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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대법제자인가

 

2011년 뉴욕법회설법

 

李洪志
2011년 8월 29일

 

(사부님께서 입장하시자 전체 기립하여 열렬한 박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수고했다. (뭇 제자: 사부님께서 수고하셨습니다.) 사부가 수고스러운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수고했다. (뭇사람 웃음) 여러분 자리에 앉으라.

대법제자라, 틀림없이 고생스럽다. 이는 역사적인 책임이 당신들에게 이렇게 큰 중책을 부여했으며, 역사적인 사명이 당신들에게 관건적인 시각에 반드시 이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우주가 성(成)·주(住)·괴(壞)·멸(滅)하는 과정 중에서 대법제자의 출현이 바로 가장 마지막 단계이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생명이든, 물질이든 모두 최후 가장 나쁜 때에 이른 것이다. 표현 역시 가장 복잡하고 선악(善惡)과 정사(正邪)의 분별이 가장 어려운 때이다. 이런 때에 대법제자가 역사가 부여한 사명을 감당하기란 정말로 너무나도 어렵다. 대법제자가 대단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대법제자가 이런 시기에 중생을 구도하고 조사정법 하며 자신이 완성해야 할 사명을 완성하기 때문인데,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대단하다. 역사상 그 어떤 시기와도 비교할 수 없다.

내가 이전에 말한 적이 있지만 석가모니, 예수, 노자 등등, 그리고 더 이전의 일부 선철, 성인, 위대한 신이 세상에 내려왔는데, 그들은 단지 인류역사문화의 기반을 다졌을 뿐이다. 그들이 말하고 구(救)하고 해낸 것은 다만 사람에게 인류문화가 반드시 구비해야 할 것을 남겨 놓았을 뿐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데리고 간 것은 다만 그들이 파견한, 그들을 도와 이 문화를 남겨놓은 그러한 생명, 게다가 세간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의 副元神(푸왠선)뿐이었다. 역사의 마지막 결정적인 시기에 진정하게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대법제자이다. 대법제자의 기원(來源)에서부터 줄곧 역사상에서 위덕을 세우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감당한 것을 보면 역사상 어떠한 성인이 담당한 것보다도 더 크다. 왜냐하면 이 최후의 시각에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하게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시작에서 우주의 마지막 인류의 60여 년 전까지 모두 끊임없이 정법에 필수적인 기반을 닦고 경험을 쌓고 최후의 이 역사시기에 참여할 생명의 사상과정과 생명의 행위를 육성하였는데, 이것이 인류역사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이든, 이와 관련이 있는 생명이든 모두 이 일을 위해 윤회 중에서 각자가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것을 시험해 보고 쌓고 다져왔다. 우주 중에서 헤아릴 수 없이 무량한 더욱 많은 생명은 정법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모두 구도되어야 할 대상이며, 참여자가 아니다. 내가 방금 말한 것은 정법과 관련이 있는 참여자를 말한 것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내가 이전에 말한 바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정법에 관련이 있는 모든 생명을 포함하여 모두 간단하지 않다. 모두 정법을 위해 왔고 정법을 위해 이루어졌으며 정법을 위해 육성된 것으로 모든 것이 우연한 것이 없다는 것을 장래에 당신들은 알게 될 것이다. 미혹 속의 인류사회에서, 사람들은 역사과정 중에서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는 사회형식을 거치면서 역사가 자연적인 발전과정이라고 생각해 왔다. 사실은 이런 것이 아니며, 매 시기는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내가 이전에 말한 적이 있지만 사람의 사상은, 처음에 신이 만든 사람은 자연과 사회에 대응할 능력이 없었으며 생활능력 역시 아주 약했다. 갓 만들어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천둥이 치면 겁이 나서 산굴 속으로 숨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피할 줄 모르며, 어찌된 영문인지도 몰랐다. 역사의 과정 중에서 사람은 점차적으로 자연환경에 적응하게 되었고, 그리고 신도 끊임없이 사람에게 다종다양한 문화를 주었으며, 동시에 신 역시 이런 문화가 사람에게 어떤 상태를 가져올지 끊임없이 탐색하고 실천하는 중에서 최후에 그것을 확정했다. 이것은 극히 긴 세월을 거쳐서 확정한 다음 마지막 인류사상행위를 다지는 데 적합한 문화, 인류문화의 정화를 택하여, 마지막 인류의 5천 년에 이르러 그것을 내놓아 사람이 연출하게 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중국의 5천년 문명으로서, 오래고 먼 역사의 과정에서 다지고 총괄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에게 어떠한 사유방식을 사용하고 어떠한 사유구조를 형성하며 일에 봉착하면 어떻게 문제를 생각하고 어떤 사상방법으로 문제를 생각할 것인가를 가르친 것이다.

