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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캐나다밴쿠버법회 설법

 

李洪志
2003년 5월 18일

 

(장시간의 박수) 여기에 자리한 어떤 이들은 전번 법회에서 만나본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다. 보아하니 우리 이 법회는 여름이 되면 비교적 많이 열리는 것 같다. 각 지의 법회에서도 모두 내가 왔으면 한다. 사실상 매 번 내가 여러분을 만나는 것은 모두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어서였다. 보통 각 지역에서 법회를 열 때면 모두 사부가 가서 몇 마디 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때로는 여러분이 아직 그 전번 법회의 나의 설법 중의 요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때, 무엇을 더 말하면 그 전번 설법에 대한 이해와 하려고 했던 일들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자주 법회에 참석할 수 없다. 사실 오늘도 내가 특별히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밴쿠버 수련생들에게 그들이 법회를 열면 내가 오겠다고 승낙했기에 이번에 온 것이다. (열렬한 박수)

여러분 모두 매우 수고했다. 나는 여러분이 진상을 알리고 대사관에 가서 법을 실증하는 일을 보았다. 이번 법회에서 수련생들이 먹고 자는 것도 그리 편하지 않은데, 올 때 나는 당신들이 거리에서 오가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여러분의 목적은 명확하다. 우리는 바로 간고한 환경에서도 중생을 구도하고 자신을 수련해내며, 이 수련과정 중에서 부단히 자신을 더욱더 순수하고 깨끗하게 단련하여, 더욱 높은 표준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편으로, 이번 사악의 박해 중에서 또한 여러분들은 더욱더 이지적으로 되었고, 이번 사악과 이번 박해를 겨냥해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더욱 잘 알게 되었다. 때문에 아무리 고생스럽고 아무리 어려워도, 대법제자로 말하자면, 우리는 속인 중의 그 무엇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바, 최종적인 목적은 여러분들 모두 명확히 알고 있다. 즉, 우리는 바로 수련인의 원만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으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속인은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 중에서 속인에서 시작해 속인을 완전히 초월한 상태에 도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면서 더 높은 표준에 도달해야 하고, 인류사회의 표준을 초월해야 하며, 역사상 모든 수련인이 도달하려 해도 도달하지 못한 데에 이르러야 하므로, 대법제자로서는 중대하고도 엄숙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하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이런 일 안에는, 당신들 자신이 어떻게 제고하고, 자신의 누락된 부분과 여전히 집착이 존재하고 있는 부분, 그리고 각 방면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제거하겠는가 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렇게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이용한 것이 속인사회의 어떤 방식이든지 간에, 당신들은 모두 수련하고 있는 것이고, 무엇을 하든지 당신들은 모두 제고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하든지 당신들은 여전히 모두 수련인의 상태에 근거해 해야 하며, 속인의 기점에서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출발점은 명확하다. 수련인으로서 본질적으로는 바로 자신을 제고하고 있고 자신을 수련하고 있으며, 이번 박해 중에서 사악을 폭로해 박해를 결속 짓게 하고,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기에는 많은 일이 속인이 하는 일과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다르다. 근본적인 구별은 우리의 최종 목표와 출발점이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는 단지 속인사회 중의 일부 속인의 방법을 이용했을 뿐이다. 속인사회도 법이 인류사회에 열어놓은 한 층차이다. 그럼 이 층차 중에서 우리가 법이 속인에게 열어놓은 이 문화와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아무 잘못이 없다.

여러분 알다시피 선악은 인류사회에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수련자는 완전히 선행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인류사회에 대해, 사람의 사상행위와 도덕관념에 대해, 우리 수련인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모두 정면(正面)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대법이 전해진 것은 실질적으로 사회에 대해, 속인에 대해, 수련인 자신에 대해 모두 거대한 정면적 효과를 일으켰고 또한 아주 좋은 역할을 했으며, 체현된 일체는 모두 정면적이다. 이 점을 우리가 똑똑히 알고 있고, 현재 사회상의 속인들도 모두 똑똑히 알고 있다. 사악의 박해 아래에서 그 당시 일부 사람들은 사악한 생명에게 이용당하며 조종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고,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틀린 말을 했으며,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말을 했는데, 그것은 사악에게 조종당해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만약 인류가 대법에 대해 다시 무엇을 말한다면 반드시 자신을 위해 책임져야 한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행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데, 사람이 외래 사악한 생명에게 조종당하고 기만당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외래 생명이 제거된 정황에서 사람이 또 무엇을 말하면 진정으로 그 자신이 말한 것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자비를 중시하기 때문에, 이번 박해 중에서 사람이 나와 대법제자에게 한 그런 나쁜 일, 좋지 않은 말들, 크게 파란을 일으킨 일들을 따지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대법에 엄중한 박해를 조성해 구할 방법이 없는 그런 사람들은 제외한다. 법은 일체를 구도할 수 있는데, 당신들도 사부가 이렇게 말한 것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일체를 아무리 나쁜 것이라 해도 가장 좋은 것으로 변하게 할 수 있다. 나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으며 대법이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나쁜 사람이 이번 박해 중에서 자신에게 지은 죄업은 그로 하여금 더는 대법제자가 해주는 말을 들을 자격을 없게 했고, 대법에 의해 구도될 자격을 없게끔 했다. 다시 말해서 이번 박해 중에서 그는 이미 자신의 장래 위치를 정해 놓았는바, 구도될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런 사람은 그 속에 없다. 나는 한 생명이 역사상에서 아무리 나쁘게 변했다 해도 모두 기연(機緣)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인류사회, 혹은 기타 각 층 공간을 막론하고 이번 박해 중에서 대법에 대해 죄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그가 역사 과정 중에서 속인사회 혹은 기타 각 층 공간에서 아무리 큰 죄를 범했다 해도 나는 모두 구도할 수 있다. 나는 이전에 또 이런 말도 여러분에게 했는데, 나는 역사상 일체 생명의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주가 전부 나쁘게 되어, 생명은 전부 성(成), 주(住)시기의 생명과 비교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도 이 좋지 않은 중에서 누가 누구보다 좋은지 더는 가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쨌든 모두 구도하려고 한다. 오직 그가 정법 자체에 죄를 범하지 않으면, 나는 그들을 모두 구도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원칙을 정해 놓고 이 일을 하고 있다.(박수)

