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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법회설법

 

李 洪 志
(1998년 5월 30~31일 푸랑크푸르트에서)

 

이 자리에 앉은 일부분은 노수련생이고, 신수련생이 아주 많다.

법을 전한 지 어느덧 몇 년이 지나갔다. 예전에 내가 프랑스에 가서 법을 전할 때 독일에 들렀는데, 나는 이 지방의 환경을 보고자 했다. 바로 두 번째로 프랑크푸르트에 온 것이다. 하지만 유럽 일부 지역의 신수련생과 만남은 역시 처음이다. 한자리에 앉아 여러분들이 이 대법을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건대 역시 연분(緣份)이다. 우리 불가는 연분을 중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이 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 자리에 앉은 많은 사람이 아직 이 법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우지 못했으며 흔히 모두 그를 일반적인 기공처럼 대하였다. 이 법이 중국에서 유전하는 중에 이미 1억에 달하는 사람이 배워 연마하고 있다. 중국 이외 다른 지역의 사람 숫자 또한 상당히 많다. 왜 이럴 수 있으며, 또 이 법을 배우는 사람의 지식수준이 비교적 높은가? 다수가 지식계의 유명인사인데,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도 모두 비교적 높은 사회계층의 사람들이다. 물론 우리가 말하자면 일반적인 기공이 중국에 나타났을 때 배우고 연마하는 사람 다수가 노인과 환자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일종 체육단련, 몸을 건강히 하는 것으로 보았다. 물론 속인 사회 속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기공 중의 몇몇 초상(超常)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리하여 기공으로 하여금 아주 신비적인 색채를 띠게 했는데, 다만 이러함에 불과할 뿐이었다.

많은 사람이 기공에 대하여 그가 어찌 된 일인지를 완전히 요해(了解)하지 못한다. 대법을 전한 후 나는 이미 기공의 일부 똑똑히 말할 수 없는 현상, 기공계에서 아직 해석하지 못한 것을 모두 말했다. 하지만 이러므로 비로소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 이처럼 많은 것이 아니라, 우리 이 법이 진정하게 사람으로 하여금 원만에 이르게 할 수 있으며, 진정하게 사람으로 하여금 제도 받을 수 있게 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승화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상 경지에서나 또는 당신의 신체 소질에서 진정하게 당신으로 하여금 부동(不同)한 층차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게끔 하는데, 그는 틀림없이 이러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나는 방금 많은 사람이 법을 배움에,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은 두뇌가 아주 명석하여 보통은 맹목적으로 무엇을 배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흔히 이런 사람들은, 일단 이 법을 배우면 그는 비교적 확고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법의 이 진귀함을 알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많은 천기를 누설하였는가 하면 아울러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포 역시 대단히 크다. 수련 중에서 당신이 도달하려 하는 경지가 아무리 높고, 층차가 아무리 높아도 그는 모두 당신을 지도할 수 있는데, 이 법은 인류 중에서 여태껏 말한 사람이 없다. 대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인류사회에서 당신이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아무리 큰 성과를 거뒀다 해도, 당신은 이 부분의 지식을 전혀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책에서 배울 수 없고 인류의 지식에서 찾을 수 없는 것으로서, 당신이 동서고금의 책을 다 뒤져봐도 전혀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수련하자면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수련 중 법 학습을 중시하지 않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왜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요구가 비교적 엄격한가? 나는 늘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반드시 책을 많이 보고, 반복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책 속에는 무척 방대한 내포가 있는바, 불가사의하다. 많은 신수련생이 이해와 중시함이 모자란다. 한 권의 책은 바로 백지에 검은 글자라, 내가 펼쳐서 그것을 한 번 보기만 하면 다 안다고 한다. 물론 인류사회의 책은 모두 이러하다. 그것은 다만 표면적인 지식에 국한될 뿐 무슨 내포가 없으므로 당신이 한 번 보고 나면 곧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과 같지 않다. 그는 사람의 수련을 지도하는 것이라, 당신이 이 법 속에서 제고하려고 하면, 반드시 끊임없이 책을 봐야만 그가 당신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다.

예컨대 예전의 수련은 사부가 도제(徒弟)를 거느렸으므로, 당신이 어떻게 제고해야 할 때면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연마하며 어떻게 제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당신에게 매 한 층차, 매 한 경지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작은 면적에 국한되며 사람 수가 적을 때는 괜찮다. 만약 우리 오늘날 이처럼 많은 사람, 억(億)에 달하는 사람이 배우고 있는데, 내가 매 한 사람에게 직접 알려줘야 한다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려고, 나는 내가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당신들로 하여금 제고되게 하고 변화됨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체를 모두 이 책 속에 써넣었으며 이 법 속에 넣었다. 단지 이치상으로만 당신이 제고하도록 지도하는 것뿐이 아니라 법의 배후에는 강대한 내포가 있다. 이 이론은 초상(超常)적이며 절대 속인 중의 이론이 아닌바 우리는 속인을 초월하는 그 경지에 관련된다. 이러한 일을 말하면 곧 속인의 생명형식 및 기타 공간의 상태를 초월함에 관련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그가 표면적으로 백지에 검은색 글자인 것으로만 보지 말라. 매 한 글자의 배후에는 무궁무진한 각층 공간이 있으며 각층 공간의 배후에 불(佛)・도(道)・신(神)이 나타남에 이르기까지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나는 예전에 줄곧 당신들에게 이 책을 소중히 하라고 강조해 왔다. 당신이 그가 얼마나 진귀한지를 모를 때 그에 대해 개의치 않는 것은 물론 당신의 잘못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에게 얼마나 큰 내포가 있는지를 알고서도 그를 공경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내가 말하건대 그것은 곧 별개의 일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 물론 바꾸어 말한다면 당신이 그가 얼마나 큰 내포가 있는지를 알았을 경우, 당신은 곧 스스로 깨달아 그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우리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참으로 이상하다. 내가 책을 한 번 다 보고 나니 같지 않으며, 다시 두 번째로 이 책을 보니 전체가 또 같지 않았다. 당신이 처음 한 번 보고 나면 많은 문제가 대두한다. 왜 이럴까? 왜 저럴까? 그러나 당신이 두 번째로 보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며, 모두 당신에게 해답해 줄 수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데, 수련은 승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두 번째 제기하는 문제는 첫 번째 책을 볼 때 생각했던 문제와 얻은 답보다 높다. 당신이 세 번째로 볼 때에는, 두 번째에 제기한 의문, 이해되지 않았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인데, 계속 읽어가노라면 끊임없이 이럴 것이다. 지금 책을 보는데, 백 번도 넘게 본 사람이 무척 많다. 그는 이 법을 놓지 못하는데, 그가 보면 볼수록 그 속의 것이 더욱 많고 내포가 더욱 크다. 왜 이럴 수 있는가? 만약 배후 그 공간의 불(佛)・도(道)・신(神)이, 당신이 마땅히 제고해야 할 때임을 보았다면 그는 자연히 당신으로 하여금 그 한 경지 중에 존재하는 이치를 알도록 한다. 당신은 갑자기 이 한 구절 말의 또 다른 내포를 알았음을 느낄 것이다.

나는 예전에 깨달음(悟)을 말할 적에 아무도 말하지 않은 한 가지 천기(天機)를 말했는데, 바로 “수련은 자신이 하나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修在自己 功在師父).”는 것이다. 천백 년 이래 모두가 자신은 수련하고 있으며 자신은 제고하고 있다고 여기나 실은 아무것도 연마해 내지 못했다. 사부가 책임져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진정한 문제는 사부가 해결해 주는 것이며 법의 배후 요소가 해결해 주는 것이다. 당신 자신의 깨달음이란 바로 수련 중에서 부딪히는 곤란을 극복해 가며 계속하여 수련하는 것인데, 이는 당신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치상에서 진정하게 무엇을 깨닫는 것이다. 당신에게 이 법을 알려주지 않으면 당신은 아무리 깨달으려 해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당신은 반드시 한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반드시 진정하게 수련해야 한다.

과거에 서양종교에서는 믿음을 말하고 동양에서는 깨달음을 말했는데,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 확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 한 마음이 없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이 그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면 당신의 그 마음도 역시 확고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많은 수련생이 법을 공부하지 않는다고 느껴 그를 위해 아주 조급해하며 말한다. 당신은 이미 법을 얻고도 공부하지 않으니 참으로 아쉽다! 바로 이렇다. 많은 사람이 법을 배움을 중시하지 않고 그를 일반 기공으로 보고, 연마(練)하여 신체나 좀 단련하고자 한다. 물론 우리의 법은 아주 큰 것으로서, 신체를 단련하고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면에서 일으키는 작용도 아주 크며 느낌 역시 대단히 강렬하다. 그러나 당신이 다만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기 위해서라면 당신은 제고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오늘 이 일을 하는 목적은 아주 명확한 것으로서, 나는 누군가의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해 주기 위해 이 법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목적은 사람을 고층(高層)으로 이끌어 진정하게 당신을 제고시키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런 방법에 일치하여 유지해 나가지 못하면 당신은 단지 신체건강을 조금 얻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이 법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면 아마 이것마저도 얻기 어려울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만일 당신이 진정하게 이 법을 배우러 왔다면 무엇이든 다 얻을 수 있다. 혹은 당신이 비록 명확한 목표가 없더라도 어떤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품지 않고 와서 배운다면 아마도 효과가 아주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제고되는 과정에서 점차적인 인식과정이 있음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에게 책을 보라고 한다. 당신은 그가 무엇인가를 이해한 다음 당신이 다시 배울 수 있는지, 수련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도록 하라.

나는 신수련생이 입문(入門)할 때 일단 그에게 책을 주어 읽으라 하고, 책을 읽은 후 그가 되는지 안 되는지 보기를 주장한다. 되면 그는 수련하러 올 것이고, 안 되면 억지로 하지 말라. 우리가 사람을 제도하는데 강요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반드시 마음속에서 제고하려 하고 수련하려 하며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하려 해야만 비로소 수련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누구도 방법이 없다. 강제적인 것은 수련이 아니며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게 할 수도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그가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그는 초상(超常)적인 이치이다. 당신이 고층차로 수련하려 하고, 자신의 경지를 제고하려 한다고 해도 당신이 어떻게 제고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이 과거에 기공을 연마(練)하면서 심한 착오상태에 빠져들었다. 나는 공력을 들여 연마하고, 날마다 시간을 늘려서 연마하기만 하면 나는 제고되리라는 것이었다. 사실 조금도 제고될 수 없다. 그는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즉 기를 연마하는 이 층차를 영원히 돌파할 수 없다. 그러나 기공은 단지 이러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수련 중의 가장 낮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할 수 있는 이 층의 것을 내놓아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려는 것이지만, 그것의 목적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늘 말했다. 중국 역사상 여태껏 모두 없었으며 전 세계에도 나타난 적이 없었던 기공이, 왜 오늘날 현대과학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이러한 사회상태 중에 나타나게 되었는가?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인지라, 사람의 사상은 억제된 것이고 사람의 지혜는 제한된 것이어서, 이러한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 모두가 자연적이며 우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고 우연한 것은 없으며, 일체는 모두 원인이 있다. 방금 내가 말한 이러한 내용은, 우리가 법 공부를 중시해야 함을 여러분들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당신이 오로지 법 공부를 하기만 하면 당신은 수련 중에서 제고될 수 있으며 부동한 상태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만일 당신이 법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당신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기공단련은 당신이 어떻게 단련한다고 해도, 그 기공사가 하는 말이 더없이 좋다고 해도, 그것은 역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함에 불과하며 그것은 결코 당신을 고심(高深)한 경지에 도달하게 할 수 없다. 과거에는 수련계에서든 종교계에서든 그처럼 고심막측(高深莫測)한 법을 안다는 것은 절대 안 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기공은 그것이 수련을 지도할 법이 없기에 그것은 다만 사람에게 어떻게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지를 가르칠 뿐이다. 방금 내가 말했다시피 그 경지에 도달하려 하고, 당신이 그처럼 고심(高深)한 공부(功夫)가 있고자 한다면, 반드시 당신의 사상 경지가 받쳐주어야 한다.

우리는 예전에 불타(佛陀) 또는 도가학설 중에서 모두 수련은 德(더)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과 예수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무엇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인가? 무엇이 德(더)를 중시하는 것인가? 바로 당신의 행위가 갈수록 좋아지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정도로 좋아져야 하는가? 당신은 모든 속인에 비해 다 좋아져야 하는 즉, 당신은 바로 초상인(超常人)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인이라, 당신의 신체에서는 공이 나올 수 있고, 공이 당신의 사상 경지 높이와 같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상 경지가 높을수록 공의 층차 또한 높다. 나는 과학으로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부처의 경지와 같게 발전될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은 모두 속인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속인은 칠정육욕이 있으며 각종 집착심이 있게 마련이다. 각종 인간 세상의 욕망, 당신이 이러한 것을 갖고 천국으로 가려고 한다면 그 어찌 될 말인가! 그럼 천국은 속인 사회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다투고 빼앗고 서로 속이는 속인 사회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당신은 반드시 그처럼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갈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종교를 믿는데, 지금 믿고 있는 이 종교에서, 하나는 신이 상관하지 않기에 제고되기가 몹시 어렵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많은 사람이 그 당시 예수, 여호와 또는 성모 마리아가 한 말의 진정한 함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오로지 믿기만 하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믿는다는 그것은 다만 기초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단지 글자의 표면상으로만 이해하여 오로지 내가 믿기만 하면 세상을 떠난 후에 꼭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바 당신은 갈 수 없다. 왜 갈 수 없는가? 당신이 생각해 보라.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당신은 단지 입으로만 믿는다고 말하고 실제 마음속으로는 결코 믿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진정으로 믿는다면 당신의 언행은 반드시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교당(敎堂)에서 참회할 때 당신은, “나의 주여, 나를 도와주십시오. 나는 오늘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데 나의 죄과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당신은 이때에는 아주 잘했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교당 문을 나서기만 하면 당신은 제멋대로인지라 속인과 같으며 또 같은 착오를 범하는데 속인 중의 표현은 속인보다도 더 못하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해 보라. 당신의 참회는 무슨 쓸모가 있는가? 많은 사람이 모두 표면에 머물러 있다. 당신이 참회한 후에 당신은 다시 착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다음 당신이 또 착오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 당신은 또 가서 참회하고 다시는 같은 착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이렇게 끊임없이 속인 중에서 범한 착오를 다 제거해 버린다면 당신은 바로 더욱 좋은 사람이 아닌가? 당신은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한, 속인을 아주 많이 초월한 좋은 사람이 아닌가?! 이것이 곧 수련이 아닌가. 心性(씬씽)이 제고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서양문화에는 수련이란 이 개념이 없으므로 예수・여호와가 그 당시 그의 법을 전할 때에 수련이란 이 용어를 말하지 않았으며 개념마저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수련은 자신이 하나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로지 수련하기만 하면 이 일체는 곧 수련자가 가게 되는 곳의 천국(天國) 신이 당신을 도와주게 마련이다. 당신에게 신체상의 변화가 생기게 하고 당신의 신체를 연화(演化)해 주며, 당신의 신체로 하여금 신이 갖춘 그처럼 큰 신통에 도달하게 하는 즉, 이 일체를 모두 신(神)이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죽은 후에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수련하지 않은 사람이 죽으면, 당신들 서양의 말로 하자면 영혼이 된다. 이 영혼은 곧 귀혼(鬼魂)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것이 무엇인가? 동양 사람은 아주 명확한 인체수련 개념이 있는바 부처의 몸을 수련해 내는 것이다. 즉 신의 신체이다. 만일 당신에게 이 부처의 몸이 없다면 즉 천국세계의 그 신의 신체가 없다면, 사람의 영혼은 나온 뒤에 빛을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햇빛 아래에서 그것은 곧 흩어져버려, 다음에 전생(轉生)하기조차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천으로 덮어 그것으로 하여금 해를 보지 못하도록 하여 땅속에 묻는데 그의 혼이 부서져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 부처님과 신은 모두 광염(光焰)이 무한한바 햇빛보다도 더욱 강하다. 그 혼이 신을 보게 되면 그것이 녹아버리지 않겠는가. 그것이 천국세계로 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것은 반드시 신의 신체가 있어야 하며 동시에 수련하여 영체(靈體)의 구성 성분을 개변하여 그 자체로 하여금 고에너지 구조로 변하도록 해서 부처의 신체가 있게 하거나 신의 신체가 있게 해야만 그는 비로소 갈 수 있다. 혼이 인간 세상에 올 수 있는가? 올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은 반드시 신체가 있어 환생해야 하며 부모의 신체에서 환생되어 나와야만 비로소 이 세계에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믿기만 하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여기는데 어찌 가능하겠는가? 우리 수련계에서 보면 아주 가소로운 것이다. 당신은 반드시 진정하게 수련해야만 비로소 천국으로 갈 수 있다.

그럼 서양종교의 신에 대한 이런 신앙과정은 心性(씬씽)이 갈수록 높아지고 사상 경지가 높아져 갈수록 더욱 좋은 사람으로 변하게 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말해 보라. 그가 수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련은 형식을 따지지 않는지라 각양각색의 수련방법이 있다. 이것이 바로 서양종교와 동양종교의 수련 형식상의 차이점이다. 왜 서양에서는 수련을 말하지 않고 동양에서는 수련을 말하는가? 사실 모두 수련이다. 다만 동양의 문화는 이 방면에서 아주 명확하지만, 서양문화 중에는 이러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이 내려와 사람을 제도하고 법을 전함에 역시 그런 사람이 알 수 있는 문화 형식을 채용해서 해야만 당신이 알 수 있고, 당시 사람의 언어로 말해야만 당신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역시 여러분에게 알려주려 함인데, 일반적인 기공을 연마(練)해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주 높고 깊은 경지에 도달하게 할 수 없으며 도달하기가 불가능하다. 오직 진정하게 수련해야만 비로소 될 수 있다. 그러나 기공, 그것은 수련 중에서 가장 낮고 가장 낮은 층차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만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데 제한될 뿐이다.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자체마저도 사람에 대하여 역시 요구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필경은 한 가지 수련의 형식으로서 속인 중의 어떤 치료방법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기공을 배우려 하고 당신 신체의 병을 낫게 하려면 당신은 반드시 기공 법리(氣功法理)의 요구에 부합되어야 한다.

무엇이 기공법리의 요구에 부합되는 것인가? 그것은 초상(超常)적이기 때문에 초상적인 방법으로 병을 제거하려고 한다. 약을 먹을 필요가 없고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으며 수술을 할 필요가 없이 곧 낫는데 이것이 초상(超常)적이 아닌가? 사람으로 말한다면 당신은 곧 그의 이치에 부합되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진정하게 병을 제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이 기공을 연마(練)하는데 왜 그의 병이 제거되지 않는가 하는 근본 원인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런 초상적인 방법으로 당신의 병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이런 초상적인 이치에 부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반드시 기공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당신이 나쁜 짓을 하고 좋지 못한 일을 하는 습관을 고쳐야만 당신의 병이 진정하게 제거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병이 낫게 되는 진정한 원인이다. 그러나 속인 중의 치료방법은 이러한 것이 필요하지 않다. 수술하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만 당신의 병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우주 중에는 한 가지 이치가 있는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얻었다면 당신은 곧 잃어야 하며, 잃었다면 당신은 곧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이다. 당신은 왜 당신의 그 병이 병원에서 나아졌는지를 아는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 여기에서는 현대적인 과학기술수단을 거쳐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다만 현대인 자신이 현대사회의 일종 수법을 표현하며 한 가지 형식을 표현함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하게 당신의 병이 나을 수 있는 원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이 공간의 우주의 이치에 부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병을 얻었을 때에 돈을 많이 써서 치료를 받아야 함을 알고 있다. 물론 어떤 나라는 사회복지가 아주 잘 되어 있기에 사회에는 의료보험이 있으므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고통스럽지 않은가, 당신이 병을 얻었는데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이 고통스러운 것 자체가 바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 이 고통스러운 것 자체 역시 업력을 갚고 있다. 그런 다음 당신은 또 얼마간 돈을 써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며 또 수술하게 되는데 당신 이것은 벌을 받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당신의 병으로 하여금 비로소 호전되게 한다.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이러한 호전은 그것 역시 근본적인 전변이 아니라 그는 이 병업(病業)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거나 뒤로 미뤄놓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병은 속인 이 신체의 가장 표면적인 데서 얻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가장 큰 분자 입자로 구성된 신체 이하의 미시적인 입자층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분자는 부동한 미시적인 층차의 입자로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는데, 매 한 층 입자가 바로 한 층 공간이다. 물론 그의 공간은 겹쳐 놓은 것이 아니며 그것은 작은 입자가 큰 입자를 구성한다. 그러나 그의 매 한 층 작은 입자의 그 경지, 그것이 바로 한 층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이 아주 많다. 즉 많은 병의 원인이 거기에 있다. 결코, 표면에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육체조직 표면에 반영될 때에 이것은 단지 한 가지 표면적인 병의 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당신은 수술하여 그 종양을 떼어버렸다고 한다. 사실 떼어버린 것은 가장 큰 한 층 분자로 구성된 육체 세포로서 그것을 떼어냈는데 이 세포가 이 공간에 표현된 것을 떼어낸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도 이 세포를 구성하는 더욱 미시적인 입자를 떼어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 표면의 신체 세포, 그것을 떼어버린 후에 당신은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병이 나은 것 같다. 나중에 병은 전화될 수 있으며 어떤 병은 재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정하게 그 병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또 병소(病灶)로 전이되기 시작하거나 종양으로 자라거나 그것이 전화되는데, 전화되어 다른 병으로 변하거나 다른 재난으로 된다. 이것이 우리가 본 진정한 원인이다. 그러나 공능으로 병을 치료함은 그것을 수술할 필요가 없다. 왜 사람의 종양을 떼어낼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 다른 공간 속에서부터,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공간, 거기에서부터 그것을 떼어버렸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 말한다면 여러분은 이 한 조각의 천에 혹이 부풀어 났음을 보았는데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뒤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서 나의 손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천을 가져갔지만, 이 손을 가져간 것이 아니기에 그것이 다시 이쪽으로 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그 뒤쪽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근본적인 해결을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의 치료방법은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치료방법은 다만 표면을 해결할 뿐, 업은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에서 얻는 것과 잃는 것, 행복한 것과 행복하지 못한 것, 당신이 사는 것이 즐거운지 즐겁지 않은지, 당신이 복이 있는지 없는지 또는 얼마나 큰 재난이 있는지, 일체는 모두 사람의 몸에 가진 두 가지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 즉 하나는 德(더)라 하고, 하나는 업이라고 한다. 바로 이 두 가지 물질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함으로써 德(더)를 쌓을 수 있다. 과거에 사람들은 德(더)를 쌓아라. 德(더)를 쌓아라. 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두 의식형태, 사상 경지 중의 일로 여긴다. 사실 그것은 물질이며 진정하게 유형적인 물질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업력을 말하는데, 동양종교에서는 아주 명확하게 말했다. 무엇을 업력이라고 하는가? 바로 검고 검은 그런 물질인데,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때에 이런 것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것이 많으면 사람은 불쾌한 일이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사람이 병을 얻을 수 있고 사람에게 재앙이 있고 재난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발견하건대 사람의 일체는 모두 사람 자신이 빚어낸 것이다. 당신이 인간 세상에서 행복하든 행복하지 못하든, 좋고 나쁜 것은 모두 당신 자신이 만든 것이다. 흔히 이러한 것은 그것이 현세(現世)에 표현되어 나온 것이 있는가 하면 또한 격세(隔世)하여 표현되어 나오는 것도 있다. 대다수는 격세(隔世)하여 표현되어 나온다. 격세 표현은 무엇인가? 바로 금생금세에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 다음 세에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다. 현세(現世)에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을 동양 수련계에서는 현세현보(現世現報)라고 하는데, 당신이 나쁜 짓을 하면 당신은 즉시 응보를 받는다. 어떤 사람은 방금 나쁜 짓을 하고 집을 나서자마자 곤두박질친다. 그는 이것이 나쁜 짓을 한 응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우연한 것이며 자연적이라고 여긴다. 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란 없으며 일체는 모두 질서가 있는 것으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공간 중에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많다. 물론 현대과학, 그것은 공기가 있고 산소가 있으며 수소가 있고 또 다른 분자로 구성된 미량원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이러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도 당신의 이 눈은 역시 보지 못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공간 중의 극 미시 하(極微觀下)는 그 방대하고 가득한 물질을 포함하여, 그들은 모두 신(神)이다. 사람의 일거일동이 무엇을 하든지 그들은 모두 아주 똑똑히 알고 있다.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때에 늘 자신이 하는 나쁜 짓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다고 여겨 자신이 한 것이 나쁜 짓인 줄을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속일 이유를 찾아 자신으로 하여금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한다. 그는 신을 전혀 믿지 않는다. 나는 예를 들어 한마디 농담을 하겠다. 여기에는 종교도 없으며 종족문제도 없다. 나는 다만 사람이 잘못된 일을 함을 말하겠다. 여러분 알다시피 며칠 전에 모 국가에서 핵실험을 했는데 원자탄을 연속 다섯 개 폭발시켰다. 여러 나라에서는 이 일에 대해 모두 대단히 깜짝 놀랐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평화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가 원자탄을 폭발시켜서 무엇을 하는가? 나는 어떠한 관념도 품지 않았다. 나는 다만 사람이 잘못된 일을 한 것을 말할 뿐이지 그 민족의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 핵폭발은 지하에서 폭발시켰다 할지라도 그것이 부동한 입자 분자로 구성된 이 물질세계라든가, 지구라든가 인류 이 환경에 대한 파괴는 신이 용서할 수 없다! 하늘이 사람에게 응보 하고자 할 때 사람은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여긴다. 모 국가의 기온은 즉시 전 세계에서 가장 높게 되었는데, 현재 섭씨 50여 도로 지속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더위를 먹고 죽었는가 하면 또 큰 폭풍이 불어 역시 적지 않은 사람이 죽었다. 사람은 이러한 현상을 신이 사람에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사람은 그것을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여긴다. 우리 세계에서 발생한 모든 일이 다 우연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보라. 만약 어느 한 민족, 어느 한 지역, 또는 어느 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곧 이어 특수한 현상이 나타난다. 사람의 재난, 사람의 일체는 모두 사람 자신이 만든 것이다. 방금 나는 초급적인 것을 간단히 말했다. 우리 이 자리에 앉은 노수련생은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그들은 모두 매우 깊은 이해가 있다. 이 자리에 앉은 많은 사람이 신수련생이기 때문에 나는 다만 이러한 정황을 아주 간단하게 말할 뿐이다.

