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다음페이지 다음페이지 크게보기 작게보기
 

미국 제1차 설법

 

李 洪 志
1996년 10월 5일,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서

 

내가 여기에 앉으면 여러분이 모두 볼 수 있다. (박수)

많은 사람들은 아주 먼 곳에서 달려왔으며 아침 일찍 차를 운전하고 왔다. 나는 여기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연마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 역시 줄곧 미국에 와 보고 싶었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올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여러분과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인연이며, 이 공(功)을 배울 수 있는 것 역시 인연이다. (박수) 나는 휴스턴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여 미국의 더욱 많은 사람들과 만나려고 하는데, 여기를 지나가게 되어 먼저 여러분을 만나보는 것이다. (박수)

어쨌든 여러분은 이 공(功), 이 법에 대해 인식이 깊기도 하고 옅기도 하며, 이해의 정도 역시 모두 같지 않다. 내가 전한 것은 불가의 수련방법이기 때문에, 불가의 말로 하자면 그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연이다. 당신은 아직도 그가 얼마나 진귀한지를 모르고 있다. 당신이 그가 진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은 매우 행운이라고 느낄 것이다. 내가 말한 이러한 이치와 여러분을 지도하여 수련하도록 하는 것은 천백 년 동안 여태껏 공개적으로 말한 사람이 없었다. 실제상에서 시간적으로 더욱 길며 역사상 말한 사람이 전혀 없었다. 수련을 말하면 여러분은 중국 이 특수한 환경 중에서 역사상 허다한 수련인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것인데, 사실 그들은 여전히 있으며 또한 아주 많은 수련인들이 세계 각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는 곳에도 모두 줄곧 수련하는 사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온 나이가 비교적 많다. 그가 세간으로 들어가지 않고 속인과 접촉하지 않기 때문에 속인도 알지 못한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이 이른바 현실을 인식하게 될수록, 인류의 진실한 역사와 진정한 현실을 점점 더 저버리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러한 일을 말할 때마다, 마치 신화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바른 종교와 많은 오랜 전설이 왜 몇 천 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가. 이는 반드시 그것으로서 일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 속인사회 중에도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아주 많은 각종 현상이 있는데, 혹은 만났거나 혹은 들었거나 혹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들로서, 현재의 사유방법과 현재의 과학이론으로는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이는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그만한 높이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두 존재한다고 나는 말한다. 현대인들은 과학을 필요이상으로 믿고 있지만, 과학은 아직 거기까지 발달하지 못했기에 과학으로는 이 층의 공간을 돌파하여 진상(眞相)을 인식할 방법이 없다.

사람들은 현재의 과학기술이 매우 발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주의 진실한 모습과 비교하면 매우 저능(低能)하다. 사람은 컴퓨터가 매우 발달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이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실제상 사람의 두뇌와 비교할 수 없으며 사람의 두뇌는 영원히 인류의 수수께끼(迷)이다. 장래에 수많은 사람들이 법을 배우고 수련하여 개공개오(開功開悟), 원만(圓滿)으로 수련되는 정도에 도달할 것인데, 그때는 매우 미시적(微觀)이고 매우 거시(洪觀)적인 층차에서 생명과 우주, 물질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물질은 미시적인 입자로 더욱 큰 한 층의 입자를 구성하고, 그런 다음 더욱 큰 한 층의 입자가 또 더욱 큰 한 층의 입자를 구성하는데, 줄곧 표면물질에 이르기까지이다. 마치 중성미자(中微子)에서 쿼크에 이르고 다시 원자핵에 이르며 그런 다음 다시 원자에 이르는 것과 같다. 인류의 가장 표면을 구성한 이 층의 물질, 이 표면형식의 분자입자는 모두 부동한 더욱 미시적인 물질로 구성된 것이다. 현재의 과학자들은 단지 미시적인 입자의 조합(組合), 현미경으로 알 수 있는 고만한 것, 분자의 존재, 원자의 존재, 중성미자에 이르는 것까지 알 수 있을 뿐이다. 더 아래로는 측정기기로도 관찰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큰 배수(倍數)의 직경범위가 아주 큰 현미경이 있어 볼 수 있는 것이 분자입자 한 개나 몇 개 분자입자가 아니라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그 층면이라면, 사람은 곧 다른 공간을 보게 된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바로 이 사상의 틀을 돌파하지 못했으며, 단지 그 미시적인 입자의 한 점, 몇 개의 점을 관찰하는 것만 중시했고, 이 관념을 돌파하고 그것을 연계시켜 그것의 전체 미시적 입자 존재의 그 면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다른 공간이다. 바로 이렇게 간단하다. 현재 이러한 것들을 돌파하지 못했고, 현재의 기술 역시 도달하지 못했다.

방금 나는 이러한 것들을 현대인의 사유방식과 언어로 말했다. 이것은 사람이 알고 싶어 하지만 또한 사람에게 알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다. 우주의 진정한 이치를 사람들에게 제시한 사람이 없으며 과거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했다. 천리(天理)에 따르면, 사람은 아주 높은 하늘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속인사회까지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지구까지 내려온 것이다. 수련계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원인(猿人)에서부터 진화되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질상 고층생명이 본 것 역시 확실히 본질적으로 다르다. 현재 실증과학의 인식은 인위적으로 허다한 가상(假相)을 만들었으며 인류 또한 과감하게 타파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이런 몹시 낮은 인식으로 마치 일부 현실적 이익과 과학적 지식을 얻게 된 것 같지만, 사실 모두 인류, 생명과 우주에 대하여 파괴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생명에게 승화할 수 있는 것을 갖다 주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권위를 위해, 자신의 이른바 학문, 지식을 수호하고 다른 사람에게 타파되지 않기 위해 수호하고 있으며, 남들로 하여금 더욱 높은 인식을 가질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일부 것들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감정적으로 이런 이지적이지 못한 행위를 수호하고 있다. 이리하여 우주의 진상에 대해 오히려 인위적으로 자신이 자신을 봉폐(封閉)해 버렸다. 수련은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제고하게 할 수 있으며 수련하는 사람은 생명과 우주의 진상을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

현대인들이 현대과학에 의해 너무나 심하게 봉폐되었기에 이러한 진상이 모조리 미신으로 간주되고 있다. 사실 바로 미신이라 해도 과학자로서 두뇌가 있는 사람으로서는 마땅히 왜 그것이 미신인지, 왜 사람들이 미신을 믿으려 하는지 연구해 보아야 한다. 현대인들은 감히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내 생각에 미국의 이 환경에서는 아마 많이 좋아질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제한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현재의 실증과학이 조성한 한계 때문에 인위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사상을 모두 봉폐했다. 이리하여 생명, 우주 및 물질의 진상을 인식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수련을 통해서 우주의 진상을 인식할 수 있는데, 특히 불법(佛法)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재 오로지 현대과학만을 믿고 있으며, 그러한 것들은 모두 신학, 종교에 속하며 과학이 아니라고 여긴다. 사실 이는 인류가 우주를 인식하는 유일한 경로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아인슈타인도 만년에는 종교를 믿었다. 과학에서 큰 성취가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최후에는 다들 종교로 들어갔다. 그들은 종교 중에서 말한 이치가 더욱 높은 진리라는 것을 발견했다. 인류의 인식은 한계가 있으며, 이 한계를 초월하면 과학은 곧 무력해진다. 그러나 불법은 우주의 일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신이 말한 것이야말로 더욱 높은 과학이라는 것을 발견하여 종교로 들어간 것이다.

물론 나는 이 법을 기공이란 이런 형식으로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다. 사실 안에 포함된 내포는 매우 크며 역사상 여태껏 말한 사람이 없었는데 나는 그것을 모두 말했다. 만약 당신이 착실하게 『전법륜』 이 책을 보면, 그가 대단히 진귀함을 발견할 것이다. 그 속에는 아주 많은 천기(天機)가 있는데, 단지 표면적으로 보기만 해도 역시 사람으로 하여금 적지 않은 혜택을 얻게 하며, 일반사람은 어떻게 사람이 될 것인가를 알게 한다. 수련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내포 중의 것들을 보아내지 못하며 『전법륜』 속의 고층의 이치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포함한 내포는 매우 커서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여 원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원만뿐만이 아니고 나아가 생명으로 하여금 더욱 높은 경지 속으로 승화되어 갈 수 있도록 한다.