어떤 수련생은 늘 나에게, 대법을 배우려 하면서 또 대법을 박해하는 사악의 정법박해 특무(特務) 노릇을 하는, 이런 일부 대법에 죄를 범한 사람들에 대해 묻는데, 말하자면 그는 아직 대법 수련생 중에 있다. 그의 명백한 일면은 대법을 이탈하려 하지 않지만, 그의 사람 이 일면을 보면 사람의 관념으로 사람의 집착에 이끌려 일부 대법제자와 정법에 해를 끼치는 일을 했다. 이런, 내가 아직도 그들을 ‘수련생’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말한다면, 문제는 확실히 매우 엄중하고 엄숙하다. 그러나 구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제도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다른 생명과는 여전히 구별이 있다. 현재, 정법이 아직 결속되지 않았고 법을 실증할 기회는 아직 있다. 그러면 다시 말해서, 아직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 생명에 대해 역사 중에서 전면적으로 본다. 정말로 대법제자이고 과거에 정말로 매우 좋은 생명이었는데, 이 환경에서 일시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다면, 속인이 대법에 죄를 범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손실을 만회한 후 또 잘할 수 있는데, 잘한다면 마찬가지로 더 큰 위덕이 기다리고 있다. (박수)

나는 이전에, 속인사회에서 사람의 직위가 어떠하든,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설사 당신이 특무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특수한 일이라서 특무(特務)라고 하지 않았는가, 특수임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생명으로서 하고 있는 일이 특별하다고 해서 이 만고의 기연을 정말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신이 하는 일 때문에 생명이 천만년 동안 기다려온 기회마저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생명에 대해 이렇게 본다. 물론, 당초 내가 법을 전할 때 구도(救度)의 문을 전부 열어 놓았다. 어떤 사회의 계층, 직업, 신분의 차이에 따라 선택하지 않았다. 이런 것을 나는 모두 보지 않았다. 귀천에 따라 구분하지 않았고, 사회계층에 따라 구분하지 않았으며, 총명한가, 총명하지 않은가에 따라 구분하지 않았고, 문화적인 차이를 두지 않았으며, 민족적 차이를 두지 않았는바. 어떠한 경계선도 없었다. 인류가 그어놓은 일체의 구별을 나는 모두 보지 않았고, 또 모두 없앴다. 누구나 차별 없이 바로 이렇게 대했다. 물론 그런 특무 노릇을 하는 사람들도 포함하는데, 심지어 대법을 조사하기 위해서 특무가 된 사람들도 포함한다.

물론 여러분이 돌이켜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사부인 나는 최대의 자비심으로 중생을 대한다. 만약 이렇게 해도 내가 당신을 구할 수 없는 경우라면 반드시 이런 사람을 기다리는 결과가 있게 마련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나를 만나고 싶어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속인들도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만나면 까닭 없이 격동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만나보고는 특별히 친근한 느낌을 받으며, 또 어떤 사람은 격동된 나머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명백한 일면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그를 도와줄 것이며, (박수) 그의 역사상의 죄업을 소멸해 줄 수 있다. (박수)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지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나를 만나기만 하면, 나는 당신의 선념(善念)을 모두 움직이게 하고, 당신이 나를 만나기만 하면 나는 당신의 선념 중에서 당신의 죄를 없애 주고, 당신의 업을 없애 줄 수 있다. (박수) 세인들은 사실 모두 명백한 일면이 있어 그들은 똑똑히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무엇을 했든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든지, 나는 모두 이렇게 당신을 대한다. (박수) 아마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최대의 자비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 한 층 생명 중에서 체현된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사람을 대하고 내가 이렇게 세인을 대하는데, 만약 세인들이 이런 자비 아래에서, 완전히 속인을 초월한 생명에 대한 관용 아래에서, 사람이 여전히 대법에 해를 끼치고 그를 구도하는 대법제자에게 미안한 일을 한다면, 그럼, 불법(佛法)도 그의 위엄이 있는 것이다. 이런 자비 아래서도 여전히 안 된다면 그의 생명은 어떤 희망도 없다.

여러분은 중국에서 돌고 있는 사스를 알고 있다. 당초 구세력은 중국에서 800만 인구를 도태시키기로 정해놓았다. 그들은 반성할 줄 모르고 아직도 속이고 있다. 사람을 자비로 대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 않게 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반성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사스를 이용해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있으며 진상을 감추고 있다. 집권자도 속인으로서 역시 하늘의 다스림 중에 있는 것이다. 신(神)이 세인에게 경고하고 있는데, 사람은 아직도 덮어 감추려 하며, 세인들이 교훈으로 삼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더 큰 하늘의 다스림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내가 최대의 자비심으로 중생을 대할 때, 만약 어떤 생명이 여전히 안 될 때, 나는 그를 상관하지 않을 것이므로, 자연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그를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말해서 불법은 자비한 것이지만 신의 위엄 있는 일면도 있다.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신의 자비를 가지고 장난치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신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이다.

전번에 설법할 때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수련생들은 일부 범하지 말아야 할 잘못을 범했다. 사실 오직 견정하게 법 공부를 잘하고, 당신이 잘못을 고칠 수 있고, 당신이 다시 새롭게 잘할 수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대법제자이다. 당신이 다시 잘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너무 중하게 보지 말라. 만약 당신이 사상 중에서 그것을 너무 중하게 본다면, 또 다른 일종의 후회, 근심 등 압력이 형성될 때, 당신은 다시 이런 집착에 빠지게 되어 또 걸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대법제자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어떤 일에 부딪히든지 인식했으면 당신은 즉시 고치고, 넘어지면 당신은 일어나 계속 대법제자가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 그럼 당신의 그 과실을 당신의 수련과정 중에서 잘 넘지 못한 관으로 쳐주고 다시 걸어서, 기회가 있으면 다시 당신으로 하여금 넘게 하는데, 이러할 뿐이다. 사부는 당신의 수련과정 중의 일을 무엇으로 치지 않는다. 만약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범한다면 그것은 다르게 논해야 한다. 또한 잘못했다 해서 또 집착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내가 이전의 설법 중에서 그렇게 중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당신들의 사상에 장애를 조성해 다른 한 방면의 집착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 때문에 웬만해서는 수련생에게 단독으로 설법하지 않았다. 내가 일단 그 누구에게 설법하면, 그에게 그의 단점을 지적하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의 사상 부담은 매우 심해진다. 왜냐하면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웬만해서는 한 사람을 겨냥해서 설법하지 않는다. 설법할 때 나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고 개괄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일부 지엽적인 문제, 지류(支流)적인 문제, 개별적인 문제, 또 전반 대법 수련생들에게 전체적인 교란을 일으키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수련과정 중에서 수련생들은 모두 서로 볼 수 있고, 또한 서로 제의하고 부족한 점을 지적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이 집착 때문에 잠시 인식하지 못한다 해도, 그도 점차 인식하게 될 것이다. 오직 전체적으로 전반 대법형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법을 실증하는 형세에 문제가 있을 때에야 나는 말한다. 예를 들면, 요즘 중국 대륙의 일부 지역에 가짜 경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매우 집착하면서 그것을 외우기까지 한다. 외울 뿐만 아니라, 사방에 다니면서 수련생들에게 선전한다. 어떤 마음이 그를 이렇게 하도록 하는가? 거기에는 그가 집착하는 것이 있고, 그의 속인 마음에 부합되는 것이 있기에,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그가 일부러 법을 파괴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그에게 집착이 있고 그에게 사람의 그 마음이 있기에, 그는 이렇게 하고, 사악이 하려고 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대법제자의 법 실증을 교란한다.

