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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長春)보도원법회설법

 

李 洪 志
(1998년 7월 26일)

 

아주 오랫동안 여러분과 만나지 못했다. 우리 여기에 자리한 많은 사람이 여태껏 나를 만난 적이 없는데, 이 비율이 아주 높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 수련을 아주 잘했으며 우리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빠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나를 만났던지 만나지 못했든지 다 똑같다. 이 수련의 길에서 오직 당신이 수련만 하면 절대로 두 가지 대우가 있을 수 없다. (박수소리)

우리 여기에 자리한 대다수가 모두 보도원이며 모두 대법을 위해 크게 공헌했다. 당신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비교적 간단한 일로 생각하고, 또 속인 지도자가 일하는 것처럼 무슨 보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신들은 완전히 모두 자신의 열정과 대법에 대한 인식에 따라 하고 있는데, 보기에는 간단하고 간단하여 무슨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속인 이쪽의 표현이 평범할수록, 아마 당신들은 보지 못하겠지만, 당신들이 수련한 이 경지 중의 표현은 정말로 굉장한 것이다. (박수소리) 다시 말해서 당신들은 당신들이 한 일을 그렇게 간단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이 기왕 이 일을 하게 된 이상 그것을 잘해야 한다. 고층 생명도 늘 나에게 말하는데, 당신들이 여기에서 대법을 위해 공헌을 할 수 있는 이것은, 당신들의 미래 생명에, 상당히 긴 이후의 역사 시기에 아주 좋은 기초를 다져주고 있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도 당신들을 부러워하는데 그들은 이런 일을 할 기회가 없다. 모두 이 지구에 온다면 담아내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이 일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현재 속인사회 중에서 그는 많고 많은, 속인을 훨씬 초월한 이런 일을 과도하게 표현하지는 않을 것인바 바로 이렇게 평범한 것이다. 흔히 우리 수련 중에서도 어떤 요란한 것이 없으며, 모두 속인의 각종 모순의 표현 중에서 우리의 心性(씬씽)을 연마(魔煉)한다.

사실 당시 우리 창춘(長春)의 여러 노수련생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법을 전하고 공을 전하는 초기, 이 일은 아주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의 곤란한 시기를 겪고서야 이 법을 널리 전하여 더욱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할 수 있었다. 당초에는 아주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걸어 나왔다. 그리하여 이 법은 우리 창춘(長春) 이곳에서 첫발을 내딛고 전해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이렇게 높고 깊게 말하지 않고 단지 기공에서부터 진정한 법을 전하는 과도시기의 것만 말했다. 나중에야 점차 진정하게 이 법을 드러낼 수 있었고, 더욱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한바 이 일을 아주 체계적으로 했다. 그러나 또 속인사회에서 속인이 안배하는 그 어떤 형식처럼 표현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속인사회의 행정사무를 보는 식의 그런 관리방식이나 혹은 다른 방면의 그런 형식을 취하지 않았다. 보기에 모두 아주 자연스럽지만, 실은 얕은 데서부터 깊은 곳으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렇게 큰 법을 전하는 것은 아주 엄숙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여기에 자리한 많은 사람이 모두 노수련생인데, 이 법이 전해져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분 좀 생각해 보라. 당신들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수련하였으며, 법에 대하여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수련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사회 각 계층의 사람을 포함하고 있다. 지식층일수록 이해가 더욱 빠른데 이것은 일반적인 기공에서는 없는 현상이다. 왜 이럴 수 있는가? 바로 우리의 법이 진정한 정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긴 시간 수련해온바,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법, 그는 절대로 속인사회 중의 어떤 이론이 아니다. 당신이 동서고금의 모든 인류 지식을 다 뒤져보아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 현대인의 사상에 결합하고 현대인의 관념에 결합하여 여러분이 잘 알 수 있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모두 장기적으로 사회에서 형성된 고유한 관념이 있으며, 또 그 자신의 직장일이나 혹은 그 자신이 종사하는 전문분야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예를 들어 말하자면 과학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고, 군의 일(軍事)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정치하는 사람이 있고, 장사하는 사람이 있는 등등이다. 사람 그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든지, 그 자신이 형성한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든지 고유관념이 형성되어 있다. 당신이 진리는 마땅히 이런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는 진리는 마땅히 저런 것이라고 여기는, 즉 사람마다 모두 고유한 관념이 있다.

우리 많은 사람이 방금 법을 얻었을 때는 모두 이런 고유관념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다. 그러므로 모두 한 가지 인식과정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후기에 법을 배운 사람은 비교적 빨랐으며 인식한 것도 마치 어떤 장애가 없는 것 같았다. 과거 초기에서 줄곧 1~2년 전까지는, 당신들이 법을 얻을 때,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후천적으로 형성한 관념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실증과학으로 이 법(法)이 어떻다고 가늠했고, 어떤 사람은 이 유물변증법으로 이 법이 유물변증법에 부합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가늠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자신이 상거래(商場) 중 형성한 세계관으로 법을 가늠하는데, 바로 부동한 계층의 사람에게는 모두 장애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이 장애를 타파하기 위해, 되도록 현대인의 사상관념과 현대인의 사상 방법에 부합하도록 이 법을 말했다. 동시에 나는 법을 말하는 중에서도 당신이 법을 얻는 것을 방해하는 일체 요소를 모두 타파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아주 많은 사람이 나의 책을 보면, 첫 번째 볼 때는 내가 과학을 말하고 있다고 느끼는데 사실은 아니다. 우리는 현대인의 사상 방법으로 당신의 그 관념을 타파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한다. 나는 많고 많은 이런 일을 했는데, 오늘날 인류의 상태를 보고 이렇게 안배했다. 법을 전하는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고 법을 얻을 수 있게 하고, 각종 관념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하려고 이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이 몇 년간 법을 전하는 중 더욱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할 수 있었다.

이 자리의 보도원・노수련생들은 여러분 자신이 아직 인식하지 못한 많고 많은 위대한 일을 했는데 진정으로 위대한 일이다. 속인사회의 표현으로는 아주 평범하다. 이 법이 전해져 더욱 많은 사람, 사회 각종 계층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인식하게 하였다. 만약 배우는 사람이 없고 수련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영(零)과 같다. 그러나 우리 이 법은 우주의 진리를 말한 것으로서 천지개벽 이래 여태껏 말한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 이치를 말하는 방식으로, 사람의 이런 관념을 이해하여 당신의 장애를 타파하는 이런 방법으로 말함으로써 당신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우주의 이치를 인식하게 했다. 그러므로 이 법이 전해진 그 당시 사람들이 배우기에 문제가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정하게 수련해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한 가지 문제에 연루되는데, 바로 우리에게 진정한 실수(實修) 환경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수련생이 법을 얻어 수련하는 중에서 점진적으로 제고하게끔 할 수 있는지가 지극히 중요하다.

나는 어제 창춘(長春) 보도소(輔導站) 책임자들에게도 말했다. 즉 당신들의 가장 크고 가장 큰일은 바로 우리 수련생들에게 교란받지 않는, 안정된 수련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서, 이것이야말로 당신들의 가장 큰 책임이다. 당신들, 여기에 자리한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당신들의 보도참(輔導站)・보도소(輔導點)로 하여금 여러 사람을 이끌어 수련함에 교란을 받지 않도록 할 수 있어야 하는바, 그것이 바로 당신들의 가장 큰 책임이다. 물론 이런 일을 시작은 내가 했고 현재는 당신들이 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이미 대법(大法)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나 본인도 이렇게 많은 사람을 대하고 곳곳에서 이렇게 할 수는 없다. 전국에는 2천여 개의 현(縣)이 있는데, 각각의 현, 각각의 도시마다 얼마나 많은 연공장(煉功點)이 있는가. 내 몸 하나로 뛰어다니기는 불가능하다. 법이 전해졌고 우리에게는 법이 있으므로, 여러분은 모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 뿐만 아니라 아주 잘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조목의 틀이 없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석가모니가 법을 전할 때 그는 수련 중의 제자들에게 문제가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바로 백여 가지 계율을 정했다.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이런 계율에 따라 수련하게 함으로써 문제가 나타남이 없이 그들의 원만(圓滿)을 보증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늘 어떠한 조목의 틀이 없다. 무엇 때문에 없는가? 나는 어떠한 외재적 형식으로 사람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외재적 형식, 명령이나 혹은 어떠한 수단을 취해도 모두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없으며, 사람의 마음은 자신에 의해 개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자신이 개변하려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개변시킬 수 없으며 어떠한 법령이나 규정은 모두 표면만 다스릴 수 있을 뿐 근본은 다스릴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개변되지 않으면, 당신이 보지 않을 때, 그는 여전히 그 자신의 관념에 따라 일을 할 것이기 때문인데, 이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오직 사람의 마음이 개변되어야만, 사람의 마음이 되돌아 올라가는데, 그것이야말로 지극히 중요하다. 오직 이렇게 가장 근본적인 데서부터 해야만 사람으로 하여금 개변이 일어나게 할 수 있고, 인류로 하여금 되돌아 올라가게 할 수 있으며, 수련인으로 하여금 원만(圓滿)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이 외에는 어떤 방법도 없다.

우리 여러분은 이런 일을 위해 매우 고생스럽게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마치 속인처럼 고맙다고 할 수는 없다. 여러분은 수련인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모두 자기 일을 자신의 제고와 결합한바, 당신의 일과 당신의 수련을 절대로 분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일하는 중에 부딪히는 번거로움, 부동(不同)한 의견과 격한 모순은 모두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당신에게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우리 보도원들은 제고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이 모두 당신을 따르고, 말하는 대로 따라 한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부지중에 여러 사람을 삿된(邪) 길로 끌고 가게 될 것인데, 그렇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모두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수련 중에서, 일하는 중에서 제고를 얻을 것인바, 다시 말하면 당신의 일과 당신의 수련을 결합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감사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당신들은 모두 나의 제자이고 제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사부는 없으므로 나도 말하지 않겠다. (박수소리)

여러분을 보니 난 마음속으로 매우 기쁘다. 나는 잇따라 일부 수련생을 접촉했는데, 나는 여러분의 변화가 아주 큰 것을 보았다. 짧은 시간 동안에도 변화가 아주 컸고, 어떤 사람은 변화가 매우 컸다. 눈 깜박할 사이에 1년이 지나갔다. 전번 창춘(長春) 설법 이후 당신들과 이렇게 많은 사람과 만난 것은 이 몇 년 동안에는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정말 여러분을 만나보고 싶었다. 과거에 우리는 줄곧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일단 내가 어디에 나타나면 수많은 수련생이 그 지역으로 몰려왔다. 그러면 그 사회의 많은 방면에 압력이 조성되어 매우 걱정했다. 특히 우리 이 대법은 배우는 사람이 매우 많아서, 국내외를 합하면 억(億)이나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일단 대법을 만나기만 하면 사람들은 모두 착실하게 배운다. 다른 어떤 것을 연마하는 사람들처럼 오늘은 연마하고 내일은 그만두는 것과는 같지 않다.

우리 이것은 다르다. 여러분이 들어오면 우리는 여러분에 대해 책임을 진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수련하고, 제고하며, 되돌아 올라가고, 원만(圓滿)에 이르게 한다. 여러분도 이 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데 어떠한 조건에서도 우리가 표현하는 것은 모두 바른 것이다. 사회에 대해서든지 개인에 대해서든지 당신의 가정에 대해서든지 혹은 당신의 부동한 생활환경에 이르기까지 모두 유익한데, 이 점은 내가 더 말할 필요가 없이 여러분도 알고 있다. 이 법이 사회에서 이렇게 큰 영향이 있고, 이렇게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와서 배우고 있다. 내가 일단 어느 곳에 나타나면 많은 사람이 모두 오려고 하므로 각 방면의 압력이 아주 높을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나에게 묻기를 “사부님,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와주실 수 없습니까?”라고 하는데, 나는 그에게 답을 주기가 쉽지 않다. 내가 만약 그에게 약속해 준다면 나는 가야 하므로 나는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내가 좋다고 약속을 하면, 조금 있다가 이곳의 수련생이 모두 가서 말하게 되고, 그러면 내가 가기도 전에 그곳으로 미리 많은 사람이 가게 되는데, 아마 이럴 것이다. 특히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사회의 일부 직능부문이, 우리에 대하여 아직 인식하지 못하거나 혹은 우리에 대하여 아직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우리에게 일부 손실을 보게 하고 수련생의 수련 환경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일을 하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아래의 두 가지 원인으로 나왔다. 즉 하나는 1년 남짓 만나지 못했고 또한 고향이기에 특수한 경우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이는 보도원으로, 단지 보도원을 만나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수련생을 만나려 해도 그렇게 큰 장소가 없는데, 창춘(長春)에는 몇만 명이 모일만한 그러한 장소가 아직 없으므로 다만 이러할 뿐이다. 또 하나는, 나는 기본적으로 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점에서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원인으로 나왔다. 그러나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는 당신의 수련 정황을 다 알고 있다. 매 한 사람 나는 모두 알고 있다. 오직 당신이 배우고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나는 당신을 책임질 것이다.

당신들이 해적판 책을 샀어도 문제가 없는바 이 점은 확실하다. 책이란, 백지에 검은 글자로서 그 자체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우리 『전법륜(轉法輪)』이든, 우리 다른 서적이든 포함하여, 그가 진정으로 작용하는 것은 그 배후의 내포와 그 배후의 진정한 실질적 원인이다. 이것은 다른 책에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당신이 베껴 쓴 것이든, 아니면 해적판 서적이든 오직 당신이 배우고 수련만 한다면 자연적으로 그의 내포가 있을 것인즉, 불법은 끝이 없는 것이라, 그가 체현해 내는 위력은 대단히 크다. 그뿐만 아니라 또 우리 속인사회의 시간・공간 이런 개념과는 다르며, 완전히 모두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해적판 서적이 새롭게 판을 짠 것은 일률적으로 사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발견 후에는 관련 부서와 협력하여 조사해야 한다. 만약 원서(原書)대로 찍고 인쇄한 것이라면 괜찮은데, 이런 것은 내용에 착오가 없을 것이다.

오늘 내가 온 주목적은 여러분을 좀 만나보려는 것이고 많은 사람도 나를 만나고 싶어 했으므로 나는 오늘 좀 높이 앉겠다. (박수소리) 기왕 왔으므로, 나도 온 김에 또 여러분에게 몇 가지 문제를 말하겠다. 우리가 한 번 만나기도 쉽지 않다. 우리 여기에 자리한 사람 중에 문제를 제출할 필요가 있다면 당신은 쪽지에 적어서 제출하라. 내가 여러분에게 해답해 주겠다. 그러나 간결해야 하며 “사부님, 저는 얼마나 사부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혹은 “법이 어떻게 좋습니다.”라고 말한 뒤에 문제를 제출하지 말라. 이럴 필요 없다. 당신은 무슨 문제이든, 문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라. 이러면 내가 읽기에도 빠르며 해답할 때 시간을 점하지도 않는다.

나는 우선 두 가지 문제를 말하겠다. 일부 문제는 내가 다른 장소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어떤 때에는 개별 지역이나 혹은 개별 환경하에서 비교적 두드러지게 표현하였으므로 중복된 것과 같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더욱 자세히 말해줄 수 있다.

첫 번째 문제를 말하면 바로 이렇다. 우리 대법은 무엇 때문에 어법(語法)이 규범에 맞지 않는가? 이는 지식인 중에서, 문화의 정도가 비교적 높은 계층에서, 특히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 등등, 바로 이 방면의 사람들에게서 문제가 되었는데, 그들에 대한 장애는 아주 크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규범적인 속인의 언어로 법(法)을 말할 수 없는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규범에 맞는 용어(名詞) 그것은 정의를 내린 것으로서 ‘이 단어는 바로 이 뜻이다.’ 라고 하고, 또 규범적인 언어는 한정적이므로 그 홍대(洪大)한 법을 표현할 수 없다. 이 우주의 방대함에 인류의 지구는 다만 한 알의 먼지 중의 먼지 중의 먼지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바로 그렇게 작다. 그것이 어떻게 이렇게 큰 법을 담을 수 있겠는가? 우주의 법을 어떻게 인류의 언어로 규범화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인류의 규범적인 언어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우리 이 법은 다만 사람의 언어를 이용했을 뿐이다. 이 언어로 어떻게 말하느냐 하면, 그것은 오직 당신에게 알게 하면 되는 바로 이런 목적이므로 이 언어는 바로 규범적이지 않다. 오늘날 법을 전하기 위해서 내 머릿속에는 어떠한 고유의 관념도 형성된 것이 없다.

또 한 가지 문제를 말하겠는데, 바로 우리 대법 중에 무엇 때문에 도가(道家)의 용어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어떤 극소수 종교인은 우리를 공격할 때 말하기를, 그는 또 불가(佛家)의 것과 도가(道家)의 것을 섞어 말하고 있고, 또 과학도 말한다고 한다. 사실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과학(科學)이든, 도가든, 불가든 모두 이 대법의 가장 낮은 층차 중의 그런 한 점 중의 한 점이다. 물론 나는 현대인에게 법을 말하므로 현재 사람의 관념에 결부시켜 말해야 하는데, 내가 천상의 언어로 단어(名詞)를 말한다면 당신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또 우리가 많고 많은 현대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낸다면 당신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법을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도가의 용어가 있는가? 사실 나는 부동한 환경 중에서 이미 이 문제를 말했다. 우리 이 대법(大法)은 우리 불가의 범주를 아주 크게 뛰어넘었지만, 나는 불가를 기점으로 하여 우주의 법을 말했다. 이 대법 그가 얼마나 크던지 간에 나는 그중에 있지 않으나, 당신들은 어떤 생명이든 모두 그 중에 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어떤 생명도 모두 법이 개창(開創)한 것이며 당신들의 생존 환경과 방식도 모두 법이 개창해 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법의 그늘에는, 다시 말해서 전체 우주 중에는, 당연히 불가(佛家) 한 가(家)뿐만이 아니다. 그는 물론 불(佛)도 있고, 도(道)도 있으며, 또 기타 당신들이 아직 알 수 없는 각종 신(神)이 있는데, 각종의 부동한 신이다.

나는 이렇게 큰 우주, 이렇게 큰 법을 말하고 있는바, 당연히 그 속에는 도가의 것이 있고 신의 것이 있다. 사실 당신들은 보아내지 못하는데 이 속에는 또 서방 종교의 것이 있다. 왜냐하면, 내가 오늘날 대면한 것은 중국인뿐만이 아니며, 하나의 민족뿐만이 아닌 많고 많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정상궤도를 벗어난 일체 물질과 생명을 가장 원시, 가장 처음, 가장 좋은 단계에 이르기까지 되돌려야 하므로 이렇게 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나는 불법(佛法)을 말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불(佛)의 기점에 서서 우주의 법을 설하고 있다. 내가 성취한 것은 부처(佛)의 형상이므로 내가 불법이라고 말해도 틀림이 없다.

나는 당신들에 대하여 책임져야 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모두 불가 法輪世界(파룬쓰제)나 혹은 기타 불(佛)의 세계로 데려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모두 한 문제만 생각해서 사부님, 저는 사부님의 세계로만 가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생각에 잘못은 없으나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나는 오직 당신들의 마음만 본다. 속인의 관념으로 신(神)을 생각하고 속인의 사상으로 신을 인식하는데 그것은 영원히 분명하게 생각해 낼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오늘날 바로 신의 사상이라면 전체 관념은 모두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만약 과거에 당신에게 당신의 세계가 있었다면, 당신이 부동(不同)한 층차에서 법을 얻으러 왔다면, 당신이 도(道)라면, 당신이 신(神)이라면, 그렇다면 당신은 원래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늘 당신들에게, 당신들의 과거가 무엇이며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당신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고 알려주곤 했다. 당신은 오직 수련만 하고 오직 이 대법에 동화되기만 해라. 다시 말해서 당신이 불(佛)이든, 도(道)든, 신(神)이든, 모두 우주 대법에 동화해야만 당신으로 하여금 돌아가게 할 수 있다. 미래의 일은 틀림없이 당신으로 하여금 절대적으로 만족하게 할 것이다. 당신으로 하여금 절대적으로 만족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당신이 얻는 것은 모두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일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주는 더욱 좋은 것과 본래보다 더욱 좋은 환경은, 모두 당신들로서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던 것일 것이다. (박수소리)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 때문에 다른 종교 중의 술어(術語)가 있는가 하는 것인데, 바로 이 뜻이다.