여러분 알다시피 수련과 신체단련은 같지 않다. 내가 공을 전함이 단지 여러분의 신체단련을 위한 것뿐이라면, 나는 이토록 큰 법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바로 여러분에게 이 법을 얻게 함으로써 이 우주의 진상을 알게 하고, 당신이 수련할 수 있도록 하며, 더욱 높은 층차로 자신을 제고케 하여 당신 개인을 승화시키려 했다. 수련 중에서 당신이 이렇게만 하면, 이 책은 바로 당신을 지도할 수 있으며 이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수련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는 보아내지 못한다. 왜 보아내지 못하는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첫 번째로 이 책을 보면 사람에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지 가르치는 이치를 말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다시 보면 다른데, 이때 사람은 그가 수련서임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이 다시 세 번째로 보면, 당신이 정말 연속적으로 세 번을 볼 수 있으면, 당신은 이 책을 다시는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있으면 당신은 곧 들고 볼 것인데, 당신은 그가 천서(天書)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도 아마 보았을 텐데, 문학적으로 보면 어법이나 언어 구조상 그리 규범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의 규범적인 언어는 깊은 내포를 포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타파했고 아주 규범적인 현대어법으로 말하지 않았다. 게다가 많은 말이 중국의 방언(方言)을 사용했는데, 왜냐하면 규범적인 언어, 규범적인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것이 종교용어에 속하는가 하면, 또한 중국 옛적 민간(民間)에서 수련에 대해 인식한 말도 있다. 이리하여 나는 가장 평범하고도 가장 통속적인 언어, 가장 일반적이고도 가장 평이한 언어로 이 대법을 말함으로써, 지식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다 알 수 있고, 다 수련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 속에 포함된 이치는 대단히 깊고 깊은 것이다.

여러분은 수련을 알고 있다. 내가 만약 사람들에게 기공을 가르쳐 신체를 단련시키려면, 단지 기공은 어떻게 호흡을 조절하고 어떻게 마음을 조용히 하는가를 말해 주면 그만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이 높은 층차로 수련하려 하면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사람을 지도하여 높은 층차로 수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당신들이 학교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신이 대학에 가려면 당신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기초가 있어야 한다. 중학교 교과서를 가지고 중학교에서 공부하고, 고등학교에서는 손에 고등학교 교과서가 있으며, 최후에 대학에 가면 대학의 과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이 초등학교의 교과서를 가지고 대학에 가도 당신은 여전히 초등학생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대학의 것들을 얻지 못하기 때문인데, 더욱 높은 법을 배우지 못하면 수련하여 올라갈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당신을 지도하여 높은 층차로 수련하게 하려면 더욱 높은 층차의 이치로써 당신의 수련을 지도해야 한다.

『전법륜』 속에 이렇게 높은 내포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표면에서는 오히려 보아내지 못한다. 같은 구절을 당신이 제고한 후 다시 보면 이 구절이 더는 원래의 그 뜻이 아니라 다른 뜻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인데, 틀림없이 이러하다. 어떤 책도 이런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것은 수련의 책이 아니고 단지 속인의 이론에만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법은 완전히 속인의 이론을 초월한 것으로서 내포가 매우 큰데, 수련이잖은가. 불가(佛家)의 말로 하면, 속인의 이 단계에서 시작하여 수련하는 것을 나 여기에서는 世間法(쓰젠파)수련이라고 하며 또 인체(人體)수련이라고도 한다. 이 단계에서 마땅히 제고해야 할 아주 많은 것들을 모두 완성해야 한다. 과거 인체수련의 책 속에서 다룬 것이 비교적 많은데, 모두 매우 어렴풋하게 쓴 이런 것들이다.

이 책이 단지 世間法(쓰젠파) 중의 연공으로 당신을 지도할 수 있을 뿐이라면 당신은 수련하여 삼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책 속에는 반드시 인체수련과 삼계의 각개 층차 수련의 이치가 포함되어야 하며, 줄곧 삼계 밖의 이치에 이르기까지이다. 수련자는 매 한 층차의 이치로 지도해야만 그 한 층으로 수련될 수 있다. 그렇다면 또한 반드시 더욱 높은 층차의 이치로 당신을 지도해야만 비로소 더욱 높은 층차로 수련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반드시 삼계를 초월하는 이치가 있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삼계 밖으로 수련할 수 있다. 마치 내가 말한 사람이 책을 읽는 것과 같이, 만약 안에 그처럼 큰 내포가 없다면 당신은 전혀 수련하지 못하는데 바로 이 뜻이다. 내가 오늘 전한 이 법은 다른 기공사가 말한 것과 전혀 다르다. 그러한 기공사들은 단지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일부의 것들을 가르쳤다. 여기에서 내가 다른 기공사가 높지 않다거나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이 뜻이 없다. 나는 누구도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현재 이 일은 오로지 나만 하고 있다. 책을 여러분이 보았다시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다. 중국에도, 전 세계에도 이렇게 한 사람이 없었다. 이는 작은 문제가 아니며, 고층차로 사람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렇게 하였다면 매우 거대한 문제와 관련된다.

정법(正法)을 전하기는 매우 어렵다. 여러분 알다시피 예수는 그 해에 바로 정법을 전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으며, 석가모니 역시 어쩔 수 없이 열반의 길을 걸었다. 속인사회 중에는 아주 많은 고유 관념, 각종 인류의 세력과 종교 세력이 있으며, 아주 많은 요소 또한 모두 각자의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바른(正) 일면이 있고 부(負)의 일면도 존재하고 있는데, 부(負)의 그 일면이 바로 악세력(惡勢力)이다. 인류사회의 모든 바른(正) 것 속에는 모두 부(負)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이 사람을 해치고 그것이 사람을 억압하고 사람을 타격할 것이며, 정권(政權)을 이용하고 각종 수단을 이용하여 사람을 억압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법을 전하기는 매우 어렵다. 나쁜 사람이 사법(邪法)을 전하는 것은 오히려 상관하는 사람이 없다.

부처가 중생을 보면 매우 고생스럽다. 예수 또한 당신이 비단 당신의 친구를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당신의 적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중생에게 자비하기 때문에 세인을 구도한다. 그렇다면 수련인으로서, 개인의 수련 중에서 만일 당신이 일찍이 속인 중에서 당신을 반대했던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당신은 부처가 될 수 없다. 확실히 이런 이치인데, 수련인은 자비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자비라는 것은 바로 속인의 일체 은혜와 원한을 모두 내려놓는다는 것으로서, 속인의 일체에 집착하지 않고, 속인의 명예니 이익이니 하는 것을 구하지 않으며,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수련 중에서 속인 중의 일체를 모두 담담하게 보는 것이다. 그러면 뛰쳐나올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한 요구는 좀 높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전한 이것은 속인 중의 일반적인 평범하고도 평범한 기공이 아니라 진정한 수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또 기공과 떨어질 수 없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기공의 고층이 바로 수련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틀림없다. 그러나 사회상에서 전한 그러한 기공은 모두 수련 중에서 가장 낮은 층차의 것이며, 신체건강을 위하고 병을 제거하며 몸을 건강히 하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것으로서, 더욱 높은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어려운 것이며 누가 일시적인 충동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매우 어렵다고 말한 뜻은, 여러분에게 알려 주는데, 내가 전하기가 매우 어렵고 당신이 얻기도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 여기에 앉은 많은 사람들이 인연이 있을 것인데, 대단히 큰 인연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 일체의 표현에 무슨 특별한 것이 없지 않은가, 평범하고도 평범하게 나는 이 책을 보게 되었고, 평범하고도 평범하게 나는 이 법을 알게 되었으며, 우연히 이 공을 연마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나 혹은 친구가 소개하는 것을 거쳐서 자연적으로 배우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속인의 이 사회 형식은 바로 미혹 속에 있으며, 갑자기 한 신선이 날아와서 당신에게 이 법을 배우라고 알려주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면 곧 속인사회의 미혹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 미혹을 타파하면 곧 깨달음이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수련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접촉하는 많은 것들이 모두 우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우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중국에서 수련생들에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고도 평범하게 이 학습반에 와서 강의를 듣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은 아마 지난 몇 세에서, 심지어 십몇 세, 몇십 세에서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해 고생을 겪었을 것이다. (박수) 단지 당신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이 법을 얻기 위해 머리가 떨어진 적도 있다. 수련 중에서 내가 입이 닳도록 선을 권고하며 당신들을 이끄는 것은, 역사상에서 당신들이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당신들이 오늘 그를 얻기 위해 아주 많은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가 이렇게 당신을 가르치지 않으면 당신에게 미안한 일이다.