나도 캐나다 법회에 실제상 이미 여러 차례 참석했다. (박수) 제일 주요한 것은 세 차례인데, 여러분도 인상이 비교적 깊을 것이다. 첫 번째는 여러분 알다시피 ‘7.20’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이었고, 두 번째는 탄압과 박해가 매우 엄중한 시기였는데, 오타와에서 열렸으며 내가 한 번 갔었다. 이번 사악이 대규모로 소멸되고 있고, 정법 형세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매우 빠른 속도로 사악을 청리하면서 인간의 공간을 돌파하고 있는 이때에, 나는 또 여러분과 만났다. 그러므로 캐나다의 이 세 차례 법회는 문제를 아주 잘 설명하는 것이다. (장시간의 박수)

캐나다 수련생들은 매우 잘했다고 할 수 있는데, 각 방면에서 나타났다. 관건은 서로 잘 협력해 개인의 집착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영향준 일이 많지 않았고, 서로 자신의 의견을 너무 고집하다 조성된 마음속에서 넘어가지 않는 일도 적어, 수련생들 중에 서로 간의 마찰이 아주 적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비교적 잘 협력했기 때문에 법을 실증하는 형세를 이렇게 잘했다. 물론 캐나다는 또 특수한 곳이며, 캐나다 정부와 국민들이 모두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매우 큰 지지와 동정(同情)을 보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캐나다 국민과 정부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열렬한 박수)

그러므로 이 세 차례의 법회를 보고 되돌아 생각해 보면 형세가 달라진 것을 아주 똑똑히 볼 수 있다. 나는 캐나다에서 수련생들과 세 차례 만났는데, 이 세 차례의 형세변화는 매우 크다. 이 점을 여러분은 확실히 보았다. 박해 초기에 압력은 매우 컸다. 1999년 7.20 이전에 내가 캐나다에서 설법할 때, 나는 많은 말을 했는데, 실제상 모두 세인을 점화하는 것이고, 또한 세인들에게 알려주는 말이었다. 사람에게는 명백한 일면이 있다. 내가 설법할 때는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고, 층층에 있는 나 또한 모두 부동한 층차의 생명에게 말하고 있다. 사람 여기서 발생한 어떤 일이든지 모두 고립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은 천상변화의 가장 낮은 층차의 반영이다. 내가 전에 말한 것처럼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이치가 있다. 높은 층차에서 낮은 층차의 이치를 보면 틀렸지만, 부동한 층차 자체에서는 이치는 이치인 것이다. 그러나 부동한 층차에서 한 가지 일의 상태, 반영과 표준은 부동한 것으로, 높이 올라갈수록 진리로 통한다. 하지만 이치는 총체적으로 또 관통된 것이기에, 부동한 층차 중에 체현되면 바로 부동한 층차의 이치인 것으로, 매 층차의 생명에게 그는 부동한 상태로 나타나고 이치에 대한 부동한 인식이 있게 된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요구가 낮아지고, 생명의 표현도 갈수록 못해진다. 사람 여기 가장 낮은 층차에 이르렀을 때, 생명의 표현은 바로 이런 것으로 가장 악한 데에 가깝다. 이번 사악의 박해 중에서 구세력은 매우 구체적인 배치를 했다. 나 여기와 호법(護法)하고 있는 그런 정신(正神)들도 사악을 억제하고 있고, 구세력 역시 그것들의 배치가 있는 것으로, 실제상 사악도 구속을 받고 있다. 사악이 그것의 사악함을 부릴 때의 표현은 안하무인격이지만 실제에 처했을 때는 매우 약하다. 물론 악한 사람이 사악을 위해 행동할 때, 대법제자의 누락 없는 정념이 강하게 표현되기만 하면 악한 사람은 곧 마음이 찔리고, 심지어 정념에 의해 다스려지는데, 바로 이런 상태이다. 총체 상에서 사악은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면 그대로 되는 데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필경 신이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세력은 자신의 배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그것으로 하여금 그것들이 필요로 하는 상태에 도달하려 할 뿐, 구세력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는 데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하려고 하는 것과 정신(正神)들의 그것에 대한 억제가 구세력이 하려는 많은 일을 성사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구우주(舊宇宙) 그것은 구 이치를 가지고 있다. 일체 생명이 법을 바로잡기 전에 법을 바로잡은 후의 일체를 보지 못하고, 새로운 법의 진정한 체현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격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새로운 법의 표현과 새로운 우주를 보게 됐을 때 그는 새로운 생명과 같은데, 그들은 당연히 법에 따라 하게 된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과거 우주의 생명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 우주에 속하지 않는 장래는 볼 수 없다. 또한 이런 장래는 구우주의 역사시기에 배치한 그 일체가 아니다. 그 속에는 빠르고 느린 시간이 있고 부동한 공간 차이가 있는데, 구우주의 신이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의 새 우주, 그 속의 이 시간·공간·생명·기제·법 등 일체는 모두 새롭게 배치한 것으로서, 구우주와 일체의 연계가 없으므로, 구우주의 생명은 볼 수 없다. 이는 일체 신의 능력을 초월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우주의 법, 구우주의 질서에 따라 그들이 하려는 일을 한다. 많은 일은 개변하려고 하면 그것은 확실히 매우 어렵다. 때로는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키는데, 그는 아무 근거도 없다고 생각하며 감히 하지 못한다. 그들도 이때의 생명에 불과한 것으로,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제일 낫다.