종교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사람의 인식이고 사람이 지어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라는 개념도 아주 모호하여 그것은 고정된 정의(定義)가 없다. 석가모니가 법을 전할 때 그는 종교라고 말하지 않았고, 예수도 자신이 기독교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성모마리아 또한 자신이 천주교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 나름으로 부르는 법이 있으며, 제자들에 대하여 자신들 나름의 부르는 법이 있지만 절대로 사람이 말하는 그런 개념은 아니다. 신은 종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종교를 믿는 많은 사람이 그 속에서 수련해 내지 못한다. 사실 그는 진정으로 수련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런 마음만 있어도 좋다고 여기는데, 지키는 것은 그 종교 자체이지 부처가 아니다. 부처는 다만 사람의 마음만 보고, 신은 다만 사람의 마음만 본다. 종교 중에서 당신이 자신을 진정하게 수련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당신이 종교에 귀의했거나 혹은 출가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데, 불제자와는 같지 않다. 부처는 단지 당신의 마음만 볼 뿐이다. 출가는 형식으로 부처를 향하는 마음의 표시일 뿐이다. 오직 본질적인 개변만이 비로소 진정하게 부처에게 귀의한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출가하지 않고 당신의 마음이 귀의하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물론 당신은, 나의 마음은 아주 경건하다고 말하지만, 당신이 경건한 것은 종교와 당신이 표현한 그런 종류의 유위적(有爲的) 형식에 대해서이지 수련하는 것이 아닌바 그것은 다른 별개의 것이다.

이 문제는 중요한데, 바로 이 법이 매우 커서 우주 중의 일체 수련 방법, 일체 생명을 포함하고 있음을 말한다. 내가 말한 도가의 용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지구에서는 정교(正敎)가 유전되어 온 것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다만 이렇게 몇 종류만 말할 수밖에 없다. 사실 수련 방법은, 우주 중에 매우 많지만, 인류 사회 중에는 다만 몇 종류가 있을 뿐이다.

나는 단지 여러분을 만나보고 싶었을 뿐, 말을 많이 하고 싶지는 않다. 수련하는 일에 대해 말하자면 당신은 나를 보았든지 보지 못했든지 똑같이 수련할 수 있는바, 이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여러분은 늘 나를 만나고 싶어 하므로 바로 이런 기회를 빌려서 여러분과 만나는 것이다. 여러분과 이야기할 것을 많이 준비하지 못했다. 내 생각에 한번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방금 나는 여러분에게 쪽지를 건네도 좋다고 말했다. 그럼 쪽지를 가져와라. 꼭 해답해야 할 것이 있으면 해답해 주겠다.

제자: ‘뿌리를 캐다’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두 편의 경문에 대해, 우리 연공장에는 두 가지 이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법을 지키기 위해 하는 것은 맞는 것이라고 말하고, 하나는 수련을 위해서이고 수련하여 올라간 이후 이것이 가장 큰 호법(護法)이라고 합니다.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이 두 편을 써낸 이후, 어떤 사람은 수련인의 마음으로 보고, 어떤 사람은 속인의 마음으로 보려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잘못하고서도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쓴 것을 보고도 그는 여전히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그는 아직도 속인의 마음으로 자신을 위해 변명한다. 우리 또 어떤 사람들은 두 사람이 논쟁하는 상황에서 모두 법 중에서 나의 말을 찾아 서로 간에 쟁론한다. 당신들은 모두 속인의 마음으로 대법을 단장취의하고 있다. 당신들은 모두 법의 각도에 서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당신들이 각도를 바꾸어 인식한다면 당신들은 이러지 않을 것이다. 마주치는 어떠한 모순이든 모두 자신의 마음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뿌리를 캐다’는 북경에서 그런 사건 하나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 많은 사람이 모두 알고 있을 것인데, 나는 이 사건 자체가 어떠한가를 말하고 싶지 않다.

제자: 석가모니는 제6층 우주에서 왔는데 무엇 때문에 소우주의 끝도 보지 못했습니까?

사부: 당신들처럼 속인의 논리적 사유로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석가모니는 제6층 우주에서 온 것에 그치지 않으며 아주 높은 경지에서 왔다. 만약 그가 그렇게 높은 것을 지니고 있다면 인간 사회에 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당시의 사람은 다만 유한한 법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므로 석가모니는 나한법(羅漢法)을 전했고 현재 남겨진 것도 역시 이런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 확실히 아주 더욱 높은 법리도 설했지만 모두 남겨지지 못했다. 40여 년간 설법 중에서는 확실히 ‘사대(四大)’ 내의 법도 말했다. 이런 것은 당신들 수련과 모두 관계가 없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누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막론하고, 우리 여기에 자리한 사람들 역시 아주 높은 층차에서 온 이가 있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볼 수 없으며, 인류를 넘어선 것이라면 자신조차도 보지 못한다. 수련하고 있는 사람이나 법을 전하고 있는 사람, 그가 지구(地球)에 머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렇게 제한을 두어야 했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나에게 만약 하나의 속인 사상이 없다면 나 역시 여기에 머물 수 없다. 바로 이 일을 하기 전에 내가 사람의 사상을 규합했는데, 사람 가운데 있으면서 이렇게 당신들에게 설법할 수 있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일은 당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자: 언어장애가 보도원의 일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사부: 이 언어장애에는 크고 작음이 있는데, 만약 우리가 말을 할 때 조금 더듬거나 혹은 혀에 흠이 좀 있거나 혹은 표현력이 조금 부족한 것이라면 모두 영향이 없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대법을 따라 배우는 사람 수가 갈수록 많아지고 접촉하는 사회 계층도 갈수록 높아지는데, 우리가 모두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내가 보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문화 층차가 높은 많은 사람이 초기에 법을 배울 때 확실히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건의하기로, 우리 보도원 중에 만약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법에 대하여 인식이 높은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는데, 지식수준이 높고(지식수준이 높다고 법에 대한 인식이 높은 것은 아니다.), 법에 대하여 아주 높은 인식이 있어야 하며, 법을 배운 지 적어도 일정 기간이 되어야 하고, 몇몇 번은 관(關)을 넘긴 적이 있으며, 변덕스럽지 않은 그런 사람이면, 당신의 조수로 삼거나 바꿀 수 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보도원을 하는 것은, 모두 이 일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련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누가 만약 나는 보도원직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자. 내가 보기에 이 마음은 조만간에 제거해야 하는데 언젠가 이런 한 차례가 나타날 것이다. 당신은 보도원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수련하려고 온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내 생각에 이 언어 장애가 좀 있는 것은 문제가 없다.

제자: 우리가 수련하여 되돌아가면 원래의 층차를 돌파할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아직도 사람의 생각으로 신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당신이 장래에 명백해졌을 때 당신은 당신이 제출한 문제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당신은 그런 일들을 모두 상관하지 말라. 대법은 당신들에게 가장 좋은 일체를 개창해 주었으므로 당신들은 오직 수련만 해라. 사실 우리 더욱 많은 사람이 염려하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집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신에 대하여 말하자면 당신들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며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다.

제자: 法輪世界(파룬쓰제) 외에, 더욱 높은 층차에는 또 얼마나 많은 세계가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머리를 수련에 써야 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부지기수로 많다. 당신은 당신 신체에 분자가 얼마나 있는지 헤아릴 수 있는가? 삼계 내의 신체는 모두 인신(人身)이라고 한다. 사람의 신체는 미시적인 입자로 구성된 더욱 큰 한 층 입자이고, 그런 후에 더욱 큰 한 층 입자가 다시 또 더욱 큰 한 층 입자를 구성하므로 소위 인신(人身)은 삼계 내의 총칭이다. 삼계 내에만 해도 얼마나 많은 입자가 있는지 당신은 전혀 모른다! 부지기수이다. 당신이 수련하여 어떤 경지에 이르렀던지 우리 여기에 있는 당신은 우주 중에 얼마나 많은 세계가 있는지 전혀 모를 것인데, 이는 절대적이다.

제자: 저는 몇 년간 연공을 했는데도 가부좌를 한 채 잠들어버리는 일이 자주 있어서, 저는 줄곧 곤혹스럽습니다.

사부: 여러분은 고생해야 함을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혼수(昏睡)상태, 그것 역시 당신을 시달리게 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하지 못하게 하는데, 당신은 생각하지 못했는가! 이 또한 당신의 의지가 마땅히 작용을 일으켜야 할 때가 아닌가? 당신이 눈을 뜨고 해도 잠이 들어버리는가?! 안 되면 눈을 뜨고 연공하라. 이 관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

제자: 아이를 교육할 때 아이가 듣지 않고, 또 말을 듣지 않으면 그를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옳습니까?

사부: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에 대한 방임은 부모의 범죄이다. 오늘날 인류사회가 이런 정도로 변한 것은 당신들 한 세대 한 세대의 사람들과 관계없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아이는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내가 보니 미국 사회는, 아이들에게 벌을 주지 못하도록 법률로 제한하고 있고, 아이들에게 벌을 주면 법을 범하는 것으로 여길 만큼, 그렇게 방임하고 있다. 그 아이는, 예의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기본적인 사람의 도리도 모르는데, 장래 커서 한 무리 어떠한 인류가 되겠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우리 중국에는 바로 이런 전통이 있으니, 당신은 반드시 당신의 아이를 단속하고, 당신의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바, 방임해서는 안 된다. 매를 때려도 되고, 꾸짖어도 되지만, 우리 수련하는 사람은 화를 내면 안 된다. 아이는, 당신이 좋은 기분으로 매질하거나 웃는 얼굴로 매질해도 그는 역시 아프므로 가르칠 수 있다. 그 목적은 아이에게 교훈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나쁜 일을 못 하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잘못이 없다. 생각해 보라. 이것은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를 위해서도 좋고, 미래의 인류를 위해서도 역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또 다른 극단으로 간다. 다시 말해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역시 문제가 없지만, 이지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제자: 불법은 진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까?

사부: 이 문제를 제출한 것은 상당히 높다. 수련 중의 일부 생각은 옳은 것이며 정확하게 말해서 불법은 생명에 생존 환경을 개창해 주었으며 사람에게 생명을 준, 바로 이런 관계이다. 생명은 다만 그의 그 경지 중의 생존 방식을 위해 존재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대각자라면 아래의 많은 일을 관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당신이 더욱 많은 생명을 위해서 존재할 수 있는, 바로 이런 관계이다.

제자: 『전법륜(轉法輪)』을 보기만 하면 졸리는데…….

사부: 우리 보도원으로서 이런 문제를 제출하였다면, 내 생각에 당신은 좀 멈추어 우선 다른 사람에게 하라 하고 자신은 먼저 배우고 배워서, 많이 제고된 후에 다시 하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당신은 『전법륜(轉法輪)』을 보기만 하면 졸린다니 당신은 『전법륜(轉法輪)』을 단 한 번도 내리읽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도(輔導)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보도, 보도라, 우리는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여기에서 전하는 것은 법이라, 동작은 원만의 보조 수단인데, 당신이 동작을 아무리 표준적으로 한다 해도 법이 없으면 수련 성취하지 못한다. 법은 지극히 중요한 것으로서 책을 보면 졸리는 것은 바로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그 가부좌만 하면 졸리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제자: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은 사상업력이 아주 크며 게다가 늘 한 단계를 지나면 또 한 차례 나타납니까?

사부: 이것은 한 가지 보편적인 현상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나는 당신들이 수련을 정말 아주 잘했음을 보았다. 특히 노수련생들, 당신들을 보면 정말로 기쁘다. 그러나 당신들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을 것인즉, 때때로 사상 속에는 아직 좋지 못한 것이 반응(反應)해 나올 수 있고 심지어 상당히 좋지 못한 것이 반응해 나올 수도 있으며, 그리고 반응해 나온 그런 좋지 못한 것이 갈수록 나쁠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 이치를 알려주겠다. 우리는 수련할 때, 여러분이 알다시피, 미시적인 것에서부터, 당신 생명의 구성에서부터 당신을 개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개변된 당신의 그 부분은 바로 표준에 도달했으므로, 그 부분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당신의 사람 이 부분이 무엇을 하려고 할 때, 그 부분은 따라서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신이 나쁜 일을 하는 것과 같게 되고, 그러면 떨어져 내려온 것과 같게 되므로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끊임없이 수련하면, 끊임없이 법의 그 한 부분에 부합되는바, 그를 격리한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수련 중에는 한 바퀴, 한 바퀴씩 밖으로 확산하고 있는데, 나무껍질은 당신의 표면이다. 그렇다면 그는 수련이 잘 된 그 부분에서, 안에서부터 밖으로 수련하는데, 최후에는 표면까지 수련한다. 당신의 수련 잘된 그 부분은 신이고, 수련 안 된 그 부분은 사람이다.

내가 하는 것은 당신 생명의 미시적인 부분에서 시작하여, 곧 당신 생명의 안에서부터 당신을 개변시키고 있는데 그렇다면 밖은 상대적으로 개변됨이 적다. 그러나 수련은 바로 자신이 자신을 단속해야 하는 것으로서 줄곧 최후에 이르기까지이다. 그러나 줄곧 이 껍질의 변화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당신의 사상에는 모두 속인의 사상이 반응(反應) 되어 나올 것인데, 어떤 때에는 상당히 좋지 않을 것이지만 당신은 그것을 억제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 단속하고 있는 그 부분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당신이 억제하지 못했다. 그것이 모두 아주 깊은 층차 중에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지금은 비록 사상 속에서 반응해 나온 좋지 못한 염두를 발견하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억제할 수 있고, 수련 중에서 바로 자신의 행위와 사상을 통제할 수 있다. 이는 단지 대법 중의 수련 상태일 뿐이다.

여러분이 교란을 받지 않고 수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련이 잘된 부분을 반드시 갈라놓아야 한다. 그러나 또 당신을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하려면 표면의 것은 갈수록 약해지고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수련이 잘된 부분이 이미 100층이나 된다 해도 당신의 표면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단지 한 층뿐이라는, 바로 이런 뜻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것의 비례가 아주 작은데, 목적은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모두 다 제거해 버려 당신에게 속인의 어떠한 관념과 속인의 어떠한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표면상에서도 속인이 아닌바, 그렇다면 당신은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없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에게 속인의 마음이 없다면, 당신은, 각 방면에서 모두 당신을 교란하려 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무슨 문제를 생각할 때는, 그의 한 동작 한 표정, 아주 미묘한 표현까지도 목적을 띠게 마련이다. 게다가 어떤 사람은 좋지 못한 강렬한 사상을 가지고서 어떻게 사람을 부려 먹을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도둑질 매춘, 무엇이든 다 생각하는데, 이러한 세계에 당신은 잠시도 머물 수 없다. 그것은 이런 정도로 난잡해졌다. 모든 사람이 여기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하려고 우리는 이런 수련 형식을 채택했는데, 이는 가장 빠른 것으로서 당신의 잘 닦은 그 부분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갈라놓는다. 당신이 끊임없이 수련하고, 끊임없이 책을 보며, 끊임없이 인식하고, 끊임없이 명백해지면 바로 당신의 범위는 끊임없이 확대된다. 다시 말해서 갈수록 당신 표면으로 온다. 표면이 모두 개변되면 바로 원만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당신의 사상 중에 아직 좋지 못한 사상이 있다고 해서 겁먹지 말라. 그러나 한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명백해졌다고 하셨으니, 이는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있음을 보증한 것이므로, 좋다, 나는 그것에 관계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당신의 방임은 당신이 수련하고 있지 않은 것과 같은바, 바로 이런 관계이다.

제자: 청컨대 사부님, 무엇이 ‘술류(術類)’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사부: 술류(術類)의 것이라, 종교는 저마다 술류가 있다. 부동(不同)한 수련형식에는 부동한 술류의 것이 있고, 부동(不同)한 층차에도 부동한 술류의 것이 있다. 개괄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이 채용한 부동(不同)한 수법을 수련이나 표현에 사용하는데,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떤 병을 치료하거나, 마(魔)를 항복시키거나 하는 등등을 포함하는데 당신은 이것을 배워서 무엇을 하려는가? 당신이 배운 것 속에는 무엇이든지 모두 있지만, 당신에게 알려줄 수 없다. 당신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재빨리 되돌아 올라가는 것이다.

제자: 삼계는 신(神)・인간(人)・귀신(鬼) 이것을 삼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사부: 삼계는 내가 이미 부동한 환경에서 말한 적이 있는바 우리 책 속에 모두 있다. 삼계는 욕계(慾界)・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 이 삼대 부분으로 조성된 이런 범위이다. 삼계 내의 생명이 함부로 나감을 허락하지 않으며, 삼계 밖의 생명 또한 아무리 재주가 있다 해도 함부로 들어옴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곳은 사람의 일체 물질이 존재하는 곳이며, 이곳에는 당연히 어떠한 세간의 사람, 신, 귀신도 있다. 있기는 있는데, 그렇지만 당신의 그런 개념이 아니다. 삼계는 하늘이 정한 한 범위이다. 삼계로 떨어져 온 생명은 다시 천상으로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삼계를 벗어날 수 없지만, 당연히 수련하면 예외다. 수련한다 해서 모두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수련은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지상이나 혹은 삼계 내의 부동한 층차에 있을 수는 있다. 이 삼계 밖의 생명도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특수한 곳이다. 신의 이런 개념으로 본다면 이 속은 가장 더러운 곳이다.

제자: 법을 배울 때 어떤 사람들은 늘 자려고 합니다.

사부: 법을 배울 때 자고, 책을 읽을 때 자고, 연공할 때도 당신은 자는데 어쨌든 이런 가장 기초적인 것조차도 돌파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지의 문제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당신이 수련 중에서 사람을 구성한 어떠한 요소도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사람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구성한 어떠한 환경의 것도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떠나지 못하게 하는데, 당신은 무엇이든지 모두 돌파해야 하고 어떠한 마난(魔難)도 모두 넘어야 한다. 가장 크게 표현되는 것은 그들이 당신에게 고통을 조성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에는 부동(不同)한 형식이 있는바, 잠자는 것 역시 한 가지이다. 수련할 수 없고 정진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이것이 고생이라는 것을 모른다. 당신이 법을 얻을 수 없도록 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는데도 당신은 아직도 그것을 마난으로 생각하지 못하는데, 당신의 마음이 법에 있지 않고 수련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가? 당신의 의지를 강하게 하라. 사람이 만약 자신의 잠을 억제해서 부처가 될 수 있다면 나는 너무나 쉽다고 말한다. 이 작은 한 가지 관도 당신은 넘지 못하는데, 그럼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제자: 수련하는 시간은 아주 한정되어 있는데, 지금부터 용맹정진하면 선생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사부: 이것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당신에게 아직 수련할 시간이 있다면 당신은 곧 수련하고 용맹 정진하라. 집에 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하여 말한다면, 기연(機緣)이 있어 당신은 오늘 여기에 앉아 나를 만났다. 그렇지 않은가? 아직 기회는 있는 것이다. (열렬한 박수소리) 이 일 전체가 결속되지 않는 한 당신은 기회가 있다. 서둘러라. 어떻게 다그치느냐 하는 것이 바로 당신들이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제자: 本體(번티)를 가지고 가지 않는 제자의 원만(圓滿)이 있습니까?

사부: 당연히 本體(번티)를 가지지 않고 원만에 이르는 이가 있다. 내가 방금 말했듯이 모두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가지는 않을 것이며,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가는 이는 신체(身體)를 가진다. 이 우주 중에는, 과거 많고 많은 수련 형식과 부동한 천체의 천국 세계가 있었는데, 그들의 100분의 99.9는 모두 신체를 원하지 않는다. 육신체(肉身體)를 그렇게 좋다고 보지 않으며, 아주 많은 천국에서는 당신이 신체를 가지고 돌아가는 것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가지고 돌아가면 그곳의 법을 파괴하는 것과 같게 되며, 그곳의 우주대법 중에서 이해하고 깨달은 당신들의 그 한층 법을 파괴하게 된다. 석가모니가 말한 ‘계(戒)・정(定)・혜(慧)’처럼 그도 역시 우주대법 중에서 체현되어 나온 것으로서, 역시 그가 깨달아 스스로 이뤄낸 계(戒)・정(定)・혜(慧) 체계이다. 모두 육신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니며, 다만 法輪世界(파룬쓰제)에 가는 사람만이 가지고 간다.