사람의 사상은 직접 사람의 행위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알다시피 역사상에 위(魏), 촉(蜀), 오(吳) 삼국 시대가 있었다. 삼국의 역사는 어떤 문화특징을 다졌는가? 바로 의(義)이다. 그 기간의 역사를 통해 사람은 무엇이 의(義)인지 알게 되었고, 의(義)의 표현과 내포를 알게 되었다. 남송 시대의 악비는 무엇을 다졌는가? 여러분 알다시피 바로 충(忠)이다. 충이란 무엇이고 충의 개념은 무엇이며 그 표현형식은 어떠하고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역사과정을 거쳐 사람에게 사람이 되는 도리를 가르쳤다. 인류의 이 5천년의 전반 과정을 거쳐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을 다져 놓아 최후에 이르러 인류는 완벽하고 정통적인 사상과정에서 신이 만족할 만한 이러한 사람이 되었으며, 역사의 최후 시각에 마지막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인가? 여러분 알다시피, 이러한 사람은 반신(半神) 문화로 이루어졌고 신이 직접 창조한 것이기에 사람 자체와 인류문화는 바른(正) 요소가 부면(負面)적인 요소보다 많다. 사람에게 정반(正反) 양면 우주의 요소가 있고 삼계 내의 일체 물질에도 모두 선과 악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하는데, 신이 삼계 내의 물질로 사람을 만들었기에 자연히 선과 악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게 되었다. 사람이 이성적이지 못하거나 화를 낼 때면 거의 마(魔)적인 표현을 한다. 사람이 아주 선량하고 이성적이며 주변의 일체와 발생하는 일을 우호적으로 대할 때는 선한 그 일면의 요소가 나타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불성이다. 사람에게는 이런 두 가지 요소가 다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방금 내가 말했지만 사람을 육성하는 과정이 바로 긍정적인 과정으로서, 사람마다 모두 선량하고 이성적인 면이 아주 강하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정법 중에서, 내가 대법을 전할 때 대법이 전해지기만 하면 이런 사람들은 백이면 백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대법을 얻으려 할 것이다. 특히 중국인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대법을 배우고 대법을 수련하려 할 것이다. 내가 많이 말할 필요가 없이 아주 빨리 전면적으로 전개되어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주는 필경 나쁘게 되었고 이번 생명은 마땅히 끝나야 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세상의 이번 생명은 목적이 있어서 만든 것이다. 이들 참여자의 배후에는 모두 방대한 생명이 있다. 매 생명, 매 사람은 모두 간단하지 않으며 배후에는 모두 그가 대표하는 우주의 방대한 생명들이 있다. 한 사람이 구도되면 그가 대표하는 그의 배후 생명도 모두 구도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사람, 오늘날의 사람 절대다수는 천상의 왕이 세상에 내려와 사람으로 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생명이 모두 와서 대법을 배운다면 그가 대표하는 중생을 포함하여 모두 구도 받게 된다. 그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 무수하고 거대한 왕을 포함하여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최종적인 창시자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물건이 나쁘게 되면 해체하는 것으로 그에게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나쁜 것을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로 쉽다. 그리고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주 중에는 한 가지 이치가 있는데, 어떤 이치인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선악윤보(善惡輪報)로서 당신이 어떤 나쁜 일을 하든지 당신이 모두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일에는 착한 연(緣)을 맺게 되고 악한 일에는 악한 연(緣)을 맺는데 목적은 매듭짓기 위해서다. 그런데 역사의 기나긴 과정에서 생명으로 말하자면 생명과 생명 사이에 서로의 행위 중에서 업을 지을 뿐만 아니라 많은 생명은 자신도 모르게 우주의 역사 중에서 조류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으며 거의 모든 생명이 모두 이러한 작용을 일으켰다. 나쁘게 된 데는 모두 책임이 있으며 갈수록 바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회천지력(回天之力)이 없으며 모두 이 과정에서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성주괴멸의 법칙 중에서 훼멸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이는 우주의 법칙으로서 자비와 관련이 없다. 이는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내가 물질은 불멸이며 생명은 윤회한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 사람 여기뿐만 아니라 신의 거기도 마찬가지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미혹 중에서 죽음에 대해서 알 수가 없고 아주 두렵게 느낀다. 물론 대법제자라면 모두 알고 있다. 사람의 분자세포는 분자로 구성되었고, 분자는 원자로 구성되었으며, 원자는 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되었고 입자가 미시적일수록 에너지는 더욱 강하다. 여러분 알다시피, 사람 그 신체를 흙 속에 묻으면, 표면 세포는, 분자로 조성된 이 세포는 썩을 수 있으나, 그 분자는 썩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 원자는 더욱 썩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면 당신의 그 부분은 어디로 갔는가? 사람의 사상은 모두 당신 자신의 표면에서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일부 사람이 갑작스럽게 한 말은 어디에서 왔는가? 매 한 마디 말이 모두 당신이 심사숙고하여 한 말은 아니며, 당신의 부동(不同)한 표면입자에서부터 아주 미시적으로 구성된 당신에 이르기까지 모두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당신 전체 생명은 가장 미시적인 입자에서 표면입자에 이르기까지 동시에 당신을 구성하였다. 그러므로 당신의 생명은 아주 간단한 표면세포 이 한 층뿐만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으로 말하자면 이 표면은 단지 한 층의 표피를 제거했을 뿐이고 전생할 때면 또 새로운 표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당신이 땅속에 묻힌 다음 썩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흙은 원자를 해체할 수 없으며 분자 그것도 해체하지 못한다. 원자의 해체는 바로 대폭발이며, 인체 범위의 핵폭발은 한 도시를 파괴해버릴 수 있다. 이렇지 않는가? 그러면 당신은 어디로 갔는가? 이에 대해 대법제자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다시 말하자면 이 미혹의 세계에서 사람 그는 자신이 죽으면 어찌될지를 모른다. 하지만 신은 아주 똑똑히 알고 있으며 더욱 높은 신은 더욱 분명히 알고 있는데, 그들은 이것이 모두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생명노정에서 최후의 단계에 이르면 새로운 것을 재생하는데, 그들은 이 과정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전반 우주 그것은 바로 이렇게 반복하는 과정이다.

