우주를 창조한 것은 법(法)입니까? 아니면 신(神)입니까?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불(佛)과 도(道)가 우주를 창조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적은데요?

사부: 그럼 당신이 들은 신은 무엇이 만든 것인가? 당신은 마땅히 법을 많이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또한 나의 한 가지 생각을 이끌어냈다. 많은 사람이 서양종교 중에서 그들의 천주(天主)가 세계를 창조했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고 또한 동양의 불교 중에서는 부처의 업력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그 업력의 개념은 오로지 무슨 일을 하기만 하면 바로 업력이며 업이 조성한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 동양의 신화라든가 혹은 오랜 전설 중에는 또 반고(盤古)가 천지를 개벽했다는 것을 들었다. 우리 이 반고가 천지를 개벽한 것에 대해 좀 말해 보자. 여러분은 들었을 것이다. 이 반고, 그는 최후에 신체를 단번에 하늘, 땅, 산천(山川), 하류(河流)와 하늘의 별들로 변하게 했다. 어떻게 말하든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부동한 층차, 당신이 어느 한 층차의 신이든지 당신은 모두 위의 일을 알 수 없다. 과거 오랜 세월 중에 일찍이 법을 빗나갔고 심지어 많은 생명이 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잊어버렸다. 왜 잊어버렸는가? 지금 이번 시기 문명 중의 일체 생명은 당신이 아무리 높아도 대부분 제9기에 생겨 나온 것이다. 9기 이전의 법은 어떠한 것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9기에 이르렀을 때는 법이 무엇인지 더욱 모르며 단지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층차의 표준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 뿐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원시적인 생명은 이미 거의 없어졌으며 이미 거의 없다. 그러므로 우주의 유래를 모른다.

우주의 부동한 층차 중에서 겁난이 발생하면 바로 부동한 천체의 해체로서 당신들의 말로 하자면 바로 폭발이다. 일단 폭발한 후, 더욱 높은 신이 내려와서 그가 우주를 창조하는 것을 가장 낮은 층의 신이 보지 못 하게 한다. 더욱 높은 신이 낮은 층의 신을 만들어 그에게 다음 한 층의 우주를 창조하게 한다. 그럼 이 한 층 중에 새로운 신이 탄생하게 된다. 내가 말했다. 부동한 층차 중에서 모두 생명을 생기게 할 수 있는데 이 한 층차 중에서 한 신이 탄생했다면 그는 반드시 천지개벽하여 이 한 층의 우주를 창조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더욱 높은 우주에 신이 있는지 없는지 그는 전혀 모른다.

내가 방금 말한 것은, 사실 부동한 층차의 불(佛)·도(道)·신(神), 그는 그가 있는 층차 혹은 그 이하 우주 중의 일체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이런 이치이다. 그러나 이는 그의 범위 내의 일로서, 그는 그가 세계를 창조했다고 여기는데 이는 비교적 원시적인 것을 가리킨다. 한 신이 더욱 큰 우주를 만들었다 하자. 그런 다음 한 신이 나중 어느 한 층차 어느 한 시기에 이미 만든 그 우주 중에 탄생했다. 또 오랜 세월이 지나 그가 탄생한 이 경계(境界)에, 이 경계 중의 우주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더욱 높은 층차의 신에 의해 그는 해체 폭파되고 말 것이다. 그럼 후에 그는 다시 가서 새롭게 세우는데 그는 그가 우주를 새롭게 세웠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주 위에 더욱 큰 우주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럼 그의 더욱 작은 층차 중에 또 이런 일이 나타날 수 있으며 그보다 더욱 작고 더욱 작은 층차 중에 또 이런 부동한 층차에서 우주를 만드는 일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방금 한 말을 당신들은 알아듣겠는가? (박수) 나는 『전법륜』 제5강에서 부동한 신이 부동한 특성의 우주를 창조했다고 말했는데, 당신들 많은 사람이 질문이 있지 않은가? 바로 내가 방금 말한 이런 상황이다. 우주는 지극히 방대하다. 부동한 층차에 발생한 변화는 모두 극히 광활한 천체 중의 작은 입자에 불과하다. 신으로서도 모두 불가사의한 것이다.   

제자: 고대 그리스 신화 중의 뭇 신(眾神) 또는 중국 신화 중의 뭇 신은 상상한 것입니까? 아니면 확실히 존재했던 것입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현재 사회 사람들은 현존 과학의 이끎 속에서 갈수록 현실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나 이 현실은 가짜다. 우주의 진정 위대한 진상은 갈수록 이 가짜 현실에 덮여 감추어지고 은폐되었다. 이는 사람 자신이 조성한 것으로서 자신이 갈수록 이 표면을 믿기 때문이다. 여러 오랜 신화가 모두 진실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사람이 조작해 낸 이야기로 간주한다. 내가 오늘날 우주 대법을 전하는바, 이 때문에 유발되는 일체와 곧 발생하게 될 일체는 모든 생명을 놀라게 할 것이다. 장래에는 더욱 굉장한 일이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법이 인간 세상으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믿지 않는 일체가 모두 나타날 것이며 사람들은 깜짝 놀라 아연실색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아무리 크고 강한 반향이 있고, 아무리 긴 시간 동안 계속되어도 다시 수천수만 년이 지난 후면 사람들은 그것을 이야기로 간주할 것이다. 또 수많은 해가 지나고 나면 아마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그것을 사람이 조작해 낸 것으로 여길 것인즉 사람은 바로 이처럼 저능(低能)하다. 지금 어떤 사람은 예수의 출현도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이 조작해 낸 것이라고. 지금 또 어떤 사람은 동방의 석가모니 출현도 사람이 조작해 낸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제자: 부모님은 이미 부처수련을 수년간 했는데 그들은 사부님께서 최근에 쓰신 두 편의 경문 중에서 말씀하신 미혹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그들로 하여금 정법을 수련하도록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쓴 경문을 그들에게 보여주라. 다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선(善)을 권할 뿐이며 다른 사람을 강요할 수 없으며 남을 강요할 수 없다. 사람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는 자기의 일이다. 그들을 핍박하여 무엇을 했다면 모두 인정할 수 없는 것으로 그들 자신이 해야만 하고 자신이 수련해야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다.

제자: 본래 경제형편이 괜찮으나 도리어 검소한 생활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종 집착이 아닙니까?

사부: 아마 중국인은 그런 한 기간의 고생스런 나날이 있었던 까닭에 여러분은 가난에 겁먹고 사람으로 하여금 지나칠 정도로 검소하게끔 했을 것이다.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 정상적으로 생활하라. 검소한 것은 무슨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지나치면 좋은 일이 아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어떤 특유의 염두가 있어서는 안 된다. 검소한 것은 잘못이 없다.

제자: 중국에서 수련하거나, 유럽으로 출장 가서 수련하거나 당신의 같은 법신이 수련생을 보살펴 주고 있습니까?

사부: 동일한 법신과 동일하지 않은 법신, 이는 또 무슨 구별이 있는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들은 모두 나의 동일한 지혜가 책임지고 있고 전혀 분별되지 않는 것이다. 사실 법신이 바로 나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면 법신도 곧 그렇게 생각한다.

제자: 무엇이 眞體(쩐티)입니까? 무엇이 功身(꿍선)입니까?

사부: 이는 구별이 있다. 사람 여기의 일체는 신의 눈에는 모두 실재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오로지 부처의 신체(身體), 신의 신체(身體)만이 진실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한 층의 신체 혹은 더욱 높은 것을 眞體(쩐티)라고 부른다. 功身(꿍선) 그것은 나 자신만 독자적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서, 이 우주 중의 어떤 생명에도 없다. 그는 나의 방대한 공(功)인 한편 나의 형상을 구성할 수 있다. (박수)

제자: 연공할 때 늘 사부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사부: 만약 말한 것이 법이고 책 속의 말이라면 괜찮다. 그것은 당신의 일종 공능방식의 체현이며 당신 자신의 공능의 체현이다. 만약 법 속의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교란이다.

제자: 어린이에게 연공을 가르치면서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는데, 또 경(經)까지 읽어주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이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는 그것은 단지 속인 중의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에 불과하다. 그 법이야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되돌아 승화하게끔 하는데 이 이치가 아닌가? 다섯 가지 공법은 어린이가 연마할 수 있는 만큼 연마하면 된다. 연마할 수 없다면 좀 더 큰 다음에 연마하도록 해도 상관없다.

제자: 어린이에게 대법에 관련된 법리를 말해 줄 때에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석해 주는 것이 타당합니까?

사부: 내 생각에 이는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인이기 때문인데, 당신은 그를 빗나가게 해석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이치에 맞게 어린이에게 해석해 주는 것은 내 생각에 문제가 없다.

제자: 고비를 넘기는 일이 발생했는데 저는 의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다시 새롭게 수련하려고 생각합니다.