또 하나는, 어떤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가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속인의 생각에 불과하다. 속인의 일종 죽음을 두려워하는 관념을 지니고서, 이번에 다 가지고 가는데 또 죽을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고 말한다. 당신이 신체를 가지고 가든, 가지고 가지 않든 우리는 최후에 여러분으로 하여금 당신이 원만(圓滿)을 이루는 그 한 장관(壯觀)을 보게 할 것이다. (열렬한 박수소리) 우리 대법, 이 일의 끝마침은 어떤 종교의 전성시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뻐할 것만이 아니라 당신은 원만에 이르기까지 수련해야 한다.

제자: 가부좌할 때 결가부좌를 할 수 없는데 心性(씬씽) 층차와 관계있는 것입니까? 원만(圓滿)에 이를 수 있습니까?

사부: 나는, 많은 사람이 반가부좌마저도 틀지 못했지만 결국에는 결가부좌를 틀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당신이 오늘 돌아가서 단번에 틀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써서 연마하면 된다. 이 방면의 업력이 좀 클 수 있지만 모두 소멸해 버릴 것이다. 이 세상에서 수련보다 더욱 엄숙한 일은 없다. 당신은 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고, 당신은 다른 일을 위해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할 수 있는데, 당신은 당신의 수련을 위해서 좀 고생을 겪을 수 없는가? 업력이 온몸에 가득한 한 사람이 부처가 되려 하고, 원만(圓滿)을 이루어 수련 성취하려 하는데, 이것보다 엄숙한 것이 또 있는가?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대하는가? 이런 문제가 아닌가? 수련 중에서 어떻게 도달하느냐에 대하여 말하자면, 우리도 시작하자마자 당신에게 도달해야만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천천히 수련할 수 있는바, 이것은 문제가 아니다.

제자: ‘뿌리를 캐다’ 경문 중에서 수련생은 관념의 뿌리를 캔다고 말하고,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에서는 법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맞습니까?

사부: 당신들은 문자를 파고들지 말라. 내가 당신들에게 명백히 하고자 하는 것은 그 속의 내포(內涵)로, 당신들이 수련하면 인식할 수 있으니, 당신들은 이런 표면상의 글자 뜻을 파고들지 말라. 나는 방금 또 말했는데, 우리 이 책이 만약 그의 배후의 내포가 없다면, 다른 책과 무슨 다를 것이 없는 백지 위의 검은 글자일 뿐이다. 법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마음을 내려놓고 어떤 관념도 품지 않고 보면, 당신이 얼마나 인식할 수 있든지 틀림없이 모두 옳을 것이다. 당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어떤 관념을 품었거나 자신을 위해 자신의 착오를 덮어 감출 수 있는 구실과 근거를 찾으려는 이런 전제하에서 본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어떤 유위적(有爲的)인 마음이든 모두 내려놓고 본다면, 당신은 무엇이든 다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이 많이 이해하든 적게 이해하든 모두 편차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떠한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을 품고 본다면 당신은 그의 한 점도 보아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글자의 표면을 파고들며 서로 논쟁만 할 것이다. 당신이 마음을 조용히 하고 본다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최근 시기에 쓴 글에는 명백하게 쓰지 않은 것이 있는데, 일부러 명백하게 쓰지 않은 것으로, 당신들의 수련에 더욱 큰 장애를 조성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내가 명백하게 말할수록 당신이 만나는 번거로움, 장애는 더욱 커진다. 그러므로 일부 것은 당신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인데, 내가 명백하게 말했다 하여 당신들의 수련 길이 반드시 평탄한 것은 아니다. 당신이 깨달은 이 방면의 난은 작아졌지만, 당신이 부딪혀 넘지 못한 그 관문은 오히려 커졌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많이 들었다 하여 좋은 일이라고 여기지 말라. 사실 법은 이미 완벽하게 모두 당신들에게 남겨준바 바로 당신들이 어떠한 심태를 품고 수련하는가를 본다.

제자: 제가 어떻게 해야만 보도소(輔導站)를 하나의 진정한 수련마당으로 변하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것은 어떤 특별한 규정이 없다. 우리는 어떠한 조목조목의 틀이 없다. 그러나 한 보도소로서 내가 쓴 그런 단문(당신들은 경문이라고 부른다) 속에 일부 보도원의 소질에 대한 견해를 제출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당신들도 참고하여 볼 수 있다. 당신들의 보도소 환경을 더욱 좋게 하려 하고, 어떠한 정도에 도달하도록 하려 하는데, 수련생이 따라오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또 어떠한 조목조목의 틀로 그를 제약하여 어떻게 하라고 할 수도 없다. 표면적인 제약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단속할 수 없는바, 그것은 모두 가짜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수련생이 입문하기 때문에 정체(整體)적인 경지로는 영원히 신(神)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당신의 보도소는 늘 사람이 수련하고 있지만, 사람과는 또 같지 않다. 왜냐하면, 당신의 수련 잘 된 그 부분, 신이 될 수 있는 그 부분은 이미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의 일은 아주 간고하고, 당면한 사람의 마음은 복잡한바, 틀림없이 이러하기에 당신들이 비로소 수련할 수 있다. 법에 따라 하고, 문제가 나타나면 자신에게서 먼저 찾은 다음 다시 이 문제의 원인을 찾으면 내가 생각하기에 일을 잘할 것이다.

제자: 어떻게 감성에서 이성으로 승화될 수 있습니까?

사부: 이것은 어떤 속인 중의 표현형식이 없는바 당신이 배우는 것처럼 어떠한 한 가지 이론이 아니다. 이성적 인식으로 승화되었을 때 당신도 부지불식간에 명백해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빨리 당신은 또 명백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당신의 명백해진 그 부분이 이미 표준에 도달했으므로 당신이 명백해짐에 따라 그를 격리하기 때문에 연이어 당신은 또 명백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이 법을 당신은 항상 배워야 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우리 일부 사람들은 법을 외울 수 있는데,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아주 익숙하게 외웠던 것이 무엇 때문에 또 잊어버리게 되는가? 왜냐하면, 아주 익숙하게 외운 그 부분은 이미 수련되어 건너갔고 남은 것은 아직도 명백하지 못한 이 부분이기 때문인데, 여전히 계속 보아야 한다.

제자: 중국어를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수련생이 반드시 그 중국어판 『전법륜(轉法輪)』을 배워야만 비로소 제고를 얻을 수 있습니까?

사부: 이것은 문제가 안 된다. 우리는 현재 여러 종류의 문자본이 있다. 만약 단지 중국어를 배워야만 제고될 수 있다는 것에 국한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무슨 영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서 다른 언어 역시 똑같이 제고를 얻을 수 있고 똑같이 원만(圓滿)에 이를 수 있다. 게다가 당신이 마음을 쓴다면,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으며 차이점이 없다. 번역한 것은 다만 글자 표면의 그 단어일 뿐이고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배후의 내포이다.

제자: 저는 마음속으로 수련 성취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원만(圓滿)을 이루어 수련성취 하겠다고 말하는 이것은 집착이라고 할 수 없는바, 이것은 당신의 가장 좋은 본성이 나온 것이다. 날마다 나는 원만을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원만을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집착이라고 나는 말한다. 당신은 이런 소망이 있으면 되고 나머지 것은 수련만 해라! 당신의 머리가 늘 이 원만을 생각한다면 당신 수련의 것을 얼마나 많이 차지하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집착이 아닌가?

제자: 사부님의 ‘시간과의 대화’ 경문을 읽고 일부 수련생들은 시간에 대해 아주 집착하는데 이 경향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사부: 바로 방금 제출한 이런 문제에서 보았을 때, 우리 일부 수련생은 정말로 어떤 신선 같은 사람이 보이고 그 사람이 그를 데려 가서 수련하려 한다면, 그는 정말로 따라갈 수도 있을 것인데, 이것은 위험하지 않은가? 그것이 작은 문제인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천체(天體) 중의 어떤 방대한 물질이든 모두 신이다. 인류는 그를 개념으로 인식한다. 태양이 떠오르고, 날이 저물고, 동이 트며, 시계가 가고, 물질이 변이하고 있다. 과일은 더운 날에 아주 빨리 부패하고, 밥은 먹지 않으면 쉬며, 농작물은 익어가고, 1년은 4계절이 있는바, 일체가 마치 모두 시간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것을 일종의 개념으로 인식한다. 사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바, 이 일체의 촉성은 시간 자신(本身)이 관장하고 있는데, 그는 신(神)이다. 태양이 떠오르고, 날이 저물고, 지구가 태양을 에워싸고 도는 속도마저도 모두 시간이 조성한다. 그러나 시간 그것 또한 지극히 복잡한 것이다. 부동(不同)한 공간에는 부동한 시간이 있으며, 그 위 더욱 큰 환경에는 더욱 큰 환경의 시간이 있고, 더욱 큰 환경 속에는 또 독립적인 각종 부동한 작은 시간이 있는 것으로서 지극히 복잡한 요소이다. 우리는 보통 그것을 시공이라고 말하는데, 부동한 공간 중에는 부동한 시간 개념이 있다.

현재의 인류, 현재의 과학자는 그 별(星球)이 우리 여기에서 15만 광년의 거리라고 말하는데, 나도 다만 그의 이런 인간의 사유개념을 빌려 당신들에게 한 가지 일을 설명할 뿐이다. 사실 이런 설은 모두 틀린 것이다. 부동한 별 주위에는 그것 자신의 장(場)이 있는 것으로 그것은 자신의 시간이 있다. 부동(不同)한 별과 우리 지구 사이의 공간 거리에도 부동한 환경이 존재하며, 부동한 환경의 시간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지구와 기타 볼 수 있는 별이 존재하는 이 공간을 현재의 속도로 계산하는데, 그것은 전혀 부정확한 것이다. 한 별에서 다른 한 별에 도달하는 그 속도는 하나가 아닌바, 부동한 범위 내에는 모두가 부동한 시간의 장(場)을 가지는데, 시공을 형성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이 방사하기 시작할 때의 속도는 상당히 빠르지만, 쏴-하며 지구에 다다르게 되면 점점 느려지는데, 그것은 이러하다. 그것이 부동한 공간 장(場)으로 진입하면 그것은 또 빨라졌다 늦어졌다, 빨라졌다 늦어졌다 하는 것이 나타날 수 있다. 현재의 과학, 그것은 아주 많은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시간은 아주 많은 것을 장악하고 있는바, 그것은 신이 아닌가?

제자: 어떤 법공부조(組)에서는 법 공부를 할 때, 보도원이나 어떤 수련생은 일부 주제를 벗어난 것 같은 말을 합니다.

사부: 우리가 법을 학습함은 바로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당신은 이 법에 대해서 의론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수련생으로 하여금 법에 정의를 내리게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 법에 대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말할 수 있으며, 혹은 “아, 나는 깨달았는데, 나는 어느 곳, 어떤 일들이 어떻다.”고 하는 이런 것은 괜찮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는데, 이런 일을 여러분이 지나치게 자주 하는 것을 나는 주장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희망하는 것은 여러분이 항상 『전법륜(轉法輪)』이든, 어떤 대법 책이든, 한 권을 통독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를 통독하는 중에 알지 못하는 글자가 있을 때, 글자 표면에서 이 글자의 뜻을 해석할 수는 있지만, 그의 배후의 내포에 대해서는 해석할 수 없다. 사람마다 모두 인식이 있을 수 있어, 당신은 이렇게 인식하고 나는 저렇게 인식해서 서로 충돌이 일어나는데 여러분은 부디 이런 일을 하지 말라.

내가 쓴 것은 흔히 모두 아주 많고 아주 큰 층차, 아주 큰 범위의 내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근본적으로 똑똑하게 말할 수 없다. 당신은 당신이 인식한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반드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 한 층차에서 인식한 것이지만, 당신이 반드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부동한 인식이 있는바 이는 층차의 부동함이 원인이다. 당신이 오직 마음을 조용히 하고 어떠한 관념도 품지 않고 보고 배운다면, 당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감이 들더라도 이해한 것에는 틀림없이 편차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해한 것이 많거나 적고 명백해진 것이 많거나 적음은 사실 당연하다. 신(新) 수련생에게 시작하자마자 대법의 모든 것을 알게 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제자: 사부님의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경문에서, 우주의 진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선천적 순진을 위해서 존재합니까?

사부: 당신은 또 나와 문자를 따지고 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박수소리) 당신이 수련하려 하지 않고 원만(圓滿)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든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당신의 수련, 당신의 원만은, 여전히 당신이란 이 사람을 해탈시키기 위해서가 아닌가? 사실 내가 말한 이 말은 당신에게 알려주려는 것인데, 수련과정 중에서 당신이 자신을 견정히 하여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 이것은 자신을 위해서 책임지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책임져야 한다! 당신들을 교란하는 사람에게 이끌려 존재하지는 말라는, 바로 이 뜻이다.

제자: 연공장에서 사부님의 동공 녹음을 틀어 놓고 동공을 할 때, 어떤 사람은 가부좌하고 있는데 괜찮습니까?

사부: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통일적으로 연공하는 것이 가장 좋다. 기왕 단체로 함께 연공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여러분은 같이 연공하는 것이 가장 좋다. 만약 나는 혼자서 연마하겠다고 하고, 나는 이미 동공을 연마했으니 현재는 정공을 연마하고 싶다고 한다면 역시 안 될 것은 없다. 우리가 엄격하게 이렇게 해야만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왕 여러분이 함께 연마(煉)하므로 내가 생각하기에 단체로 연마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당신이 보라. 일거일동(一舉一動)이 만약 정연할수록 그 마당은 더욱 크고 힘도 더욱 강하므로 당신의 손은 이끌려서 날아다닐 것이다.

제자: 법 공부할 때 낭독하는 것과 묵독하는 효과는 같습니까?

사부: 무슨 큰 차이가 없다. 단지 우리 부동한 사람의 습관이 다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소리 내어 읽으면 마치 기억되지 않는 것같이 느끼고, 어떤 사람은 소리 내어 읽어야 비로소 확실하게 기억된다는 이것은 습관의 차이일 뿐이다. 당신 자신의 부동한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하든 모두 괜찮다.

제자: 어떤 사람은 통독을 여러 사람이 함께 큰 소리로 읽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전면적이지 못하잖습니까?

사부: 통독하거나 통독하지 않거나 큰소리 내어 읽는 것과는 다르다. 통독은 또한 작은 소리로 읽는 것과도 다르며 통독은 또한 묵념하는 것과도 다르다. 당신이 습관적으로 어떤 방법을 취하든지 모두 괜찮다. 당신들의 습관에 따라 읽으라.

제자: 부처(佛) 신체(身體)의 가장 큰 표면 입자는 원자입니까?

사부: 나는 인류의 어휘를 빌려 법을 설하고 있는데, 그가 절대적인 우리의 이 원자인가? 라고 말한다면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우리 이 공간의 어떤 물질의 실체 표면 물질이 아니라 그 공간의 동등한 물질로서 위력이 더욱 큰 것이다.

제자: 사람이 죽으면 이 층의 가장 큰 분자 성분을 벗어버리는데, 그렇다면 다른 공간의 신체는 여전히 분자이지만 가장 큰 것이 아닙니까?

사부: 왜냐하면, 사람은 삼계 내에서 윤회 전생하기 때문이다. 삼계 내의 모든 신체는 모두 인신(人身)이라고 부르고, 삼계 내의 모든 분자는 모두 분자라고 부른다. 다만 크고 작음의 입자가 부동하여 부동한 공간을 구성했을 뿐이다. 그러나 또 완전히 이런 것만은 아니다.

제자: 부처가 있으면 곧 마가 있는바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러도 여전히 있습니까?

사부: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마는 없다. 그러나 부동한 생명에는 상대성이 존재하고 있다. 이 우주의 크기는 당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당신들 사람의 사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자: 질투심을 제거한 후 한 번에 내성적인 성격을 개변해야 합니까?

사부: 내성적인 성격은 사람의 성격 문제이다. 질투심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성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나는 내성적이어서 내가 말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나는 또 남을 질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이 많지 않은가?

제자: 수련생들의 수련, 홍법, 법을 배움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두려움입니까?

사부: 우리 수련생들이 모두 착실하게 수련할 수 있는 이것은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단체로 일부 활동을 하거나 혹은 우리 단체 연공, 법회를 여는 이것도 모두 우리가 수련 중에서 안배한 일부분이다. 근본적으로 대법의 수련환경이 손실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 만약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 정말로 두려움이라면, 그럼 心性(씬씽) 방면의 일이다.

제자: 외팔인 사람이 연공장에서 연공을 하면 대법에 대하여 영향이 있습니까?

사부: 영향이 없다. 관계없다.

제자: 동료들이 모두 다투어 학위를 따려 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저는 대학원에 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사부: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의 이 사상은 약간은 좀 극단적이다. 왜냐하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최대한으로 속인에 부합되어 수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학위라든지 당신이 쏟은 노력은, 아마 당신이 법을 인식하는 데 더욱 유익할 수 있다. 당신이 장래에 홍법하거나, 법을 인식하는 데에도 모두 유익할 수 있고, 당신 개인의 미래 생활까지도 관계된다. 우리의 수련이 결속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어 수련해야 하므로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사실 당신의 대학원생활, 당신이 전공한 학위는 절대로 당신이 법을 배운다 하여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대학원을 전공한다 하여 절대로 법을 배우는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당신이 어떻게 이 관계를 바르게 놓느냐에 달려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 우리 많은 사람은 모두 이렇게 했으며 많은 학생도 모두 이렇게 했다. 사실 우리 학문이 높은 사람들은 법리에 대한 이해가 빠르며 사상은 비교적 열려 있는 즉, 나는 현대인의 사상에 결부시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가 조금 낮은 일부 사람들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만약 우리가 모두 대학원을 다니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 이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속인 사회의 인재를 썩히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도 우리의 법이 손실을 받지 않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여러분이 모두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은 여러 방면의 원인이 있다.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라. 오직 원만(圓滿)에 이르지 않았다면 당신은 마땅히 당신이 해야 할 일을 그대로 하라.

제자: 사부님의 ‘시간과의 대화’ 중에서 말씀하신 더욱 미시적인 물질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사부: 내가 가리키는 것을 당신은 현재 알 수 없는 것으로서 모두 더욱 큰 부동한 신이다. 이 우주는 매우 방대하다. 방대한 물질을 인간 개념의 사유로는 형용할 방법이 없다. 당신이 인간의 언어를 모두 사용해서 어떻게 말해도 다 형용할 수 없는데, 바로 당신이 수련하여 원만했을 때라도 당신은 당신의 층차를 초월한 것은 어떤 일도 알 수 없다. 당신이 얼마나 큰 과위를 증득(證得)했다면 당신은 그만큼 큰 지혜가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수련하여 얻은 것으로서 이 층차가 결정한 것이다.

제자: 법륜불법(法輪佛法)을 수련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러나 평소에 心性(씬씽)이 아주 좋습니다. 장래에는 어떻게 됩니까?

사부: 장래에는 육도윤회(六道輪迴) 중에서 그는 윤회전생(輪迴轉生)을 계속하는바 당신이 말해 보라. 어떻겠는가? 그의 心性(씬씽)이 아무리 좋다 해도 역시 속인의 표준과 비교한 것이 아닌가? 법의 표준과 비교하여 본다면 반드시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제자: 천목으로 때로는 좋은 것과 좋지 못한 것을 보는데 법 공부와 연공에 참가할 수가 없습니다. 이 관을 넘지 못하여 아주 고통스럽습니다.