만일 당신이 이러한 것을 완전히 알고 싶으면 내가 생각하건대 책을 보아야 한다. 이 『전법륜(轉法輪)』은 이미 전 세계의 과학기술계에 대단히 큰 충격을 일으켰다! 『전법륜(轉法輪)』 속의 내포는 매우 크며 내포는 매우 풍부하다. 왜냐하면, 수련은 층차별로 나누어지며 부동한 경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한 번 보면 발견할 것이다. 아! 원래 이것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는 책이구나. 그러나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는데, 당신에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만약 이러하다면 당신 역시 승화해 올라가지 못한다. 그럼 당신이 승화해 올라가려면 책 속에는 곧 좋은 사람을 초월한 더욱 높은 경지의 그 법리(法理)로써 당신을 지도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이 한 층의 내포가 있어야 한다. 당신이 또 더 높은 단계로 수련하면 그는 당신을 더 높은 수련으로, 더욱 높고 더욱 높은 수련으로 지도할 수 있다. 부동한 더욱 높은 층차의 수련이라면 이 법은 반드시 이 능력이 있어야 하며 부동한 층차의 내포가 이 속에서 당신의 수련을 지도해야 한다. 줄곧 당신이 수련하는 목표 - 원만의 경지에까지 도달하도록 지도한다. 그래서 층차가 더욱 높을수록 당신이 수련 중에서, 책 속에서 보는 것이 더욱 많게 마련이다. 나 여기서는 주로 신수련생에 대하여 말한 것이며 역시 간단히 말한 것이지만 사실 또 아주 높다. 당신들은 부동한 이해가 있을 것이다. 더 많이 말하지 않겠다. 이번 법회는 주로 심득교류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련생이 법 공부를 통해 자신이 수련한 체험을 말하는 것을 듣고자 한다. 이번 회의가 끝나는 마지막 한나절에 내가 여러분에게 문제를 해답해 줄 것인데, 이 역시 한차례 설법이다. 여러분은 다양한 문제를 제출할 것인데, 수련에 대한 겨냥성이 있는 동시에 또 보편성도 있어 여러분이 다 같이 제고하는데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쪽지를 써서 나한테 주면 내가 당신들에게 해답해 주겠다. 이 한 기간 노수련생들은 제고됨이 아주 빠를 뿐만 아니라 신수련생과 차이가 대단히 크다. 법을 수련생에게 완전하게 모두 말해 주었는바, 단지 수련하여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만 문제이다.

방금 나는 주로 신수련생에게 아주 쉬운 이치를 좀 말했다. 만일 완전하게 똑똑히 말하려면 내가 여기에 앉아서 며칠간 말해야만 비로소 그것을 똑똑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다만 개괄적으로 조금 말했을 뿐이다.

한 번 만나기가 아주 쉽지 않다. 여러분은 늘, 꽤 오랫동안 수련해 왔지만 나와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당신은 매일 모두 내 곁에 있는데 다만 당신 자신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또 당신으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표면적으로 아직도 속인이기 때문이다. 그 상태까지 수련되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알 수 있다. 내가 방금 한 말의 뜻은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나는 당신들을 책임져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라도 나는 다 책임져줄 수 있다. 나는 무수한 법신이 있다. 이런 개념은 서양종교 중에는 없으며 동양종교 중에는 있다. 특히 불교 중에서, 불교의 말에 의하면 아미타불의 법신이 대단히 많다고 한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다. 나의 법신은 부지기수라 헤아릴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련하든지 나는 모두 책임져줄 수 있다. 게다가 이 법신은 바로 나이며 또한 지혜의 구체적인 형상의 표현인바, 사람의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과학은 단지 현존의 공간에 고착된바, 가장 큰 한 층 입자의 구조에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과학은 가장 큰 한 층 분자의 입자구조를 보아낼 수 있다. 강(鋼)의 특성이 철(鐵)에 비하여 단단한 것은 입자의 성분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동(銅)은 어떤 상태이고, 은(銀)은 어떤 상태이며 금(金)은 어떤 상태인지 이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현존의 인식으로 이러한 물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단지 이렇게 발전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다. 이것이 바로 현대과학의 발전이 다른 공간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장 큰 한계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물질을 미시적 세계에서나 혹은 더욱 큰 데서 인식하는 이런 한 갈래의 길을 걷지 못한 것이다. 사실 그 물질은 부동(不同)한 작은 분자 입자로 조성된 것이며, 그 분자 입자는 원자 입자로 조성된 것이고, 원자 입자는 또 원자핵 입자로 조성된 것이며, 원자핵은 또 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더욱 미시적인 물질 입자는 또 더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조성된 것이고, 더더욱 미시적인 입자는 또 더 더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조성된 것이라, 사람으로 말한다면 무궁무진하다. 바로 이렇게 끊임없이 아래로 발전해 내려간다. 얼마나 미시적인 데까지 도달하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 입자가 그런 미시적인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두려운 것이다!

석가모니는 모래 한 알 속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말한 삼천대천세계는 인류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한 그의 삼천대천세계학설은 내가 백화(白話)로 말한다면, 다시 말해서 우리 이 은하계에 인류와 같은 이러한 물질공간이 3천 개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이러한 성구(星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뜻은 모래 한 알 속에 이러한 세계가 3천 개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전법륜(轉法輪)』 그 책 속에 다 말했다. 그럼 그 삼천대천세계가 있는 모래 한 알 속에는 이처럼 많은 인류 세계, 미시 하의 생명의 존재가 있는데, 그 모래의 세계 속에는 또 강(江)・하천(河)・호수・바다가 있을 것인데 그것에도 모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그 모래알 속에 역시 더욱 미시적인 삼천대천세계가 있으며 더욱 미시적인 인류와 같은 사회가 존재할 것이 아닌가. 석가모니는 이미 상당히 미시적으로 보았다. 부처(佛), 그는 이런 능력이 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것 역시 극히 천박한 것으로 아래로 캐내려 가면 미시 하의 입자는 무궁무진하다. 나는 가장 간단한 예를 들겠다. 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장 큰 한 층의 입자는 분자가 아니고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장 큰 입자는 성구(星球)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구(星球)는 우주 중에서 가장 큰 한 층의 입자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거시적인 데에서 미시적인 데로 이르는 중간 입자이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것은 얼마나 거대한 구체입자(球體粒子)의 존재인가.

우주는 한 단원(單元)이며 정체(整體) 입자이다. 우리 이러한 우주 3천 개가 제2층 우주를 구성하였다. 즉 더욱 큰 한 층 입자를 구성했는데 이는 다만 한 갈래 선으로 전개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 입자는 끝없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며, 두루 널리 분포된 것이다. 전자가 원자핵을 에워싸고 운행하는 것과 우리 지구가 태양을 에워싸고 운행하는 것은 같은가 같지 않겠는가? 똑같은 것이다. 기제(機制) 상으로나 또는 형식상으로나 모두 똑같다. 왜냐하면, 작은 입자일수록 그것의 입자 밀도는 더욱 크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우리 지구와 같이 이처럼 크게 확대해서 보면 그 전자 위에는 무엇이 있겠는가?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없는가? 물론 위에 무엇이 있다는 것과 입자의 존재형식, 이것은 별도의 개념이며 나는 이 뜻을 말할 따름이다. 그것을 보면 마치 성체(星球)와 같지 않은가?

인류는 지금 다만 자신만이 전체 우주 중의 유일한 고급 생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인류는 전체 우주 중에서 가장 저급한 유일한 생명이다. 매 한 성구(星球)에는 모두 생명이 있다. 하지만 달나라에는 없다. 달은 이전의 그 인류가 만든 것이다. (인류역사는 한 차례 한 차례이다.) 인류는 업력이 커지면 훼멸되고 만다. 새로운 인류가 다시 발전하게 되며 그런 다음 좋지 않게 되면 또 훼멸된다. 말한 김에 달에 대해 좀 말하겠다. 달은 상당히 오래고 먼 예전에 사전인류(史前人類)가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만들어낼 때에는 이렇게 크지 않았으며 밝기도 지금보다 밝았다. 하지만 지금의 인류가 보는 것은 아주 거대하다. 달은 속이 빈 것이었는데, 나중 길고 긴 세월 동안, 물질이 폭발함에 따라 우주먼지가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고, 성구(星球)가 갱신될 때 만들어진 폭발물질, 즉 우주먼지가 끊임없이 덮여 쌓임으로써 달의 표면두께가 아주 많이 두꺼워졌기 때문이다. 표면두께가 몇십 킬로미터로 증가하였는데, 이것은 그것의 먼지이다. 만일 몇십 킬로미터를 빼면 그것은 곧 원래의 그만한 크기가 된다.

방금 내가 말한 것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것인데, 모든 성체(星球)에는 다 생명이 생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많은 것이 인류 이런 형상의 생명 존재로서, 단지 그가 이 공간에 있지 않을 따름이다. 왜냐하면, 부동한 입자가 부동한 공간을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 공간으로 진입하려면 당신은 지금 인류 과학의 이런 개념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이 과학은 그야말로 너무나 천박하다. 당신이 그 세계에 진입하려면 곧 그 세계의 상태, 형태와 사유에 부합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당신이 인식할 수 있다. 당신이 진입한 후에 당신은 발견할 것인데, 입자는 인류 이 한 층 입자에 비해 작지만, 그것의 공간은 극히 광활하다. 우리 인류는 분자와 성구(星球), 이 두 가지 입자의 중간에서 생존하고 있다.

공기는 분자로 조성된 것이 아닌가. 당신이 보지 못하지만 화초・나무・강철 및 당신 몸에 입고 있는 천과 당신의 육체, 머리칼, 당신이 쓰고 있는 일체 물건, 주위의 일체가 모두 분자로 구성된 것으로서 그 흙도 분자로 조성된 것이기에 우리 사람은 그것을 흙이라고 한다. 사실 신은 인류 공간의 모든 것이 다 흙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는데, 신들은 분자 자체마저도 흙으로 본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서양인종의 주 여호와가 말한, 그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에 대해 물었다. 사실 단지 우리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따름이다. 그들의 눈에 이 공간의 일체가, 공기를 포함하여 모두가 흙으로서 당신은 흙 속에 묻혀있음에 불과한 것으로 주위는 전부가 흙이다. 사람은 흙더미 속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다. 모두 흙으로 구성된 것으로 사람은 바로 이 흙 속에 있다. 나는 서양인종의 천주가 말한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일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해하기가 힘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다른 공간 생명의 존재 상태를 알려고 한다면 당신은, 더욱 작은 한 층 입자가 생존하는 공간상태 형식에 부합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과학이론으로서는 인식하지 못한다. 당신은 또 현대과학의 관념을 버려야만 인식할 수 있다. 일단 인식하게 되면, 당신은 그것이 인류가 말하고 있는 이 시간과 이 공간 개념이 아닌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은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을 보라. 방금 한 한마디 말을 다른 공간 속의 그 역시 듣고 있다. 나는 일체 시공을 초월하여 이 일을 하고 있다. 방금 나의 그 한마디 말은, 시간이 대단히 빠른 한 공간에서는 이미 말한 지 몇백 만년이 지나갔는데, 바로 이 뜻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不同)한 시공의 생명은 오히려 시간의 빠름과 늦음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부동한 공간 중의 물체의 구조 일체는 모두 이 시간과 동조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것의 기년(紀年)이 있다. 내가 한마디 말을 하는 동안에 그것은 이미 몇천만 년이 지나갔다. 그의 1년은 아마 그들이 느끼건대 지구의 1년보다 더 길 수 있다. 당신은 인류의 사유로 이러한 일을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신이 다른 공간을 인식하려 한다면, 당신이 다른 공간의 사유방법과 상태에 부합되어야 인식할 수 있다. 이 법의 배후에는 부동(不同)한 내포가 있고, 또 당신들에게 부동한 공간이 있음을 알려주는데, 그는 어떻게 되어 부동한 내포가 있는가? 그 법은 어떻게 되어 배후에 이처럼 큰 힘이 있는가? 어떻게 되어 당신으로 하여금 신체를 개변하게 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를 가져오게 하는가? 내가 알려주는데, 그가 존재하는 형식은, 당신 속인의 사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글자의 뒷면에 층층첩첩으로 무수한 고급 생명이 있다.

나는 단지 현대인의 사상, 현대인의 학문에 결부시켜 말할 따름이다. 간단히 말해서 바로 현대인이 의존하고 있는 과학에 결부하여 말한다. 그러나 내가 비록 현대과학에 결부하여 당신에게 이러한 이치를 알려주기는 하지만,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나는 이 과학을 찬성하는 것이 아니다. 첫째, 이 과학은 전체 방대한 우주에서는 극히 작은 ‘소아과’이다. 하지만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그는 현대화된 기계가 있으므로 고대와 비교해 어느 정도 나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바, 전번 한시기의 문명과 비교하면 무척 큰 차이가 있으며, 더욱 정밀한 계기마저도 전번 한시기의 문명과 비교하면 조잡하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이 과학, 그것은 어떤 범위 속에 국한되어 발전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과학에 틀을 세웠다. 그럼 어떤 상태를 조성한 것인가? 그는 실증과학 이외의 것은 인정하지 못하는데, 이것이 가장 두려운 것이며 인류로 말한다 해도 가장 두려운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과학, 그것은 아주 천박하다. 과학자 자신의 말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의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대단히 믿고 있으며 그것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고 있다. 이런 인식은 현대사회의 많은 이론과 서양종교에, 천주교나 기독교를 관계치 않고, 포함되어 있다. 당신들이 진정으로 믿는 것은 당신들의 주(主)가 아니라, 당신들이 진정하게 믿는 것은 과학이다. 말하자면 당신들의 뼛속까지 당신들이 진정으로 믿는 것은 과학이다. 반면, 당신들의 종교는 단지 한 가지 표면형식인, 사람의 문명적 행위로 되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이 과학, 그것 역시 하나의 종교이다. 그것은 대단히 완벽한 종교이다.

둘째, 여러분이 알다시피 일반적인 종교, 그것은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과학, 그것도 역시 초등학교에서 중등학교에 이르고 대학에 이른다. 종교 중에는 목사라든가, 주교(主敎)라든가, 또 기타 성직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 과학은 더욱 완비되어 있어 그것은 그것의 교사가 있고 학사・석사・박사・박사 후 과정, 또 지도교수가 있으며 학위가 높을수록 과학의 교리(敎理)에 대하여 장악한 것이 더욱 많은데, 교직자의 명칭도 적지 않다. 이 방면에서 그것은 아주 완벽하다. 일반적인 종교는 사람들을 가르쳐 정신적인 신앙에서부터 물질적인 변화에 도달하도록 한다. 그러나 과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물질적인 인식에서 정신적인 의지와 보호를 이끄는데 도달하도록 한다. 하지만 그것은 신이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이 아니라 삼계 내의 외계인(外星人)이 인류를 조종하여 사람에게 전한 것이다. 사람의 그것에 대한 신앙은 일체를 초월한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이 과학은 바로 그것이 천박하므로 인류사회도덕의 부패를 초래하였는데, 이것이 가장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미시적 물질 존재의 구체적인 형식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업력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흑색물질, 그것은 사람에게 재난을 가져다준다.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백색물질이 생기는데, 그것이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사람이 윤회 전생하는 각층 공간 중의 상태와 응보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모른다. 심지어 그것은 천국세계도 증명하지 못했다. 당신이 이러한 것을 말하면, 과학을 신앙하는 사람은 당신이 미신을 말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것들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내가 믿는 것은 과학이라고 말한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은 과학의 큰 몽둥이로 인류를 수호하는 데 가장 관건적인 것 - 도덕(道德)을 무자비하게 타격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몹시 두려운 것이다!

사람에게 도덕규범이 있게 된 것은, 사람이 좋지 못한 일을 하면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지옥에 빠져서 응보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사람은 스스로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단속함으로써 인류도덕을 수호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이 일단 이러한 것을 믿지 않고 신을 믿지 않는다면(그러나 신은 진짜로 존재한다), 사람이 신을 믿지 않는다면, 아주 두려운 것이다! 사람은 어떤 나쁜 짓이든 모두 감히 하며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여겨 나쁜 짓을 한다. 현대과학이 육성해 낸 새로운 세대의 사람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살인・방화하며 나쁜 짓을 한다. 사회상에는 무슨 마피아조직이 출현하였고, 마약 흡입・마약 판매・매음 등 무슨 짓거리든 다 있다. 난잡한 것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무슨 짓이든 다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사회가 두렵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과학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최대의 재난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신의 존재를 실증하지 못하고 德(더)의 존재를 실증하지 못하며 인과응보(因果報應)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런 문제를 말하면 사람들은 과학이라는 큰 몽둥이를 휘둘러 당신을 칠 것이며, 미신이라고 할 것이다. 인류의 도덕이 갈수록 없어지고, 사회가 누구도 수습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됨으로써 사람 역시 가장 위험한 때에 이르게 되었다. 왜냐하면, 신은 이런 인간과 짐승 사이의 변이(變異)된 인류가 존재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단지 여러분에게 이 이치를 말해줄 뿐이지 인류의 학문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다. 과학을 미신 하지 말라. 그것은 현존의 물질공간의 일정한 범위에서 인류사회로 하여금 일부 개선을 가져오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상응하여 가져온 재난은 무척 크다. 방금 내가 가리킨 것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재난이다. 사람이 볼 수 있는 재난, 예컨대 환경의 오염, 자연계의 파괴 역시 상당히 두렵다. 이 과학은 아주 많은 일련의 사회문제를 가져왔다. 사람의 관념은 한 번에 되돌려 세우기가 몹시 어렵다. 신수련생들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나는 더 말하지 않겠다. 사회의 많은 문제가 모두 과학이 가져온 것으로서 아주 두렵다. 당신이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존재하고, 방대한 우주 곳곳에 모두 신(神)인바, 없는 곳이 없다.

사람은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부동한 층차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가장 낮은 층차인 바로 이 미혹된 사회 중으로 떨어져 왔으며, 당신의 눈(眼晴) 또한 가장 큰 한 층 입자인 분자로 구성된 채 떨어져 왔다. 그래서 당신, 이 눈은 다른 공간을 보지 못한다. 우리가 수련 중에서, 왜 어떤 사람은 속인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가? 바로 당신의 혜안(慧眼)을 열어준 것으로서 우리는 천목(天目)을 연다고 한다. 분자로 구성된 사람의 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같이 느낀다. 사실은 두 가지 눈이 동시에 작용을 발휘할 수 있어서인데, 당신은 눈으로 보았다고 여긴다. 방금 이 문제를 말함은 역시 여러분이 수련 중에서 제고함에 도움이 되고자 함이다.

다음으로 나는 종교에 관한 문제를 좀 말하겠다. 왜냐하면, 서양 사람은 많은 사람이 종교를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법을 얻을 때 한 가지 장애가 있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지금 인류사회의 종교, 전 세계의 모든 정교(正敎)는 이미 책임지는 신(神)이 없다. 무릇 종교 중에서 나타난 일부 상태・기적 또는 표현되는 형식은 모두 인류사회의 저능한 영체(靈體)가 작용한 것으로서 그것들이 사람을 해치고 있다. 종교 중에는 책임지는 신이 없다.

그럼 이 속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만약 책임지는 신이 없으면 당신이 거기에서 수련해도 제고할 수 없다. 당신이 교당에서 참회하지만 들어주는 신이 없는데 어떻게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되게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말하는 것은 종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확실하고도 확실한 현상이며 정말로 이러하다. 왜 신이 책임져주지 않는가? 바로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당신들이 진정하게 믿는 것은 과학이지 신이 아니다. 물론 시작할 적에는 완전히 이러한 것이 아니었으며 어떤 사람은 신을 믿는 일면도 있었다. 나중에 와서 이 면의 것이 점차 갈수록 무덤덤해져 마지막에는 보이지 않으므로 신 역시 책임져주지 않아서인데, 이것이 한 원인이다. 현대과학이 조성한 사회국면으로 말미암아 인류도덕으로 하여금 부패하게 함으로써 사람은 악한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사람은 이미 사람의 행위, 사람의 규범을 잃어버렸기에 신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제도하지 않는다. 이것이 신이 떠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나는 여기에서 인류의 진실한 현상을 말하고 있다. 여러분 알다시피 서양 사람은 중국 사람들이 남녀 사이에 아직도 그처럼 조심스러워 하는 것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이다. 성의 개방은 인종을 어지럽혔으며 인륜(人倫)을 혼란케 했는바, 신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수련인으로서 당신들은 절대 이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당신의 아내가 있고 당신의 남편이 있는데, 이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생활이다. 만약 그가 당신의 남편이 아니고 당신의 아내가 아닌데, 당신이 그(그녀)와 성적 행위를 하였다면 곧 범죄이다. 동서양의 어떠한 바른 종교든, 이 방면을 신은 모두 대단히 중하게 말했다. 사람에 대한 규범에서 이것을 대단히 중하게 강조했다. 이러한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무슨 마피아라든가, 동성애라든가, 폭력을 숭배한다든가, 말한 것은 단지 한 가지 현상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한 가지 사회 상태를 나타낸다. 사람들은 그런 폭력에 대해 방임하고, 마피아 두목을 숭배하는데, 심지어 예전에 살인방화를 했던 해적 두목마저도 대단히 숭배하였다. 사람들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 못하며 착한 것과 악한 것을 가리지 못한다. 정확하고 좋은 것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숭배한다. 마약 흡입자, 그 정신이 퇴폐한 자는 절제가 없고, 구속이 없는 것으로, 사회에서 무슨 일이든 다 한다. 사람의 관념은 전부 다 거꾸로 되었다.

지금 상점에서 파는 인형(어린아이가 좋아하는 인형)을, 예전에는 예쁘게 만들수록 사람들이 좋아했는데, 지금은 예쁘게 만들수록 더욱 싫어한다. 당신이 요귀와 악마처럼 만들거나 더욱 추악하게 만들어야만 그것이 더 잘 팔린다. 무엇 때문인가? 사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렇게 잘 팔리는가? 사람들이 모두 갖고 싶어 하잖은가. 바로 사람의 관념이 모두 거꾸로 되었으며 마성(魔性)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이 이렇게 발전해 내려간다면 두렵지 않겠는가? 당신이 정통적이고 정통적이며, 예절을 중히 여기는 아주 우아하고 아주 올바른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곧 공격을 받게 된다. 그는 고루하고, 늘 그 모양이라 조류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이 조류가 발전해 내려간다면 여전히 절제가 있단 말인가? 아주 두려운 것이다. 인류의 일체는 모두 조류 중에서 아래로 미끄럼 치고 있다. 문예작품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그림을 그릴 때 아주 멋있게 그리고 아름답게 그려야만 사람의 마음이 끌렸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착한 마음이 있기 때문인데, 좋다고 느낀 것이다. 당신이 지금 아주 좋은 그림을 그려도 그는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 착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제멋대로 그려 무슨 추상파라든가, 무슨 인상파라든가, 현대파의 것이라고 하면 그는 아주 좋다고 여긴다. 어디가 좋은가? 당신이 진정 사람의 이치를 가지고 말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말하지 못한다. 어떤 상태하에서 말하는가? 그런 흐리멍덩하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 들어가야만 비로소 그것이 좋다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바로 사람의 마성(魔性)이 나올 때의 표현이다. 즉 오늘날은 사람의 관념이 거꾸로 된 것뿐만이 아니라 마성도 이렇게 강해졌다는 말이다.