사부: 방금 또 어떤 수련생은 “아직도 수련할 수 있습니까?”라고 나에게 물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아마 잘하지 못했고, 제자로서 표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좋지 않은 일을 한 후에 당신이 또 수련할 수 있는가?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 자신에게 달렸다. 당신은 이미 법을 들었고 법을 얻었다. 물론 당신은 잘하지 못했고 그 한고비를 넘기지 못한 것으로 그 손실은 아주 크다. 당신은 새롭게 수련할 수 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기왕 당신이 이미 대법 중에서 수련하겠다고 결심을 내렸고 당신이 이미 예전에 잘못했음을 깨달았는데, 왜 당신은 그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시작하여 따라잡으려 하지 않는가? 당신이 결심하고 수련하려 했다면 내게 말할 필요도 없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오로지 수련만 하면 내가 보기에는 된다. 사실 수련의 첫 시작에 당신들 누구나 수련하려 했기에 대법을 얻게 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수련의 기회를 거듭하여 잃지 말아야 하며 잘못을 거듭하여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만일 더 잘못한다면 아마 장래에 당신은 이 법에 다시 들어올 이러한 기회가 없을 것이다. 기왕 당신이 법에 들어올 기회가 있었던 만큼 당신은 더는 잃어버리지 말라.

제자: 많은 북미 제자들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하며 심지어 이미 아이까지 있습니다. 마땅히 결혼증서를 발급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사부: 당연하다. 나는 당신들에게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어 수련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바꿔 말하면, 중국에서 과거에 사람들이 결혼할 때면 천지(天地)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하늘과 땅에 절을 올려야 했고, 부모의 승인을 받아야 했으므로 부모에게 절을 해야 했다. 서양사회에서는 그들의 주(主)와 신(神)의 승인을 얻어야 했으므로 교회로 가서 주를 향해 서약했는데, 주나 신이 당신들의 혼인을 증명하고, 당신들의 결합을 실증해 주었다. 현대 서양사회는 이러한 것들이 파괴되었는바, 어떠한 형식의 이행도 없다. 두 사람이 어떠한 구속도 없이 한데로 모여 좋으면 함께 살고, 좋지 않으면 또 바꿔버리는데, 이것은 안 된다. 대법수련생으로서 요만한 이치를 당신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서양사회는 성의 개방으로 조성된 업력이 너무나 큰데, 내가 보기에 동양에서 온 사람이 더욱 심하다. 당신들은 이러한 일에 주의해야 한다. 사람의 좋지 않음을 말하는데,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것이 속인보다도 못하다면 문제가 아닌가? 물론 당신들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비록 우리가 절차를 밟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나 행위에서 이미 결혼한 것과 같으며 아이도 있고 우리는 또한 갈라설 수 없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 당신은 서로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 점은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왜 절차를 밟지 않는가? 최소한 속인사회로 하여금 당신들이 합법적인 부부임을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내 생각인데,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서 당신들은 이러한 문제를 제멋대로 할 수 없다. 이 문제를 더 많이 말하지 않겠다. 여러분이 예전에는 어떻게 했든지 지나갔으면 곧 지나가게 하고 다시 잘해야 한다.

제자: 어떻게 元神(왠선)이 신체를 떠날 때와 개공(開功)한 후에 본 광경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건 이미 말했다. 여러분 알다시피 ‘왜 보이지 않는가.’라는 그 한 편의 경문에서 나는 이미 아주 똑똑하게 썼다. 왜 보이지 않는가? 본다 하더라도 똑똑하지 않다. 바로 당신이 볼 수 있어도 그처럼 똑똑하지 않다. 만약 똑똑하더라도 또한 국부적이며 신처럼 그렇게 넓게 열려 무엇이나 다 알며 무엇이나 다 보고 마치 영화처럼 볼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물론 또 특수한 상황이 있는 것도 있다. 나는 보편적인 것을 말한다.

제자: 폭설을 무릅쓰고 법회에 참가하러 가다가 차가 길에서 고장 났습니다. 가족들은 저의 모험적인 행동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부: 어떤 일이든 모두 그처럼 간단한 공식이 아니며 모두 이 공식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련이라, 매 사람이 부딪히게 되는 상황은 모두 복잡하다. 아마 이 원인이 아니면 저 원인일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 어떤 사람은 자신의 心性(씬씽)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고, 기타 더욱 중요한 일이 마땅히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며 바로 이러한 난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곤란에 부딪혔고 장애에 부딪혔다. 그러므로 수련은 극히 복잡한 것으로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아마 당신의 차가 고장 났기 때문에 그 앞 몇 km 밖에서 만나게 될 교통사고를 피한 것일 수도 있고, 아마 이렇거나 아마 저럴 것이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겪는 것은 모두 좋은 일이며 또한 모두 자신의 위덕을 세우는 것이다.

제자: 단 이틀간 대법을 소개할 학습반이 있는데 이런 방법이 좋습니까?

사부: 단 이틀간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소개하는 학습반이라면 이 시간이 너무 없다. 만약 한 사람이 『전법륜』 이 책을 볼 때 그를 연속해서 읽을 수 없다면, 이때부터 이 사람은 이 책을 다시 들기가 몹시 어려워진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사상업력이 있고, 사상 중의 관념으로 인하여 그 업력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책을 보면 바로 당신 사상 속의 업력이 제거되는데, 그 업력은 살아 있는 것이라, 그것은 당신이 그것을 없애버리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것은 곧 당신에게 이 책을 다시 접촉하지 못 하게 하기 시작한다. 당신에게 시간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책을 볼 생각이 나지 않도록 하고 그것은 가급적 당신으로 하여금 책을 볼 시간이 없게끔 한다. 이것이 바로 왜 많은 사람이 처음에 다 읽지 못하면 더는 이어서 봐 내려갈 시간이 없는가 하는 원인이다. 비디오를 보는 것도 이러하다. 만약 당신이 전부 볼 수 없어 다시 보고자 재차 시간을 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 마(魔)가 교란하고 있음인데, 당신에게 시간이 없게끔 하고 온갖 방법을 다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다시 접촉하지 못 하게 한다. 그래서 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홍법(洪法) 또한 할 시간이 많지 않은데, 이 문제는 당신들의 상황에 근거하여 할 수밖에 없다.

제자: 만일 장기간 수련생의 선의적인 기부를 받는다면 德(더)를 무한히 잃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사례를 들겠다. 어느 한 수련생의 가정이 갑자기 곤란하게 되었다. 이 곤란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아마 그가 예전에 진 이런 빚일 것인데, 없애버리는 과정 중에서 그로 하여금 반드시 이러한 감당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럴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럼 어떤 수련생은 그가 이처럼 곤란하다고 느껴 우리가 그를 도와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돕는가?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 그에게 돈을 주어 그 일가가 생활하도록 한다. 자, 그럼 이후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법 공부를 하는 외에 집에서 먹고 마시면서 그들의 돈을 쓴다. 그럼 더 이어 내려간다면 법도 배우지 않으며 당신이 돈을 가져와라, 나는 이처럼 생활하겠다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들은 자비가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이처럼 대할 수 없다. 개개인은 모두 그의 난이 있는 것으로 여러분은 자비에서 우러나와 그를 도울 수 있으며 직장을 해결해 주거나 혹은 임시로 응급조치를 취해 문제를 좀 해결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절대 장기적으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그에게 배치한 그 한 갈래 길을 당신들이 다 파괴한 것으로서, 그도 수련할 방법이 없게 되고 마지막에 그는 수련하지도 않는다. 그는 직장도 찾지 않으며 곤란도 해결하지 않는다. 아무튼, 돈 쓸 일이 있으면, 당신이 매달 나에게 가져오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건대 수련생들은 뭘 하고 있는 것인가?

기부한다고? 무엇을 기부한다고 하는가?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물건을 주겠다. 그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왜 당신에게 물건을 주어야 하는가? 오, 모두 아는 수련생이다. 수련생 사이에 귀중한 물건을 함부로 선물할 수 있는가? 무엇 때문인가? 당신도 무엇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만약 귀중한 물건이 아니라면 왜 장기간 끊임없이 공급하는가, 무엇 때문인가? 당신은 왜 받아들이려고 하는가? 당신의 탐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가? 아니면 무슨 원인인가? 당신 자신은 왜 찾아보지 않는가? 이건 안 된다. 우리 이 대법은 돈과 물건을 만지지 않고, 돈과 물건을 모으지 않는다. 당신들은 수련하러 와, 모두 여기에 앉아 있는데, 나는 당신들에게 돈 한 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주면 당신들 자신이 사양하지 않는가. 여기에서 특히 한 가지 문제를 제출하겠다. 대법을 위해 사업하는 모든 사람, 혹은 사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어떤 원인을 막론하고, 당신들은 절대 수련생의 어떠한 물품도 받을 수 없다. 사부에게 전하는 것은 반드시 사부가 처리하도록 하고, 함부로 처리하거나 사사로이 남기거나 압수하거나 사부의 편지 및 기타의 것을 사사로이 뜯어봐서는 안 된다.

제자: 생명의 타락은 元神(왠선)이 집착에 물들었거나 元神(왠선)이 변질한 것입니까?

사부: 나는 문제를 이렇게 보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이란 하나의 정체(整體)이다. 당신의 元神(왠선)·副元神(푸왠선) 또는 당신의 신체가 어떠어떠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틀렸다면 다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일념에 부동한 층차의 모든 당신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잘못을 고친다면 바로 좋은 사람이다. 자신을 수련할 수 있다면 제고로 나아갈 수 있다.

제자: 인체 이 소우주 중의 중생의 생명과 이 인체를 주재하는 元神(왠선)은 같은 층에 있습니까?