사부: 본 것에 생각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데 당신이 그것의 좋고 나쁨을 상관한다면, 역시 당신 자신이 생각을 움직인 것이다. 당신이 보았으면 본 것이다. 당신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당신 또한 그것에 따라가지 말라. 당신은 마치 영화를 본 것과 같은데 당신의 연공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나는 믿지 않는다. 당신 연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마음을 움직여 어떤 좋은 것을 분별해 당신이 그것을 따라가고, 어떤 좋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당신이 그것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누구를 따라가든 모두 좋지 못하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당신이 그것을 따라가면 역시 좋지 못하다. 누구도 당신을 원만(圓滿)으로 이끌 수 없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이 세계, 여기에 인간을 제도하는 신(神)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큰 법이 여기에서 전해지고 있는데 누가 와서 교란하면 누구든지 모두 다 떨어져야 한다. 그것은 우주 대법을 교란하는 것과 같으므로 아무리 대단한 신(神)・불(佛)・도(道)라 하더라도 역시 떨어져야 한다.

인류는 일찍부터 변이가 발생하였다. 현재 인류의 행위, 인류의 과학, 인류의 모든 일체는 모두 인간이 마땅히 구비해야 할 것이 아니다. 만약 이 법을 전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인간은 벌써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우주는 바로 성(成)・주(住)・괴(壞)가 있다. 당신은 겁난이 있다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우주 중의 별(星球)을 누구든지 다 본다. 현재의 과학자는 많은 별이 폭발하는 것을 보아 왔는데, 당신 지구라고 폭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꼭 다른 별들만이 폭발해야 하는가? 물론 이런 일들이 우리 지구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데, 나는 이 이치를 말했다.

제자: 『미국법회 설법』과 『시드니법회 설법』에 있는 원자에서 분자까지의 배열은 20만 개입니까, 200만 개입니까, 어느 것이 맞습니까?

사부: 어느 것이든 모두 다 맞는다. 2천만도 틀리지 않는다. 인간의 사상은 고정적으로 문제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분자에는 아주 많은 층이 있다. 현대의 과학 그것이 인식한 것은 바로 그런 두루뭉술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의 말을 빌려서 말하고 있는데, 당신은 기필코 뿌리를 판다. 그렇다면 당신은 20만 개로 계산하라.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다. 분자만 해도 아주 많은 층이 있으며 크고 작은 입자는 부동한 것이다.

제자: 불상을 모시는 문제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사부의 법신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불상 자체의 법신이라고 말합니다.

사부: 나는 조금 전에 말했다. 여기에는 사람을 제도하는 어떠한 부처도 없다. 무엇이 있는가? 어떤 불상에는 원래의 부처가 보이지만 극히 개별적이며, 또 그렇게 오래된 절이어야 그 불상 위에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일을 할 때, 우선 위에서 하고 나서 돌아와서 인류 이 공간, 즉 돌아와서 삼계에서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일을 하는 동안 이 안에 봉폐되어 나가지 못하게 되는데, 그렇게 봉폐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봉폐된 그 역시 일을 상관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는 수련을 잘한 당신을 보고 아마 몇 마디 말을 할 수 있지만, 당신이 하는 어떠한 일도 절대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제자: 어떤 사람은 천단대불(天壇大佛)이 사부님의 법신이며, 바로 사부님이라고 말합니다.

사부: 내가 처음 홍콩에 갔을 때 나는 불상에는 부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개광의 목적에 도달하지도 못했음을 발견했다. 게다가 난잡한 것들이 그 위에 붙어 있어서 나는 바로 그것을 청리했다. 내가 청리했으므로 바로 나의 법신이 관리하게 되는, 바로 이렇게 된 일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절을 하는데 그런 난잡한 것에 절을 해서야 어찌 되겠는가?! 게다가 그것은 부처의 형상이므로 내가 관여했다.

제자: 出世間法(추쓰젠파)의 신체에 병업의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수련인의 신체 내부는 아주 난잡한데, 모두 조정하고 있다. 어떤 정법수련 방법이든 삼계를 벗어난 후의 신체는 병업 이런 상태가 더는 나타나지 않는바, 절대로 없다. 그러나 그가 그의 과위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그는 여전히 속인 사회 중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心性(씬씽)상의 마찰이 나타날 것인바 줄곧 원만(圓滿)에 이르기까지 모두 있을 것이다.

제자: 베이징(北京)과 유사한 사건이 났을 때 견정실수(堅定實修)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사부: 견정실수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당신의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여러분이 모두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참여하지 않았으며, 당신 자신은 ‘견정실수 했다’는 이런 뜻인가? 말 속에는 자신이 원만(圓滿)에 이를 기회를 잃어버린 이유와 근거를 찾는데, 나에게까지 마음을 썼다. 나는 이치를 이미 다시 더 분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말했다. 매 한 차례의 일, 이렇게 큰일이 나타났을 때는 모두 다 가장 좋은 고험이며 수련생이 그 원만으로 걸어 나오는 가장 좋은 한 걸음이고, 가장 좋은 시기이다. 우리 어떤 사람들은 바로 걸어 나올 수 있지만, 어떤 사람, 그는 또 자신이 실수(實修)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원만(圓滿)을 이루는데도 당신은 움직이지도 않는다니, 내가 보기에 당신은 어쩌자는 것인지, 당신은 원만을 이룰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수련만 하다니, 무엇을 위해서 수련하는가? 원만이 아닌가? 실제로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 구실을 찾고, 당신의 다른 한 마음을 위해서 구실을 찾고 있다. 실수(實修)하며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평소 표현이 정말로 그렇게 실수하고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가?

제자: 공원에서 사부님을 뵌 적이 있는데, 사부님께선 그 당시 아주 엄숙하셨습니다. 지금 아직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사부님을 뵙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몹시 사부님을 뵙고 싶기도 합니다.

사부: 마치 엄숙할 때가 적은 것 같다. 나는 특별히 독일, 프랑스, 유럽 법회 때 이런 한마디 말을 한 적이 있다. 오직 당신이 배울 수만 있고 오직 당신이 수련할 수만 있으면 당신이 어떤 착오를 범했든지 나는 모두 당신을 제도한다고 말했다. 나는 가장 큰문을 열었다고 말했는데, 사실 나는 이미 문이 없을 정도로 열어놨으며 곧 사람의 마음을 본다. 여러분은 그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지 말라. 나는 절대로 사람과는 어떤 은혜와 원한(恩怨)이 없다. 당신이 나를 좋다고 말하든 당신이 나를 나쁘다고 말하든 모두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므로 나는 당신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수련하고 싶고, 당신이 정말로 수련할 수 있다면 나는 곧 당신을 책임질 것이다.

제자: 신수련생에게 정신병력이 있는지, 그의 가족에게 정신병력이 있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것은 병원에서도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닌가? 표현된 것이 정상적이지 못하고 청성하지 못하여 자신을 찾지 못한다. 우리 이 법은 바로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서 사람의 主元神(주왠선)을 제도해야 한다. 때가 되어도 사람 자신이 자신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이 법을 누구에게 주겠는가? 바로 이것 때문에 제도할 방법이 없다.

제자: 법 공부를 하고 연공을 할 때, 사상 중에 법에 저촉되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 있는데, 이후 어떤 영향이 있습니까?

사부: 이후에 어떤 영향이 있는가, 현재 바로 당신에게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은가? 당신은 이미, 그것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며, 그것은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 자신이 법이 좋다고 느끼면서도 무엇 때문에 당신의 사상은 그것을 거슬려 하지 않는가? 당신 자신이 연공하려고 하고 가부좌하려고 하면 그것은 한사코 당신으로 하여금 정(靜)에 들지 못하게 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연공하지 못하게 하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그것을 그대로 놔두는가? 사람 신체의 매 한 부분은 모두 자신으로서 그것은 당신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입을 어떻게 벌리고 싶으면 어떻게 벌리고, 어떤 소리를 내고 싶으면 어떤 소리를 내는데, 이 입은 당신의 것이다. 당신이 손을 어떻게 움직이며 당신이 그것으로 하여금 어떻게 움직이라고 하면 그것은 어떻게 움직이는데, 그것은 당신이다. 당신의 사지(四肢)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당신이 가부좌할 때 당신의 사상은, 그것에게 조용히 하라고 해도, 조용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만약 당신이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그것을 자신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당신을 제도할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이 이런 좋지 못한 것을 당신이라고 인정하면, 우리는 당신을 제도할 수 없다. 우리가 제도하는 것은 사람이지 마(魔)가 아니다. 이런 것이 아니다. 마(魔)조차도 못 되는, 그것은 난잡한 것일 뿐, 어떠한 독립적인 생명도 구성하지 못한다. 그것이 당신의 이 사상에 붙어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이 어떤 것이라고 부처가 되게 제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수련 과정 중에서 그것을 닦아버리면 이후에는 영향이 없다.

제자: 사부님의 경문 ‘궁(穹)’에는 문장부호가 하나도 없는데 그 속의 내포는 무엇입니까?

사부: 내가 고대 한문(文言文)으로 글을 쓸 때 마치 모두 문장부호가 없는 것 같다. 궁(穹), ‘창궁(蒼穹)’은 바로 우주란 뜻이다. 이 우주라는 말이 당신들의 개념에 이미 한 범위로 형성되었을 때, 나는 이름을 바꾸어 당신들의 범위를 넓혀준다. 나는 또 ‘천체(天體)’ 이런 이름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인류의 언어는 역시 단지 이럴 뿐이며 더는 없다. 더 큰 그것은 이름이 없어서 형용할 수 없다.

제자: 수련 중의 두려움은 어느 한 층차에 도달해서야 탄연(坦然)하게 움직이지 않을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보건대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높게 수련되었다면 두렵지 않게 되고, 수련이 점점 잘될 텐데 어떻게 더 두려울 수 있는가? 우리 방금 공(功)을 배운 사람이 본디 밤길 걷는 것을 무서워하고, 담이 작았는데, 일단 공을 배우자마자 곧 담이 커졌다. 당신이 배우다가 두렵다고 하는데 당신은 당신의 문제점을 좀 찾아보라. 이것은 절대로 층차의 문제가 아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당신조차도 왜 두려워하는지를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장기간 대법 중에서 수련하고 있는데 마음이 법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착실하게 수련(實修)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것이 움직이지 않고, 사람 근본의 것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데, 어떤 문제든 모두 나타날 것이다. 수련은 心性(씬씽)의 제고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지 시간의 길고 짧음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제자: 『대원만법(大圓滿法)』에는 선생님의 교공(敎功) 비디오테이프와 같지 않은 데가 몇 곳 있는데,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합니까?

사부: 『대원만법(大圓滿法)』과 교공 비디오테이프가 같지 않다고 하는데 동작은 모두 내가 한 것으로서 모두 똑같다. 문자에서 변동이 있다. 당신은 너무나 작은 곳에 착안한 것이 아닌가? 연공은 큰 곳에 착안해야 하므로 사소한 일에 파고들지 말라.

제자: 노(老) 수련생과 신(新) 수련생은 말을 함에 함께 할 수 없고, 일을 함에 함께 할 수 없지만, 각자가 모두 정진할 수 있습니다. 신(新)・노(老)가 각각 연공장(煉功點)을 꾸며도 됩니까?

사부: 안 된다. 노(老) 수련생이 하는 말은 신(新) 수련생을 촉진한다. 영원히 모두 이러하다. 진실하게 그 노수련생이 확실히 수련을 아주 괜찮게 했다면 그는 정말 신수련생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다. 신수련생이 처음에 하는 말에는 속인의 것이 아주 많고 속인의 인식으로 법을 이해하기 때문에 모두 들어줄 수는 없다. 이 또한 탓할 수 없는바, 일부 노수련생들이 집에 가서 연공하거나 혹은 단독으로 연공하는데, 나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아직 그렇게 높게 하는 말을 인식할 수 없다면 이것도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상황이 아니므로 분명히 들어줄 수 있는데도 한사코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하는데, 바로 여러 사람과 함께 있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내가 말하면 그것은 과시심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적으로 촉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 저쪽의 물질은 모두 이쪽에서 건너갔다고 하는데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부: 당신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또 당신이 이해한 이런 개념이 아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당신이 천상의 세계로 가려면 당신은 수련을 거쳐 당신 몸에 좋지 못한 것을 제거해야 한다. 당신이 이 신체를 가지고 가려고 하면 그쪽의 물체에 동화되어야 하며 불체(佛體)로 동화되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가지고 갈 수 있다. 그것은 일종 승화의 관계이다. 이렇게 더러운 물질을 부처의 세계에 갖다 둔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그래서야 되겠는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승화된 물질이다. 어떠한 물체도 모두 승화 과정이 있어야만 비로소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다.

제자: 성직자를 해석해 주시겠습니까?

사부: 성직자란 서방종교 중의 어떤 목사요, 어떤 교주요, 수도사요 하는 그들을 모두 성직자라고 부른다. 동방 사람은 이런 개념이 없고, 이런 용어도 없다.

제자: 법 공부할 때 어떤 수련생은 가부좌를 틀어 연마하면서 하는데, 이렇게 하면 법 공부에 영향이 있습니까?

사부: 가부좌를 틀었으면 당신은 가부좌로 연마하라. 당신이 다리를 트는 시간이 길지 않음을 아는데, 당신이 아파서 얼굴이 일그러진다면 당신은 법을 잘 배우지 못한다. 법 공부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므로 법 공부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행위의 일은 모두 하지 말라. 당신이 나는 앉아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좋은 것이다! 앉아서 들으면 그럼 더욱 좋으므로 앉아서 법 공부를 해도 된다. 어떤 사람은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인데,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으면 당신은 다리를 풀어라. 다리가 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풀지는 말라. 당신도 들을 수 없게 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생각만 하게 된다. 법을 공부함에 법을 진지하게 공부해야 한다.

제자: 관념은 정(情) 속에 용해된 것입니까?

사부: 당신의 개념은 잘못되었다. 어떠한 생명, 오직 그가 삼계 내의 환경 중에 생존하기만 하면 그는 곧 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런 종류의 충만은 또 사람이 물속에 잠겨있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것은 단지 살갗만 물에 접촉할 뿐이다. 당신의 신체 세포 일체가 오직 분자 이 층의 것이라면 그 속은 모두 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제자: 속인 중에는 정(情)이 먼저 있습니까, 아니면 관념이 먼저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출생하자마자 바로 정(情) 중에 있으며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도 당신은 역시 정 중에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에 바로 정 중에 있는데, 당신이 단지 알지 못할 뿐이지 당신은 어머니가 좋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관념은 후천에 형성된 것으로써 나이를 먹음에 따라 점차 형성되는 것이다. 4~5세 되는 어린이들은 관념이 없는바, 그에게는 어떠한 관념도 형성된 것이 없다.

제자: 보도소(輔導站)가 안배한 일은 마땅히 요구에 따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들도 수련 중인 사람이므로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자신이 어떻게 깨닫는가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준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보도소와 협조해서 해야 한다.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다고 하여 어떻게 해서는 안 되는데 이것이 하나이며, 둘째는, 나도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보도소에서 한 일은 다 내가 없는 상황에서 북경 연구회에 문의하여 동의를 얻어 한 것이다. 우리 많은 보도소에서 많은 일을 했는데 모두 비교적 잘했다. 착오는 피하기 어려운바, 그들도 수련 중인 사람이다. 이 점에는 당신들이 잘못 말한 것이 없다. 그들이 조직한 활동도 역시 그들 자신의 수련과 분리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인즉 각자 자기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되는바, 여러분은 이쪽으로 마음을 쓰지 말라. 만약 그들이 정말로 착오가 있다면, 선의로 그들과 말하면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맞게 말했다면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리 없다.

여러분은 모두 수련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늘 이런 한마디 말을 했다. 당신이 만약 선한 마음으로 일체 자신의 사(私)적인 것이 없이, 자신을 조금도 고려함이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한다면, 당신이 그에게 한 말은, 그로 하여금 당신에게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라고. 만약 당신이 한 말 중에 기점과 목적이 자신을 위해서이고, 매 한마디 말마다 주위를 의식하고 “아이고, 그가 나의 이것을 오해하지 말고, 나의 저것을 오해하지 말며, 내가 하는 이 말이 다른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말게 해야지.” 하는, 어떠한 것이든 당신은 모두 있는데, 머릿속에서 움직여 나온 그 말이 지닌 정보는 아주 좋지 못하다. 당신이 만약 정말로 선한 마음으로, 자신의 어떠한 것이 없이 하는 말이면 바로 단순하고 선량한 것이다.

과거, 그 고인은 행동이 아주 빨라 하루에 백 리 길을 가고, 그 말(馬)은 하루에 천 리 길을 간다고 했는데, 거짓말이 아니다. 인간의 사상은 비교적 단일하고 비교적 골똘하여, 한 가지 일을 함에 한길로 가므로 그는 반드시 잘한다. 말을 함에 믿음이 있고, 그가 해 주겠다고 하면 그는 반드시 당신에게 해주는, 이것이 사람이다. 현재의 사람은 말을 함에 믿음이 없고, 일을 함에 주위를 의식하며 요령을 부린다. 과거 사람은 그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생각이 마치 한 갈래 길처럼 직선이라서, 그는 아주 빨리 움직였다. 오늘날의 사람은 주위를 살피며 이것을 고려하고 저것을 고려하므로 그 사상이 나오면 왔다 갔다 하다 옆으로 간다. 그러므로 사상의 반응은 아주 빠르나 그의 행동은 아주 느리다. 어떤 사람은 입만 벌리고 한참 있다가 비로소 말을 한다. 그러므로 현재 사람의 행동은 완만하여 하루에 이십 리 길을 가면 날이 저물어 버린다. 사람이 이렇게 계속 발전해 가면 안 된다. 복잡해질수록 더욱 좋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내가 복잡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업신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나도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이 사람 누가 잘하지 못했다면 그 스스로 그 자신이 한 일체를 감당해야 한다. 사람은 바로 이러므로, 당신들 사람은 모두 이렇게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인류사회는 이렇게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밀려왔는데, 이렇게 아래로 미끄러진 것에는 사람마다 모두 책임이 있다. 당신이 금생금세에 좋지 못한 일을 하지 않았어도, 전생전세(前生前世)에서는 하였을 것이다. 당신은 실제로 당신의 언행 중에서 모두 현대의 조류에 부합하고 있는 즉, 바로 물결 따라 흘러가는 것과 같다.

제자: 저는 시간이 아주 촉박하고 수련은 잘하지 못한다고 느끼며, 늦어서 할 수 없을까 봐 두렵습니다.

사부: 어떤 집착이든 모두 다 있는바 이렇게 집착하는 것도 있다. 당신이 삼계를 벗어나는 그 날, 당신이 만약 두려워하면 또 떨어져 내려와야 하므로 당신은 두려워하지 말라. 수련을 잘하지 못할까 봐 뭘 두려워하는가? 이 한 가지 두려움은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 성취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수련만 해라. 아무것에도 관여하지 말라. 이미 법을 얻었는데 또 무엇이 두려운가? 과거에 말하기를, 즉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可死)고 했다. 누구도 그것의 진정한 함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을 조문도석가사(朝聞道夕可死)라 하는가?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바로 죽었다는 말인가? 이런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두렵지 않다는 말이다. 이것이 그것의 진정한 함의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도를 들었는데 누가 도를 들었는가? 자신이 도를 얻은 것이므로 당신 머릿속에 담은 것은 법이 아닌가? 당신 머릿속에 담은 것은 법이다! 당신 머릿속에 담은 이 법 그는 당신의 사상 중에 들어가 용해되었다. 이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그를 기억할 수 없다. 법을 얻은 이 일부분인데, 정작 당신이 죽는다 한들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겠는가? 당신을 육도(六道)에 들게 할 수 있겠는가? 이 일부분은 법을 얻은 것으로서 법에 동화된 것이다. 당신은 오늘 이렇게 큰 법을 모두 배웠을 뿐만 아니라 반복하여 책을 보고 있는데, 당신은 왜 또 그런 문제를 생각하는가? 오직 수련만 해라. 어떠한 두려움도 모두 집착이고, 어떠한 집착도 모두 장애이다.

제자: 경문 중에 있는 ‘시간과의 대화’를 배우고 난 후 수련생들은 시간에 대하여 이해가 다릅니다.