나의 말은 대우주의 역사과정이 끝나지 않았으며 그 내부 무수한 층차의 생명과정이 마치 신진대사처럼 끊임없는 대사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가장 큰 우주—내가 말한 총체적인 이것이 끝장나고 해체되어 성주괴멸의 과정에서 끝장난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내부 각 층차의 생명은 윤회전생이 없고 역사가 없으며 더는 생명이 없고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이는 신으로서는, 그가 아무리 큰 신이라도 극히 무서운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지극히 무서운 것으로 깡그리 소멸되는 것이다! 거대한 우주의 역사과정 중에 우주 중에는 얼마나 많은 휘황함이 있었던가! 인류의 이 작디작은 성구(星球)도 이러한데, 그 우주 중의 헤아릴 수 없는 성구는 크고 작은 입자가 모두 다르며 그 위에는 무량무계한 중생이 있는데 신도 얼마나 되는 생명과 얼마나 되는 휘황함을 창조해 냈는지를 헤아려낼 수 없다. 매 사람이 모두 역사책과 같으며 사람마다 모두 생동하는 장편역사 이야기와 같은 것으로 생생세세에 겪은 일들을 보면 역시 아주 재미가 있다. 이처럼 거대한 우주와 무량무계한 중생 그리고 일체를 모두 훼멸시킨다는 그것은 아주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이러한 우주법칙을 말하자는 게 아니라, 자비는 바로 바른 신의 특성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좋은 일을 좀 하겠다고 생각해서 자비인 것이 아니다. 어떤 갑작스러운 충동에 의해 무엇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그것은 자비가 아니며 그것은 당신 개인의 기호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이는 집착이다. 진정한 자비는 그 어떤 사심도 그 속에 없으며 누구를 대하든, 중생을 대하든 모두 정념으로 문제를 보는데 모두 자애(慈愛)한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신, 우주 중에서 대단히 높고 대단히 높은 부동한 층차의 많은 왕이 모두 우주의 최후를 알고 우주 중의 이러한 중생을 구도하려 했다. 그럼 어떻게 구할 것인가? 정법의 갱신은 다만 우주의 낮은 층에서 시작하여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바로잡을 수 있을 뿐이므로, 우주의 많고도 많은 대표성이 있는 생명을 사람으로 전생시켜야 했다. 그러나 대표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생명은 일반 생명이 아니며, 필히 모두 부동한 우주의 왕이 그의 세계, 우주, 천체를 대표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대표한 우주는 체계가 있는 것이다. 천체의 낮은 데에서 높은 데 이르기까지 우주는 순환하며 그 자신의 체계는 더욱 높은 층차의 체계에 대응하고 있는데 또 그보다 큰 왕이 위에 있다. 그럼 더욱 높은 체계는 사실 위에 또 그보다 큰 체계와 왕이 있는데, 아무리 높아도 그들은 동일한 체계에 속한다. 그러나 가장 높은 그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하는가? 어느 한 층의, 그들의 이 거대한 체계의 무량한 중생들을 대표할 수 있는 어느 한 층의 비교적 적절한 대표를 파견하여 사람으로 전생시킨다.

내가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하면 여러분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오, 이 세인들을 보면 모두 별로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형형색색이고 심지어 지저분하고, 어떤 사람은 시골에서 아주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고, 어떤 도시 사람은 아주 속되고, 또 많은 젊은이들이 잘난 체한다. 인류사회는 바로 이런 사회이다. 모두 큰 회사에 근무하거나 사장이 될 수는 없다. 그럼 다른 사람은 다른 것을 해야 하며, 예술을 하고 스타가 되는 것도 한정되어 있는데 무슨 일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계층이란 인류사회가 형성한 사회형식이며 그것은 생명의 계층이 아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모두 간단하지 않다. 사람의 겉모양만 보지 말라. 어떤 때 당신이 그 쓰레기를 줍는 사람을 보라. 이전으로 추산해 보면 당신은 그가 전에 우주 중에서 거대한 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혹 중에, 윤회전생 중에, 그는 완전히 방향을 잃어버리고 미혹되어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심지어 많은 생명이 윤회 중에서 자신의 처지에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며, 자신이 여기에 온 사명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른다.

어찌 내가 방금 예를 든 데에 그치겠는가. 지금의 세인은 부동한 계층의 대다수를 포함해서 모두 자신이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 모른 채 자신의 사업에 분투하고 있다. 특히 조금 성취가 있는 사람은 더욱 자신을 잊고 득의양양해한다. 자신에게 무슨 능력이 좀 있다고 여기면 거만해지고 자신의 생활이 그리 좋지 못하다하여 세상에 불평이다. 사실 이것은 당신들 생명이 갖고자 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을 중히 여기지 말고 진정한 자신을 되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역사의 과정 중에서, 이 시기의 표현은 인연관계가 있는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당신의 현재 표현 역시 당신이 전 몇 세에 그릇된 일을 했거나 혹은 좋은 일을 한 것의 인과보응이다. 방금 내가 말했지만, 우주는 바로 이 이치이다. 당신이 어느 사회계층에 있고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 모두 이러한데, 선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한 응징이 있다. 이 이치는 삼계 내의 어느 층차에나 모두 존재한다. 그러므로 최후에 이르러, 이때에 사람의 사상, 특히 우주가 성주괴멸의 최후 단계로 왔을 때면 인류사회는 더욱 복잡하게 변한다. 그러므로 이때 대법제자가 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세인을 일깨우고 그들을 구도할 것이 필요하다.