사실상, 정법의 일을 교란하는 것은 역시 구세력의 이 한 무리이다. 방대한 우주의 더 많은 생명, 그들은 참여하지 않고 관찰하고 있다. 그러나 정법의 전반 홍세가 다가온 후에는 그가 관찰하고 있었든 참여하였든 상관없이, 전부다 정법 중에서 처리하게 된다. 동화해야 할 이는 동화하게 하고, 선해(善解)할 이는 선해할 것인데, 동화하지도 선해하지도 못하는 것도 있다. 층차를 낮추어야 할 이는 층차를 낮추고, 죄를 범해 쳐내려 보내야 할 이는 쳐내려 보낸다. 나는 미래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며,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미래는 이 시기의 생명에게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舊) 인식으로 말하면, 이 시기의 생명이 미래에 진입하여 그들에게 속하지 않는 다음 시기의 천체로 간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정법 중에서 최대의 자비로 일체를 대하고, 일체 중생을 대하기 때문에, 비로소 이 구우주 중의 이런 생명들을 동화시켜 보내려고 한 것이고, 비로소 우주 정법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시기의 생명이 장래로 가는 것은 전혀 어떤 기회도 없다. 장래는 그들에게 속하지 않고, 현재의 이런 생명들에게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장래로 가려면 반드시 장래의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

현재의 생명으로서는 당연히 거기에 도달할 수 없고 부합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는데, 나의 법이 전해져 층층의 중생들 또한 모두 알고 있으며, 많은 생명들 역시 모두 배우며 또한 보고 있다. 각 층마다 모두 『轉法輪(전법륜)』이 있다. 매 한 층의 이치는 부동하며, 안에 있는 글자도 보기에는 부동하다. 그러나 모두 신우주(新宇宙)의 부동한 층차의 진리로서, 많은 생명들이 모두 보고 있고 또한 주동적으로 동화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만고 이래 우주의 천지개벽 이래 없었던 일이고, 이렇게 큰 역사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중생들로서는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역사는 지금의 전체 우주의 생명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 중의 일체는, 우주 중의 생명은 모두 이 환경에서 생존한다. 이 환경 중에서 생명이 생존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한부의 역사이다. 정말이지 이번 역사에 속하지 않는 미래로 진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그들과 어떤 관계도 없다. 그것은 이 구우주와 다른 것으로, 부동한 층차 중의 우주 천체가 나쁘게 되면 훼멸시키고, 그런 후에 새로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비록 그 과정은 대(大) 궁체 내의 부동한 층차의 신구 우주의 생성이나, 훼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우주 중의 부동한 우주 천체가 어떻게 훼멸되고 다시 생성되든지, 그것은 여전히 이 우주의 더욱 높은 생명이 그의 고층차상의 일념(一念)과 능력으로 생성하거나 훼멸시킨다. 다시 말해서 그는 여전히 원래 우주의 표준과 배치에 따르는 것이다. 더 큰 생명으로서는, 아래의 천체가 모두 그의 신체 일부분으로서, 어느 한 세포가 신진대사로 도태되어 버리는 것 역시 그 자신의 기제·자신의 특성·자신의 우주의 일로서, 일체가 모두 그가 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하게 우주 전체가 없어지는 것은 마치 그의 이 생명이 죽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그 후의 어느 때에 생성된 생명은 원래의 그 죽어버린 생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여기서 말한 것은, 내가 이전에 말한 元神(왠선)이 육체를 떠나는 것처럼 마치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런 연결이 없으며, 과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생명의 삼위일체(三位一體)가 모두 해체되어 존재하지 않게 되므로, 아무리 높은 생명이라 해도 아무 것도 없다. 이 개념은 이 궁체 중의 종결을 놓고 말하면, 우주 중의 일체 생명이 모두 공백인 것으로, 모두 망연하여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의 상상을 아무리 크게 한다 해도 여전히 이 우주 중에서, 이 시기 생명이 조화(造化)해낸 지혜 범위 내의 생각이고, 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법, 이렇게 큰일에 대해서는 그들로서는 모두 영(零)이다. 게다가 정법을 마주한 일체 중생은 미처 손 쓸 수가 없다. 내가 말한 이치가 그들을 놓고 말하면, 좋은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또 구(舊) 이치가 거기에 놓여 있고, 그들 자신 또한 괴(壞), 멸(滅)시기 구 이치에 의해 육성된 것이기 때문에, 정법이 그들 중생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운이 좋은 이는 정법시기에 움직이지 않고 있는 그런 생명들인데, 그들은 그저 조용히 보고만 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모든 것을 구도하려 하고, 그런 중생들을 모두 동화시켜 새로운 우주 중으로 보내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세력은 역사상 많은 생명이 많은 죄를 범한 것을 보고, 이런 생명들은 구도할 수 없으며,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구세력은 또 자신들이 나의 정법을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나의 정법 중에 그것들이 도태시키려는 이런 생명들을 배치해 놓았다. 인간세상의 생명을 놓고 볼 때, 왜 그런 악경(惡警)을 그렇게 잔혹하고 그렇게 흉악하도록 했고, 그런 낮은 층의 사악한 것들이 악행을 하도록 했는가? 그것들의 목적은 일부 세인들과 그것의 마음에 들지 않는 수련생을 도태시키려는 것으로서, 악행을 하는 자와 악행을 당하는 자가 모두 그렇게 큰 죄를 짓게 하려는 것이다. 층차가 좀 높은 그것들은 직접 이런 일을 하지 않는데, 그것들 자신은 신(神)으로서 성결(聖潔)하다고 생각하면서 손을 쓰레기더미에 밀어 넣어 직접 쓰레기더미에서 휘저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도 들어오면 떨어져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한 층 생명이 한 층 생명을 통제하는 식으로, 부동한 층차의 구세력은 층층이 정법을 교란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세상의 사악한 생명에 이르면 더욱 악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정법은 역사상에서 여태껏 있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얼마나 험악하든지 정법은 중생에게도 여태껏 있어본 적이 없는 기연(機緣)인 것이다. 법은 진작부터 있었다. 나는 바로 이 여의(如意)하고, 원용(圓容)하며, 역사상 있어본 적이 없는 가장 좋은 법을 가지고 왔다. (열렬한 박수)