예전의 조각 작품은 대단히 멋지게 조각하여 그의 기교수법과 기초가 모두 대단히 좋았다. 지금은 한 무더기 쓰레기를 거기에 차려놓고는 이것을 작품이라고 하고, 게다가 거장의 고급 작품이라고 한다. 사람의 관념은 모두 이런 정도로 거꾸로 되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 미래의 세계는 곧 어떤 모양이겠는가? 나는 어느 나라에서 어떤 장난감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그 장난감은 사람의 대변모양이었다. 그런 모양의 장난감을 만들었는데 그래도 사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무엇을 숭배하고 있는가?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가? 이것은 다만 간단하고 간단한 사회 조류만이 아니다. 이른바 형태, 즉 관념의 변화이다. 이런 관념의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사람이란 말인가? 마(魔)만이 이러하다. 마는 악한 것이고 사람은 마땅히 착한 것으로서 선악이 분명하다. 당신이 바른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마를 좋아하게 마련이라, 이런 사람은 외형만 큰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 뿐, 일체가 모두 마(魔)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성이 증가함에 따라 당신의 얼굴・당신의 외형・당신의 신체가 모두 변해 가는데, 갈수록 더욱 추악하게 변하고 갈수록 더욱 흉악하게 변하여 눈길마저 모두 흉악한 빛을 드러내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인류가 이렇게 내려간다면 정말로 대단히 두려운 것이다! 만약 인류가 멈춰 서지 않는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나는 방금 한 가지 이치를 말했다. 바로 인류사회의 발전은 부동한 문명시기를 거쳤다는 말이다. 지금 석기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다. 그 석기시대는 이 지구에서 이미 몇 십 차례나 생겼던 것이다. 무엇을 석기시대라고 하는가? 바로 그 문명이 파괴되어 비교적 좋은 사람만이, 마치 노아의 방주에서 말한 것처럼 단지 극소수 좋은 사람만 살아남았는데, 그는 노동도구가 없다. 어떻게 하는가? 그는 돌을 깨고 깎아 노동도구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다시 인류가 발전하기 시작하여 새로운 문명으로 들어갔다. 이 과정을 사람들은 석기시대라고 말한다.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한 그런 석기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또 말하기를 사람은 원숭이가 변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모두 현대과학이 가져온 것인데, 가소롭지 않은가? 다윈의 진화론은 허점투성이다. 당신들이 믿어지지 않거든 다시 좀 연구해 보라.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되기까지, 원시생물에서 현대생물로 진화되기까지 중간과정이 전혀 없는데도 사람은 받아들였다. 이것이야말로 미신이다! 아울러 이번 차례 인류의 최대의 치욕과 추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괴상하다!

내가 방금 말한 것은 인류사회의 전반 상태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신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면 사람은 위험한가, 위험하지 않는가?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부동(不同)한 문명 시기의 인류는 왜 훼멸 돼야만 했는가? 마야문화는 왜 존재하지 않게 됐는가? 출토된 문물에서 그때 사람의 타락을 볼 수 있다. 서양 백인의 이전 한 시기 문명인, 백인의 선조는 바로 고대 그리스 인종이다. 지금의 그리스인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인종으로서 이런 인종은 아주 희소하다. 나는 그 백인종의 인도인이 바로 그러하며 아주 희소함을 발견하였다. 이 문화는 왜 훼멸되었는가? 고대 그리스에서 남겨진 문명과 출토문명 중에 동성애의 것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때의 생활은 몹시 부패하고 타락하였으며 아주 사치스러웠는데, 이렇지 않았는가? 이전 한시기의 백인 문명은 시작할 적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가 최후시기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이전시기 문화는 틀림없이 이렇게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후기로 발전되어 아주 타락했을 때에 신이 보니 이 사람은 안 되겠기에 곧 훼멸시켰다. 좋은 사람을 남겨 새롭게 발전시켰는데 바로 우리 지금의 백인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사람이 이처럼 무절제하게 발전해 내려간다면, 신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예수는 사람에게 자비함을 말했는데, 사람에게 재난이 있을 때 그가 와서 그를 믿는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이 모두 정말로 그를 믿지 않으면 그가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 부동한 시기의 인류 훼멸은 모두 인류의 도덕이 부패함으로써 조성되었는데, 대단히 두려운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려 하고 어떻게 발전하려 하는가 하면, 사람은 사회를 어느 상태에 도달되게 하려 하고, 사람은 자신이 말한 대로 되고자 했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여태껏 말한 대로 된 적이 없다. 사회를 더욱 좋지 않게끔 하였고 사람의 도덕을 갈수록 더욱 부패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최근 몇 년래 인류가 아래로 미끄럼 치는 속도는 대단히 빠르며 대단히 두렵다. 나는 여태껏 무슨 대재난에 대한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을 말하게 되면 사회에 대하여 일종 혼란을 조성할 것이기 때문에 책임지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이러한 것을 나는 하지 않는다. 있든지 없든지 나 역시 상관하지 않으며 나 역시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오늘 전하는 것은 정법이며 나는 당신들에게 모두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좋은 사람이 된다면 그 어떤 재난이 있다 한들 상관이 있겠는가? 바로 이러하다. 만약 인류사회의, 광범위한 사람이 모두 좋게 변한다면 내가 말하건대 그에게는 재난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역사상 어떠한 일이든 우연한 것이 없으며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어야 비로소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방금 이 문제를 말했는데 내가 생각하건대 당신들의 수련에 좋은 점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지금 형성하는 각종 관념은 당신이 법(法) 얻는 것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지금 인류사회는 어떤 모양인가? 당신이 법을 얻는 데 좋은 점이 있다. 내가 말한 것은 법이며 이치이다. 당신이 맞는다고 생각하든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든 당신 자신은 사상이 있기에 당신은 분석할 수가 있다.

방금 말한 것 역시 아주 높은 것이며 또 아주 첨예하고 관련되는 면 역시 아주 크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겨냥하지 않고 개인을 겨냥하지 않으며 단지 사회현상을 겨냥할 따름이다. 어떤 사람이든, 당신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에 상관없이, 오로지 당신이 진정하게 진심으로 수련할 수 있다면 나는 곧 당신을 책임져주는데, 당신이 수련하려 하지 않는다면 역시 방법이 없다.

이것은 법회이니, 여러분들은 심득체험을 말할 수 있다. 나는 마지막에 또 한나절 시간을 내어 여러분의 문제에 대해 해답해 주고 또 아주 많은 법을 말할 것이다.

오늘 오후에는 전문적으로 여러분에게 문제를 해답해 주겠다.

제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지 못한 사상을 제거해 버릴 수 있습니까?

사부: 이 문제는 보편성이 있다. 사실 그것은 우리 수련 중의 한 상태의 반영이다. 예를 들면 과거 그 오랜 수련방법은 과거 기타 종교를 포함하여 그는 수련인으로 하여금 좋지 못한 사상이 반영되어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그는 인위적으로 자신을 세상과 격리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수도원으로 갔고, 어떤 사람은 절로 갔는가 하면 또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산굴 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했다. 동시에 그는 장기간 깊은 정(定)에 들어야 했다. 그의 이런 입정(入定)은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쳐준 이런 입정(入靜)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서,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다 모르는 데까지 정(定)에 들었다. 당신은 그가 잠을 잔다고 해도 된다. 그의 사상으로 하여금 고요함에 들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말한다면 이 상태 그것은 主意識(주이스)가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가 오늘날 아직도 이런 오래된 수련방법을 쓴다면 엄중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장래에 더욱 큰 면적의 사람, 몇억이나 되는 사람이 와서 대법을 배울 것인데 여러분이 모두 이 상태에 들어간다면 인류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동시에 이런 방법은 다만 副元神(푸왠선)의 수련에만 국한되는 것으로서 主元神(주왠선) 수련에는 안 된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은 당신 자신을 확실하게 수련할 수 없고, 당신은 단지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당신의 副元神(푸왠선)을 수련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전하는 이 대법의 요구에 맞지 않으며, 우리 오늘날 직업이 있는 사람이 속인 사회 중에서 수련함에 적합하지 않다.

나는 사람이 수련함에 가장 관건적인 요소는 바로 그의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것임을 보았는데, 그의 사상이 진정하게 승화되면 일체가 역시 따라서 승화되는 것이다. 사람의 일체 행위와 사람이 사고(思考)하는 문제나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은, 당신의 마음과 당신 사상의 지배를 받는다. 당신이 자신의 마음, 사상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승화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제고이다. 그럼 오늘 우리는 직접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다시 말해서 직접 당신 이 사람을 가리켜, 당신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제고되게 하는 것으로서, 그런 다른 갈래의 길을 가지 않는다. 장기간 깊이 입정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면 副元神(푸왠선)에게 일체를 접수하여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라, 우리는 이러한 길을 걷지 않는다. 여러분이 고생스럽고도 고생스럽게 수련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최후에 당신이 아무것도 다 얻지 못하고, 단지 내세 중에서 복을 받을 뿐이라면, 내가 생각하건대, 내가 당신들에게 미안한 것이며 당신 자신들도 당신 자신에게 미안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길을 걷지 않는다.

그럼 나는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할 수 있고 또 속인 사회 중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하려고 매우 특수한 방법을 취했다. 당신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데서부터 당신을 개변시키기 시작한다. 과거의 수련방법은 가장 큰 한 층의 분자에서부터 미시적인 데로 발전하여 이 사람을 개변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전혀 다른 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만약 우리가 표면에서부터 자신을 개변하기 시작한다면 오늘 이 자리에 앉은 백 분의 구십몇은 모두 신통이 광대할 것이다. 지구 위에는 당신들을 놓을 수 없게 되는데, 왜냐하면, 일단 사람의 표피에 개변이 발생하면 당신은 집의 어떤 한 곳도 뚫고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한 층 분자 입자로 구성된 벽돌이며 시멘트, 그것은 당신에 대한 제약성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의 가장 큰 한 층 분자가 이미 완전히 고에너지물질로 전화되었고, 당신의 이 분자 아래의 더욱 작은 분자는, 그것으로 말하면 이미 차단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그 천(布)과 같이 당신이 그것에 숨을 불면 숨이 지나갈 수 있는 것처럼 당신이 뚫고 지나갈 수 있다. 이 세상의 일체는 당신에 대하여 이미 모두 작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안 된다. 인류의 사회 전반이 마치 신(神)과 같은 사회로 변해버릴 것이다.

그럼 신의 사회에서는 이렇게 수련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이런 하나의 미혹을 타파한 사회에서는 여러분이 모두 진실한 신의 표현을 보게 되므로 더는 이렇게 수련할 수 없다. 또 절대적으로 더 수련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수련하기가 쉽지 않으며 수련하기가 힘들다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그것은 미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미혹 중에서 수련해야만 비로소 수련하기가 가장 좋다. 게다가 이 공간은 바로 미혹된 공간이라, 우리는 상반 되는 방법을 취하여 미시적인 데서부터, 당신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신체에서 시작하여 당신을 점차 개변시킨다. 그런 다음 한 층 한 층씩 가장 큰 분자를 향해 돌파한다. 다시 말해서 인체의 표면을 향해 돌파하는데 줄곧 당신이 최후에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살의 세포, 이 한 층 분자로 조성된 살의 세포까지 돌파한다면 당신은 곧 원만(圓滿)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런 한 갈래 길을 걷고 있다.

이 제자가 묻기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지 않은 사상을 제거해 버릴 수 있는가? 라고 했다. 우리 많은 사람의 수련시간은 이미 아주 길다. 예전에 두뇌 속에 일찍이 좋지 못한 사상이 반영된 적이 있었는데, 왜 줄곧 수련하여 버리지 못했는가? 어떤 때에는 수련된 것으로 느껴지나 한 기간 시간이 지나면 그 좋지 못한 사상, 그것이 또 반영되어 나옴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찌 된 영문인가? 사실 내가 방금 말한 문제에서 바로 당신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미시적인 데서부터 당신을 개변시키고 있는데 아직 표면적인 데까지 개변시키지 못했다. 당신의 그 좋지 않은 사상을 층층, 층층으로 제거해 버리고 있으며 감소시키고 있는데, 아직 마지막까지 제거하지 못했다. 비록 마지막까지 제거하지 못했지만, 당신은 이미 상당히 괜찮게 수련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한 갈래 길을 걷기 때문이다. 비록 일부 제거되지 못한 사람의 사상이 남았지만, 그것은 바로 또 당신으로 하여금 원만에 이르기 전에 이어서 속인 사회 중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한다. 만약 당신이 속인의 사상이 조금도 없다면 당신 역시 속인 중에 있기가 몹시 어렵다.

만약 한 수련인이 사람의 사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사상 속 생각을 그는 무엇이든 다 알 수 있다. 사람의 일언・ 일행・일거・일동, 심지어 하나의 눈길도 당신은 그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다 안다. 사람이니까, 특히 사회 중의 속인은 마음속에서 반영되어 나오는 것이 모두 좋지 못한 사상이므로 당신은 아예 견뎌내지 못한다. 아울러 당신은 또 이 공기 중에 독이 있는 물질이 많기로 그야말로 대단한 것을 볼 수 있다! 전체 사회, 그것의 일절 좋지 못한 것이 모두 나타나게 되는데, 당신은 모두 보아낼 수 있다. 당신이 말해보라.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겠는가. 당신은 도저히 여기에서 수련할 방법이 없다. 왜 어떤 사람은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세상을 격리한 채 수련하는가? 그는 속인 중에 머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사상이 최후 일보에까지 이르지 못하면, 바로 당신의 분자가 최후의 일보에까지 개변되지 못했을 경우, 당신은 아직 속인 중의 사상이 반영되어 나올 수 있고, 속인 중에 감춰진 것을 포함한 좋지 못한 사상이 모두 있을 수 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수련하든지 나의 이 표면신체에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면, 이러한 나쁜 사상은 마찬가지로 모두 그처럼 강렬한 것이 아닌가?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이미 아주 많이 제고되었고, 좋지 못한 사상이 이미 대부분 제거되었으며 남아 있는 것은 무척 적고 무척 적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게다가 당신 자신은 이미 자신에게 좋지 못한 사상이 있음을 알고, 깨달았다. 이것은 당신이 예전에 느끼지 못한 것이다. 이는 모두 진보이며 모두 제고이다. 그뿐만 아니라 표현되어 나온 것, 그것이 비록 좋지 않고 심지어 어떤 때에는 아주 좋지 않지만, 그것 역시 아주 약한 것으로, 오로지 당신 자신이 확고할 수 있고 당신 자신의 主意識(주이스)가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억제할 수 있다. 예전에는 당신이 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이 이런 사상에 이끌려 좋지 못한 말을 하고 좋지 못한 일을 했으나, 지금 당신은 단지 좋지 못한 사상이 있음을 느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끌어가는 것은 몹시 어려워졌다. 내가 방금 말한 것은 바로 우리가 걷는 길이 곧 이러한 한 갈래 길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 자신이 이 사상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당신은 이미 제고하는 중에 있으며 당신의 좋지 못한 사상은 이미 아주 많이 제거되었다.

여기 앉은 여러분은 모두 수련하는 사람이라, 당신들 서로 간에 차이점이 그리 뚜렷하지 않은 것 같지만, 당신들이 속인 사회에 가서, 당신들이 수련하지 않는 그런 사람과 함께 있노라면 당신 자신은 모두 견딜 수 없음을 느낄 것이며, 당신은 그들이 하는 말을 다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느낄 것이다. 심지어 어떤 때 당신은 그들이 한 일이 너무나 가소로운 것을 볼 것이다. 왜 이럴 수 있는가?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그들과 매우 큰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조그마한 격차, 혹은 결코 크지 않은 격차라면 당신은 모두 이 느낌이 없을 것이다. 오로지 무척 큰 격차가 있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이 느낌이 있다. 하지만 당신은 또 이것은 그보다 겨우 조금 나음에 불과하다고 느낄 것인데, 이 역시 우리가 수련 중에서 당신에게 조성해준 상태로서, 당신으로 하여금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수련할 수 있고 함께 있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방금 말한 문제를 여러분들이 알아들었다면 곧 이러한 일이다. 하지만 되돌아 나는 또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은 오, 나는 원래 이런 일임을 알았다. 이제부터 될 대로 되라. 상관하지 않겠다. 무슨 나쁜 사상이든지 네가 어떻게 하려면 곧 어떻게 하든지, 이것을 다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당신이 방임하는 것으로서 수련이 아닌 것과 같다. 당신은 그것이 나쁜 사상이라고만 보지 말라.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데, 이러한 수련형식이기 때문에 점차 제거해야 한다. 당신 자신이 주동적으로 그것을 억제하지 않고 그것을 제거해 버리지 않으며 이 염두가 없고 확고하지 않다면 당신은 또 수련하지 않는 것으로 된다. 이것은 바로 이런 관계이다.

제자: 만약 나쁜 사상이 있으면 수련할 수 없습니까?

사부: 방금 나는 이미 이 문제를 해석하였다. 예를 든다면 당신의 그 좋지 못한 사상은 간단히 말해서 마치 한 가닥의 실과 같은데 우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잘라버리고 그것을 없애버리고 그것을 없애버리고 그것을 없애버리고 그것을 없애버린다. 완전히 제거해 버리기 전이라면 그것은 여전히 있게 마련인데 어찌 수련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을 잘라버리고 그것을 없애버리는 것이 곧바로 수련이 아닌가? 실제로 당신은 수련하여 이미 크게 진보된 것인데 바로 이 뜻이다.

제자: 저에게 연세가 많고 병이 있는 한 친척이 있는데 그도 제도를 받을 수 있는 부류에 속합니까?

사부: 이 뜻인즉 병이 있는 노인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말하는 것이잖은가. 우리 이 대법이 전해 나가는 표면적인 형식은 선택이 없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 오늘날 이 문은 비용을 받지 않는 열어놓은 것으로서 누가 들어와도 다 된다. 연분이 없는 사람은 그 자신도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즉 선택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만약 정말로 어떤 사람이 들어와 배우고 그가 수련하려고 한다면 나는 곧 책임져 주어야 한다. 나이가 얼마나 많던지, 나이가 얼마인지 또는 병이 있는지를 막론하고 나는 모두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관건은, 당신이 이곳에 와서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노인으로 간주하지 않고 병이 있는 한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는 이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당신이 늘, 나는 나이가 많은데 수련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수련할 수 있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있겠는가를 생각한다면, 당신 이 마음은 이처럼 집착하는 것이라, 곧바로 장애이다. 당신이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당신 생명을 늘리는 시간이 더욱 짧아진다.

어떤 사람에게 병이 있는데 그도 왔다. 처음에, 그는 들은 대로 “法輪大法(파룬따파)를 한동안 연마하면 그 신체가 모두 아주 좋아지며 병이 없어진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 법(法) 중에서 차츰 분명해짐과 동시에 병을 집착하는 사상을 제거해 버리면 그것은 문제가 없다. 만약 그가 병을 치료하려는 사상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의 수련에 심각한 장애가 조성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늘 마음속으로 어찌하여 나의 병은 낫지 않는가, 그들은 어찌하여 다 나았는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염두는 실질적으로 바로 그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연마하는 것으로 된다. 내가 이 대법을 전함은 사람을 제도하기 위한 것으로서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사람의 병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당신이 정말로 수련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병이 있는 신체를 갖고서는 수련할 수 없다. 진정하게 수련하노라면 수련 중 자연스럽게 당신의 병이 제거될 것이다. 하지만 병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당신에게 수련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신체를 정화(淨化)해 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병을 제거하기 위해 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나는 이 문제를 명확하게 말했다.

제자: 집에 있는 애완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사부: ‘총애’란 바로 사랑이고 바로 좋아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좋아하며,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이 뜻이 아닌가? 그래서 당신이 이 문제를 제출할 때에 당신은 이미 당신의 이 집착심도 써넣었다. 우리가 생물을 애호하고 대자연 중에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일체를 애호하는 이것에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든 모두 지나치면 안 되는데, 정말로 지나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야말로 이 지구 상의 가장 고급적이며 가장 완미(完美)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신 역시 이렇게 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동물(대소를 막론하고), 식물과 모든 생물은 모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만약 사람이 없다면 이러한 것들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 지역, 어떤 나라든 동물에 대한 총애가 이미 극단으로 나아갔으며, 동물에 대한 애호가 사람을 초월하였다.

나는 방금 신이 사람을 만들고 이 지구를 만든 것은 사람이 생존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했다. 이런 생물 역시 사람이 감상하도록 공급한 것이고, 사람이 놀도록 공급한 것이며, 사람이 생존하도록 공급한 것이고, 사람에게 음식물을 공급해 주는 동시에 지구를 번영시키는 것으로서, 일체가 모두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다. 반대로, 사람이 동물보다 못하다면 이것은 천리(天理)를 위반하는 것과 같다. 물론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비를 말하는데 일체에 대한 자비이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이 자비를 초월하여 한 가지 집착을 생기게 해서는 안 되며, 지나치게 이런 것을 애호하면 안 된다. 지나치게 어떠어떠한 것을 강조한다면 이는 옳지 않다. 근대부터, 특히는 유럽에서 나는 미국 역시 이러한 것을 발견하였는데, 사람들은 그 개를 지나치게 사랑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신이 사람에게 개를 만들어줌은 개에게 사람의 집을 봐주도록 한 것이지, 절대 그 개로 하여금 당신의 아들이 되게 하거나 사람과 마찬가지로 친구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절대 개와 동등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신은 어떠한 일이든 모두 지나쳐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은 부처로 수련될 수 있지만, 동물은 어떻게 해도 될 수 없고, 사람은 신으로 수련될 수 있지만, 동물은 어떻게 해도 안 되며, 사람은 천국세계로 갈 수 있지만, 동물은 어떻게 해도 안 된다. 동물이 가려면 그것이 내세에 사람으로 전생하여 다시 수련해야만 비로소 갈 수 있다. 내가 생각하건대 나는 방금 이 문제를 명백히 말하였다.

제자: 제가 그것들을 존중하고 보존하기 위해 다른 생물을 애호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부: 이 문제를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말했다. 아직도 집착하여 내려놓지 않는다면 나는 더 많이 말하지 않겠다. 나는 희귀한 동물에 대한 보호를 반대하지 않는다. 사람이 지나치게 자연계를 파괴하는 것은 좋지 않다. 대단히 좋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어느 한 가지에 대하여 너무 지나치게 한다면 역시 옳지 않은 것이다. 인심(人心)과 도덕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근본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것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 수련 중의 장애이다. 속인이 이러한 일을 지나치게 하여 동물과 사람을 동등시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모욕하는 것과 같으며 사람 자신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 인류의 존엄을 짓밟는 짓이다.

제자: 이미 돌아가신 부모와 친구가 저의 수련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매 한 사람, 그가 출생할 때부터 일생은 다 배치된 것이다. 그가 어느 날에 좋은 일이 있고 어느 날에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며, 그가 성장한 다음에 어느 학교에 가고 어느 대학에 가며, 졸업한 후에 어떤 사업을 하는가는 사실 내가 보건대 모두 정해져 있다. 사람의 노력 역시 그의 필연적인 것이 성사시킨 것이다. 사람 자신이 자신의 일생을 좌우지할 수 있는가? 당신이 무엇을 하려 한다 해서 당신이 해낼 수 있는가? 당신이 대통령이 되려 한다 해서 당신이 될 수 있는가? 안 된다.

실천 중에서 우리 사람은 모두 자신이 해낼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유도하는 것과 이 과학은 또 당신으로 하여금 분투하도록 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은 그가 어떤 것을 얻었을 경우, 마치 분투하여 얻어온 것으로 여긴다. 사실 당신이 너무 집착할 필요 없이 여전히 정상적으로 사업하고 생활을 해도 당신은 여전히 얻을 수 있다. 당신의 분투 역시 단지 당신이 이것을 얻게 되는 필연적인 것이 변했을 뿐인데, 사람 자신이 그것을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체 사회가 모두 이처럼 이른바 노력을 하고, 이처럼 고생스럽게 분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모두 이런 식으로 밀어가고 있기 때문에 당신도 이렇게 해야만 당신이 얻어야 할 것을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이는 한 사람의 변화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변화이다. 하지만 사람 자신은 자신의 일생을 개변할 수 없다. 그럼 당신은 자신의 인생마저도 다 개변하지 못하는데 당신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일생을 개변시킬 수 있겠는가? 개변시키지 못한다. 그럼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나의 친척과 친구, 나의 자녀를 나는 권력으로, 혹은 금전으로 그가 행복하게 하며 잘살도록 하겠다고 한다. 사실은,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아마 당신의 아들딸이, 돈이 있는 당신의 집으로 전생 됨은 그 역시 그의 전세의 복이다. 만약 그에게 이 복이 없다면 그 역시 물려받지 못하며, 그 역시 당신의 노력을 현실로 되게 할 수 없는바, 틀림없이 이러하다. 그는 혹시 당신의 지나친 노력 때문에 그의 생명이 아주 짧게 변할 수 있으므로 당신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하면, 혹은 당신의 노력으로 당신이 그에게 많은 재산을 남겨준다 해도 그가 도박하거나 주식투자로 단번에 다 잃어버릴 수도 있는가 하면, 또는 다른 무엇으로 돈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만약 그가 이 복이 없다면 그는 물려받을 수가 없다.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얼마나 되는 돈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잘 살고 행복하게 지내도록 하려고 한다. 사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것은 그리 간단하고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러한 복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이런 복이 없다면 절대 안 된다. 당신이 그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줄지라도 그는 또 큰 병이 생겨 이런 돈을 모두 치료비로 변해버리게 할 수도 있다. 인간 세상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은 보아내지 못하지만 나는 아주 선명하게 본다.