물론 내가 말한 것이 듣기에 좀 잘 와 닿지 않겠지만, 매우 깊은 것이다. 사실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단지 사람 표면의 요만한 현존하는 공간의 이 몇십 년의 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죽음으로써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설사 지옥에 떨어지고 18층 지옥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끝에 도달한 것이 아니며, 죄악이 큰 생명은 또 더욱 낮은 층을 향해 떨어져 내려가 소멸되고 훼멸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는 분자로 구성된 이 한 층의 물질신체만을 벗어던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진정한 이 생명 그는 인피(人皮)가 숨을 거두는 순간 신체를 이탈한다. 사람은 사망하기 전에 매우 두렵다고 느끼지만, 사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조금도 두렵지 않다. 사람의 사유가 존재할 때 매우 두렵다고 느껴지는데, 사람의 사유는 바로 육체 세포로 구성된 사유로서 그것이 일단 멈추게 되면 사람은 갑자기 마치 되살아난 것처럼 느껴지며, 마치 해탈한 것처럼 일종의 흥분된 감각일 뿐만 아니라, 신체가 홀가분해지고 육신의 속박이 없어지며 사상 또한 전부 열린다. 일생 중에서 한 일들이 마치 1분 전에 막 했던 것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지나가며 매 한 가지 작은 일까지도 잊지 않게 되는데, 생명의 사상이 모두 해탈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사람은 그가 진정 누구인지 알게 되며, 그는 또 일생 중에서 그가 한 일의 좋고 나쁨을 똑똑하게 알게 되는데, 마치 사람이 한잠 자고 다시 깨어난 것과 같다.

물론 내가 말한 이러한 것들은 아마 당신이 전혀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지만, 사실은 바로 이러하다. 나는 이 방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매우 많은 것을 관찰해 왔다. 특히 가끔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응급처치 하는 것을 보면, 환자가 이미 죽어 그 사람의 元神(왠선)이 신체에서 빠져나와 가버렸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응급처치를 계속하고 있다. 두 개 시공의 개념이 같지 않기 때문인데, 그 쪽 시간의 빠르고 늦음, 공간구성의 차이는 사람 이 공간과는 모두 같지 않다. 일단 인체에서 해탈해 나올 때, 일생 중에 한 일들이 마치 금방 한 일 같고 잠깐 한숨 잔 것과 같다. 부처가 사람을 보는 것 역시 이러한데, 사람은 미혹 속에서 청성(淸醒)하지 못하지만, 사람의 생명은 잠깐인 것이다.

이 법을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는데, 어쨌든 당신들은 필경 인연이 있어 얻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기왕 그를 얻은 이상 당신은 바쁜 일이 끝난 후 시간을 내어 이 책을 보도록 하라. 여러분은 좀 많이 봐서, 내가 말한 것처럼 이러한지 아닌지 보도록 하라. 만약 아니라고 생각하면 당신은 배우지 않아도 된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인식하고 착실하게 볼 수 있다면 내가 다시 뭐라고 할 필요도 없이 당신은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더욱 높은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 당신은 줄곧 보게 될 것인데, 그는 속인의 지식을 초월한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불성이 있으므로 당신이 오로지 볼 수만 있으면 곧 손에서 놓기 아쉬워할 것이며 다시는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법을 말할 때 아마 대륙인의 사유방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이 책을 정리한 것도 역시 이러하다. 비록 미국과 세계의 다른 국가 사람들의 사유방식, 문제를 인식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고, 써낸 것의 표면상의 사상구조, 이해 정도가 같지 않으나, 수련 중의 법리의 내포는 같은 것이다. 어떠한 지역, 어떠한 국가, 어떠한 민족도 다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오로지 보기만 하면 모두 같은 것이다. 당신들이 배울 때도 이런 것들을 중시하지 말라. 내가 생각하건대 당신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데, 이 일을 하는 것 역시 하루 이틀의 준비가 아니고 역사상 매우 길고 먼 연대에 이미 이 일을 하려고 준비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미 알다시피 속인사회 중에서 매번 어떤 사건이 나타날 때, 그것은 우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모두 천상변화가 조성한 것이다. 인류발전의 역사상 이런 배치를 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역사상에 절대로 나타날 수 없다. 여러분 알다시피 무수한 고급생명, 불가는 부처가 없는 곳이 없다고 말하는데, 많기로 그야말로 엄청나다. 그뿐만 아니라 형체가 있는 신이 있고 또 형체가 없는 신도 있는데 우주 중에 빼곡히 분포되어 있다. 속인사회에 아주 많은 미시적인 물질이 있는 것을 포함하는데, 사람들이 미량원소라고 부르는 것이든 공기 중의 각종 원소라고 부르는 것이든, 이는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이며 또 인식하지 못하는 더욱 미시적이고 더욱 미시적인 물질이 있다. 방대한 우주 중에 가득 찬 물질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는 고급생명이다. 이 일체가 모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으며 모두 사람을 보고 있고 사람을 관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사회에는 우연한 일이 있을 수 없다.

이 대법이 전해져 나온 것 역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인데, 현재 속인사회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없으나 다른 공간에서는 이러하다. 역사상 진정한 우주의 이치를 사람에게 말해준 사람이 없으며 전혀 있어본 적이 없다. 여러분 알다시피 노자, 석가모니, 예수 등등 이러한 사람들은 단지 이 우주의 법리 중에서 그 자신이 인식한 것, 자신이 증오(證悟)한 그 일부분만을 말했을 뿐이며 단지 그들 자신의 인식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우주의 법은 끝이 없다. 여래를 초과한 부처가 부지기수이며 그들이 인식한 법 역시 더욱 크다. 또 형체가 없는 방대한 생명은 불타(佛陀)의 층차를 훨씬 초과하였으며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 우주는 인류가 종교 중에서 인식한 것처럼 그렇게 작지 않으며 인류의 인식은 바로 인류의 이 사회 내에 국한되어 있다. 사람은 종교의 인식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지만 더욱 높은 신의 눈에는 보잘것없이 작다.

내가 말한 이치는 아마 더욱 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그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는데, 이는 확실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내가 이 일을 함에 인간의 형식·인간의 언어로, 가장 낮은 수련의 형식으로 가장 큰 일을 했다. 현재 언어와 환경이 같지 않음으로 해서 미국과 기타 지방에서 배우는 사람은 중국대륙의 사람처럼 많지 않다. 중국대륙에서 배우는 사람은 다수가 모두 진정으로 수련하고 있다. 매일 연마하고 수련하는 사람이 천만이 넘으며, 이따금 연마하는 사람, 연마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을 모두 합하면 몇 천만이 된다. 나의 이 법을 아는 사람은 중국대륙에 몇 억이 되며 말해 보면 마치 누구나 다 아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법이 정치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또한 그로 하여금 정치에 진입하게 할 수 없다. 수련의 것이 일단 정치로 진입하면 곧 사법(邪法)이다. 우리는 단지 민간에서 유전되고 있으며, 정식 신문을 통해서나, 나아가 공개적으로 크게 선전하지 않았다. 모두 수련자들이 좋다고 느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배우도록 알려준 것이다. 한 사람이 좋다고 느끼면 곧 가족들에게도 배우도록 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만약 자신이 그저 그렇다고 느낀다면 가족들에게 배우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 좋다고 느끼면 그는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모두 배우게 하는데, 민간에서는 바로 이렇게 전해졌다. 나 역시 가장 낮은 층차에서 시작하여 말했으며 점차 높게 말했다. 이처럼 2년을 말했고, 최후에 진정으로 대법을 말하는데 또 2년을 하여 총 4년이라는 시간으로, 중국에서는 거의 집집마다 알고 있다. 국외에서도 영향이 매우 큰데, 비록 아직 수련을 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두 들은 적이 있다. 동남아에서는 영향이 미국보다 좀 클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보도소를 결성했고 法輪大法(파룬따파) 불법(佛法)학회, 法輪大法(파룬따파)학회를 결성했는데,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추세를 나타냈다.

여기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일을 알려주겠다. 현재는 석가모니가 말한 말법시기로서, 안 되는 때인데, 바로 법이 없는 것으로, 석가모니는 그의 법이 말법시기가 되면 사람을 제도할 수 없다고 했다. 많은 화상(和尙) 역시 수련 성취할 수 없다. 그들 역시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 모르고, 경서를 이해하지도 못하며 경서 중의 진정한 함의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련하기가 매우 어렵다. 현재는 배우는 사람이 매우 많은데,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인류사회에 어떠한 상태가 나타나든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배우는데 이러한 천상의 변화가 없으면 곧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틀림없이 그 이유가 있다.