법을 실증하러 온 대법제자로서, 전체 우주 중생으로서 말하면, 이는 단지 이 한부의 법을 구도(救度) 중에서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이 법은 진작부터 여기에 있었으며, 다만 중생이 어떻게 이 법에 따라 행하는가 하는 것뿐인데, 내가 말하자면 어떻게 동화될 것인가 하는 이런 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누구도 이 법을 파괴할 수 없고, 내가 한 편으로 행하면서 한 편으로 무슨 법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법은 진작부터 있었다. 단지 중생들이 어떻게 법에 동화되는가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지혜가 큰 생명일수록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지혜가 더욱 큰 생명일지라도 그것의 층차 중에서 그것이 보지 못하는 진상이 있는 것으로, 정법 일에 대해 일으킨 어떤 일념이든지 모두 그에게 매우 큰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것의 그 일념은 층층의 중생이 정법에 죄를 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도 정법 중에서 죄를 범한 것으로 된다. 아무리 큰 생명이라도 그들은 모두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우주의 어떤 생명이든지 모두 장래의 우주에 속하지 않기에, 그가 아무리 커도 진상의 근본을 다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최종, 최후의 생명에게도 모두 한 차례 큰 겁난(劫難)인 것으로, 생각(念)을 움직이기만 하면 겁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나는 사람의 말로 형용해 그것을 겁난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정법을 하지 않으면 중생을 구도하는 일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그럼 다시 만드는 일체 또한 구우주 중의 일체가 없으므로, 실제상 우주 중생에 대한 가장 큰 한 차례의 자비이다. (박수)

여러분이 알고 있다시피, 부동한 층차의 우주·천체(天體)·창궁(蒼穹)·대궁(大穹)을 만든 생명은 단지 고층신의 일념에 의해 생성된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 내가 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위의 어떤 생명은 거기 앉아서 여전히 득의양양해하는데, 그것들은 일체가 모두 그것들의 일념에 의해 생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의 위에 있는 것들 또한 나의 일념이 생성한 것이라며 비웃는다. 그러나 더 위에 있는 것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자신들의 위에 더 방대한 주(主)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것들을 가소롭게 여기는 것은 바로 나다. (박수) 이번의 정법은 그것들에게는 모두 한 차례 가장 큰 기연과 자비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이 일체를 좌우지하려고 한다. 그것들은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도와 정법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들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심지어 억지로 나에게 밀어 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것이 나에게 밀어 주면 나에게 얼마나 큰 저애력을 설치하는 것이 되겠는가? 얼마나 큰 장애를 설치했겠는가? 당신이 그것의 것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면, 그것은, 당신은 가장 좋은 것인데도 가지지 않으니 당신이 이 우주를 훼멸하는 것과 같고, 당신이 미래를 훼멸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이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이만한 지혜뿐이며, 그것은 그만한 인식뿐이기 때문이다.

구세력 체계의 층층의 생명들이 거의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비로소 정법 중의 장애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 그것들의 그 일념의 표현은 우주의 최하층에서 가장 좋지 못한 반응을 일으켰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좋지 못한 생명들이고, 그것이 한 일 역시 갈수록 나쁘고 갈수록 사악하다. 이 모든 박해가 실제상 모두 이렇게 온 것이다. 사실 내가 방금 전에 말한 이런 층층의 생명, 나는 방금 전에 이미 말한 그런 방대한 천체 속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부동한 방대한 천체의 그런 주체·왕·더욱 큰 주체·왕 위의 왕을 말하는데, 나는 이런 생명들을 말하는 것이다. 궁체(穹體) 중에는 얼마나 많은 층층의 무수(無數)하고, 무진(無盡)하고, 무량(無量)한 신(神)·불(佛)·도(道)·중생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들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들의 소행,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두 그것들의 주체의 소행에 의해 조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사부가 말하기만 하면 아주 크고 아주 높게 말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내가 지금 직면한 문제가 모두 이런 문제들이고, 내가 지금 처리하고 있는 것도 모두 이런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속인 세상에 반영되어 온 것 역시 모두 그런 고층차상의 생명이 한 일이 반영되어 내려온 것이다. 나는 함부로 설법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도 진리를 말해 주는데, 나는 이런 것을 겨냥해서 말한다. 아래에서 들으면 매우 높아 보이지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은 모두 대법제자이기에 필경은 속인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내가 오늘 말한 이런 것을 속인은 알아듣기 어렵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나의 선(善)을 느낄 수 있고, 에너지를 느낄 수 있으며, 그에게 유익한 감수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내가 말한 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대법제자뿐이다.(박수)

여러분이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기에 나도 더 말하지 않겠다.

(장시간의 열렬한 박수로 만류)

사실 내가 얼마나 말했든 당신들은 모두 실천 중에서 수련해야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제일위이다. 당신들은 법회를 경시하지 말라. 그것은 대법제자의 전반 수련과정의 일부분이다.(박수) 그러므로 당신들은 내가 더 높게, 더 많이,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을 들으려고 하지만 사실 당신들은 수련 중에서 여전히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정법이 결속되기 전에 여러분은 남은 시간을 이용해 대법제자가 해야 할 모든 일을 착실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며, 가장 위대한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매 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고 또한 한 걸음 한 걸음을 잘못 걷지 말아야 한다.