사부: 다르다면 다른 것이다. 당신들은 한 가지 신기한 일을 들으면 또 집착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는데 당신들이 생각하지 못한 많고 많은 것이 모두 신이다. 어떤 것은 심지어 항상 입에 달고 있는데, 모두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 우주는 지극히 방대하여 아주 많은 일을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없다. 졸린다지 않는가? 당신이 책을 보면 당신은 자고 싶고, 법 공부만 하면 당신은 혼미해지지 않는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그는 바로 이 인류 공간의 한 층의 신이다. 당신이 그를 돌파하지 못하면 당신은 바로 사람이다. 그도 의도적으로 당신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는 모든 사람에게 다 이렇게 하므로 사람은 피로할 수 있고, 지치고 고단하여 졸릴 수 있다. 당신이 사람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돌파해야 하는데, 그래야만 당신은 벗어날 수 있다. 당신이 그에게 부합하면, 그럼 그는 당신을 사람으로 여긴다.

제자: 선생님의 『시드니법회 설법』과 『미국법회 설법』 중에는 우주 공간의 구성과 생명의 기원(起源)을 설하셨는데 이것이 우리 수련에 대하여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우주의 구성과 생명의 기원은 당신들 수련과는 아주 관계가 깊은바, 나는 목적 있게 말했다. 당신이 거기까지 배우지 못했고 당신의 경지가 그 한 층에 이르지 못했으면 당신은 그것이 당신과 관계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국법회 설법』은 아래에 앉은 3천여 명의 고급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말한 것이다. 이런 수련생 중에는 절반가량이 모두 학위를 가졌는데, 박사・석사였다. 어떤 사람은 이미 3개, 5개의 학위를 받았는데, 이들 모두 중국인 엘리트들이 그곳에 온 것으로서, 나는 그들을 마주하고 말한 것이다. 이 수련생들 중에는 어떤 전공분야의 사람이든 다 있는데, 사상이 아주 넓게 열려 있었다. 사람마다 법을 배울 때는 모두 매듭이 있는데 풀지 못하는 매듭은 바로 장애이다. 나는 그들의 그 상황에 근거해, 그들의 매듭을 타파하기 위해서 말한 것이다. 이것이 한 가지 목적이다. 물론 또 더욱 깊은 내포가 있다.

제자: ‘法輪樁法(파룬좡파)’ 중에서 어느 륜(輪) 하나만 단독으로 안(抱)을 수 있습니까? ‘貫通兩極法(꽌퉁량지파)’는 큰 팔이 작은 팔을 이끕니까? 아니면 작은 팔이 큰 팔을 이끕니까?

사부: 우리의 공법은 아주 편리하므로 당신은 단독으로 어느 한 동작을 해도 괜찮다. 우리는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적응해야 하고, 아주 바쁜 사회 활동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하게 할 수 있어야 하므로 이렇게 편리한, 이렇게 편리한 법문을 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신은 모두 수련할 수 있으며 시간이 많으면 많이 연마하고 시간이 적으면 적게 연마해도 된다(시간이 있으면 바로 보충하면 된다.). 그러나 가장 좋기는 모든 것을 다 연마하라. 바로 이런 관계이다.

‘貫通兩極法(꽌퉁량지파)’는 작은 팔이 큰 팔을 이끄는 것이 아니며 또한 큰 팔이 작은 팔을 이끄는 것도 아닌바 내가 보건대 마치 전체 팔이 모두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제5장 공법은 작은 팔이 큰 팔을 이끌어 움직인다. ‘貫通兩極法(꽌퉁량지파)는 당신이 만약 역도(力度)가 작은 팔에 있다면 하는 것이 비교적 좀 보기 좋은 것 같다. 내가 여기에서 이 문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들은 이런 사소한 일속에 파고들지 말고 큰 것에 착안하여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 제가, 그가 해적판 책을 파는 것을 제지했기 때문에, 그는 저에게 원한을 갖고 수련생 중에서 한 무리 사람들을 끌고 나가서 연공을 하는데 저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사부: 만약 그가 해적판 책을 팔아서 돈을 벌고 있다면 내가 여기에서 명확하게 당신에게 알려준다. 즉 그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만약 그가 해적판 서적을 사와서 원가로 수련생들에게 전해준다면 여러분을 대신하여 구매한 것과 같으므로 그가 법을 파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책 속에 고친 것을 그도 모르고 있다면, 그러면 그에게 더는 이렇게 하지 말라고 알려주어야 한다. 이 문제는 바로 이러한데 모순을 이렇게 격화시킬 정도는 아니다. 만약 나중에 그가 패거리를 짓는다면 그것은 절대로 우리 대법제자의 행위가 아니다.

제자: 저는 항상 꿈속에서 마치 귀신같은 것이 저의 신체를 통제하는데, 저는 즉시 나는 정법수련제자라고 생각합니다.

사부: 좋지 못한 것을 보았을 때도 무서워하지 말라. 막 수련을 시작한 사람이거나 혹은 이미 한 기간 시간이 되었는데도 정진하지 못하여 수련이 아주 완만하고 장기적으로 이 상태에 처해 있다면 항상 이런 무서운 광경을 볼 수도 있다. 무엇 때문인가? 다른 공간을 속인은 저승(陰間)이라고 부르는데, 그 생명은 우리 이쪽과 똑같이 많기 때문이다. 밤에 우리가 잠들면 그것의 저쪽에는 바로 한낮이며, 우리 이쪽이 밤이면 그것은 낮이고 우리가 낮이면 그것 저쪽은 밤이다. 당신이 밤에 잠을 자면 그것은 바로 밤에 나와서 활동하게 된다. 과거의 노인은 말했다. 즉 밤에는 나다니지 말라! 역시 그의 이치가 있다. 바로 밤에 비교적 많고 낮에는 그것들이 휴식한다.

당신들이 수련을 막 시작했을 때(당신은 속인에서 시작한다) 만약 이 경지 중에서 당신의 천목이 열렸다면 당신은 바로 그것들을 볼 수 있다. 당신이 속인 중의 아주 낮은 층차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은 당신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 바로 접촉하거나 혹은 일부 당신의 연공을 교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즉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을 파악해야 하고 그것을 상대하지 말며 오직 배우고 수련한다면 아주 빨리 이 층차를 돌파할 수 있고 제고가 되면 더는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층차가 제고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더는 당신에게 와 닿지 않는다. 당신은 여전히 사람 속에서 수련하지만, 당신 신체 주위에 지닌 마당은 이미 공간과 시간의 차이가 있으므로 그것은 이미 아주 작게 변했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것이 보이지 않으며 그것도 당신을 교란할 수 없다. 이런 일들을 나는 『법해(法解)』와 『의해(義解)』에서 모두 말했다.

제자: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는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사람의 일면을 제거해 버리고 사람의 이 한 층 껍질을 벗어버리라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그렇다. 우리 많은 사람이 시작할 때 그가 법이 좋다고 느끼는 것은 그가 이 법이 인류에 대하여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속인사회를 교란하지 않았고, 속인사회에 대해 역시 아주 좋은 점이 있으므로 나는 마땅히 배워야 되겠다고 한다. 그의 기점은 인간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은 장기적으로 우리 대법의 일체에 대하여 그는 모두 인간의 표준으로 가늠하고 있는데 그가 현재 인간의 관점이나, 인간 사회의 방식에 조금만 부합되지 않는다고 여기면 그는 바로 하려고 하지 않으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실 그가 지키는 것은 인간으로서 그는 인간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이치이다. 당신들 수련하는 사람은 최종적으로 원만(圓滿)을 이루기 위해서이고 인간을 떠나가는 것으로서 절대로 당신으로 하여금 인간의 관념을 붙들고 내려놓지 못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자: 저는 일반적인 정(情)에 대해서는 참을 수 있는데 그러나 어떤 사람이 제가 좋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저는 참지 못합니다.

사부: 사실 당신은 일반적인 참음조차도 해내지 못했다. 당신 자신이 거기에 앉아서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것은 공상이다. 진정하게 모순에 부딪혔을 때 당신이 참을 수 있는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참음이다. 이 문제는 내가 생각하기에 법을 읽어서 잘 이해하면 바로 해낼 수 있다. 당신이 모순에 부딪혔을 때나 혹은 돌연히 모순이 나타났을 때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이 얼마나 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전혀 참을 수 없다고 하는 즉 알고도 참을 수 없는데 그렇다면 참음이라고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참을 수 있다고 하지만 갑자기 모순이 나타났을 때 자신은 여전히 잘 파악하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비교적 조금 부족하다. 갑자기 모순이 나타났을 때 당신이 여전히 참을 수 있고 심지어 꿈속에서도 당신이 모두 지킬 수 있다면 확실한 것이다. 꿈을 꾸는 자체는 수련이 아니지만, 확실히 당신의 心性(씬씽)이 확실한지를 고험하는 것이다. 당신을 좋지 못하다고 말하는 이는 속인이지 신(神)・불(佛)이 아니다. 수련하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는가?

제자: 때로는 법리를 깨닫거나 혹은 心性(씬씽) 관을 넘을 때 마음속으로 사부님과 말을 하는데 집착인가요?

사부: 이것은 집착이 아니다. 그것을 집착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말을 했으면 말을 한 것으로서 당신도 어떤 답안을 얻으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며, 당신도 어떤 보답을 얻거나 혹은 말한 이후 내가 당신에게 어떤 좋은 점을 줄 것이라거나 관용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 이러면 모두 안 된다. 당신이 말했으면 말한 것인데, 아무튼 당신이 말하는 것을 허용한다. 말하는 사람은 유심(有心)이고, 듣는 나는 무의(無意)인바,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 즉 어떠한 유위(有爲)도 모두 안 된다. 당신은 어떠한 목적 있는 마음을 품고서 나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사부님을 좀 보고만 싶다고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는데, 즉 사부(師父)의 표정을 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매일 일어나서 나는 오늘 나의 하루가 순조로운가, 어떤가를 알아보려고, 나는 사부님 사진을 보아야겠다고 하며 매일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한 번씩 본다. 당신은 이미 상당히 심하게 집착하고 있다. 어떤 수련인은 그가 한 가지 일을 한 후, 그가 확실히 잘 파악하지 못하고 정말로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모를 때, 보기만 하면, 그것은 정말로 계시를 받는다. 수련은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인데 당신들은 그 마음을 제거하지 않고 또 나에게 그 마음을 발산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준다. 오늘날 불교는 무엇 때문에 수련할 수 없는가? 가장 크고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들이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구함을 그들은 또 의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부처에게 절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우리 집에 누가 병이 있는데, 부처님! 바라옵니다. 저를 보호하고 도와주십시오. 자신이 부처님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그 뜻은 자신은 부처를 믿고, 자신은 향을 사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처와 흥정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부처에게 절할 때, 그 자신은 명확한 목적이 없이 부처에게 절을 하고 향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매일 이렇게 할 때 그는, 나는 이것이 부처를 공경하고 바로 부처를 닦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부처님! 보세요, 제가 부처님에게 얼마나 경건한지. 그 자신은, 내가 부처님 앞에서 얼마나 경건한지 부처님은 반드시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사상은 부처로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그는 이 사람이 너무나도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늘 불교 중의 사람들은 수련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던 게, 바로 이런 뜻이다. 그는 전혀 의식하지도 못하는바 그의 그 염두는 아주 깊이 은폐되어 있다. 현재의 사람은 매우 교활하게 변했다. 현재의 사람은 이 마음을, 그는 엄폐(掩蓋)할 뿐만 아니라, 그는 엄폐함으로써 그 마음을 엄폐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사람은 정말로 제도하기 어렵다. 당신이 그에게 점화해 주어도, 그는 심지어 자신이 감싸서 포장(包藏)한 그것을 의식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당신이 그의 실질적인 곳을 짚어주었을 때, 나의 법신이 그의 실질적인 그곳을 점화해 주었을 때, 그는 마치 속인을 대하는 것처럼 나의 법신을 속이고 있는바 그는 거짓된 모습을 한다. 아, 내가 잘못 했구나, 한 다음 그는 또 다른 엄폐로써 그의 엄폐 자체를 엄폐하고 있는바 또 다른 엄폐를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이런 정도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제도를 말하겠는가! 지금은 그런대로 사부가 여기에서 가르치고, 제자를 이끌고 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절에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데 그가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당신들이 말해 보라. 사람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해야겠는가!

제자: 저는 허다한 수련생들이 아래에서 기록하는 것을 보았는데 청컨대 사부님께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사부: 기록을 하는 모든 사람, 당신은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은 내가 말한 것을 완전히 들을 수 없으며, 당신은 머리를 되도록 많이 기록하는 데에 쓰기 때문에 당신이 어떻게 기록해도 모두 완전하게 기록할 수 없다. 완전하게 기록하지 못한 것을 당신이 가지고 나간다면 바로 단장취의 한 것이 되고, 당신 자신도 잘 듣지 못하게 되는, 바로 이렇게 큰 교란이다. 당신이 기억하지 못한다고만 생각지 말라. 내가 말한 것을 당신이 그만큼 알았을 때, 당신은 바로 제고되고 있고, 바로 동화되고 있는바 그것이 진정한 제고이다. 여기서 나가면 사람마다 모두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기록을 한 당신에게는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인즉, 바로 이렇게 큰 교란이다. 예전에도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다. 기록하지 말라.

제자: 청컨대 ‘도법(道法)’의 내포를 거듭 진일보로 말씀해 주십시오.

사부: 내가 만약 당신들에게 명백하게 말할 것이었다면 나는 직접 거기에다 알 수 있게 썼을 것인바, 이것은 바로 당신에게 깨달으라는 것이다. 얼마를 깨달을 수 있으면 얼마를 깨달으며, 어떠한 관념도 품지 않은 채 깨달으면, 당신이 깨달은 것이 적다 하더라도 빗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깨달은 것이 적고 아는 것이 적을 뿐, 절대로 빗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만약 아주 똑똑하게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자: 관념과 집착심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당신이 좋다고 여기는 것을 당신은 늘 잡고 내려놓지 못하는데, 이것이 바로 집착이다. 당신에게 간단히 말하면, 어떠한 것이든 당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모두 집착인바 이것은 아주 간단하다. 당신들 중 아주 많은 사람이 법 공부가 부족하다. 당신들의 법 공부가 부족한 원인은 당신들이 법을 공부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당신들이 적게 공부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속인의 관념을 품고 공부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심리요구에 부합된, 그것을 골라 당신은 좋다고 느끼면서 당신은 그 편을 골라서 본다. 당신은 당신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거나 당신과 관계가 없으면, 나아가 당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당신은 보지 않고 가려서 보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영원히 수련해 올라갈 수 없다. 당신은 내가 『전법륜(轉法輪)』 속에서 말한 문제가 당신의 수련과 관계가 없고, 心性(씬씽)과 관계가 없다고 보지 말라. 그 속에는 부동한 층차, 부동한 형식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 당신은 내가 공(功)을 말한다고만 보지 말라.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그 속에 心性(씬씽)의 것이 모두 들어있다. 그는 체계적이므로, 당신이 한 편이라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당신들이 만약 이 관념을 개변할 수 없다면 정말로 당신들의 제고에 영향을 줄 것이며, 원만(圓滿)에 영향을 줄 것이다.

제자: 저는 이따금 머리 정수리에 마치 물건이 누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어느 쪽인지 의식할 수 없습니다.

사부: 당신은 그것을 상관하지 말고 아무것도 상관하지 말라. 당신이 오직 수련하고 있는 제자이기만 하면, 당신에게 나타난 일체 증상들을, 당신은 모두 그것이 좋은 현상이라고 여겨야 한다. 나는 ‘삼화취정(三花聚頂)’을 말했다. 삼화취정 그것도 역시 작디작은 한 층차이고 世間法(쓰젠파) 중의 표현이며, 층차가 제고된 후에는 더욱 높은 표현이 있을 것인바, 많은 형식과 변화가 머리에 있을 것이다. 그 머리, 정수리를 내리누르는 감각은 아주 클 것이다. 내가 구체적인 현상을 말하게 되면 당신은 곧 집착심・환희심이 일어나기 쉽다. 당신들은 그 불상의 그 변화신(變化身)을 보았는가. 머리가 4개 있는데, 머리 위에 또 머리가 쌓이고, 머리 위에 머리가 쌓이고, 머리 위에 머리가 쌓여 올라가는 것이 당신들이 수련하는 중에 모두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불법(佛法)의 위엄(威嚴)으로, 불법의 위엄을 체현하는 일부분일 뿐만 아니라, 일종 현상이다. 수천수만, 수억이나 되는 그 공의 상태・법의 상태가 모두 나타나게 되는데, 당신은 머리 정수리에 아무 느낌도 없겠는가? 공기둥이 높이 자라도 누를 수 있는 것으로, 머리를 내리누르는 느낌이 있을 것인데, 모든 것이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일을 당신은 그것이 모두 나쁘다고 여기는데,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의 心性(씬씽)이 어느 곳에 놓여 있는가? 당신이 있는 층차와 걸맞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늘 당신에게 당신이 보지 못해도 괜찮으므로 당신은 반드시 그것을 좋은 일로 여기라고 알려준다. 나는 모든 층차 중의 현상을 매 사람에게 모두 주도면밀하게 다 말해줄 수는 없다. 그러면 당신은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텐데, 안 된다. 당신이 매일 이런 변화에 눈을 두면 당신은 수련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내가 당신들에게 이런 것들을 말해주지 않았으니 다만 마음만을 겨냥해서 공부(功夫)해야 하며, 진정한 제고 역시 완전히 이 마음에 의거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 승화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용없다.

제자: 자신에게 있는 어떤 관을 넘지 못하여 사부님의 사진 앞에서 잘못을 뉘우치는 말을 하면 어떤가요?

사부: 말했으면 한 것으로 이것은 아무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다 말한 다음에 당신은 고쳐야 한다. 오늘 말을 한 뒤에 나가서는 또 그렇게 하고 돌아와 또 이어서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부에게 뉘우친다고 말했으면 응당 그것을 고치려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

제자: ‘안을 닦으니 밖이 편안하다(修內而安外)’ 경문 중의 ‘차내대위지야(此乃大威至也)’의 뜻을 한 번 해석해 주십시오.

사부: 내가 이 편을 쓴 목적은 어떤 수련생들이 이런 문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法輪功(파룬궁)을 닦으니 그가 좋다면서 사회인의 도덕성이 올라갈 수 있는데 만약 모두 그렇게 선(善)해진다면 외국인이 우리를 때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 쓴 것이다.

그 전쟁은 사람이 일으키고 싶다고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가 모두 하늘이 움직이게 하고 천상이 움직이게 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이 속에서 어떻게 계산하고 어떻게 고려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어떤 때는 성사되지 못하고, 어떤 때는 성사되는데, 그는 이것을 자신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의 노력이나 그의 생명의 활동 또한 필연인 것으로, 바로 이러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행동하지 않아도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인즉 사람은 바로 이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절대 신(神)과 같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그에게 알려주어도 그는 믿지 않으며 여전히 쟁투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이다. 그러므로 쟁투 역시 피할 수 없는 행동으로서, 또 인간의 행위인바 바로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사회에 나타나는 상태가 곧 사람의 상태이다.

제자: 우리는 心性(씬씽)이 제고될 때 자신의 업력이 없어지는데, 자신에게 心性(씬씽)을 제고시켜 준 사람의 몸으로 전화되는 것입니까?

사부: 이런 것이 아니다. 보아하니 당신이 아주 집착하는데 당신의 그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웃음)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바 전혀 당신들이 상상한 것이 아니다. 당신들의 아주 많고 많은 것을 내가 당신들에게서 없애주는데, 실제로는 내가 당신들을 대신하여 감당한 것이다. 누구도 죄를 범하거나 착오를 범하고도 갚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것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은 천리(天理)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없애버리게 되는 것은 바로 당신들을 수련시키기 위한 몫으로서, 당신의 그 心性(씬씽)과 당신의 감당 능력에 맞추어 당신에게 남겨주는데, 조금만 더 많아도 당신은 곧 떨어져서 수련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또한 당신들을 대신하여 감당했기 때문에 당신들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모두 나의 것인바, 나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일부 좋지 않은 것은 직접 없애버렸는데 이것은 누구도 할 수 없지만, 나는 할 수 있다.