사부: 같은 층차에 있지 않다. 당신들은 자신의 신체 중의 일체 생명보다 높다. 당신들 자신의 모든 세포는 또 통일된 사유의 지배체계가 존재한다.

제자: 저는 올해에 열세 살이며 일본에서 출생했습니다. 언어장애로 말미암아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 저는 조금도 모르겠습니다.

사부: 어른이 방법을 찾아 해결해 주도록 하라. 일본에서 출생했으므로 중문(中文)을 모른다. 어리기 때문에 일본어의 일부 것들도 다 볼 수 없고, 글자도 전부 알지 못하므로 곤란이 있을 것이다. 모르는 곳이 있으면 어른에게 물어보라. 서서히 너는 다 알게 될 것이다. 어린이는 그래도 비교적 영특하다. 여러분 알다시피 중국에 이런 노인이 있는데 아예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가 『전법륜』을 보고 계속 보다 보니, 그는 읽을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람의 수가 대법제자 중에서 이미 상당히 많다. 그는 몇십 년, 한평생이 다 지나갔으며 그는 여태껏 자신이 글자를 익히리라고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대법 공부를 통해 극히 짧은 시간 내에 『전법륜』을 볼 수 있었으며 심지어 아주 익숙하게 읽었다. 정말로 기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필경 법이기 때문인데, 그가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어린이는 어른처럼 그런 항심(恒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또한 고려할 것이다. 어린이는 필경 어린이이므로 만약 공력을 좀 들이고 어른이 또 도와준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 副元神(푸왠선) 사이에 어떤 인연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인연관계가 있을 수도 있고 인연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식이 없기 때문이다. 매 사람은 예전의 생생세세의 부동한 상황이 있는데, 이런 것이 사람의 인연이며 당신의 수련과는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主元神(주왠선) 여기에 명백하고도 명백하게 법을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다른 副元神(푸왠선)들은 자연히 당신을 따라 수련한다.

제자: 저희가 동양무술관에서 홍법할 수 있습니까?

사부: 사람에게 법을 얻게 함은 내 생각에 어느 환경에서든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있다. 이 무술 속에는 도가의 무술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공류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모두 영향이 없다. 우리 대법을 연마하는 많은 사람이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데 모두 영향 받지 않는다.

제자: 사부님께서 과학의 진상을 제시하고 속인사회의 각종 좋지 못함을 제시한 후 제 사상에는 한 가지 판단 상의 혼란이 나타나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부: 내가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에 부합되어 수련해야 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나는 과학의 진정한 배후요소를 말했다. 그러나 나는 과학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반복하겠다. 내가 과학의 진상을 말했지만, 나는 과학을 반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필경 이 우주 중생의 한 생명이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인류가 마땅히 이런 상태에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인류가 변이된 원인을 말했지, 과학을 반대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라. 다만 그것을 불법(佛法)에 비한다면 바로 몹시 저능할 따름이다. 수련함에 따라 천천히 명백해질 것이다.

제자: 법을 얻은 초기에 극히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깊게 미혹되었기 때문에 몹시 좋지 않은 일을 했는데, 저는 끝장이 아닙니까?

사부: 대법 수련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수련생들은 아직도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 당신이 지금 그래도 이 쪽지를 건넬 수 있고, 내가 또 당신에게 읽어 줄 수 있으므로 당신의 연분은 그래도 얕지 않다. 시간을 다그쳐라. (박수)

제자: 저는 레바논에서 왔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신도이지만, 저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향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사부: 무슨 영향이 없다. 당신은 당신의 것을 배우고 그들은 그들의 것을 믿는데, 이건 영향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는 것은 책임지는 신이 없으며 책임지는 신이 없다면 더욱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제자: 몇 차례 중대한 心性(씬씽)의 고비가 모두 제가 법회에 참가하기 전에 발생했는데, 이것은 사부님의 법신께서 배치하신 것입니까?

사부: 당신이 수련생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책임져야 한다. 내가 당신에게 心性(씬씽)의 고비를 넘기게 했는가 아니면 무슨 구체적인 원인인가에 대해 말한다면 이러한 일은 틀림없이 사부가 당신을 책임진다. 수련자에게 발생한 일은 모두 좋은 일이므로 당신은 얼마든지 수련하라. 당신들은 주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제 오전에 한 수련생이 발언했는데, 그 속에 이런 한 단락이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그는 어떻게 수련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느낀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나는 어느 한 방면에서 마땅히 개변해야 한다.”하며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자 그가 다시 연공할 때 이 벽이 단번에 열렸고 홀연히 그의 앞에 놓인 것은 다른 한 경지였다. 내 생각에 이 수련생의 발언을 당신들은 모두 많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제자: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이미 사전(史前)시기에 사람을 제도한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중생은 왜 법을 잊어버렸습니까?

사부: 당신이 가리킨 것은 사람인가 아니면 신인가? 대법이 제도한 사람은 모두 하늘로 올라갔다. 그럼 그러한 생명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그가 법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아는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한 사람이 수련하여 원만에 이른다면 당신의 일체는 모두 법이 만든 것이며 일체는 모두 법에 동화된 것이다. 당신이 대법 속에 있다면 바로 대법의 일부분이다. 사실 전반 우주의 중생은 모두 대법의 일부분이다. 다만 그가 갈수록 이 법에서 빗나갔을 뿐이다. 한 생명이 빗나갔다면 그는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가 마땅히 가야 할 층차로 가게 마련이다. 만일 모두 빗나갔다면 그 한 부분은 해체될 것이며, 나중에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만들어져 나올 것이다.

제자: ‘수련이란 바로 대법에 대한 이해와 기억을 깊이 하는 것입니다.’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런 일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기억한 것은 다만 내가 속인 중에서 말한 법을 표현하는 가장 낮은 한 형식일 따름이다. 그러나 당신이 원만에 이르러 부동한 경지 중에서 알게 되는 법은, 내가 지금 당신에게 말하는, 내포를 제외한 매 한 글자의 법과 다 같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내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는가? (박수) 그러므로 당신들은 사람의 관념으로 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제자: 스스로 집착을 타파하며 걸어왔음을 발견합니다. 이 집착은 표면적인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포가 같지 않은 것입니다.

사부: 그렇다. 왜냐하면, 대법의 부동한 층차 중에서 당신을 지도하여 수련할 적에 다만 마음으로 터득할 수 있을 뿐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속인의 언어사유로 진입하면, 그것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신이 말을 하기도 전에 당신은 속인의 언어사유 편집과정 속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그러면 원래의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러므로 일단 당신이 말하게 되면 원래 경지의 그 참뜻이 아니다. 아마 당신들은 이 문제를 다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마음으로만 터득하고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분이 심득체험은 왜 말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당신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가장 낮고, 가장 표면적인 것과 당신들이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수련생이 말하는 것은 그의 현재의 일이다. 신수련생인 그가 말하는 것은 틀림없이 모두 표면적인 일이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저를 점화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이 배후에는 집착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이는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환희심이 생길까 봐 염려해서 자기가 자기를 파악하여 환희심이 생기지 않게 하고 또한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이 역시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그것을 고수하지는 말라. 또 다른 집착으로 되지 않게 하려면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라.

제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당신 이것은 집착이고 저것은 집착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본인이 집착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두 방면의 원인이 다 가능하다. 제출한 문제는 아주 사상이 있다. 하지만 이 자체가 집착이 있는지 배제할 수 없다. 당신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 집착한다고 말할 때 자신의 집착이 충격을 받아 거꾸로 다른 사람이 집착한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집착을 덮어 감추는 것이 아닌가? (박수) 그럼 집착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함으로써 자신을 집착이라고 말한 사람에게 집착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제자: 만약 책임자가 자신의 위치를 업무능력이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넘겨준다면 대법 건설에 대한 공헌이 아닙니까?

사부: 글자 표면에서 본다면 여러분은 모두 맞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문제가 없다. 다른 사람이 또 잘 수련되었고 업무능력 또한 나은데, 만일 그가 하지 않는다면 대법에 대한 손실이다. 만일 당신이 여기에서 인식한다면 법을 위한 이 기점에 따라 인식한다면 그건 더없이 좋다고 나는 말한다. 물론 바꾸어 말한다면 자신의 다른 사상요소가 아주 은폐된 상태에 숨겨졌거나 심지어 자신이 그것은 집착이라고 감히 생각하지 못해 여기까지 생각하기만 하면 그것을 덮어 감추고 지나가 버린다면 그것 또한 틀렸다.

제자: 자신은 늘 저의 마음과 저의 일체,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부님을 공양하겠다고 자신을 훈계하고 있습니다.

사부: 여러분의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것은 종교 중에서 남겨진 것이다. 석가모니는 말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그의 제자는 동냥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승려에게 밥 한 숟가락 주는 것은 공덕이 무량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 얼마나 되는 돈과 재물을 공양해 주는 것이 공덕이 무량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종교는 이미 부처의 요구에 따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어떤 승려는 탐욕심이 대단히 크다. 그는 돈을 많이 달라고 한다. 그는 이런 관념을 선전한다. 당신이 나를 공양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공덕이 무량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공양하는가? 당신이 주는 것이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심지어 그는 가산을 탕진해서라도 나를 공양해야만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런 이기적인 것(自私自利)이 극단적인 정도에 도달했다. 심지어 이런 이기적인(爲私) 관념은 남에게 가산을 탕진하게 하여 남의 것을 탈취하면서도 그는 만족한 마음을 얻지 못한다. 사악하기가 마보다도 더 흉악한데 그가 어찌 수련하는 사람이겠는가?