되도록 잘 걸어가야 하지만 또한 해내기가 아주 어렵다. 당신들은 수련 속에서 끊임없이 곤두박질하고, 일어나 다시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당면하고 있는 인류과학이 육성한 이 사회, 이 현실은 또 사람을 심하게 유혹한다. 그러므로 이 속인사회를 대할 때 수련인과 속인의 관계를 바로잡기가 매우 힘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집착에서 뛰쳐나오기도 매우 힘들다. 그러나 어떻든 대법제자로서 당신은 마음에 정념을 품고 되도록 당신이 해야 할 것을 잘해야 한다. 당신들 역시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게 수련하면 되고, 화상(和尙)이 될 필요가 없으며, 출가한 사람처럼 그럴 필요도 없다. 실제로 형식상에서 이미 가장 편리하다. 그러나 心性(씬씽)제고에서는 절대로 모호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것은 감각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은 꼭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심지어 당신의 승화와 당신의 제고를 그렇게 강렬하게 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으로 엄격한 것이다. 일단 수련이 잘된 부분은 당신을 위해 즉시 동화되어 넘어간다. 그러므로 당신 이쪽에서는 늘 자신이 마치 항상 그다지 큰 제고가 없는 것같이 느껴지는데, 표면의 변화는 매우 작지만 본질의 변화는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 속에서, 당신이 수련할 수 있음을 보증해 주고, 당신의 제고를 보증해 주며, 당신이 수련과정 중에 조심하지 않아 한번 곤두박질해도 층차가 떨어지지 않게 보증해 준다. 왜냐하면 수련된 그 부분은 이미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갈라놓음으로써 수련된 그 일면이 인체와 동시에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고, 그럼으로써 쉽게 층차가 떨어지지 않게 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수련과정을 놓고 말한 것인데, 그런 관건적인 시각에 반면으로 나아갔거나, 혹은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한 사람들은 별도로 논해야 한다. 그러나 수련인으로서 말하면, 당신의 心性(씬씽)에 대한 요구를 높이고 자신의 집착심을 내려놓는 이 점은 모호하게 할 수 없고 절대 표준을 낮춰서는 안 되는바, 그것은 미래에 대해, 장래의 우주에 대해, 장래의 중생에 대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대법제자들이 장래에 매우 큰 생명으로 성취되어야 하고, 매우 많은 중생, 나아가 무량한 중생을 포용해야 하므로, 당신이 표준을 낮춘다면 그 한 층의 우주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그 한 층의 궁체(穹體)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므로 반드시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 또한 사부가 이렇게 말한다 해서 조급해하지는 말라. 나는 여태껏 당신들에게 억지로 행하라고 한 적이 없다. 당신은 되도록 속인사회의 상태에 부합하면서 수련하면 된다. 그러나 당신은 수련인으로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당신은 되도록 잘해야 하며 되도록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되어야 한다. 나 역시 사부가 말하는 것을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곧바로 조급해하는 것을 매우 반대한다. 이렇게 조급해지면 곧바로 극단으로 나아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나는 정법 일만 하겠다고 한다. 안 된다. 왜냐하면 오늘 대법제자가 걷는 길이 바로 미래의 사람들이 수련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도덕이 몰락으로 나아갔을 때 종교가 사회상에서 일으킨 작용이 어떠한지를 여러분들은 보았다. 그것은 사람을 제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정신(正信)을 파괴했다. 성직자, 출가인,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속인들은 신에 대한 기대, 신앙과 희망을 전부 이런 사람들에게 걸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잘하지 못하면 그 사람 개인이 잘못한 것만이 아니고, 수련단체, 종교가 바르게 걷지 못하면 그것 자체가 바르게 걷지 못한 문제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반을 파괴하게 되고,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가 발생하게 한다. 동시에 그들이 신을 믿지 않는 것은 중생에 대해, 특히 신을 믿는 중생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아주 가련한 것이며 또한 가장 슬픈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에는 이런 종교형식이 없을 것이다. 인류가 장래에 배우게 될 교과서에는 법의 요소가 그 속에 관통되어 있을 수 있다. 사회활동 중에서 잘할 수 있는 사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수련하고 있을 것이다. 대법제자가 오늘날 한 이 일체를 당신들이 돌이켜보면 이렇지 않은가? 대법은 세간에서 사회정치로 될 수 있는 그런 유형(有形)적인 것이 없다.

나는 미래에는 일체가 모두 가장 바른 길을 걷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사람은 역시 복이 있는 것이다. 기왕 이 인류사회를 미래에까지 남긴다면, 미래의 생명으로서는, 미래의 각 층 중생으로서는, 또한 모두 복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회이고, 그것은 대법이 생명에 대해 원용(圓容)하는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말하면, 미래의 인류사회는 지금의 인류사회와 비교하면 아주 큰 변화와 아주 큰 부동함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미래의 인류는 복이 있다고 말하지 않던가? 과거 수련인에게는, 닦음(修)이란 매우 어려운 것이었기에 수련(修煉)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바로 고생을 겪으면서 간고하게 닦는(修) 것이었다. 간고하게 닦음은 업력을 감소시킬 수 있고, 당신이 수련하기 때문에 당신도 제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도달할 수 있는 층차 또한 아주 한정되어 있어 대다수는 삼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수련을 지도하는 법이 없었기에, 그들은 법의 각 층의 표준과 각 층의 요구를 몰랐다. 또한 각 층 생명들을 놓고 말하면 책임지기가 아주 어려웠다. 신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음이 아니라, 우주에는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가 있어 작용을 일으키고 있기에 누가 일념(一念)만 움직여도 부동한, 정반(正反) 두 방면의 요소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당신이 선념(善念)을 움직이면 악이 생겨나고, 당신이 악념(惡念)을 움직여도 역시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수련인들이 “일념(一念)에서 선악이 생긴다.”라고 하는데, 누가 이 말의 진정한 이치가 무엇인지 알았겠는가? 신은 경거망동할 수 없다. 사람을 제도하는 일은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가 사람을 제도하는, 이렇게 큰 좋은 일을 하는데도 천상의 생명은 이렇게 이 일체를 좌우지하려고 했는가? 게다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놓기까지 했는가? 보기에는 사람을 대신해 죄를 감당하는 것 같지만, 신이 무엇 때문에 사람을 대신해 죄를 감당해야 하는가? 더 높은 신은 왜 상관하지 않았는가? 신은 무엇 때문에 직접 사람의 죄를 없애주지 못하는가? 이런 모든 것이 지금까지 우주의 이치였으며 일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구우주의 법은 이 방면의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인데, 다음번에는 이렇지 않을 것이다. 장래에는 아주 많고,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중생을 놓고 말할 때 모두 아름다운 것이고 그러한 사악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볼 때 장래의 상생상극의 이치는 비록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여전히 존재하며 정부(正負)의 생명이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나쁘고 가장 낮은 층에 이르렀을 때, 그것이 비록 원래의 가장 낮은 층과 비교해 그렇게 사악하지는 않지만, 가장 낮은 층은 여전히 좋지 못한 것이다. 미래의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은 단지 지금의 사람과 비교해서 말하는 것일 뿐이다. 업을 짓는 일이 있을 것이고, 또한 인류의 업력을 없애는 고통도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이 있을 수 있고, 역병이 있고 겁난(劫難)도 있을 것이다. 반드시 이러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고통스럽게 소업하지 않고 죄를 갚지 않으면, 사람은 죄업이 커져 훼멸될 것이다. 사람은 고통이 없으면 무엇이 행복인지를 모르게 되는바, 사람 이 곳은 천국이 될 수 없다. 마침 그것에게 고통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이곳에서 수련할 수 있으며, 잘하지 못하면 또한 업을 지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류사회는 영원히 특수한 환경이다.