당신들은 예수가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를 아는가? 당신들은 석가모니가 무엇 때문에 열반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를 아는가? 석가모니의 그 손가락뼈를 아주 많은 사람이 법문사(法門寺)에 가서 보았는데 정말로 석가모니의 손가락뼈이다. 보았다는 그 손가락뼈는 모두 이러한데 그의 신체가 어찌 썩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는 신체를 가져갈 수 없었는가? 완전히 고에너지 물질로 전화되었기에 그는 이미 육신이 아닌데, 그는 무슨 이유로 열반했는가? 당신들은 모르지만, 당신들의 수련과정 중에서 당신들이 진 빚은 사람의 죄만 있는 게 아니다. 부동한 천체(天體), 각종 층차, 각종 환경에서 당신들이 진 빚은 많고도 많다. 이런 것들은 인간이 전혀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며 층차가 낮은 신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이 사람을 제도하려 하겠는가. 그래도 그에게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자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처는 자비하기에 그를 제도하는데, 그럼 그가 진 빚 이런 것들은 어떻게 하는가? 당신이 그에게서 그것을 해소해 주어야 하는바, 실제로 이 매듭은 부처의 몸에 매어진 것과 같다. 왜냐하면, 부처가 와서 사람을 제도하려면 반드시 육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인데, 어디에 묶어 놓을 것인가? 모두 그의 육신에 묶어 놓았다. 최후에는 그 부처나 이 예수, 그들은 육신을 해탈할 수 없었는데, 제도 받은 제자들이 진 업과 채무에는, 부동한 층차의, 부동(不同)한 시기의, 부동한 종류의, 업과 채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 각 방면의 아주 많고 많은 일에 연루되어 있었다. 그들은 전혀 해탈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길, 신체를 버리고, 태우는 길을 선택하였다. 하나로써 백 가지를 끝내며 모두 풀었는바 또한 그들의 빚을 갚았다고 친다.

예수는 최대한도로 빚을 갚기 위해, 부동한 경지의 그에 대한 원한을 해제하려고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이러한 고통에 동의했다. 사람이라, 또 나에게 이런 쪽지를 올렸는데, 사부님, 당신은 응당 이렇게 저를 제도해야 하며, 당신은 응당 저를 그렇게 제도해야 합니다. 하고 말한다. 나는 말한다. 당신은 부처가 반드시 당신을 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가? 할 일이 없어 한가로워서? 반드시 당신을 제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인이 박여 당신을 제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석가모니는 부처・여래가 항하(恆河)의 모래숫자라고 말했다. 그 항하의 양쪽 강변에는 모래가 얼마나 있는가? 그는 여래가 바로 항하의 모래 숫자만큼 그렇게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석가모니 자신이 그 당시 있었던 층차에서 한 말들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많은 부처가 어찌하여 내려와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가? 사실 부처는 위에서 내려올 필요가 없이 손 한 번 저으면 전 인류의 병이 전부 없어지며, 사람을 제도하고 업을 없애는 것도 손 한 번 저으면 전 인류의 업이 전부 없어지지만, 누구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사람 자신이 진 빚은 모두 갚아야 하는데, 더구나 진 빚은 인류 이 층의 것뿐만이 아니다. 그를 제도하려면 반드시 본질상에서 그의 마음이 개변되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진정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이 그를 대신하여 빚을 갚아 그를 깨끗하게 했는데, 그의 사상 경지는 여전히 승화되지 못하고 그의 표면만 매끄러워졌다면 그것은 가짜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당신들 사상의 깊은 곳이 개변되어야 한다고 말했는가? 어떤 사람은, 나는 병이 있어 법을 배우러 왔다고 말할 만큼, 처음 시작할 때는 인식하지 못했으나 나중에 명백해졌다. 사부님은 병을 치료해 주지 않는다고 말했으므로 그도 병을 치료하려 하지 않는다. 좋다, 그럼 나는 병을 치료하지 않겠다. 그 자신이 묵묵히 생각하기를, 나는 병 치료를 구하지 말고 나는 책을 보고 연공을 해야지. 사부님은 최후에는 반드시 나의 병을 제거해 주실 것이다. 그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표면상에서 매끄러워졌지만, 그의 본질은 개변되지 않았는바, 이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며 아직도 사부를 속이려 하고 있는데, 그래서야 되겠는가? 사실 속이는 것은 자신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이 개변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당신의 깊은 곳, 본질에서부터 당신 자신을 개변해야만 진정으로 승화되고 진정으로 개변된다. 心性(씬씽)의 본질을 개변하지 않으면 모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은 돌발적으로 튀어나와 팽창될 것이고 표현되어 나올 것이다. 그 부처가 만약 그렇다면 그래도 되겠는가? 그것은 모두 본질적인 개변이기에 나는 수련은 엄숙하다고 말하는데, 당신들이 진정 본질에서 자신을 개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속인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모범이 되며 영웅 인물이 되는 것은, 무슨 마음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하도록 촉진했는가에 관계없이, 아마도 선념(善念)이겠지만, 그는 늘 한 가지 염두가 있고, 늘 목적이 있으므로 그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이후에 다시 착오를 범할 것이다. 과거에 말하지 않았는가? 늘 죽은 사람을 본보기로 내세우고 산 사람은 본보기로 내세우지 않는다고. 바로 사람 자신도 이 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또 착오를 범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어떠한 법령, 나아가 캠페인을 벌인다 해도 사람의 본질과 사람의 마음은 영원히 개변할 수 없는바, 반드시 사람의 마음이 진정으로 움직여야만 비로소 사람을 개변할 수 있는 것이다.

방금 말한 석가모니의 열반이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그들이 사람을 위해 그렇게 큰 고생을 한 것이고, 사람을 위해 그렇게 큰 죄를 감당한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대하고, 누구를 위해 책임지며,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당신 자신을 위해 책임지고, 바로 자신을 위해 명백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내심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찾는다면, 확실히 인류사회의 문명은 제고될 것이다. 우리 대법은 이 점을 해낼 수 있지만 절대 속인사회의 이것들을 위해 대법을 전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의 제고를 위해 전한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는 한 가지 환경을 형성하여, 전체 인류 사회의 제고를 촉진할 것인데, 그는 바로 이러한 관계이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나는 절대 사회를 위해, 누구를 위해, 인류사회의 어떤 항목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원만(圓滿)을 위해서 한다.

제자: 자신이 어떤 일을 잘못했을 때, 이때 신체가 소업하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현세현보(現世現報)입니까?

사부: 현세현보의 일은 과거에 있었고 장래에도 있을 것이다. 작은 문제에 대하여 현세현보가 나타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쁜 일 하나를 했는데, 문을 나서자 그는 ‘쾅’ 하고 크게 넘어지거나 혹은 문을 나서자마자 어떤 물건과 한번 부딪쳤다면 비록 경중이 다르지만 그를 징벌하고 있다. 사람은 흔히 다른 공간에 고급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아 그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여기고 오직 사람만이 유일하게 영성(靈性)이 있는 생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가소로워지려는가! 이 우주 곳곳에 생명이 있으며 그가 나쁜 일을 하려면 여전히 나쁜 일을 하는데 제멋대로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이런 정도까지 되었을 때 현세현보의 일은 적어진다. 어떻게 되는가? 바로 업력이 쌓일 것인바 쌓인 업력이 갈수록 많아진다. 아주 많아졌을 때 그의 생명이 단축되는데, 많아질수록 생명이 더욱 단축되고 많아질수록 더욱 생명이 단축되는바, 마치 그 나쁜 일을 너무 많이 한 사람이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없음(十惡不赦)에 이르렀을 때 이쪽은 이미 죽어버렸을지라도 그쪽은 계속 이어서 그가 소멸하고 있는 것과 같다. 줄곧 그가 모든 업력을 갚을 때까지 소멸해야 한다. 그 소멸하는 방식 그것은 아주 많다. 바로 그는 자기의 모든 일체를 갚아야 함을 말하는데 그것은 아주 무섭다. 우리 수련하는 사람은 속인과 다른데 다수는 제고 속에서 소업하고 당신들에게 점화해 줄 것이다.

제자: 집안에서 수련(修煉)하면 사부님께서 연화해 주는 공(功)이 연공장(煉功點)보다 못한가요?

사부: 만약 당신이 집안에서 수련하면서 정말로 당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고 착실하게 닦으면 밖에서 수련하는 것 못지않다. 그러나 흔히 사람에게는 모두 게으름이 있는데 당신이 승인하지 않아도 안 되는바, 당신의 사상이 그 한 걸음에까지 승화되어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체 연공하는 환경을 떠나면 마치 당신은 독촉이 없으며, 당신의 수련을 촉진해 주는 외부요인(外因)이 없다. 당신을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가 연공하여 가부좌할 때, 모두 너무 아파 어쩔 줄 모르지만 모두 내려놓지 않으므로 당신도 쑥스러워서 내려놓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당신의 연공 시간을 당신이 증가시켜 촉진하는 것이다. 바로 여러 방면에서 모두 이런 환경이 당신을 촉진하고 있다. 당신이 이 환경을 떠날 때 당신 자신이 잘 파악하지 못하면 그 외부요인의 촉진이 없어 당신은 스스로 느슨해질 것이고 스스로 정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비록 또 수련하고 있을지라도 진도가 매우 느려질 것인데 바로 이런 관계이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파악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 수련해도 모두 똑같은바 당신이 파악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나는 믿는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믿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분명히 보건대, 당신은 아직 그 층차를 돌파하지 못했다.

제자: 법을 파괴하는 사람이 있는데, 『권2(卷二)』 책 위에 비방하는 말들을 아주 많이 썼습니다. 이 책을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사부: 그를 태워버리면 된다. 이 사람이 이런 정도까지 나빠졌다. 어떠한 사람이든 모두 있는바 부처도 감히 욕한다. 그가 입에서 욕을 내보낼 때 그의 元神(왠선)은 모두 떨어져 버린다. 그 사람은 오직 산송장의 몸으로 인류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아주 쉽게 부체(附體)가 될 수 있는바 잇따라 부체가 올라온다. 이 元神(왠선)마저 없이 빈껍데기만 남아 있으므로 그것이 곧장 올라온다. 이런 것이 특별히 많고 이런 유의 가짜 기공사도 아주 많은데, 사실 그는 가장 나쁜 사람이다.

제자: 선량한 러시아 사람들 대부분이 기독교를 배우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만약 당신이 조건이 되고, 당신이 그들을 알고 있다면 그들에게 알려주어 배우고 싶으면 배우게 하고 배우고 싶지 않다면 그만두라. 대법은 역시 엄숙한 것으로 어떤 사람이든 강제로 이끌어 배우게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똑같다. 우리가 널리 선양함은 단지 법을 모르고 있는 그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알게 하여 그들을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가 배우려 하거나 배우려 하지 않거나 모두 그 자신의 일이다. 그가 외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모두 똑같다. 선량하고 선량하지 않고는 모두 현재 사람의 표준으로 가늠하고 있다. 사람은 모두 선한 일면과 악한 일면이 있지만, 전체 인류사회는 모두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말하면 일부 좋은 사람들, 그는 아직도 되돌아 올라가려는 선념(善念)이 있는데, 바로 이 점이 가장 귀한 것이다. 그가 속인 중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하는 것에는, 나는 어떤 감각이 없다. 오직 되돌아 올라가려는 그의 염두만이 가장 귀한 것으로, 그에게 이런 염두가 없다면 구원하기가 몹시 어렵다.

제자: 어떤 속인이 대법 책을 훼손하려고 했는데 수련생은 대법 책을 보호하기 위해 그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참음이 부족했고 업을 지은 것입니까?

사부: 우리 이 수련생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는 무엇 때문에 당신 앞에서 이 책을 훼손하려고 했을까? 우리에게 어떤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혹은 우리 자신이 어디 잘못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그 당시 생각을 돌렸으면 아마 그는 그 책을 훼손하지 않았을 텐데, 틀림없이 이러하다. 나는 늘 말하는데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모두 자신을 생각하고, 설령 이 문제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 할지라도 당신이 보았을 때 모두 자신을 생각해 본다면, 나는 당신이 전진하는 길에 당신을 가로막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제자: 저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고 제 남편은 주역을 연구하는데 저는 그의 책을 몰래 태워버렸습니다. 이는 나쁜 일을 한 것입니까?

사부: 이는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법에는 배후에 내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짜 기공사의 책, 그것의 배후에도 어떤 것이 있지만, 그것에는 그렇게 큰 내포가 없으며, 그것은 아주 얕고, 삼계를 벗어나지 못한 그런 것으로서 사악한 것이다. 형상은 동물・여우・요마귀괴(夭魔鬼怪)의 난잡한 이런 것들로서 모두 검은 것이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며 음성적인데, 그렇다면 그것을 방안에 놓으면 확실히 좋지 못하다. 당신의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것들을 받아들였다가 도리어 해를 당하고 있다. 당신이 그를 도와 태워버렸다면 태워버린 것이다. 만약 그가 불쾌하다며 꼭 당신과 다투려 하고, 때리고, 싸우지 않고는 안 되겠다 하더라도 당신은 상관하지 말라. 만약 그가 상관하지 않는 정황 하에서 당신이 태워버렸다면 태워버린 것이다. 당신은 자신을 되돌아보라. 무슨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마 아주 많은 일 또한 모두 원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당신에 대해 어떠한 교란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하고 있으므로, 몸 밖은 씌우개로, 모두 씌우개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남들이 당신들을 교란할 뿐만 아니라 당신들도 남을 교란할 것이다.

제자: 무엇을 우주의 연화(演化)라고 합니까?

사부: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주는 사람 자신이 내린 정의인데, 그것은 도대체 얼마나 큰가? 사람 역시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우리가 늘 가리켜 온 이 우주는 바로 우리가 보는 이 천체(天體) 범위에 불과하다. 현재 과학자들이 망원경으로 인식한 최대의 범위는 우리 이 소우주를 벗어나지 못했는바, 간단히 말하면 바로 이곳을 가리킨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 이 소우주는 대우주의 조(兆)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조조(兆兆) 분의 1이란 그런 작디작은 경지 속에서, 그것은 또한 한 알의 먼지 속의 먼지, 먼지 속의 먼지일 만큼, 바로 그렇게 작다. 당신이 말해 보라. 전체 큰 우주가 운동하고 있고, 큰 범위의 천체가 운동한다면, 그것은 우주가 운동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운동은 생기를 가져올 수 있고 종(物種)이 생기게 할 수 있다. 수련하는 사람은 이런 운동을 연화(演化)라고 부른다. 사람의 머리로는 그렇게 높이 인식할 수 없다. 이 우주는 너무나 방대해서, 얼마나 큰지 우리가 최고 층차까지 수련되어 원만(圓滿)을 이루더라도 당신은 그것의 방대함이 엄청난 것임을 느끼게 되어 당신으로 하여금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할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명(名)은 원만(圓滿)을 이룰 수 없게 하는 강대한 장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나 속인사회 속의 명에는 집착하지 않지만, 대법의 일 중에서는 여전히 공(功)이 자라거나 혹은 이름이 나길 구하고 있습니다.

사부: 그것이 바로 집착이 나타났음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그렇다면 바로 없애야 한다. 때로 우리 일부 수련생은, 노수련생을 포함하여 표현되어 나온 그 마음이 너무 나빠서 정말 수련하는 사람의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가 없앤 모든 마음을 더는 볼 수 없고 오직 그가 아직 없애지 못한 마음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아주 많은 마음이 표현되어 나오지 않음은 그가 이미 아주 잘 닦았기 때문이다. 오직 그가 없애지 못한 마음만이 표현될 수 있는데, 그 마음을 아직 없애지 못했기에 표현되어 나왔을 것인바, 당신들은 이 사람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며 다만 이 마음이 나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가 어떻게 수련하든 그는 모두 그가 아직 없애지 못한 마음은 덮어 감추지 못한다. 그가 어떻게 수련하든, 나는 모두 각 방면의 방법을 채용하여 설령 그가 가장 신성한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길 때에도, 그가 가장 내려놓지 못하는 그 마음이 표현되게 할 것이다. 설령 당신들이 대법을 위해 일하고 있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것이 표현되어 나오게 할 것이다. 일 자체가 그로 하여금 제고되지 못하게 한다면 안 되며, 그의 心性(씬씽) 제고만이 가장 첫째이고 그의 승화만이 가장 첫째이다. 만약 그의 마음이 순정해서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면, 다시 그 일을 할 때 그 일은 더욱 신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일부 사람들이 일했을 때 안 되는 것은 바로 그가 아주 많은 마음을 품고 일하고 있어서 이 마음, 저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일에 집착했든지 법의 일을 위해 집착을 조성했든지 여하튼 오직 그에게 한 가지 마음이라도 있다면 모두 일을 통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표현되어 나오게 할 것이다. 더욱이 마음이 좋지 않을 때 그로 하여금 더욱 성사되지 못하게 하므로 그의 이 저지력은 큰데, 왜냐하면 그로 하여금 순정하지 못한 마음으로 신성한 일을 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순정한 마음으로 신성한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신성한 것이다.

제자: 어떤 사람은 가부좌할 때 다리를 떨고, 토하는데, 그 자신도 통제하지 못합니다. 사부님께서 해석해 주십시오.

사부: 매 사람마다 정황이 모두 똑같지 않은데, 내가 기왕 이런 장소에서 말하므로 보편성 있게 말해야 한다. 연공이 순정하지 못하고 또 다른 것을 연마하거나, 혹은 자신이 전일에 도달하지 못할 때, 혹은 의념 속에 다른 공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 각종 각양의 것이 출현하고, 이런 유사한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또 하나는 바로 업력이 커서 소업 할 때 반응이 비교적 강렬해도 이런 상태를 조성할 수 있다.

제자: 깨달았으면 또 해내야 합니까?

사부: 응당 그래야 한다.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모두 잘 파악하여 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수련하는 사람은 응당 이렇게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제자: 갈라놓은 것이 더욱 많을수록 수련한 것이 더욱 높다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갈라놓은 것이 더욱 많을수록 높이 수련했다는 것은 아니다. 표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갈라놓을 수 있다.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갈라놓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 사부님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요? 바로 지닌 것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것인가요?

사부: 사실 당신들은 모르는바, 법을 얻었고, 당신들이 오직 이 한 마음이 견정하기만 하면 당신들은 원만(圓滿)을 향해 가게 되는데, 이것은 틀림없다.

제자: 자비심이 클수록 감당 능력이 더욱 큰 것이 아닙니까?

사부: 그런 일이 아니다. 자비심 그것은 정을 없앤 후에 그 부분에 생겨 나온 것이다. 감당 능력 그것은 여러 방면의 원인을 종합하여 구성된 능력이다.

제자: 청컨대 사부님께서 난을 좀 더 크게 해주신 후 하루빨리 업력을 갚고 하루빨리 반본귀진하고 싶은데 그래도 됩니까?

사부: 안 된다. 당신들이 인위적으로 무엇을 생각하면 모두 안 된다. 인위적으로 자신이 고생을 찾아 하는 것은 더욱 안 되는바 이는 모두 잘못되었다. 사실 일체의 안배는 모두 순서가 있으므로 이 방면에는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

제자: 저는 바로 ‘眞(쩐)・善(싼)・忍(런)’, 이 세 글자에 따라 하고 싶은데 이렇게 생각해도 맞습니까?

사부: 그렇다. 오직 마음이 견정하다면 당신은 이렇게 하며 요구에 따라 하라. 그러나 법을 더 많이 배워야 하는바 그렇지 않으면 眞(쩐)・善(싼)・忍(런)의 부동한 층차의 내포를 당신은 모를 것이며 진정으로 眞(쩐)・善(싼)・忍(런)에 따라 해낼 방법이 없다.

제자: 어떤 곳은 깨달을 수 없는데, 어찌하여 마치 전부 알지 못하는 것 같은가요?

사부: 알지 못해도 괜찮고 또 내가 쓴 이 일체를 당신들이 반드시 짧은 시간 내에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법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당신은 알 수 있다.

