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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라(警醒)

 

수련이란 바로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사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다. 일부 수련생들은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사람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을 만족시키고 있다. 채택되지 않거나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으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심지어 그릇된 일도 서슴없이 저지르면서 그야말로 일을 교란하지 않고는 한이 풀리지 않는다는 심태이다. 이는 내가 원하는, 대법제자들이 서로 협력을 잘하고 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하라는 것과 반대로 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 마음에 대한 집착은, 자신의 행위에서나 어떤 한 가지 일에서 자신으로 하여금 반면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이것이 그래도 대법수련생의 행위인가? 이것이 바로 사악이 하려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일을 잘못하여 중생이나 법 공부가 깊지 않은 수련생을 구도할 수 없게 하거나 혹은 기연(機緣)을 잃게 했다면 장래 대법제자가 대원만에 이를 때, 당신이 책임지지 않을 수 있고 후과(後果)를 감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원만에 이를 수 있겠는가? 원만에 이르지 못한다면 왜 수련하는가? 나는 줄곧 말했는데, 이 우주 중에는 이런 이치가 있다. 어떤 생명이든지 누가 무슨 일을 했든지, 누가 조성한 손실이라면 바로 그가 갚아야 하는, 이런 일에 직면하게 되는바, 특히 정법시기에는 더욱 이러하다. 나는 줄곧 생각하고 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이지적이지 못한 그러한 수련생들, 당신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주 많은 업력을 내가 당신들을 도와 없애버릴 수 있지만,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당신들 자신이 부닥쳐야 하는 것으로, 그건 다른 사람이나 사부가 대신할 수 없다. 제거해야 할 마음, 필히 넘어야 할 고비는 반드시 당신들 자신이 걸어 나와야만 한다.

대법제자가 만든 청심논단(淸心論壇) 사이트가 늘  난귀 특무들에게 이용당하는데, 일부 집착심이 있는 수련생들과 한데 뒤섞여 그들의 시장으로 되어 버렸다. 정면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논단이 폐쇄된 후, 일부 수련생은 아직도 다른 사이트에서 시장을 찾고 있는데, 당신들은 이렇게 하는 것을 정말로 그리도 집착하는가? 당신들은 사람 마음이 귀신을 불러온다는 것을 정말로 모른단 말인가? 그 무슨 ‘탕치(唐奇)’라는 난귀 특무는, 바로 당신들의 사람 마음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비로소 사이트에서 이처럼 날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감히 이처럼 날뛰는 것은, 바로 정념이 부족한 수련생이 그에게 시장을 준 것이 아닌가? 더욱 심한 자는, 그를 ‘두 번째 사부(二師父)’처럼 여기는데, 이런 사람이 아직도 나의 제자인가? 나의 아이는 줄곧 내 곁에 있다. 이 ‘탕치(唐奇)’라는 난귀 특무가 거짓말을 꾸며대는데, 뜻밖에도 어떤 사람은 이지를 잃고 맞장구칠 정도로 믿으며, 다른 대법제자가 지적하면 전혀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더 심한 자는 그 난귀 특무의 사악한 거짓말을 대대적으로 전파해, 법 공부가 깊지 못한 일부 사람과 신수련생으로 하여금 기로에 빠져들게 한다. 이런 사람들이 이 때문에 기로에 빠져 구도될 기연(機緣)을 잃고 장래 도태에 직면하게라도 된다면, 그럼 당신은 어떻게 갚으려는가? 단지 이러한 것만이 아니라, 난법이라는 이 책임만 하더라도 거대하기가 하늘과도 같다. 사부가 사람을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잘하지 못하는 이런 수련생들에게 한 마디 방할(棒喝)하는 것이다. 수련이란 곧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것인데, 어찌 또 사람 마음을 위해 시장을 찾을 수 있겠는가? 어찌 수련 중에서 아직도 그처럼 집착할 수 있단 말인가?

조사정법(助師正法) 이것은 당신들의 소원으로서, 오직 정념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주류(主流)는 아주 좋다. 역사상 어떤 수련과 종교형식이든 모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것은 당신들의 영예이며 사부의 영예이기도 하다. 나는 정말로 당신들 장래의 대원만을 위해 기뻐하고 있다. 최후의 길을 반드시 잘 걸어야 하는바, 이 역시 사부의 바람이다.

李洪志
2009년 8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