인류에게는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가 있으므로 바른 것이 나타나면 반드시 사(邪)한 것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다른 한 방면으로는, 바로 오늘날 사회의 각종 사교(邪敎)라든가, 대량의 가짜 기공이라든가, 표면적으로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은 돈을 위하고 이름을 날리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 많게는 아마 사마(邪魔)가 전생하여 세상을 난잡하게 하는 것일 것이다. 석가모니는 그가 법을 전할 때 인류사회가 “다섯 가지 독이 구전한(五毒俱全)”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사실 현재의 사회는 그때보다 더욱 복잡하며 열 가지 악이 구전한(十惡俱全) 것이며 사악한 종교 역시 매우 많다.

여기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우리는 절대 종교가 아니다. 당신이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배우고 싶지 않으면 가는 것으로, 자원(自願)적이다. 예를 들어 억지로 당신에게 배우라 하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기어코 배워야 하며, 배웠으면 떠나지 못하고 기어이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면, 여러분 알다시피 이 자체가 바로 삿된 짓을 하는 것이다. 정법이라면 사람 자신이 마음속으로 배우고 싶지 않으면 안 된다. 기어코 다른 사람이 수련하도록 강압한다면 그가 수련할 수 있겠는가? 그는 절대로 진정으로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사람 자신이 진심으로 배우려고 해야만 그는 수련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강제로 누구를 여기에 있게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하지 않으며, 배우고 싶으면 배우라. 배우면 나는 곧 당신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얼마나 큰 인연이 있든 당신이 배우려고 한다면 나는 당신에 대하여 책임지며, 배우고 싶지 않으면 당신은 다른 일을 하면 된다.

내가 이 법을 전하는 목적은 바로 아름다움과 복음을 여러분에게 알려주려는 것이다. 당신들 중에서도 아주 확실하게 많은 사람이 인연이 있는 것으로, 마땅히 이 법을 얻어야 하며 또한 줄곧 이 법을 얻고자 기다렸다. 인류가 특별히 난잡한 이때 전반 사회의 도덕이 모두 아래로 미끄럼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겁난(大劫難)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무슨 이러한 대겁난이 현재는 없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이처럼 나빠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무엇 때문에 위험한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오늘날 사회의 사람들은 이미 무슨 모양인가. 각종 부패된 현상이 그야말로 너무나 많아 헤아릴 수 없다. 사람이라, 무엇 때문에 사람이라고 하는가?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감에 사람의 도덕 표준과 사람의 규범이 있어야만 비로소 사람이기 때문인데,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다. 당신에게 머리가 하나 있고 사지(四肢)가 있다고 해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원숭이 역시 사지가 있고, 기타 공간 중에 사람과 비슷한 생물 또한 매우 많으나 그것들 역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의 행위와 도덕표준이 있고 사람의 도덕규범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사람의 도덕규범을 포기하여 사람의 도덕표준이 없고 동물과 같다면, 하늘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이것을 짐승으로 여긴다. 그때가 되면 인류는 그야말로 두려운 것이다.

무엇 때문에 두려운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은 인류의 공간이며, 지구는 신이 오로지 사람에게 만들어 준 것이지 짐승에게 만들어준 것이 아니다. 만약 이러하다면, 많은 좋지 않은 사람 그가 현재 난잡한 무엇이든 다 감히 하는 것만 보지 말라. 아마 절멸(絶滅)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많은 선량한 사람, 많은 좋은 사람 역시 따라서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다. 현재 혼자서는 수련할 수 없는데, 내가 이 이치를 사람에게 말해주면 사람도 깨달을 것이며 인류 이는 어찌된 영문인가를 인식하게 되어, 더 미끄러져 내려가 두려운 후과를 조성하기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데, 늘 이런 이치를 모두 여러분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나는 또 휴스턴에 가서 회의를 열려고 하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서 단지 여러분을 좀 만나보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좀 나누고자 했고, 차제에 여러분을 좀 만나보고, 또한 차제에 다시 여러분에게 이 법이 확실히 매우 진귀(珍貴)함을 알려주고자 생각하여 대가 없이 당신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것은 천백 년 동안 사람이 알고 싶어 했지만 오히려 전하지 않은 진귀하기가 비할 바 없는 진법(眞法)이다. 사람은, 진귀한 것을 당신이 추구하는 가운데서 조금만 얻어도, 심지어 오직 한 마디 말이라 하더라도 당신은 대단히 소중히 여겨 일생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만약 더욱 진귀한 것이 왔고, 더구나 내가 그를 전부 다 당신에게 받쳐주었을 때에 당신은 오히려 이렇게 쉽게 얻게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아마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흔히 쉽게 얻은 것을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또한 별다른 방법이 없다. 나는 개개인들이 도처에 가서 나를 찾게 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오로지 이 일체를 모두 당신들에게 주어 당신들에게 알게 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게 하며 재차 인연을 잇게 하는데, 오로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소중히 여기는가 여기지 않는가는 당신들 개인의 일로서, 당신들은 앞서 인연이 있었다. 사람은 분석능력이 있으니, 당신은 이 이치가 좋은지 좋지 않은지 좀 보라. 내가 생각하기엔 사람마다 모두 불성이 있으니 당신 자신이 잘 깨닫도록 하라. (박수)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은 매우 멀리서 온 것 같은데, 여러분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제자: 사부님, 사진을 찍어도 됩니까.

사부: 사진을 찍어도 된다.

제자: 질문을 해도 됩니까?

사부: 이렇게 하자. 우린 시간을 길게 할 수 없으니, 나는 여러분에게 반시간을 더 주겠다. 내가 여러분의 일부 문제에 해답해 주겠다. 이에 내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를 요구하겠다 ― 대표성이 있고 확실히 당신을 곤혹시키는 것이면 제기하라. 당신이 책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은 제기하지 말라. 왜냐하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라, 만약 매 사람마다 모두 문제를 제기하면 두 시간이라도 다 해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겠는가?

제자: 제가 질문해도 될까요?

사부: 된다, 된다.

제자: 저는 사부님의 책을 모두 보았고 법도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매우 많은 친구나 혹은 친척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모두들 생각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이전에 불교를 믿었고, 물론 기독교를 배우는 친구들 역시 많은데, 생각하는 것은, 만약 지금 파룬궁을 배운다면, 어떤 사람은 이전에 주문을 외우기 좋아했고, 교회에 가기를 좋아했는데 이런 것을 또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좋다, 내가 말하겠다. 당신이 말한 뜻은 바로 다른 종교를 신앙하면 이 파룬궁을 배울 수 있는가 없는가, 교란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 내가 책 속에서 이미 해답했다. 그럼 내가 다시 말하겠다.

부처 수련이란 속인이 이해하는 어떤 학문이 아니다. 부처 수련은 매우 엄숙한 문제이다. 세상의 어떤 일도 이 일보다 엄숙하지 못하며 또한 이 일보다 수승(殊勝)하지 못하다. 수련은 법문(法門)을 구분하는 것으로, 불교 중에서도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말한다. 방금 나는 불교가 말법시기에 이르러 수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무엇 때문에 수련하기가 쉽지 않은가? 지금의 사람은 이미 경서 중의 함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더욱이 현대의 불학사전(佛學詞典), 그것이 해석한 것과 석가모니가 당시에 했던 말은 전혀 같은 뜻이 아니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부처가 말한 불이법문(不二法門)은 수련 중에서 섞어서 수련할 수 없으며 동시에 두 가지를 수련하든가 혹은 여러 가지 것을 수련할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킨 것이었다. 예컨대 당신이 선종(禪宗)을 배우는 사람이면 당신은 정토(淨土)를 배워서는 안 되고, 당신이 정토를 배우는 사람이면 당신은 천태종(天台宗), 화엄종(華嚴宗)을 배워서는 안 되며, 당신이 화엄종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천태종을 배워도 안 되고 선종을 배워도 안 되며 밀종을 배워도 안 된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가? 현재의 사람은 알지 못한다. 오로지 부처라면 모시고, 오로지 부처라면 그가 어느 문(門)이든 함께 모시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화상(和尙)들이 수련 성취할 수 없게 만든 가장 주요한 원인이다. 사실 매 한 부처는 모두 자신의 천국을 주지(主持)하고 있으며 매 한 천국에는 여래가 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약사불은 그의 유리세계를 주지하며, 화엄세계에는 화엄여래가 있고, 연화세계에는 연화여래가 있으며, 극락세계에는 아미타불여래가 있는 등등이다. 매 한 여래불은 모두 자신의 한 세트 수련방법이 있으며 불리(佛理)의 근간은 모두 우주법리 중에서 참오(參悟)해 낸 것이지만, 매 한 여래의 인식과 수련방법은 같지 않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 알다시피 부처의 능력은 제각기 다르며 매 한 부처가 모두 다른데, 이 부처는 이러한 재간이 있고 저 부처에게는 저러한 재간이 있다.  모두 한 경지 중에 있지만 능력은 모두 같지 않다. 마치 여러분이 대학에 다니는 것처럼 당신은 대학생이고 그 역시 대학생이다. 당신은 이과(理科)를 배우는 사람이고 그는 문과(文科)를 배우는 사람이며, 그는 농학을 배우는 사람이고 그는 천문학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모두 같지 않다. 모두 대학생이지만 장악한 것과 배운 지식은 같지 않다. 나는 매우 간단하게 이런 예를 들었다.