그럼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수련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수련인의 눈에는 행복의 함의가 달라진다. 속인 중의 행복은, 사실 그에게는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그는 다만 금전으로 바꾸어 온 한 가지 잠시간의 안일(安逸)로서 그것은 영원할 수 없다. 당신이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영원토록 행복하게 하며, 영원토록 사람의 몸을 유지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수련인이 바라는 것으로서, 영원히 고생을 겪지 않는 것이다. 천국세계에는 고통이 없다. 하지만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 자신이 아직 수련되지 못했는데, 당신이 또 다른 사람에게 이처럼 많이 주려고 한다면, 단지 한 가지 집착일 수밖에 없다. 집착이 있으면 그것은 또 당신의 수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수련하는 것이지 또 무엇이나 다 상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평상시와 같이 속인 중에서 생존할 수 있고 가족들과 같이 있을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도록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남겨주었으며 가정을 잘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수련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해지게 하자면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바로 그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래에 그 역시 제도를 받게 되는데 당신보다도 수련을 더 잘할지도 모르는바, 또 당신이 그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럼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나는 나의 수련을 통하여, 나는 나의 특수한 재간으로, 나의 신통으로 그를 행복해지게 할 수 있는가? 안 된다. 만약 그가 업력이 아주 크면 당신은 그를 대신하여 소업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당신도 수련하여 원만(圓滿)에 이를 수 없다.

나는 불교에 이런 말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고향 도시가 홍수에 잠겨 온 도시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다. 나중에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한 제자가 그의 신통을 펼쳐 온 도시 사람들을 모두 손에 잡아 쥐었다. 저녁이 되어 잠을 잘 때 이 사람들은 모두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이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손에 있으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큰물은 역시 발생했고 도시는 모두 잠겼다. 이튿날 아침, 그는 이제는 문제가 없겠구나, 도시는 비록 물에 잠겼으나 사람은 문제가 없겠다고 말했다. 이때 그가 손을 펴보니 온 도시 사람들이 모두 재가 되어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수련층차가 제한되어 있어, 그보다 더욱 미시적이고 더욱 방대한 신의 존재를 그로서는 알지도,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말한 그 분자와 대분자, 소분자 사이의 관계처럼 그는 다만 그의 이 경지 중에서만 신통을 펼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그의 경지를 초월한 신이 무엇을 하는지 그는 여전히 모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제각각 제 명(命)이 있게 마련이므로 수련 중의 사람은 마음을 단지 수련에만 두고 정진할 수밖에 없다.

그럼 또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만약 내가 수련하여 원만에 이른다면 나는 되돌아와 꼭 나의 육친을 제도하겠다고. 당신이 지금 이런 생각이 있다면 나는 당신이 집착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당신이 늘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곧 강대한 집착이다. 거의 원만에 이르러 이런 집착이 있다면 원만을 이룰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원만에 이르렀고, 당신이 대단히 큰 신, 혹은 대단히 큰 부처로 수련되었다면 당신은 이런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당신은 정말 있다. 당신이 당신의 육친을 제도함은 물론, 당신이 지구를 손에 쥐는 것 역시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마치 내가 방금 말한 이치와 마찬가지로서 이러한 일을 함부로 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당신이 당신의 사람을 제도하려 하고 당신이 그를 제도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방법을 생각하여 그로 하여금 제고하게 해야 한다. 당신이 그를 제고하도록 하지 못하고서 그를 천국으로 가게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절대 안 된다. 천국세계의 일체 것은 모두 더욱 미시적인 물질 입자로 조성된 것이라 표면상에 아주 반들반들하고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빛을 뿌린다. 왜냐하면, 물질이 더욱 미시적일수록 그의 에너지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땅 위의 것을 갖다놓는다면 그것은 가장 성결한 전당(殿堂)에 쓰레기를 갖다놓은 것과 같으므로 그것은 안 된다. 당신은 반드시 이 쓰레기로 하여금 가장 좋은 것, 신선한 것으로 변하게 해야만 비로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사람을 책임지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좋게 변하도록 해야만 책임질 수 있다.

여러분 알다시피 예수가 속인 중에 와서 사람을 제도할 때, 그는 사람을 위하여 고생을 겪었으며 그는 최후에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당신들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당신들은 다만 유대종교가 이런 좋지 않은 일을 하였다는 것만 알 뿐이다. 사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 그것에는 별개의 요소가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일 당신들이 방금 말한 이 뜻과 같다면 그 예수는 그처럼 큰 능력이 있고 백인들의 천주(天主)가 그의 아버지인데, 그렇다면 그가 하고자 하면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또 그렇게 큰 힘을 들여 지상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일을 하게 하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려주고 또 사람을 대신하여 그렇게 많은 고통을 감당하는가 하면, 바로 또 다른 종교의 압제와 파괴를 받기도 했는데, 그가 구태여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다시 말해서, 그에게 비록 그처럼 큰 능력이 있을지라도 그 역시 사람의 마음이 좋아져야만 비로소 이 사람을 제도할 수 있다. 만약 이 자리에 앉은 당신들, 당신들 어느 사람이, 자신의 心性(씬씽)으로 하여금 수련 중에서 원만에 도달하도록 하지 못한다면 나 역시 방법이 없다. 나는 당신에게 법리를 말해줄 수 있고, 당신을 도와 공을 연화(演化)할 수 있으며, 또 당신을 대신하여 일부분 업을 없애버릴 수 있고, 또 당신을 보호할 수 있으며, 또 당신에게 당신이 모르는 많고 많은, 원만 중과 원만 후에 필요한 일체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의 그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그 마음이 제고되지 않으면, 이 일체는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면 부처 역시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당신을 제고시킬 방법이 없다고 한 것은, 이 사람이 나쁘게 변했는데 그에 대하여 속수무책이라는 말이 아니다. 어찌 속수무책이겠는가? 그를 아래로 떨어뜨리거나, 없애버리거나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신은 자비(慈悲)하기에, 예수가 말한 그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 아니다. 이는 예수가 한 말을 모욕하고, 예수를 모욕하고, 신을 모욕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사랑을 예수가 말한 그런 사랑,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주하다니. 예수가 말한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자비(慈悲)”이다. 다만 그는 서양 사람의 언어로 말했는데 당시 서양문화에는 “자비”라는 이런 개념이 없었으며 “자비”라는 이런 낱말이 없었다. 이것은 이 부동한 시기, 부동한 지역의 문화적인 차이로 말미암아 조성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문제에 대하여 나는 이미 아주 전면적으로 말했다. 바로 이러한 일인즉, 속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수련 중에서 어떻게 대할 것인가, 최후에 당신이 수련되면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제자: 우리가 어떤 조건을 갖춰야만 법을 널리 선전할 수 있습니까?

사부: 어제 나는 각 지역에서 대법 일을 하는 수련생들이 함께 모여 교류하는 것을 들었는데 나는 정말로 아주 기쁘다. 첫째로, 나는 법에 대한 당신들의 그 확고한 마음, 당신들 자신에 대해 책임지려는 그 마음을 보았다. 동시에 당신들은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려 하고 있는데 나는 참으로 당신들을 위해 기뻐하고 있다. 교류를 통하여 당신들은 아마 부동한 지역의 상황에 근거하여 점차 당신들의 경험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건대, 어떤 조건이라고는 전혀 없다. 또 어떤 물질적인 조건 또는 기타 권력 방면의 조건을 갖출 수도 없다. 단지 한 가지가 있다.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열정을 가지고 하면 당신은 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이든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 즉 당신은 사람에게 너무 높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내가 오늘 한 이런 말을 포함하여 현재 당신의 법에 대한 인식을 그에게 말한다면 그는 곧 겁을 먹을 것이다. 당신들은 느끼지 못하는데, 당신들은 수련 중에서 점차 제고하여 이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처럼 높은 이치를 인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속인이라, 그의 사상은 아직도 속인 중에서 어떻게 돈을 벌겠는가, 어떻게 이런 사업을 하겠는가, 어떻게 사장의 환심을 사겠는가 하는 따위의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첫 자리에 놓인다. 당신이 이처럼 높은 것을 말하면 그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신이 그에게 가장 간단한 이 글자의 표면적인 이치를 말해주면, 내가 생각하건대 연분이 있는 사람은 듣기만 해도 그는 배우려 할 것이고, 연분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그에게 어떻게 권해도 그는 역시 배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점이 있다. 여러분은 절대 억지로 사람을 끌어당기지 말라. 남이 배우려하지 않는데도 남에게 배우라고 하거나, 당신은 나의 친구이고 당신은 나의 육친이기 때문에 배우지 않으면 안 되며 꼭 배워야 한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는 여기에 와서 또 좋지 않은 말을 할 것이며 나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반드시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제자: 어떠한 상황에서 우리 法輪功(파룬궁)이 사람과 지구의 발전에 대하여 기독교와 일치할 수 있습니까?

사부: 물론 신수련생인지라, 나는 여러분이 법 공부가 깊지 않다고 탓하지 않는다. 내가 말한 것은 우주의 이치일 뿐만 아니라, 우주의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우주의 중생, 부동한 층차의 신과 사람에게 생명환경을 창립해 줄 수 있는 이런 대법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기독교와 일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마치 아주 화려하고 웅장한 대궁전이 어떻게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집과 같을 수 있는가 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함께 논의할 수 없다. 이 우주대법, 그는 부동한 층차 중에서 부동한 층차 중의 생명에게 생존환경과 조건을 창립해 주었다. 다시 말해서 그 층차 중의 생명은 그 한 층의 이치에 부합되고 그 한 층 우주의 법에 부합되어야만 비로소 거기에서 생존할 수 있다. 더 간단히 말하면 바로 당신들이 장래에 그런 환경 중에서 생존하고자 한다면, 당신들이 그만큼 높이 수련될 수 있는가에 달렸다. 당시 예수가 말한 이치는, 사회 중의 속인이 어떻게 수련되어 그의 세계로 가는가 하는 이치였다. 그의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좀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 이 은하계 중의 한 작은 범위, 우리 이 은하계에 대응되는 천체(天體) 중에 있다. 예수의 층차는 동양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부처의 층차와 같다. 하지만 서양 백인이 말하는 천주(天主)는 훨씬 높아 이 층차를 몇 배나 벗어났다. 그러나 모두 소우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이 대법은 끝도 한정도 없는, 헤아릴 수도 없는 이런 우주를 만들어냈는바, 온 세계의 모래보다도 더 많다. 그러므로 당신이 말해보라. 그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예수가 말한 이치는 다만 끝없는 대법 중 소우주의 여래 이 한 층차 중의 법(法)일 따름이다. 그들은 이런 관계이다.

예수는 대단히 좋은 신이다. 이것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신이 모두 이렇게 인정하고 있다. 그럼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는 사람을 제도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이는 어떤 문제인가? 하지만 기독교는 이 십자가를 신의 상징으로, 천국세계의 상징으로 삼아 기독교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신에 대한 최대의 불경이다. 이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지 신이 이렇게 하라고 한 것이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십자가는 무덤에 박아놓은 것으로서 그것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죽음을 대표하지 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 중의 모든 신은 다 사람이 이런 일을 한 것을 질책하고 있다. 또 기독교는 예수가 십자가에 박힌 고통스러운 형상을 표지로 삼는데 이는 신이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아직도 이렇게 하고 있다. 몇백 년이 되도록 사람은 이렇게 신에 대하여 불경(不敬)한 일을 계속해 오고 있다.

예수는 많은 위대한 형상이 있으며 속인 중에 많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당신들은 그의 그 휘황하고 위대한 형상을 상징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그가 십자가에 박힌 형상을 상징으로 삼는바, 당신은 신을 존경하는 것인가, 아니면 신을 증오하는 것인가? 그에게 영원히 십자가에 박혀있으라는 것인가? 사람, 당신들은 당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어느 날 내가 미국에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는데 대만에 유리공예를 만드는 두 사람이 있었다. 듣건대 대단히 유명한 부부였다. 그들은 불상을 예술품으로 삼아 많고도 많은 유리예술품 불상을 만들었다. 부처를 예술품으로 간주하는 자체가 이미 부처를 욕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불상을 모두 몸이 없고 머리가 하나이고 얼굴이 반쪽인 것으로 만들어냈는데 부처를 그 현대파의 형상과 그 인상파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위대한 신이다. 과거의 사람은 신을 말하고 여래 부처를 말할 때면 모두 공경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이 생겼는데 어찌 감히 그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이 그를 표현하고 불교를 선전하며 좋은 일을 한다고 여기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엄숙하지 못함이 아니라, 이는 최대의 불경이다. 사실 당신은 부처를 욕하고 있고, 부처를 비방하고 있으며, 부처의 위대한 형상을 왜곡한 것으로서 가장 나쁜 일을 한 것이다. 나는 그 날 사람의 관념이 모두 거꾸로 되었다고 말했는데 사람은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착한 것과 악한 것, 바른 것과 사악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 못하는바, 일체 관념이 모두 거꾸로 되었다.

제자: 저는 왜 法輪功(파룬궁)을 수련하면서 기독교 일을 할 수 없습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의 기독교 일은 다만 사업일 뿐이라, 완전히 거기에서 사업할 수 있다. 내가 보건대, 나 역시 지금의 종교를 수련으로 여기지 않고 그것을 종교 사업으로 여기는데, 사람을 제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확실하고도 확실한 사업이지 수련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의 진정한 제고를 보증하고, 당신을 이끌어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나는 당신에게 전일(專一)하게 수련하라고 하는바, 이는 당신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좋은 점이 있다.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문제는 내가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이미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비록 이 법이 아주 클지라도, 그런 큰 법에 당신은 여전히 그 속에 무엇을 섞는데, 낮은 것을 섞으면 안 된다. 당신 자신이 수련한 신체와 당신이 수련해 내는 일체를 모두 난잡하게 할 수 있고, 당신으로 하여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 있는바, 당신은 당신 자신이 나아가는 길을 파괴하고 있다. 나는 기관차이고 당신들은 모두 열차 속에 앉아있는데, 당신이 레일을 모두 헐어버렸다. 이 레일은 이 기차에 맞춰 설계한 것인데, 만약 당신이 이 레일을 좁은 레일로 바꾸어 놓는다면 당신이 보건대 당신이 그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어떤 것도 그 속에 섞을 수 없으며, 순수하고 올바르게, 단일하게 수련해야만 비로소 원만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할 때에 이 문제는 당신이 마음을 써서 『전법륜(轉法輪)』의 ‘불이법문’ 그 한 편을 보라. 마음을 조용히 하고 보라. 나는 여기에서 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정말로 당신들을 잘되게 하려는 것이지, 어느 종교를 비방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여기에 앉아있게 됨은 연분(緣份)이라, 내가 만일 당신에 대하여 책임지지 못 한다면 나의 문제이고, 당신 자신이 자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똑똑히 말해야 한다.

제자: 예수님은 현재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사부: 예수는 그의 그 경지 중의 한 위대한 신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기독교의 일을 더는 책임지지 않으며 더는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다. 종교는 사람이 지어낸 이름이다. 예수가 세상에 있을 적에 자신을 기독교라고 말한 적이 없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을 때에도 자신이 불교라고 말한 적이 전혀 없다. 사람이 그것을 속인 사회 중의 일부분으로 간주하여 속인 사회의 이름인 ‘종교’로 지어 정치적인 일에 참여시켰으며 그것을 곧바로 무슨 종교라고 불렀다. 그것은 이미 진정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여 되돌아 올라가게 하거나, 원만에 도달하여 천국으로 가게 하는 조건을 잃었다. 심지어 많은 종교 중의 사람이 모두 정객(政客)이 되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돈벌이를 한다. 그럼 어찌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어찌 좋은 사람으로 변하여 천국으로 되돌아 올라갈 수 있겠는가? 그렇게 더러운 심리인데 예수가 어찌 금빛 찬란한 신의 신체를 당신에게 줄 수 있겠는가? 그 비교할 바 없이 순결한 성체(聖體)를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좋지 못한 사상과 온통 업력인 신체로 그를 오염시키게 할 수 있는가?! 내가 말한 것은 법리(法理)이며, 문제를 제기한 수련생에게 한 것이 아니다.

제자: 저의 다리와 무릎에 모두 문제가 있는데 결가부좌를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만약 당신이 병이 있다고 하는 거라면 나는 여태껏 ‘병’이란 이 개념을 모두 승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업력이 조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병은 외래적인 영체가 조성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외상(創傷)이 있는 거라고 한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오로지 당신이 자신을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면 당신이 생각지도 못하던 기적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 예전에 어떤 사람은 못을 박고 철판을 넣었지만, 나중에는 모두 결가부좌를 하였다. 못과 철판은 다만 이 가장 큰 입자로 구성된 신체에 박힌 것일 뿐이다. 물론 내가 말한다면 이것은 수련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천천히 연마하노라면 8, 90세 되는 사람도 나중에는 모두 다리를 틀어 올렸다. 하지만 나는 또 당신이 지나치게 강제로 하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지금 아직 그리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 분명히 반가부좌도 아직 틀지 못하는데 기어코 결가부좌를 하려고 하다가 마지막에 다리를 부러뜨린다면 그건 안 된다. 집착심이 강해지기만 하면 곧 문제를 조성할 수 있다. 급히 이루려는 그 마음 역시 좋지 않다. 수련은 용맹정진해야 한다. 이 점은 맞는다. 그러나 다만 법에서일 따름이다.

제자: ‘삼점일선(三點一線)’의 생각이 나로 하여금 아주 빨리 잡념을 배출하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보아하니 당신은 책을 보지 않았다. 우리 『전법륜(轉法輪)』이란 그 책은 당신에게 일체 문제, 특히 초급적인 문제를 해답해 줄 수 있다. ‘삼점일선’은 도가의 연공에서 채용하는 방법이다. 지금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므로 이 동작과 방법은 모두 가지면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히 잡념을 배제하는데 도달하게 할 수 없다. 인위적으로 어떤 방법을 취하여 입정(入靜)에 도달하도록 하려는 것은 모두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영단묘약이 없다.

진정하게 입정할 수 있게 하려면 다만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당신이 끊임없이 대법 중에서 자신을 제고하고 각종 집착심을 제거해야 한다. 당신의 집착심이 적어질수록, 당신은 당신이 그 곳에 앉았을 적에 마음이 갈수록 청정(淸淨)해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고, 최후에 당신이 원만에 가까웠을 때 당신은 어떤 집착심도 다 없는가 하면, 당신이 그곳에 앉기만 하면 곧 定(띵)에 드는 것을 발견할 것인데 그것은 이렇게 제고해 올라온 것이다. 과거 기타 종교 중에서 또는 기타 고대 그 심산 속에서 수련한 것은, 그는 副元神(푸왠선)수련으로서, 主元神(주왠선)으로 하여금 마비되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속인 사회 중의 사람이 수련하도록 할 수 없으며 더욱이 主元神(주왠선)을 수련시킬 수 없다. 중국의 일부 도가 수련인은 술을 많이 마셔야 하는데, 당신들은 이걸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술 주전자를 들고 술을 마셔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다가 나중에 그곳에 누워 잠이 들면 3일, 5일, 일주일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왜 이렇게 하는가? 그는 곧 主元神(주왠선)을 마비시키고 副元神(푸왠선)을 수련시키는 것을 채택하였다. 당신이 보건대 그는 거기에 누워서 잠들었고 취했지만, 그의 副元神(푸왠선)은 나갔다. 이런 신선들은 역사상에 많고도 많은 신기한 기적을 남겨 사람들은 아주 위대하고 대단하다고 여겼다. 나는 그 사람이 아직도 아주 가련하다고 여긴다. 그는 여전히 내세 중에 윤회전세(輪迴轉世)하게 되는데 나는 그가 또 전생 되어 나온 것을 보았다. 바로 이러하다.

여러분은 꼭 기억해 두어야 한다. 수련은 반드시 전일(專一)해야 하는 것으로, 어떤 다른 공법의 생각도 하지 말라. 갖고 온다면 당신을 교란할 것이며, 당신의 공을 불순하게 할 것이다. 당신은 되돌아갈 수 없고 수련하여 올라갈 수 없으며 원만할 방법이 없다. 또 인위적으로 무슨 방법을 취하고 지름길을 걸어 자신을 입정(入靜)하게 하거나 제고해 올라오게 하려고 하지 말라. 그럼 수련에 문제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당신은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당신의 이 마음을 제고해야 한다. 뭇 신들은 모두 당신들을 보고 있다. 절대 무슨 다른 방법을 취하지 말라. 모두 당신의 마음을 제고함에 이르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이 제고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동작은 원만을 이루는 보조적인 수단이지 절대로 진정하게 제고하는 원인이 아니다. 바로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공도 올라오게 된다. 다시 말해서 동작수법에서 공으로 하여금 그의 연련(演煉)을 가속하여 제고해 올라오게 한다. 만약 당신의 心性(씬씽)이 요만큼 높은데 당신이 나는 연련(演煉)을 가속하여 그에게 더욱 높게끔 하려고 생각한다면 높일 수 없다. 단지 당신 心性(씬씽)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心性(씬씽)제고를 첫 자리에 놓는다. 즉 사람이 얼마나 높은 표준이 있으면 공이 그만큼 높은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이다. 어떤 수련방법을 막론하고 당신은 모두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로서, 어떤 종교 또는 어떤 수련방법도 모두 따라야 한다.

제자: 제5장 공법에 의념을 가해 넣을 수 있습니까?

사부: 절대로 가하면 안 된다. 만약 조용해지지 못하면 우리도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당신은 때로, 나는 실로 방법이 없다, 교란으로 인해 나는 입정(入靜)할 방법이 없다, 이 머릿속은 그야말로 혼란하기가 그지없다고 말할 것이다. 왜 조용해지지 못하는가? 이는 당신이 속인 사회 중에서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과 업력이 조성한 사상 상태지, 이는 당신의 진정한 사상이 아니다. 당신은 수련하기에 그것을 모두 제거해 버리려 한다. 그래서 그것이 말을 듣지 않고 그것이 혼란을 피워대어 당신으로 하여금 입정(入靜)하지 못하게 하고 당신에게 어떤 혼잡한 생각이든 다 하도록 한다.

수련하자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야 하며 자신을 수련하여야 한다. 만약 당신이 자신을 똑똑히 분별할 수 있다면, 당신은 생각하기를, 이건 내가 아니다, 너는 생각하라, 나 자신은 입정하겠다, 나는 네가 언제까지 망상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한다. 그것을 다른 사람의 사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당신을 찾고 그것을 똑똑히 분별할 수 있다면 이런 방법도 괜찮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자신을 제삼자로 여기고 내가 볼 테다, 네가 난잡하게 허튼 생각을 하는데 나는 네가 언제까지 생각하는지 볼 테다라고 한다면 아마 많이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단지 자아를 분별하고 主意識(주이스)를 강화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지 절대적인 입정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왜 이렇게 해야만 될 수 있는가? 왜 방금 말한 것을 채용하면 안 되는가? 왜냐하면, 그건 모두 소도(小道)의 방법이기 때문에 당신으로 하여금 집으로 돌아가게 할 수 없으며 모두 心性(씬씽)이 제고되지 않고 인위적으로 올라가고자 생각하는 것인즉 그것은 안 되며, 해낼 수 없다.

왜 나는 당신에게 이런 방법을 알려주는가? 그것은 절대적으로 입정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좋은 면이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어느 것이 당신의 사상이 아니고 어느 것이 당신의 사상인가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좋지 못한 사상을 당신은 당연히 승인하지 않을 것인데, 그렇다면 제거함도 당연히 빠르다. 그것 역시 수련은 자신에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린 것이 아닌가? 왜 내가 당신에게 그것을 승인하지 말라고 하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 신체의 어느 부위가 당신이 아닌가? 당신의 손은 그에게 어떻게 움직이라면 그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면, 당신의 팔은 그에게 어떻게 움직이라면 그는 어떻게 움직이고 당신의 머리는 그에게 어떻게 움직이라면 그는 어떻게 움직이는데 그는 당신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사상을 당신이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지만 그는 왜 조용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그는 당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당신은 깨끗한 것이다. 모두 후천적으로 오염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닦아(修)버리고 포기하고자 한다. 이것이 곧 그것을 배척하는 것이다.

제자: 동성애자는 그의 이런 행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지…….

사부: 당신의 말은, “그가 이런 행위를 버리지 않는 동반자의 상황에서 수련한다.”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다. 나는 어제 한 가지 일을 말했다. 즉 내가 말한다면 신은 이미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비록 당신은 아직도 종교를 수호하고 있지만, 예수는 책임지지 않는다. 원래는 종교도 승인하지 않았는데 예수는 오로지 되돌아 승화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만 승인할 뿐이다. 왜 사람을 책임지지 않는가? 바로 지금의 사람은 이미 사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인데 정말로 이러하다. 역사상 여태껏 지금의 사회처럼 이처럼 난잡한 적이 없었다. 나는 어제 말했다. 무슨 마피아라든가・마약 흡입이라든가・변태적이라든가・성 해방이라든가・성적으로 난잡한 것이라던가・난륜이라든가, 동성애를 포함한 사람의 관념의 전변이라든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은 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한 남자, 당신에게 한 아내를 주는 이것은 신이 규정한 것이다. 사람은 지금 동성(同性)의 사람을 동반자로 삼으려고 하는데, 신은 사람이 지금 이미 사람의 관념이 아니므로 이렇게 하고 있다고 여긴다. 당신이 당신의 사상을 제멋대로 방치하고 있는데 당신의 사상은 마치 내가 방금 말한 그러한 사상으로서 사실 그것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동성애를 조성한 관념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나쁜 것에 이끌려 한 것이지만, 당신 자신은 도리어 그것에게 마비되어 버렸고 당신 자신도 못된 놈들과 휩쓸려 나쁜 짓을 하며 그것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찾아야 하며 다시는 이런 더러운 짓을 하지 말라. 신이 볼 때 그것은 더러운 것이다. 정부가 그것을 승인하든 안 하든 말이다. 당신 정부의 법령은 우주의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의 법령은 사람이 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법률을 정할 때 모두 사람을 다스리려는 마음으로 제정하거나 권력을 수호하고 표를 얻기 위해 마음을 어기고 제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는 착한 생각이 없다.