더욱 어려운 것은 현재 중국 그것은 가장 사악한 중공사당(中共邪黨) 정권이다. 이 정권이 왜 인류사회에 나타날 수 있으며 게다가 기형(畸形)적인가? 우주 상하는 모두 그것을 반대하고, 누구나 모두 그것을 괴물로 여기고 있으며, 사당의 사람 또한 정상적인 이성(理性)이 아니다. 왜 이럴 수 있는가? 무엇이든 모두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실 우주의 구(舊) 세력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내가 방금 인류문화는 신이 사람을 만드는 과정 중에서 배치한 것이라고 했는데 정통문화가 일단 형성된 이후 사람의 사상은 모두 정념이고, 사람은 마음이 착하고, 사람이 일을 할 때 모두 다른 사람을 고려하였다. 이러한 사람은 역사의 최후 단계에 이르렀을 때면 모두 긍정적인 선택이 있을 것이며, 여러 사람이 모두 와서 법을 얻을 것이다. 우주 중의 구(舊) 세력은 사람이 법을 얻고 중생이 구도 받는 것이 너무도 수월하다고 여긴다. 삼계 내에는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이치가 있는데, 일부 신(神) 그것은 마음속으로 내키지 않아 극단적으로 이러한 것을 이용하였다. 그것들은, 우주마저 망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생명들을 어찌 이렇게 쉽게 구도 받게 한단 말인가? 어찌 이처럼 많은 생명들이 모두 장래로 진입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아주 많은 요소들이 중생을 구도 받지 못하게 한다. 사실 구세력의 이런 생각 자체 역시 구 우주(舊宇宙)의 법리인 괴멸 중의 표현이다. 구세력은 생명에게 최후 과정에 선택을 하게 하는데 이 선택은 극히 어려운 것이다. 이는 무엇이든 모두 종결되어야만 하고, 세상이 난잡해졌기 때문인데, 사람이 미래로 가자면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 이것은 극히 어렵다. 이 문턱을 아주 높게 세웠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신과 부처는 사람에게 자비롭지 않은가? 인류가 이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을 사람의 사상으로는 생각해 낼 수 없으며, 그러한 구세력의 신은 이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구도 받고 당신이 구원을 받으려면, 당신은 오늘날 현실사회의 각종 유혹 중에서 올바로 선택해야만 지나올 수 있으며, 지나오지 못하면 당신은 구도 받을 수 없다. 여러분 알다시피, 나는 늘 그물의 한쪽을 열어놓는다는 이 한마디 말을 한다. 사람 스스로 지나오게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부는 일찍부터 구세력이 이렇게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사부는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배치하였다. 구세력은 중생에게 난을 설치하기 위해 세간에서 이 사당정권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일부 난잡한 학설과 현대의식 같은 것들을 부각시켜 이 사회가 극히 복잡해지고 정부(正負) 양 방면의 요소가 다 있게 했으며 동시에 일부 변이된 요소와 외계생물기술을 더하여 사람의 정통사상을 난잡하게 만들었다. 서방세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악한 것과 사악한 것을 만들어 놓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중국에선 그렇지 않다. 그것은 바른 것을 나쁜 것이라 하고, 나쁜 것을 좋은 것이라 한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능히 구도 받을 수 있는지 선택하라고 한다. 왜 중국 그곳은 이처럼 어려운가? 내가 이전에 여러분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층차가 더욱 높은 그러한 왕, 인류역사 중 각개 민족의 왕, 우주 중 층차가 높은 생명들이 전부 중국으로 전생되었으며, 그곳이 중심점(中心點)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그곳 사람에게 선택의 어려움을 높게 하였다. 왜냐하면 구세력은 일단 그들이 구도 받게 되면 그가 대표하는 민족, 심지어 어떤 것은 그가 대표하는 전반 거대한 우주의 생명 군체들이 모두 구도 받을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처럼 큰일이어서 구세력이 그들에게 설치한 난이 가장 크다. 보건대 중국인이 근대에 이르러 말이 아닐 정도로 망가졌는데, 심지어 외형적으로 왜소해지고, 형상도 모두 아주 못생기게 변했다. 역사적으로 사람은 모두 얼굴에 정기가 있고 전신에 기개가 넘치며 형상도 비교적 보기 좋았다. 그 곳에서는 근대에 난도를 크게 하였고 그런 좋지 못한 것을 사람에게 주입하였다. 사람의 사상은 무엇을 담으면 모두 사람의 겉모양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이는 필연적이다. 예컨대 자루에 당신이 네모난 것을 넣으면 외형에서도 보아낼 수 있으며, 당신이 둥근 것을 넣으면 외형에서도 역시 보아낼 수 있다. 즉 말해서 당신이 어떤 사상을 담으면 겉모양에서도 모두 보아낼 수 있다. 인류사회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내 앞에 있으면, 단지 나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은 척 보기만 해도 그가 어느 방면의 사상과 행위가 비교적 뚜렷하고, 그가 무엇을 즐기는가를 알 수 있는데, 모두 얼굴에 나타나며 심지어 신체의 형태에서도 모두 드러나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사람이 구도 되게 하려면 어떻게 구도해야 하는가? 좋고 나쁜 것마저 분간하기 어려우며 심지어 많은 매체들이 모두 사회의 조류(潮流)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류는 또한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그것은 단지 여러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하고 있을 뿐이고, 매체는 앞으로 밀고 가는 작용을 하고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에게 어떻게 좋고 나쁨을 분별하게 하겠는가? 분별할 방법이 없다. 진정하게 선념을 갖고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인류로 말하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럼 끝나는 것이 아닌가? 역사상 그처럼 오랜 배치도 전부 끝나는 것이 아닌가? 삼계는 이것을 위해 만든 것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방금 말했지만 그물의 한쪽을 열어놓는다면 누구도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어떻게 그물의 한쪽을 열어놓는가? 구세력의 교란을 타파하려면, 그들에게 기억을 회복하게 하고, 그들을 점화시켜 정신 차리게 하며, 그들을 각성시키고, 그들에게 역사와 오늘날 세계의 진상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야 했다. 사실 인류사회가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어렵다. 바른 것이 움직이기만 하면 낡은 것, 반대로 되는 것, 나쁜 것들의 일부 부정(負)적인 요소들을 건드리게 되며, 부정적인 것이 움직이기만 하면 물론 바른 요소들을 건드리게 된다. 선악은 인류에서 균형이 이루어져 있다. 사실 누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자 해도 모두 어렵다. 인간 세상에 신선이 아직 많다. 매 한 신선의 능력으로도 모두 인류의 일을 할 수 있다. 한 신선이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 그는 왜 하지 않는가? 그는 알고 있으며 아주 똑똑하게 보았는데, 일체는 모두 배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한 가지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 해도 모두 다른 한 가지 일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다른 일은 간접적으로 마치 나뭇가지처럼 아주 많은 일에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그럼 그는 더욱 높은 신의 배치에 죄를 범하는 것이고 심지어 인류역사의 배치마저도 다 개변하게 되므로, 누구도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대법제자는 바로 이때에 나타났다. 그러나 당신이 사람을 구하고 진상을 알리려고 하지만, 현대의 사람은 역사의 윤회 중에서 모두 대단히 큰 업의 빚(業債)을 졌기에 당신이 그 사람을 구하려고 하면, 그 사람 배후의 많은 생명들이 그가 구도되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명들이 모두 그 사람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명들이 이전에 혹은 어느 세에 그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고, 그에게 살해당했거나, 그에게 박해 받았거나, 아주 잔혹하게 당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회 중에서, 사람은 무지 중에서, 미혹 중에서, 욕망 중에서 뭔가를 했는데, 현재는 모르고 있다. 사실 오랜 역사 중에서 사람마다 모두 온몸이 업채(業債)인데, 모두 미혹 중에 있지 않는가. 그러나 정말로 일단 그를 구도하려 하고 정말로 그의 생명을 구원하려 하면, 그런 피해를 본적이 있는 생명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이리하여 세인을 구도할 때나 세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 교란이 나타나고 많은 저애가 나타난다. 각양각색의 장애가 가로막고 있는데 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일이 커지면 사회 환경을 이루게 된다.