사람에게 최대의 복을 가져다주므로, 미래의 인류는 지금의 인류표준처럼 그렇게 낮지 않은데, 그것이 바로 최대의 자비이다. (박수) 일체가 그렇게 악하지 않게 되며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말해서 환경도 제고되어야 한다. 고통도 그렇게 심하지 않고, 일체를 지금의 인류 표준보다 높게 유지할 것이며, 일체를 이 한 층차의 법의 기초 아래서 가늠해 정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인류에 대해 말하면, 미래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대법이 여기에서 전해졌고 대법을 위해 이곳을 만들었으며, 이곳의 생명도 그들의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역사가 오늘 이 한 걸음까지 걸어올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들의 공로도 있다고 친다. 그러므로 미래의 생명, 미래의 인류에게 복을 가져다주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 또한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주의 일체가 모두 상보상성(相輔相成)하고, 서로 관련된 것이며, 원용된 것으로서 또 여기에는 다른 요소와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 세상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면, 사실 우주 전반의 부동한 공간, 부동한 층차 역시 상응해 경지가 제고 된다. 매 층차, 기왕 삼계 이곳의 표준이 제고되었다면, 그럼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라. 당신이 제고되어 신과 함께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 신은 그곳에서도 제고되어야 한다. 이 층의 신이 제고되어 그 층의 신이 있는 곳에 가는 것 역시 안 되기에, 그 층의 신도 제고되어야 하는바, 다시 말해서 매 층의 표준이 모두 제고되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매 층의 환경은 모두 더욱 좋아지게 된다. 물론 이것에 도달하려면, 궁체(穹體)의 기제(機制), 법의 지혜와 능력이 모두 여기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생명이 존재하는 방식과 각 방면들이 모두 아름답게 변하도록 할 수 있다.

대법제자로서 직면하고 있는 것은 미래의 가장 좋은 생명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로서는 心性(씬씽)에 대한 요구, 즉 수련인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표준에 대해, 이 점에서 모호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법은 당신들에게 가능한 속인의 이 사회의 생활형식에 부합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여기서 생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록 대법제자들 중 많은 사람이 출가하여 수련하고 있지만, 사실 종교 역시 현재 인류사회 상태 중의 한 형식이다. 이렇기 때문에 당신들이 걸어가는 길은 실제로 미래의 생명에게 기초를 다져주는 것이다. 이 일체는 당신들을 가지고 실험하는 것이 아니다. 법은 진작부터 있었으며, 당신들이 실천하고 있는, 단지 이런 과정일 뿐으로, 정법의 일은 반드시 성사될 것이다. 당신들은 아마 여러 가지 예언에서나 능력 있는 사람에게서 들었을 텐데, 인류에게 이런 재난, 저런 재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누구도 감히 정법 이 일이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반드시 성사되기 때문이다. 생명이 법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실천할 수 있든 없든, 정법은 반드시 성사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만약 사람이 걸어 나아가지 못한다면 법은 새롭게 일체 생명을 만들 것이며, 무엇이 모자라면 법 중에는 무엇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비에 대해 말하면, 나는 구시기의 생명을 동화시킨 후 새로운 시기의 생명들 중으로 들어가게 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상 사람들은 부동한 층차의 생명들이 모두 자비, 자비를 말하고, 심지어 아주 높은 층차에 있는 신 역시 자비를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비는 모두 표준이 있는 것으로, 모두 그들의 사상 인식과 경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정법 중의 이런 대자비(大慈悲)는, 전반 우주의 중생들을 놓고 말할 때 있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부처의 은혜가 가없이 크다고 말하는가?(열렬한 박수) 물론, 장래의 중생은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한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들이 수련 성취한 후에, 장래의 중생들도 당신들의 부처의 은혜가 가없음을 알게 될 것이며, 미래의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모를 것이다. 단지 당신들만 나를 알 수 있는바, 중생들로서는 알 필요가 없고, 사실 또한 알 자격도 없는바, 당신들이 아는 것으로도 족하기 때문이다. 본래 누구도 나를 모르는데, 그렇다면 장래에도 역시 모른다.(사부님께서 웃으심) (열렬한 박수)

생명은 매우 복잡한 것이다. 사실 사람이 신으로 되는 일을 나는 실천 속에서 이미 모두 해보았다. 나 자신의 육신은 이미 法輪世界(파룬쓰제)를 주지하고 있다. 아울러 장래에 당신들은 아주 많은 과거의 나를 보게 될 것인데, 그때에 가서 당신들은 아마도 그들을 나로 여길 것이다. 사실 진정한 나의 주체본질, 진정한 주아(主我)를 생명들이 알려면 아주 어렵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사부님께서 웃으심) (장시간의 박수)

나는 올 때 층층이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을 거쳤다. 아주 높은 신으로 놓고 말하면, 삼위일체(三位一體)가 있다. 삼위일체는 부동한 층차에서 부동한 개념과 부동한 인식이 있다. 유형(有形)적인 매우 높은 층차에서 삼위일체는 진신(眞身), 진신(眞神), 사상(思想) 이렇게 삼위일체이다. 이것은 아주 높은 층차인 그쪽의 정황이다. 더 높은 층차에서는 이렇지 않다. 그곳의 사상(思想)과 신체(身體)는 일체(一體)로서 구별이 없다. 나는 유형신(有形神) 이 층차에서부터 말하는바, 그것은 바로 진신(眞身), 진신(眞神), 사상(思想)이 삼위일체를 이룬다.

나는 아래로 내려가다 유형(有形)의 이 층차에 이르러 진신(眞身)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대궁에 진입해 아래로 내려갔다. 매 번마다 나는 모두 진신(眞身) 단독으로 아래로 내려왔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나는 바로 진신(眞身)이다. 나는 줄곧 당신들에게 말했는바, 내가 바로 가장 표면이며, 진피(眞皮)가 바로 나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층차에서도 모두 가장 표면으로, 모두 진신(眞身)으로 했기 때문이다. 사람 여기에 이르러서도 육신 중에 진신(眞身)이 있다.(박수) 그러므로 나는 부동한 층차에서, 역사의 과거에서, 적지 않은 나의 진신(眞神)을 남겨 놓았다. 그들은 모두 나의 과거의 부동한 층차의 진신(眞神)이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스스로 기나긴 세월 속에서 내가 이미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또 하나의 신체(身體)를 연화해 냈는데, 모두 그 당시의 나와 똑같은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은 장래의 우주 중에서 허다한 나의 과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동화한 후 미래의 새로운 우주에 진입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위덕이고 복인바 -- 예전에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매번 모두 진신(眞身)으로써 아래로 걸어 왔다. 그래서 진신(眞神)을 놓고 말하면 매번 신체가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그들은 모두 내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매우 고생스럽고 거의 훼멸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이 아무리 높은 곳에서 왔어도 최후에 사람 여기에 오면 신의 눈에는 기본상 바로 신이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층층이 아래로 내려온 나는, 시종 진신(眞身)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진신(眞身)이 비록 기나긴 역사의 부동한 수많은 층차를 걸어왔지만 이 껍질의 근본이 어디서 온 것이며,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생명은 없었다. 이번의 나 역시 사람 몸과 함께 인간 세상에 태어나 사람의 가장 표면이 되었다. 부동한 것은 육신 중에 진신(眞身)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가장 본질적인 내원(來源)을 똑똑히 조사해 낼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생명은 없다. 내가 방금 전에 말했는바, 장래의 생명이 나를 알기 아주 어렵다는 말은 바로 이 뜻이다.