대법은 돈으로 가늠할 수 없다. 당신도 수련하는 사람인데 왜 다른 사람이 당신을 공양해야 하는가? 왜 다른 사람의 돈을 달라고 하는가? (박수) 돌이켜 말하면, 당신이 그에게 공양하라는 그 역시 부처수련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당신을 공양해서는 뭘 하겠는가? 그가 당신보다 잘 수련했을지도 모르는데, 당신은 무슨 이유로 그의 공양을 받는가. 당신이 오히려 그를 공양해야 한다. 물론 지금 이 종교 중에서 돈을 위하고 권력을 위하며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로서 괴상한 일이 더는 괴상한 일로 보이지도 않는다. 거짓말도 세 번만 하면 마치 정말인 것처럼 변하므로 들을수록 더욱 듣기 좋아 그것의 옳고 그름을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물론 어떤 수련생은 사부의 생활이 어떠한지 생각하며 늘 사부를 위해 생활문제를 좀 해결해 주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당신들의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제자: 생명의 목적은 오로지 眞(쩐)·善(싼)·忍(런)에 동화하는 것입니다. 만약 위배한다면 저는 형신전멸(形神全滅)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사부: 당신들의 법에 대한 이해는 아주 깊으며 원만을 이루려는 결심은 반석같이 튼튼하다. 나는 정말로 좋다고 느낀다. 내가 느끼건대 법에 대한 수련의 기초가 굉장히 잘 다져졌기 때문에 이런 말을 써낼 수 있다.

제자: 나중에 사부님을 계승하여 계속 대법을 널리 전할 사람이 있습니까?

사부: 이 일을 한 후에는 바로 결속된다. 당신들은 우주가 교체되는 길목에 처해 있다. 정법(正法) 이 일이 지나간 후에 미래의 인류는 다시 발전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대법을 모르겠지만, 그들은 역사상 이런 일이 나타났던 것을 알 것이다. 이 대법의 법리가 무엇인가를 말하자면 그들은 한 글자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럼 그들의 새로운 문명이 건립될 때 또 새로운 불(佛)·도(道)·신(神)이 세상에 내려와 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생명 그는 여전히 불법을 들을 수 있다. 아마 백인사회는 그때에 또 예수 같은 신이 세상에 내려올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기원(紀元) 이후의 일이다. 이는 당신들과 관계가 없다.

제자: 『전법륜』과 이미 출판된 사부님의 책은 모두 같은 법력(法力)을 갖고 있습니까?

사부: 그렇다. 오로지 대법이라면 모두 마찬가지로 그 배후에 무한한 내포를 갖추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체계적으로 수련하려면 다만 『전법륜』 이 책을 틀어쥐고 수련해야 하며 다른 책은 모두 다만 참고일 뿐이다. 그러나 참고서적은 모두 부동한 층차의 내포가 존재하기 때문에 부동한 층차에서 모두 부동한 층차의 참고가치가 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수련하자면 바로 『전법륜』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전법륜』을 틀어쥐고 반복해서 보아야 한다.

제자: 원만한 제자는 장차 모두 극히 높은 층차로 제도됩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큰 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부: 다시 말해서 “사부님께서 이처럼 높고 깊은 대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그처럼 높은 데로 갈 수 없다면, 당신이 저희에게 그처럼 높게 말씀하셨지만, 그건 헛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라는 말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아마 어떤 수련생은 보았을 것이다. 매번 법회마다 법을 듣는 것은 다만 당신들 사람만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내가 말한 같은 한마디 말을 듣고 있으나 당신들이 듣는 이 한 층 수련인이 이해할 수 있는 내포가 아니다.

제자: 수련생이 발언하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라고 말할 때 어쩐지 저는 내심에서 우러나와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사부: 아마 당신들의 가장 본질적인 그 한 부분, 가장 미시적인 그 한 부분을 건드렸을 것이다.

제자: 만(卍)자 부호는 부처 층차의 부호인데 도(道)의 층차도 부호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당신은 공식(公式)으로 하늘의 그러한 일을 틀에 맞출 수 없다. 그러한 일이 아니다. 사실 부동한 신(神) 그들의 체현은 그가 무슨 부호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卍)자 부호는 단지 부처의 일종 표현이며 바로 부처를 대표한다. 물론 부처는 바로 이런 표현형식이다. 부처는 이 부호 층차의 표현이 있다. 사실 하늘의 신은 바라보기만 하면 그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고 보기만 하면 층차를 알 수 있다.

제자: 과거의 모든 수련방법은 모두 副元神(푸왠선)이 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럼 서양종교의 수련방법은 누가 공을 얻습니까?

사부: 그건 물을 필요가 있는가? 서양의 수련방법도 육신이 죽은 다음 그 副元神(푸왠선)이 가는 것이 아닌가. 지상에는 한 사람도 적을 수 없는 것이므로 그럼 그 主元神(주왠선)은 이어서 여전히 윤회로 들어가야 한다.

제자: 서양인은 하나님이야말로 우주의 유일한 창조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장애를 돌파할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사부: 어떤 사람은 이처럼 생각한다. 당신은 이치에 맞게 그에게 말하거나 혹은 그에게 책 한 권을 주어 보게끔 하라.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당신은 그에게 억지로 믿게 할 수 없으며 그 자신이 믿지 않는다면 현재 어떤 방법도 없다. 내가 말한 적이 있다. 우주의 부동한 층차의 신은 그가 얼마나 높거나 얼마나 낮거나 혹은 어느 층차이거나 그는 자신 위에 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나는 오늘 법리에서 당신들에게 그처럼 높은 경지가 있음을 알려준다. 당신들은 단지 미혹 중의 사람인 채로 이치를 듣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진정하게 법에 용해될 때, 당신은 바로 그 한 층 법의 한 분자이다. 그때 어떤 사람이 더욱 높은 것을 말해도 당신들 역시 믿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당신들 이하의 층차와 동등한 층차 중의 일체가 죄다 눈앞에 있고 어떤 누락도 없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당신들이 보지 못하는 일체를 당신들은 그것이 더 있다는 것을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장래에 나는 믿을 것입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때에 가서 내가 당신들에게 말한 이 법의 언어형식, 방식은 모두 이렇지 않다.

제자: 신은 元神(왠선)이 있습니까?

사부: 신을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미혹 속에 있으나 신, 그는 元神(왠선)·副元神(푸왠선) 혹은 기타 형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은 바로 자신이다. 하지만 신에게도 신(神)의 신체가 있다. 이 신체의 존재 또한 사람의 主元神(주왠선)과 사람 신체 사이의 관계와 같지 않다. 이런 관계가 아니다. 그들은 일체(一體)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 일체(一切)를 똑똑하고도 똑똑하게 알고 있으나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제자: 저는 새로 왔는데, 저는 신과 천국의 존재를 정말로 믿을 수 없습니다. 만약 제가 노력하여 법 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으며 연공한다면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사부: 된다. 다 된다. 당신은 오로지 수련만 해라. 당신보다 사상이 고집스러운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 그도 최후에는 모두 수련하여 올라왔다. 마음을 내려놓고 수련하라. 사실 당신의 말 속에 이미 대법을 배우려는 염두가 생겼다. 단지 시작에 불과하지만, 지금 당신 사상의 기초에서부터 단번에 모든 것을 그로 하여금 개변하게 한다면 또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당신은 법 공부 중에서 서서히 법리 중에서부터 알게 될 것이며 최후에는 느끼고, 만지고, 보는 대로 상승할 수 있다.

제자: 저는 많은 사람이 모두 그림자가 겹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眞體(쩐티)가 모두 수련성취 된 것입니까?

사부: 왜냐하면, 대법이 사람을 개변함은 돌비맹진(突飛猛進)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그의 신체의 그림자를 보았다.

제자: 잠자기 전에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들으려고 생각하나 흔히 중도에 자 버리는데, 사부님께 대한 불경(不敬)이 아닙니까?

사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이 정진하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곧 참답고도 참답게 당신의 법 공부를 대해야 한다. 당신이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하는데, 나는 이 법을 들으면 잠이 들 수 있다고 한다. 당신은 그를 잠들게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당신의 마음을 어디에 갖다 놓은 것인가? 어떤 사람은 확실히 법을 들을 때 잠을 잔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에게 잠을 자게 하고 당신에게 법을 듣지 못 하게 하는데, 당신은 그것을 마(魔)라고 간주하지 않는가? 그럼 만약 이렇다면 왜 당신은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는가?

제자: 어떤 수련생은 연공할 때 어깨 부위가 극렬하게 떨리는데 그가 눈을 떠도 그랬습니다.