중공사당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이 몇 해 동안은 단지 중공사당의 요소뿐만이 아니며, 실은 상대적으로 말해 그것은 아주 가련할 만큼 작다. 우주 중의 모든 나쁜 요소들을 전부 쳐서 떨어뜨렸는데 각개 공간에 무수히 많아 그야말로 부지기수이다. 많은 신들이 보고는 아연실색한다. 이걸 어찌하는가? 누가 감히 건드리겠는가? 한 사람을 구함은 거대한 우주생명 범위에 관련되며 미치는 영향이 이처럼 큰데, 1억 명은 얼마나 클 것인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가 그 해 사람을 구하면서 사람을 구한다 사람을 구한다고 했는데 왜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예수가 구원한 것은 그래도 자신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람은 전생하는 과정에서 다시 업을 지었으며 그 역시 그것들을 해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예수가 직면한 것은 우주의 그런 거대하고 무량무계한 생명과 고층 생명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무수하게 거대한 더욱 고층의 생명들이 있었고, 일반 신으로서는 그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없었으며, 아울러 무량무계 하게 많았다. 당신이 말해 보라. 그가 당신에게 누구의 빚을 갚으라고 하면서 당신을 놔주지 않는데, 당신이 어떻게 해탈하겠는가? 당신은 영원히 해탈하지 못한다. 최후에 예수는 여호와에게 빌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면 안 됩니까? 여호와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피, 사람의 생명, 고통스러운 감당 속에서 그들에게 갚아주어야만 비로소 해탈할 수 있다. 이렇게 어렵다. 대법제자가 우주 중에서 중생을 구도하려면 최후 이 복잡한 사회환경 중에서 중생을 구도해야 하는데 여러분 생각해 보라. 얼마나 어렵겠는가? 만약 당신들이 보았다면, 정말로 보았다면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오직 대법에 따르고, 사부가 당신들에게 알려준 것에 따른다면, 당신들은 당신들이 갈 그 길이 있으며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 길은 아주 좁다. 좁기에 당신은 아주 바르게 걸어야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당신이 아주 바르게 가야만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여러 해 동안 사부는 당신들이 이 한 갈래 길에서 걷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나는 이전에 늘 일부 단문을 썼는데 당신들은 경문이라고 했다.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여러분을 수정(修正)해 주고 여러분이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었다. 나중에 나는 여러분이 점점 성숙해졌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더는 자주 쓸 수가 없었다. 내가 많이 쓰면 구세력은 반발하였다. 사부는 두렵지 않다. 단지 그것들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게끔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것들은 ‘말을 많이 하면 바로 당신이 하는 것이고, 당신이 이끌고 간 것이기에 이러면 안 된다. 반드시 그들 스스로 가야 하며 반드시 그들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한다.’고 여겼다. 구세력은 이미 나쁜 짓을 이 정도까지 하였다. 나 또한 대법제자들이 이 기회에 당신들 자신을 성취하게 하려 했다. 거대한 난 속에서 걸어 나오는 일은 아주 위대한 것이며, 이 일을 잘하는 것은 아주 대단한 것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다 하자마자 곧 끝이라는 이것은 대법제자로서는 공정하지 않다. 당신들이 구도한 생명의 배후에 그렇게 많은 생명 군이 있는데, 그럼 대법제자의 장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더욱 높고 더욱 큰 생명, 더욱 큰 신, 더욱 위대한 신으로 성취해야 한다. 그렇게 높게 성취한다는 것을 구세력이 아는데 모두 사부가 이끌어 한다면 그들 자신이 성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스스로 이 길을 걸어야 한다고 한다.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마난(魔難) 중에서 바르게 걷기는 더욱 어렵다. 특히 중국 대륙의 대법제자는, 마난의 박해 중에서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아주 관건적이다. 당신이 잘하고 못하고, 당신이 박해를 받고 안 받고, 당신이 바르게 하고 못하고, 박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두 당신 자신이 걷는 길, 당신의 사상이 생각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대법제자로서는 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대법제자 역시 이 말세의 가장 복잡한 환경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하고 수련해 나와야 하며, 또한 다른 사람을 구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만이 그처럼 큰 생명으로 성취될 수 있으며 그처럼 높은 층차로 성취될 수 있다. 구세력이 교란하기 때문에 이 일이 위대한 것이며, 또한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많은 속인들이 대법제자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이는 한두 마디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에게 우주가 성주괴멸의 최후 단계에 이르렀다고 알려주면 그는 더욱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 바로 바른 일면으로, 착한 일면으로 사람을 깨워야 한다.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도 우리들이 기어코 그에게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진상을 안 후, 당신 앞에 놓인 두 갈래 길에서 당신이 어느 갈래 길을 선택하는지를 봐야 한다. 어떤 사람이 사상이 이미 아주 나쁘게 변하여 선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으면 그는 자연히 좋지 못한, 악한, 현대적인, 변이된 것을 선택하며, 구 우주를 따라갈 것이다. 각성할 수 있고, 자신이 어떻게 이후의 인생길을 가야 하는지 알며, 사람이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 수 있는 사람, 오직 이런 사람만이 진정하게 구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정법 이 일이 종결된 뒤, 또 법정인간시기가 있는데 장래는 어떠한가? 나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한다.” 오, 도덕이 승화되었구나, 이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는 다만 이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도덕이 제아무리 승화되었다 해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반가워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아마 주변 몇십 리 내에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반가울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많은 예언, 어떤 종교든, 여러분이 알고 있는 불교, 기독교 무슨 종교든 관계없이 모두 지금의 세간이 어떻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아직 까마득히 먼 장래의 일이라고 여긴다. 아마 그럴 수도 있는데, 자신의 생각에 따라 하려면 하라. 하지만 대법제자는 자신의 약속을 실행하고 있는데, 바로 사람을 각성시키는 것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역사상 인류는 여태껏 이처럼 혼란한 적이 없으며 이런 정도로 복잡했던 적이 없다. 사람은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것은, 인류사회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우연일 수 있겠는가? 과학기술과 사람의 전통은 서로 다른 두 갈래 길로서 모두 동시에 인류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당신이 어느 길을 선택하고 어느 길을 걷는가 하는 것은 바로 사람에게 준 선택이다. 내가 방금 말한 선과 악은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이 두 갈래 길은 미래 인류에게 준 선택이다. 현대 사상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이 신을 이탈하려 하며, 신이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대단히 위대하다고 여긴다. 여러분이 보았듯이 어제 그 큰 허리케인처럼 사람은 대자연 앞에서 그야말로 보잘 것 없으며 우주의 겁난이 온다면 정말로 끝장이다. 게다가 인류의 과학기술은 에너지원이 없으면 인류의 현대사회는 즉시 마비되고 현대과학기술은 즉시 해체된다. 외계 생물의 기술이 아주 발달했어도 우주의 성주괴멸 중에서 그것들 역시 정법 중에서 구원받기를 바란다.