내가 생각하건대 제출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가 이 문제가 잘못된 것임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람은 이미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 어느 것을 응당 해야 하고 어느 것을 응당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사람은 모두 사회의 조류에 따라 아래로 미끄럼 치고 있고 인류의 도덕은 일일천리(一日千里)로 미끄럼 치고 있으며 부패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모두 이 큰 물결 속에 있기에 좋고 나쁨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수련하기 전에 이러했다면 이러한 것이라,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이다.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은 마땅히 우선 정정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수련인 중으로 들어와 수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최후에 승화하여 올라가 더욱 순결하고 더욱 고상한 사람, 신의 경지 중에 도달한 신과 같은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은 절대 수련인에게 이런 짓을 하라고 하지 않을 것이며 속인에게도 이렇게 하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제자: 지구 이외의 영체와 소통할 어떤 방법이 있는지요?

사부: 보아하니 당신의 집착심이 아직도 적지 않다. 오늘 이러한 문제 대부분은 다 처음 온 사람들이 제기한 것이다. 사람은 많은 영화를 보았고 많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보았으며 많은 사회적인 일이 당신을 물들임으로써 일종의 허망한 변이사상(變異思想)이 형성되었다. 당신이 말해 보라. 어떻게 영체와 소통하겠는가를.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속인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으며 또한 이 능력이 없다. 만약 당신이 정말 영체와 소통할 수 있다면 당신 자신은 또한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에너지가 없으므로 당신은 위험하게 되며 때로는 생명마저 빼앗길 수 있다. 아울러 당신은 그런 두려운 영혼은 볼 수 있으나 고급 생명은 조금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의 층차가 너무나 낮아 다만 사람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두려운 일이다. 만약 당신이 이 지구 이외의 생명과 소통한다고 말한다면 더욱 어렵다. 지구 이외의 생명도 다만 우리 사람이 볼 수 있는 이런 물질공간에 있는 다른 성구(星球) 상의 생명일 따름이다. 이러한 생명, 그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은 짐승이며 동물의 일종이라고 여긴다. 그것은 제멋대로 유린하고 제멋대로 당신을 가져다 실험한다. 그것은 사람을 그것들의 성구(星球)로 잡아가서는 장(籠) 속에 가두어 놓고 그것의 사람들에게 보게 한다. 우리 지상에 많은 사람이 실종된 것은 그것에게 잡혀간 것이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오늘날 인류의 과학은 바로 그것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왜 외계인은 사람에게 지금 이런 과학적인 것을 만들어주었는가? 왜냐하면, 그것의 성구(星球)는 이런 것이며 그것은 그것을 이 성구(星球)로 갖고 와서 최후에는 사람을 대체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체가 아주 완벽(完善)하고 완미(完美)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것은 인체를 가지려 하고 그것은 최후에 사람을 대체하려고 한다. 사람의 분자세포의 한 층차 중에 그것들의 것을 넣는데 지금 이미 이렇게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큰 면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래서 내가 오늘 당신들을 제도함에 또 단지 당신들에게 자신이 제거하려는 모든 집착심의 문제, 업력의 문제를 제거해 줄 뿐만 아니라, 나는 또 이런 것들을 청리(淸理)해 주려 한다. 인류의 발전은 아주 두렵다. 언젠가는 컴퓨터가 사람을 지휘할 것이다. 지금의 발전은 이미 이 추세이다. 사람은 곧 컴퓨터, 기계의 노예가 되고 마지막에는 외계인에 의해 대체된다. 왜 컴퓨터의 발전이 이처럼 빠른가? 사람의 머리가 갑자기 그처럼 활성화되었는가? 모두 외계인이 사람의 사상을 조종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외계인은 당신들 컴퓨터를 쓸 줄 아는 매 한 사람에게 모두 번호를 달아놓았는데 정말 이러하다. 우리 수련생은 내가 모두 그에게 청리(淸理)해 주었으므로 당신이 컴퓨터를 쓸 경우 그것의 교란을 받지 않는다.

왜 외계인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떤 외계인은 바로 그런 성구(星球)에서 생긴 것이다. 또 어떤 외계인, 그것은 왜 늘 지구에 오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예전에 지구인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이 지구가 아니라, 지구 이 위치에 있던 예전의 지구이다. 이 지구는 이미 여러 번 바뀌었다. 매 한 차례 바뀔 때마다 모두 일부 생명이 있게 되는데 신이 만든 부동한 형상의 생명이었다. 우리 지금의 사람과 비슷한 것도 있는가 하면 또한 부동한 생명체를 만들어냈다. 일부분은 당시에 비교적 좋았기 때문에 그를 보존시키고 그를 없애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다음번 지구의 인류발전 시기로 들어가게 할 수 없어 그를 다른 성구(星球)로 보냈다. 매 한 차례 모두 이렇게 하였다. 동시에 이 우주에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는 부동한 시기의 지구 상의 사람이었다. 바로 이 목적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방임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발전하게 되었다. 그들의 기획 중에서 각양각색의 과학 방법이 만들어졌는데 우리 지구 이런 식으로 된 것도 있고 또 다른 형식도 있는데, 각양각색의 발전방식이다. 물론 그것들은 과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르는 이름은 그것들의 언어이고 그것들의 개념이다. 이런 것들이 갈수록 더욱 나쁘게 변했고 우주 대법이 빗나감에 따라 그것들도 갈수록 더욱 나빠졌다. 그래서 전체 외계인은 모두 철저하게 제거 중이며 전체 우주는 모두 그것들을 청리(淸理)하고 있다. 지금 위에서는 이미 청리가 끝났다. 지금 단지 지구로 도망쳐 와서 사람 중에 섞여 있으며, 사람 몸에 붙어있는 것 또한 기타 유형적인 것만 남았을 뿐이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보고 있다. 지금은 그것들이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게 두지만 시간상 머지않아 그것들을 송두리째 없애버릴 것이다. (열렬한 박수) 인류의 부패도 그것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는 죄악이다. 그래서 반드시 깨끗이 없애버려야 한다.

제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사부님께서 제1장 공법을 세 번 연마하고 제2장 공법을 반시간 연마하라 하셨다고 하는데요.

사부: 매 사람의 상황이 다르므로 당신이 아무리 긴 시간을 연마해도 다 괜찮다. 보통 정공(靜功)은 연공을 적게 하면 그리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공법은 시간이 있으면 많이 연마함이 비교적 좋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종일 연공만 해도 안 된다. 당신의 사상 경지가 그렇게 높은 데에 도달하지 못하면, 당신이 연공해도 공은 자라 오르지 못한다. 그래서 반드시 마음을 수련함이 첫째이다. 왜 내가 여러분에게 책을 많이 보라고 하는가? 책을 많이 보면 당신은 무수한 이치를 알게 될 것이다. 즉 책을 많이 보면 당신은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시킬 수 있다. 이건 고정적인 시간제한이 없다. 내가 생각하건대 제2장 공법을 연마함에 반 시간보다 적으면 효과가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되는가, 되지 않는가. 역시 괜찮다. 당신의 시간에 근거하라.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럼 제5장 공법은 당신의 공력에 근거하여 연마하라. 당신이 다만 15분 동안 다리를 틀 수 있는데 내가 당신에게 1시간 연마하라고 한다면 실제적이 아니다. 그렇잖은가. 능력에 따라 연마하라. 하지만 반 시간이 큰 고비이다. 당신이 어떻게 다리를 틀든지 반 시간 틀었을 때가 틀림없이 큰 고비인지라 더 돌파해 나가자면 특히 어렵다. 하지만 일단 반 시간을 돌파한 후에는 반 시간 그 고비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다.

제자: 각 나라는 모두 자신의 특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法輪大法(파룬따파)가 더욱 빨리 발전될 수 있게끔 할 수 있습니까. 예컨대 스위스에서는요?

사부: 이건 당신들이 어떻게 자신의 상황에 의하여 당신들 더욱 많은 사람이 대법을 얻게끔 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남에게 얼마나 되는 돈을 준 것이 착한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말한다면 당신은 단지 그의 일시적인 행복, 안일을 위함에 불과할 따름이다. 만약 당신이 그에게 대법을 준다면 그는 생생세세에 모두 끝없이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이 그에게 준 것이 얼마나 진귀한가?! 중국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된다(朝聞道 夕可死).’는 한마디 말이 있다. 물론 내가 아침에 법을 들었으니 저녁에 죽는 것은 아니다. 이 뜻이 아니다. 내가 아침에 도를 들었고 법을 들었거니 저녁에 죽는다고 해도 나는 정말로 다 두렵지 않다는 말이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사람들이 죽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의 머리에 법을 담았는데 그 지옥이 감히 당신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가 감히 대법을 받을 수 있겠는가? 감히 받지 못한다. 그럼 거꾸로 말한다면, 당신 머릿속에 법을 담을 수 있는 이 한 부분, 그는 아직도 좋지 못한 그 한 부분일 수 있는가? 바로 이 뜻이다. 어떻게 하면 대법이 부동한 나라의 특점에 부합되겠는가? 그건 여러분 자신에 의해 하는 것이며 이럴 수밖에 없고 특수하게 어떻게 해야 하는 방법이 없다. 예컨대 어떤 민족은 음악 듣기를 즐기고 어떤 민족의 사상은 늘 생각하기를 즐기고, 어떤 나라 사람은 구속 없이 방임하기를 즐기는데 그의 부동한 특점이 아닌가. 여러분은 부동한 특점・사람의 행위로 당신들 자신이 가서 하라. 내가 생각하건대 잘할 수 있다.

제자: 좋고 나쁜 사람을 어떻게 구분합니까?

사부: 어떤 것이 좋은 사람인가? 어떤 것이 나쁜 사람인가? 당신들은 그런 나쁜 짓을 하는 그가 바로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어떤 사람도 보면 역시 몹시 나쁘다. 다만 그가 표현하지 않았거나 표현됨이 아주 은폐적일 뿐이다. 무엇 때문인가? 사람이 모태에서 출생할 때 어떤 속인의 사상도 없고 오로지 젖을 먹고 울 줄만 알 뿐이었는데 후천적으로 그에게 속인 중의 일체를 부어 넣었다. 예전에 사람들은 가정교육을 아주 중시하였다. 내가 느끼건대 당신들 예전의 백인가정의 자식에 대한 교육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더욱이 지금 미국의 자식에 대한 방임, 그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 어린이는 교양이라곤 전혀 없으며 전반 교육은 실패한 것이다. 인류에 책임지기 위해 반드시 어린이를 잘 교육해야 한다. 그들에게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다고 알려준다면 그는 모두 머릿속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마치 하나의 가죽가방과도 같이 이 가죽가방에 금을 담았다면 남들은 이것을 금이라고 말할 것이고, 당신의 가죽가방 속에 흙을 담았다면 남들은 이것을 흙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당신의 머릿속에 좋은 것을 담았다면 당신은 곧 좋은 사람인 것으로,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지 틀림없이 모두 좋은 염두인가 하면, 당신이 좋지 못한 사상을 담았다면 당신의 행위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나쁜 일이고 생각하는 문제도 모두 나쁜 것이며 나쁜 사상이다. 이것이 바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근본적인 구별이다.

무엇이 좋은 사람인가? 무엇이 나쁜 사람인가? 사회의 선전기구, 각종 신문, 잡지에 실린 그런 폭력, 색정을 당신 머릿속에 부어 넣는데 여러 사람은 그래도 보기를 좋아한다. 부어 넣은 것이 더욱 많으면 당신은 그와 같게 된 셈이다. 이러한 것들을 보지 말고 그런 좋은 것을 보라. 좋은 것을 더욱더 많이, 더욱더 많이 부어 넣는다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당신의 행위는 당신 사상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이 교육을 중시하지 않고 후대에 대한 교육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사람의 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야말로 감히 상상할 수 없으며 감히 바라볼 수 없다. 나는 때로 그들을 보게 되는데 그야말로 보기 싫다. 그의 안에서 외면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에서 마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위에서 옷에 이르기까지 바른 것이 한 가지도 없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아직 가정교육이 비교적 좋은 일부분이 있고 자식을 비교적 잘 단속하는 일부분이 있다. 잘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다음 한 세대 사람과 미래의 사회를 육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세대 사람들이 어떤 모양일지, 당신들은 자신이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제자: 저는 스웨덴의 수련생입니다. 저는 중국어로 『전법륜(轉法輪)』을 다시 읽는다면 더욱 깊은 이해가 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중국어를 배우는 데 쓴다면 바람직합니까?

사부: 좋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 문제를 말해주겠다.『전법륜(轉法輪)』으로 중국어를 배운다면 중국어도 배웠고 또 법을 배운 것이 아니겠는가? 이 중국어는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원래 그대로 내가 한 말을 반영하는데 이 한 점은 틀림없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중국어로 설법하기 때문이다. 왜 내가 중국에 출생하고 중국 이곳에서 법을 전함을 선택했는가? 왜냐하면, 역사상 이런 일을 배치하였기 때문이다. 이 지역사람의 언어의 내포가 크며 그의 역사적인 일체 발전은 모두 장래에 대법을 전하기 위한 것으로 많고도 많은 배치가 모두 이런 일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옛날 옛적 예전에 배치한 것이다. 지금 이번 시기 백인이 아직 문명으로 진입하기 전에 배치하였다. 그래서 그 민족은 비교적 오래되었으며 언어는 세계상에서 가장 풍부하고 내포가 가장 크기에 우주의 이처럼 방대한 개념을 비교적 잘 표현할 수 있다. 만약 풍부한 언어가 없으면 표현할 수 없으며 말하기가 어렵다. 이렇다 할지라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의 언어는 이미 더 말할 수 없고 더는 표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똑똑히 말할 수 없으며 또 그러한 언어가 없다. 하지만 사람 이 한 층차 중에서, 그는 이미 이 낮은 층의 일체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그럼 중국어로 보지 않으면 수련할 수 없고 도달하고자 하는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없거나 속도가 영향받는 것이 아닌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조금도 그렇지 않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내가 이 복잡한 언어로 설법함은 또 부동한 층차의 신이 법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앉아 당신들만 법을 듣는 것이 아니라 또한 많고도 많은 신이 모두 듣고 있다. 그럼 당신들이 영어로 보고, 프랑스어로 보고, 독일어로 보거나 다른 문자로 보며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번역원 대부분은 모두 우리 수련생 자신이라 이건 문제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역시 다만 표면 문자 상의 차이이다. 우리는 수련함에 따라 점차 그를 수정하고 개정하여 더욱더 완벽하게 하고 있다.

나는 많은 수련생이 중국어로 보려 하고 나의 원래의 말, 원래의 뜻을 알아들으려 함을 알고 있다. 물론 그것은 가장 좋으며 더욱 좋다. 만약 이 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당신들은 안심하라. 당신들 민족의 언어로 『전법륜(轉法輪)』을 번역하기만 하면 배후에 무수한 불(佛)・도(道)・신(神)이 있어 당신으로 하여금 그 한 경지 중의 이치를 마찬가지로 알게 할 것이다. 이 점은, 표면문자에는 없고 쓴다 해도 써낼 수 없는 것으로서, 중국어도 써낼 수 없다. 그래서 수련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 일부 중국어를 배워 많은 기적이 나타난 것이 있다. 법은 필경 법이라, 정말로 일부 기적이 나타났는데 이걸 나는 예를 들지 않겠다. 우리 다른 사람이 정확하지 않게 모방하여 또 한 가지 집착이 생김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제자: 어떻게 진수(眞修)제자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식별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가짜 수련 또는 진짜 수련하는 사람을 식별할 수 있습니까?

사부: 수련 중에서는 식별할 수 없다. 하지만 나 역시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우리 대법은 모든 사람에 대하여 열린 것이다. 누가 가짜이고 누가 진짜인가? 가짜인 그가 아마 내일 또 정말로 배울 수 있는가 하면, 진짜인 그가 아마 내일 또 무슨 일 때문에 정말로 배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법은 이처럼 큰문을 열어놓았다. 하지만 또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일부 사람이 법을 파괴하고 있다. 법을 방해하는 그런 마(魔)의 이끎 하에 나쁜 짓을 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분별하기가 쉽다. 왜냐하면, 그의 뼛속에서부터 그의 언행은 모두 반대의 것으로 바로 이러하다. 어떤 수련생 사이는, 당신이 진짜로 수련한다, 나도 진짜로 수련한다, 당신은 진짜로 수련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진짜로 수련한다, 이 문제 때문에 서로 다투고 있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건 매우 마땅치 않다. 사실 당신들은 모두 진짜로 수련한다. 왜냐하면, 출발점은 법을 수호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들의 법에 대한 그 심정을 알고 있다. 누가 법을 파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야말로 용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수련하고 있으며 당신들은 이미 대법의 수호자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대법 중에서 수련하는지라 당신 역시 대법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결코 모순이 없는 것이 아니다. 수련하는 과정 중에 제자와 제자 사이가 절대로 언제까지나 화기애애할 수는 없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당신들이 닦아버리지 못한 그 마음, 아직 아주 강렬하게 표현되는 그 속인의 마음이 표현되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들의 잘 수련된 그 부분 마음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제 없어져버려 표현되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당신들이 잘 수련되지 못한 마음이 표현되어 나오게 된다. 그럼 이 사람이 곧 좋지 않은 것이 아닌가? 절대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이 사람이 그래도 무척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 단지 그의 잘 수련되지 못한 마음이 표현되어 나왔을 뿐이다. 표현되어 나옴은 무슨 목적인가?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그에게 지적하거나 우리 어떤 사람이 이 면에 역시 이런 마음이 있는지라, 그들 둘은 서로 모순이 생기게 되는데 목적은 그들 각자의 마음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모순이 생길 경우 각자 나름대로 안을 향해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이 일이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관계없이 말이다.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 이 일이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당신이 모두 자신을 찾는다면 당신은 문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 일이 절대적으로 당신과 관계없으며 당신이 마땅히 버려야 할 마음이 없다면 당신 몸에서 이 일은 아주 적게 생길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마음이 없다면 모순을 일으키지 않을 것인즉 당신의 수련에 대하여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무릇 당신 몸에 모순이 생기고 당신 여기에 나타났으며 당신들 사이에 나타났다면 틀림없이 당신과 관계가 있을 것이며 당신이 버려야 할 것이 있다.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나의 법신이 당신의 마음을 제거할 때 이 일이 그의 탓인지 아니면 당신 탓인지를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당신이 이 마음이 있기만 하면 그는 온갖 방법을 다하여 당신에게 모순이 나타나게 하며 당신에게 부족한 이 한 마음을 인식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아직도 거기에서 찾으며 이 일은 내 탓이 아니지 않으냐고 한다. 혹은 당신들은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나는 법을 수호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나 역시 법을 수호하고 있다. 사실 당신들에게 모두 잘못된 곳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모순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밖에다 나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또 촛불을 붙이고 향을 피우며 나를 향해 또 절을 올리는데 여러분은 절대 이렇게 하지 말라. 나는 줄곧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제자가 종교의식을 하는 것을 반대해 왔다. 종교는 이미 속인 사회의 일종 기구이지 수련이 아니다. 당신이 나에 대하여 존경하는데 당신이 오로지 이 한 마음이 있다면 나는 기쁘다(원래 종교 중에서 대법을 수련하는 제자는 포함하지 않는다.).

나는 또 한 가지 문제를 여러분에게 말하겠다. 우리 많고 많은 백인은 수련만 하면 당신의 천목이 열리게 되는데 이는 미래에 큰 문제가 된다. 내가 중국에서 법을 전수하기 시작할 때, 중국인은 그의 각종 관념이 너무 많으므로 그의 천목을 열자면 아주 강한 것을 써야 했는데 우리는 초기에 이런 것을 형성하였다. 그럼 오늘 백인 수련생에 대하여 말하면 그는 아직 그렇게 많은 시간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그에게 천목을 열어주는 바로 이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속인이 보지 못하는 생명체를 보든지, 다른 광경을 보든지 당신들은 부디 내가 오늘 한 말을 기억하라. 그것을 중히 여기지 말라. 보았다면 본 것으로 마음을 움직이지 말라. 절대 이 때문에 기뻐하지 말라. 이것은 단지 아주 낮은 층차 중에서 진실한 현상을 봄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것이 절대 당신의 층차를 대표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신들이 보았거나 보지 못했거나, 반드시 마음을 법 공부에 써야 하는바 책을 보고 법을 공부하고 책을 보고 법을 공부하라. 나는 거의 매번 설법 중에서 모두 번거롭게 여기지 않고 당신들에게 책을 보라, 책을 보라, 책을 보라고 한다. 오로지 당신들이 책을 보기만 하면 당신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더욱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당신들의 눈을 통해 보면 보는 것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역시 다만 당신 그 층차 중에서 본 것으로, 집착심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로서 내가 당신의 눈을 봉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무엇을 보았든 당신들은 법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어떠한 고급 생명이든지 모두 당신들의 사부가 아니다. 절대 이 점을 기억하라. 그들의 어떠한 것이라도 갖지 말아야 한다. 만일 갖는다면 당신에게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엄중한 상황이 조성될 것이다. 꼭 마음을 법에서 수련함에 두어야 한다. 기억하라. 법이기 때문에 당신을 원만에 이르게 할 수 있고, 법이기 때문에 당신의 천목을 열어주므로, 당신은 반드시 법에서 수련해야만 비로소 원만할 수 있다. 대법 이외의 어떠한 것에 집착한다면 당신으로 하여금 중도에서 그만두게 할 것이다.

제자: 저는 중국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책을 보고서 종족을 벗어난 혼인이 틀린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부: 내가 당신들이 같지 않은 종족의 사람과 결혼하는 이 일을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는 역사가 남겨놓은 문제인 것으로, 당신들과 관계가 없다. 미래의 지구에 남을 사람은 반드시 순종(純種)이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들은 원만(圓滿)에 이를 것이며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 범위의 행렬에 있지 않다. 그럼 후대로 말한다면, 만약 후대가 수련할 수 있으면 우리 역시 그를 골라낼 것이다. 그의 元神(왠선)이 어디에 있으면 마땅히 거기로 가야 하는데 우리는 곧 그에게 거기로 가게끔 하는 것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

대법은 법력(法力)이 끝없으므로 우리는 방법이 많다. 수련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어떤 방법이든지 다 있다. 속인에 대해서는 우리가 함부로 그에게 해줄 수 없다. 바로 이런 관계이다. 나는 당신들의 상황을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고 또 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 일,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있는데, 오늘날 사회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당신들에게 모두 외계인의 문화가 있는 것과 같은데, 또한, 정리할 때가 되면 당신들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수련하여 원만에 이를 것이므로 모두 천국세계로 가버리고, 미래의 지구에 있는 것은 당신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상황이다.

제자: 元神(왠선)은 형상이 있습니까?

사부: 元神(왠선)은 형상이 있는바, 바로 당신 자신의 형상이다. 하지만 당신 이 육신의 형상보다 더욱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의 신체를 구성한 과립은 이 표면의 물질신체보다 더욱 부드럽고, 더욱 미시적이며, 에너지가 커, 그가 빛을 뿌리기 때문이다.

제자: 전생할 적에 형상에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까?

사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원래 아주 강한 특성이 있는 것도 있다. 사람들은 내가 수많은 세(世)를 전생해도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백인으로 전생될 경우엔 큰 코에 눈은 안으로 우묵 패어 들어가고 남색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각개 공간의 신체는 독립적인 생명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각개 공간의 신체와 元神(왠선)의 관계는 어떠한 것입니까?

사부: 이는 우주의 구조와 관계가 있지 사람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사람은 많은 공간 중에 모두 당신과 같은 당신이 있는데 한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독립적이지만, 당신의 각개 공간 신체와는 별개의 것이다. 각개 공간 신체는 바로 부동한 공간에서, 부동한 분자 입자가 구성한 당신 신체이다. 이는 모두 당신이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지금 인류의 마성(魔性)이 우세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나의 마성은 얼마만큼이 사람의 요소입니까? 얼마만큼이 다른 공간에서 온 것입니까?