사부: 그에게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책을 많이 보게 하여 진정하게 법에서 제고하게 하라. 만약 한 사람이 전일(專一) 하게 수련하지 못한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으며 혹은 한 사람이 수련 중에서 그의 어깨에 병이 있다면 그의 병을 제거할 때에도 이런 떨리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 이렇다면 그가 병을 제거하는 첫 번째 층차 중에서 전혀 진보하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수련하고 그가 법에서 진정하게 제고한다면 아주 빨리 지나갈 수 있으며 그 한 층차를 벗어날 수 있다. 수련할 때 신체에는 불편한 감각이 있을 수 있는데 만일 장기간 제거되지 못했다면 당신은 왜 대법 중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잘 수련하지 않는가? 당신은 연공을 통해 병을 제거하는 데만 도달하려 하고, 당신이 수련은 하려 하지만, 책을 보려고는 하지 않는데, 어찌 개변될 수 있겠는가? 어찌 거기에 지체되어 늘 이 상태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자: 평상시 많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수련 중에서 고비를 넘기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만약 당신이 수련 중에서 대법이 당신에 대하여 진동을 일으키지 못하고 다른 평상시의 일과 마찬가지라면 내가 보기에는 정말로 문제이다. 그럼 당신은 법 공부를 많이 하는 데 마음을 써 이 장애를 타파하라. 그것이 마치 철옹성과 같아 꿰뚫지 못한다면 당신의 깨달음과 당신의 법 인식에 심각한 영향 끼칠 것인데 왜 그것을 꿰뚫지 않고 타파하지 않는가?

제자: 저는 크게 나쁜 짓을 했는데, 저는 아직도 수련할 수 있습니까?

사부: 사실 당신들은 법을 얻은 후에는 이처럼 거듭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이 내려놓지 못한 집착은, 당신들이 명백하게 잘못된 것임을 아는데도, 하게끔 한다. 당신들은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당신들이 이것을 일종의 동력으로 삼아 철저히 회개하고 환골탈태하여 새롭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이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다.

제자: 법리에서 늘 새로운 이해가 있는데, 이는 다만 이론에만 머문 것이 아닙니까?

사부: 새로운 이해가 있다면 당신은 바로 제고되고 있다. 차이점이 아주 크다고 느낀다면, 당신의 감각에 차이가 있다면, 바로 제고이다. 속인은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보지 못한다. 이런 상태 중에서 깨달은 이치는 단지 이론에만 머문 것이 아닌데,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시적인 변화는 또 속인사회 속에 반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다만 법리(法理)에서 당신에게 체현해 준 감수에서 이해하거나 감수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상황이다.

제자: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몹시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 이는 어떤 마음을 가리키신 것입니까?

사부: 여기에서 가리킨 모든 마음은 물론 당신 수련 중의 일체 정념(正念)이다. 정념이란 실제 바른 인식으로서, 당신의 잘 수련된 그 한 부분이 몹시 취약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여 나는 한 가지 문제가 생각난다. 조금 전에 새로 나온 책 『장춘보도원법회 설법』, 홍콩에서 나온 책 제12페이지 제3행에 ‘인류의 법’이라는 것이 있다. ‘인류’를 ‘우주’로, 즉 ‘우주의 법’으로 고치도록 하라. 중국대륙에서 나온 책은 아마 제14페이지에 있는 것 같다.

제자: 집에서 『전법륜』을 통독하는 진도와 단체 법 학습 때 배우는 진도가 같지 않은데 수련에 영향이 있습니까?

사부: 참답게 배운다면 모두 영향이 없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들이 『전법륜』을 보는데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보라. 당신이 오늘 다 보지 못했다면 내일 이곳을 이어서 더 아래로 보고 또 다 보지 못했다면 이곳에서부터 이어서 또 아래로 보면서 이렇게 보아야 하는데 골라가며 보지 말아야 한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이 바로 처음 『전법륜』을 보는 사람이 사람의 관념을 품고 법을 가늠하는 것이다. “오, 이곳은 잘 말했다. 저곳은 내가 좀 의심이 간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그 한 책을 그는 모두 헛되게 보았으며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으로 이는 너무나 애석하다! 왜냐하면, 법은 엄숙한 천법(天法)이기 때문인데, 사람, 그는 그가 얼마나 큰 업력이 있는지를 모르며 그는 자기의 사상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지를 모른다. 그가 사람의 사상으로 이 법을 가늠하면 그는 아무것도 다 보아내지 못한다. 아무런 관념도 없이 이 책을 들고 보며 다 본 후에 당신이 다시 그가 어떠한가를 가늠해야 한다. 당신은 보는 과정에서 그의 좋고 나쁨을 가늠하지 말아야 한다.

제자: 겨울에 밖에서 연공하자면 아주 두툼히 입어야 합니다. 연공할 때 쉽게 옷에 부딪치는데 기제(機制)를 혼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사부: 겨울에 두툼히 입어 옷에 부딪친다고 연공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다. 너무 추운 날에는 당신이 장갑을 끼고 연공하도록 하고, 동상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사실 연공인은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어떤 사람은 연공하면 당신이 동상에 걸리게 한다. 왜 이렇게 하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대법은 억지로 수련할 수 없으며 사람의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대법을 수련하는 중에서 많은 신수련생들이 끊임없이 들어와 법 공부를 하는데, 그들은 그렇게 크고 그렇게 높은 깨달음과 그렇게 높은 층차가 없기 때문이다. 또 고험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꼭 수련하러 왔다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아직도 진수제자(眞修弟子)로 대할 수 없다. 만일 그가 동상에 걸렸다면 법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그가 방금 입문했고 방금 들어왔기 때문인데, 아직 그가 수련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정할 수 없다. 그의 마음이 시험해 보자고 생각했을 때 단번에 동상에 걸렸는데, 그럼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 수련 중에 끊임없이 신수련생이 들어오고 있으므로 여러분은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수련생은 기어코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그럼 그에게 동상에 걸리게 한다. 실제 또 한 면에서 그를 도와 업력을 제거하고 있고 한 면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그를 점화해 준다.

제자: 어떤 사람은 동작이 몹시 부정확한데 기제(機制)와 法輪(파룬)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까?

사부: 몹시 부정확하다면 안 된다. 약간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 또한 개개인이 모두 한 틀로 찍어낸 것이 아니고 모두 기계에서 나온 것처럼 똑같을 수 없으므로 서로 간에 틀림없이 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설령 차이점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의 키는 크고 그의 키는 작은데, 그럼 또 차이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즉 말해서 그것이 완전히 일치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만약 당신의 동작이 차이가 너무나 크다면 안 된다. 가급적 그것을 정확히 해야 한다.

제자: 혹서(酷暑)와 엄동설한에 밖에서 연공하면 실내에서 하는 것보다 소업이 빠릅니까?

사부: 이것은 바로 내가 방금 말한 것으로 밖에서 연공하면 물론 좋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고생을 찾아 해서는 안 된다. 북방에서 겨울을 지내자면 대단히 춥다. 밖에서 연공하자면 반드시 솜옷을 입고 장갑을 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당신을 좀 얼게 했다고 업이 그만큼 많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心性(씬씽) 제고야말로 당신이 제고하는 관건이다. (박수)

제자: 중국 내에서는 사부님을 뵐 수 없습니다. 저희 그곳의 제자들을 대신하여 저에게 사부님께 문안을 전해달라고 거듭 부탁했습니다.

사부: 여러분 감사하다. (박수) 나는 우리 국내 수련생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다. 당신이 보다시피 국외에서 법회를 열자면 아주 쉽다. LA에서 한 차례, 이번에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또 여러분과 만나게 되었다. 국내의 제자들은 몹시 어렵다. 국내의 제자들은 수천만, 1억에 가깝다. 여러분이 나를 한 번 만나자 해도 대단히 어렵다. 그들은 내가 일단 어디에 나타나고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면 모든 수련생이 다 거기로 몰려올 것이다. 비행기, 기차도 초만원일 것이고 거리도 꽉 찰 것이며 정부에서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로 하여금 안정된 환경이 있고 영향을 받지 않고 수련하며 사회에 영향 주지 않고 정부에 번거로움을 주지 않으려고 하므로 나는 그들과 그렇게 만날 수 없다.

제자: 사부님께서 벨기에에 가실 기회가 있습니까? 홍법 중에서 다른 사람이 학습반을 조직하거나 강좌를 열면서 돈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부: 기회가 있으면 벨기에에 가겠다. (박수) 학습반을 열고 강좌를 하면서 돈을 받는 것은 우리 대법의 제자가 아니다. 이 점은 틀림없다. (박수) 왜냐하면, 그가 대법으로 돈을 바꾸기 때문인데, 이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장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련생들이 서로 자발적으로 해결한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안 된다.