사람 앞에 놓인 상황은 바로 이렇다. 그러나 대법제자로서 이런 환경 중에서, 이처럼 복잡한 세계 속에서 사람을 구하기는 실로 지극히 어렵다. 때로는 당신들이 바빠서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부는 아주 분명하게 보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생각한다.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누가 대법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 새로 들어온 사람을 포함해서, 만약 당신이 인연이 없으면 정말로 들어오지 못한다. 이 여러 해 동안, 박해와 중공사당이 대법제자에게 날조한 유언비어 때문에 사람이 들어오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이 아니다. 줄곧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런 일이 아니다. 사실 그 누구나 중공사당이 나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며 그것이 말한 것을 많은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는다. 원인은 그런 신들이 가로막고 있어 그로 하여금 대법제자가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자격이 없는 사람은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자신이 들어오지 않으려 하거나, 혹은 주위환경이 그가 들어오는 것을 저지했거나, 어떤 사람이 그에게 어떠어떠한 말을 하여 가지 말라고 했거나, 그 자신이 번거로운 일을 내려놓지 못했거나, 이것도 어렵고 저것도 어려우며,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당신들은 대법제자이기에 천상의 무수한 생명, 헤아릴 수 없이 무량한 생명들이 당신들을 부러워한다. 어떤 고층의 신이든, 그가 아무리 커도, 오늘 내가 그에게 와서 대법제자가 되라고 하면 일초도 필요 없이 나의 말이 떨어지기만 하면 그는 즉시 뛰어내려오는데 그야말로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명백한 자는 다 알고 있는바, 그것은 자신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세계의 무량한 중생도 구할 수 있다. 이는 미래 우주의 가장 대단한 일이다. (박수) 하지만 안 된다. 대법제자는 인간세상에서 윤회 전생하는 중에서, 역사의 과정 중에서 이미 이러한 위덕을 쌓았기 때문이다. 초창기 대법제자의 연공장에 많은 사람이 왔다. 어떤 사람은 누구도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연공을 마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많은 신이 정말로 대법제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대법제자가 미혹 속의 사회에서 속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에 사상에서, 적어도 어느 한 방면에서 가장 쉽게 흐름에 휩쓸릴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일을 함에 대법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않고 정념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문제에 부딪혔을 때 법에 서 있지 않으면, 당신은 속인과 다를 바가 없다. 당신의 외형이 속인이고 당신이 생활하는 환경 역시 속인 중에 있으며, 하는 일 역시 속인의 일이다. 설령 당신이 대법제자의 일을 한다 해도, 천상에는 텔레비전방송국이 없고 신(神)에게는 신문도 없다. 이것은 모두 속인사회의 형식이다. 만약 당신이 정념으로 당신을 지도하지 않고 대법제자답게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세상을 가늠하고 다른 사람을 가늠하지 않으면 당신은 바로 속인과 같다.