제자: 저는 어떤 때 스승님의 사진을 보자 무서웠습니다. 저는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부: 이는 당신이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업이다.

제자: 우리 법 공부 조에서 장소를 하나 빌려 모두 그곳에 가서 법 공부를 하는데 됩니까?

사부: 조건이 좋아짐이라, 아주 편안해졌다. 나는 너무 편안하게 닦는다고 느껴지는데, 그다지 좋지 못하다. 만약 이런 조건이 있어 우리가 돈을 내지 않고 그런 장소를 얻는다면 나는 반대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비가 오면 갈 수 있고, 겨울에 눈이 내리고 그럴 때 우리 모두 갈 수 있다. 만약 돈을 내어 비교적 좋은 환경을 창조한다면 이는 좋지 못한데 돈이 적고 많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자: 농촌제자들은 사부님의 책 속에 쓰인 이런 현대과학 용어(名詞)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부: 이것은 오히려 해석할 수 있는바 이 용어의 본뜻에 따라 해석한다. 바로 그것의 원 단어(原詞)를 해석하고 이 단어(詞)의 표면을 해석하라. 그러나 당신이 법을 보려면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

제자: 어떤 글자는 바로 표면상에서 이해되지 않는데 자전을 찾아도 됩니까?

사부: 된다. 그것은 문제가 없다. 자전에 따르면 오직 그의 글자 표면 뜻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흔히 내가 쓰는 단어는 자전에도 없다.

제자: 우리 옆에 기독교 신자가 있는데 그는 늘 저에게 글을 써 달라고 합니다. 거절하자니 난처하고, 써주자니 또 교란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사부: 쓰려면 써라. 우리는 오직 남에게 좋은 점만 있을 뿐인데, 아무튼 그는 우리를 교란할 수 없다. 사실 나는 그 기독교든 천주교든 모두 그것을 직업으로 여기지 그것을 수련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아예 직업이다.

제자: 저는 어떤 일을 내려놓으려 하는데도 무엇 때문에 내려놓지 못합니까?

사부: 그것은 이미 관념이 형성되어서다. 당신은 그것이 잊히지 않는다 해도, 그런 것은, 당신이 방법을 생각해서 그것을 배척해야 하는바, 그럼으로써 그것은 점차 약하게 변할 것이며 최후에는 소멸한다.

제자: ‘기(機)에 따라 내려가다’라는 동작은 여러 사람이 일치할 수 있는 것이 비교적 좋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어떤 때에는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사부: 그렇다. 동작이 일치할수록 느낌이 더욱 좋다. 왜냐하면, 우리가 연공할 때 당신은 체외의 이 기(機)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연공은 평소에 이 기(機)에 따라 돌고 있다. 자동으로 연공하고 있으며 매 시각 모두 연마하고 있는바 당신이 연마할 때에는 이 기(機)를 강화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정연하게 일체가 되어 연공할 때, 에너지가 커서 기제(機制)를 강화하는데 비교적 좋다.

제자: 겨울에 영하 30도 내외여서 집안에서 연공하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사부: 아무튼 되도록 밖에서 연공하라. 우리는 몇 년이나 연마했기 때문에 창춘(長春)이나, 하얼빈(哈爾濱) 수련생들은 모두 밖에서 연공한다. 많이 입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너무 추워서 정말로 안 되겠다면 집안에서 연마하고, 너무 춥지 않을 때는 다시 나와서 연마하라.

제자: 한 수련생이 돈을 가지고 교실 하나를 빌렸는데 이것을 돈을 움직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것은 당신들 보도소에서 한 것이라고 칠 수 없고 당신들 연공장(煉功點)에서 한 것이라고 칠 수 없으며, 수련생이 한 것으로서 개인행위이다. 나 개인이 좋은 일을 해 당신들을 지지한다는 이런 관계이다. 그것은 모두 그 자신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한 가지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이 수련생 그의 감당 능력이다. 그에게 그렇게 큰 경제력이 있는가 하는, 이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우리 이 수련생이 아주 긴 시간을 거쳐 수련했는지 아닌지? 만약 그에게 사상적으로 반복(反復)이 나타난다면, 그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느낄 것이고, 조금 있으면 번거로움이 나타날 것인데,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우리가 되도록 밖에서 연공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것이다.

제자: 우리 연공장(煉功場) 주위에 아주 많은 다른 공법이 연공(煉功)을 하는데 어떤 수련생은 교란을 받고, 영향을 받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사부: 영향이 없으며, 그것은 절대로 우리를 교란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은 이런 사상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나를 교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데, 당신 자신이 동요되지 말아야 하고,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

제자: 저는 최근에 사상업력이 특별히 컸습니다. 저는 제가 안배해 온 마(魔)일까 봐 두려워했는데, 사상업력이지 저 자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부: 괜찮다. 당신 자신이 아니라 업력이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매 사람의 것이 많고 적음은 모두 똑같지 않아서 조금 많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조금 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많으므로 아마 우리 자신이 좀 더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전에 이 방면에서 잘못한 일이 좀 많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필사적으로 나와서 그것을 억제하고 그것에 대항해야 한다. 당신은 단지 그것이 자신이 아님을 분간할 수만 있으면 모든 것이 잘된다.

제자: 저는 자신이 잘 닦지 못해 더러운 것이 너무 많다고 느끼는데, 집안에서 사부님도 감히 바라보지 못하겠습니다.

사부: 괜찮다. 사부는 어떤 정황인지 알고 있다. 나는, 이전에 잘못했고 지금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당신은 마음 놓고 수련하라.

제자: 제 딸은 지능이 떨어지지만, 법 공부와 연공을 견지한 지가 이미 3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딸은 대법에 대해 잘 깨닫지 못하는데 원만(圓滿)을 이룰 수 있겠는지요?

사부: 지능이 떨어져도 법을 배우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3년을 배웠으면 절대 헛되이 배우지 않았을 것인데,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게 아닌가? 반드시 그렇게 차이 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부 아이들은 흔히 모두 아주 내력(來頭)이 있다. 왜냐하면, 한 사람으로서 그녀는 자기의 일생 중 어떤 시간에 법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를 그녀는 위에서 (위 그것은 고급 생명이다) 아주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집의 사람이 장래에 법을 얻을 수 있음을 보고 그녀는 이 집으로 전생(轉生)하여 온 것이다. 바로 이런 유형이 특별히 많기에 우리 일부 아이들은 정말로 신동(神童)이다. 어떤 이들은 조금 부족할 수 있는데, 당신은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

제자: 각 지역의 법 공부, 수련의 층차 차이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사부: 이것은 차이가 없다. 각 지역마다 모두 아주 정진하는 이가 있고, 지역마다 모두 정진하지 않는 이가 있는바, 상・중・하사가 모두 있다. 어떤 지역의 법을 늦게 얻은 이들은 진도에서 조금 뒤떨어질 수 있는데, 이것은 틀림없지만, 또 어떤 이들은 늦게 온 사람이 앞서는 경우도 있다. 우리, 뒤늦게 법을 얻은 이들 중 아주 많은 이들이 모두 나를 만난 적이 없지만, 법에 대한 이해에서, 인식에서 아주 높을 뿐만 아니라 아주 빠르며 장애가 없다. 과거에 새로운 수련생들은 법을 인식할 때 모두 한 과정이 있었다. 그 당시 내가 광저우(廣州)에 가서 법을 전할 때 앞의 두 반에서 설법할 때 수련생들은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면서 좋다고만 느꼈지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몰랐다. 바로 사람의 관념 특히 개혁개방 이후 광저우(廣州) 사람들의 사상은 모두 돈을 버는 것이었다. 세 번째 반, 네 번째 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폭발하듯 열렸는데, 단번에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던바 그제야 비로소 대량의 수련생들이 올라왔다. 현재 뒤늦게 법을 얻은 사람들이 흔히 빠르게 제고하는데, 아마 이런 환경도 구비되었고 각 방면의 조건도 성숙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외부조건(外因)이 형성된 것이다

제자: 단체 법 공부에서 어떤 사람은 통독(通讀)은 곧 반복해서 읽어야하며 토론하지 않고 자신이 깨달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매일 한 강의씩 읽는데 이렇게 하면 법 공부에 도움이 됩니까?

사부: 통독 그것은 바로 통독으로, 그것은 무슨 말 할 것이 없다. 바로 한 번 또 한 번 보고, 통독하라. 우리 여러분은 필경 함께 법 공부하는 것이라, 다 읽고 난 후 서로 연구하고 토론하며 좀 담론한다. “나는 여기에서 사부님의 이런 뜻이 있음을 갑자기 깨달았는데, 나는 이 방면에서 아직 부족하다.” 우리가 집에서 읽으면 이 방면에서 아마 이런 결함이 있을 것인데, 이런 부족함은 앞으로 그것을 고쳐야 하므로, 바로 서로 연구하고 토론하는 이런 게 필요하다. 하지만 통독이 중요하다. 우리는 한 단락을 배우고 멈춰서 모두 의논하기 시작하고 또 한 단락하고 또 의논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은 좋지 않다. 대량의 통독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해 말하고, 인식을 말하는 것이 법을 읽는(讀法) 것보다 많아서는 안 되며, 법을 배움(學法)이 가장 중요하다.

제자: 우리에게 우주 대법의 기원(起源) 즉 ‘眞(쩐)・善(싼)・忍(런)’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들은 영원히 이 우주가 얼마나 큰지를 모를 것인바, 그 기원은 말할 방법이 더욱 없다. 아울러 그러한 언어도 없다. 이 우주 중에서 아주 높은 층차의 그 신(神)의 언어로도 우주의 최종을 말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의 언어로 어떻게 말하겠는가. 우주는 사람으로서는 영원히 다 이해할 수 없는 미혹(迷)으로, 사람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당신들의 집착을 법 공부에 쓰라!

제자: 관념은 사람으로서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닙니까? 사람이 어떠한 관념도 없을 때는 어떤 상태입니까?

사부: 사람이 만약 어떤 관념도 없다면 마치 아주 순진하고, 선량한 것이지만 절대로 어린이의 상태는 아니다. 당신은 어른이고 이지적이다. 아이에게 관념이 없으면 천진하고, 선량하며 일할 때 목적이 없다. 그러나 어른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일단 이런 관념을 버린 뒤에는 당신들도 이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런 관념들을 완전히 버렸을 때 당신은 이미 승화 중에 있고 일찍이 이미 제고되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련하면서 이 관념들이 점차 감소하고 약해지는 이런 상태로 줄곧 최후에 없어질 때까지이다.

제자: 단체 법 공부를 할 때 어떤 때는 좋고 어떤 때는 좋지 않은데 이렇게 기복이 있는 심리상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그것은 모두 당신 자신의 수련 상태인데 매 사람의 수련은 모두 부동한 환경 속에서 그렇게 좋게 견지할 수 있다. 어떤 사상의 교란도 없이 배우자마자 배움에 들어간다는 것은 누구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당신들이 매 한 관을 잘 넘거나, 잘 못 넘었거나, 넘어갈 수 있거나, 혹은 넘어가지 못하거나 하는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당신이 매 한 관을 모두 넘어갈 수 있다면 당신은 바로 신이다! 수련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당신은 자신에 대하여 느슨해서는 안 되는데, 수련은 정진해야 한다.

제자: 모(某) 보도소장이 바뀐 뒤에도, 다시 우두머리(山頭)가 되어 한 무리 수련생들을 끌어다 법 공부 팀을 만들었습니다.

사부: 만약 그 소장에게 확실히 문제가 있어 바뀌게 된 것이라면,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무슨 돈벌이를 한다거나 수련생들을 이끌어 함부로 한다거나 파악을 잘 못한다거나 문제가 생긴다거나…… 나는 그것이 우리 대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도 위해(危害)를 조성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바꿔야 하는데, 당연히 바꿔야 한다.

수련생이든 혹은 그 소장 본인이든 천천히 자신이 잘못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때 그 소장을 절대 속인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가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있지만, 그는 아직도 수련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형식상에서 만약 그가 정말로 법을 파괴하는 것이 나타나면 그것은 다른 한 가지 일이다. 그가 법을 공격하고, 법을 파괴하거나 혹은 그의 모든 행동이 법과는 별개의 일이라면 그것은 바로 그가 자심생마(自心生魔)한 것이다. 그가 이미 완전히 이 법에서 어긋나 함부로 한다면 우리는 절대 그를 승인할 수 없다. 만약 이런 문제가 나타나면 바로 이러하며 나는 그를 승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를 따라간 사람은, 여러분이 생각해 봐도 역시 우연이 아니다. 수련은 큰 파도가 모래를 이는 것이다. 어떤 사람 그는 진심으로 대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므로 또 이 방법을 통해 그는 나가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이곳에서는 그런 혼잡스럽고, 그럭저럭 하는 이들은 필요치 않은데, 또 아마 이것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수련생이 잠시 착오했고, 잠시 멍청했음을 인식하고 명백해지면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바로 흐리멍덩한데, 당신은 법을 배우러 온 것인지, 아니면 누구를 따라다니려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생각해 보지 않는가?

제자: 사부님께서는, 그들을 깨어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신(神)이 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많은 수련생이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부: 지금 바로 이 일을 차츰차츰 하고 있는데 내가 오늘날 말한 것을 모두 포함하여 아주 많이는 이 문제를 에워싸고 말하므로 당신들로 하여금 점차 깨어나게 할 수 있다.

제자: 사람과 결렬하는 고험은 항상 있는지, 아니면 단 한 번만 있는지요?

사부: 이러한 기회는 절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후에 또 다른 형식이 있을 것이며, 어쩌면 또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없을 수도 있는데 모두 미지수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개변하지 못하면 얼마나 많은 차례가 다시 있다 해도 넘어가지 못한다. 수련은 바로 이러하며, 절대로 어떤 것이 거기에 진열되어 있거나, 혹은 있다거나 혹은 없다고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 전부 알려주면 모두 넘어갈 수 있는바, 그것은 모두 가짜이다. 바로 당신들이 모를 때, 관건 적일 때에 당신이 확실한지, 그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며, 혹은 당신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여 어떻게 하는지를 보는데, 바로 이러하다.

제자: 『전법륜(轉法輪)』의 어떤 구절을 배울 때, 『권2(卷二)』 등 기타 대법 서적에 상관되는 내용을 가지고 함께 배우는 이런 방법은 좋습니까?

사부: 좋지 않다. 당신이 오직 배우기만 하되, 어느 책을 보면 당신은 바로 그 책을 보며, 당신은 이렇게 보며 순리대로 보라. 당신은 인위적으로 무엇을 찾지 말아야 하며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건 모두 안 된다. 내가 또 당신들에게 알려 주는데, 어느 정도까지냐 하면, 즉 당신이 응당 제고되어야 할 때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되어 올라오게 하며, 당신이 응당 어느 층차의 법리를 알아야 하면 당신으로 하여금 그 층의 법리를 알게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오늘 한 가지 일을 했지만, 당신은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른다. 당신이 『전법륜(轉法輪)』을 펼치는데, 어느 곳을 펼치겠다는 어떠한 의념이 없이 무심코 펼치면, 틀림없이 바로 당신이 오늘 한 일에 대하여 겨냥성이 있다. (박수) 물론, 당신이 돌아가 한번 시험해 보겠다는 이런 마음을 품으면, 소용이 없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절대 당신으로 하여금 어린이 소꿉장난처럼 시험하게 할 수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바로 당신이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대법 이 책, 『전법륜(轉法輪)』 이 책은 바로 체계적으로 수련하는 것이므로 당신은 가서 보라. 기타 『의해(義解)』라든가 『권2(卷二)』 등 다른 것을 말하자면 그것은 다만 보조적인 것으로 당신에게 참고로 보게 한 것이다. 『정진요지(精進要旨)』의 목적은 우리의 모든 수련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는 것을 바로잡는 데 있다.

제자: 어떤 사람은 대법의 위력이 끝이 없어(無邊), 대법제자들이 법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데 이 말이 맞습니까?

사부: 맞지 않다. 대법의 위력은 끝이 없다. 우리는 오늘날 모두 이 속인사회의 이런 환경 속에서 수련한다. 만약 고층에 있는 패괴(敗壞)된 생명이 와서 나쁜 일을 한다면, 그럼 법 자체가 우리의 호법신(護法神)이나 혹은 다른 고급 생명을 움직여서 그것을 소멸해 버릴 것이다. 만약 우리의 제자가 나쁜 일을 하고 있고, 이 신(神)이 와서 사람을 모두 죽여 버렸다면, 사람마다 모두 이 법의 위력이 정말로 크다고 생각하여 모두 다시는 감히 법에 번거로움을 조성하지 않을 텐데, 그러면 당신들도 수련할 도리가 없게 된다. 신도 쉽게 이렇게 와서 속인을 죽일 수 없으며 또 지금 당신들이 수련하고 있는 이 환경을 파괴할 수 없다. 우리는 수련하고 있으므로 사회와 부동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각 방면의 번거로움을 조성해 주면, 우리는 모두 부동한 정황에 겨누어 대법을 잘 보호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호법이 아닌가?

이 나쁜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나쁜 일을 한 사람, 만약 그가 구제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를 설득하면 그는 또 제도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가 고집대로 하면서 바로 이렇게 해나가고 히스테릭하게 이렇게 한다면, 일정한 시기에 이르러 우리는 그를 처리할 것이다. 또 아마 수련생을 고험할 때 잠시 그를 이용할 수 있는데, 우리의 수련이 결속되기를 기다려 그가 한 일체를 그 자신이 모두 갚아야 하는데 이것은 틀림없다.

제자: 신(神)이 될 수 없다고 해서 어찌하여 최후에는 사람마저 될 수 없습니까?

사부: 전체 우주는 모두 갱신되고 있다. 그 사람으로 말하면 수련이 결속되면 이 환경도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바로 더욱 썩은 인간 찌꺼기로서 더욱 좋지 못한 것인바, 인간이 못되면 바로 도태되어 떨어질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렇게 존재해 나가게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정말로 신이 만든 것이다. 나는 지난번에 이 문제에 대해 해답해 준 적이 있는데, 나는 다시 진일보로 그에 대해 설명해 주겠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 사람은 분자로 구성된 이 공간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아는가? 우리 신변의 일체 물체(物體)는 모두 분자로 구성되었는바, 공기마저도 그렇다. 당신이 먹는 것, 당신이 마시는 것, 당신이 접촉하는 일체, 당신 신변의 일체, 당신이 볼 수 있거나 볼 수 없는 것 일체는 모두 분자로 구성되었다. 그렇다면 밖에서 볼 때, 우리 우주 환경 밖에서 삼계를 볼 때 사람은 이 분자 더미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바로 이 분자 더미 속에서 생존하고 있는바, 당신이 숨을 쉬는 공기까지도 이 분자이다. 그렇다면 삼계 밖의 고급 생명이 인류 공간을 보았을 때 이 분자는 무엇인가? 신은 이 분자를 보편적으로 ‘흙’이라고 하며 ‘진흙’이라고 부른다. 당신은 바로 진흙 속에 있으며 사람은 바로 진흙 속에서 기어 다니는데 이것이 신이 본 것이다. 신은 바로 이렇게 보는데, 일체 모두가 이렇다. 게다가 부동한 층차에는 또 더욱 고급 물질이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예수가 했던 말, 여호와가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것으로 생각한다! 당신이 본 그 ‘진흙’이나, 그 ‘흙’이 아니라 이 일체 모두이다. 당신의 육신을 그는 모두 흙이라고 여기는데 모두 진흙이다. 왜냐하면, 신이 분자 이 층, 특히 가장 거친 이 층의 분자를 볼 때, 그것은 바로 가장 더러운 것이며, 가장 좋지 않은 진흙으로, 바로 이렇게 보기 때문이다.

제자: 어떤 사람은 연공할 때 신체 좌우 양측의 균형이 맞지 않은데, 남들이 보면 조금 비뚤어졌습니다.