제자: 최근에 올해의 시간이 작년보다 빨리 지나가는 것을 느꼈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부: 물론 내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을 말하자면 사람에게 믿게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대단히 높이 말해야 하는데 당신들은 또 늘 이러한 문제를 묻는다. 사실 이 일을 나는 일체 시간을 초월하여서 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생각해 보라. 한 생명 그가 한 시간 마당 내에 들어온다면 그는 그 시간의 제약을 받게 마련이며 그가 또 다른 시간 마당에 들어갈 때면 그는 또 그 시간마당의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내 일생을 다 소모하여 십생(十生)・백생(百生)・천생(千生)・만생만세(萬生萬世)라도 이 일을 다 해내지 못한다. 나는 일체 시간을 초월하여 하고 있으며 일체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이 일을 다그쳐 하기 위해 반드시 전반 천체의 시간을 빠르게 밀어주어야 했다. 그래서 가장 큰 法輪(파룬)이 가장 높은 곳에서 다그쳐 돌면서 밀어주고 있다. 천체, 그것은 전체적으로 상하가 하나로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은 갈수록 빨리 변한다. 대략 어느 정도로 빨라졌는가? 부동한 시간, 공간 속의 생명은 아무리 빨라도 그 공간 속의 일체가 모두 따라서 빨라지므로 그는 빠르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말한 이 뜻을 알겠는가? 그것은 마찬가지로 24시간이 하루이며 여러분은 마찬가지로 같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공간의 시간은 모두 빨라졌으나 그 시계는 여전히 24시간에 따라 이렇게 가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렇게 빠른 것을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이 보는 태양이 뜨고 지는 것 역시 이처럼 순환하고 있다.

일체가 모두 빨라지면 일체가 모두 빠르며 당신의 신진대사, 당신의 동작, 눈길, 사유방식도 모두 따라서 빨라진다. 부동한 층차의 생명이 존재하는 환경도 마찬가지로 빨라지고 있다. 일체가 모두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누구도 빠른 것을 감각하지 못한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빨라졌는가? 대략 우리 지금의 하루는 바로 1초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몹시 가련하다. 그러나 사람은 거기에서 아직도 흥미진진하게 사람의 일을 하고 있으며 사람은 아직도 자신이 대단히 위대하다고 여기는가 하면 인류는 아직도 얼마나 높게 발전하려고 생각한다. 사람은 곧 사람이다. 사람이 무지하여 자신을 훼멸하면서도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복제인간이 정말로 만들어졌을 때가 바로 외계인이 사람을 정식으로 대체할 때이다. 복제인간에게 신은 무슨 元神(왠선)을 주지 않을 것이므로 그렇다면 복제인간은 마치 시체와도 같다. 그것이 만약 신(神)이 없다면 그것이 출생했다 해도 곧바로 죽은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외계인이 틈을 타서 들어와서 그것의 신으로 된다.

제자: 원만 후에도 여전히 계속 『전법륜』을 학습해야 합니까?

사부: 천상의 신도 대법을 배운다. 하지만 이러한 글자가 아니며 그들의 매 한 층에서 표현되는 법이다.

제자: 수련의 길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일하는 환경과 생활환경을 개변한다면 수련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나는 당신들이 인위적으로 고생을 찾아 겪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있다. 당신이 나는 조건이 허용되고 또 갖춰졌다고 말하면서 나는 더욱 좋은 일을 찾아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당신이 가서 하는 것을 환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조건도 갖춰졌고 여러 면에 모두 허용이 되면 내 생각에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이것은 모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수련 중인 것이다. 물론 당신이 이루지 못한 일을 기어코 하려 하고, 심지어 기어코 고생을 찾아 하겠다고 하면 당신은 일을 망칠 것이다. 하지만 이 대법 중에서 이 법리를 깨달을 때에 여러분은 확실히 생각해 보아야 하며 외고집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법을 토론하거나 연구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법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인식을 말해도 안 된다고 합니다.

사부: 그 어찌 될 말인가? 그럼 우리가 오늘날 여기에 앉아서 여러분이 말한 것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이처럼 인식할 수 없다. 만약 오늘의 법회처럼 자신의 심득체험마저도 이렇게 말하지 못 하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나는 말한다. 반대로 만일 당신이 자신의 무슨 내려놓지 못한 집착을 발표하고자 하고 이 집착이 조성한 일부 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 혹은 대법에 대해 인도하는 방향에도 문제가 있다면 당신은 왜 다른 사람이 당신으로 하여금 말을 하지 못 하게 하는가를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당신에게 이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바로 상대방이 틀린 것이다. 만약 당신들이 이 신성한 법회에서 나의 입을 빌려 누구를 말하고 누구를 비평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일은 당신들이 다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그 생각의 근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 어느 날 저는 갑자기 ‘사부’라는 이 두 글자에 완전히 새로운 내포가 부여되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가장 신성한 두 글자입니다.

사부: 그것은 바로 이 두 글자의 배후의 내포가 당신에게 나타내 준 것이다. 여러분은 대법의 매 한 글자를 얕보지 말라. 매 한 글자의 배후에는 모두 부처이며 매 한 글자가 모두 법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나는 법을 골라서 본다. 이것을 보지 않고 저것을 보지 않으며 이것은 이해할 수 있고 그 한 단락은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제자: 당신께서는 아주 많은 부동한 층차에 모두 천국을 세우셨습니다. 이런 천국의 명칭은 무엇입니까?

사부: 사람은 다만 석가모니부처 이 한 층 여래를 알 따름이고 더욱 높은 신의 것은 당신들이 아무것도 알지 못 하게 할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초기에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모두 말한 적이 있다. 더욱 높은 신의 이름도 사람이 아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사람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욕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들로 말한다면 너무나도 낮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신은 여태껏 사람과 그들을 동류(同類)로 비교해 본 적이 없다. 비록 그들이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사람에게 자비로우나, 자비롭게 여긴 것은 사람의 이 생명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인류를 짐승류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의 그런 개념이 아니다.)

제자: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사전 한 시기에 광범하게 사람을 제도한 적이 있고 이번 시기 인류에서는 처음으로 이처럼 높은 법을 전합니다. 예전과 지금 전하고 있는 대법은 같은 것입니까?

사부: 첫째, 이 우주의 법의 가장 원시적인 것을 누가 전했는가? 둘째, 이후의 역사 중에서 가령 내가 이 우주 대법의 그중의 일부분을 전했다면 내가 바로 이 법을 전한 것이 아닌가? 내가 사람에게 설법할 때 내가 그처럼 높은 법을 말할 필요가 있는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역사상에서 만약 이 법을 바로잡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면 나는 단지 이 법이 사람을 제도하는 그 한 부분만을 말했을 것이다. 그럼 그것은 곧 그 우주의 법이 아닌가? 나는 단지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그 한 층차의 것만 말했으므로 높지 않은데, 바로 이 법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이 법이다.

제자: 우주 중에서 왜 생명이 생기게 됩니까?

사부: 마치 한 미생물이 그것의 사유방식으로 사람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사유로는 영원토록 신(神)의 존재와 사유방식을 명백히 생각할 방법이 없다. 사람은 우주에 대하여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도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모르는데, 어찌 그 우주 중의 일을 물을 수 있는가? 이 말을 묻는 것은 “왜 우주가 있는가?”를 묻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것이 왜 우주가 있고 왜 생명이 있는지 상관하지 말자. 왜냐하면, 이것은 당신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당신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우주를 만들었는데, 생명이 없고 아무것도 없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사람의 말로 하면 바로 주[主, 만왕지왕(萬王之王)] 혹은 주불도신일체지존(主佛道神一體之尊)이라고 부르는 그가 이렇게 원한 것이다.

제자: 생명의 최종 존재의의는 무엇입니까?

사부: 당신은 사람의 사유방식으로 우주를 생각하고 생명의 의의를 생각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사람을 말하자면 사람이 살면서 모두 살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와서 설법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사람 그는 모두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란 정체(整體)적인 당신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당신들은 내가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높게 말한 더욱 높은 내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부동한 층차의 생명, 그들은 모두 그들이 생존하는 의의와 생존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있는데, 그들이 그 층차에서 하는 진정한 이해와 당신들의 이해는 완전히 별도의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인식은 모두 거꾸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진상을 보지 못하고 앞길을 다 보지 못하며 아무것도 다 투철히 깨닫지 못하고 아무것도 투철히 다 보아내지 못한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여전히 이 공간 속에서 기어 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그처럼 많은 기이하고 기이한 생각이 있다. 만약 어떠한 관념도 갖지 않고 문제를 가늠한다면 당신은 바로 아주 대단하고 위대한 신(神)이다. 그러나 인류는 해낼 수 없다.

당신은 말하기를, “나는 해낼 수 있다. 당신이 보라. 내가 한 말, 그것은 모두 다른 사람이 잘 되게끔 하기 위한 것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당신들이 한 말 속에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가? 당신들이 말할 때에 후천적으로 형성한 관념, 부동한 시기에 형성된 관념과 사상업력이 그 속에 뒤섞인 후에 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사상은 영원히 순정(純淨)할 수 없다. 어떤 것은 당신 여기로 반영될 수 있어 당신이 알게 되고 어떤 것은 당신의 여기로 반영되지 않으므로 당신은 모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반영되어도 그는 전혀 모른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한 말 속의 요소는 그 속에 포함된 복잡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 신이 한 말은 사람을 두고 말한다면 순정하기가 절대적이다. 당신은 당신이 자비하다고 말하는데 사실 당신의 자비에는 부동한 시기에 형성된 많고도 많은 사람의 관념 성분이 그 속에 끼어 있다. 왜냐하면, 당신의 사유란 바로 당신 사람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상 속에는 무엇이나 다 있으며 당신의 사유가 발산해 낸 사상 속에는 무엇이든 다 있다. 수련이란 바로 순결하지 못한 일체, 저능한 일체를 닦아 없애는 것이다.