사람 당신이 어떤 세계로 가고자 하면, 과거에 불교에서는 어디로 가겠다고 소원을 빌라고 한다. 나는 정토세계로 가려고 하며 아미타불의 그곳으로 수련하여 그의 불타중생이 되겠다거나 혹은 보살로 수련 성취하거나 나한으로 수련 성취하겠다고 말한다. 그럼 당신이 소원을 빈 후 당신은 곧 그의 이 한 문에서 수련하고 아미타불의 경(經)만 보아야 하며 아미타불만 외워야 한다. 다른 어떤 경(經)도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을 불이법문 수련이라고 했다. 그럼 어떤 사람이 화엄세계로 가려 하면 그럼 당신은 『화엄경』만 봐야 하고 다른 어떤 것도 보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모두 불리(佛理)로서 사람에 대하여 모두 좋은 점이 있다고 느낀다. 이는 사람이 생각한 것이며 주의하지 않으면 곧 난잡해진다. 경서 속에는 가장 낮은 층차에서 고층차에 이르기까지 수련인의 모든 이치가 포함되어 있다. 섞어서 수련하면 좋은 점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일 뿐이다.

이 인류 사회는 현재 봉폐되어 사람을 제도하는 모든 바른 신(正神)들은 모두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다. 하여튼 그들은 현재의 사람이 너무 좋지 않기 때문에 모두 가지려고 하지 않고 제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방금 전에 한마디 말을 했다. 나는 내가 이 법을 전하는 것이 아주 어렵다고 말했다. 아주 많은 신불(神佛)들이 모두 가로막고 나서서 전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지금의 사람은 더는 제도할 수 없고 또한 더는 남겨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을 사람은 모르며 사람은 여전히 아주 잘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사람은 현대인과 과거 사람의 도덕적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모르고, 사람은 또한 천지의 차이가 얼마나 크며, 신불(神佛)은 사람을 어떻게 보고, 하늘은 얼마나 순정(純淨)하며, 부처는 얼마나 수승(殊勝)하고, 얼마나 위대한가를 모른다!

사람과 천인(天人)의 차이는 지극히 크다. 인간세상의 하늘은 아주 맑은데 그것은 사람이 여기의 물질로 구성된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에게 능력이 있어 고층공간에 서서 인류를 본다면, 당신은 인류사회에 검은 파도가 넘실거리고 업력이 극대하며 아주 더러운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불(神佛)의 사람에 대한 견해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구원함은 신불이 사람에게 자비한 것이지, 당신이 부처가 좋다고 말하여 부처가 당신을 가지려는 것이 아니며 또한 당신이 무엇을 얻고자 하여 신불이 당신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사실 신(神)이든 부처이든, 그들은 수련에 대하여 형식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 종교를 아무리 크게 할지라도 수련과는 다르다. 나 역시 사람을 위해 공(功)을 전하는 것이지, 결코 교(敎)를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신불(神佛)은 종교형식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로지 사람만 인정한다.

사람들은 늘 내가 믿는 교는 어떠어떠하게 좋다고 말하는데, 마치 그가 부처를 수호하는 것 같고, 마치 그가 예수를 수호하고, 천주를 수호하는 것 같다. 이런 일이 아니다. 그가 종교 자체에 열심일수록 더욱 집착이며, 그의 마음이 강할수록 신과 더욱 멀리 떨어진다. 아울러 종교는 사람이 하는 수련형식이라, 교가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사람이 완벽하게 닦았다고 할 수 없다. 사람이 이쪽으로 마음을 쓰면 부처와 신은 아주 괴로워한다. 부처는 세간의 형식을 보지 않는 것으로, 귀의하고 세례를 받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속인의 마음인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는 이런 것들을 보지 않고 그는 당신이 진정으로 닦는가, 닦지 않는가를 본다. 당신은 귀의하지도 않고 세례를 받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향을 피우지 않고 염불도 않지만 당신이 신불(神佛)의 요구에 따라 하며 정진하여 착실히 수련하면, 그가 보고 정말로 기뻐하며, 당신이 구할 필요 없이 그는 시시각각 모두 당신을 보호할 것이고 당신을 돌볼 것이며 당신의 수련을 도울 것이다. 이런 이치가 아닌가? (박수)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불교의 책을 내려놓을 수 없고, 『성경』을 내려놓을 수 없으며, 주문을 외는 것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 한다.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은 종교이지, 부처를 내려놓을 수 없음이 아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해 보고 살펴보라. 지금 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렇지 않은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런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는가? 자신이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파내어 그 마음이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어떤 일들은 그 표면을 보면 안 되는데, 자신을 진정으로 닦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신불(神佛)을 믿는 것이다. 부처도 이렇게 본다. 그들도 종교를 어떻게 잘 해나가는가를 보지 않는다. 여러분은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수련 성취하였음을 알고 있는데 그가 반드시 종교 중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며, 많은 대덕지사(大德之士)들이 종교 중에서 수련하지 않았다. 사람이 줄곧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고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견정하게 장기적으로 이렇게 할 수 있고 할수록 더 잘한다면 부처는 그를 책임질 것이며 그는 원만을 이룰 수 있다.

내가 말한 이치는, 말하고 또 말해도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며, 더 좋은 사람, 속인을 초월하는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했다면 당신은 바로 속인을 초월한 사람이고, 더 초월하였다면 당신은 바로 더욱 높은 경지의 생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이 천국에 올라가지 않고 여전히 지상에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사(私)적인 것을 위한 것이며, 강함을 다투고, 명을 다투고 이익을 다툰다. 지상의 사람은 이미 당신과 같지 않다. 바로 이러한 이치이다. 만약 당신이 그들과 이렇게 말한다면, 어느 종교든지 신이 일단 포기하면 바로 속인의 사회형식이며, 사회의 일로서, 진정한 수련에 대하여 실제상 무슨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련의 엄숙성에 대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전일(專一)해야 비로소 진정한 수련이다. 그가 배우고 싶으면 배우는 것으로, 그들에게 비록 영향주지 않지만 수련의 엄숙성이 있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그에게 영향주지 않는데, 책을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라. (박수)

제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연습하라고 가르쳐 주신 5장 공법 외에 저는 한 세트의 수인을 발견하였는데, 사부님께서 하신 이 수인(手印)입니다.

사부: 나는 먼저 여러분에게 수인(手印)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겠다. 수인은 마치 부처의 언어와 같은, 한 가지 표현방식인데, 부처가 무언가를 표현할 때 언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으면 수인을 한다. 부처와 부처 사이에는 사유전감(思維傳感)도 사용한다. 무릇 당신이 나의 법신을 보거나 혹은 당신이 부처와 보살을 꿈에서 볼 때, 당신에게 말할 때 입을 움직이지 않아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이 사유전감을 사용한 것이다. 현대 언어로 말하자면 음성을 지닌 입체전감(立體傳感)이다. 많은 보살, 나한에게 설법할 때 역시 늘 수인의 방식을 사용한다. 이것은 사람의 수화가 아니고, 그것보다 성결하고 위력이 강대하다. 바로 그가 부처의 언어이기 때문에 수인을 하면 에너지가 있고 위력이 있다. 부처 이하의 중생에 대해 말하면 부처가 표현한 것은 바로 법이다. 그러나 수인은 말하는 것과 같으며 언어는 이렇게 조합하여 말할 수 있고 그렇게 조합하여 말할 수 있으며, 한 개 문제를 또 부동한 각도에 서서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며 규범이 없다. 그러나 또한 구체적으로 연공할 때 사용하는 정인(定印)이 있다. 다시 말해서 손이 結印(제인)할 때 움직이지 않는 자세, 이것을 정인(定印)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연화수인(蓮花手印)을 하거나 우리가 연공 중에 정인을 하는 것 모두가 정인(定印)이다. 그렇다면 운동 중의 수인은 고정적인 수인과 다르다. 내가 연공할 때 테이프에서 한 수인은 여러분들이 연공하기 전에 내가 당신들의 명백한 일면에게 말하여 보인 것이며 기타 공간의 중생에게 보인 것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배울 필요가 없다. 당신들이 장래에 부처로 수련되면 모두 할 수 있다. (박수)