사부: 사람마다 모두 절반은 정(正)적이고 절반은 부(負)적인 물질특성이 있다. 그 외, 또한 후천적인 관념과 사상업력의 부분이 있다. 나는 늘 말했다. 사람은 마치 옷과 같고 당신의 신체, 당신의 사상은 마치 모자와도 같다. 부동한 생명이 썼다면 곧 그와 같은 것이다. 사람의 主元神(주왠선)의 의식이 강하지 않으면 때때로 모두 다른 생명에 의해 씌워질 수 있다. 오늘날 사회에서 사람의 각종 좋지 못한 행위, 이는 난잡한 것으로서 현재에 나타난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과거에는 삼계(三界) 이외의 생명이 삼계 이내에 들어옴을 불허했고 역시 삼계 이내의 생명이 삼계를 벗어남을 불허했으며, 또 삼계 내 각개 층차의 생명이 서로 교란함을 불허하고, 또 부체(附體)가 나타남을 불허했다. 지금은 모두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 이곳으로 말하면 가장 난잡하다. 많은 사람의 사상이 옳지 않을 때가 바로 사람의 사상이 마성(魔性)에 부합될 때이고, 곧바로 마성 사상이 강할 때이다. 사람 자신이 속인 사회 중에서 온통 좋지 못한 것을 보고, 좋지 못한 것을 듣고, 머릿속에 좋지 못한 것을 담으면, 사람 자신의 마성은 강해지게 마련이다. 마성이 강해지면 바로 마(魔)에 부합되고, 그러면 마가 곧 당신을 좋아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이 당신의 신체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외부적인 요소에서 온 것이다. 당신의 사상이 그것의 사상과 쉽사리 같게 되므로 그것이 쉽게 당신을 조종할 수 있다. 이것이 한 가지 상황이다. 사람과 동등한 공간 중에 부패한 많고도 많은 생명이 있는데 그것들은 사람을 대놓고 통제하고 있다. 사람을 통제하여 뭘 하는가? 인간의 삶(香火)을 얻으려 하고, 사람의 신체를 점유하려 하고, 사람의 물질을 얻으려고 한다. 사람의 물질은 연화(演化)를 거친 후 여전히 그것에게 유용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그것들에 적합한 사람을 고른다. 지금 사람은 이런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신이 지금 괜찮다고 여기고 있다.

이런 문제는 이미 최후의 해결 속에 있다. 그래서 지금의 사람은 살아갈수록 더욱 명백해지고 점차 자신을 찾을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흐리멍덩하게 살아왔는데, 모두 그것들에 끌려 온 것이며 복잡하고도 방대한 요소에 끌려 온 것이다. 사람을 철저히 해방하고 외래의 통제를 철저히 배제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이 자신을 장악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오늘 말한 법은 바로 그것들에 말해주는 것과 같게 된다. 만일 당신들이 흐리멍덩하여 자신을 찾지 못하고 모두 그것들이 얻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나는 우선 이런 일을 우리 수련생들에게 해준다(박수). 속인에게도 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지금 사회상의 속인이 통제되어 법을 얻지 못하면 아주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수련생은 나에게 반성하면서 말하기를, 자신은 법을 널리 잘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당신이 아주 잘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의 힘이 미칠 수 없는 상황이 많아 소원처럼 되지 않는바, 그건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가서 하지 않았다면 그건 당신의 문제이다.

때로 나는 빌딩 위에서, 분주하게 다니는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생각한다. 지금 이 사람은 모두 어떻게 살고 있는가? 가련하다고 말하자니 또 사람 자신이 이 일체를 망쳐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사람이 그것에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부패하게 된 데는 사회 자체에도 원인이 있지만, 사람들이 모두 부채질을 하며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사람들은 이 큰 물결 속에서 스스로 잘하지 못했으며 나아가 자신을 방임하였다. 사람들이 축구장에서 마성(魔性)을 크게 폭발시키고 있는데, 이는 자신에 대한 가장 전형적인 방임이다. 미친 듯이 외치고 고함지를 때 마성이 크게 폭발하고 크게 증강됨을 생각하지 못한다. 사람이 그런 무슨 디스코를 출 때, 그런 이지적이 아닌 상태에서 마구 외쳐대는 그것은 마성의 최대 발산이다. 사람이 이지적이고 능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를 아는 상황에서 하는 일은 흔히 모두 착한 생각으로서, 그것이 비로소 진정한 자신이다.

제자: 저는 줄곧 자신이야말로 확고하게 자아통제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왜 내가 매번 사부님을 뵙고 사부님을 말하게 되면 늘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게 됩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리 이 자리에 앉은 많고도 많은 사람이, 역사의 부동한 시기, 부동한 나라에서 나와 무척 큰 연분(緣份)이 있었다. 이것이 한 면이다. 또 한 면은, “당신은 이런 난세에 아직도 이처럼 좋은 것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하는 이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神)이 한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들을 제도하기가 더욱 어렵다. 이 공간에서 활약하는 당신들은 모른다. 다른 공간 속에 있는 당신들의 일면은 다 볼 수 있어, 내가 당신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를 다 알고 있는데, 언어・행동・심지어 어떤 개념으로도 나에게 감격을 표할 방법이 없으므로, 곧 이쪽의 당신들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오늘날 인류사회가 그런 정도로 난잡하게 된 것을 모르고 있다.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지고, 사람의 신체는 업력이 많아질 대로 많아졌고 그 사상 속의 나쁜 사상은 많아질 대로 많아진바, 너무나도 많다. 나는 당신에게 그것들을 모두 청리(淸理)해 준다. 또한, 금빛 찬란한 法輪(파룬)과 이 법 전반의 많고도 많은 것을 당신 몸에 넣어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당신에게 비할 바 없이 더러운 그 신체를 정화(淨化)해 줌은, 이는 천지개벽 이래 해준 사람이 없는 일이다(박수). 돌이켜 말하자면 천지개벽 이래 전혀 만날 수 없는 좋은 일을 만난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은 그럴 수가 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갈수록 명석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도 갈수록 더 명료해진다.

제자: 사부님께서 과학은 곧바로 종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설은 나에게 충격이 아주 큽니다. 사부님께서 이 문제를 깊이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사부: 그것은 종교이며 완벽한 종교이다. 다른 종교와 같은 그런 것은 정신상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인식하도록 한다. 그런 다음 수련 중에서 점차 당신에게 우주 중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 실제적이고도 실제적인 물질의 존재를 발견하도록 하는데 그것은 이런 과정이다. 그러나 과학이란 이 종교,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물질상에서 조그마한 것을 발견하도록 하고 이것으로 당신을 인도(引導)하여 더욱더 믿게 한다. 최후에는 당신으로 하여금 그것을 의지하게 하고 그것을 더욱더 의지하도록 하는데 이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이 종교는 물질적인 것에서부터 당신을 인도하여 정신적으로 믿게 하지만, 일반적인 종교는 정신적인 것에서부터 당신을 인도하여 물질에 대하여 진정하게 인식하도록 한다. 그것이 반대되는 길을 걸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식별할 수 없었다. 어떤 한 가지 것이 이 세간에서 발붙이고 설 수 있고 성립될 수 있으려면 모두 반드시 관건적인 원인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반드시 이 공간 중에 한 마당을 형성해야 한다. 이 마당은 물질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컨대 종교가 생기게 되는 것은 많은 사람이 믿는 과정 중에서, 굳게 믿는 중에서 담론하고 숭배하는 등의 방식으로 환경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 환경은 동시에 되돌아 또 이 종교를 수호하고 있다.

과학 역시 이러하다. 그것의 환경은 이미 무척 방대하여 거의 사람의 공간 중의 각개 영역을 포함하지 않은 데가 없다. 가히 누락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종교도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이 물질의 환경이 형성된 후, 인류의 공간에는 상생상극의 이치가 있는데, 정(正)적인 것이 있으면 부(負)적인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있다. 그럼 이 공간에서 형성된 환경 역시 이런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즉 한 가지는 선한 것이고 한 가지는 악한 것이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의 형성은 이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당신이 그것을 반대할 경우, 그것의 악한 요소는 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이것이 바로 이 환경 중에서 그것의 부(負)적인, 악한 요소이다. 당신이 그것을 믿을 경우, 다른 한 면의 요소, 그것이 당신을 아주 잘 대하며 아주 선하다. 이것이 그것의 선한 그 일면이다. 과학 속에도 이런 요소가 있다. 당신이 과학을 반대하면, 비록 그것이 당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뭇사람이 함께 들고일어나 공격할 것이다. 누구나 다 당신이 미신을 믿는다고 말할 것이며 누구나 다 당신을 가소롭다고 할 것이다. 그것이 당신을 사회 중에서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깎아내릴 것이다. 당신이 초등학교에서 그것을 믿지 않고 당신이 그것을 잘 배우지 않는다면 그는 당신을 퇴학시킬 것이고, 당신이 대학에서 그것을 잘 배우지 못한다면 당신은 학위를 얻지 못하고 졸업을 할 수 없으며 당신이 그것을 더 잘 배우지 못한다면 당신은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없다. 이 사회영역 곳곳이 과학직업으로 꽉 차있다.

바꾸어 말하면, 각개 직업 중에 과학이 충만해 있다. 당신이 그것을 잘 배우지 않는다면 당신은 곧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없다. 돌이켜 이 과학, 그것은 또 발달하지 못했다. 그것은 다만 현존의 공간 내에서 발전할 따름이다. 그것은 신의 존재를 실증하지 못하며 그것은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응보를 받게 됨도 모르고 있다. 당신이 신을 말하면 그것은 곧 당신이 미신을 믿고 있다고 하는가 하면, 당신이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응보가 있고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좋은 보답이 있으며, 좋은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德(더)를 중시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곧 당신을 이단사설(異端邪說)이라고 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 과학은 사람의 가장 좋은 일면인 진정하고 선량한 본질을 타격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에게 德(더)를 중시하라고 하지 않고, 사람에게 착해지라고 하지 않으며, 사람에게 일체 욕망의 발산을 부추기고 인류생존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으며, 인류의 본성과 사람의 규범을 파괴하고 있다. 이 점으로 볼 때, 이 과학은 역시 사교(邪敎)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 이 공간에서 사람에게 안일함과 일시적인 편안함을 가상으로 제공해 주었다. 사람에게, 사람 자신이 파괴된 후 조성되는 가상의 자유, 가상의 진보 조건을 제공해 줌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더욱 믿게 하였다. 그러나 신이 보기에는 사람의 지나친 안일과 편안함은 좋은 일이 아니며 업력을 더하고 업력을 쌓을 수 있다. 업력을 없애버리지 못하면 최후에는 지옥에 떨어지며 심지어 생명이 없어지게 된다. 과거 당신들 서양 사람도 이런 이치를 알았고 노인들도 이런 이치를 알고 있었다. 고생을 좀 겪는 건 괜찮다, 나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간고한 환경 중에서 단련하고 단련함은 좋은 일이라, 이러한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고생을 겪으면 소업(消業)할 수 있다. 업력을 없애버려야만 비로소 내생에 진정한, 업력이 없는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이 수련하면, 당신은 업력을 없애버릴 수 있고, 또 공으로 전화할 수 있어 천국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럼 이 과학이라는 종교는 당신에게 오로지 그것만 믿게 하고 진짜인 이 신을 믿지 못하게 하며 또 사람을 반대로 되는 일면 - 끊임없이 업을 빚어내는 데로 밀어주는데, 그것이 사(邪)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과학의 전반형식이다. 나는 현대과학이 조성한 그 학과의 영역을 반대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모두 이미 이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모두 이런 직업이기 때문이다. 기왕 사회가 이렇게 된 바에야 그럼 곧 이렇게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나도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그것의 진실한 면목을 당신들에게 알려줄 뿐이다.

동시에 나는 또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과학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왜 아인슈타인은 만년에 종교로 들어갔는가? 과학에 그처럼 조예가 있는 사람인 그는 종교가 맞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인슈타인보다 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고집스러운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인슈타인보다 지혜가 크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최후에 아인슈타인은 종교 중에서 말한 것이 진실한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과학임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정교(正敎) 신앙에 들어갔다. 나는 내가 방금 말한 것을 다시 한 번 반복하겠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일을 해야 하는바, 당신들은 가서 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기까지 지금 사회 전반이 모두 이러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또한 모두 이렇게 해 오고 있는데 나 역시 상관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제도하는 건 당신들이라, 지금 그것의 일을 상관하지 않겠다. 나는 단지 그것의 진실한 상황을 사람에게 알려주었으며 수련하는 사람에게 알려주었을 뿐이다. 나는 어느 속인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고 사회의 사람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그들도 알 필요가 없다. 사실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많은 총명한 사람이 이미 발견하였다. 속인도 과학은 종교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제자: 수련하여 원만한 대법제자는 어떠한 형식으로 인간 세상을 떠납니까?

사부: 이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말했다. 만약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가게 된다면 그는 곧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가는데, 그는 고에너지물질로 전화된 육신을 갖고 원만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절대다수는 부동한 더욱 높은 층차의 다른 세계에서 온 것으로, 그의 그 세계에서는 신체를 갖지 않는데, 사람의 신체는 좋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신체를 마련해 줌은 당신 선천을, 원래 세계 속의 일체를 고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체를 가지려하지 않으며 주어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나도 갖겠다.” 하는 생각이 반영되어 나올 것인데, 그것은 당신들의 아직 잘 수련되지 못한 그 일부분으로서 가장 표면적인 속인의 사상이 반영되어 나온 것이다. 당신들이 진실한 상황을 보았을 때 당신들은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으며 신의 사상을 펼칠 수 있다. 오, 이 일체는 이런 일이구나.

그러나 나는 또 당신들이 원만에 이르게 될 때 인류에게 장거(壯擧)를 가져오고자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대법제자로 하여금, 신체를 가지려 하든 가지려 하지 않든, 모두 신체를 갖고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는데, 신체가 필요 하지 않는 이는 공중에서 홍화(虹化)해 버린 다음 날아가도록 한다. 이러면 역사에 여태껏 없던 휘황을 조성하게 되며 사람들에게 깊은 교훈을 남기게 된다. 사람이 신(神)을 믿지 않으니 신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진실한 체현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되고 되지 않고는 최후를 보아야 한다. 원만을 말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없다. 다만 어떤 형식을 취하는가 하는 것이다.

제자: 많은 수련생이 자신이 수련한 것이 어떤지를 모르며 원만 수련 성취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는데요?

사부: 이 역시 집착이다. 또한, 믿지 않는 자체가 수련의 최대 장애이다. 내가 방금 말했다. “아침에 도를 들었거니 저녁에 죽어도 좋다.” 다시 말해 당신 사상 속에 담은 것이 모두 법이라 그 좋지 못한 것은 이미 얼마 되지 않는바, 전부 제거해 버릴 때까지다. 당신이 말해 보라. 마땅히 당신을 어디에 갖다놓아야 하는가를. 당신 자신이 말해 보라. 나는 늘 말한다. 나는 당신이 법을 얻었으니 당신도 더는 그러한 문제를 생각하지 말라고. 더 생각한다면 바로 집착이다. 그것은 집착이 아닌가? 당신의 진도에 영향을 준다. 장래에는 법을 듣는 사람이 더욱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모두 원만에 이를 수는 없다. 사람마다 모두 와서 법을 들을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수련하든지 그는 여전히 병을 치료하려는 마음을 제거하지 못한다. 어떻게 수련하든지 그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자리에 앉은 우리는 모두 문제가 없다(박수). 많은 사람이 법을 들을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세계상의 많은 사람이 당신들처럼 여기에 앉아있을 수 없다. 이 대법은 그의 위엄성이 있다. 당신이 볼 때는 당신 마음대로 이 문을 넘어들어왔고 법을 들은 것 같지만, 당신은 당신이 어떤 연분(緣份)인지를 모른다. 바로 이처럼 우연해 보인다.

제자: 자신이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압니까?

사부: 우리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나는 내가 큰 문을 열어놓았다고 말하였다. 사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나는 열어놓을 문마저도 없이 모두 열어놓았다. (박수) 어떤 사람이든지 오로지 당신이 수련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 당신은 이 한마디 말을 알아들을 것이다! (박수)

제자: 동성애자가 대법을 연마할 수 있습니까?

사부: 연마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좋지 못한 행위를 고쳐버리고 정정당당한 한 사람이 되어 당신 자신을 찾아내고 부패하여 음침한 심리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박수)

방금 이 수련생의 문제를 해답할 때 나는 우리 수련하는 사람에 대하여 일부 수련 중의 일을 말하기 때문에 관련되는 문제가 비교적으로 좀 높았다. 아마 우연하게 들어온 사람이나 혹은 방금 온 사람은 어떤 것은 이해하기가 몹시 어렵다고 여길 것이다. 아마 우리를 무슨 교로 간주할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우리는 어떤 교도 아니다. 나는 단지 이 법을 사람에게 알려주었을 뿐이다. 당신이 수련하고자 한다면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고 당신이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하라. 우리는 어떠한 형식도 없으며 어떠한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또한, 어떠한 종교적인 규범도 없고 또 사람들에게 일전 한 푼 받지 않는다. 당신은 이곳에 와서 마음대로 들을 수 있다. 당신이 배우려면 배우고 배우지 않으려면 가라.

제자: 저의 직업은 의사입니다. 만약 제가 환자를 수련하도록 이끈다면 그들의 병은 모두 치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 저는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까?

사부: 이것이 걱정이로구먼. (모두 웃음) 사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의 환자가 모두 수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그에게 알려주어도 그는 수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그가 정말로 연분(緣份)이 있다면, 또 많은 환자가 그렇게 연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는 이렇게 들어오고 또 수련을 시작하게 마련이다. 아마도 그런 연분일 것이다. 어쨌든 어떤 정황이나 다 있을 수 있다. 의사가 병을 보아 생계를 유지한다는데 당신은 여전히 속인의 관념으로 문제를 고려하였다. 사실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환자는 여전히 있을 것이다. 이전의 환자가 가면 새 사람이 또 올 것이다. 대법도 이러한 것을 고려할 것이다. 이것은 속인의 각도에서 말한 것이다. 높은 각도에서 말하자면, 만약 그 환자가 마땅히 법을 얻어야 하는데(당신이 돈벌이를 위해 그에게 법을 얻지 못하도록 한다면, 물론 당신이 돈벌이를 위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당신이 생계를 위해 그에게 법을 얻지 못하게 한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옳지 못하다. 이 문제는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지 않다.

제자: 저와 제 남편은 1997년 9월부터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는데, 1998년 3월 제 남편이 갑자기 심장병으로 죽었습니다. 저는 제 남편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만약 그가 정정당당하게 진정으로 수련할 수 있고 진정하게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겼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이런 문제가 절대 나타날 수 없다. 물론 내가 만일 그가 수련한 것이 아니고 전혀 수련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당신은 아마 또 그렇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수련은 엄숙한 일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평범한 속인이 수련하여 초상(超常)적인 고급 생명이 되고, 부처가 되고, 신이 되어, 서양인이 말하는 것처럼 천국으로 갈 수 있다면, 인류의 어떤 일이 그에 비하여 더 엄숙할 수 있겠는가? 모두 그보다 엄숙하지 못하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여 수련인은 마땅히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마땅히 진정으로 엄숙하게 그를 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 대하는가? 수련 중에 그가 마음속으로 여전히 자신의 병을 생각하고 여전히 그가 동경하는 아름다운 생활 중의 그 일부분을 생각하며 속인 사회의 이러한 것이 아쉬워 아주 집착한다면 곧 정진(精進)하지 못한다. 사실상 예전에 죽을 지경인 병을 얻어 마땅히 생명을 잃어야 하는 많은 사람이 모두 나았고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었다. 바로 진정한 수련은 사람을 죽게 할 수 없으며, 그는 흔히 모두 수명을 연장한 것이다.

연공은 사람에게 수명을 연장해 줄 수 있다. 끊임없이 연공하면 끊임없이 수명을 연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인도 연마함에 늦지 않다. 이것이 우리 이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인 대법의 특점이다. 그럼 왜 속인중의 환자는 마찬가지로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가? 당신이 생각해 보라. 우리가 연장한 생명은 그에게 속인의 생활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그에게 엄숙하게 수련하라는 것인가? 만약 그가 이 관계를 바로 놓지 못하고 그럭저럭 수련한다면 어찌 될 수 있는가? 사람에게 생명을 연장해 줌은 절대적으로 수련하라고 해주는 것이다. 그가 여전히 원래 그 모양이라면 그가 생명을 잃지 않는다고 보증하기 어렵다.

무수한 암 환자가 다 나았다. 하지만 또 어떤 암 환자는 죽어버렸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여러분들에게 예를 들겠다. 어떤 사람은 정말로 한번 보고 이런 법을 얻었다. 그는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고 그는 병상(病床)에 누워서 생각한다. 나는 다 죽게 되었는데 나는 그래도 이러한 것을 보게 되었구나. 참으로 왜 일찍이 보지 못했던가? 그는 이것으로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는 시간을 다그쳐 책을 본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며칠 못 산다, 나는 빨리 보자, 빨리 보자, 되도록 남은 생애에, 남아있는 날에 좀 많이 보고 몇 번 더 보자고 한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그는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게 되었고 그의 암 덩어리도 없어졌으며 그는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그는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갑자기 온몸이 가벼워짐을 발견하였다. 병원에서 다시 그의 병을 검사하여 보니 그의 암은 이미 전부 없어졌다. 그러나 의사는 흔히 대법이 그에게 병이 낫도록 치료하여 주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인정한다면 현대과학이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곧 “아, 이전에는 오진(誤診)이었소.”라고 말한다. 이런 일은 그야말로 너무나 많다.

물론 또 이런 사람도 있다. 그는 대법을 수련하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 자, 그는 왔다. 그러나 그는 또 당신이 만약 병을 치료하려는 목적을 품고 온 것이라면 당신의 병이 잘 나을 수 없기에 헛되게 연마한 것과 같다는 것을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적은 수련이지 사람에게 병을 치료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로지 대법을 얻었다면 당신의 병은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가 우리 대법의 요구에 따라 수련하려고 하지 않고 수련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으며 그는 오로지 병을 제거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이처럼 엄숙한 대법을 그에게 전해주었는데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일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럼 그도 알았다. 오, 내가 오로지 병 치료를 말하지 않고 사부님을 찾아가 병을 치료해 달라고 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사부님께서 꼭 나를 잘 치료해 줄 것이다. 당신이 보라. 그는 입으로는 말하지 않고 그는 심지어 누구와도 병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긴 시간이 지났는데 그는 마음속으로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내가 오로지 연공하기만 하면 때가 되면 사부님은 꼭 나를 치료해 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곧 그렇게 조그마한 차이가 나는 것이 바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고, 곧 그렇게 조그마한 차이가 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진정한 본질이라, 그는 여전히 그의 병을 치료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암 환자가 오면 흔히 그의 시간을 모두 지연시켜 그에게 한 차례 한 차례 기회를 준다. 병원에서는 2개월, 3개월이면 죽는다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시간을 주어 1년, 1년 반, 2년을 주었다. 그는 여전히 그의 관념을 고치지 않고 그의 병을 걱정한다. 나의 병이 재발하지 않을까? 사부님은 정말로 나를 책임져 주어 나에게 철저히 고쳐주었는지? 당신이 보라.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있다. 그는 입으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나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부님은 꼭 나를 도와 병을 치료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표면상으로는 연공하지만 그의 본질은 여전히 병 치료를 위한 것이다. 그는 나를 속이고 사람을 속이고 대법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누굴 속이든지 모두 가짜이다. 사실은 바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진실한 심리적인 전변(轉變) 그것이 비로소 진짜 수련이다. 우리 많은 수련생이 바로 그의 천명에 이르렀기에, 즉 수명이 다되었기 때문에 그의 일생은 곧 이만한 나이까지 살 수 있다. 그때가 되어서도 그가 아직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곧 죽게 된다. 그러나 흔히 모두 그의 원래의 기한을 훨씬 벗어났다. 그에게 기회를 주고 그에게 시간을 주며 그로 하여금 전변하도록 한다. 정말로 전변되지 못한다면 곧 그를 갈 데로 가게 놓아둔다. 표면상에는 그가 여전히 우리 책을 보고 또 공을 연마하고 있지만, 그는 죽을 것이다. 이를테면 내 말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대법을 수련하여 모두 원만에 이를 수는 없다는 것인데, 내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자신을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못하고 당신이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나이가 많은 사람은 곧 가게 된다.

당신 일생 중에서 당신이 마땅히 지내야 할 인생의 생활을 다 지냈으므로 당신은 현재 있는 생명에서 꼭 다그쳐 수련해야 한다. 당신이 자신을 완전히 투입하여 수련하는 사람이 되게 하면 당신의 생명은 연장될 것이다. 물론 이런 연장을 당신은 그것이 연장인지 아니면 원래 있는 생명인지 모를 것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연공하면 당신의 생명을 끊임없이 연장해 주므로 곧 당신의 연공 시간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하여 원만을 이룰 충분한 시간이 있도록 한다. 당신이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못하면 무릇 생명을 연장해온 사람은 수시로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당신이 수련할 수 없다면 대법은 이렇게 함부로 한 속인의 생명을 연장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은 정해놓은 숫자가 있다. 그가 어느 때에 이르면 마땅히 죽어야 하고 마땅히 전생해야 하는데 저쪽의 사람이 이미 임신하였고 그가 전생하여 출생하기를 기다리는데, 그가 출생하지 않는다면 이건 될 말인가? 그가 출생한 후에 속인 사회에서 몇 년간 생활한 후 그는 일하게 된다. 그의 일 역시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그로 하여금 가지 못하게 한다면 될 말인가? 당신은 전반적인 사회순서를 어지럽혔다. 오직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어야만 우리는 당신에게 이렇게 해줄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수련하려 하고 되돌아 승화하려 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로소 당신에게 이 일체를 해 줄 수 있다.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대신 배치하고 당신을 빼내 온다. 그래서 수련인은 속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속인인 그에게 이런 일을 해줄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엄숙하게 보아야 하지 않는가? 바로 이러하다. 그래서 나는 대법이 이렇게 좋다고 말한다. 당신은 내가 말한 것이 좋다고만 보지 말라. 우리 여러분은 어떻게 원만을 이룬다는 것을 듣고는 모두 손뼉을 친다. 반대로 만일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당신이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역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心性(씬씽)의 제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제고이다. 그가 날마다 연공(練功)함은 마치 체조를 하는 것과 같은데 죽지 않을 수 있는가? 내가 말한다면 그건 웃음거리이다. 그가 날마다 연공하지만 그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지 못하면 나는 그의 연공은 체조하기와 같다고 말한다. 단지 그 아주 조그마한 차이에도, 그는 그것을 개변하기를 몹시 어려워한다. 당신이 개변되었고 당신이 속인의 관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곧 신이다. 당신이 할 수 없다면 곧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천천히 수련하는 과정의 사상기초가 없이는 당신이 그에게 내려놓으라고 해도 그 역시 내려놓지 못한다!