제자: 울음은 한 시기의 상태인데 저는 왜 1년이 되었어도 늘 이 상태를 넘어가지 못합니까?

사부: 그것은 아마 교란일 것이다. 왜 늘 넘어가지 못하는가? 심지어 법마저 듣지 못하면서도 아직도 거기에서 울고 있다. 그럼 잘못되었다. 물론 나는 이 수련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문제에서, 당신의 수련에 영향 주지 않는 상황에서 이 상태가 나타났다면 그건 아마 또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했던 잘못된 일이나 자신이 개변된 상태, 이 일체 발생한 변화를 보았는데, 이는 당신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옥에서 당신을 건져 깨끗이 씻어주며 또한 당신에게 그처럼 위대한 일체를 주려 하는데, 울지 않을 수 있는가?

어쩌면 당신들이 나와 어느 한 세(世)에 육친의 인연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떤 가능성도 다 있을 수 있다. 바로 이 원인이다.

제자: 예컨대 18K 금으로 된 세계에서 생긴 생명은 이미 순수하지 못하며, 만일 법을 바로잡은 이후에 24K 금의 그러한 세계로 되돌아가고자 하면 반드시 높은 표준으로 요구해야만 원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맞습니까?

사부: 그렇다. 하지만 단번에는 도달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수련하는 과정 중에서 점차 도달할 것이다. 그때에는 일체가 모두 순리에 따라 저절로 맞으며 아주 자연적이고 억지로 당신에게 어떻게 하라는 것이 없다. 이 문제를 말하게 되어 나는 일찍이 당신들에게 일부 문제를 처리해 줄 때의 한 가지 일이 생각난다. 당신들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일체를 다 처리하고 나서 나는 아직도 맞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당신들 생명을 구성하는 더욱 은폐된 곳에서 나는 그런 기본물질마저도 다 변이되었고 일체 개변할 수 없는 것으로 완고하게 형성된 것을 발견하였다. 이때 다른 신이 본다면 생명의 본질마저도 안 되므로 이 우주를 아예 더 가지고 있을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에게 그것을 모두 개변해 주었다. (박수) 그 일은 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약간만 빗나가거나 잘하지 못해도 당신들 장래의 일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최후에 나는 그 당시 내가 방금 법을 바로잡기 시작할 때에 이 일은 너무나 어렵다고 생각했다. 내가 말한 그것은 당신들이 존재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더욱 높은 층차에서는 역시 더욱 미시적이고 더욱 미시적인 마찬가지의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런 일은 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모두 하였고 표준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가장 좋은 표준을 초월하였다. (박수)

나는 또 인류에게 변이가 발생한 것은 아주 높은 층차에서 무척 높은 물질에 변이가 발생하여 조성된 것임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렇게 변이된 것은 무척 완고했다. 사람 여기에서 그것의 직접적인 표현형식은 지금의 젊은 사람들의 그런 표현행위와 관계가 있다. 무책임하고, 건들거리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고함을 지르며, 음악을 틀고 무슨 괴상한 춤을 추고, 무슨 전자오락을 하는 등 어쨌든 온 머리에는 이른바 현대생활의 그러한 것들이다.

제자: 가부좌는 반가부좌를 하는데 가부좌할 때 다리에 극렬한 통증이 지속해서 오는데, 진통(陣痛)이 아닙니다.

사부: 물론이다. 내가 말한 그 진통이란, 그가 결가부좌를 할 수 있어야 진통이 나타날 수 있다. 당신이 막 다리를 틀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것은 지속적인 것으로, 그것은 당신이 결가부좌를 해본 적이 없거나 혹은 당신이 이제 막 다리를 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말 지속해서 아프다. 마치 당신으로 하여금 1초도 견뎌내지 못하고 빨리 다리를 내려놓게 하려는 것 같은데, 바로 그 마음이다. 당신은 아파서 부들부들 떨며 참기 어려워하는데,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 안절부절못하는 마음, 나는 당신들의 일체를 몸으로 깊이깊이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은 두 가지 방면에서 말해야 한다. 아마 당신이 여태껏 다리를 튼 적이 없으므로 다리 골격이 굳어 있어 당신의 힘줄을 늘리지 못하는 것이거나 혹은 업력이 조성한 것이다. 두 가지 방면이 다 가능하다.

제자: 늘 자신이 대법 중의 요구와 차이가 있다고 느끼며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이것은 집착입니까?

사부: 뒤의 한 단락은 바로 집착이고 앞의 한 단락은 맞게 말했다. 전혀 무슨 시간이고 시간이 아니고를 상관하지 말고 오로지 당신이 수련만 하면 바로 원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있다. 당신은 정진(精進)해야 한다! “나는 꾸물꾸물하며 10년·8년·20년이고 우린 천천히 하자.”라고 말한다면 나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제자: 수련하는 사람이 수련성취 된 후의 세계 속으로 제도될 중생 또한 수련인과 인연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당신 세계 속의 중생은 인간세상에서도 당신과 모두 인연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은 바로 당신의 그 마음이다. 당신이 수련성취 되어 원만을 이루면, 당신은, 당신이 진 빚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들이 수련하는 과정 중 나도 한편으로 당신들의 세계를 원만에 이르도록 하고 있는데, 당신이 빚진 그러한 생명의 일부는 당신 세계 속의 중생이 될 것인바, 그는 물론 기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 자비의 체현이고 당신의 위덕의 체현이며, 또 그들을 제도한 것이고, 이 일을 좋은 일로 변하게 한 것이다. (박수)

제자: 수련과정 중에서 법을 깨닫는 것은 가장 높은 층차 중의 眞(쩐)·善(싼)·忍(런)의 특정한 내포를 깨닫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부: 그러한 일이 아니다. 내가 말한 깨달음이란 당신이 수련과정 중에서 일마다 모두 정념(正念)을 갖고 대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이다. 나의 이 한마디 말은 아주 적절하게 대법수련의 깨달음을 형용하였다. 당신이 거기에 앉아서 일부러 생각하고 우리가 이 한 글자의 배후에 어떤 내포가 있는가를 캐보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깨달음이 부족하며 그의 신체가 약간 불편하기만 하면 그는 곧 나에게 “어찌하여 편안하지 않습니까, 사부님, 저는 어떻게 불편합니다.”라고 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나는 오늘 어찌 된 일입니까?”라고 묻는다. 내일 그가 어떤 기분 나쁜 일에 부딪히면 “나는 왜 늘 기분 나쁜 일에 부딪히는가.”라고 한다. 그럼 우리는 이 사람의 깨달음이 너무나 낮다고 말한다. 사실 그의 몸이 불편할 때 마침 그에게 병을 배출하거나 혹은 한창 공이 자라면서 나타난 상태이지만, 그는 여전히 좋지 못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가 마난에 부딪혔을 때가, 바로 그가 心性(씬씽)을 제고할 기회이므로 그는 수련해야 하는데, 이 조건이 없으면 그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이것도 견디기 어려워하고 저것도 견디기 어려워하는데, 그럼 또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 수련할 방법이 없다. 바로 이 사람의 깨달음이 너무 낮음을 설명한다. 내가 가리키는 깨달음이란 이러한 깨달음이다.

제자: 중국과 세계의 많은 사람이 수련하지 않습니다. 사부님께서 그들에 대해 몇 마디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해주십시오.

사부: 내가 말한 법은 모두 의의가 있는 것이며 모두 목적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바로 사람이다. 당신이 내게 사람에게 뭘 말하라고 하는가? 내가 당신들에게 말함은,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나는 당신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수련 중의 사람이며 신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박수)

제자: 보도소에서 단지 수련생들이 자신의 근처에서 연공하는 것을 허용할 뿐 단체로 홍법하고 연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사부: 당신이 말한 이 상황은 아마 당신 자신이 잘못 알았을 것이다. 그럼 또한 그 보도소 책임자가 일하는 중에 타당하지 않음이 존재할 수도 있는데, 이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있는 것으로 나는 당신에게 구체적으로 뭐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은 나의 이 한마디 말을 기억하라. 두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제삼자가 보게 되었다면, 제삼자도 ‘나 자신은 어디에 잘못이 있는가, 왜 나에게 보게 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물며 모순이 발생한 두 사람이라면 더욱 마땅히 자신을 보아야 하며 안을 향해 수련해야 한다. 그럼 당신이 이 일이 당신 생각에 맞지 않음을 발견했을 때, 당신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것인지 당신도 마땅히 보아야 한다. 만약 정확한 것이라면 대법에 대해 책임지는 데 입각하여 당신은 소장에게 당신의 합리적이고 정확한 생각을 제출해야 한다. 내 생각에 그는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고려할 수 있다. 바로 이렇지 않은가.

제자: 사부님께서는 ‘견실(堅實)’ 경문 중에서 다른 공간에서 오는 교란은 부동한 방식을 취하여 수련생과 접촉하면서 파괴를 진행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 이렇게 말하자. 당신에게 대법에 부합되지 않은 일을 하라고 할 때 당신이 하면 안 되고, 당신에게 대법이 아닌 동작을 가르쳤을 때 당신이 배우면 안 되며, 우리 대법 중에서 하려는 일이 아니면 당신이 그것을 따라가서 하면 안 된다. 이러면 된다. 일부 나쁜 것들이 나의 법신으로 가장하는데 당신은 파악해야 하고 대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법신이 그에게 어떻게 하라고 했다면 그 자체가 바로 마를 초래한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던 중의 일부 사적(事迹)을 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법이다. 어떻게 위로 수련하겠는가. 당신은 마음을 여기에 두어야 한다. 당신이 다른 것을 알고자 생각한다면 모두 원만한 이후에 남겨놓았으므로 지금 당신은 너무 허황한 생각을 하지 말라.