제자: 리(李) 사부님, 오늘 우리 매 사람마다 모두 法輪(파룬)을 넣어 주실 수 있습니까? (박수)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오로지 진심으로 수련하면 여기에서든지 아니면 당신 스스로 책을 보든지 모두 얻을 수 있다. 내가 또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부디 이 책을 소중히 여기라. 당신이 지금은 인식할 수 없겠지만, 이 책 속에서 말한 것은 불리(佛理)이다. 수련 속의 매 한 층차가 이 책 속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사실 당신의 수련을 지도하는 것은 불법(佛法)이다. 당신이 수련하는 중에 부처, 신이 당신을 도울 것이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라. 그 하늘의 매 층차에 무엇이 살고 있는가? 뭇 신과 부처가 아닌가? 더욱 높은 부처, 더더욱 높은 부처, 더욱 더욱 더욱 높은 부처가 아닌가?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 책의 매 한 개 글자는 모두 무수한 부처의 층층 겹겹이고, 최후에는 나의 법신이다. 또한 부동한 층차에 역시 法輪(파룬)이 펼쳐 보일 수 있다. 이 책을 들면, 왜 어떤 사람은 보기만 하면 편안하게 느껴지며, 보기만 하면 소업(消業)할 수 있고, 보기만 하면 병이 낫는가? 물론 수련 중에 단번에 업을 전부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 당신에게 그렇게 많이 완전히 제거해 줄 수 없다. 사상이 승화되어야 비로소 일부분을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수련 속에서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의 위력은 아주 크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럼 또 내가 직접 法輪(파룬)을 넣어줄 필요가 있는가? 어떤 사람이 진심으로 배우기만 하면, 수련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얻을 수 있다. 대법은 전 세계에서 모두 전해지고 있다. 바로 내가 전 세계의 매 한 사람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며, 중국에서 수업을 받은 수련생만이 나를 만난 적이 있고 기타 더 많은 수련생들은 나를 만나지 못했다. 수련 중에 法輪(파룬)을 포함해서 내가 준 것이 없으면 되겠는가? 안 된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능력을 이 책 속에 넣었다. 오로지 수련하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책을 보기만 하면 수련 중에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현재 많은 수련생 그들도 곳곳에서 나를 찾고 있지만 나는 그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만나지 않는 데는 원인이 있다. 바로 내가 그들로 하여금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그 곳에서 수련하게 하려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나를 만난 후 마음이 쉽게 들뜨는데, 그의 수련을 교란하게 된다. 나는 그로 하여금 마음을 조용히 하고 수련하게 하려고 한다. 내가 단지 법만 전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또 법을 얻어야 하며, 당신에게 시간을 주어 읽고 착실히 수련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되도록 수련생과 아주 적게 만난다.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만일 내가 전한 법이 당신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없다면, 내가 헛되게 한 것과 같다. 때문에 당신이 책을 보기만 하면, 당신이 진수(眞修)하기만 하면 당신은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이 한 문(門) 중에서 모두 얻을 수 있는데, 틀림없이 이러하다. (박수)

천백 년 동안 석가모니부처의 제자들 역시 사부의 얼굴을 보지 못했어도 경서에 따라 수련하고 있지 않는가?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그 법은 당신에게 필요한 일체를 줄 수 있다. 내가 당신에게 法輪(파룬)을 줄 때도 일반적으로 당신이 보지 못하게 한다. 마치 당신에게 무엇을 좀 주어야 비로소 배우고자 하는 그러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제자: 리(李)사부님, 당신께서는 기공에는 가짜가 있고 진짜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분간할 수 있습니까?

사부: 기공에는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는 것으로, 속인은 분간하기가 아주 어려운데, 왜냐하면 현재 사람이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이 변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수련하면 천천히 모두 분간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라. 그가 말한 것이 올바른 이치가 아니거나 혹은 겉으로는 남들에게 선을 행하라고 하지만 그는 뼛속 깊이 돈을 위해 사람을 기만한다. 불법수련은 아주 엄숙한 것으로서 절대로 돈과 한데 뒤섞을 수 없다. (박수) 세간에서 어떠한 것으로도 사람은 모두 돈을 벌 수 있지만 유독 불법만은 절대로 안 된다. 또 일부 사람들은 이름을 날리기 위한 목적이 있는데, 명(名)·이(利)는 속인이 영원토록 집착하는 것이다. 이런 가짜 기공사, 그는 사람을 사로(邪路)로 이끌 것이며 사람을 제도하기는커녕 사람을 망가뜨린다.

사실 그들의 죄는 작지 않다. 만약 근기가 아주 높고 법을 얻을 사람이 그에 의해 망가졌다면 생각해 보라. 얼마나 큰 죄인가. 돈과 재물을 위해 이렇게 나쁜 일을 하였으니, 이 죄는 “돈을 벌려고 왔다”는 것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기공고조가 나타났을 때, 그러한 기공사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대가 없이 기공을 보급했다. 바로 지금 나타난 이런 가짜들이 아주 심하게 난잡하다. 다만 또 아주 많은 기공사들은 시작할 때는 아주 좋았는데, 그들은 모두 副元神(푸왠선) 수련이었으며 그 자신의 사람 이쪽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탓으로 시간이 길어지면 명리심이 일어날 것이다. 나오지 않을 때는 사부가 상관하고 그의 副元神(푸왠선)도 그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일단 나와서 일을 할 때면 사람의 일면은 세간의 명리에 쉽게 유혹 당한다. 그렇다면 그가 이런 것들을 추구하기만 하면 그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는 공이 없으며 기공사 본인도 병을 얻을 수 있다.

제자: 사부님께 여쭙겠는데 만약 우리 수련생이 원만을 이루면 어디로 갑니까?

사부: 나에게는 法輪世界(파룬쓰제)가 있다. 천국세계는 무척 많은데, 나도 여러분에게 말해 줄 수 있다.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속인의 지식수준이 아주 높은 것 같으므로 나는 우주의 개념을 간단하게 여러분에게 말하겠다.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이러한 한 개 공간인데, 또한 불교도가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석가모니부처가 세상에 있을 때 우주의 근본 이치 중에서 허다한 진리를 증오(證悟)해 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그를 기록하지 않았고 경서 중에도 수록하지 않았으며 세인들에게 남겨두지 않았다. 석가가 세상에 있지 않은 지 500년 이후에 후세 사람들이 비로소 이러한 경서를 정리해 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500년 이후에 석가모니가 그 당시 무엇을 말했는지 사람들은 정확하게 알기가 아주 어렵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남겨진 경서인데 사실 석가모니부처의 원래 말과 이미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불법이치가 있었기에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게 했다. 이것 역시 과거에 사람으로 하여금 마땅히 알게끔 한 그런 것들이며, 이 공간의 중생도 마땅히 이만큼만 알아야 했다.

우주는 불교경서 중에서 펼쳐 보인 것처럼 그렇게 작지 않고 또한 과거의 수련하는 도인(道人)들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석가모니가 그 당시 말한 것은 나한법(羅漢法)이다. 이 나한법은 과위 중에서 가장 낮은 과위이다. 그가 물론 더 높은 것을 말한 적이 있지만 유전되어 내려온 것은 아주 적었다. 석가모니부처는 그 당시 또 한 마디 말을 했다. 여래부처는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숫자처럼 많으며, 매 한 여래부처가 한 개 천국을 주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한 이 범위는 사람에 대하여 말할 때 이미 아주 컸다. 사실 여러분 알다시피, 분자는 미시적인 입자로 조성된 것이고 사람은 분자와 별(星球) 사이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실 은하(銀河) 역시 우주 중의 한 개 입자이다. 무척 많은 은하계로 구성된 범위 역시 변두리가 있고 껍데기가 있는 것으로서 이것이 바로 인류가 말하는 우주이다. 사실 이것은 단지 작은 우주에 불과하다. 이 작은 우주 밖으로 벗어나면 무엇인가? 현대의 과학은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사람은 이런 개념조차도 없다. 우주는 대폭발로 형성된 것이 전혀 아니다.