나는 오늘 상당히 높게 말했다고 생각한다.(박수) 어떻든 대법제자로서 말하면, 들었으면 들은 것으로 어떤 마음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수련과정 중에서 어떤 것은 서서히 알게 되고 어떤 것은 아마 나중에 원만을 이룬 뒤에야 알게 될 것이다.

원만을 말하자면, 당신들의 원만 또한 갑작스럽게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과거에 단(丹)을 연마하는 그 사람들처럼, 단번에 폭파되어 열리는 것이 아니며 이런 상태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법제자의 원만은 어떤 상태인가? 당신들의 수련 잘된 그 일면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바, 그것은 모두 당신이다. 당신의 가장 표면의 이 점마저 모두 건너가게 될 때, 당신은 마치 잠에서 자연스럽게 깨어난 것과 같은데, 바로 이런 상태로서 진동이 없다.(박수)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책 속에서 부동한 법리를 보았을 때, 그것은 단지 사람 여기서의 그러한 작고 작은 인식에 불과하다. 당신들이 알고 있다시피 진정한 불리(佛理)는 아직도 표면 인체를 가지고 있는 수련인 앞에 전부 펼쳐보여 줄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의 이쪽은 다만 개괄적인 인식일 뿐이며 아울러 수련된 그 일면은 이미 그 경지의 전반적인 인식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수련 중에서 잘 수련된 그 일면은 당신이 마땅히 어느 층차이면, 그 경지의 우주 중에서 당신의 아래의 각 층차의 일체를 모두 알고 있으며 또한 전부다 눈 아래에 있다. 모든 수련된 그 일면은 다 이런데, 줄곧 마지막에 남은 조그마한 부분까지 모두 수련되면 일체가 마치 아주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처럼 전부 알게 된다. 표면상으로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과 같다. 아, 하면서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면 당신은 그것을 한다. 바로 이러하다.(박수)

그 때의 사상은 사람의 이런 사유방식과 구조가 없으며 수련된 그 일면의 사유 구조는 전부 신의 제일 좋은 표준에 따라 행한다. 이렇게 되어 사유방식은 낮은 층의 사유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낮은 층의 일체를 당신들은 모두 안다. 사실 당신들이 알다시피 석가모니 부처이든 다른 신불(神佛)이든 그들은 소나 말의 사상마저 알 뿐만 아니라, 더욱 낮은 생명의 사상도 알며 일체를 다 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 들어가지는 않고 무엇이든 알 뿐이며, 단지 이에 불과하다. 장래에 대법제자로서 수련 성취된 다음, 당신이 아래의 일체를 관찰하면 당신은 무엇이나 다 안다. 그러나 당신의 사유방식은 오히려 그들과 같지 않아 그 속에 들어가지는 않고, 완전히 당신의 그 경지 중의 사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장래에 원만할 때면 아마도 꿈에서 깨어난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무엇이든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수련된 그 일면은 그 쪽에 있은 시간이 이미 아주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 쪽에 있는 시간은 인간 세상의 공간, 시간과 모두 같지 않으며 당신은 그 쪽에서 이미 오랜 시간 머물렀고 모든 것에 익숙해져 있다. 당신 이 쪽의 최후의 한 점까지 건너갈 때 또한 무엇이든 알게 된다.(박수)

과거에 내가 당신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과거에 수련인들이 개오(開悟)할 때에 그는 단을 폭발시켜야 했다. 단이 폭발할 때 층층의 공간에서 모두 폭발해야 하기 때문에, 지상(地上)에 대한 영향이 매우 컸다. 산사태가 있을 수 있고 해일이 일어날 수 있는데, 매우 큰 진동이 있을 것이며 모두 나타날 것이다. 대법제자들이 이렇게 많고 수련의 층차 또한 높은데, 와, 그렇게 된다면 될 말인가? 그렇게 되면 인류사회에 얼마나 큰 재난이 발생하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매우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을 내가 시초에 이 일을 하기 시작할 때 이미 무엇이든 충분히 고려했다. 이 법 중의 일체가 모두 가장 원용하고 가장 좋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 많은 수련생들이 사상 중에서 고려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 이런 일 저런 일들은 사실 생각만 하면 이미 경지가 떨어진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아무것도 상관하지 말라. 사부는 자비로워 반드시 당신을 가장 좋게 배치해 줄 것이다.(박수) 당신은 사부가 우리에게 자비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바, 그것은 당신이 수련해 낸 것이며 그것이 당신 자신의 위덕이 조성한 것이기 때문에, 사부가 당신들에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이만큼만 말하겠다. (열렬한 박수)

잘하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을 다그쳐서 정진하라. 우리의 법회는 계속 진행될 것이며 여러분들은 매 한 걸음을 잘 걸어가야 한다. 더 좋은 때일수록,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기연(機緣)은 더 적어진다. 때문에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가능한 잘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들은 극단으로 나아가서는 안 되는데, 당신은 어떤 극단으로 나아가서도 안 된다. 당신이 일단 극단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배치한 이 길과 법의 당신에 대한 요구를 파괴하게 된다. 당신은 정상적으로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 내일 원만을 이루더라도 오늘 당신은 여전히 모를 수 있는데, 당신은 여전히 생각할 것인바, 나는 또 회사를 차리려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하라. 그렇지만 일체를 나는 모두 당신에게 원용시켜 줄 것이다. 당신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면 당신은 그것을 하면 된다.(열렬한 박수)

마지막으로 이번 밴쿠버 법회가 원만하게 성공하기를 축원한다. 여러분 감사하다.

(장시간의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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