오늘 당신이 죽음에 직면하여, 어떤 죽음형식이라도 그 죽음 앞에서 추호도 겁내지 않으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아마 죽은 후에 천국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음의 일은 정말로 있을 수 없다. 관건은 사람의 마음을 봐야 한다. 우리 대법수련은 곧바로 직접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수련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외의 모든 표현이 다 가짜이며 형식은 다 가짜이다.

나는 문제를 제기한 이 수련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 가지 이치를 말하는 것인데 이 문제를 빌려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이치를 말해준다.

제자: 만약 문제를 해결하려 하거나 잘못된 사상을 버리려 하면, 연공할 때 일념(一念)을 보존하여 자신을 격려하는 것이 도움됩니까?

사부: 연공 초기에 의지를 증강하기 위해 일념(一念)을 품는다면 반대하지 않고 당신이 잘못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수련은 위대한 일이며 엄숙한 일이다. 구태여 무슨 ‘일념’으로 당신을 구속할 필요가 있는가? 나는 원만에 도달하겠다, 나는 높은 경지에 도달하겠다, 이렇게 연마한다면 내 생각에 가장 좋다. 수련계에 한마디 말이 있다.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라고 하는데 그것이 가장 좋은 상태이다. 방금 내가 말한 그 암 환자는 왜 나았는가? 그는 병 치료를 생각하지 않고 책을 보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나았다. 이는 곧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에 부합하는 것이다. 아무런 집착이 없어 아무런 장애가 없기에 그는 신속하게 나았는데 바로 이 원인이다.

제자: 지금 유럽에 와서 불교를 전하는 사람이 아주 많은데,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와 기타 불교의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부: 차이가 매우 크다. 불교에서 숭상하는 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다. 그들은 석가모니불이 불교를 창립했다고 여긴다. 물론 대승불교는 또 그 밖의 부처들을 숭배하고 있다. 밀종 라마교란 바로 중국 티베트의 그 라마교이다. 그것과 석가모니가 창립한 불교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그것을 라마교라고 한다. 그가 숭상하는 최고의 부처는 대일여래(大日如來)이다. 백교(白敎)가 숭상하는 것은 밀레르빠(密勒日巴)로서, 다 다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미 석가모니 불교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것은 불교이다. 그것은 유전되는 과정 중에서 종교로 형성되었는데, 그것의 절이 있으며 각종 종교적인 의식(儀式)과 교규(敎規)가 있는 등등 등등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종교이다.

우리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또는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다. 당신 자신이 법을 보고 법을 배우며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지는 당신 자신이 하도록 하라. 그래서 이는 종교와 완전히 다르다. 속인의 형식상에서 우리는 완전히 느슨한 것으로서 어떠한 제한도 없는 이런 수련형식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하는가?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대법이 있는데 배우면 곧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집중해서 한다면, 배우는 사람이 아주 많으므로 장래에 재난이 형성될 것이며 인류에 대하여 재난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일을 하지 않고 몇억이나 되는 사람이 다 출가한다면 그건 안 된다. 사회, 인류사회에게 시끄러움을 갖다 줄 것인즉 그것은 허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해야 한다. 일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당신은 당신의 일을 잘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일을 잘하지 못하면 당신 역시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수련하는 사람은 우선 속인에서 시작하여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가? 그 어디에 있어도 다 좋은 사람을 말한다. 당신이 사장에게 임금을 받는데, 사장에게 일을 잘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말하건대 사람들도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남의 돈을 공짜로 가진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우리는 잘해야 한다. 어디에 있든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지금의 종교가 사람을 제도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사교(邪敎)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것 속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돈을 위해 있다. 어떤 사람은 바로 절에서, 교당에서 돈을 많이 거둬들이려 할 뿐이다. 듣건대 어떤 나라의 화상은 제일가는 대부호로 돈이 가장 많다고 한다. 돈이 많으니 집으로 송금한다. 이것은 출근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중국의 화상은 또 과장급, 처장급으로 나누어 돈을 번다고 한다. 듣자니 또 국장급도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는 이미 수련이 아니다. 나도 그것이 수련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전문적으로 무슨 세계의 종말을 말하는 일부 이런 종교가 있는데 전문적으로 이런 것을 말한다. 이건 모두 100% 사교(邪敎)로서 사회에 동란을 조성하고 사회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사교는 구분하기가 힘들지 않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원시 정교(原始正敎)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교이다. 원시 정교란 내가 말한다면 천주교・기독교・불교・도교・유태교, 이는 모두 원시 정교이다. 역사의 후기에, 특히 기독교 후기에 나타난 그런 교는 99.9%가 모두 사교이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이 설사 그리 큰 나쁜 짓을 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정교가 사람을 제도할 수 있는 그 시기의 사람을 제도함에 영향을 주고, 사람이 정법(正法)을 수련함에 영향을 주고, 사람이 정교를 믿는 것에 영향을 준다. 그것은 남의 자제(子弟)를 망치고 정법을 교란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사(邪)한 것이 아닌가? 그것 자신의 죄는 이미 아주 크다. 후기에 이르렀기에 지금의 종교는 이미 사람을 제도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모두 정객(政客)이다.

 제자: 집착심으로 조성된 고통이 업력으로 전화될 수 있습니까?

사부: 수련 중에서 당신은 집착하고자 하는 이 집착심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 고통스러운 고비를 넘기는 중에서 소업(消業)할 수 있다. 어찌하여 없애버리지 못하는가? 당신이 집착심인 줄 잘 알면서도 집착하고자 한다면, 곧 이렇게 한다면 고통 속에서도 업을 없애버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잘 알면서도 일부러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 번거로움을 자초한 것이다. 속인에 대하여 말한다면 속인 역시 이 이치이고 역시 이럴 수 있다. 하지만 속인의 일을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속인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는가 하는 그것은 속인의 일이다. 우리 여기선 오직 수련하는 사람에 대하여 설법할 뿐이다.

제자: 동성애자의 업력은 큽니까? 혹시 그들이 천천히 집착심을 내려놓으면서 대법을 수련할 수 있는지요?

사부: 동성애자, 오로지 그가 그것을 내려놓고 정정당당한 사람이 되고 그런 다음 수련을 시작한다면 문제가 없다. 업력문제를 고려하지 말고 생각지 말라. 내가 말했잖은가? 오로지 당신이 수련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방법이나 다 있다. (박수) 단순하게, 이 업력이 큰가, 크지 않은가를 말한다면, 이 한 점에서는 사람의 이 배설기관은 배설할 때 흔히 업력도 함께 아래로 내리 배설하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는 이런 기관이므로, 당신이 만약 부정한 접촉을 한다면 이런 업력이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3천 개 소우주가 제2층 우주를 구성하고 또 3천 개 제2층 우주가 제3층 우주를 구성하였다는데 무엇 때문에 다 ‘3천’입니까?

사부: 당신들은 나의 한마디 말을 알고 있다. 나는 말했다. 우연한 현상은 없으며 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학은 그것을 알 수 없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는 자연현상이다.”라는 정의를 내린다. 이 한마디 말은 곧 사람의 사상을 가로막았다. 사람은 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과학이 과학적이라고 여긴다. 나는 참으로 가소롭다고 생각하는데, 과학은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도리어 사람을 속일 수 있다. 실제로는 어떠한 자연현상도 없다. 방대한 우주 중에는 유형적인 생명과 무형적인 생명이 동시에 존재한다. 방대한 무형 생명은 그의 작용 하에서 우주의 일체를 균형 잡고 우주의 일체를 조성하고 있다. 당신들 생각해 보라. 왜 철(鐵)의 분자는 그처럼 정연한가? 금(金)의 분자배열은 왜 그러한가? 동(銅)은 왜 그러한가? 알루미늄은 왜 또 그러한가? 게다가 고르고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지 않은가? 만약 그것이 고르지 않고 정연하지 않게 배열된다면 곧 변화가 생기게 된다. 무슨 변화인가? 만약 금이 금속원소 그 분자로 배열하지 않는다면 그는 곧 다른 물건으로 변해버리는데 차이는 바로 표면상에 있다. 그럼 이 일체는 모두 규칙이 있는 것이다. 이런 규칙은 절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의 과학이 모르고 탐구해내지 못할 뿐이다. 더욱 미시적인 생명, 방대한 고급 생명이 부동한 일을 하고 있고 부동한 일을 주재(主宰)하고 있으며 일체를 균형 잡고 있다.

내가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이전에 나는 줄곧 말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의 관념이란 고급 생명, 신이 볼 때 모두 유치(幼稚)하고 아주 가소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사람에게 개창해 준 일체 이론은 고층에 도달한 후 모두 아주 가소로운 것임을 당신은 발견하게 된다. 과학은, 지금의 사람은 지구 위에서 생존하고 있고, 지구 위에 있기 때문에 공간 중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떨어져 내려갈 수 없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지구는 흡인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유인력(萬有引力)’이란 우리가 발견하건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내가 설법함은 사회인들이 듣도록 말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 여기에 수련하는 제자들에게 듣도록 하는 것으로서 당신들에게 우주의 진리, 생명, 물질이 존재하는 진실한 상황을 알려준다. 이 우주 중에, 지구의 주위에는 방대하고도 아주, 아주 미시적인 물질 환경이 있는데 층층이 물질생명으로 구성된 것이라, 사람에게 이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어 여기에서 생존하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이 보지 못하는 부동(不同)한 층차의 미시적인 물(水)이 있는데, 당신에게 이런 한 가지 식물・동물과 물질이 존재할 수 있게 해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여기에서 생존할 기회가 있고 생활할 수 있는 많고도 많은 요소가 있도록 하였다.

어떤 물질 그것은 사람이 지면 위에 직립할 수 있고 그가 옆으로 기울지 않도록 하는가 하면, 어떤 물질은 압력과도 같이 사람과 물체를 눌러놓아 그로 하여금 둥둥 뜨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어떤 물질은 사람의 대뇌와 기관 일체가 모두 안정되도록 보증한다. 만일 당신의 대뇌와 각종 기관이 안정되지 않으면 당신은 정상적으로 섰지만 누워있는 것처럼 느낄 것이며, 또는 당신이 아무리 똑바로 서 있어도 늘 똑바로 서지 못한 것 같을 것이다. 그것은 그 지구의 회전으로 생긴 흡인력이 전혀 아니다. 당신이 한 접시 모래를 회전시키면 그것이 곧 날리는데 전혀 그런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지구 이 생존의 환경을 벗어나 환경 밖에 도착했다면 당신은 곧 그 고급 생명이 사람에게 유지하도록 준 이 환경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이런 상태를 벗어났다. 지금 과학이 이름을 달아주었는데 ‘무중력’ 또는 ‘무중력 현상’이라고 한다. 여러분 알다시피 그것이 비록 무중력이어도 그 달, 그렇게 큰 물체가 그토록 멀지만, 여전히 지구에 의하여 이끌리고 있다. 당신 사람이 아직 달에 가지 못했는데 거기에 어떻게 무중력일 수 있겠는가?

사람, 그는 생존하는 환경이 있고 각개 성구(星球)는 모두 거기에 놓여 있다. 바로 방대한 우주가 그것을 거기에 배치해 놓은 것이다. 마치 우리 오늘날의 강(鋼)이요, 철이요, 금이요, 그 속의 분자, 원자가 배열된 순서가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자연현상이 없다고 말했다. 과학은 설명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몽땅 ‘자연’에 귀결시키는데, 오히려 사람을 속일 수 있다. 이 한마디 말은 오히려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다. 왜 모두 3천인가. 이 3천이라는 숫자는, 내가 방금 말했듯이 바로 여러분들에게 그것이 규율이 있고 배치된 것임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또 절대적으로 다 3천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말한 것은 모두 개괄적인 숫자로서 최대한도로 당신으로 하여금 알게 하려고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제자: 우리가 법을 널리 전함이 순조롭지 못함은 열정과 방법상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법 공부가 깊지 못한 문제입니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깨달은 본성은 자연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이다.”라고 하는데 맞습니까?

사부: 한 말은 맞다. 그러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 아직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에서 아직도 지금의 상황에 근거해야 한다. 당신이 남에게 법을 얻게 하려면 당신은 그에게 이 가장 낮은, 가장 표면적인 법리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가 배우려고 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보라. 왜냐하면, 당신이 가장 좋은 것을 남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잖은가. 그가 배우려면 배우고 배우려 하지 않으면 당신도, 그가 배우도록, 설득하지 말라.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그를 설득하여 기어코 그로 하여금 인정에 끌려서 배우게 한다면 그건 모두 가짜이기 때문이다. 그가 친구의 체면을 봐서 오는데, 그것은 가짜이며 그 역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당신에게 법을 얻게 하는 데는 무슨 구체적이고 유형적인 규정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도무형(大道無形)이라는 이 길을 걷기 때문이다. 법을 널리 전함도 역시 자주적으로 해야 한다. 사람이 배우려면 배우고 배우지 않으려면 그만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한 요구, 그것은 전부 당신 자신에 달려있다. 물론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그 외의 것은 물론 모두 사부가 책임져 준다. 心性(씬씽)이 제고되면 사부도 당신에게 조건을 창조해 줄 것이다.

또 법 공부가 깊지 않다고 하는 문제도 아니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문제가 바로 우리가 한 기간의 수련을 거친 후 여러분은 경지와 인식 문제에서 속인과는 모두 무척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당신이 당신의 이처럼 높은 경지 중의 말을 그에게 해준다면 효과는 좋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속인이기 때문이다. 속인은 매일 주식에 주목하며, 다른 사람과 암투를 벌이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서로 빼앗고 조금만 얻어도 기뻐서 야단인가 하면, 조금 잃으면 고통스러워 야단이다. 속인 중에서 제멋대로이고 칠정육욕이 구전(俱全)한 이것이 바로 속인이다. 만약 당신이 속인에게 아주 높은 수련의 일을 말한다면 그의 관념은 당연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신이 그에게 단지 이 대법의 글자 표면상에 나타나는 것을 알려주고 내포는 그로 하여금 스스로 보게 하라. 내가 생각하건대 그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제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근시는 부정확한 상태이다, 안경을 쓴 사람이 안경을 벗어도 괜찮다고 건의합니다. 이러면 가히 소업(消業)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요.

사부: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여러분도 통일적으로 하지 말라. 나는 무슨 일을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말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하지 않은 것은 여러분도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수련할 적에 어떤 면의 업력, 그것을 아주 쉽게 처리할 수 있으며 그에게 개변해 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곧 그리 간단한 상황이 아니다. 이 면에서 단지 일반적인 업력이라면 아주 빨리 없앨 수 있고 안경을 쓰지 못하게 된다. 안경을 쓰면 아른거리기 시작하는데, 즉시 내려놓으면 괜찮아지고 정상적인 눈과 같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당신이 더는 안경을 낄 수 없고 눈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건대 저번에 내가 뉴욕에서 설법을 마치자마자 우리 어떤 수련생이 법을 다 들은 후, 옆 사람이 손을 휘둘러 그의 콘택트렌즈(바로 눈 속에 끼는 그 안경)를 떨어뜨렸다. 떨어져서 깨졌는데도 눈은 상하지 않았다. 사실 그것은 곧 그에게 눈이 이미 좋아졌다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 그러나 그는 깨닫지 못하고 한사코 다른 한쪽 렌즈를 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쪽의 안경을 쓰지 않은 눈의 시력은 안경을 쓴 것과 같이 물건이 아주 뚜렷이 보였다. 아주 뚜렷해졌고 시력이 이미 아주 좋아졌는데도 그는 아직도 한쪽의 안경을 쓰고 있다. 그는 두 눈이 차이가 있으며 불편하다고 느꼈다. 이는 곧 안경이 교정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는 마땅히 벗어버려야 했다. 그는 벗어버리지 않고 한사코 쓰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절반만 깨달아 이 눈은 안경을 쓸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편하게 아직도 이쪽 것은 쓰고 있는데 사실 다 나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그의 눈이 근시인 것이 또 다른 복잡한 요소와 연계되어 있다. 또한, 수련함에 따라 천천히 그에게 처리해 주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아주 빨리 벗어버리지 못한다. 만약 그 자신이 마음속에서 생각하기를, 다른 사람은 안경을 썼다가 연공한 후 곧 벗었는데 나도 벗어야겠다, 또는 나는 반드시 벗고야 말겠다, 벗지 못한다 해도 나는 역시 벗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마 그의 생활과 사업에 모두 번거로움을 가져올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그것은 억지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마음이 있으므로 이렇게 하려고 해도 되지만 그는 곧 불편하지 않는가. 그가 억지로 이렇게 하려고 한다면 또 아마 번거로움을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역시 안 된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면에도 부동한 상황에 근거하고 부동하게 대하는 것이 좋겠다. 그것은 당신의 수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병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영향이 없을 것이다. 안경을 쓰고 책을 볼 수 있으며 연공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의 수련에 영향 준다면 우리는 정말로 이 문제를 특수하게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억지로 규정하거나 통일적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은 이렇게 하지 말라.

제자: 법 공부를 할 때 갑자기 한 가지 이치를 알게 되는데, 心性(씬씽)이 이 한 층에 도달하면 이 한 층의 불(佛)・도(道)・신(神)이 이 한 층의 지혜를 열어주는 것입니까?

사부: 그렇게 이해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으나 공은 사부에게 달렸기에 실질상 그 일체는 다 당신이 한 것이 아니며 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우리 어떤 사람은 대법수련 중에서 책을 백여 번 본 사람도 있다. 그는 볼수록 그 속에 있는 것이 더욱 많으나 글자 표면에는 나타나는 것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왜 그는 그처럼 고심한 이치를 포함하고 있는가? 그는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사실상 바로 글자의 배후에 무궁무진한 법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층차 중에 이르렀고 당신이 어느 한 층으로 수련되어 마땅히 당신으로 하여금 어느 한 층의 이치를 알게끔 하였을 경우, 당신이 그 줄의 글자를 보게 되면 당신은 갑자기 알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 배후의 불(佛)・도(道)・신(神)이 당신에게 마땅히 이 한 층의 이치를 알게끔 하려 하면 그가 당신에게 귀띔해 준다. 그래서 당신은 그 순간에 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상태를 당신들은 주의하지 못하는데, 당신들이 그 한 층의 이치와 그 한마디 말의 이치를 알게 됨에 따라, 당신의 신체에는 다른 반응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신체가 진동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정수리가 뜨거워지며 단번에 발바닥까지 관통함을 느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갑자기 신체가 팽창하는 일종 열류(熱流), 일종 격동과 유사한 감각, 부동한 감각이 다 있다. 그때에 전체 정황의 변화는 아주 크다. 그러나 사람의 가장 큰 한 층 분자로 구성된 신체의 표면에 접수될 경우에는 몹시 약하다. 그래서 그것은 단지 이런 감각일 뿐이다.

그러나 당신 신체의 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신체의 그 한 부분에 생긴 변화는 매우 크다. 그건 정말로 환골탈태(脫胎換骨)적인 변화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한 층차 중으로 들어가려고 하므로, 당신은 반드시 요구하는 바의 그 한 층차 중의 생명의 신체 표준과 사상 경지에 부합되어야 하는데, 바로 이처럼 큰 변화가 생긴다. 그러나 당신 이 신체적인 표면으로 전도됐을 때는 몹시 약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질상에서,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수련 중에서 당신의 신체를 개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이 잘 수련된 그 한 부분과 당신이 잘 수련되지 못한 그 한 부분을 떼어놓는다. 보건대는 마치 일체(一體)인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중간이 떼어진 것으로 연계가 없다. 또 절대적으로 연대(連帶)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주요한 부분은 다 연대 되지 않는다. 최저한도로 표면신체의 잘 수련된 그 부분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다시 말해서 당신이 속인 중에서 수련하므로 당신은 아직도 속인의 행위가 있으며 속인 중의 각종 욕망적인 행위가 있다. 심지어 속인적인 각종 말을 하고 신으로서 말하거나 일하지 못한다. 만약 당신의 잘 수련된 그 부분이 따라서 말하고 또 사람의 신체를 따라 사람의 일을 한다면 이는 신이란 이 한 부분의 자격이 없고 이 한 부분 역시 사람이다. 이 이치가 아닌가.

우리는 당신이 떨어지지 않게끔, 당신의 잘 수련되지 못한 부분만 속인 중에 있게 하고, 잘 수련된 그 부분은 움직이지 못하게 보전한다. 당신의 어떤 행위도 다 그쪽의 사상을 교란해서는 안 되고, 그쪽의 신체를 교란해서는 안 되므로 그것을 떼어놓는다. 우리는 이 방법을 취한다. 당신이 속인 중에 있기에 사업하고 공부하고 생활을 할 수 있게, 또 수련할 수 있게, 당신의 원만(圓滿)을 이룬 그 부분을 계속해서 떼어놓는다. 어떤 사람은, 나의 사상 중에 아직도 좋지 못한 사상, 심지어는 더욱 더러운 사상이 반영되어 나온다고 말한다. 당신은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이 표면에까지 수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또 억제하고 그것을 배척해야 한다. 이것이 곧 수련이잖은가. 그러나 만약 당신의 신체가, 그렇게 큰 부분의 신체가 이미 잘 수련되었다면 말할 것도 없고, 바로 조그마한 부분이, 비단 하나의 인체 세포일지라도 삼계 밖 그 경지(삼계 외는 바로 나한이다. 나한 경지에 도달한 그 세포)에 도달했다면, 그는 당신의 전체 몸을 다 주재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 신체의 다른 부분은 모두 삼계 내의 것으로서 아주 약하기 때문이다. 그는 고급 생명이다. 그가 아주 강하기에 그가 당신의 전체 사상을 주재할 수 있다. 당신의 일체 언행은 모두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다 신의 행위이다.

왜 당신들이 이렇게 장기간 수련해도 여기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사실상 바로 우리가 그를 갈라놓아서다. 그러므로 당신은 도달하지 못한다. 당신이 정말로 도달하려 한다면, 내 말은, 만일 오늘 당신들을 모두 열어놓는다면, 지금 단계 이 정도에서 당신들을 지구 위에 놓아둘 수 없는데, 사람마다 모두 신통이 광대해서다. 석가모니가 개오(開悟)하는 그 순간에 진동이 있었는데, 당시는 지진이나 산사태, 해일로 간주했다. 아주 큰 범위의 지역이 모두 진동했다. 사람이 이처럼 많은데, 당신이 생각해 보라. 지구로서는 당해낼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공간의 신체는 무한하게 클 수 있는데, 당신이 있는 층차 중에서 무한히 커지기 때문이다. 이 한마디 말은 무슨 뜻인가? 예를 들어 말해 당신이 이만큼 높게 수련되어 당신이 제1층 하늘로 수련되었다면 당신의 신체는 제1층 하늘 그만큼 크게 확대될 수 있고 또 아주 작게 축소될 수도 있다. 우리 지금 이 사람의 육신은 분자의 가장 큰 한 층 입자로 구성된 것으로서 그는 영성(靈性)이 없다. 그래서 그를 보면 고정적이다. 사실 그것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다. 당신 신체의 분자 역시 운동하고 있다. 대형 확대경 하에서 본다면 당신의 신체는 마치 모래와도 같고 그 속의 분자는 다 꿈틀거리고 있으며 다 운동하고 있다. 당신의 눈도 분자 이 한 층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보지 못한다. 왜 석가모니는 그처럼 미시적으로 볼 수 있는가? 왜냐하면, 그의 눈은 부처의 눈이라 상당히 높고 상당히 높은 물질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많은 물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제자: 무수한 층차 및 더욱 높은 경지 중의 불(佛)・도(道)・신(神)은 사부님의 지혜 형상의 그 한 층차 중의 구체적인 체현입니까, 아닙니까?

사부: 이렇게 말할 수 없다. 당신이 수련되었어도 당신은 역시 당신이다. 하지만 방대한 법과 법이 만들어낸 우주로 말하면 당신 역시 우주의 일부분이다. 사람의 신체는 당신이 보건대 그것이 완전한 사상과 이 입이 말하고 있지만, 당신, 이 신체는 무수하고도 무수한 세포로 구성되었으며 또 무수하고도 무수한 세포로 조성되었고 분자가 세포를 조성하였는가 하면 또 더욱 미시적인 무수하고도 무수한 입자가 분자를 조성하였다. 이걸 당신이 그것의 이러한 것이 당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그런 입자는 다 당신의 일부분이다. 내가 말하는 부동한 공간 중에 존재하고 있는 당신의 신체는 별개의 일이다. 당신의 세포는 당신의 손과 발처럼 이렇게 크게 운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런 경지 중에서 역시 똑같이 이렇게 운동하고 있다. 다만 그 경지 중에서 아주 미시적이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보지 못하므로 그것이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을 뿐이다. 그래서 마치 당신의 신체의 일체, 일체가 다 당신 자신이 지배하고 당신의 主意識(주이스)의 지배하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당신들은 또 이 우주 전체의 일부분이고 이 우주는 이 법이 구성한 것이다. 바로 이런 관계이다.