이 소우주에서 아주 멀고 먼 곳에 또 소우주와 같은 천체가 있다. 신과 부처는 층차가 있으며 낮은 층차 중의 부처는 높은 층차를 볼 수 없다. 이는 더 높은 신과 부처의 눈에 여전히 아주 작고 아주 작은 범위이다. 사람이 탐색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사람은 광속(光速)을 알고 있지만 빛의 속도가 가장 빠른 것은 아니다. 빛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 역시 우주 중의 물질로 구성된 것이다. 아울러 공간 중의 일체는, 빛을 포함하여 역시 물질인 것으로서, 각종 물질은 모두 에너지가 있다. 여러분은 모두 분자 이 한 층의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공기, 나무, 물, 금속, 토석(土石) 일체가 모두 분자 이 층의 입자로 구성되었다. 이 층의 공간 속에서 사람이 분자에 방사성 에너지가 있음을 느끼지 못함은, 사람 자체 역시 분자로 구성되었기 때문인데, 사실 분자 역시 에너지가 있는 것이다. 인류 공간의 빛 역시 이 한 층의 입자를 표면으로 한 것이다. 나는 부동(不同)한 공간에는 모두 부동한 공간의 빛이 있고, 부동한 공간의 빛을 구성하는 물질도 부동한 것이라고 말한다. 시간과 공간이 부동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빛의 속도도 사실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럼 우리가 아래를 향하여 볼 때, 원자는 에너지가 있고 원자핵의 에너지는 더 크고, 중성자는 더 크며, 전자, 쿼크, 중성미자는 한 층이 한 층보다 방사성이 더 강하고 에너지가 더 크다. 입자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에너지와 방사성이 더 크며, 본원 물질에 이르러 그 힘의 크기는 사람으로서는 그야말로 형용할 방법이 없다. 물론 사람으로서는 영원히 본원물질을 인식할 수 없다.

내가 방금 전에 말한 이것은 바로 여러분에게 이 우주는 사람이 인식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천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주 중에는 얼마나 많은 크기가 같지 않은 우주가 있는가? 이는 무량한 숫자이다. 하지만 단지 한 개 작은 우주 체계 속에서 형용하여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대략 소우주 3천 개가 조금 더 큰 제2층 우주 하나를 구성하고, 또 이렇게 많은 제2층 우주가 제3층 우주를 구성한다. 이렇게 유추(類推)하면 사람으로 말할 때 무궁무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하늘이 얼마나 큰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인류는 최종의 천체가 얼마나 큰지 영원히 추측할 수 없으며 여래불도 추측해 낼 수 없다. 그것은 무척이나 커서 인류의 현존하는 지식으로 인식한 것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내가 방금 전에 한 말을 생각해 보라. 인류가 현재 장악한 요만한 과학지식이 다 무엇인가? ‘소아과(小兒科)’이다. 아울러 현재의 실증과학은 사람을 완전히 비뚤게 이끌었고 실증과학은 수많은 가상을 조성했다. 이 점을 여러분은 여전히 인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예를 하나 들겠다. 내가 방금 전에 말한 우주처럼, 지금의 실증과학은 대폭발로 형성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당신에게 가상을 만들어주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여기고 있다. 실증과학은 사람이 진화되어 왔다고 여긴다. 진화론은 사람이 원숭이에서 진화되어 왔다고 말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가 당신을 그릇된 길로 끌고 간 것이 아닌가? 사람의 물질에 대한 인식도 실제상 이런 것이 아니고, 기본 인식마저 잘못된 것이다. 아울러 인류는 가상 속에서 완전히 이런 인식에 의해 봉폐되었고 갈수록 봉폐되어 사람은 자신을 거의 한 점의 공간마저 없도록 봉폐했다. 또한 이 우주의 진상은 오히려 그것에 의해 완전히 뒤덮여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여러분 생각해 보라. 누가 만약 우주의 진상을 말한다면, 과학이란 것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 과학은 이미 이러한 환경을 형성했고 그것은 기필코 저촉(抵觸)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때문에 더 높은 것을 말하면 그것은 당신이 미신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이런 이치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하여 고정관념이 형성되었다. 만약 전인(前人)이 내린 이런 법칙·학설, 예를 들어 말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과학의 정상이라고 여긴다. 후인(後人)들은 모두 여기서 인식하며 누가 과감하게 좀 더 높이 생각하고 연구 중에서 조금 초월하면 곧 어떤 사람이 “당신이 그래 아인슈타인보다 대단한가.”라고 할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현대 실증과학의 물질로 형성된 환경이 사람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성취가 있는 과학자, 당신이 전인의 인식을 초월했을 때, 당신은 그의 범위 내에서 전인의 인식은 이치이고 맞지만 당신이 그것을 초월할 때 당신은 그것이 진리가 아니며 오히려 또 사람을 제한할 수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진정으로 성취가 있고 사상이 있는 사람은 바로 그것을 과감하게 돌파하고, 전인의 틀을 돌파해야만 당신은 진정으로 성취가 있는 것이다. (박수)

제자: 우리가 사부님의 경문을 시간 순서대로 편집해도 됩니까?

사부: 괜찮다. 이 경문이란 단어도 무슨 특수한 함의가 없다. 경서(經書), 경문(經文)의 본뜻을 말하자면 바로 사람이 늘 배우는 글이고 늘 보는 글로서, 늘 참조하기에 경(經)이라고 부른다.

제자: 가부좌 중에 갑자기 표범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그 표범은 무엇입니까?

사부: 당신이 연공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을 교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누구도 당신을 다치게 하지 못한다. (박수) 왜냐하면 내가 기왕 이 일을 했으므로, 나는 수련자를 위해서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여러분은 안심하라. 그렇게 많은 사람이 배우고 있어도 문제가 나타난 사람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다. 당신 자신은 반드시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해야 하며 당신 자신이 두려운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두려움도 제거해야 할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제자: 리(李)사부님, 『法輪功(파룬궁)』 책에서 제1장 공법은 세 번을 하라고 해서 우리는 모두 세 번을 합니다.  충관(沖灌)과 ‘법륜주천법(法輪周天法)’은 왜 세 번 하지 않습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공법은 대단히 자유롭다. 만약 당신이 시간이 있으면 많이 연마하고 만약 시간이 없으면 적게 연마해도 된다. 만약 오늘 시간이 없다면 다만 한 장의 공법만 연마해도 되며, 시간이 없는 정황에서, 심지어 당신이 동작 하나만 할 수 있으면 당신은 동작 하나를 하고, 당신이 시간이 많을 때 당신은 몇 번 더 연마하라. 그러나 매번 아홉 번째 이르렀을 때 멈추고 연이어서 하지 말라. 이렇게 하면 비교적 좋다. 나 이 법(法)의 수련은 다른 수련과 다른데, 다른 수련은 당신이 그것을 연마할 때에만 연공하고 있는 것이고, 연마하지 않을 때에는 그것이 멈추고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24시간 모두 사람을 연마하고 있으며, 이는 법이 사람을 연마하는 것이다. 당신이 연공해서는 뭘 하는가?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넣어준 그런 기제(機制)를 강화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나는 기(機)에 따라 움직인다(隨機而行)고 하는가. 바로 당신이 연공할 때 손 부위에 에너지가 클 것인데 수련자는 이 기(機)를 가지(加持)하고 있는 것으로, 기(機)가 가지(加持)될수록 기제(機制)의 힘이 커져서 기제가 자동적으로 당신을 이끌어 연공시킨다.

제자: 법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책만 보는 것인지, 아니면 베끼면서 읽는 것인지, 아니면 책을 베끼는 것인지요?

사부: 중국 대륙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외우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베끼고 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외우지 못하면 늘 보는데, 어느 종류의 방법이든 다 된다. 외운 사람은 그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는 단번에 법이 생각날 것이므로 그는 쉽사리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 책을 베끼는 것도 인식을 깊이 강화하는 것이다. 늘 보는 것도 인식을 깊이 하고 부단히 제고하기 위해서이다.

제자: 사부님, 우리는 우리가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맞지 않는 것 같으며,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일반적인 것 같다고 느낍니다. 때문에 저는 사부님께서 모두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한 것은 대륙의 정황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사부님, 안녕하십니까(師父您好).” 네 글자로 부르겠습니다. 우리 이전에 부처 공부를 하는 사람은 모두 사부님이 위에 있다고 느끼며, 선생님이 아닐 것입니다.

사부: 고맙다. 사실 뭐라고 불러도 다 된다. 선생님, 사부, 이름을 불러도 다 괜찮다.