사부: 사람마다 자신의 정황이 있는데, 어떤 이들의 신체는 이쪽 물질은 많지만, 신체 저쪽의 물질은 적은, 이런 정황이 있다. 역사상 당신 자신이 부동한 환경, 부동한 정황 하에서 조성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오직 연마만 해라. 이런 것은 모두 내가 당신들에게 처리해 줄 것인바, 당신 자신은 처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오직 연마만 해라. 당신에게 마음이 하나 더 있어도 소용없다. 당신이 그것을 생각만 해도 부담이고 장애이며 집착이다. 내가 방금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이미 문이 없게끔 열었으며, 나는 오직 사람 마음만 본다. 당신이 더 수련하지 않고 내가 마음마저도 보지 않는다면 내가 또 어떻게 당신을 제도하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제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후천적으로 형성된 일체 관념을 되도록 빨리 없앨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오직 견정하게 대법을 배우고 좋지 못한 사상이나 염두가 나타나면 당신은 자신이 수련인임을 생각하고 정념으로 그것을 억제하라. 나의 법신은 당신의 사상 활동을 똑똑히 보고 있다. 당신이 그것을 분간할 수 있고 그것을 자신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연히 당신이 아닌바 즉시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당신에게서 없애주지는 않을 것이며, 층차를 나누어 점차로 그것을 축소할 것이다. 왜냐하면, 또 당신 자신이 법을 인식하고 수련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 남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극소수 아주 좋지 않은 것은 단번에 없애버릴 것이다. 바로 이러하다.

제자: 어떤 수련생은 법 공부하는 시간에 잠을 자는데 그에게 지적해 주자 그는 반감을 갖고 공부하러 오지 않습니다.

사부: 그렇다면 그를 공부하러 오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법을 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잠을 자러 온 것인데, 그렇다면 또 그를 찾아서 무엇하겠는가? 그렇다. 잠을 자러 오는데, 우리 여기에 잠자는 사람은 필요 없다.

사람이 적음을 염려하지 말라. 우리 연공장(煉功點)에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나는 괜찮다고 말한다. 당신은 사람이 적음을 염려하지 말라. 당신에게 한 무리, 천 명이 와도 이 속에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법을 파괴한다.

제자: 우리가 어떤 때에 보도(輔導)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법을 해석하는 잘못을 저지를까 봐 두려워서입니다.

사부: 이 보도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다. 당신에게 예를 들자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나는 나의 이 층차 중에서 법에 이런 내포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나의 이 층차 중에서 깨달은 것으로 당연히 법은 또 더욱 높은 내포가 있다! 나의 어느 한 점이 법과 차이가 있다거나, 혹은 나는 이 법의 어느 한 경지 중에서 어떤 것을 말한 것이라고 하는 이것은 모두 관계가 없다. 그러나 법에는 또 다른 내포가 들어 있음도 아주 똑똑히 말해야 하는데, 바로 당신은 자신에게 국한하지 말아야 한다.

제자: 연공인은 또 사회 일을 해야 하는데 속인사회의 이치로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사부: 일은 바로 일이며, 수련은 바로 수련이다. 그러나 수련 중 心性(씬씽) 제고는 일 속에서 구체적인 문제로 나타날 것이다. 이 밖에 상사가 당신에게 일하라고 종용하면 당신은 조금 따라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당신이 하지 않으면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또 큰 잘못을 범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잘못이 있다면 당신 자신이 일할 때 또 당신 자신이 일하는 방식에 근거하여 되도록 그것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당신이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보는데 나는 모두 잘하고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우리 일부 사람들은 체면을 중시하는데 사람들에게 자신이 대법을 연마하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며, 사람들에게 그가 그렇게 좋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한다. 나는 아주 많은 것이 개인적인 원인 때문에 조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 주는데, 지금 일억 명이 대법(大法)을 배운다. 사람이 적지 않으며, 당신만 개별적으로 배우는 현상이 아니므로, 당신은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창춘(長春) 이 환경에서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언급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모두 좋은 사람임을 알고 있다.

우리 아주 많은 지역에서 실직한 수련생들이 일을 찾을 때, 사람들은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하는 사람이면 내가 고용하겠다고 말했다. 당신은 당신 혼자 뛰어났다고 여기지 말라.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이런 환경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모두 이런 환경이 형성되었다.

제자: 다른 공법이 우리 옆에서 함께 연공하는데, 그것들이 녹음테이프를 고성으로 틀어 놓아 우리는…….

사부: 그런 것은 괜찮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지, 움직이지 않는지 시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가 그것을 틀어 놓을 때 바로 당신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게 아닌가? 그때에 당신이 그것의 교란을 받는지 받지 않는지? 당신이 화를 내는지 내지 않는지를 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의 안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천둥이 쳐도 움직이지 말라. 당신은 풀어줘라. 당신이 정말로 움직이지 않을 때 그것은 자연스럽게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출 것인데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만약 그가 고의적이거나 혹은 당신도 정말로 잘 파악하지 못하고 새로운 수련생들이 비교적 많다면 장소를 바꿔라. 그가 이곳이 좋다고 하면 그에게 양보해 주라. 어느 곳이든 우리가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면 모두 좋게 변할 것이다. 우리가 환경을 개조하는 것이지, 환경을 고르는 것이 아니다.

제자: 수련자는 어떻게 지도자 일을 잘할 수 있습니까?

사부: 지금 지도자의 일에는 번거로운 것이 너무 많다. 만약 사회에서 모두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한다면 내가 보기에 당신이 따로 마음을 쓰지 않아도 그는 아주 잘해낼 것이다. 모두 공(公)적인 것을 위하고 사(私)적인 것을 위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남이 잘되기를 위한다면, 당신은 이 사회가 어떠할지 생각해 보았는가? 물론 우리는 여러분이 법을 배운 뒤 당신들 모두 속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바로 이 뜻을 말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는 그것은 모두 당신 자신의 구체적인 문제이며 당신 자신이 어떻게 하면 연공인에게 부합될 것인가를 파악하라. 일부 문제는 조금 따라주고 조금 관용을 베풀어야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조금 엄해야 한다.

제자: 일을 하면서 사회의 풍기문란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이 상관할 수 없는 일은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지도자인데 당신의 회사 풍기가 나쁘다면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 만약 당신 회사의 일이 아니거나 혹은 당신에게 사회적 직책이 없으면, 그럼 당신은 상관하지 말고 자신을 잘 단속하라. 우리가 말하는 것은 바로 자신부터 잘하고, 사람마다 모두 자신을 잘 단속하면 사회에 모두 좋다. 사람마다 모두 남을 단속하면, 단속할수록 더 나빠지고 모순은 갈수록 많아진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면서 모두 남을 단속하고 서로 간에 당신이 나쁘다거나 내가 나쁘다거나 그가 나쁘다거나 이렇게 하면 서로 간의 모순은 갈수록 격렬해지는데, 틀림없이 이러하다.

제자: 무엇 때문에 어떤 사람은 늘 빗나가게 깨닫거나 극단적으로 깨닫습니까?

사부: 사실 아주 간단한데 무슨 다른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상의 기초를 어디에 두었는가 하는 것이다. 바로 당신이 깨달으려 할 때 당신의 사상 기점이 어디에 있으며 당신은 어느 기점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당신 자신이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답안을 찾으려 하며, 당신 자신의 내려놓지 못하는 그런 것을 보호하려고 찾을 때 당신은 당연히 빗나가게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당신이 법을 보면 법이 말한 것이 맞다. 당신은 법속에서 당신 자신이 맞는다고 여기는 것을 찾지 말아야 하며, 당신은 법에서 당신 자신을 벗어나게 해줄 것을 찾아, 단장취의 하여 당신 자신의 것을 보호하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안 되며 볼수록 더 얼떨떨해진다. 바로 당신의 기점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를 본다.

제자: 지금 원만(圓滿)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무엇입니까?

사부: 나는 사람들에게 가장 빠르고, 가장 좋은 수련형식을 개창했다. 우리는 가장 복잡한 사람들 속에 있는데, 또 이 복잡한 환경은 사람들이 빨리 제고할 수 있도록 촉진한다. 동시에 우리는 오늘날 이렇게 큰 법을 전한바 이 법은 사람들을 빨리 제고시킨다. 또 어떻게 더 빨리하려고 하는가? 대법이 사람을 제도하는 것보다 더욱 빠른 것은 없다. 업력이 온몸에 가득한 사람이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응당 어떻게 업을 갚을까 하는 것이지, 당신이 무엇을 선택할 여지는 없다.

제자: 저는 늘 책을 베끼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여겨집니다.

사부: 그건 당신이 조금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제자: 사상업을 이기는(戰勝) 데는 아주 강한 의식으로 배제하는 외에 또 다른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사부: 없다. 당신 자신이 손을 움직여서 잡으려 해도 잡아낼 수 없는바 다른 방법이 없다. 당신의 제고나 당신의 사상업이 없어짐은, 당신의 층차가 제고됨에 따라서 감소하는 것이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당신이 당연히 어떻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각 방면 모두 아주 주도면밀하게 당신에게 안배해 준 것이다. 잘못된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제자: 신체의 가장 큰 한 층의 세포가 탈락한 후 다른 공간의 신체는 어떤 존재형식입니까?

사부: 내가 말했다. 나는, 사람이 죽었다고 당신의 생명이 따라 죽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법에서 이미 이 문제를 언급했는데, 아주 똑똑히 말했다. 사람의 죽음은 다만 당신의 가장 큰 한 층의 분자, 즉 사람의 육체, 표면 이 층의 분자가 이 공간 속에서 죽었고 탈락했을 뿐, 당신의 진정한 미시적 물질로 구성된 신체가 어떻게 죽을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을 태우는 가마의 불도 당신의 더욱 미시적인 물질을 불에 타버리게 할 수 없는데, 그것을 태우지 못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준다. 사람의 불이 태울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불이 그 원자핵을 태워 버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며, 열도(熱度)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이쪽의 불과 그것은 공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태우지 못하는 것이다.

제자: ‘사법을 연마하다’ 1절 중에서 대각자들은 자신의 특성에 따라 새로운 우주를 만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원래의 특성은 새로운 우주와…….

사부: 이 우주는 아주 방대하다. 부동(不同)한 층차의 우주 전체에 이런 문제가 나타난 적이 있지만, 책에서 말한 것은 이렇게 큰 천체의 일이 아니며 이런 일이 아니다.

천체 속에는 아주 많은 우주가 있는데 방대한 천체에서 보면 그것들은 모두 먼지와 같다. 그 속에서, 법의 부동한 층차 중에는 법에 대한 부동한 우주의 부동한 층차의 인식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층의 법의 진실은 생명으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법이 표현한 특성은 오히려 생명에 알려질 수 있는데, 내가 오늘날 당신들에게 말해준 것을 포함하여 역시 당신들의 그 한 걸음까지 승화한 인식을 개괄하여 말한 것으로서, 모두 그 한 층의 진정한 체현은 알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한 층의 생명이 만약 아래에서 수련하여 올라간 이라면(대법을 수련한 이는 제외), 그는 수련할수록 더욱 높은 과정 중의 이 한 층의 법에 부합될 것인바 그 자신이 수련해 낸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석가모니에게는 ‘계(戒)・정(定)・혜(慧)’가 있다. 그의 계(戒)・정(定)・혜(慧)’ 역시 그의 그 한 층의 법리에 부합된 것이고, 그 층의 우주의 법에 부합된 것인데 그렇다면 그 한 걸음까지 승화된 것이다. 전체 우주의 구성은 그의 법리인 계(戒)・정(定)・혜(慧)’로 구성된 것이며, 동시에 또 그의 일체 정과(正果)의 연화 원리, 물질과 형식, 이 일체가 모두 그의 이것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그 속의 법의 진정한 체현을 근본적으로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표현을 알 수 있고 이 층의 것을 깨달았으며 그는 바로 이 한 층에서 생존할 수 있는데, 그렇게 그는 그 자신의 것- 바르게 깨달은 과위(正悟果位)가 있게 되었다.

이 한 층 중에는 다른 부처(佛)가 있고, 다른 신(神)이 있는데, 그들은 또 이 한 층 법리의 다른 인식을 깨달았고 또 이 한 층의 법리에 부합되었는데, 그렇다면 또 자신의 과위를 바르게 깨달은 것이다. 그 밖의 부처 역시 이러한데, 또 이곳에서 세계(世界)를 건립했으며, 또 이 한 층의 우주 대법 속에서 자신의 정오지과(正悟之果)를 깨달았다. 모두 똑같지는 않지만 모두 이 한 층의 표준에 부합된다. 내가 말한 이것을 알아들었는가? 방대한 우주 중에는 이러한 현상, 이러한 부동한 층차의 현상이 너무나 많다. 이러한 우주 속에서 성(成)・주(住)・괴(壞) 이런 것이 교대로 나타남은 항상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전체 천체(天體)의 이 법은 영원히 개변되지 않는다. 영원히 모두 이 법인바, 영원히 모두 변하지 않을 것이고 또 변한 적도 없다.

제자: 사부님의 설법 반에 참석했던 사람과 설법 반에 참석하지 못한 수련생은, 사부님과 연분이 다르다는 것 외에 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사부: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들은 수련 속에서 어떤 차이도 없다. 나와 아주 큰 연분이 있는 매우 많은 사람이 학습반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 자신의 정황, 상태와 많고 많은 요소와 관계가 있다.

문제에 전부 다 해답했다. 일부 중복된 것은 골라냈다. 또 일부 속인이 제출한 문제는 해답할 필요가 없어서 역시 골라냈다. 나는 이미 다섯 시간을 말했다. 법(法)을 듣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모두 듣기를 원하는 바, 다시 다섯 시간을 말해도 당신은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많은 말을 했을지라도 바로 한 가지 목적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 즉 당신이 되도록 빨리 제고하여, 되도록 빨리 수련해 올라올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있는 우리 대다수가 보도원이므로 당신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하려는 바로 이 목적이다. 아주 많고 많은 문제가 있음에 대하여 말하자면, 당신들 수련 중의 정황을 내가 모두 해답해 주면 당신들은 수련할 것이 없다. 아마 수련했다 할지라도 수련한 것으로 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많은 문제는 당신들 자신에 의거해 깨달아야 하고, 자신이 수련해야 하는바 그것이야말로 바로 수련이다. 나는 항상 이 예를 드는데, 당신이 원만(圓滿)을 이루어 올라가 보면 그 큰부처가 위엄 있게 그곳에 앉아 있는데, 부처마다 건립한 위덕이 모두 위대하다. 당신은 어떻게 올라온 것인가? 당신은 자신이 떳떳지 못함을 발견하고, 당신 스스로 바로 이곳에 마땅히 있지 말아야 함을 알고, 당신 스스로 내려간다.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당신들 사람마다 수련은 모두 반드시 자신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며, 자신의 매 한 층차가 모두 아주 착실해야 하는바 수련은 바로 엄숙한 것이다! 오늘부터 돌아가서 내가 한 말로 다른 사람에게 대하지 말라. 왜냐하면, 나는 당신들의 상황을 겨냥해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한 말에서 단장취의하지 말아야 하며, 또 환희심을 품고 남에게 나는 이 사부님이 무엇 무엇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그 마음을 움직일 때 당신은 이미 속인이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안정된 수련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바, 과거에 나타났던 이런 문제들, 그것으로 하여금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이 환경은 우여곡절이 많은데, 내가 전체 수련환경을 바로잡아, 문제가 나타나지 않고 이렇게 바르게 걸어 지나올 수 있는 이것은 아주 쉽지 않은 것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어떠한 유형적인 조직형태가 없는바 돈을 저축하지 않고 물건을 모으지 않는다. 여러분이 본 좋은 점은, 속인사회에서 어떠한 세력을 만들지 않고 사회를 교란하지 않으며 정부를 교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신들이 본 것은 이것이다. 사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우리에게는 법이 있으며, 이렇게 큰 법이 있기 때문에 나는 손을 풀어놓을 수 있다. 당신이 배우든지 배우지 않든지 모두 사람 자기의 일이다. …… 우리는 어떠한 명부(花名冊)가 없으며 그 장(張)아무개 이(李) 아무개라는 개인 정황을 파악하지 않는다. 당신이 오직 수련하기만 하면 나는 당신을 책임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책임을 속인사회에 드러내지 않는다. 당신이 오직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은 제고될 수 있고, 수련해 나가기만 하면 원만(圓滿)에 이를 수 있는데, 모두 속인사회에서는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이 법에 배합(配合)되기 때문이다. 이 법이 이렇게 크기에 속인사회에 대한 유전형식에서도 요구가 높다. 다시 말해서 속인사회의 형식 또한 반드시 이 대법의 요구에 부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형식이 이렇게 큰 법의 요구에 맞추어 속인사회에서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바로 ‘대도무형(大道無形)’인바, 우리는 이 점을 정말 해냈다. 무형(無形)이라, 속인사회 중의 어떠한 형식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하게 수련하고 진정하게 제고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렇게 걸으며 바로 이렇게 하는 것으로서 역시 가장 좋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모두 우리의 결함을 찾아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계란에서 뼈다귀를 찾아내려 하나 찾아내지 못하는데, 우리에게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어떠한 조목의 틀도 규정하지 않았는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신들 자신은 모두 알고 있다.

심지어 당신들 보도원, 여러 보도원도 모두 자신의 열정적인 마음에 따라 한 것에 불과하다. 자신의 명예도 없고 무슨 이득이 없지만 열정적인 마음에 따라 자신이 녹음기를 들고 그곳에 가서 여러 사람에게 보도한 것이다. 역시 모두 이렇게 한바 열정적인 마음이며 개인의 행위이다. 실천이 증명하듯이 이 환경은 우리가 수련하기 가장 좋은 것이다. 과거에 사람을 제도했던 어떠한 한 사람도 이렇게 하지 못했는데, 그에게는 이렇게 큰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두 제자들을 한곳에 함께 모아, 규정에 따르고 계율에 따라 수련하게 했다. 우리 오늘날에는 이렇게 큰 법이 있어 우리는 개방했는바 규정을 만들 필요가 없다. 어떠한 유형적인 것이든 모두 이 대법에 어울리지 않으며, 어떠한 조목의 틀이든 모두 사람의 마음을 개변할 수 없다. 오직 법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이런 한 걸음을 걸었다. 

우리의 보도소 이런 형식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보도소는 어떠한 기업이나 회사 같은 그런 형식이 없다. 나는 바로 내 집에서, 나는 평소 여러분과 함께, 수련생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좀 보고, 우리 여러분이 함께 연구 토론하는데, 완전히 일종의 대중 형식이다. 나는 이것이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고 싶으면 좀 연구하고 법을 널리 알리며 여러분이 무슨 일을 좀 하는 이것은 모두 아주 좋다.

법회, 이 역시 우리 대법 중의 특유한 것으로서, 일정한 정도에 이른 후, 우리가 모두 한데 모여 잘 배운 이들이 있으면 법회를 한 번 열어 여러분의 심득체험을 말하게 하는데, 다른 사람을 촉진하고 제고하는 작용을 하는바, 이는 아주 좋다. 이것 역시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보면 여러분은 모두 이 법을 위해 아주 많은 공헌을 했다. 물론 나는 당신들에게 인사치레로 당신들을 칭찬하지는 않을 것인바 당신들이 구하고자 하는 것도 이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공덕이며 구하고자 하는 것은 경지의 제고, 층차의 제고이므로 나도 이런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대법을 위해 한 일 역시 당신을 위해 한 일과 같은데, 당신이 바로 대법 속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대법에 대하여 책임지는지 안 지는지 하는 것도 바로 당신 자신에 대하여 책임지는지 안 지는지 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렇게 많이 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다만 수련 중에서, 층차 중에서, 여러분의 제고 중에서 책임을 진다.

속인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여러분이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더욱 좋게 시작하고, 당신들이 하는 일이 더욱 잘 되기를 희망한다. 동시에 당신들 자신은 오늘의 모임, 이 법회를 계기로 당신들에게 아주 큰 제고가 있고 아주 큰 촉진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여기에서 당신을 앞으로 밀어줄 것이지만, 당신 자신이 서둘러 법 공부를 하고, 다그쳐 법 공부를 해야 하며, 또 따라올라 와야만 비로소 견고해질 수 있다. 희망하건대 여러분은 더욱 용맹 정진하여, 다른 사람이 원만에 이르는 것만 보지 말고, 자신도 하루빨리 원만(圓滿)을 쟁취(爭取)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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