제자: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法輪(파룬)을 주신 더욱 깊은 의의는 원만을 이루어 원래 위치로 돌아간 후 영원히 다시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부: 나는 이렇게 하려고 생각한다. (박수)

제자: 리 사부님, 당신의 광명을 발휘하여 아프리카에 오실 수 없습니까?

사부: 어떤 일은 당신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지 않다. 사실 중국 수련생 중 어떤 사람은 그가 전세(前世)에 아마 흑인이었을 것이고, 우리 백인 수련생 중에도 아마 일부는 흑인이었을 것이다. 그럼 다시 말해서 이렇게 큰일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런 간단한 표현형식이 아니다. 마땅히 제도해야 할 사람을 나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박수) 당신들이 책을 많이 읽고 법 공부를 많이 하며 끊임없이 제고하기 바란다.

제자: 사부님께서 해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는 것을 중지하셨을 때, 저희가 어떻게 해야만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종교로 흘러가지 않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는 줄곧 이 대법에 따라 인간 세상에서 일체를 다 끝마칠 것이다. (박수)

제자: 제가 일부 기분 좋고 재미있는 일을 했을 때 죄악감이 있는데 왜 이렇습니까?

사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많은 재미있는 일, 그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지금의 사람은 모두 이 시대의 조류에 순응했고 일의 좋지 않은 그 한 면의 존재를 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 사람의 옛 관념으로 가늠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며, 만약 대법으로 가늠한다면 당신은 그것이 더욱 옳지 않으며 법에 부합되지 않음을 발견할 것이다. 아울러 놀기를 좋아하는 강렬한 마음도 대법 수련에 영향을 주는 집착이다.

제자: 때로는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광경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기만 하면 제게 주는 감각은 마치 정말인 것 같습니다.

사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아름다운 광경은 물론 좋은 일이며 아울러 진실한 것이다. 지금 당신들의 감수는 당신들 이러한 터득에서 오는 감수에 불과하며 또 속인 현실 중에서 표현될 수 없다. 당신들은 아직도 수련하고 있으며 아직도 속인의 신체를 갖고 수련하기 때문이다. 속인의 신체에는 아직 많고도 많은 좋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들을 갖고 신처럼 될 수는 없다. 나는 말한 김에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최근 우리 많은 사람, 신노(新老) 수련생 중에 다 있는데, 늘 천목에 집착하는 일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내가 당신에게 한 마디 진실한 말을 알려주겠다. 아주 큰 한 가지 원인이라면 당신 사상 중에 많고도 많은 좋지 못한 사상과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 천목의 지혜의 눈이 인류 공간을 초월한 광경을 볼 때에 그것들도 보았다. 이러한 좋지 못한 것들이 신(神)의 진실한 형상을 보게끔 할 수 없다. 당신은 알겠는가?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잠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제자: 저는 자신의 心性(씬씽) 상태를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또 마성(魔性)이 있는 것도 느꼈는데, 저는 마땅히 어떻게 마성을 제거해야 합니까?

사부: 사실은 매우 좋은 상태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당신의 좋지 못한 그 일면을 느낄 수 있다. 그럼 당신은 그것을 배척하고, 그것에 저촉(抵觸)하고, 그것을 버리려 할 것이며, 사상 중에서 그것을 배척하고 그것의 염두에 따라 하지 않으며 더는 좋지 않은 일을 하지 않으면, 당신은 바로 수련하고 있고, 제고하고 있는 것인바, 이것을 수련이라고 한다.

제자: 단체로 연공할 때 다만 사부님께서 읽으시는 매 한 공법의 구결을 듣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구령에 따라 같이 암송하는 것이 좋습니까?

사부: 이는 마음으로 읽으면 된다. 우리 그 구결은 모두 마음으로 읽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도 당신이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물론 소리를 내어 읽는다면 단체로 연공함에 일치하는 것이 비교적 좋다. 이건 당신들이 편리한 대로 하라. 나는 형식을 중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체 연공은 일치하게 해야만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이는 당신들의 상황에 근거하여 하도록 하라. 나는 반대하지 않으며 또 당신들에게 무슨 규정을 제출할 수도 없다. 당신들 자신의 상황에 따라 하도록 하라. 좋다고 생각하면 당신들은 그렇게 하도록 하라.

제자: 사부님께서 중국 내의 많은 제자에게 몇 말씀 해주십시오. 이는 저희가 법을 배우고 용맹정진하는 데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사부: 사실 내가 방금 말한 모든 법 역시 다 국내 제자들에 대해 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들의 비디오와 녹음이 국내로 전해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수)

제자: 사부님께서는 정(情)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신은 아직도 눈물을 흘립니까?

사부: 그는 자비의 눈물이다. 또한, 그의 감수와 그의 깨달음은 사람의 정과 절대 같지 않은 일이며 절대로 한 층차의 것이 아니고 같은 개념이 아니다. 또한 더욱 높고 더욱 높은 층차에 있는 신은 사람에 대해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며 그 이하의 중생에게 눈물을 흘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눈에 사람은 다만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자: 저는 사상에서 뭘 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의 경문을 읽고서 깜짝 놀랐고 긴박감을 느꼈으나 마음은 또 조급해지지 않습니다.

사부: 이것은 바로 그 게으름이 당신을 시달리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것을 돌파해야 한다. 사람마다 모두 그것에 부딪힐 수 있는데 그것은 때로는 강렬하며 때로는 좀 온화하게 표현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연공을 가로막고 수련에 정진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돌파하라! 그것을 타파하라. 아마 그것의 자물쇠, 그 장애의 관건이 당신이 집착하는 것일 터이다. 만일 당신이 그것을 연다면 아마 단번에 밀어낼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을 돌파할 것이다. (박수)

제자: 미래의 우주에 원시생명(原始生命)이 필요해 사부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래 지구에 이런 원시적인 생명이 비교적 많다는 말씀입니까?

사부: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무슨 원시 생명을 제도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이 개념이 아니다. 내가 사람 여기에서 설법하면 모든 공간에서 다 법을 들을 수 있으므로 나는 여기에 와서 설법한다. 그렇지 않고 내가 어느 한 층에서 설법한다면 그 층차 이하에서는 사람을 포함해 모두 들을 수 없다. 물론 부동한 층차에 모두 원시적인 생명이 있다.

제자: 중국 내에서 불사(佛事)가 크게 흥하는데요?

사부: 이런 일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모두 속인 중의 일이다. 그가 불사(佛事)를 하는 목적은 보우(保祐)를 받고 돈을 벌려는 것이다. 절을 만들어 그들이 돈을 벌거나 관광을 위해서이다. 사람은 곧 사람의 일이라, 우리 또한 그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교는 사람의 일부분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곧 어떻게 하도록 하라.

제자: 이번 법회에 참가한 중국 19개 성(省)과 시(市), 33개 지역에서 온 대법제자들이 모두 본 지역의 대법제자들을 대표하여 사부님께 문안 올립니다.

사부: 나는 여러분에게 모두 감사드린다. (박수)

제자: 이번 법회에 참가한 기타 국가에서 온 대법제자들이 모두 본국, 본 지역의 대법제자들을 대표하여 사부님께 문안 올립니다.

사부: 나는 여러분에게 모두 감사드린다. (박수)

어떤 수련생은 나에게 대수인(大手印)을 했으면 한다. 이럴 필요가 있는가? (박수)

좋다. 그럼 내가 여러분에게 한 세트의 대수인을 해주겠다. 그런 다음 우리 이 회의를 마치겠다.

법회를 곧 마치게 되었는데, 이번 법회는 아주 성공적이다. 나는 이번 법회를 통해 수련생들이 모두 일정한 제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았고, 더욱 정진한다는 것을 다 알게 되었다. (박수) 대회는 원만하게 예정된 목적에 도달한 것으로 이는 대단히 좋다. 이 자리에는 노수련생 외에 또 일부 처음 대법을 듣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회의장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전법륜』을 얻어 이 대법이 무엇인지를 좀 보고, 그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지금 세계적으로 1억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수련하고 있다. (박수) 나는 여러분이 이번 법회를 거친 후,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당신들을 더욱 정진하게 하고, 층차 제고를 더욱 빠르게 하며, 뒤떨어진 그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빨리 따라오게 하고, 길을 잘못 걸은 그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빨리 되돌아오게 하기를 미리 축원한다! (박수) 기회를 놓치지 말라.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매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나는 이번 법회가 이후 미국 동부지역에, 또는 전 미국에, 또는 다른 지역에 선도 역할을 해줄 수 있어, 더욱 많은 사람이 대법수련에 들어와 세계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며, 줄곧 더욱 높은 경지 중의 좋은 사람으로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박수) 그만 말하겠다. 이만큼 말하겠다. 여러분 감사하다. 여러분이 하루빨리 원만에 이르기를 바란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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