나는 무엇 때문에 여러분에게 나를 마음대로 부르라고 했는가? 왜냐하면 현재의 사회는 그런 바르지 못한 것에 의해 너무나도 심하게 난잡해졌다. 자신을 부처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으며, 생불(活佛)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고, 대사(大師)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주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역시 그 명리(名利)를 위해서가 아닌가? 내가 말한다면 여러분은 마음대로 불러도 좋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슨 안 좋을 것이 없다. 나는 이런 것을 가지려고 하지 않으며 이런 것을 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수련생으로서 당신이 선생님에 대해서 어떤 경의가 있고, 선생님께서 정말로 우리를 제도하고 있고 우리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여 어떻게 부르려고 한다면, 그것은 당신들의 일이다. 나는 선생님이란 말을 들어도 괜찮다.

제자: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방금 전에 사부님께서 돈을 위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저로 하여금 이는 진짜 부처님(眞佛)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물론 사부님께서는 책 속에서 부처님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지만, 제가 느끼기에 원래 우리가 배운 불교에서도 이처럼 진정하게 가르쳐주는 명사(明師)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어디에 가서 돈을 받지도 않고 또한 당신을 이끌어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겠습니까? 또 당신을 대신하여 소업해 주는데, 당신들은 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지금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합니까. 바로 제가 느끼기에 우리 사부님은 도사(導師)로서 진정하게 우리의 수행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므로, 저는 과거에 배운 것을 관계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건대 여기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두 부처 공부를 하고 있고, 거사도 아주 많으며, 다른 것을 배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건대 오늘 이후로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명사(明師)를 우리의 진정한 수행을 지도하는 사부님으로 삼아야 하며, 더는 다른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물론 제가 감히 다른 사람을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저는 오늘 사부님께서 오셨으니 제가 이런 말들을 마치 몇 년 이래 오늘에 와서 고백할 수 있기를 희망해 온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생 고층차로 수련하고 싶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밀종(密宗)을 배운 적이 있으며 또 일부 기공을 배운 적이 있고 대사(大師)까지 모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신 후에도 저는 제가 아직도 저인 것을 느꼈고, 저는 조금도 무슨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부님의 법을 들은 후, ‘사부님의 법은 불법(佛法)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첫 날에 비디오설법을 들었는데, 사부님께서 오로지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만 하면 하고 말씀하시자, 저는 바로 텔레비전에 대고 저는 진정하게 수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부님께서 미국에 오시기를 희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사부님이 오시기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부님께서는 다시 명시해 주시고, 다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바라며,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부처수련을 하는 데에서 마땅히 어느 방면을 주의해야 하는지, 이것은 저의 간청입니다. (박수)

부처 공부를 하는 거사가 아주 많지만 그러한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데 우리도 그를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를 저는 직접 사부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은, 그는 원래 부처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역시 경을 읽고 부처를 몇 년 간 모셨습니다. 그는 그가 (이전의 불경을) 염불하면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파룬궁을 읽으면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오늘 사부님께서 여기에 계시고, 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사부: 좋다, 사실 말법시기에 진정한 부처는 모두 세간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기를 얻은 많은 동물들이 불상에 올라가 사람에게 모시게 하고 사람에게 공양하게 하며 사람에게 작은 선심을 좀 쓰는데, 일단 사람이 진정하게 자신을 수련하려고 하면 그런 것들이 교란해 온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일부 사람들은 무슨 공을 연마하면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사실 바로 그 족제비가 내보낸 냄새이다. 두 공간의 냄새가 다르므로 이쪽에서는 향기롭지만 저쪽에서는 구린내가 난다. 인간 세상이 반대로 된 이치이기 때문에 일체가 모두 반대로 되는 것이다. 사람이 맡은 것은 향기로운 냄새지만, 실제상 부처는 구린내라고 여긴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대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교란하여 그런 냄새를 내보낸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 샌프란시스코 수련생들은 샌프란시스코만 보지 말고 전 미국을 향해야 한다. 어떻게 수련하는가에 대해서 말하자면, 여전히 이런 형식을 유지해야 한다. 내가 오늘 이렇게 하는 것 역시 후세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도록 남겨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절에 가서 했을 것이고 나는 출가했을 것이다. 출가하면 안 된다. 종교는 이미 더욱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할 수 없으므로 내가 이런 형식을 취하여 사람에게 수련하게 했으니 당신들도 이렇게 유지해야 한다. 나 이 문에 들어서면 규칙과 계율이 다 나온다는 것이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사람이 배우려고 하면 인식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좋다는 것을 알면 곧 책을 볼 것이다. 그가 인식을 제고하면 그 자신이 자동적이고도 자각적으로 더욱 잘할 것이다. 이 속에서 종교의 거사는 그래도 비교적 해결하기가 수월하다. 화상(和尙)이야말로 가장 불쌍하다. 종교 중의 이런 형식이 그들을 완전히 가로막았다. 그들은 법을 접촉할 수 없으며 또한 접촉할 용기도 없다.

제자: 사부님,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오늘 사부님께서 인연이 있으므로 여기에 오셔서 모두와 만났습니다. 사부님께서 모두와 인연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사부님께서는 이 자리에 있는 수련생들의 정도는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들은 모두 공성원만을 이룰 수 있습니까?

사부: 여기에 앉은 한 사람 한 사람, 어린이까지 포함해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이 오직 수련할 수만 있으면, 내가 당신에게 배치한 이 길은 최후에 모두 원만이다. (박수) 여러분들은 너무 일찍 기뻐하지 말라. 수련은 사부가 문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지만 그 수련은 여전히 개인에게 달렸다. 내가 당신에게 배치해 주고 내가 당신을 보호하고 가지(加持)해 주며, 매 한 층차마다 모두 당신에게 공의 승화를 연화해 주지만, 마음을 수련할 때에는 자신에 의거해야 한다. 이 마음이 번거로움에 부딪혔을 때, 관(關)을 넘길 때, 당신이 참을 수 있는가 없는가, 넘어갈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것은 완전히 자신에게 달렸다. 물론 당신이 정말로 넘어가지 못할 때에는 또 당신을 점화(點化)해 줄 수 있는데, 그 때에 이르러 당신의 사상이 극단으로 뚫고 들어가서 깨닫지 못하고 아무리 점화해 주어도 깨닫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그러므로 하기가 아주 어렵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당신들이 관(關)을 넘기지 못할 때,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로 나의 법신이 귀에 거슬리는 말로 당신을 자극하고 있으며 당신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관을 넘긴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데 관을 넘긴 후에 뒤돌아보면 그 관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모른다. 자신이 정말로 지나왔을 때, 그 심성도 제고되어 올라오며 업도 제거될 것인데, 틀림없이 이러하다. 만약 이 번거로움을 다른 사람이 조성했다면 다른 사람은 당신에게 德(더)를 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고생을 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오직 사람만이 고생을 하면 나쁜 일이고 고생을 하면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긴다. 수련인으로서, 고생을 하면 소업을 할 뿐만 아니라 또 층차도 제고할 수 있으며, 원만을 이룰 수 있다. 그럼 당신이 말해 보라. 나는 사람 속에서 행복하려고 하고, 나는 고생을 조금도 하고 싶지 않으며 편안하고도 편안하게 연공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당신은 업을 제거할 수도 없고, 心性(씬씽)도 제고할 수 없으며, 원만을 이룰 수도 없는데, 바로 이런 이치이다.

이렇게 말하고 법리도 명백하게 말했지만, 고생을 겪을 때는 여전히 참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과거에 나는 여러분에게 진리를 하나 알려주었다. 부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큰 복이 있는가? 정말로 복(福)과 수(壽)가 모두 구비되어 있다. 바로 그가 얼마나 큰 고생을 했으면 그만큼 큰 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당신들에게 그처럼 큰 고생을 하라고 한다면, 오늘날 당신들은 누구도 원만을 이룰 수 없다. 실질상 오직 당신들이 정말로 수련해 나아갈 수 있다면 더욱 많은 업력을 사부가 당신들을 도와 없애줄 것이다. 여전히 내가 방금 전에 말한 그 한 마디 말이다. 이 법을 얻기 위해서 아마 당신들은 몇 생 몇 세에 모두 고생을 겪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확실히 법을 얻으러 온 것으로, 일찍이 고생을 겪었다. 당신들은 지금 어디가 부족한가? 바로 당신들의 그 속인의 마음을 제거하는 데 부족하다. 내가 말하는 고생은 역시 주로 마음을 제거하는 고생을 가리키는 것이다.

 

HOME 다음페이지 다음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