무엇이 수련인인가? 과거에 사람들은 삭발하고 절에 가 있으면 신이 되는 줄로 알았다. 그런 일인가? 절대 아니다. 그는 다만 겉모양에서 자신이 속인, 다른 사람과 같지 않게 되었으며, 속인들도 그들과 같지 않다고 여긴다. 그런 다음 다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수련했는데, 사회 중에서, 오염 중에서, 칠정육욕 중에서 그 마음은 같은 것이다. 어찌 이런 것에 그치겠는가? 이 현대사회는 칠정육욕만이 아니다. 칠십 정(情), 육십 욕(慾)보다 더 많다. 그렇지 않은가? 가지각색의 욕망이다. 컴퓨터, 휴대폰 아이팟에 집착하고 정이 드는데 이는 역사상에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뭇 사람 웃음) 현대사회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더욱 복잡하다. 어떤 형식상의 수련이든 그것은 다만 표면형식일 뿐이다. 대법제자의 수련, 당신들의 환경, 당신들의 수련 장소는 사회를 무대로 한다. 기왕 인류사회가 모두 정법을 위해 만든 것이라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사회문제가 그처럼 간단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전에 당신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각 분야에서 수련한다. 그렇다. 당신이 부딪힌 모순, 당신이 부딪힌 그 어떤 일이든 모두 당신의 사람 마음을 고험한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만 수련인에 부합될 수 있겠는가? 당신은 어떻게 해야만 대법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 그것은 바로 수련이 아닌가? 속인이 이렇게 하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모순에 부딪히면 내가 맞든 틀리든 자신을 돌아본다. 이 일에서 내가 어떤 잘못한 점이 없는가? 정말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모두 이처럼 생각하는데 첫 일념이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생각한다. 누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대법 수련자가 아니다. 이는 수련의 법보(法寶)이며, 이는 우리 대법제자 수련의 특징이다. 어떠한 문제에 부딪혔더라도 첫 생각에 우선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바, 이것을 “안으로 찾는다.”고 한다. 사실 불교 중에서도 이러하다. 그것은 마음을 닦는다고 말하지 않는가? 안으로 보지 않는가? 그것도 이러한 것을 말하지 않는가? 비록 그것이 말한 것이 아주 작고 실제적인 문제를 짚어내지 못했지만 그것 역시 이렇게 말한다.

여기까지 말하게 되었는데, 내가 방금 한 모든 말은 사실 여러분에게 대법제자의 책임이 중대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저번 법회와 이번 법회의 시간이 아주 가깝다. 비록 일부 수련생에게 존재하는 결함을 저번에 말했지만 잘하고 못하고는 모두 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은가? 저번 법회 후에 당신이 현재 어떠한가를 말하지 말자. 대법제자는 사부의 설법을 신기(新奇)한 것을 듣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또 사부가 어떤 천기를 말했는지, 사부가 어떤 재미있는 것을 말했는지를 알려고 하지 말라. 물론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부가 말한 다음 당신은 생각해야 하며, 대법제자 당신은 사고해야 한다.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일부 수련생들은 서로 협력함이 매우 부족하다. 그냥 조금 부족한 게 아니라 심지어 일을 무너뜨린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어떤 마음이었든지 대법제자의 항목이고 혹은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당신이 일을 무너뜨리는 작용을 일으켰다면 당신은 곧 마의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당신이 ‘나도 대법제자이다, 나 역시 아주 많은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구세력은 당신이 한 일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고 있다.

당신들은 아는가? 대법제자라, 당신들의 정념은 작용이 있다. 당신들 매 한 사람이 일으킨 작용을 합치면 거대하기가 비할 바 없다. 그처럼 큰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신심이 부족하고 정념이 부족한 탓이다. 이렇게 많은 대법제자가 동일한 시간에 세계적으로 발정념을 하는데, 억에 달하는 대법제자들이 세계적으로 동일한 시간에 발정념을 하는데, 사악한 것들과 구세력으로 말하면 두렵지 않겠는가? 신으로 말해도 매우 장관(壯觀)을 이루는 일이다. 얼마나 큰 힘인가! 대법제자로서 만약 당신의 정념이 아주 강하면 그 힘은 산을 가를 수도 있는데, 일념이면 해낸다. 미혹 속에서 당신들은 자신의 능력을 보지 못하는데 이건 괜찮다. 당신들이 서로 협력을 잘하지 못하고 정념이 부족하면 발정념을 할 때 머릿속 생각은 모두 서로 간의 수련 중에서 안으로 찾지를 않고, 밖을 보며 집착한다. 심지어 마음이 평온치 않고 누굴 생각하면 화가 치미는데, 당신이 그 정념을 발해서는 뭘 하겠는가? 올바른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당신의 모든 사상, 생각, 집착을 전체 우주의 신에게 알리게 된다. 당신이 그 염(念)을 발하면 전부 분출되어 전체 우주에 전시되는데, 당신 이 사람을 보게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 구세력이 당신을 박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당신을 박해하면 사부마저도 무슨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꼬투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러한 생명을 보라. 이것이 당신의 제자인가? 이렇게 부족한데 그를 좀 혼내줘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그를 혼내주려 하지 않지만, 그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는데 아직도 그를 혼내주지 않는가!’ 내 생각에, 대법제자 당신들 앞에 놓인 길은 오직 착실하게 수련하는 길 뿐이며 다른 길이 없다.

최근에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중국대륙 대법제자들은 이 한 차례 박해 중에서 갈수록 청성(淸醒)해졌고 명백해졌으며, 갈수록 잘하고 있다. 그러나 형세의 호전에 따라 국제상의 대법제자들은 오히려 좀 느슨해졌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이든 기운이 나지 않는 것 같고 협력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협력하지 않고, 서로 대립하며, 따라주지 않고, 심지어 행동거지가 몹시 무례한데 정말로 대법제자 같지 않다. 사부가 보니 가슴이 아프다. 당신들은 가장 어려운 박해 중에서 지나온 것이며, 신들도 모두 부러워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오히려 소중히 할 줄 모른다. 다시 되돌아 그 과정을 찾아오자 해도 모두 없어졌으며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다. 내가 방금 말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대법제자가 되려고 하지만 현재는 들어오기가 몹시 어렵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대법제자에 대한 가장 잔혹한 고험과 그런 박해는 이미 마지막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다시 새롭게 전 세계적으로 하늘과 땅을 뒤덮을 듯한 그처럼 큰 압력과 어려움을 만들어, 당신이 과감히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고험하는 역사는 이미 지나갔으며 더는 없다. 누가 다시 와서 대법제자가 되려고 한다면 그 구세력은 몹시 심하게 가로막을 것이며 어떻게 해도 그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 당신들은 그처럼 어려운 환경 중에서도 지나왔는데 아주 대단한 것으로, 있어야 할 위덕이 이미 다 있다. 당신들이 지금에 와서 자신을 느슨하게 해서 자신을 미끄럼질 치게 하는데, 정말로 그러지 말아야 한다.