제자: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통독(通讀)도 하고 또 책을 암송도 하려고 하지만 책을 암송하면 통독에 영향 준다고 느낍니다. 이 관계를 어떻게 바르게 놓아야 합니까?

사부: 당신이 통독할 때 당신의 제고에 대하여 그건 무척 큰 좋은 점이 있다. 만일 책을 암송하려 한다면 당신은 다만 특정한 시간을 내서 공력을 좀 들여 암송하도록 하라. 이후에는 책을 들지 않아도 통독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시간을 집중하여 그를 암송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통독하려 하면 또 암송하고 싶고 그러면 또 통독하고 싶을 것인데, 늘 이런 식이면, 그럼 늘 이럴 것이다. 당신이 책을 암송할 때에도 당신의 통독에는 영향 주지 않을 것이다. 통독할 수 없다고 해서 제고되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당신에게 영향 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책을 암송할 때 매 한 글자의 배후에는 모두 무궁무진한 불(佛)・도(道)・신(神)이 있으므로 매 한 글자는 다 당신에게 부동한 층차의 이치를 알게 할 것이다.

제자: 저는 나치 표지를 본 적이 있는 세대의 사람입니다. 왜 하필 이 표지가 그에게 도용(盜用)당했습니까? 우리는 이 표지의 진정한 의의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사부: 여러분 알다시피 불가의 이 “만(卍)” 자를 불교 중에서 인식한 것은, 석가모니 시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미 2,500여 년이나 된다. 그럼 다시 말해서 나치 시대를 훨씬 벗어난 것이다. 듣건대 어떤 사람은 그리스 문화중에서도 발견했다고 하는데 그럼 또 불교를 1,000여 년이나 훨씬 넘게 벗어났다. 다시 말해서 그것의 역사는 상당히 긴데, 이것 역시 단지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상 그것은 부처의 것이다. 부처는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그것은 시간(지상의 시간)으로 계산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이 부호는 천체, 우주 중에서 무척 오래된 것이다. 우주 중에서도 오래된 것인데, 하물며 인류의 시간이랴!

그럼 나치는 왜 그것을 썼는가? 내가 말한 적 있지만 어떤 우연한 문제도 없고 자연적인 것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백인사회에서 아주 민감하다. 나는 단지 나의 대법제자에게 설법할 뿐이지 사회상의 속인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속인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당신들의 수련을 책임지기 위해 말하는 것이다.

지상에서 생긴 일체 일, 바로 인류사회에서 발생하는 일체 일은 다 우연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과거의 신은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 일찍이 부패되어 없어지지 않게 하려고,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을 유지하게 하려고, 되도록 그로 하여금 윤회(輪迴) 중에서 다시 되돌아옴으로써,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고, 끝내 훼멸되지 않도록 사람에게 끊임없이 소업(消業)해 주었는데, 이는 사람이 모르는 것이다. 신은 사람에게 소업해 주는 동시에 또 이 사회・물질・일체 생명에 소업해 주었다. 일부 물질은 모두 업력이 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사람이 나쁜 짓을 하다 죽었다면 업력도 그의 생명을 따라간다. 그럼 그는 내세에 사람으로 전생 되지 못하고 그는 한 그루 나무로 전생 된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곧 업력이 있는 것이다. 그가 동물로 전생 된다면 그 동물 역시 업력이 있는 것이다. 그럼 다시 말해서 그가 물질로 전생 되었다면 물질 역시 업력이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하건대 만약 이 세계를 당신이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그건 그야말로, 곳곳이 세차게 밀려오는 업력이라, 당신은 여기에서 생존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럼 만일 사람이 업력이 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은 직접 인간 세상으로 와 사람에게 소업해 줄 수 없다. 소업은 무조건적일 수 없다. 이 우주에는 이치가 있는바, 신은 우주의 이치를 수호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우주에 한 가지 이치가 있는데 무엇인가?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얻으면 곧 잃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당신이 남에게 소업을 해주려면 이 업력을 감당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그에게 없애주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곧 더욱더 많이 쌓이게 된다. 많아지면 그것을 십악불사(十惡不赦)라고 한다. 십악불사하면 곧 훼멸하게 되는데, 이 생명이 곧 훼멸 되는 것이다. 다시는 그를 생존하도록 하지 않으며 완전히 훼멸해 버린다. 그럼 당신이 인류를 보호하려는 그런 것에 따라 그에게 소업해주면 당신, 사람은 업력을 갚는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어떤 고통인가? 천재(天災)・인화(人禍)와 질병을 감당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으면, 이 사람이 일생 동안 병에 걸리지 않으면, 죽은 후 100퍼센트 지옥에 떨어진다. 왜냐하면, 사람은 살면서 업을 빚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예수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죄가 있는 것이다. 그가 업을 빚고서도 끝내 업을 갚지 않는다면 사람은 곧 위험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병을 얻을 것이고 재난을 당할 것이다. 대규모의 사람에게 업력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럼 곧 지진・화재・수재 심지어는 전염병과 전쟁이 나타날 수 있다.

전쟁 여기까지 우리는 말하게 되었다. 그럼 더 말해 간다면 문제는 아주 첨예해진다. 사실 내가 말한 것은 우주의 진실한 이치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이르러 더 말하고 싶지 않다. 세계상에는 어떤 우연한 일이 없다. 내가 정치에 참여하고 싶지 않고 또한 속인 사회에 영향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로지 당신들 수련인을 책임질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까지 말하고 그치겠다. 나는 당신들 스스로 분석하게 하고 싶다.

제자: 우리가 연공하는 곳에서 늘 다른 공파(功派)의 사람이 우리를 교란하는데요.

사부: 정법수련에 만일 당신을 교란하는 사람이 없다면 당신은 수련 성취하지 못한다. 만일 당신에게 시끄러움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당신 心性(씬씽)을 제고시킬 환경이 없으며 당신이 곤란에 부딪히지 않으면 당신은 수련성취 할 방법이 없다. 바로 이런 이치이다. 그러나 우리 어떤 수련생은 흔히 이런 교란을 받으면, 그것을 모두 우리 이 대법으로 저지한다. 그는 자신을 인식하지 않고 그는 대법에 따라 저지한다. 예컨대, 그가 와서 우리 법을 파괴하고 있다! 라며. 그는 왜 이럴 수 있는지의 원인을 자신에서 찾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맞게 하지 못해서인지, 나 자신 무얼 잘하지 못해서인지, 우리에게 뭔가 경고하거나 고험하는 것이 아닌지. 사실 외부인은 영원히 법에 영향 주지 못한다. 그러한 일은 모두 우리 수련생의 제고를 겨냥하여 온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 어떤 지역의 두 방면의 수련생이 쟁투하기 시작했는데, 당신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하나의 마땅히 제고해야 하는 그런 환경으로, 자신의 차이점을 찾는 좋은 기회로 여기지 못했다. 그리하여 모순이 돌출되게 하였다. 최후에는 속인과 같은 그런 식으로 되어버렸다. 당신들은 최소한 그 한 가지 문제에서 모두 속인의 그 경지로 떨어졌다. 그래서 장래에 또 유사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당신들에게 반드시 이 한 고비를 넘기도록 한다. 떨어져서는 또 안 되며 기어코 넘겨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수련을 말함은 바로 이런 일로서 어느 한 마음이 제거되지 않아도 다 안 된다. 당신이 보라. 만약 우리가 정말로 어떠하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면, 그가 스스로 갈 것이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정황이 있다. 우리 사람 자신은 업력이 있는데, 당신이 수련하려고 한다. 삼계 내의 그처럼 많은 생명 그는 다 정과(正果)를 얻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가 당신에게 원한이 있고 당신이 어느 한 생 어느 한 세에 그에게 빚졌던 것이라면, 그는 정말로 와서 복수하며 정말로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하지 못하게 하는데 각종 방법을 취하여 당신을 교란한다. 심지어는 어떤 이상한 일을 만들어 당신에게 겁을 준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을 안정시켜야 한다. 당신이 이미 수련하였는데 겁날 것이 무엇인가?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라. 하물며 당신이 수련하는 것은 정법인지라 더 말할 것이 있는가. 이런 사문왜도(邪門歪道)의 것, 그것이 교란하고 교란하다가 재미가 없다고 생각되면 곧 가버린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영향 주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일에 봉착하게 되기 때문에 나는 『전법륜(轉法輪)』 중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제자: 무엇이 사람의 형체와 영혼이 전멸(全滅)되는 것입니까?

사부: 이것이야말로 대단히 무서운 일로서 대단히 무섭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신들은 그 무서운 정도를 감당해내지 못하는데 그야말로 무섭다! 사람은 사람에게 일생만 있다고 여긴다. 사실 사람은 이 일생 중에 마침 잠을 자는 것과 같아 당신의 진정한 자신은 그리 큰 작용을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신체의 껍질에서 나올 때, 당신은 당신이 가뿐함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면, 사람의 대뇌 억제를 받지 않을 때 당신은 당신의 사상 전체가 다 개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공간으로 들어간 후 속인의 그 공간 시간도 변이(變異)가 발생한다. 마치 잠을 깬 것처럼 당신은 갑자기 당신 일생에서 한 일이 눈에 역력하다. 매 한 건의 작은 일마저도 마치 금방 한 것과도 같이 그처럼 뚜렷하여 단번에 대뇌가 다 해방된다. 당신이 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당신이 전부 다 알고 있는데, 당신은 당신이 속인 중에서 한 일을 당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다시 전생 되어 나와 다시금 나쁜 짓을 한다면 여전히 안 된다. 신이 생명을 보는 것은 총체적으로 보는 것이지 당신의 일생만을 보지 않는다. 당신, 이 생명이 무엇을 했든지 모두 갚아야 하는데 이 이치이다.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

그럼 훼멸된다면 그건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만일 형신(形神)이 모두 전멸(全滅)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소멸하는가? 곧 이 사람의 일생 중의 유형적인 생명을 죽여 버리고 소멸시킨다. 신체를 죽이는 순간에, 이 동등한 경지 중에서 생존할 수 있는 元神(왠선)이며 당신의 모든 영체(靈體)를 전부 다 죽여 버린다. 죽인 후에 그는 정말로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이 한 층을 떠나버림에 불과하며 더욱 미시적인 생명은 아직 존재한다. 그럼 더욱 미시적인 생명 역시 동시에 다시 죽여 버린다. 한 층 한 층의 죽이는 과정에서 그는 또 업을 갚아야 한다. 어떻게 갚는가? 없애지는 고통 속에서라든가, 일체 벌을 받는다든가, 마치 그 지옥 속에서 시달림을 겪을 대로 겪는 것과 같이 벌겋게 달군 철판으로 지진다든가, 어쨌든 일체가 모두 고통 속에서 갚으며 그런 후에 층층으로 죽여 버린다. 죽어버린 다음 당신의 생명은 아직 종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한 층의 생명은 이어서 또 감당하고 또 죽여 버리고, 그런 다음 더욱 미시적인 신체 그가 이어서 또 감당하고 또 죽여 버린다. 줄곧 깡그리 소멸될 때까지 그 고통이란 가장 무서운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내가 나쁜 짓을 해도 죽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어디 그처럼 쉬울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이 한 나쁜 짓을 갚아야만 결말을 지을 수 있다. 그 결말을 짓는다는 것도 역시 결말을 짓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더없이 더러운 - 우주에서 가장 더러운 곳에 처박는다. 인류의 가래, 신은 모두 인류의 가래가 가장 더러운 것이라고 말하는데 당신을 가래 통 속으로 던져버린다. 당신은 환자의 가래가 더럽고 가장 더러운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이건 그 가장 더럽고도 가장 더러운 곳에 비하면 얼마나 많은 배의 차이가 있는지 모른다. 가장 더럽고도 가장 더러운 곳으로 처넣을 것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이때 아직 한 가닥 지각이 있으므로 더러움을 아는데, 그것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거기에서 영원히 있게 되며 영원히 빛을 볼 날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대단히 무서운 일이다! 석가모니는 이 한 지경까지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지옥만 말했고 18층 지옥의 일을 말했다. 매 한층 지옥은 매 한층 지옥보다 고통스럽다. 언젠가 나는 말했다. 사람이 대법을 파괴한 죄는 18층마저도 담지 못한다고. 당신들에게 대단히 무서운 일 하나를 말했다!

제자: 저는 사부님의 저작을 번역하는 일에 참가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풍승소진(瘋僧掃秦)’을 제기하셨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이름입니까, 아니면 전고(典故)입니까?

사부: ‘풍승소진’이란 이 전고가 있다. 이야기는 중국 항주 영은사(靈隱寺)에서 생겼다. 남송 시기 진회(秦檜)라는 간신이 향불을 올리려고 절에 왔다. 한 승려가 빗자루로 간신 진회에게 한바탕 쓸어 붙였다. 그가 땅을 쓸고 있을 때 진회가 절에 들어왔는데, 그는 빗자루로 진회의 몸을 향해 쓸고, 흙도 그의 몸을 향해 쓸었다. 하도 쓸어 부치는 바람에 마침내 진회는 화가 났다. 그는 재상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불러 이 승려를 붙잡으라고 하였다. 그가 보니 이 승려는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신이 그가 미쳤다고 하지만 그의 표현형식이 미쳤지 사실은 미치지 않았다. 그는 사실 아주 이지적이다. 과거의 수련방법은 아주 기괴하였다. 우리가 당신들에게는 이 길을 걷게 할 수 없다. 정말로 모두 정신이 나가버리면 내가 보건대 이 사회는 곤란하다. 그러므로 그 역시 수련상태가 조성한 것이다. 진(秦)이란 바로 진회이다. 바로 악비(岳飛)를 죽인 그 진회이다. 이것은 중국 고대의 수련이야기이다.

제자: 시간이 얼마나 있어야 전세(轉世)될 수 있습니까?

사부: 아, 당신은 죽은 후에 그곳에서 얼마만 한 시간이 지나서 전생하는지를 말하는데, 당신은 상관하는 것이 좀 너무 많다. 그런 일은 모두 전생을 책임지고 세간(世間)의 일을 책임지는 그런 구체적인 신(神)이 배치하는 것이다. 모두 그들이 하고 있는데 사람의 정황과 업력의 상황에 근거하여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상황이 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아주 길게 걸려서야 전생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기다리는 시간이 짧다. 무엇 때문인가? 가령 우리가 인류사회로 전생할 때는 흔히 한 군체(群體)로 온다. 당신 마음대로 그곳에 전생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한 군체로 전생한다. 이 군체 사이는 전 한 세에 서로 사회적인 연계가 발생하였고 다음 한 세에 여전히 또 그로 하여금 사회적인 연계를 발생하도록 한다. 흔히 당신의 이 군체와 관계가 없는 사람은 마치 국외인(局外人)과도 같다. 세상에 사는 사람은 모두 이런 감각을 가지는데, 마치 사회상의 일부 사람은 당신과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마치 늘 당신과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아마 당신의 국내지인(局內之人)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군체가 전생할 때 흔히 그들이 함께 전생한다. 하지만 반드시 한 곳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다. 또 왁자하게 한꺼번에 다 오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먼저 오고 그가 후에 오고,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는데 어쨌든 이렇게 온다. 온 후에는 그가 전세에 그에게 진 빚을 이 금생에서 갚는데 바로 그러한 일이다. 당신이 전세에 그에게 좋은 점을 주었다면 이 금생에서 당신이 그의 구제를 받으며 그가 복으로 보답함을 얻는데 그건 바로 이러하다. 이것은 업력이 크지 않은 사람의 전생과정 중 일부 일이다. 업력이 아주 큰 사람은 반드시 다시 사람으로 전생 되는 것이 아니다. 식물・동물, 마지막에는 물질로 전생 되며, 최후에는 훼멸 될 수 있다.

제자: 사부님께선 다른 사람의 업력을 감당할 수 없고 자신의 친자식이라 할지라도 역시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21세 되는 자식이 지금 타락하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만 그에게 책임감이 있도록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나는 먼저 당신의 앞의 문제를 해답하겠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절대 개변시킬 수 없다. 바로 당신의 일생도 당신 스스로 어떻게 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일생은 더욱 어떻게 하지 못한다. 사람이 어떻게 노력해도 그는 모두 그 자신이 생존하는 그 길로 간다. 당신은 마치 노력을 거쳐 무엇을 얻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필연이다. 당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의 노력 역시 당신의 자연적인 일부분이기 때문에 당신이 그때에 가서는 필연적으로 이렇게 하게 된다. 하지만 만일 자식을 교육하지 않고 그들에게 어떻게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자식이 잘 교육받지 못해 나쁜 짓을 했을 때, 업력에는 어른의 한몫도 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교육할 방법이 없는 건 별개의 일로서 일체는 다 잘 배치한 것이다. 왜 여전히 교육해야 하는가? 만약 좋은 사람으로 교육했다면 다시 큰 업을 짓지 않을 것이고 생활의 질이 같지 않은가 하면 또 수련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소업함을 말하자면 그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왜냐하면,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업력에 다른 사람의 업력을 가한다면 아마 며칠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업력이 너무나 크다.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다. 내가 당신들에게 고층차의 것을 말해 주어도 당신들은 흔히 사람의 사상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것은 안 된다. 자식이 좋지 못하게 변함을 말한다면 우리는 부모로서 그를 교육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 자식은 이미 나이가 들어 그는 아예 듣지를 않는다. 그가 어렸을 때 당신이 엄하게 단속하지 못하고 그를 내버려뒀다면, 그는 자라서 필연 타락하게 되는데, 내 생각에 다시 단속하기가 너무 어렵다. 만약 그가 당신의 말을 듣는다면 당신은 그가 듣기를 원하는 상황에서 그에게 선의로 충고해 주고, 만약 그의 심정이 괴로워 보일 때면 당신은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말을 해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당신은 또 화만 발끈 동할 것이다. 그럼 실로 단속할 수 없다면 이것 역시 당신 탓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전에 잘 교육하지 못했으므로 여전히 책임이 있다. 이 점은 틀림없다. 만약 인류의 다음 한 세대가 이처럼 발전하여 내려간다면 앞세대 사람에게 죄가 있는 것이다.

만약 한 사람, 그가 아직 청성(淸醒)할 수 있고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며, 그가 냉정해 있을 때라면 당신이 그에게 책을 주어 보게 하라. 만일 그가 볼 수 있으면 어쩌면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이전에 법을 범한 어떤 사람도 우리 대법 중에서 수련하여 좋게 되었다. 또 마약을 흡입하는 것도 있었는데 우리 여기에서 연공하자 그는 마약중독이 없어졌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절대 마약을 흡입하는 사람을 우리 여기로 데리고 와서 소독(消毒)하려고 하지 말라. 당신은 우리 대법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우리 여기는 사람에게 이런 일을 해주는 데가 아니다. 사람이 좋지 못한 일을 함은 그 자신이 해낸 것이라 그가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알려준다. 우리 대법의 위력은 무궁하다. 하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수련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더러운 신체와 사상을 갖고서는 안 되기 때문에 당신을 정화(淨化)해 준다. 그럼 다시 말해서 당신은 신체가 좋아지고 병이 없어지거나 혹은 불량한 습관이 사라져버린 것을 느낄 것이다. 그에게는 이러한 효과가 생길 수 있다. 수련을 위해 이렇게 한 것이지 사람의 병을 치료하거나 소독(消毒)을 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세계 만물은 모두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어떤 사람은 자신이 전세에 한 일을 생각할 수 있으나 자신이 식물 또는 동물이 되었던 것임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까?

사부: 그것은 당신이 듣지 못한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역시 아주 많다. 전세의 일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머리를 깨끗이 씻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생할 때 그를 잘 씻지 못했거나 혹은 기억부분을 잠가둔 것이 견고하지 못해 일부 것이 남겨졌는데, 그에게는 전세의 기억이 있을 수 있다. 식물에 대하여 말하면, 내가 예전에 중국에서 수련반을 꾸리고 설법할 때, 10일 동안의 학습과 수련을 거친 후 수련생들이 심득체험을 써서 나에게 보였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일을 말했다. 그는 그가 어떤 식물에서 전생하였는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다. 그것 역시 그의 진정한 생명 형상이 아니라 그의 그 한 세 중의 형상일 뿐이다. 그가 도대체 무엇인가, 윤회왕생(輪迴往生)할 때 그것은 무엇으로든 다 전생되는 것이다. 당신의 元神(왠선)이 무엇인가 보아야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진실한 형상이다.

제자: 신부와 수녀들에게 대규모로 『전법륜(轉法輪)』을 소개할 수 있습니까?

사부: 사실 나는 그들을 모두 속인으로 간주한다. 그들이 정말로 수련해야만 신으로 될 수 있다. 그들은 지금 아직도 사람이다. 평범하고도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일이 다를 뿐이다. 나는 이 문제를 이렇게 본다. 그러나 그들의 일은 필경 수련과 관계가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종교라는 장애가 있다. 그들은 원래의 종교를 고수할 것이고 그들의 종교를 내려놓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이 대법을 얻는 데 최대의 장애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법리를 알려줄 방법도 없다. 우주의 이처럼 큰 법에 대해 그들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 상관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또 한 가지 최대의 저애가 있는데 바로 그들이 책마저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곤란하다. 이것은 그들의 최대의 저애이다. 이 저애력을 제거하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당신이 그들에게 말해 보라. 그들이 들을 수 있다면 곧 들은 것이고 그들이 듣기를 거부한다면 방법이 없다.

제자: 동물이 천국으로 갈 수 없다면 천국에는 마땅히 동물이 없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 결론은 정확합니까, 정확하지 않습니까?

사부: 내가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주 중의 법리와 그의 진실한 정황을 말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반드시 의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물은 절대 천국으로 갈 수 없다. 만일 천국세계로 가려면 반드시 사람으로 전생 되고 다시 수련해야만 천국으로 갈 수 있다. 사람도 천국으로 갈 수 없다. 사람 역시 수련해야만 된다. 그럼 천국세계 속에 동물이 있는가, 없는가? 있다. 그건 모두 온순하고 착한 것인데 코끼리, 사자가 있는가 하면, 또 용(龍), 봉(鳳)이 있다. 인류의 동물과 비할 수 없다. 그들은 신이다. 마치 동방에서 신앙하는 용과도 같다. 그 외의 생물이나 동물도 있다. 그러나 절대다수는 모두 그 한 층의 공간에서 생긴 것으로서, 법이 그 한 층 생명에 창조해 낸 것이며 그 한 층 고급 생명의 환경을 번영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또 지상에서 올라간 것도 있다. 그러나 수련하여 올라간 것이 아니다. 어떤 부처의 세계에도 동물이 있다. 어떻게 올라간 것인가? 그는 그의 다른 방법이 있다. 예컨대 부처가 초도(超度)하여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 있을 때 동물인 것이 아니라 아마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것을 더 말하지 않겠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이러한 신의 일을 더는 생각하지 말라. 사실 당신의 수련과 관계가 없다. 수련 중에서 당신의 좋지 못한 사상을 다그쳐 제거하고 초상(超常)적인 사람이 되며 당신 자신을 더욱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최후에는 신의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제자: 主元神(주왠선)은 어느 공간에 있습니까? 그가 동시에 각개 공간의 신체를 주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그렇다. 하지만 그가 완전히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가 미혹 중에서 속인 사회 이 미혹에 가로막힌 이 부분은 또 작용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건대 이번 법회는 아주 성공적으로 열렸다. 당신들이 심득체험을 말할 때 대다수 시간에 나는 다 위에서 들었다. 내가 느끼건대 이 한 차례 유럽의 백인 수련생의 진보가 아주 빠르고 법에 대한 이해도 아주 깊은데 이 점은 여태껏 있어본 적이 없었는바 대단히 좋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이번 법회는 아주 원만하게 열었으며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 도달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번 법회를 거쳐 우리 지금의 수련생들에게 법 공부 붐을 조성할 수 있다. 여러분들은 이 법을 진귀하게 여길 것이며 동시에 또 더욱 많은 사람이 와서 이 법을 배우도록 할 것이며 이 법을 널리 선전할 것이다. 당신들은 갈수록 이 법의 진귀함을 알게 되는데, 당신들은 끊임없는 수련과 제고 중에서 각개 층차 중의 법리를 알았으며, 그가 무엇인지를 당신들로 하여금 알게 하였기 때문이다. 이 법은 당신이 배우면 배울수록, 당신은 그가 더욱 진귀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가장 잘 제고되도록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을 많이 보는 것이다. 책을 많이 보는 것이 우리를 가장 빨리 제고되게 하는 것이다.

시작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개개 수련생은 여기에 앉아서 모두 진정하게 마음으로 들으며 진정하게 자신에 결합하여 사고하고 있는데, 이건 대단히 좋다. 나 역시, 이번 법회를 거친 후에 우리가 모두 멀지 않은 장래에 더욱 빨리 제고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대법의 힘, 대법회(大法會)의 힘을 빌려 더욱 빨리 제고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다음번에 당신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반드시 더욱 크게 돌파하고, 더욱 크게 변화해 있을 것이다. 이 점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틀림없이 이러하다. 더욱더 진보하고 더욱더 원만에 접근할 뿐이다.

나는 많이 말했기 때문에 더 말하지 않겠다. 특히 노수련생 당신들은 모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여러분들이 법 공부와 일의 관계, 당신 속인 중의 다른 일의 관계를 바로잡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며 하루빨리 원만을 이루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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