중생을 구도하는 일, 진상을 알리는 일에서, 많은 사람이 깊이 있게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두어마디 하고는 듣든 말든 안 들으면 그만두고 또 다른 사람을 찾는다. 어떤 일을 하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잘해서 사람을 구도하려면 그를 확실히 구해야 한다. 당신들 앞에 놓인 것을 고르지 말아야 하며, 사람을 구함에 당신이 골라서 구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당신이 만난 사람이라면 모두 구해야 하며 어떤 신분이든지 어떤 계층이든지, 그가 대통령이든지 아니면 거지이든지 모두 구해야 한다. 신이 보기에 생명은 동등한 것이며 계층은 인류사회가 구분한 것이다. 나는 대법제자들 사이가 모두 이전과 같고, 당신들이 법을 얻은 그 초창기처럼 그렇게 정진하기를 희망한다. 과거 불교 중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처음과 같다면 당신은 반드시 원만할 것이라는 뜻의 한 마디 말이 있다. (박수)

당신들은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법회가 있고 서로 교류할 수가 있다. 당신들이 알다시피, 산굴 속에서 수련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그가 수련성취 하지 못하면 그 안에서 죽는다. 그는 어떠한 일을 겪어도 상의할 사람이 없고 또한 말을 나눌 사람도 없으며 모두 그 스스로 바른 깨달음 속에서 걸어 지나와야 하는데 걸어 나오지 못한다면 곧 끝장인 것으로 얼마나 어려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장기간 적막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적막이다. 적막은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고, 적막은 사람으로 하여금 과거의 일체를 잊어버리게 할 수 있으며, 적막은 심지어 사람으로 하여금 언어를 잊어버리게 할 수 있는데 가장 두려운 고통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누구누구가 9년 동안 벽을 마주하고 있었고, 누가 13년 동안 벽을 마주하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100여 년 앉아있었다고 한다. 당신들은 그처럼 적막하지 않으니 시종 대법제자답게 견지해야 한다.

사부가 오늘 여러분에게 좀 엄중하게 말했는데 역시 여러분들이 각성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당신들이 세인을 구도함에 그들을 깨어나게 하고 그들을 구도하려고 하는데, 당신들 자신 역시 깨어나고 역시 깨우쳐야 한다. 일을 많이 하다 보면 자신의 수련을 잊어버리는데 이러면 안 된다. 당신들은 수련인이다. 이 말은 당신의 과거, 예전 한 때, 혹은 당신의 표현에 대해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말은 당신의 본질, 당신 생명의 의의, 당신이 짊어진 책임, 당신의 역사적 사명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이래야만 당신은 비로소 진정한 대법제자이다.

나는 여러분이 각 항목 중에서, 사람을 구도하는 중에서 어떤 것은 아주 잘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총체적으로도 여러분은 잘했으며 아주 큰 작용을 일으켰다. 나는 당신들이 조사정법 중에서 당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희망하건대 당신들이 더욱 잘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길은 아주 좁아 조금만 빗나가도 문제가 생긴다. 나는 여러분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어느 누구도 수련 중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형세가 호전됨에 따라 수련이 느슨해지는 것은 더욱 바라지 않는다. 이 일체가 모두 당신들이 개창한 것이며 미래의 일이 아직 많은 것으로, 줄곧 당신이 원만을 이루는 그날까지이다. 가장 어려운 것을 당신들은 이미 지나왔고 남은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며 오직 그것을 더욱 잘하기만 하면 된다. 희망이 없을 때일수록 희망은 바로 눈앞에 있을 것이다. 무료하게 느껴질수록 바로 당신의 위덕을 세우는 중일 것이다. 희망하건대 여러분이 정말로 협력을 잘하고 정념이 족하며 문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고 마치 막 수련에 들어왔을 때의 그런 열정이 있기를 바란다. 속인처럼 몇 분 동안의 냄비 식 열정으로 그만두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이 서로 협력할 때 사람의 마음이 있기에 서로 간에 마찰이 생기는데, 그것은 수련인의 상태와 과정이며, 결코 당신들 누가 정말로 좋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다. 좋은 그 일면은 이미 격리되어 볼 수 없다. 당신들이 보는 것은 영원히 수련이 잘 안 된 이 일면이다. 하지만 당신들은 자비심을 품지 않아서는 안 되며 고정적으로 사람을 보지 말아야 한다. 내가 재삼 말하는데, 좋은 일면은 당신들이 보지 못하며 저쪽은 이미 아주 좋아졌고 표준에 도달하였다. 표준에 도달한 것은 어떤 모양인가? 신의 표준이다. 그가 잘 수련하지 못한 그 일면은 표면으로 갈수록 좋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는 이미 아주 잘 수련했다. 희망하건대 여러분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당신들 이 환경을 소중히 여기라. 당신들이 걷는 길을 소중히 여기는 이것이 바로 당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사부는 더 말하지 않겠다. 희망하건대 당신들의 법회가 원만하고 성공리에 열리기를 바란다. 법회 중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수련 과정, 수련 상태, 어떤 부동한 일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대법제자의 정념으로 처리했는가를 말했다. 이러한 것을 들은 다음 지나가는 말로만 간주하지 말라. 그것은 사람이 수련하여 걸어 온 길이고, 당신이 걸어 온 길이기도 하다. 나는 당신들이 새로운 열정으로 수련인의 가장 좋은 상태를 되찾는 것을 보고 싶다. 나는 이만큼 말하겠다. 여러분 감사하다. (전체 기립, 열렬한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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